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속에 6
강경옥 지음 / 애니북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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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여왕은 일방적으로 시이라젠느의 손을 들어주었다. 오랜 기간 보지 못한 딸에 대한 연민은 아니다. 그녀는 철저히 여왕으로서, 신탁에 의지해서 결정한 것이다. 그녀의 판단대로라면 카피온의 행성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고, 그걸 구제해줄 사람은 시이라젠느다. 그 증거로 그녀는 성역에서 살아 돌아오지 않았는가. 그러나 행성의 운명이 걸린 이야기를 이주할 행성 준비가 되지 못한 상황에서 꺼낼 수는 없다. 그러니 그녀의 진심을 모르는 아시알르로서는 섭섭하고 분노할 만한 일! 그렇다 해도 전쟁을 선포한 것은 지나쳤다. 여왕의 결정이 불만스럽긴 하지만 전쟁이 결정되는 순간 피해를 입는 것은 자국 국민들이다. 그것도 초능력을 갖고 있는 왕족들의 싸움으로, 그 힘과 전혀 무관한 힘없는 백성이 죽게 되는 거니까. 

(구체적으로 내전이 일어나기 전 마지막으로 가진 잔치에서 아시알르와 아르만이다. 시이라젠느가 거절한 자리를 아시알르가 다시 청해서 이루어진 춤이다. 서로에게 향하지 않고 어긋나는 마음의 시선이 안타깝다.)


아이러니하다. 일이 쉽게 풀릴 수 있었음에도 커진 것은 시이라젠느가 자신의 마음을 읽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마음을 열지 않은 것은 지구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카피온의 앞날이 불투명한 지금, 지구로 가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다음 수순은 당연히 지구로 향하는 것이 될 테다. 더 발달한 과학 기술, 게다가 막강한 초능력까지 가진 집단이 이주를 한다면, 그것도 나라 규모의 이주가 진행된다면 지구의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야말로 우주인의 침공을 받은 우주전쟁이 되지 않겠는가. 물론, 이동이 어떻게 가능할지, 어떤 시대로 가게 될지 알 수 없지만, 평생을 지구인으로 살아온 시이라젠느로서는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그 구멍을 열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그 결정 때문에 정작 그녀의 진짜 백성인 카피온 사람들이 죽게 생겼다. 그야말로 딜레마다. 


시이라젠느는 자신의 힘을 제대로 쓰기 위한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간다. 교관은 아르만. 실력이야 레디온이 앞서지만, 그 힘을 쓸 수 있는 건 1계급에 속하는 왕족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카스트제도 마냥 너무 적나라하게 다섯 신분으로 갈라져 있는 카피온. 그 안에선 아무리 빼어난 레디온도 그저 6두품에 불과할 뿐이다. 아흐 통재라~ 

(자신이 가진 초능력을 물질의 형태로 전환시킨 무기다. 제1계급만 사용할 수 있고, '대량살상'용이다. 


그나저나 후반부 달리고 있는데 아직도 시이라젠느와 레디온은 서로를 향한 마음의 방향을 모르고 있다. 시이라야 알고 있지만 사람의 감정에는 영 둔감한 레디온이 문제다. 크르르릉!


(보다 보니까 내가 보고 따라 그린 그림이 또 있는 걸 찾았다. 오른쪽이 내 그림. 얼굴 방향이 늘 같구나. 다른 방향으로 그리지를 못했다..;;;; 먹으로 칠하고 스타킹으로 하얀 물감 흩뿌려서 별을 만들었다. 나름, 고생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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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속에 5
강경옥 지음 / 애니북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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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레디온이 선택한 주군은 시이라젠느다. 그 시이라젠느가 자신을 유배에서 풀어주는 조건으로 카라디온으로 가겠다고 했다. 의식이 없는 그녀에게서 답을 듣지 못한 레디온으로서는 그녀가 마지막에 말한 그대로 카라디온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는 자신의 마음이 어디로 흐르는지 알지 못하지만, 이미 레디온도 시이라젠느에게로 마음이 향하고 말았다.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 사실을 모르거나, 혹은 인정할 수 없는 사이이니 둘의 관계에 한발자국 진보란 좀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카라디온의 왕 에라스톤은 컴퓨터가 뽑은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한다. 금속으로 만드는 것에는 아직까지 막힘이 없다고 하는 카라디온의 기술력 답다. 그렇게 기계적 선택으로 왕이 된 인물이지만, 다른 과격파들에 비해서 에라스톤 왕은 좀 더 인간미가 있다. 더불어 바람끼까지~


(레디온의 여동생 피레는 카라디온의 왕을 모시고 있었다. 그녀 자신의 선택이다. 시이라젠느가 카라디온에 머무는 동안 그녀의 시중도 도왔다. 97년도에 저 장면을 보고 따라 그린 게 오른쪽의 내 그림. 푸하하핫, 우습고 웃기다...;;;)


카라디온 왕은 시이라젠느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국혼을 미루고 그녀가 카피온으로 돌아가서 여왕이 될 수 있도록 밀어주겠다는 이야기. 줄곧 지구에서 자라온 그녀가 카피온에 대한 알량한 애정은 적을 거라는 계산에서였을 것이다. 그녀 역시 당장에 급한 것은 여왕에 오르는 것이니까. 그렇게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으면 될 것 같지만, 서로를 온전히 믿을 수 없는 사이에서 배신은 손쉽게 싹트는 법. 

카라디온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시이라젠느는 자신의 힘을 발산하는 법을 깨닫게 된다. 확실히 처음부터 초능력을 다루지 못했던 그녀는 위급한 상황에 닥쳐서야 힘이 분출된다. 블랙홀을 빠져나올 만큼 어마어마한 힘을 자랑하지만, 이렇게 조절이 쉽지 않아서야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라졌던 질을 추적해서 되살려 낸 과정은 뭔가 판도라의 상자를 연 기분이었다. 카피온과 지구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실마리 같은 것! 상상 속에서는 뭐든 가능한 법이지만, 정말 있을 법도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혹시 가라앉았다던 아틀란티스 대륙도 카피온 어딘가에 있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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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속에 4
강경옥 지음 / 애니북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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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이라젠느는 초능력의 각성을 바라면서 성역에 들어갔다. 막을 수 없었기에 동행했던 레디온은 그 바람에 나안 행성에 종신 유형을 가게 되었다. 유배지에서 오히려 평안해진 얼굴을 한 레디온. 레디온이 무사히 카피온으로 돌아가려면 각성한 시이라젠느가 돌아와야겠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동시에 일어난 큰 지진으로 제1왕녀에 대한 여론은 급격히 나빠졌다. 이때를 놓칠 아시알르의 정치 감각이 아니다. 때마침 카라디온에서는 여왕의 직계 왕녀와의 국혼을 요구해 왔다. 거절할 경우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협박도 했다. 천연 공기가 아닌 인공 공기를 쓰는 카라디온에서는 농산물이 나질 않는다. 그런데 최근에 그 문제를 해결할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먹거리의 자급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 순간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패셔니스트로 보이는 카라디온의 에라스톤 왕. 컴퓨터가 선정한 가작 '적합한' 왕이다!)


여왕은 딜레마에 빠졌다. 직계 왕녀라면 아시알르만 남았는데, 시이라젠느가 부재한 이상 그녀는 다음 대 여왕이 되어야 한다. 여왕을 카라디온의 왕비로 내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전쟁을 할 수도 없다. 이 난감한 때에 아시알르는 또 특유의 정치 감각을 발휘한다. 가짜 시이라젠느를 내세워서 직계 왕녀로서 카라디온에 시집을 보내는 것이다. 검은 머리 또래 여자아이를 구해서 질을 시켜서 기억을 지워버리고, 성역에서 살아왔으나 기억을 잃은 것처럼 위장해서 카라디온으로 보내겠다는 것이다. 당시 처한 입장에서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언니를 제거하고 여왕이 되고 싶은 아시알르의 속마음을 알고 있으니 곱게 보이지는 않는다.


한편 성역에 들어간 시이라젠느는 그곳에서 뜻밖의 인물과 마주한다. 얼굴이 아닌 음성으로, 마치 넋이 남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사념같은 헤인 베기스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레디온의 아버지로서 시이라젠느를 지구까지 피신시켰던 인물이다. 성역은 지구와 카피온의 연결 통로였다. 아무리 뛰어난 초능력이라 할지라도 103만 광년을 뛰어넘는 텔레포트란 말이 안 되니까. 


시이라젠느는 다 버리고 지구로 가고 싶었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게다가 갈 수 있는 방법까지 있다면 두번 망설이지 않으리라. 그러나 통로는 연결되어 있어도 시간까지 그렇지는 않다. 돌아간 지구가 만약 공룡들이 살고 있는 시대라면, 혹은 핵전쟁 이후 멸망해 버린 지구라면... 모두 끔찍하지 않은가. 결국, 그녀의 선택은 여전히 이곳이 될 수밖에 없다. 이곳 카피온에 올 때부터 정해진 대로 여왕이 되어야 한다. 


아르만도 아시알르만큼이나 정치적인 인물이다. 그가 아시알르를 원하는 것은 그녀가 다음 대 여왕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마음 속에 시이라젠느가 자리하게 되었다. 여왕의 부군 자리를 포기할 마음도 없으면서 시이라젠느도 포기하기 싫은 그의 이기적인 마음에 질린다. 이런 부분이 제 아비를 쏙 빼닮았다. 둘의 사랑은 하나같이 이기적이고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다. 욕심이 가득하다. 물론, 나중에 가면 아르만은 달라지지만... 

(카피온의 왕녀와 카라디온의 왕이 나만 행성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가짜 시이라젠느라서 표정도 없다.)


인물만 본다면 카라디온의 왕 에라스톤도 꽤 미모롭고, 아르만도 훌륭하다.(난 원래 만화 속 금발 남자를 좋아하니까~)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미모를 자랑해도 레디온이 가장 좋다. 읽으면서 갑자기 깨달은 건데, 레디온은 내 소설 속 전조 캐릭터와 꽤 겹친다. 그리고 '마노아'가 등장하는 내 소시적 습작 소설의 설정이 카피온과 카라디온과 무척 닮아 있다. 몰랐는데, 무의식 중 그 설정이 자동 세팅되었나 보다.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런 게 자신도 모르는 표절이 가능해지는 이유가 아닐까. 물론 초능력자의 등장이 강경옥 샘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많은 부분 영향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긴, 그때라면 내가 별빛속에를 읽고 약 3년 정도 지난 시점이니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 후 또 16년이 지났으니 까맣게 잊을 만도 하다. 하하핫, 이 몹쓸 기억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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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속에 3
강경옥 지음 / 애니북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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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온에 도착해서의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12년 동안 찾아 헤맨 왕녀라지만, 모두가 그녀의 출연을 반가워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친어머니 여왕은 아주 잠깐 얼굴만 보고 다시 나가라고 했다. 신파스런 연출을 기대한 것은 아닐 테지만 시이라젠느는 실망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시알르와의 만남. 시이라젠느가 등장하면서 여왕 자리를 못 갖게 될 위협에 빠진 그녀는 자신의 언니를 경쟁상대로만 본다. 줄곧 얼굴 한번 보지 못한 가상의 대결 상대가 지금 눈앞에 있고, 게다가 왕녀다운 초능력 하나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니 아시알르 입장에서는 우스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 주인공은 늘 대기만성형으로 능력을 나중에 깨우치기 마련이니까!

(엄청난 미모를 자랑하는 왕녀 아시알르. 그러나 눈만 너무 커... 비례도 좀 어색하고...;;;)


카피온의 언어는 제법 일찍 깨우쳤다. 그러나 초능력 훈련은 제자리였다. 한달동안 아무 진척도 없었고, 그 한달 동안 시이라는 본래 임무로 돌아간 레디온을 기다렸다. 명령을 내리면 찾아오겠지만, 그런 만남을 원하는 건 아니었다. 늘 그의 소식을 묻지만 찾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시이라젠느는 깨닫고 말았다. 지구에서부터 줄곧 좋아했던 그 마음이 이제는 사랑이 되어버렸음을. 괴로움은 여기서 시작된다. 레디온은 그녀에게 증오의 대상이다. 그가 나타나서 그녀의 평범한 삶이 깨졌다. 지구에서 소중했던 모든 것을 잃고 낯선 행성 카피온으로 오게 되었다. 그 레디온이 알려준 목표는 여왕이 되는 것이었다. 여왕이 되어야 자신의 가족을 죽게 한 모든 이들에게 복수할 수 있었다. 그 대상에는 레디온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한달 만에 백기를 든 그녀. 제2계급이 받는 훈련 종목으로 갈아탔다. 그리고 훈련교관은 레디온을 지목했다. 

(하프하면 역시 미카엘이지! 둘 다 금발 미남이지만 성격은 정 반대! 아르미안의 네 딸들의 미카엘의 성격은 별빛속에 레디온 과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헌신적이구나. 그러다가 헌신짝 된다..ㅜ.ㅜ)


카피온과 그 위성 카라디온은 독특하다. 카피온은 초능력자 계급이 있고, 카라디온은 엄청난 과학의 발전으로 자치를 인정 받았다. 과학이 발달한 곳이지만 이곳 카피온에는 '성역'이라는 게 있고, 신의 노여움을 두려워한다. 시이라젠느가 어려서 지구로 보내진 것도, 왕족이라면 으레 갖고 있어야 할 금발 머리에 초록 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검은 머리카락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그녀가 그곳에 불온한 기운을 가져온다고 선동한 것은 아르만의 아버지 기레스였다. 그리고 그 기레스에 의해 시이라를 키워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러니 기레스는 원수, 아르만은 원수의 아들 되겠다. 

(저 팔랑거리는 머리 스타일은 내가 아주 싫어하는 스타일. 묶어라도 주면 좋겠는데 꼭 나풀나풀~ 전투력에 안 좋아...;;; 그렇지만 옷차림은 마음에 든다!)


과학과 신탁 같은 부조화 속 조합처럼, 옷차림도 그렇다. 그리스 로마 풍의 하늘하늘 옷을 남녀 모두 입고, 머리카락도 남녀 모두 부담 없이 길고, 남녀 모두 귀걸이도 하고 머리 장식도 한다. 그렇지만 또 신발은 군화 차림! 나름 언발란스 패션이랄까. 그게 잘 어울린다. 펜선이 지나치게 두껍고, 부담스럽게 큰 눈 등은 불만이지만, 강경옥스러운 그림체가 있다. 그리고 표정이 다양하진 않지만, 깊은 배려를 지닌 레디온의 아우라는 무시할 수가 없다. 


재밌었던 건 작품 속에서 등장한 1999년 지구 멸망설이다. 이 작품이 1987년에 시작했다. 그 당시에 1999년은 아주 아득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로부터 다시 14년이 지났다. 지구 멸망설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시간이 흘렀다. 하하하핫, 세월이 무상하다.ㅜ.ㅜ


아무튼, 지구는 그때 멸망하지 않았고, 2012년에도 멸망하지 않았고, 다만 올여름 미치도록 더울 뿐이고, 그렇게 25년도 더 지난 작품을 지금 다시 재밌게 읽고 있다. 시간은 흘렀어도 명작의 포스는 여전한 법! 계곡에 발은 못 담그고 있지만 추억의 만화 속에 풍덩! 빠져보련다. 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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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빛속에 2
강경옥 지음 / 애니북스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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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온의 제1왕녀 시아라젠느는 성인이 되어갈 시점에 특정한 주기를 가지고 파란색 피로 변한다고 했다. 신혜의 집에 잠시 머물렀던 사라는 바로 그 시이라젠느 후보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었지만 결정적으로 '파란 피'를 보여주지 못해서 진짜로 인정받지 못하고 유보상태로 지냈다. 그럼에도 시이라젠느 후보를 제거하러 오는 여러 일당들에게 공격을 받았고, 그럴 때마다 신혜 역시 같이 위험에 빠졌다. 레디온은 카피온에서 제2계급에 속하는 인물이지만 '초능력'의 지수로는 거의 갑이지 싶다. 무려 12년 동안이나 찾아 헤맨 시이라젠느를 데려오는 임무를 그가 맡은 걸로 보아도 그렇다. 하긴, 내 기억이 맞다면 시이라젠느를 지구로 피신시킨 건 그의 아버지일 것이다. 대를 이어 카피온에 엄청난 충성을 보여주는 부자 사이다. 

(지구에서 만난 혼 아르만. 아르만도 초기에는 무지 촌스러웠구나. 뒤로 갈수록 자연스러워지네. 당연하지만...)


문제는 사라가 아니라 신혜였다. 파란 피를 본 것이다. 어느 순간 다시 빨간색으로 돌아가서 잘못 봤다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카피온에서, 그리고 카라디온과 기레스 일파 등등이 동시에 찾고 있는 왕녀는 신혜였다. 그리고 하필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에 폭발이 일어났고 레디온은 자신의 의무대로 시이라젠느, 그러니까 신혜를 구했다. 사라는 죽고 말았다. 그녀를 포함해서 시이라젠느 후보에 속하던 검은 머리 십대 후반의 여자 초능력자들이 모조리 죽었다. 그들은 살아 있었어도 카피온에서 실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그것도 하나의 '배려'에 속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의 죽음에 이들의 책임이 지대하니 언짢지 않을 수가 없다. 신혜가 반감을 갖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사라를 잃은 슬픔에 빠져 있을 수가 없다. 연이어 아빠가, 그리고 이모에 친구 동훈이까지 연달아 죽고 말았으니. 


신혜가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아빠를 잃은 슬픔도 큰데 알고 보니 자신이 주워온 아이였고, 그 바람에 아빠의 형제들이 재산 싸움을 했다. 자신을 데려가거나 혹은 제거하려는 임무를 가진 외계인들 때문에 키워주신 이모가 돌아가셨고, 친한 친구도 눈앞에서 죽었다. 아무리 버티려고 해도 신혜는 지구에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엔 그녀 스스로 지구를 떠나겠다는 말이 나왔으니......


가혹한 일이다. 고등학교 2학년, 이제 만 17세의 소녀가 감당하기엔 벅찬 운명이었다. 그리고 지구를 떠나는 그녀를 기다리는 새로운 운명은 더 기가 막히다.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떠나는 것도 낯설고 무섭고 힘이 드는데, 그녀는 103 광년 밖의 우주로 떠났다. 그토록 다가가고 싶었던 우주 한 가운데로, 그토록 뛰어들고 싶었던 별 속에 빠져들었지만 이건 그녀가 원했던 세계가 아니다. 소녀를 둘러싼 온 우주가 변했다. 친 엄마, 친 자매를 만나게 될 테지만 그 가족 속에서 그녀가 안식을 찾을 수 있을런지... 


그리고 절대 우군, 절대 충성, 그리고 절대 사랑 레디온의 진가를 시이라젠느는 아직 모른다. 모를 수밖에 없고, 알아도 몰라야 했다. 그녀는 지금 이 모든 슬픔에 대한 방패막이, 변명거리가 필요하니까. 그리고 레디온이라면 기꺼이 감수할 테니까. 


지구와 다른 중력에서 살던 이들이 지구에서 움직이느라 중력 조절 벨트를 차고 있는 것, '질'이라는 인물은 모든 세포를 베껴서 닮을 수도 있고, 통과할 수도 있다는 설정 등이 마음에 들었다. 라비헴 폴리스도 그렇고, 강경옥 샘은 SF에 참 관심이 많은 듯하다. 덕분에 독자가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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