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훈 님의 <잡놈들 전성시대 > 도 있으면 좋겠네요. 요즘 너나없이 잡놈들이 되어가는 세상에 일침을 가해주는 책이 아닐까합니다. 대한민국에 넘쳐나던 지성인들은 언제부터인가 사라지고 떼창과 잡놈들만 우글거리는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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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
롤랑 바르트 지음, 변광배 옮김 / 민음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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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책을 읽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책을 읽는 즐거움과 글을 쓰는 즐거움은 모두 사고의 사정인 동시에 생각의 흐름을 문자로 표현하는 글쓰기와 사고의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생각의 흐름을 표현하는 것이 글쓰기이지만, 글쓰기는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와 달리 마지막까지 사고의 흐름을 짐작할 수 없다. 글을 쓰는 동안에 내면에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글쓰기의 과정은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사고의 흐름이 달라질 뿐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 의한 글쓰기 사유는 글을 쓰는 이들에 따라서 모두 다르게 표현되어 질 수 있다.  20세기 후반 가장 훌륭한 프랑스 지성인 가운데 한 사람인 바르트의 마지막 강의로 남겨진 이 책은  글쓰기를 완성하는 삶에 대한 강의다.

 그의 강의를 들은 청중들은 롤랑바르트의 강의를 듣고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는 당신의 강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습니다. 단지 사라졌던 영혼이 우리 안으로 다시 돌아왔을 뿐입니다.” 라고 

사라졌던 영혼이 돌아올 정도의 강의라니 이보다 더한 극찬이 있을까.  

  롤랑바르트는 자신의 글쓰기강의를 통해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글쓰기는 변화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내면안에 중요한 변화 , 삶의 중간에서 발생한 동요에 어떤 내용을 부여하면서 시작되는 변화의 시작이 글쓰기의 재료라는 것이다. 지성의 욕망으로서 꿈꾸게 되는 환상이 글쓰기 시작의 신호다. 

 

글쓰기의 환상은 글쓰기의 안내자 역할을 합니다. 입문 안내자로서의 환상이지요.

 

환상이 글쓰기의 재료가 되고 자신의 욕망하는 힘 속에서 표현하는 것, 소설의 준비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강의는 글쓰기의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욕망을 표현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은 메모하는 것이다. 현재의 삶을 제재 삼아 소설을 쓰고 싶다면 메모하기(notation)의 실천이 중요하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메모에서 소설로 이행하는 과정 즉,  텍스트 연결하기이다. 바르트는 이 과정을 하이쿠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데 그가 하이쿠를 예시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집요한 욕망, 확실한 매력, 하이쿠와 더불어 나는 글쓰기의 최고선 안에 있습니다. 또한 세계의 최고선 안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글쓰기의 수수께끼, 즉 글쓰기의 집요한 생명, 가능한 글쓰기 의지를 세계와 분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약간의 글쓰기는 세계로부터 분리되지만, 많은 글쓰기는 우리를 세계로 이끈다.”

 

하이쿠란 붙잡으려고 하지 않는 벽 위의 가벼운 긁힌 상처입니다. 하이쿠에서 나는 아무것도 붙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감각적인 굽이들이 있고, 현실계의 섬광에 대한 행복한 동의, 감정적 굽이들에 대한 동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중함입니다. 하이쿠 작가, 하이쿠 인간이란 철저하지 못한, 관용적인, 어쩌면 노련한 불자입니다. 도교와 불교의 혼합인 것이죠.

 

   하이쿠의  짧고 단편적이면서도 가장 전형적인 메모하기의 형식으로 글쓰기의 과정이 소개되고 하이쿠가 지닌 리듬, 활자의 배치가 문장에서 갖는 의미, 감각적인 () 개념의 무위, 시간의 개별화, 날씨의 언어, 개별화, 뉘앙스, 우연성, 파토스, 정동, 공존재에서 바르트는 하이쿠의  '그것은 아무것도 맞춰지지 않습니다.' 라는 '정동의 진리'를 포착한다. 현재의 삶에서 찾은 재료의 메모들을 분할로서 남기고 그 분할 된 글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에 의해 글쓰기의 완성을 가져온다.

 

'우리로서는 최소한 올해에는 독립된 메모하기, 하이쿠에서 그 전형적인 형식을 볼 수 있는 짧은 형식을 볼 수 있는 짧은 형식에 머물고자 합니다. 메모하기의 단위는 어떤 차원에 속할까요? 달리 말해 메모 가능한 것에 대해 어떤 정당화가 가능할까요?

 

 2편은 미로의 은유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였지만 교통사고로 강의를 하지 못한 채 바르트가 세상을 떠났다. 책에 실린 것은 강의를 하기 위한 요약된 텍스트이다.

 

마지막으로 이공과대학에서의 강연이 실려 있는데 글쓰기의 본론부분에 해당하는 장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글을 읽는 것에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감정을 느낀다. 거기에서 조금 나아가 그 감정을 글쓰기로 연장시키기 위해서 저자는 감정의 강도’에 차이를 작동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텍스트를 읽는 기쁨과 글쓰기의 생산적 기쁨은 또 다른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그것을 '욕망의 전라고 부른다. 텍스트를 읽고 텍스트에 대한 강렬한 욕망은 주체에 따라 분산되며 다른 책들을 만들어내는 호소와 기회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그 사이에서 글쓰기의 희망이 태어난다. 글쓰기에서 찾을 수 있는 삶의 가치는 무한대이다. 글쓰기에 대한 철학자적 고찰이 담겨 있어 밀도 높은 작품이다. 프루스트와 라캉, 하이쿠에서 니체까지 굉장히 방대한 분량임에도 작품마다 주석을 달아 세세한 설명까지 달아 놓은 번역자의 노고가 느껴지는 책이다. (이 정도의 두께에 오타를 발견하지 못했을 정도로 ^^)

 

 

현재를 메모하면 소설을 쓸 수 있습니다. 이 현재가 당신 위에, 당신아래에 떨어짐에 따라서 말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접힌 부분 펼치기 ▼  (책내용 발췌

 

각자에게 너무 오랫동안 사라졌던 영혼을 다시 발견하기 위한 긴 작업과 그 영혼의 귀환을 개시하는 것이 그것이다.”

 

따라서 변화가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삶의 중간에서 발생한 동요에 어떤 내용을 부여하는 것, 즉 어떤 관점에서 삶프로그램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글을 쓰는 사람, 글쓰기를 선택한 사람, 다시 말해 글쓰기의 쾌락, 글쓰기의 행복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새로운 글쓰기의 발견 말고는 다른 새로운 삶이 없을 것입니다. 분명 내용, 강령, 이론, 철학, 방법, 신앙 등을 바꾸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는 것은 평범한 일입니다. 숨을 쉬는 것처럼 말이죠. 열중하고, 흥분을 진정시키고, 다시 열중하는 것, 그것은 충동 그 자체입니다. 지성이 욕망한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글을 썼던 사람에게는 새로운 삶의 장 역시 글쓰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글쓰기를 실천하는 것이죠. 새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다름과 같은 것뿐입니다. 글쓰기를 실천함으로써 과거의 지적 실천과 결별하는 것, 글쓰기가 과거 행동의 관리에서 분리되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 주체는 이 글쓰기를 스스로 관리하도록 또 그것을 반복하면서 자기 작품을 잘 관리하도록 사회적 압력을 받습니다. 단절해야 하는 것, 그것은 정확히 이와 같은 단조로움입니다,

 

한 인간의 삶에서-그러므로 모든 인간의 삶에서- 모든 것이 완성되는 순간이 있다. 책이 쓰이고, 우주가 조용해지고, 존재들이 휴식을 취하는 그런 순간 말이다. 남은 일이라고는 그 순간을 알리는 일뿐이다. 이것은 쉬운 일이다. 하지만 보충되는 말 탓에 균형이 깨질까 봐- 그런데 어디에서 이 말을 하기 위한 힘을 발견할 수 있는가? 또한 이 말을 위한 자리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 사람들은 이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그러면 그들의 임무는 미완성으로 남는다. 그들은 내가 방금 쓴 것을 반복할 따름이다, 궁극적으로 그들은 그것조차도 쓰지 않는다.

 

아주 낡은 단어 두 개가 뇌리를 스쳤습니다. 문학에 입문하자, 글쓰기에 입문하자였습니다. 마치 지금가지 내가 전혀 글을 쓰지 않은 것처럼 말이지요. 그것만 하자. 그래서 우선 글쓰기의 삶을 단일화하기 위해 콜레주 드 프랑스를 떠나리고 갑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는 것, 실제로 이것은 벌써 글쓰기의 재로 자체입니다. 따라서 문학작품들만이 이 글쓰기-의지에 대해 증언해 줍니다,

 

나는 오랫동안 글쓰기-의지 그 자체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쓰다는 자동사니까요. 지금은 이 점에 대해 옛날만큼 확신하지 못합니다. 분명 글쓰기-의지=뭔가를 쓰고자 원하는 것글쓰기-의지 =대상입니다. 다영한 글쓰기의 환상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하는 힘 속에서 표현하는 것, 그러니까 이것을 성적 환상과 같은 것으로 이해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적 환상은 한 명의 주체와 전형적인 대상이 함께하는 하나의 시나리오, 쾌락을 낳는 결합입니다. 결국 글쓰기의 환상은 하나의 문학적 대상을 생산해 내는 나, 즉 그 대상을 쓰는 사람 또는 그보다는 오히려 그 대상을 끝마치려는 지점에 와 있는 사람입니다.

 

글쓰기의 환상은 글쓰기의 안내자 역할을 합니다. 입문 안내자로서의 환상이지요.

 

소설은 세계를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소설은 세계를 혼합하고 또 포옹하기 때문입니다, 소설에는 너그러움이 있고,쏟아 붓기가 있습니다. 이 쏟아 붓기는 감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매개되었기 때문입니다.

 

문학이란 항상 삶과 같이 이루어진다는 생각으로 말이지요. 나의 문제는 결국 내가 내 과거의 삶에 접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점입니다, 나의 과거 삶은 안개 속에 있다는 것, 즉 강도가 약하다는 것입니다. 강도가 높은 것은 현재의 삶입니다. 글쓰기 욕망과 구조적으로 혼합된 현재의 삶 말입니다. 따라서 소설의 준비는 현재의 삶과 평행인 텍스트 , ‘동시대적인 삶, 공존하는 삶에 대한 텍스트의 포착과 관련이 있습니다.

 

현재를 메모하면 소설을 쓸 수 있습니다. 이 현재가 당신 위에, 당신아래에 떨어짐에 따라서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메모하기(notation),'메모의 실천, 노타시오의 문제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메모에서 어떻게 소설로 넘어가느냐의 문제입니다.

 

키르케고르는 다음과 같은 문제에 봉착했습니다. 미학적 표현 방식으로 존재를 향유할 것인가. 또는 윤리적 표현 방식으로 존재를 실현할 것인가. 하지만 내가 보이게 거기에는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에 따른 실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문제는 쇠렌 키르케고르의 머릿속에만 있었던 문제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은 윤리적이고 겸손한 경험을 통해서만 존재의 미학적 주이상스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글쓰기를 시작한 순간부터 글쓰기와 이상 자아 사이에는 재가동의 역학, ‘따라잡기도는 가치 올리기의 역학이 정립됩니다. 이 역학은 항상 글을 쓰게 하고, 항상 멀리, 항상 앞으로 나아가면서 글을 쓰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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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트는 새로운 글쓰기의 삶에 대한 욕망을 고통스럽게 확인하게 되었다. 소설, 이 ‘불확실한 형식’, 욕망된 것만큼 많이 언급된 화언 행위의 재료가 바르트에 의해 ‘정동의 진리’하고 명명되는 것을 표현하기에 유일하게 적당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 안에서 의미가 완성되고 또 해체되는 그 ‘정동의 진리’를 말이다. “진실의 순간=다룰 수 없는 순간, 해석할 수도, 초월할 수도, 역행할 수도 없는 순간, 사랑과 죽음이 거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말할 수 있는 것의 전부입니다.” 이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탐구의 의미를 포착하게 해 주었던 찬란한 순간에 대해 말하면서 바르트가 강의 시작 부분에 위치시킨 다룰 수 없는 순간의 또 다른 모습의 메아리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바르트가 이 강의를 결정한 원천은 이와 같은 순간을 낚아챈 의식, 곧 그 자신 사토리(역주-깨우침, 각성등의 의미 )라고 명명한 것 속에서 포착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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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화 속의 사랑과 성 인간사랑 중국사 4
왕이쟈 지음, 이기흥 옮김 / 인간사랑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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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대한 농담도 자연스레 할 나이임에도 성에 대한 담론은 사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알게 모르게 잠재적 의식 속에 금기시 되어 왔다는 느낌이랄까. 배우들의 실제 정사 장면을 촬영하여 화제가 되었던 <님포매니악>이란 19금 영화를 본 적 있다. 성중독자였던 여자의 경험담을 통해 성이라는 굴레를 벗어버린 여성이 성과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방면에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담자는 무성욕자로 성을 죄악시하며 자신의 욕망을 분출한 적이 없다. 지루할 정도로 긴 여자의 이야기를 담담히 들어주던 상담자는 여자의 이야기가 끝나갈 즈음에 갑작스레 여자를 범하고 여자는 남자를 총으로 쏜다. 한편의 블랙코미디 같은 이야기지만, 성에 대한 자유와 억압 두 가지 내면의 충돌을 극대화 하며 성담론을 이끌어내기에는 충분한 영화였다. 조금 길더라도 책 내용을 적어보았다. 참고사항으로 ..

 

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 중국 문화를 통해 살펴보는 성이라 생각했는데 명.청 시대 필기소설에서 발췌한 성이야기이다.  156편에 해당하는 이야기들을 주제별로 나누었고 나눈 이야기들 '뒤의 이야기'에서 세부적인 이야기들 다룬다.  제1장 뚜껑 열린 성-만감이 교차하는 블랙홀 에서는 숨기기의 필요성과 엿보기의 필요성/ 다시 거듭 발견된세계 / 성의 본질 /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만 한편 우리를 흥분시키는 / 문명의 가르침에 항거해온 성에 대한 이야기를 2장 색정의 구조 분석-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은 거의 없다 이야기 뒤의 이야기에서는 색정의 찬람함을 이해하는 색채 구조 / 인간의 성행위를 구성하는 열한 가지 원색 / 서로 다른 원색 사이의 생극生剋 관계 / 성별, 생식, 쾌락과 경쟁 / 이익 교환과 건강의 색채 / 권력, 도덕, 법률과 예술 / 더욱 복잡한 방식으로 본능을 표현하게 만드는 문명 / 본능의 변천은 문명 심리 메커니즘의 변천을 다룬다. 3장 방종과 억압-중국인의 두 가지 성 문화에 관한 이야기 뒤에는 가장 큰 분량의 두 가지 원색 / 쾌락이 앞장서서 연출한 성의 이미지 / 도덕이 앞장서서 연출한 성 이미지 / 각자가 자기 나팔 들고 제 곡조로 연주하기 / 성에 대한 방종의 관념과 행위의 역사 돌아보기 / 역사도 유구한 방중술과 색정 매체 / 성에 대한 보수주의를 대표하는 유가儒家 / 통제, 금지, 그리고 징벌 / 끊임없이 흔들거리는 천칭저울 / 타산지석他山之石 / 서방의 성에 대한 억압 문화 / 서방의 성에 대한 방종 문화 / 서양인은 어떻게 성을 처리하는 방법을 태연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 중국인은 어떻게 성을 생활예술로 발전시켰을까. 4장 기울어진 침대-성별과 권력의 색깔 합성이야기 뒤에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원색 / 남녀유별의 이중적 잣대 / 여성의 정조에 대한 일방적인 요구 / 여성에 대한 전방위적인 정결관 / 아내의 혼외정사를 치밀하게 방비하다 / 질투 많은 여인을 가르치고 훈계하다 / 간통범은 둘 다 처리하지만 여성의 책임이 더 컸다 / 처녀를 탐닉하는 서방 세계 / 악명 높은 정조대 / 중국과 서양이 모두 같은 질투 / 남존여비의 서로 다른 구실 / 성에 대한 도덕관이 분명히 달랐던 원시 민족 / 성별과 권력, 그리고 침대 기울기

 

  5장 걱정 가득한 남근男根-중국 남성의 성에 관한 배색 사전 이야기 뒤에는 남성에게 남근이 갖는 특수한 의미 / 중국 남성의 성에 대한 초조한 마음 / 많은 남성들은 거시기가 조금만 더 크길 바란다 / 거세에 대한 초조한 마음과 성에 대한 비정상증후군 / 중국의 신허腎虛와 서양의 신경쇠약 / 여성의 성 능력에 대한 깊은 이해와 두려움 / 아내가 다른 사내의 씨를 가졌을까 걱정 / 근심의 근원-생물학적인 약자 / 여성의 성욕에 대한 무리한 억제,  6장 임상공학-정력제와 방중술의 허실 뒤의 이야기에는 성에 관한 중국 고전 임상의학에 담긴 의미 / 어떻게 남근을 더욱 길고 크게 만들었을까? / 정력을 돋우는 각양각색의 방법 / 미얀마산 구슬과 양의 속눈썹 등 기물에 의한 방법 / 기공에 의한 방법 / 성애를 통한 양생법의 네 가지 단계 / 중국과 서양 정력제의 사유 패턴 / 홍연환과 추석산의 허상과 진상 / 여인을 정복하는가, 여인의 비위를 맞추는가 / 중국과 인도의 방중술의 유사함 / 중국·인도 양국과 서양의 공통점과 차이점 / 단련과 육체 조종의 개념 / 중국 고전에 나타난 성에 관한 임상 학문의 긍정적 의의 / 방중술과 성별 착취의 패러독스, 7장 발이 작아야 열녀각이 크다-여성에 대한 육체적 정신적 착취 이야기 뒤에는 여성에 대한 남권 사회의 모순된 심리 / 전족纏足-여성의 신체를 훼손시키는 예술 / 성의 선택과 성의 경쟁, 그 매정한 철칙 / 전족과 남성이 느끼는 성 쾌감의 관계 / 기형적으로 발전한 전족 숭배0 과부에게 수절을 요구한 두 가지 목적 / 북송 이전에는 흔한 것이 재가한 과부였다 / 갈수록 심해진 다른 두 가지 이유 / 인간의 본성을 심각하게 왜곡한 정절 숭배 / 중국·인도 양국 과부의 남편 따라 죽는 차이 / 남자가 칼자루를 쥐었으니 여자는 당할 수밖에, 8장 절규와 신음-성에 관한 문화가 폭력으로 통치하는 곳에서 드리는 충언 이야기 뒤의 이야기 소리 없는 폭력 통치 / 문화의 주문을 향해 내지르는 함성 / 위선자의 거짓 모습을 까발리는 질문 / 어지러운 세상에서 들리는 부끄러운 신음 / 엄격한 법 적용으로 여인을 옭아매는 것은 뻔뻔스러운 짓이다 / 삼촌금련에 대한 항의와 고발 / 과부의 수절에 대한 여성의 자주적인 요구 / 양성불평등에 대한 질문 / 압박에 반항하는 외침, 그 해체의 언어, 9장 적응하는 인간-모순과 충돌 속에 이루어지는 타협이야기 뒤의 이야기 다음으로는 집단적 성 적응과 개별적 성 적응 /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한다는 특수한 혼인 형태 / 일처다부제一妻多夫制와 사회 환경 / 처녀 위장술과 위장 적응 / 혈통을 잇는 갖가지 수법 / 모순과 충돌의 새로운 조정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도덕과 개인적 적응 / 훨씬 진실했던 성적인 애정 도감, 10장 동성애 이야기 뒤의 이야기에는 동물도 동성애를 한다 / 역사 속에 드러난 남성 동성애의 성쇠와 기복 / 남성 동성애에 대한 중국인의 생각 / 남성의 동성애에 대한 서방 세계의 역사적 관점 / 남성 동성애 행위의 네 가지 형성 원인 / 중국과 그리스의 미동美童 / 저급 남창과 고급 남창 / 여성 동성애의 특수한 모습 / 남녀 동성애의 본질적인 차이를 다룬다.  11장 승려들의 죄업-헛된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만드는 미모 뒤의 이야기 영혼의 진실을 반영하기 위하여 / 금욕에 대한 감히 동의할 수 없는 의혹, 그리고 야유 / 승려의 음행에 대한 태도와 견해 / 데카메론의 난봉꾼 신부와 아리따운 수녀 / 장기적인 억제로 전화轉化된 성본능 / 금욕의 근원과 반성, 12장 변태된 성-변태 성욕의 풍경이야기 뒤의 이야기에는 문명이라는 울타리에 갇히면 변태에 빠지기 쉽다 / 수간에 관한 한 중국인은 온건파이다 / 남성의 미녀와 짐승에 대한 환상 / 수간 때문에 만들어진 탄생 신화 / 규시증窺視症과 페티시즘의 문화적 풍모 /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동서양 차이 / 의상도착증衣裳倒錯症과 환관의 성생활 / 본능과 문명의 상호 작용으로 만들어진 특산물에 이어 13장 아무리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 레퍼토리까지 실려있다.

   

저자는 중국인의 사랑과 성에 관한 도감의 주요 맥락은 중국의 성에 관한 문화 속의 중요한 언어와 문법이라며 그 가운데에서 인류의 보편성을 찾는다. 숫처녀나 여성에게 색정적인 자태를 드러내게 하는 삼촌금련과 여성의 욕정을 억압하며 정절을 요구하는 패방의 존재와 같이 성이 독점하는 사회이면에 있는 역사적, 문화적 , 심리적 고찰과 더불어  갖가지 색의 합성과 분해라는  연결고리의 이해로서 살펴보는 성담론이다.  성이라는 하나의 사건은 문화의 산물인 동시에 역사적 자취이기 때문이다.  조금은 야사같지만 가볍게 읽어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물론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지만)  읽어볼 만한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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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은 마음속에 있다 만화 최창조의 풍수강의 1
최창조 지음, 김진태 만화 / 고릴라박스(비룡소)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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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개명한지 4년이 되어 간다. 이름이 촌스러웠던 것도 아니고 나름 개성 있고 멋진 이름이였는데 집안 어르신께서 사주팔자를 보러 가셨다가 이름을 바꿔야 복이 온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아까운 이름자를 순식간에 개명하였다. 미신이나 사주팔자는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좋지 않다는 말을 듣고 나서는 절대 무시할 수 없게 된다. 그런면에서  사주팔자나 풍수는 모르고 살아도 일상생활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알고 나면 많은 영향을 미치는 동양철학의 일부이기도 한 학문이다. 물론 현대는 풍수(지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아파트 생활을 하는 주거문화이기에 풍수 이론이나 사주팔자가 낯설게 느껴지기는 것도 사실이지만 오래 전 풍수가 궁금해서 최창조의 새풍수이론 http://blog.yes24.com/document/7323812 이란 책을 읽고는 풍수와 삶이 매우 밀접하다는 것을 알았다.  전에는 풍수를 인터넷이 발달된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비과학적 학문이라 생각하곤 하였는데 풍수가 삶에 미치는 좋은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던 책이다.  

 

 

풍수이론과 만화가 만나 두 권의 책으로 기획된 풍수만화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는 풍수전문가인 최창조의 새풍수이론을 캐릭터화하여 재미있고 쉬운 풍수이야기를 들려준다.  최창조의 풍수이론은 미신처럼 여겨지던 풍수에 대하여 보다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학문으로서의 풍수의 새지평을 열어준다. 저자의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 곧 '바람을 피하고 물을 얻는다'로 자연속에 사는 인간이 보다 안락하고 편리한 생활을 하고자 하는 욕망과 지혜가 혼합되어 있는 학문으로서의 풍수이다.  

 

저자는 우리나라에 뿌리 내린 풍수의 기원과 조선의 역사서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였던 임금의 묏자리와 역대 대통령의 명당 기준과 현대에까지 이르러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박집의 비밀, 로또 1등이 여러명 나왔다고 하는 로또명당과 같은 일상적이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만화가 김진태의 그림으로 보다 쉽게 풍수이론을 재정립해 주고 있다. 

 

 풍수는 땅의 기를 살펴 땅의 성격을 읽어 내고, 땅과 인간이 어떻게 올바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다.”

 

만화속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풍수'에 대해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이다. 반면, 아들 장득수는 풍수를 자연과 사람이라는 조화로운 관계로 보며 저자 최창조의 장풍득수를 실천하는 캐릭터이다. 풍수에 대하여 미신처럼 치부하며 맹목적인 믿음을 지닌 아버지는 일반적인 풍수시각이고 아들 장득수는 풍수의 새지평을 열어주고 있는 현대적 시각의 풍수가이다. 재미있고 유익할 뿐 아니라 삶의 풍요를 위해 알아두어야 할 지혜로 풍수를 만나보고 싶다면 《명당은 마음속에 있다》를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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