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아이들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로버트 스윈델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IMF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더이상 노숙자는 낯선 개념이 아니다. 서울역을 비롯해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지하철 역에 가면 신문지로 방을 만들어놓고 거주하는 사람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청소년 노숙자는 직접 본 적이 없어서(물론 TV에서는 가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링크가 겪는 길거리 생활은 뭔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름 평화롭게 살고 있었던 링크. 그런 링크에게 새 아빠가 생기며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폭력을 휘두르는 새아빠에게서 쫓겨난 링크. 누나에게 신세를 져보기도 하지만, 매형의 시선도 곱지 않아 결국 런던으로 떠난다. 런던에만 가면 금방 일자리를 구해 자립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깐. 기껏 구한 방에서 쫓겨나다시피하고, 결국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 어떻게 길거리에서 생활해야했는지 몰랐던 링크는 다른 노숙자들에게 당하며, 점점 살기 힘들어진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만난 또래 노숙자 진저. 그에게서 링크는 길거리 생존 방법을 하나씩 익히게 된다. 진저와 함께라면 거리도 무섭지 않다고 생각했던 링크. 그러던 어느 날 진저가 갑자기 사라지고 링크는 혼자 남는다. 뒤이어 몇 명의 아이들이 사라지고, 링크는 진저를 찾기 위해 나름대로 조사를 시작하는데...

  이 책은 링크의 이야기와 연쇄살인범인 전직 육군 장교 쉘터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노숙자는 사회의 쓰레기라고 생각하며 자신은 사회를 위해 청소를 해주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쉘터. 그의 광기는 너무나도 섬뜩하게 느껴졌다. 한편 현실은 시궁창이라도 언젠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꺼라고 희망을 놓지 않았던 링크의 이야기는 너무 안타까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노숙자를 보면 인상을 찌푸리고, 그들을 피해다니기 때문이다. '사지가 건강한데 일을 해서 돈을 벌 생각은 안하고... 쯧쯧'하며 노숙자들을 보며 혀를 차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끝없이 밑바닥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가 한 번 굴레를 벗어난 이들에게 관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더럽고 냄새나는 그들을 고용할 것이며, 누가 그들을 배려해주겠는가. 책을 읽으며 나도 어쩌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쉘터처럼 내 안에서 노숙자들을, 그들의 인격을 죽인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이 책을 접했을 때는 꽤 얇은 분량때문에 '가볍게 읽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다보니 얇지만 무거운 주제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인간다움, 그리고 사회로부터 쫓겨난 사람들에 대한 이해, 무엇이 공공선을 위한 것인가 등 많은 생각을 하며 읽어갈 수 있었다. 링크의 이야기와 쉘터의 이야기가 교대로 등장하고 있는 점도 긴장감 있는 진행에 도움을 준 것 같다. 청소년 문학이라 한 편으로는 아이들이 이렇게 사회의 어두운 면을 꼭 알아야할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히려 이런 어두운 면을 알고 이를 바꾸려고 노력한다면 사회가 좀 더 밝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자라면서 한 번쯤은 가출을 생각할 아이들에게 거친 길거리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도 느끼게 해줄 것 같았다. 행복과 희망을 잃어버리고 사회에서 내몰린 사람들. 그들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우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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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3-30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마음이 무거워지는 리뷰네요.

이매지 2009-03-30 20:23   좋아요 0 | URL
책의 분위기자체는 무겁지 않았는데,
생각할거리는 참 많았어요.
 




국내에게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이 많이 번역되지 않은 걸 항상 안타깝게 생각해왔는데, 이번에 북스피어에서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이 출간되서 나의 아쉬움을 조금은 달래줬다. 나오자마자 주문했는데, 두께가 제법 되서 출,퇴근길에 가지고 다니기 힘들 것 같아 주말에 읽으려고 미뤄뒀는데, 주말이 기다려질 정도. 마츠모토 세이초라는 네임벨류도 좋지만, 국내에도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가 책임 편집을 맡았다는 점도 꽤 끌린다. 총 3권으로 출간될 것 같은데 상권이 쑥쑥 팔려서 중, 하권도 차질없이 번역되었으면 좋겠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데뷔작. <엄청나게->와 비슷하게 멋진 표지가 인상적이다. 저자는 이 작품으로 <가디언> 신인 작가상과 전미 유대인 도서상을 수상했다고. 2005년 일라이저 우드(반지의 제왕의 주인공)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데 영화와 함께 보면 재미있을듯.





그 외 관심가는 책들. 유독 영화의 원작인 소설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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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9-03-27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퇴근길이라 하시니 그야말로 신입사원 태가 팍팍 나는걸요? 너무 보기 좋아요 >_<
마츠모토 세이지 책 담아가요~~ ^^

이매지 2009-03-27 21:22   좋아요 0 | URL
신입사원의 풋풋함은 하루하루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ㅎㅎ
점점 퀭해져요;;
 
도착의 론도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1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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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낯선 작가에 별로 끌리지 않는 제목이라 어쩌면 놓칠 수도 있었던 책인데, 일본 미스터리 문학 즐기기 카페에서 2008년 탑 10에 꼽혔던 작품이라는 점때문에 반쯤은 낚여서 읽게 된 책이다. 서술트릭이 등장하는 책이라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읽었지만 정말 의외의 부분에서 함정을 파놓은 작가의 솜씨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돌고 도는 이야기가 순식간에 나를 사로잡아 버렸다. 

  추리 작가를 지망하는 야마모토 야스오는 월간추리 신인상을 목표로 꾸준히 습작을 한다. 하지만 '이거다!'싶은 작품을 쓰지 못한 채 지지부진 세월만 보내고 점점 궁지로 몰리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야마모토 야스오는 <환상의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이 작품이라면 신인상 수상은 가능하겠다 싶을 정도로 완성도 있는 작품을 쓴다. 하지만 친구인 기도는 야스오의 원고를 읽어보고 워드로 작업을 해주겠다며 가져갔다가 이를 분실하고 만다. 원고를 분실해 망연자실한 야스오. 그리고 얼마 뒤 신인상 수상작을 발표하는 페이지에서 자신의 작품과 똑같은 제목인 <환상의 여인>이라는 작품이 다른 작가의 이름으로 수상한 것을 보게 된다. 이에 세상에 수상자의 도작 사실을 알리려고 애쓰는 야스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고, 결국 그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복수를 하기로 결심하는데...

  <환상의 여인>이라는 한 편의 소설을 놓고 원작자와 도작자가 쫓고 쫓기는 싸움을 하는 이 작품의 구성은 원작자와 도작자 두 사람의 관점이 번갈아가면서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도 모르는 사이에 설치된 작가의 덫. 무심코 지나버린 부분이 밝혀질 때 독자는 절로 망연자실하게 된다. 애써 신경을 곤두세우고 읽었던 보람도 없이 보기좋게 속아넘어간 것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속고 난 뒤에도 '대체 내가 왜 이걸 못 알아차렸을까'라는 자책이 들었다. (하기사 이런 트릭을 알아내는 독자는 정말 눈썰미가 대단한거겠지만.)

  실제로 작가가 '에도가와 란포상'에 응시했다가 낙선한 작품이라 끝까지 읽고나면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모호해진다. 도착 시리즈는 곧 출간될 <도착의 사각>, <도착의 귀결>까지 총 3권인데, 나머지 두 권도 이정도 퀄리티만 갖춰준다면 오리하라 이치라는 작가를 꽤 믿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한 작품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의 소유물을 서슴없이 빼앗을 수 있는 인간의 어두운 부분이 잘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읽고 다른 서술 트릭의 책은 뭐 없을까 찾는 이들에겐 <벚꽃-> 그 이상의 충격을 안겨다주지 않을까 싶었다. 곧 출간될 도착 시리즈로 다시 만날 오리하라 이치의 솜씨가 기다려진다. 부디 다음에는 그의 서술트릭을 간파할 수 있기를!


덧) 추리소설가가 등장해서 그런지 내용 중에 꽤 많은 추리소설이 언급된다. 윌리엄 아이리쉬의 <환상의 여인>을 비롯해서 스탠리 엘린의 <결단의 시간>, 시가모토 고이치의 <백색의 잔상>, 하라 료의 <내가 죽인 소녀>, 사사키 조의 <에트로프발 긴급전> 등 아직 읽지 못한 책(혹은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책)들이 많아서 대체 어느 정도의 솜씨를 가진 작품이기에 이 작품을 꺾었을까 싶어졌다. 언젠가 기회가 닿아서 꼭 읽어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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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2009-03-24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도 이 책이 끌리는 걸 보면 리뷰가 좋아서인 듯 해요... ^^;;

이매지 2009-03-24 22:05   좋아요 0 | URL
제가 표현력이 떨어져서 어떻게 썰을 잘 못 풀겠더라구요 :)
직접 읽고 확인하세요~
 
책과 노니는 집 -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30
이영서 지음, 김동성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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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보다 표지에 끌려 읽게 된 책. 표지에 책을 안은 한 남자아이. 아이의 배경으로 보이는 많은 책. 아이는 무슨 일을 하고, 아이에겐 어떤 일이 일어나는 걸까 궁금하며 읽어가기 시작했다. 뒤표지에 '초등학교 5,6학년 이상 권장'이라는 문구가 있지만, 어린이 뿐만 아니라 영, 정조 시대에 관심이 있거나 책을 좋아하는 어른들이 읽어도 꽤 재미있을 것 같은 이야기였다. 

  아버지의 밑에서 홀로 살아가는 장이는 필사를 업으로 하는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책과 함께 살아간다. 그러던 중 서학(천주학) 책을 필사했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관아에 끌려가 곤장을 맞는다. 책을 사갔던 사람들에 대해 함구했지만, 주변 사람들은 혹 자신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을까 이들 부자를 직접적으로 돕지 못하고, 아버지는 장독이 올라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는다. 홀로 남은 장이는 책방 주인인 최 서쾌의 도움으로 그의 밑에서 책을 배달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책이라면 신물이 날 법도 했지만, 장이는 여전히 책을 좋아하고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런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장이는 여느 때처럼 최 서쾌의 심부름으로 홍 교리에게 책 배달을 가게 되고, 홍 교리와 교류를 하며 장이는 한층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또 한 번 서학 세력을 잡아내기 위한 명령이 떨어지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천주교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애초에 자국민에 의해 학문으로 전해졌다는 특징이 있다. 양반과 평민의 구분이 강했던 조선 사회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말하는 서학은 분명 사회를 무너뜨릴 수 있는 학문이었다. 그 때문에 나라에서는 꾸준히 서학 세력을 없애려고 노력했고, 이 책에 등장하는 것 같은 박해가 몇 번이나 등장한다. 언문이 나와 신분에 상관없이 약간의 노력만 기울이면 글을 읽을 수 있었던 사회였지만 아직도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어려운 학문도 존재하는 상황. 홍 교리처럼 높은 벼슬에 있지만 열린 마음을 가지고 타인을 수용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놈들이 글을 배우면 기어오른다고 생각했던 많은 양반도 있는 상황. 이런 상황 속에서 장이는 그 나름의 균형을 유지하며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며 살아간다. 단순히 어린 소년이 큰 사건을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과 그의 성장이 맞물려 장이도, 조선 사회도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흥미롭게 그려졌다.

  역사 소설이지만 노골적으로 가르치려 들지 않고, 선악의 대결이 그려지며 결국 선이 승리한다는 뻔한 교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이 더 마음에 들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따뜻한 마음으로 포용하는 미적 아씨나 홍 교리, 하는 짓은 얄미워도 사랑스러운 낙심이, 겉으로 보기엔 엄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최 서쾌 등 평범한 인물들을 통해 풀어가는 이야기가 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을까 싶었다. 읽으면서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절로 무릎을 칠만 한 부분들이 있어서 아직 책의 재미를 온전히 느끼지 못한 아이들이 책을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해준 것 같다. '네게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답을 물을 책도 있고 심심하고 답답할 때 재미를 줄 책도 있지 않느냐. 네 아버지가 살던 때와 네가 커서 살 세상은 다를게다'라는 홍 교리의 말처럼 책이 주는 재미를 아이들이 이 책을 통해 어렴풋이라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완성도 있는 내용에 한 폭의 그림 같은 삽화까지 잘 어우러져 책을 읽는 동안 나도 삽화 속에 그려진 공간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오랜만에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좋은 동화책 한 권을 읽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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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3-22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동성씨 그림은 참 따뜻하던데 이 책에서도 그런가봐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동화책이라니 관심이 가네요.

이매지 2009-03-22 23:27   좋아요 0 | URL
다른 리뷰를 살피다보니 김동성씨 그림에 대한 애정어린 글들이 많더라구요. 평소에 동화책에 들어가는 그림들은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 삽화 정말 마음에 들더라구요 :) 조선시대가 배경이긴 한데, 별 지식이 없는 아이들도 쉽게 읽을 수 있게 각주처리도 잘 된 것 같았어요~

진달래 2009-03-23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보고 싶었어요. ^^*

이매지 2009-03-23 22:34   좋아요 0 | URL
진달래님도 재미있게 보실 것 같아요 :)
꼭 보세요~

세실 2009-04-01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내용이었군요. 저두 표지가 맘에 들어서 눈여겨 보긴 했는데 잊고 있었습니다.
흥미로워요~~~

이매지 2009-04-01 22:35   좋아요 0 | URL
세실님도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세요~
 
유성의 인연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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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드라마가 방영했던 때만 하더라도 원작소설이 나오지 않아 아쉬워하며 '그래도 명색이 히가시노 게이곤데 언제 나와도 나오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드라마가 종영되고 곧 출간됐다. 드라마를 보기 전이라면 냅다 읽었을 텐데 이래저래 미루다 보니 이제서야 읽었다. 드라마 방영할 때 현지에서는 원작과 다르다고 실망스럽다는 반응도 있었다고 하는데, 드라마를 먼저 보고 원작을 봐서 그런지 어떤 부분을 각색했는지 비교하며 볼 수 있어서 내용은 다 알고 있었지만 재미있었다. 

  양식당을 하며 평범하지만,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아리아케 가족. 어느 날 아이들은 사자자리 유성우를 보려고 밤에 몰래 빠져나간다. 흐린 날씨에 비까지 오는 바람에 유성을 보지 못하고 돌아온 집에서 발견한 것은 처참하게 죽은 부모님. 이후 달리 맡아줄 사람이 없어 보호시설에 들어가게 된 아이들. 첫째인 고이치는 아직 철이 없는 동생들을 보살피며, 어른이 되면 범인을 찾아내서 동생들과 함께 복수를 하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아이들은 힘을 합쳐 사기를 치며 살아간다. 시효는 점점 다가오고, 아직도 범인은 잡히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들은 사기대상으로 찜했던 사람이 14년 전 사건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고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을 죽인 범인의 정체를 밝혀내고자 마지막 도박(?)을 시작한다.

  '삼 남매가 범인을 잡으려고 복수의 칼날을 갈고, 마침내 범인을 잡아 처단한다'라는 다소 평범한 줄거리가 될 수 있었지만, 이 책은 삼 남매가 힘을 합쳐 사기를 친다는 다소 황당한 전개로 진행된다. 때문에 초반에는 삼 남매의 사기 행각이 그려지고, 후반에 가서야 14년 전의 사건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온다. 다소 산만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책처럼 오락적인 요소가 많아서 지루하지 않게 읽어갈 수 있었다. 아무래도 진지한(?) 스토리라 그런지 드라마에서처럼 유머러스한 부분은 적었는데, 그래도 나름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머감각을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예를 들어, 고이치와 다이스케가 형사 행세를 할 때 사용하는 이름이 SMAP의 멤버인 구사나기(우리나라에는 초난강으로 알려진), 그리고 가가 형사(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형사)인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각색의 중요성을 느꼈는데, 드라마로 만든 <유성의 인연>의 각색은 쿠도 칸쿠로가 맡았는데, 원작이 있어서 쿠도칸의 색깔이 많이 죽긴 했지만 원작을 읽고 나니 확실히 많은 부분이 바뀐 걸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삼 남매의 직업부터가 달랐는데, 이 때문에 이후 스토리의 전개도 상당히 달라졌다. 드라마에선 첫째인 고이치가 보육시설 원장이 경영하는 양식당에서 일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책에서는 디자인과 관련한 일을 하는 것으로 나왔다. 그래서 이후 사기를 치면서 처음 알게 되는 것으로 나오는 유키나리를 고이치를 식당에서 만남으로써 초반부터 이야기가 진행됐다. 막내인 시즈나의 직업도 드라마에서는 회사원으로 등장하는데, 책에서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하는 것으로 나온다. (때문에 첫 번째 사기 대상인 다카야마는 회사에서 시즈나를 괴롭히던 사람이 아니라 그냥 사기 대상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드라마의 재미를 살리고자 초반부터 모든 등장인물을 등장시킨 것이 아닐까 싶었다. 

  재미만큼은 여전했지만, 너무 재미만 추구한 것 같아서 아쉬웠다.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그려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삼 남매의 아픔이나 슬픔은 잘 그려지지 않은 것 같았다. 나처럼 드라마를 재미있게 봐서 원작과 비교하며 읽고 싶은 사람이나 평소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했던 독자라면 재미있게 보지 않을까 싶었다. 식상한 소재를 잘 풀어가는 모습을 보며 그래도 히가시노 게이고는 죽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 계속 구시렁거리지만 읽을 때만큼은 재미있는 히가시노 게이고. 다음 작품이 나오면 또 구시렁거리면서 읽게 되더라도 다시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드라마를 보지 않았다면 원작을 보고 드라마를 보면 한층 더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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