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이야기 - April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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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브레터>를 보고 문득 이와이 슌지 감독의 다른 작품도 하나 더 보고 싶다는 생각에 오래 전에 봤던 <4월 이야기>를 다시 보게 됐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일본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접하지 않았던 때라 배우들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일본 영화나 드라마들을 접하고 나서인지 풋풋한 모습의 마츠 타카코나 잠깐 등장하는 마츠 타카코의 진짜 가족들을 비롯한 조연들의 모습을 보는 부수적인 즐거움도 있어서 좋았다. 

  훗카이도에서 살던 우즈키는 고교 시절 짝사랑했던 선배와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에 도쿄에 위치한 무사시노 대학에 진학한다. 훗카이도의 추운 날씨와 대비되는 도쿄의 따뜻한 날씨,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에 조금씩 적응해가며 우즈키는 매일 근처에 있는 서점에 들른다. 달리 책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그녀의 짝사랑인 야마자키 선배가 그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기 때문. 그녀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았던 선배는 그녀가 고등학교 후배였음을 기억해내고 이에 우즈키는 한껏 들뜨게 된다. 

  이 영화의 배경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봄'이다. 봄이 주는 설레임, 짝사랑이 주는 풋풋함이 이 영화 속에는 잘 담겨있다. 수줍음이 많아 선뜻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우즈키를 선배가 알아보고, 갑자기 쏟아지는 비로 인해 추억 하나를 만들어가는 둘. 영화는 이 둘이 어떻게 이어질지, 아니 과연 우즈키가 그녀의 마음을 전할 수 있을런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환하게 웃는 우즈키의 모습을 뒤로 한 채 영화는 끝나버린다. 67분이라는 엄청나게 짧은 러닝타임이기에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마치 한 편의 단편소설을 읽은 것처럼 아련한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 나름대로 뒷맛이 나쁘지 않아 추운 겨울에 봄의 따뜻함을 맛 본 기분이 들었다. 

  이 영화의 기본적인 주제는 짝사랑의 풋풋함, 혹은 뭐 사랑의 기적쯤이라 할 수 있겠지만 한 편으로는 도시인의 삶도 엿볼 수 있었다. 도쿄로 이사를 와 이웃집에 선물을 전하지만 실질적인 교류는 이뤄지지 않는 모습, 이사를 하면서 집이 좁아 짐을 줄이는 과정에서 이불이 한 채 더 있다고 친구가 묵는 일은 없더라고 이불을 가져가버리는 모습 등에서 낯선 장소에서 혼자 살아가야하는 주인공의 외로움도 느낄 수 있었다. 

  짧고 밋밋하지만 강한 인상을 남겼던 영화. 예전에 봤을 때는 벚꽃이 흩날리는 장면만 기억에 남았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자전거타는 장면이 많아 날이 춥지만 나도 자전거나 한 번 타고 돌아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전체적으로 단조로운 구성이지만 군데군데 유머러스한 부분도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을 듯. (특히 <흐르는 강물처럼>과 <가을의 전설>을 헷갈려하는 모습에서 피식했던.) 순수한 짝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동감하며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쉽게도 내게는 사랑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긴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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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9-03-13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아. 4월이야기 너무 좋아요. 아직도 가끔 본다는.
이거 보니 또 보고싶네. 흐흐

Kitty 2009-03-13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에요.
예전에 엄마랑 둘이서 장거리 노선을 탔었는데 그 때 개인용 영화 셀렉션 중에 이게 있었거든요. 런던까지 가는 동안 저희 엄마는 슈퍼마리오를 10시간 하셨고 저는 4월 이야기를 6번 봤어요 ㅋㅋㅋㅋ 내릴때쯤 되니 서로 징하다고 손가락질을 했다는 ㅋㅋㅋㅋ
옛날 생각 나네요 ^^

이매지 2009-03-13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 4월이 다가오니 또 한 번 보셔야죠 ㅎㅎ
키티님 / 슈퍼마리오 10시간이나 4월 이야기 6번이나 두 분 다 굉장하시군요 ㅎㅎ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 A Gentle Breeze in the Vill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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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특한 제목과 포스터가 주는 왠지 따뜻한 느낌때문에 보게 된 영화. 일본의 젊은(?) 여배우 중 가장 돋보이는 카호의 첫 영화 나들이 작품이라는 점과 나츠카와 유이가 출연한다는 점, <린다린다린다>의 감독인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작품이라는 때문에 기대를 하고 봤는데 전체적으로 잔잔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120분 가까운 러닝타임이지만 하나의 이야기가 쭉 이어지는 게 아니라 계절의 변화에 따라 진행되는 이야기라 장편이라기보다는 단편을 모아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던 영화.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통틀어 전교생이 여섯 명 뿐인 시골 학교. 이 곳에 도쿄에서 한 남학생이 전학을 온다. 전학생이 오는 건 드문 일이라 호기심과 기대에 들뜬 아이들에게 등장한 오오사와는 제법 잘생겼던지라 여자아이들 사이에서는 은근히 설레는 마음까지 생긴다. 하지만 주인공인 소요만큼은 그의 태도때문에 그를 꺼려한다. 하지만 여름 날 해수욕장에서 오오사와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된 소요. 그렇게 둘은 풋풋한 사랑(?)을 하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중학교 2학년이었던 소요와 오오사와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좁디 좁은 마을에서 매일 다른 아이들을 챙겨가며 학교에서 생활하는 그들. 때묻지 않은 아이들이 등장하기 때문인지 주인공들의 사랑도 너무 때묻지 않아서 답답할 정도로 진행되어간다. 예를 들면, 뽀뽀 한 번 하는 게 특별한 선물이 될 지경. 그렇다고 둘의 사이에 뭔가 애절함이나 갈등이 숨어있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애초부터 무던하게, 연애물에 등장하는 갈등이나 오해따위는 등장하지 않고 흘러간다. 그렇기 때문에 풋풋한 연애담을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 영화의 초점은 풋풋한 첫사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더이상 어린 아이들이 없는 시골. 그 속에서 커다란 가족처럼 서로에게 의지하기도 하는 아이들과 동네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네 시골을 다룬 영화처럼 왠지 따뜻하면서 아련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처음에 봤을 때는 시골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에서 <선생 김봉두>가 생각났는데 그 영화보다는 코믹적인 요소도 덜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도 한 폭의 색연필화라고 생각될 정도로 부드러웠다. 세상사에 때가 타버린 자신을 정화하고 싶을 때 보면 좋지 않을까 싶었던 영화였다. 일본영화답게 꽤나 잔잔한 영화라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순수한 아이들과 소박한 일상 속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듯.




덧) 하는 짓이 너무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었던 아이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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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예지몽>. 갈릴레오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으로 이전에 드라마 <갈릴레오>나 책으로 나온 <탐정 갈릴레오>, <용의자 x의 헌신>을 보고 유카와에게 빠진 이들에게 반가울 책. 나온 순서대로 하면 <탐정 갈릴레오>-<예지몽>-<용의자 x의 헌신>이 될 듯.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1, 202번째 책. 둘 다 낯선 책이라 다행.








기시 유스케의 4년만의 작품으로 2008년 일본 SF대상 수상작, 2009년 일본 서점대상 후보작에 노미네이트 됐다. <검은집>이 보험회사에 취직했던 작가의 경험을 살린 소설이라면 <신세계에서>는 SF에 대한 그의 애정이 낳은 작품이라고 한다. 천 년 후의 미래라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미래의 가상세계에 빗대어 현 인류의 모순을 드러낸 작품이라고 하니 공포스러운 맛은 덜할 것 같지만 그래도 기시 유스케니까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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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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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던 <홍합> 때문에 이름 정도 들어봤던 한창훈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 일명 바다의 작가라 불린다는 사실이 수긍이 갈 만큼 이 책은 바다 냄새와 바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람냄새를 가득 담고 있었다. 때로는 파도 하나 없이 잔잔한 바다, 때로는 미친 듯이 파도가 내리치는 바다 등 다양한 바다의 모습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가 내 마음속에 작은 파도를 일으켰다.  

  전라도 사투리의 말 맛이 살아있다는 점에서 성석제가 떠올랐는데, 성석제의 경우엔 익살과 해학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면 한창훈은 성석제보다는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인물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재미가 없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 재미와 감동의 두 마리 토끼를 용케도 잘 잡아서 간다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또한, 그저 작가라는 제3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섬 출신인 작가가 자신의 경험을 녹여 쓴 현실감있는 서사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어느 쪽으로 가든 결국 바다에 가로막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섬이라는 제한된 공간. 그 속에서 사람들의 삶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빚을 갚기 위해 배를 파는 선장도, 함께 일하러 간 친구를 바다에 두고 혼자 돌아왔다는 미안함에 늙을 때까지 끊임없이 죄의식에 시달렸던 어부도, 가두리 양식장에 병이 돌아 고생 중인 이도 모두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지만 차마 도망치지 못하고 살아간다. 도망쳐봐야 보이는 것은 바다뿐인 상황. 그들은 그런 삶을 받아들이고, 그렇게 순응하고 살아간다. 육지에서 사는 평범한 우리네가 그렇듯 그들은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타인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으며 위로받고, 때로는 위로하며 그렇게 그렇게 서로 보듬고 살아간다. 

  바다에서, 섬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저마다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그 속에서 유머를 잃지 않는다. 다방 아가씨라는 이유로 사랑하는 남자와 첫날밤을 보내고 성매매방지법에 걸려 성매매가 아니라 사랑임을 밝히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장면이나 동네 청년회장이 노인회 회원들을 모시고 여행을 떠나서 벌어지는 갖가지 사건,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누가 이기나 무모한 술대결을 하는 장면 등 보고 있자면 한 편의 시트콤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배경은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나 <전원일기>인데 내용은 <거침없이 하이킥>이랄까. 그렇기 때문에 왠지 더 푸근한 느낌으로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읽고 나니 나도 그곳이, 이 소설이, 한창훈이 좋아졌다. 조만간 한창훈의 다른 소설로 그가 전해주는 바다냄새가 나는 이야기를 다시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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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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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란 것이 그런 겁디다. 아무리 단속을 해도 모기장에 모기 들어오듯이, 세 벌 네 벌 진흙 처바른 벼락박에 물 새듯이 그렇게 생깁디다. 말했듯이 손구락 하나 안 잡았는디, 새벽에 그 사람 갈 때까지 잠도 안 잤는디, 세상에, 한 지붕 아래 한방에 누웠다는 이유로, 날밤을 같이 샜다는 똑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이 남 같지가 안 합디다. -49쪽

그 사람, 내가 사랑했던 사람.
나는 우리 사랑이 성공한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헤어졌지마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이 말이요. 연애를 해봉께, 같이 사는 것이나 헤어지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닙디다. 마음이 폭폭하다가도 그 사람을 생각하믄 너그러워지고 괜히 웃음이 싱끗싱끗 기어나온단 말이요. 곁에 있다면 서로 보듬고 이야기하고 그런 재미도 있겄지만 떠오르기만 해도 괜히 웃음이 나오지는 않지 않겄서라우. 아, 곁에 있는디 뭐 하러 생각하고 보고 싶고 하겄소. 그러니 결혼해서 해로한 것만큼이나 우리 사랑도 성공한 것 아니겄소. -61쪽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한 축이 결단이라면 또 한쪽은 전전긍긍, 말이 되든 안 되든 이런저런 생각이 밤하늘 별빛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반짝반짝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 아닌가. -91쪽

여러 자식 중에 유독 그녀를 가슴아파하던 어머니는 그러고 세상을 떴다. 어미의 죽음이란, 세상천지에 안길 품이 없어져버렸다는 소리이다. 물론 그녀는 힘들어서 못살겠어요, 이렇게 울며 안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고 맘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거라서 그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나그네 품속 깊이 갈무리한 금반지 같은 거였다. -1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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