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걷는 것은 운동도 아니고 별 도움이 안된다,라고 하지만 그래도 각자의 걷는 속도가 다른 것이라 생각하고 또 그마저도 걷지 않으면 더 안좋을 것 같아서 왠만하면 아침 출근과 점심을 먹고난 후에는 걸으려고 한다.
그래서 오늘 아침도 변함없이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섰는데.
몇 분 걷지도 않고 바로 앞에서 누군가 '익스큐즈 미'를 외치길래, 옹 얘네들 우리집 뒤에 있는 숙소를 찾는 애들인가보다 라는 생각으로 손가락으로 위치를 알려주려고 하는데, '폴리스 오피스'가 들린다. 응..뭐? 폴리스?
짧은 영어로 어떻게 소통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 일단 영어로 표현을 잘 할 수 있었다면 그냥 길을 알려주고 말았을텐데, 걔네가 보여주는 지도앱을 쳐다보다가 그 파출소는 자치대가 생기면서 없어진 것 같은데...라는 생각에 오지랖으로 경찰서로 전화를 걸었다. 중국애들이 버스에 짐을 놓고 내렸는데 경찰서를 찾고 있다는 상황과, 내 위치를 알려주고 가장 가까운 지구대를 물어봤더니... 하필 또 내가 출근해야 하는 길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있는 것이다. 하아...
어쩔건가. 또 짧은 영어단어로 버스타고 가자, 버스카드있냐 했더니 티머니카드를 보여주길래 맘 놓고 버스를 탔는데. 얘들이 버스카드 충전을 못했다네? @@
공항에서는 버스를 어떻게 탔대? 딱 한번 탈 요금만 충전된 카드를 받아온걸까? 아무튼.
버스기사님이 운행시간이 늦어 빨리 가느라 집중해야하니 말 걸지 말아달라며 중국애들 버스비는 그냥 내지 않아도 좋다고 해주셨다. 기사님, 고맙습니다. - 사실 출근길에 버스요금 낼 일이 없었는데 처음 본 애들 차비도 내줘야하나 하고 있었거든.
어쨌든 얘들 데리고 길 물어가면서 파출소에 데려다주고 아슬아슬하게 출근시간에 패쓰!!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정말 조카보다 더 어려보이는 애들이 캐리어 끌면서 경찰서를 찾는 모습을 보니 모른척할수가 없다. 영어로 소통이 잘 되었다면 길을 뚝 알려주고 나는 내 갈길을 갔을텐데 그것도 안되어 절망이었고.
그래도 캐리어때문에 택시도 못타고, 기내용이 아니면 버스도 안태워준다는데 다행히 좋은 기사분을 만나 버스도 무사히 타고 경찰서도 잘 찾아주고, 가는 길에 - 이건 좀 웃겼는데 경찰서 찾아가는 길에 관덕정이 보이니 얘네가 이쁘다고 하는거다. 내 짧은 중국어 단어집에 피아오량이 있으니 그 말은 너무 잘 들리더라.
나중에 이곳에 와서 구경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머릿속이 텅 비어있어서 오래전 집, 관공서 라고 말해주려고 되는대로 떠들었더니 또 역사적인 거냐고 묻는데...아아, 나는 관광안내원이 아닐뿐이고. 눈 반짝이며 이쁘다고 하는 애들에게 4.3 얘기를 꺼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가는 길에 보인 쇼핑거리와 동문시장이 있다고 얘기해줄 수 있을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영어회화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이미 오래전에 공부를 했어야했고 드디어 오늘같은 날 그 효과를 보여줬어야했다..... 하지만 지금도 늦은 건 아닐까? 싶지만.

뭔가를 하기에 너무 늦은 건, 없다고 하지만.
그건 그저 책을 읽기에 늦은 것이 없다고 생각이 들 뿐.
생각해보니.
경찰서에서 인사를 하며, 좋은 여행보내라고 했는데, 걔들에게도 버스에서 짐을 놓고 내린 불운의 시작이었지만 그래도 나의 작은 친절로 좋은 여행의 시작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그리 나쁘지 않은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