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을 위한 산책 - 헤르만 헤세가 걷고 보고 사랑했던 세계의 조각들
헤르만 헤세 지음, 김원형 옮김 / 지콜론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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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을 위한 산책,이라니. 더구나 헤르만 헤세의 글이라니. 

솔직히 표현하자면 일정부분 '낭만'에 빠져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 산책글을 읽고 싶었을 뿐이었다,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헤르만 헤세의 소설을 떠올려보자면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고 쓸쓸함만 떠오르지 않는가. 내가 항상 느끼는 여행의 유쾌함과는 다른 감성이 담겨있을 것 같아 궁금함이 컸기에 색다른 설레임으로 책을 펼쳐보기 시작했다. 


이 에세이는 헤르만 헤세가 스위스와 독일 남서부를 여행하며 남긴 기록을 담고 있다고 한다. 일반적인 여행 에세이처럼 거리나 사람들의 풍경보다는 점차 내면으로 들어가는 단상의 기록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으려나.

"성숙해지기를 갈망하며 죽을 준비가 되어 있으며, 다시 태어날 준비가 되어 있다. 세상은 더 아름다워졌다."(21)


간혹 눈에 띈 오탈자로 인해 문장을 읽는 것 자체가 난독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괜히 그 하나에 매달려 글 읽기가 재미없다고 뒤로 미루다가 순서대로 읽지 않고 관심이 생기는 부분부터 읽기 시작했다. 여행지에서의 단상에 대한 문장들을 곱씹으며 소화하기보다는 헤세가 숙소를 이동하며 여행가방을 꾸리는데 자꾸만 빼먹은 짐들이 나와서 가방을 풀고 다시 싸고 그러다가 끝내는 박스에 담아 우편으로 보내는 방법까지 생각해야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그 느낌은 다르지만 여행 마지막 날에 선물꾸러미로 늘어난 짐을 주체하지 못해 밤새워 가방을 싸매던 모습이 생각나기도 해 웃음이 나기도 한다. 아, 이 에세이 나름 재미있는 글이었네?


깊이있게 읽을수록, 혹은 헤세의 단상에 대한 삶의 고찰이 내 경험과 맞물리면서 더 많은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될수록 에세이는 천천히 읽게 되고 그것이 더 좋은 느낌을 갖게 한다. 

며칠 전 티비를 보다가 티모시 샬라메 닮은꼴 행사에 티모시 본인이 직접 등판했다는 것을 보며 웃었었는데, 헤르만 헤세 역시 자신의 이름을 건 낭독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찾아가는 에피소드가 있어서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날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물론 헤세는 행사 주최자로부터 헤르만 헤세가 직접 오지는 않지만 그에 대한 많은 것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입장료를 내고 가 보게 된다. 사실 뭔가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헤세의 깜짝 등장으로 인해 벌어지는 소동을 기대했지만 헤세는 자신의 존재를 밝히지 않았으며 자신의 시가 낭독되면서 몇몇 단어가 바뀌어 낭독되는 것을 그리 유쾌하지 않은 감정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그의 그런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기도 한데 뭔가 쓸쓸함이 묻어나는 에피소드가 내게도 당혹스러움으로 남아있다. 


가벼운 글만 언급했지만 처음 읽어 본 짧은 글을 다시 읽어볼 때 또 다른 느낌이 들고, 새로운 글인 듯 하기도 해서 결국 그냥 간혹 방랑을 위한 산책,이 떠오르면 펼쳐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는 추천 외에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다. "더 깊어진 시선으로 쓰인 기록"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 깊이는 각자의 시간과 각자의 때가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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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와 암실 ANGST
박민정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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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시작했을때부터 끝이 날 때가지 문장을 하나하나 천천히 읽어야하는 걸 알았다면 이 책을 지금 읽기 위해 집어들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끝맺기가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는 의미없이 - 활자중독자처럼 그저 문자를 읽듯 글을 읽으며 책장을 넘기기도 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의 현실이 아니라는 생각에 외면하고 싶은 이야기여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호수와 암실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을까... 되짚어보고 있다. 화자인 연화와 그녀의 유일한 친구로 등장하는 재이와 두 사람을 같이 알고 있는 로사, 세명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들을 짓밟고 괴롭힌 이들에 대한 복수의 시작이 되는 장소이기도 하고, 어쩌면 우리가 묻어버리고 싶은 비밀을 가려주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성차별과 성추행, 성매매... 온갖 추악함이 모두를 노리고 있지만 그에 대한 대항은 쉽지 않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그 모든 추악함은 사라지지 않으며, 인과응보처럼 그 죄에 대한 댓가는 반드시 행해져야만 우리의 삶이 평온해지는 것 아닌가, 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아니, 그래야만 우리는 평온함을 찾을 수 있는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된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268)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대해서 말하고 싶지만 도무지 생각의 정리가 되지 않는다. 과연 '죄'라는 것에 대한 판결은 누구에 의한 것인가, 라는 물음부터 시작하게 되면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조금 비겁하게 비껴간 문장을 하나 떠올려 본다. 


"사진도 없고 영상도 없지만 너에게는 기억이 있어. 오직 너만 알 수 있는 감정이란 게 있어. 고통스럽다고 해도 정확하게 생각해내야 해. 떠오를때마다 기록하고."(107)


나를 조롱하고 모욕하고 추행하고 해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하더라도 내가 기억하고 있으며 내가 느낀 감정이 있다는 것,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것들이지만 그 모든 것을 감정이 아니라 사실로 기록할 것.

내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느낀 건 그것때문이다. 교묘하게 나만 괴롭히는 일들에 대해 내가 알고 있으며 내가 느끼고 있음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한 요즘이어서 더 그렇다. 


호수와 암실은 전혀 다른 느낌이지만 밑에 가라앉은 것이 시신일지, 마약일지, 더 추악한 무엇일지 모른다는 것에서 서로 통하는 느낌일까. 서로를 비방하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추한 인간들에 대한 당연함 너머로 연화의 이야기를 통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일자리로 인해 생계가 막막해지는 이들에 대한 연민도 한스푼 더해보며 '호수와 암실'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본다. 어쩌면 내게는 사무실의 내 자리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가장 무서운 서스펜스일지 모른다는 농담을 털어놓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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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화야, 너무 잃을 게 많은 삶을 살면 안 돼. 그러면 결국 잃을 게 생기거든. 244





연화가 참 오랫동안 고생이 많았다. 그런데 그런 것을 너무 두려워하고 경멸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란다. 


선생님,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가요?


어떻게 하긴. 언제나와 같이 치열하게 다시 살아야지.


결국 그 말을 하고야 말았어요. 재이에게. 그러니까 이혼이나 당한다고.


너무 지나친 죄책감도 그르다. 모든 것을 비겨 없앨 수 있는 건 아니란다. 그 말을 한 죄는 네 죄가 아니라고 생각해라. 재이라는 친구 역시 네 것이 아니다.


  선생님이 내게 전달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었는지도 몰랐다.


모두 다 네 것이 아니다. 

255






 가진 것이 없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더 악랄해지는지 다시 배웠다. 내엄마가 말한 대로 돈이 없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위험한 처지, 약자인 사람들을 곧장 발견해서 짓밟았다. 어쨌거나 선생님은 엄마가 아니었다. 친부모가 아니었다. 선생님이 나를 아무리 아끼고 보호하려고 해도 어쩔수 없었다. 나는 살기 위해서 공부했다. 그러므로 로사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너는 얼마나 노력했니?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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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도 없고 영상도 없지만 너에게는 기억이 있어.
오직 너만 알 수 있는 감정이란 게 있어, 고통스럽다고 해도 정확하게 생각해내야 해. 떠오를 때마다 기록하고."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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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쓸모 있는 어원 상식 사전 알아두면 쓸모 있는 시리즈
패트릭 푸트 지음, 최수미 옮김 / CRETA(크레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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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원이라는 단어 하나만 생각을 하다보니 사실 말 그대로 언어의 근원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언어 능력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언어에 얽혀있는 의미나 뜻, 구조 등을 이야기하는 에피소드를 알게 되는 것은 좋아해서 이 책을 그런 내용으로 잘못 이해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 대한 흥미로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언어학적인 어원에 대한 접근이라기보다는 물론 그것도 포함을 하고 있기도 하지만, 언어학보다는 인문학적인 접근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로 예를 들어보자면 흥청망청에 대한 유래를 설명해주는 것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더 적절하게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에 대한 설명은 아마 최근에 많이 언급되고 있는 콘클라베라는 단어의 설명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콘클라베라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 단어는 라틴어의 cum(함께), clavis(열쇠)의 합성어인 쿰 클라비’(cum clavis)에서 유래하였으며 열쇠로 문을 잠근 방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물론 어원을 따지면 그런 것인데 그 열쇠로 잠근 방이라는 단어 안에 담겨있는 의미는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추기경들이 비밀투표를 하게 되는데 그들이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가면 외부로 통하는 문을 열쇠로 걸어잠근데서 유래하고 있다.

 

국가 이름에서부터 음식, 사물에 이르기까지 주제별로 나뉘어 여러 단어가 나오는데 이 책을 읽기 전에 알고 있었던 것은 햄버거라는 단어가 거의 유일했고 그래서 그런지 좀 새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학습하듯 순서대로 읽기보다는 목차를 살펴보다가 궁금증이 생기는 단어를 찾아 읽는 것이 내게는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물론 목차에서 간혹 호기심유발을 위한 문구가 보이기도 하지만 일반상식책으로 읽는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 부분이다.

 

책의 내용에 대해 한가지만 더 언급하면 역사를 의미하는 히스토리history가 남성 중심의 언어이며 한때 그에 대응하는 허스토리herstory라는 단어를 사용하자는 이야기는 알고 있었는데 히스토리라는 말은 현명한 자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246)한 것이라고 한다. 현명한 자가 남성을 의미하는 hi, he가 되어 남성중심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명한 자는 인간을 의미하는 것임을 인식하게 되고 결국 언젠가는 언어평등에 대해서도 더 많은 변화가 생기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처음 예상했던 언어학적인 접근이라기보다는 인문학적인 내용을 더 많이 담고 있지만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을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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