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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의 인연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드라마가 방영했던 때만 하더라도 원작소설이 나오지 않아 아쉬워하며 '그래도 명색이 히가시노 게이곤데 언제 나와도 나오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드라마가 종영되고 곧 출간됐다. 드라마를 보기 전이라면 냅다 읽었을 텐데 이래저래 미루다 보니 이제서야 읽었다. 드라마 방영할 때 현지에서는 원작과 다르다고 실망스럽다는 반응도 있었다고 하는데, 드라마를 먼저 보고 원작을 봐서 그런지 어떤 부분을 각색했는지 비교하며 볼 수 있어서 내용은 다 알고 있었지만 재미있었다.
양식당을 하며 평범하지만,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아리아케 가족. 어느 날 아이들은 사자자리 유성우를 보려고 밤에 몰래 빠져나간다. 흐린 날씨에 비까지 오는 바람에 유성을 보지 못하고 돌아온 집에서 발견한 것은 처참하게 죽은 부모님. 이후 달리 맡아줄 사람이 없어 보호시설에 들어가게 된 아이들. 첫째인 고이치는 아직 철이 없는 동생들을 보살피며, 어른이 되면 범인을 찾아내서 동생들과 함께 복수를 하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아이들은 힘을 합쳐 사기를 치며 살아간다. 시효는 점점 다가오고, 아직도 범인은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들은 사기대상으로 찜했던 사람이 14년 전 사건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고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을 죽인 범인의 정체를 밝혀내고자 마지막 도박(?)을 시작한다.
'삼 남매가 범인을 잡으려고 복수의 칼날을 갈고, 마침내 범인을 잡아 처단한다'라는 다소 평범한 줄거리가 될 수 있었지만, 이 책은 삼 남매가 힘을 합쳐 사기를 친다는 다소 황당한 전개로 진행된다. 때문에 초반에는 삼 남매의 사기 행각이 그려지고, 후반에 가서야 14년 전의 사건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온다. 다소 산만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책처럼 오락적인 요소가 많아서 지루하지 않게 읽어갈 수 있었다. 아무래도 진지한(?) 스토리라 그런지 드라마에서처럼 유머러스한 부분은 적었는데, 그래도 나름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머감각을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고이치와 다이스케가 형사 행세를 할 때 사용하는 이름이 SMAP의 멤버인 구사나기(우리나라에는 초난강으로 알려진), 그리고 가가 형사(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형사)인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각색의 중요성을 느꼈는데, 드라마로 만든 <유성의 인연>의 각색은 쿠도 칸쿠로가 맡았는데, 원작이 있어서 쿠도칸의 색깔이 많이 죽긴 했지만 원작을 읽고 나니 확실히 많은 부분이 바뀐 걸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삼 남매의 직업부터가 달랐는데, 이 때문에 이후 스토리의 전개도 상당히 달라졌다. 드라마에선 첫째인 고이치가 보육시설 원장이 경영하는 양식당에서 일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책에서는 디자인과 관련한 일을 하는 것으로 나왔다. 그래서 이후 사기를 치면서 처음 알게 되는 것으로 나오는 유키나리를 고이치를 식당에서 만남으로써 초반부터 이야기가 진행됐다. 막내인 시즈나의 직업도 드라마에서는 회사원으로 등장하는데, 책에서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하는 것으로 나온다. (때문에 첫 번째 사기 대상인 다카야마는 회사에서 시즈나를 괴롭히던 사람이 아니라 그냥 사기 대상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드라마의 재미를 살리고자 초반부터 모든 등장인물을 등장시킨 것이 아닐까 싶었다.
재미만큼은 여전했지만, 너무 재미만 추구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그려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삼 남매의 아픔이나 슬픔은 잘 그려지지 않은 것 같았다. 나처럼 드라마를 재미있게 봐서 원작과 비교하며 읽고 싶은 사람이나 평소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했던 독자라면 재미있게 보지 않을까 싶었다. 식상한 소재를 잘 풀어가는 모습을 보며 그래도 히가시노 게이고는 죽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 계속 구시렁거리지만 읽을 때만큼은 재미있는 히가시노 게이고. 다음 작품이 나오면 또 구시렁거리면서 읽게 되더라도 다시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면 원작을 보고 드라마를 보면 한층 더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