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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와 암실 ㅣ ANGST
박민정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평점 :
책을 읽기 시작했을때부터 끝이 날 때가지 문장을 하나하나 천천히 읽어야하는 걸 알았다면 이 책을 지금 읽기 위해 집어들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끝맺기가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는 의미없이 - 활자중독자처럼 그저 문자를 읽듯 글을 읽으며 책장을 넘기기도 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의 현실이 아니라는 생각에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호수와 암실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되짚어보고 있다. 화자인 연화와 그녀의 유일한 친구로 등장하는 재이와 두 사람을 같이 알고 있는 로사, 세명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들을 짓밟고 괴롭힌 이들에 대한 복수의 시작이 되는 장소이기도 하고, 어쩌면 우리가 묻어버리고 싶은 비밀을 가려주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성차별과 성추행, 성매매... 온갖 추악함이 모두를 노리고 있지만 그에 대한 대항은 쉽지 않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그 모든 추악함은 사라지지 않으며, 인과응보처럼 그 죄에 대한 댓가는 반드시 행해져야만 우리의 삶이 평온해지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아니, 그래야만 우리는 평온함을 찾을 수 있는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된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268)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만 도무지 생각의 정리가 되지 않는다. 과연 '죄'라는 것에 대한 판결은 누구에 의한 것인가, 라는 물음부터 시작하게 되면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조금 비겁하게 비껴간 문장을 하나 떠올려 본다.
"사진도 없고 영상도 없지만 너에게는 기억이 있어. 오직 너만 알 수 있는 감정이란 게 있어. 고통스럽다고 해도 정확하게 생각해내야 해. 떠오를때마다 기록하고."(107)
나를 조롱하고 모욕하고 추행하고 해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하더라도 내가 기억하고 있으며 내가 느낀 감정이 있다는 것,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들이지만 그 모든 것을 감정이 아니라 사실로 기록할 것.
내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느낀 건 그것때문이다. 교묘하게 나만 괴롭히는 일들에 대해 내가 알고 있으며 내가 느끼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한 요즘이어서 더 그렇다.
호수와 암실은 전혀 다른 느낌이지만 밑에 가라앉은 것이 시신일지, 마약일지, 더 추악한 무엇일지 모른다는 것에서 서로 통하는 느낌일까. 서로를 비방하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추한 인간들에 대한 당연함 너머로 연화의 이야기를 통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일자리로 인해 생계가 막막해지는 이들에 대한 연민도 한스푼 더해보며 '호수와 암실'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본다. 어쩌면 내게는 사무실의 내 자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가장 무서운 서스펜스일지 모른다는 농담을 털어놓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