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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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은 단지 나만의 감상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 소파는 노인들이 단지 앉아서 쉬기에 좋았을 뿐만 아니라 빌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감시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장소였으니까. 애써 무심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노인들의 호기심은 안쓰러우리만치 애절해 그들의 탐욕스런 시선은 언제나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느라 분주했다.

-46쪽

최근의 엄마에겐 의아한 대목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온 식구가 한데 모여 살면서부터 엄마에게 알 수 없는 활기가 느껴졌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고는 하지만 엄마는 이미 칠순이 넘은 노인이었다. 게다가 근래에 엄마에게 기분 좋을 일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었다. 오히려 막내딸 미연까지 이혼을 하고 친정으로 쫓겨나 엄마로선 그야말로 혀를 깨물고 죽어도 시원찮을 상황이었을 텐데도 엄마는 마치 물 좋은 온천에라도 다녀온 것처럼 얼굴에 생기가 넘치고 목소리까지 한 톤 더 높아졌다.

-57쪽

-사람은 어려울수록 잘 먹어야 된다.
나는 엄마의 그 말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결기 같은 게 느껴졌는데 실제로 그날의 삼겹살을 시작으로 엄마는 거의 한 끼도 빠짐없이 고기를 상 위에 올렸다.
-59쪽

어릴 때부터 용돈과 학원비로 맺어진 이 기묘한 모녀관계는 얼핏 생각하면 골치 아픈 양육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는 무지한 부모의 전형적인 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점에선 서로 물고 빨고 핥느라 개인의 인생을 모두 소진시켜버리는 여느 한국식 가족관계보다 더 간편하고 합리적인 면도 있었다. 정상적이지 않은 가족관계보다 더 간편하고 합리적인 면도 있었다. 정상적이지 않은 가족사와 뭔가 석연치 않은 직업, 복잡한 남자관계 등 늘 무언가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두 모녀가 그런 식으로 서로 공존하는 방법을 찾은 건 어쨌든 다행이라면 다행한 일이었다.

-78쪽

그날 밤, 나는 옆에서 오함마가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내가 마지막으로 사랑한 게 언제였을까 생각해보았지만 마치 누군가를 단 한 번도 사랑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사랑이란 단어가 낯선 외국어처럼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래, 마침내 나는 괴물이 되고야 말았구나! 인생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하고 술에 찌들어 사는 동안 어느 틈엔가 감정은 메마르고 사랑을 믿지 않는 괴물...... 그게 바로 마흔여덟에 발견한 나의 모습이었다.

-91쪽

-아마 다들 눈치 채고 있었을 거야. 근데 왜들 모른 척했어? 그때 누군가 따귀라도 갈기면서 욕이라도 하지 그랬어. 아니면 머리라도 깎아서 집에 들어앉히든가. 그런데 나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 씨발, 무슨 가족이 그래?

-132쪽

엄마를 포함해 나나 미연이나 오함마나 전과자이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모두 실패의 낙인을 간직하고 있었고 과거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도대체 이놈의 집구석에 멀쩡한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인가? 그리고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우리 식구들에겐 그토록 어려운 일이었던가?
-140쪽

나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행복을 얻기 위해서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것은 그저 위선에 가득 찬 역할극에 지나지 않는 걸까? 그래서 실은 그것이 드라마에서나 가능할 뿐, 현실에선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허망한 판타지일까?
집에 들어와 함께 살기 전까지 나는 가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것은 생각할 때마다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힘이 쭉 빠지게 만드는, 평생 달고 사는 오래된 지병 같은 거였다. 평생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변두리만을 떠돌며 낭떠러지를 걷듯 살아온 천애의 삶, 아무리 똥줄 타게 뛰어다녀봤자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버거웠던 무능과 무지, 숱한 수모와 상처, 불명예와 오명의 역사...... 도대체 내가 어떻게 가족에 대해 자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141쪽

짱알거리는 목소리로 ‘씨발’거리며 눈을 치켜뜰 땐 아무리 조카딸이라도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그애는 우리 삼남매가 모두 죽고 난 뒤에 우리를 기억해줄 유일한 다음 세대였다. 게다가 그애는 나에게 담뱃값을 대주지 않았던가!

-175쪽

예쁜 여자들이 흔히 그렇듯 그녀는 구태여 착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래서 착하지 않았다.

-184쪽

그녀는 한마디로 기내식 같은 여자였다. 별로 당기지는 않는데 안 먹으면 왠지 손해일 것 같고, 그래서 억지로 먹기는 먹되 막상 먹으려고 보니 뭔가 복잡하고 옹색하기만 하고, 까다로운 종이접기를 하듯 조심스럽고 겨우 먹고 나면 뭘 먹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나고, 식후에 구정물 같은 커피를 마시다보면 뭔가 속은 것 같은 기분도 들고, 갖출 건 다 갖춘 것 같은데 왠지 허전하고, 결국 포장지만 한 보따리 나오는 그런 여자였다. 그녀의 얼굴엔 언제나 ‘안전벨트를 매주시겠습니까, 손님?’이라고 쓰여 있었다.

-185쪽

그에게 빚을 졌다는 부담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때문에 오함마를 점점 더 멀리하게 되어 출감하기 몇 달 전부턴 면회도 가지 않았다. 그러다 급기야 죄의식과 부채감 등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어서 가장 어리석고 나약한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식을 택했다. 즉, 그를 미워하게 된 거였다. (...) 나는 억지로 자신을 합리화했고 급기야 그가 교도소에 간 게 당연한 일처럼 느껴졌다. 잘못된 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192쪽

우리는 서로 사랑했던 걸까? 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런 약속도 기대도 없는 쿨한 사이였을 뿐이다. 열정이 없으니 상처도 남지 않는 게 당연했다. (...) 내가 믿기론, 사랑이란 여자의 입장에선 ‘능력 있는 남자에게 빌붙어서 평생 공짜로 얻어먹고 싶은 마음’이고 남자의 입장에선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아이를 건강하게 낳아 양육해줄 젊고 싱싱한 자궁에 대한 열망’일 뿐이었다. 우울한 얘기지만 그것이 사랑의 본질인 것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그 모든 사랑 이야기는 대중을 기만하는 사기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젊지도 않고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그것은 사랑하곤 애초에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이야기일 뿐이었다.

-216쪽

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위험하다. 자존심이 없으면 자신의 이익에 따라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다. 그것은 그가 마음속에 비수 같은 분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존심을 건드리면 안 되는 법이다.

-222쪽

니들처럼 배운 게 없는 놈들은 잘 모르겠지만 원래 사람은 이렇게 다루면 안 되는 거야. 우린 위대한 문명을 창조한 존재고 우리 스스로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살도록 제도를 발전시켜왔거든. 니들이 무슨 짓을 하면서 살아도 좋지만 절대로 그 사실을 잊어선 안 돼. 하지만 니들은 그 사실을 망각하고 날 짐승처럼 다뤘어. 그게 얼마나 슬프고 끔찍한 일인지 너희들은 모를 거야. 그것은 단지 나 개인을 두들겨 팬 게 아니라 인류가 수천 년 동안 피 흘리며 이룩한 위대한 유산을 짓밟은 거야.

-251쪽

최근에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나는 언제나 특별한 혜택을 받고 살았다. 적어도 나의 가족 안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그들은 늘 나를 배려해줬고 무엇에서든 우선권을 주었다. 그들 덕에 나는 가족 관계 안에서 평탄한 삶을 살았다. 오함마에게 두들겨 맞은 것도 어릴 때의 이야기일 뿐, 나이가 들어서는 오히려 그가 나를 어려워했다. 순전히 내가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자신들과는 뭔가 다른 미래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들은 나에게 자신들과는 뭔가 다른 미래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들은 나를 지지해줬지만 나는 고생 없이 평탄하게 살아온 덕에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인간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그들을 무시하고 경멸했으며 그들을 부담스러워하기까지 했다. 나에 대한 기대가 부서져 산산조각난 뒤에도 그들은 나를 버리지 않았고 나 자신이 나를 포기한 뒤에도 그들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252쪽

나는 언제나 목표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 이외의 모든 것은 다 과정이고 임시라고 여겼고 나의 진짜 삶은 언제나 미래에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 결과 나에게 남은 것은 부서진 희망의 흔적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헤밍웨이처럼 자살을 택하진 않을 것이다. 초라하면 초라한 대로 지질하면 지질한 대로 내게 허용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내게 남겨진 상처를 지우려고 애쓰거나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그것이 곧 나의 삶이고 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286쪽

여기서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헤밍웨이가 아기였을 때, 완벽한 문장으로 처음 한 말은 ‘나는 버팔로 빌을 몰라요’였다고 한다. 작가 그레이엄 그린이 처음 한 말은 ‘개가 불쌍해’였다고 알려져 있다. 역시 비범한 작가들은 뭔가 달라도 처음부터 다른 모양이다. 그렇다면 내가 완벽한 문장으로 처음 한 말은 뭐였을까? 그것을 말해줄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나도 알고 당신도 알고 우리 모두가 안다. 그것은 틀림없이 다음과 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맘마.
-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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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월 18일 보림 창작 그림책
서진선 글.그림 / 보림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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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일요일

나는 총이 갖고 싶었어요.
친구 준택이가 생일 선물로 받은 총을 자랑했거든요.
엄마 아빠는 총을 사주지 못했어요.
나는 속상해서 눈물이 나왔지요.
그런데 누나가 총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어요.
나무젓가락으로 총을 만드는 누나는 마치 요술쟁이 같았어요.
우리 누나는 뭐든지 잘 만들지요.
누나가 만든 종이비행기는 유난히 멀리 날아가요.
나는 누나가 참 좋아요.

5월 19일 월요일
선생님이 수업도 끝나지 않았는데 곧장 집으로 가라고 했어요.
내일도 학교에 오지 말라고 하시네요.
이유가 뭘까요?
우린 수업이 빨리 끝나서 신이 났어요.
그래서 총 놀이를 하기로 했지요.
세상에서 총 놀이가 가장 재밌는 것 같아요.
엄마는 위험하니까 밖에 나가 놀면 안 된다고 했어요.
그렇지만 나는 누나가 만들어 준 총을 가지고 몰래 성당으로 갔어요.
친구들은 내 총을 부러워하기도 했지요. 나는 준택이 총이 더 좋지만요.
이날은 토요일도 아닌데 누나도 학교에서 일찍 왔어요.
반가워서 와락 누나를 안아버렸지요.

군인 아저씨들이 우리 동네에 왔어요.
진짜 총을 처음 봤어요.
총을 보니 가슴이 두근두근.... 나는 정말 총이 갖고 싶었거든요.
나도 어른이 되면 저렇게 멋진 총을 든 군인이 될 수 있겠지요?
얼른 어른이 되고도 싶어요.
군인 아저씨들을 따라가고 싶었는데 누나가 빨리 집으로 가자고 했어요.
어휴, 좀 더 가까이서 구경하고 싶었는데...

방 안에는 이불이 가득했어요.
아빠는 총알이 들어올지도 모른다며 창문을 이불로 다 가렸어요.
방 안이 밤처럼 깜깜해졌죠.
준택이 할머니는 인민군들이 총을 쏜다고 걱정했어요.
아빠는 인민군이 아니라 우리 군인이 총을 쏘는 거라고 했어요.
아니, 우리 군인이 왜 우리한테 총을 쏘는 거예요?
그리고 인민군은 또 뭐죠?
이불로 창을 다 가려버리니 답답해요.
밤이 되자 멀리서 총소리와 대포 소리도 들렸어요.
소리가 너무나 커서 아주아주 무서웠어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아빠는 누나에게 집 밖으로 절대 나가지 말라고 했어요.
누나는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나가야 한다고 했어요.
누나는 나를 꼭 안아 주었죠.
누나 냄새는 언제나 향긋해요.

5월 21일 수요일(석가탄신일)
아침이 되자 총소리가 멈추었어요.
그런데 일어나 보니 누나가 없는 거예요.
큰 소리로 불러보았지만 어디에도 누나는 없었어요.
엄마는 누나 소식을 알려고 여기저기 전화를 하면서 울었어요.
밤늦게까지 누나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나는 누나가 보고 싶었어요. 누나 걱정이 되었고요.
우리 누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5월 23일 금요일
아빠는 누나를 찾으러 아침 일찍 나가셨어요.
다음 날 새벽에야 혼자 돌아오신 아빠의 바지에 피가 묻어 있었어요.
군인들이 우리가 사는 도시를 막아서 아무도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한다고 해요.
아빠는 옷만 갈아입고 누나를 찾으러 다시 나가셨어요.
아빠가 얼른 누나를 찾아서 돌아왔으면 해요.
너무너무 무서워요.

5월 24일 토요일
동네 아줌마들과 엄마는 학생과 시민들을 위해 주먹밥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우리 누나가 돌아왔어요.
하지만 누나는 집으로 가지는 않았어요.
걱정하지 말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어요.
형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외쳤어요.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하면 군인들이 총을 쏘는 건가요?
누나는 트럭에 탄 채 다시 떠났어요.
엄마가 나를 안고 오랫동안 울었어요.
나는 누나가 걱정이 되었어요.
민주주의인지 뭔지도 지키고 누나도 무사히 돌아왔으면 해요.

5월 25일 일요일
비가 내렸어요.
향냄새가 가득한 강당에 많은 관들이 늘어서 있었어요.
관 위에는 사진이 놓여 있었고요.
아저씨, 아줌마, 여러 형들과 누나들 사진이 있었지만 우리 누나는 없었어요.
이 사람들이 모두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모두 울었어요. 사진을 찍는 기자도 울고 향을 피우는 사람도 모두 울었어요.

5월 26일 월요일
엄마는 누나를 기다리며 울고 또 울었어요.
잠도 자지 않고 울었어요.
나도 잠이 오지 않았어요.
누나가 어여 문을 열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어요.
새벽에 엄마와 아빠는 누나를 찾으러 다시 나가셨어요.
집에는 나랑 강아지 아롱이만 남았어요.

5월 27일 화요일
친구들이 총 놀이를 하자고 불렀어요.
나는 총 놀이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누나가 만들어 준 비행기들만 남기고 총은 쓰레기통에 버렸어요.
누나가 만들어준 것이지만 갖고 있을 수 없었어요.
총은 무서운 놈이에요.
총은 나빠요.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사람을 죽이는 무기는 나빠요.
나는 전쟁놀이도 이제 싫어요.





5월 28일 수요일
누나가 빨리 왔으면 좋겠어요.
누나가 보고 싶어요.

2013년 5월 18일

누나가 돌아오지 않은지 30년이 넘게 흘렀어요.
우리 누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그때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그 사람들의 영혼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누가 그 사람들을 죽게 한 걸까요?
누가, 책임을 졌나요?
누가, 잘못을 뉘우쳤나요?
오늘은 5월 18일,
우린 큰 슬픔을 가졌어요. 위로가 필요하고 치유가 필요해요.
그런데 치유의 노래 한자락도 마음껏 부를 수가 없네요.
대체, 우린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 거지요?
이게, 민주주의 맞나요?
이런 게, 2013년의 대한민국 현주소 맞나요?
아파요. 아파요. 아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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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기차 - 2009년 라가치 상 뉴호라이즌(New Horizons Award) 부문 수상작 뜨인돌 그림책 29
사키 글, 알바 마리나 리베라 그림, 김미선 옮김 / 뜨인돌어린이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찌는 듯한 오후, 기차의 객실 안은 찜통 속처럼 더웠고, 다음 역까지는 무려 한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객실 안에는 한 부인이 소녀와 그보다 어린 소년, 가장 어린 듯 보이는 여자아이 셋을 돌보고 있었다.
그리고 맞은 편에는 일행이 아닌 한 신사가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객실 안을 멋대로 휘젓고 다녔고, 여인은 애들을 단속하느라 끊임없이 "안 돼!"를 외쳤다.
그러면 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왜요?"라고 대꾸했다.
좁은 객실을 운동장처럼 쓰며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재밌게 묘사했다. 그럴수록 교양미를 강조하지만 신경질적인 부인의 모습이 위태롭게 보인다. 이러다가 폭발하겠네...

부인은 아이들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서 이것저것 창밖 풍경을 지목하지만 거기엔 별다를 게 없다.
게다가 애들은 사소하지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들을 자꾸 던진다.
부인의 표정은 뭐랄까. 혹 떼려다가 혹 붙인 그런 표정?

기껏 아이들을 위해서 해준 이야기는 재미난 게 아니라 아주 지루하기만 했다.
게다가 '착한 아이'여서 무사히 위기를 탈출한 이야기는 더 싫기만 하다.
아이는 아까 불렀던 노래를 재차 불렀고, 신사는 마침내 자신이 나서야 할 때라는 것을 인정했다.
부인의 지루한 이야기를 덮을 새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신사가 꺼낸 이야기는 베르타라는 이름의 '엄청나게' 착한 아이 이야기이다.
또 '착한' 아이 이야기라는 사실에 아이들은 벌써 시큰둥.
들어봤자 빤하다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남자 아이는 눈동자가 돌아갔고, 제일 어린 여자아이는 고개마저 돌렸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반전이 있다.
베르타는 그냥 착한 게 아니라 '심하게' 착하기 때문이다.
심하게 착한 아이? 착해서 좋은 게 아니라 착해서 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들린다.
오, 관심이 가는 걸?

베르타는 거짓말도 하지 않고, 옷을 더럽히는 일도 없고, 음식도 깔끔하게 먹고, 공부도 잘해서 남들의 모범이 되는 아이였다.
그러니까 그야말로 어른들 입장에서 완벽하게 '모범'적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베르타는 메달을 세 개나 받았다. 말 잘 듣는 상, 공부 잘하는 상, 그리고 바른생활 상이었다.
소녀는 그것들을 늘 자랑스럽게 옷에 걸고 다녔고, 걸을 때마다 메달이 서로 부딪히면서 찰강찰강 소리를 냈다.
마을에서 메달을 세 개씩이나 받은 아이는 없었고, 마을에서 이 소녀를 모르는 이도 없었다.
착한 걸로 소문난 이 소녀는 그 바람에 왕자님의 궁전 정원까지 초대를 받았다.
그야말로 착한 것 하나로 일약 신데렐라가 될 것 같은 모양새였다.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은 중간중간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는데, 그때마다 신사는 이야기의 흐름을 끊지도 않고 더 흥미진진하게 내용을 꾸려간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든가, 아니면 임기응변이 아주 강한 사람으로 보인다.
하여간, 왕자님의 놀라운 정원은 꽃 대신 돼지로 가득했다. 아, 정말 대단한 설정이다.
장미꽃이 가득해야만 할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 돼지라니!
비록 돼지들이 모두 먹어치워서 꽃은 없었지만 왕자님의 정원에는 신기한 것들이 가득 차 있었다.
베르타는 자신이 착한 덕분에 이 모든 것들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며 콧대가 한창 높아져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때 돼지를 잡아먹으려고 늑대 한 마리가 정원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베르타는 불행하게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하고 새하얀 앞치마를 입은 베르타는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띄었다.
늑대는 늘 먹던 돼지 대신 새 사냥감을 향해 입맛을 다셨을 것이다.
어떻게 왕자님의 궁에 위험하게 늑대가 들어오는지,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지에 대해서는 묻지 말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베르타는 죽도록 달렸고 풀숲에 숨어서 늑대의 눈을 피했다.
그렇지만 오들오들 떠는 바람에 목에 걸린 메달이 소리를 내고 말았다.
베르타는 자신이 심하게 착한 바람에 타게 되었던 그 메달 덕분에 늑대에게 희생된 것이다.
착한 것도 소용 없는, 착해서 오히려 망하게 된 놀라운 이야기!!!

아이들은 이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열광했고, 부인은 교육적이지 않은 내용이라며 떨더름한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이 악동들을 10분 간 조용히 만든 것은 사실이니 신사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
그나저나 이야기의 큰 재미를 느낀 아이들이 앞으로도 부인에게 이런 수준의 이야기를 원할 텐데, 저 부인은 이제 뒷감당을 어찌 할지 걱정스럽다. 이야기 선생 하나 초빙해야 할 듯!

'착한' 아이가 늘 주인공인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착한 게 당연히 좋은 것고 옳은 거였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보니 '착하다'라는 표현은 어리숙하고 멍청하고 그래서 남들에게 이용당하기 쉬운 사람으로 대치되어 있었다. 낯선 사람에게 상냥하게 굴지도 말고 도와주지도 말라고 가르쳐야 할 만큼 험한 세상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혹은 믿어 왔던 가치와 다른 현실의 간극을 메우는 건 참 힘든 일이다.

그걸 채우는 건 좀 더 시간이 필요하고, 더 많은 경험을 요구하지만, 적어도 그런 판단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우리는 보다 다양한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착한 아이가 착해서 저리 끔찍한 일을 당했으니 나쁘게 살아라~가 아니라, 지나치게 착한 것만 강조하며 살게 한 것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알아야 한다는 것.

그런데 또 부모 입장에서는 소위 '착한' 아이, 키우기 편한 아이를 바라는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수업 시간에 장난치고 떠드는 아이가 곤란한 것처럼...

이야기거리도 많고 생각할 거리도 많은 재미난 책이다. 옆으로 긴 그림책의 판형도 재밌고, 다채로운 표정의 그림도 익살맞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전에 죽은 작가의 오래된 그림책이 지금도 즐겁게 읽히는 것이 참 좋다. 동 작가의 다른 책은 없는지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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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생각하는 개구리
이와무라 카즈오 지음, 김창원 옮김 / 진선아이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피리를 부는 부엉이,
옷으로 피리를 닦는 부엉이,
눈보라 치는 밤 피리를 부는 부엉이,
눈보라 치는 밤 피리 부는 데 애먹는 부엉이

하하핫, 단계별로 보다 보니 웃기다.
한 쪽에 그림 하나씩만 있는데 설상가상이랄까.
부엉이, 욕 봤다!

'밤'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많은 얘기를 했다. 그 중 하나, '밤이 온다' 시리즈다.
밤은 어디서 오는 건지 궁금했다.
그 다음엔?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밤을 찾는다.
땅 속에서 오는 것만 같아서.
그러다가 또 궁금해졌다.
밤은 왜 어두울까????
그러게, 밤은 왜 어두울까? ㅎㅎㅎ

다시 생각해 본다. 왜 밤은 어두운지,
그리고 또 궁금해졌다. 밤은 왜 조용한지?
모두 자고 있기 때문일까?

생각은 생각의 생각을 낳아서, 다시 궁금해졌다!
사람은 왜 밤에 자는지....
개구리가 너무 오래 생각하다 보니 옆 자리에 있던 생쥐가 새근새근 졸고 있다.
한참을 생각하던 개구리의 결론!
낮에 깨어 있기 때문에 밤에 자는 거라고!
하하핫! 맞는 말이네. ㅎㅎㅎ

그런데 밤에 깨어 있는 친구들도 있지 않은가!
맨 처음에 출연했던 부엉이 말이다.
밤에 깨어 있어서 낮에 자는 거라고 말하는 개구리.
그래 그렇지. 박쥐도 밤에 깨어 있어서 낮에 자는 친구지.

그렇다면 이들은 왜 낮에 자는가?
눈이 부셔서 그런 게 아닐까?

또 궁금하다.
왜 밤에는 별이 뜰까?
조용해서?
왜 밤에는 달도 뜨지?
부엉이가 깨어 있기 때문일까?
우리의 개구리 친구의 궁금증을 다 풀어주려면 하루 낮과 하루 밤은 부족할 것이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생쥐가 안쓰러울 지경!

왜 밤에는 무서울까? 조용해서?
개구리야, 낮에도 무서울 수 있다는 걸 모르는구나.
왜 밤에는 쓸쓸할까? 모두 잠들어 있기 때문?
개구리야, 낮에도 쓸쓸할 수 있단다. 네가 아직 고독을 모르는구나.
우야튼, 밤이 좋다. 잠들 수 있는 밤이, 내일을 기다리는 밤이 좋단다.
물론, 내가 내일을 기다린다는 건 꼭 아니지만....

개구리가 꿈을 꿨다. 나비가 되는 꿈!
날개를 퍼덕이며 연못 위를 나는데, 개구리임에도 물이 무서웠단다.
간신히 나무 끝에 앉았는데 친구 초록이가 보였던 거지.
초록이도 물론 개구리야.
그런데 초록이의 눈빛이 섬뜩했어.
초록이가 혀를 낼름 내밀어 생각하는 개구리를 '날름!' 삼켰던 거야!
그래서 "초록아, 나야 나!"하고 외치다가 깨어난 이야기....
아, 슬프다!

왜 꿈을 꾸는 걸까? 무엇을 생각하는 걸까? 꿈은 누가 생각하는 걸까? 등등,
생각하는 개구리답게 질문의 질문이 계속 이어진다.
그러다가 깨어 있는 쥐의 꿈이 무엇이냐고 묻게 되고, 쥐는 아주아주 커져서 숲을 뛰어넘고 산을 뛰어 넘어 구름을 뚫더니 마침내는 무지개를 잡는 게 꿈이라고 했다.
어휴, 이렇게 낭만적일 데가!
무지개를 잡는 꿈이라니, 예쁘다!
깨어 있는 개구리의 꿈은 점점 점점 커져서 바다를 헤엄치는 것이다.
돌고래와 고래, 도미와 다랑어가 모두 함께...
그렇게 꿈 이야기를 하다가 새근새근 잠이 든 두 친구.
참으로 평화로운 모습이다.
꿈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들어 꿈 속으로 빠져드는 풍경... 예쁘다.

당연해서 고민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는 그런 사소한 것들에 계속해서 질문을 하는 생각하는 개구리!
그래, 너처럼 조용한 시간을 가지면서 왜? 라고 묻는 시간도 분명 필요하지.
그런데 아직도 생각하는 개구리야, 언제까지 생각할 거니? 난 그게 궁금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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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인보다 주인공이 되고 싶어.
    from 그대가, 그대를 2014-03-02 22:00 
    수짱 시리즈로 유명한 마스다 미리의 작품이다. 등장하는 인물도 손꼽을 만큼 적고, 그림도 아주 심플하다. 배경그림도 없고 그야말로 좀 더 통통한 졸라맨 정도로 보이는 캐릭터가 나오지만 길지도 않은 대사에는 곱씹을 내용들이 가득하다. 제목부터 이미 철학적이다. 다 읽고 나면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하고 되묻게 되는 생각하는 만화다. '생각하는' 만화라고 뱉고 나니 '생각하는 개구리'가 떠오른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묻고 대답하며 다시 생각하는 그 개
 
 
2013-05-17 0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17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동생을 하나 더 낳겠다고요? 병만이와 동만이 그리고 만만이 2
허은순 지음, 김이조 그림 / 보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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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우리 말 읽기책"으로 기획된 병만이와 동만이 그리고 만만이 이야기 두번째다.

이 책은 본격적인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마치 연습운동 하듯이 그림으로 시선을 끈다.

 

 

 

형 병만이가 아끼는 로봇을 동만이가 몰래 갖고 나와서 노는 장면이다. 형아 이름을 지우고 제 이름을 적어 놓는다. 여섯 살 동만이가 한글도 쓰다니 기특하다.^^

 

이제 병만이가 소개하는 동만이 이야기를 들어보자. 병만이 입장에서 느끼는 동만이의 모습이다.

 

겨우겨우 쌓은 탑을 한 방에 박살 내는 동만이.

제멋대로 낙서해서 공책을 못 쓰게 만든 동만이.

새로 산 크레용은 뚝뚝 부러뜨려 놓고,

아끼는 사인펜을 꾹꾹 눌러 놓은 내 동생 동만이.

 

아하핫, 마치 노래하는 것처럼 가락이 흘러나온다. ~한 ~을 ~하게 만드는 동만이~

일부러 압운을 맞춘 흔적이 역력하다. 몇 줄이라도 더 보태어서 얼마든지 늘일 수 있을 것만 같다.

저 동만이 모습은 내 조카들이 자랄 때 한창 모습이다. 내 형광펜 뭉특하게 만들어 놓고 뚜껑도 안 닫아서 못 쓰게 만들 때가 얼마나 많던지... 지금은 선물로 받은 필기구를 못 줘서 안달이지만... 오늘도 다현양은 선물로 받은 여러 지우개 중 하나를 내게 안겨주고 갔다. ^^

 

아무튼, 이러저러해서 동생 때문에 참 피곤한 병만이인데, 엄마가 이모를 데릴러 가면서 병만이를 잠시 맡겨 놓았다. 잠들어 있는 터라 안심했을 것이다. 이모가 못 찾고 있는 지하철 역은 집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데'니까.

 

엎어지면 코 닿을 데를 그려 놓았다. 어른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표현인지라 두번 생각할 것도 없지만, 어린이들은 놀라운 표현일 것이다. 거인도 아닌데 엎어지면 코가 닿다니!

 

그런데 이를 어쩌나! 엄마가 돌아오시기도 전에 동만이가 깨어버린 것이다. 어이쿠! 엄마가 안 계신 것을 눈치 챈 동만이가 울먹울먹한다. 동만이가 울음을 터트리면 사이렌이 울리는 것처럼 시끄럽다. 그 전에 이 위험한 사태를 막아야 한다!

혼신의 힘을 다해 동만이를 웃겨버리는 병만이! 너의 노력에 박수를!!!!!!

 

위급상황을 무사히 넘기고 돌아가는 구급차 모습이 재밌다. 임무를 수행했습니다!-의 느낌으로 경례를 부치는 로봇! 

 

울음은 터지지 않았지만 동만이는 금세 엄마를 찾는다. 병만이는 엄마가 엎어지면 코 닿을 데 가셨으니 금방 오실 거라고 설명했다. 다시 한 번 반복된 '엎어지면 코 닿을 데!'

 

그렇지만 병만이도 엄마가 벌써 그립다.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통제가 되지 않는 어린아이와 단 둘이 있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조카들 어릴 때 아해들 보고 싶어 노래를 부르지만, 아해들이 집에 오면 반가운 것은 15분! 갈 때가 더 반갑더라는!!!

 

동만이는 이제 병만이의 로봇에 눈독을 들인다. 망가뜨릴까 봐 손도 못 대게 하고 싶지만, 벌써 울먹거리는 동만이를 보는 순간 병만이는 로봇의 손을 놓아야 했다. 이제 불자동차는 동만이의 마음 속에서 달려오고 있다. 이리저리 요리조리 로봇을 가지고 험하게 노는 동만이! 그걸 지켜보는 병만이의 마음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일 테다.

 

 

다행히 동만이가 화장대 위에 얌전히 로봇을 올려놓았고, 거울 너머로 안도의 숨을 내쉬는 병만이가 보인다. 그러나 그 숨이 꺼지기도 전에 그만 고꾸라진 로봇! 아아아, 구급차에 실려가는 로봇에게 애도를 표한다. 이제 울고 싶은 건 동만이가 아니라 병만이일 것이다. 그러나 동만이가 울어버리면 그건 정말 큰일날 일! 지금까지 고생한 것도 모두 물거품이 된다. 최대한의 인내심을 끌어당겨 동만이를 달래는 병만이. 이럴 때 달달한 아이스크림이 최고다!

 

1권에서 똥똥거리며 '똥만이'로 통했던 동만이가 화장실에서 응가를 한다. 아직 어려서 똥꼬를 닦지 못하는 우리의 똥만이! 이를 어쩌나, 병만이는 졸지에 동생 똥꼬까지 닦아주게 생겼다. 오늘 병만이 정말 고생이 많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가 이리 멀 줄이야!!!

 

그리고 마침내 이모 등장! 오랜만에 조카들을 보는 이모의 입장에선 이 악동들이 귀엽기만 할 것이다. 동만이 귀엽다며 동생 하나 더 낳을까? 라고 말씀하시는 엄마! 오, 갓!

 

"언니, 동만이 정말 귀엽네. 많이 컸다."

동만이가 그렇게 귀여우면 이모가 좀 데리고 가세요. 제발요.

"그렇지? 귀엽지? 안 그래도 요즘 네 형부가 애 하나 더 낳자 한다."

 

엄마 눈이 반짝반빡해요.

나는 목이 바짝바짝 타요.

 

으하하핫, 내가 가장 크게 웃은 부분이다. 이모가 데리고 가라는 병만이의 솔직하고도 절실한 심정과, 엄마의 반짝거리는 눈과 병만이의 바짝 타들어가는 심정이 대구를 이루며 상황을 더 재밌게 만든다. 의성어와 의태어가 발달한 우리말의 특징이 여기서 한눈에 들어온다. 이런 표현들이 참 좋다. 어린이 친구들도 이 부분을 읽으면서 병만이의 마음을 크게 이해하지 않을까?

 

동생을 하나 더 낳겠다고요? 저런 애를 하나 더 놔두고 엎어지면 코 닿을 데 또 갔다 오려고요?

그, 그건 안 되죠, 엄마.

 

여차하면 엄마가 동생 하나 더 낳을 기세! 그것만은 막아야겠다 싶은 병만이의 반격은 대체 무엇일까?

이 책의 제목에서 짐작해 보자. 누군가 곧 등장할 것이다. ^^

 

 

이번에도 역시 '놀이'가 부록처럼 마지막에 따라온다.

숨은 그림 찾기는 어린이나 어른이나 모두 재밌어 할 덕목. 혹시라도 미리 맞춰볼까 봐 그림을 조금만 찍어봤다.

두번째는 병만이가 화가 날 때 불자동차가 달려온다고 한 표현을 떠올리면서 언제 마음 속에 불자동차가 달리는지 물어보았다.

형제가 있는 아이라면 바로 그 형제 자매 남매와의 경우로 물어보는 것도 좋겠다. 다 컸지만 나도 할 말 많아요. 끙!!

세번째는 동생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듣기로는 동생이 생겼을 때 큰아이가 겪는 배신감은 남편이 바람 피웠을 때 아내가 겪는 심정과 같다고 하던데 정말 그럴까? 맏이가 여자아이면 보통은 동생을 잘 돌보는 편인데 우리 집처럼 아들-딸 순서라면 좀 많이 싸우는 것 같다. 아주 드물게 여동생을 아주 잘 돌보는 오빠도 있긴 하지만 그건 정말 드문 경우인 듯!

 

이 책은 그림책과 저학년 동화책의 중간 단계로 아이들의 '읽기' 연습에 보다 도움을 주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기능성이 분명하지만 이야기의 재미와 그림의 효과도 충분히 누리고 있고, 가족 사이에서 보다 많은 대화를 이끌어낸다는 것도 아주 훌륭하다. 우리 집에서는 다현 양이 1권을 가져갔고, 언니에게는 부모님용으로 구성된 16번째 책을 내밀었다. 내일은 다현양이 이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들어봐야겠다. 이왕이면 그림도 그려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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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05-17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마노아님 리뷰만 봐도 이 시리즈 좋은 책 같아요.@@
도서관에서 이 책 구입해야겠어요.^^

마노아 2013-05-17 00:41   좋아요 0 | URL
이 책 시리즈 아주 훌륭해요. 재미와 공부 일석 이조랍니다. 작은 도서관에서도 마구마구 빛날 거예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