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이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판단이 서지 않을 경우 다음 몇 가지 질문을 떠올려보면 쉽게 판단이 됩니다.

#그는 겸손하지 않고 거만한가
#그는 다른 의견을 잘 참아내지 않는가
#그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듣지 않는가
#그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결정을 바꾸는 일이 거의 없는가.
#그는 허영심이 과하거나 외모에 집착하는가
#그는 남에게 웃음거리가 되면 과도하게 분노하는가

위의 질문에 대한 답들이 "예"라고 나오면 그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인간이 틀림없습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관심이 없기에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신에 대해 감탄해주고 존경의 눈빛을 보내줄 때만 귀를 기울입니다.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한 어느 뉴욕 시장은 실컷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후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내 이야기는 이만하면 충분하군요. 이제 당신 이야기를 들어보지요. 당신은 나를어떻게 생각합니까?'

자기중심적인 사람의 관심사는 온통 자신에게만 쏠려 있기 때문에 자신에 대한 이야기 말고는 듣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서든 자신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자신의 배경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로지 자신에 대해서만 집착하는 사람입니다.

#인문
#서두르다잃어버린머뭇거리다놓쳐버린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어떤 불길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감지되는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누군가에게 걸려오는 갑작스러운 전화에서도 무언가 잘못된, 나에게 좋지 않은 문제일 거라는 예감 역시도 틀린 적이 없다.예감은 언제나 정확했다....그러나 좋지 않은 일은 언제나 나로 인한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한 것이라는 것, 이것 역시 좋지 않다.나는 사실 별로 남에게 관심도 없을 뿐더러 일상에서조차도 수다를 떨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인데 집요하게 타인을 자신의 잣대로 비난하며 자기중심적 사고로 판단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되고 문제는 늘 그 사람들로부터 발생한다. 그것이 극도로 피곤하게 느껴질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옆에 있으면 정말 피곤하다. 지독한 나르시시즘에 빠져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꽤 된다는 사실이 나로 하여금 자괴감을 느끼게도 한다.

이런 저런 일로 엮이고 싶지 않은 일과 관련하여 급피로감을 느끼는 와중에 핸드폰을 허리춤에 달려있는 주머니에 넣을 때, 불길한 예감이 스치기도 했던 것 같다. 아니나다를까 문을 닫을 때 핸드폰이 차문에 걸려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아무 문제가 없는 줄 알았더니 핸드폰이 액정이 나간 것도 아닌데 안쪽으로 가느다란 실금이 가 있고, 화면 자체가 켜지지를 않았다.

휴대폰 대리점에 가니 수리비 20~30만원을 이야기하며 차라리 그 정도선이면 새로 하나 사시는 것이 낫다고 하며, 쏠 프라임이라는 기종을 추천해주었다.

처음으로 핸드폰의 존재가 내 삶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되새겨보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자리에서 구매를 했다. 핸드폰에 깔려있던 수많은 앱과 수천명의 연락처들을 다시 저장을 해야한다는 사실이 짜증도 나기 한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불길한 예감은 그래도 새 폰을 장만했으니 액뗌했다치자 ㅎㅎㅎㅎ근데 무슨 액뗌을 1년 365일 하는 기분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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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황인숙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말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비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피도 튀기지 말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시치고는 참 냉소적이다.
하지만 시의 내면읽기도 들어가보면
이 시는 상당한 인문학적 사유의 내공이 담겨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접하다보면
자신의 아픔이나 고통을 토로하는 글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하지만, 그 고통이나 아픔은
누군가 대신 아파해 줄 수 없는
지극히 개인의 영역에 해당한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은 아픔의 무게와
고통의 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이겨내면서
내면은 한 단계씩 성숙되어 간다.
세상의 고통을 혼자 짊어진 듯 한 이들과
자신만이 불행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자기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말하지만
그들의 고통은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아픔은 아니다.
정말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고통을 토로하지도 못할 정도의
아픔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 황인숙은 <강>에서 그런 고통이
'옷장의 나비'나 '찬장의 거미줄'같은
자잘한 일상의 고민일 수도 있고
'인생의 어깃장'같은
심각한 시련과 장애물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시인은 이 모든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에 해결해달라고 말하는 대신에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할 것을 명령한다.

'나의 고통'이란 것은
절대로 타인의 위로로 없어지지 않는다.
나 자신이 고통을 직시하고 그것을 기꺼이 짊어진 채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 나가야만 한다는 것을

시인과 우리는 이미 경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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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가 이제 곧 끝나간다. 애당초 책만 읽기는 힘든 짧은 휴가였지만,

이상하게 여름이라는 계절 내내 휴가였던 기분이다.

아마도 여름 내내 멍하기만 했고

일에 대한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획은 세우지만 반만 해도 만족스러웠고

여유는 없었지만 살아있는 것만으로 감사했다.

한 편으로는 늙은 느낌이었고 

한 편으로는 지친 느낌이었다.

이상을 버릴 때 늙는다고 하더니

지금까지 쌓아놓았던 것들이 허망하게 느껴져

만약이라는 가정하에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모두 내려놓는다면 하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급속도로 늙어버린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되든 안되는 끝까지 지금의 꿈을 붙들기로 마음을 고쳐먹으니

다시 또 희망이라는 바람이 불어오는 듯하다.

방학동안 큰 딸이 한국사 검정능력시험을 같이 보자고 해서

설민석의 한국사 특강을 사고 나는 '세계사편력'을 구매했다. 



딸에게 들려주는 세계사 이야기인 세계사편력은 총 3권이다. 

간디 이후 인도의 독립운동을 이끈 지도자이면서 초대총리를 지낸 자와할랄 네루의 책이다.

1930년 10월 26일부터 1933년 9월 8일까지 옥중생활을 하면서 196회분의 편지글이 실려있다.

참고서적 하나 없이 딸에게 들려주는 세계사 이야기는 첫 장면부터 몰입하게 된다.

네루가 감옥에 있을 당시에 온 가족이 인도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가 투옥되어 집에는 어린 딸 인디라 간디만 남겨져 있었기에 매일같이 편지를 써야만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절절하게 읽히기도 한다. 아버지의 세계사 편지를 읽고 자란 딸 인디라 간디는 훗날 인도를 이끌어갈 여성 총리가 되었다. 딸아이와 같이 읽으려 선택한 세계사 책으로는 아주 마음에 든다.


좋아하는 작가를 손에 꼽으라하면 열손가락도 부족하겠지만, 좋아하는 책을 꼽으라하면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 그 가운데 장석주의 <일상의 인문학>은 정말 좋아하는 책이다. 인문학적 사유가 듬뿍 묻어나는 글도 좋지만, 책과 함께 산책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서 더 좋다. 자연과 더불어 독서하며 사는 삶에서 우러나오는 글의 담백함에 마음이 끌리곤 한다. 깊고 폭 넓은 사유가 바탕이 된 책읽기에서 비롯된 문장은 때론 공경심을 자아내게 한다. 사실 글을 잘 쓰면서도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드문데다 인문학적 사유가 버무려진 글쓰기 스타일은 더욱 드물다. 온라인 커뮤니티로 확산으로 인해 개인 창작글이 넘쳐나고 있지만 깊은 사유가 바탕이 되지 않는 글들은 한계점이 금방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스티븐 킹의 책을 별로 안 읽는 사람들이 글을 쓰겠다면서 남들이 자기 글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로 터무니없는 일이다.’ 라는 말에 십분 공감한다.

 

장석주의 독서 열정과 더불어 글쓰기에 대한 애정은 이 책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에 더욱 돋보인다. 책읽기로 시작된 작가의 운명, 이어서 글쓰기의 세계에 인도되어  불투명한 미래와 가망성 없는 미래로 인해 방황하였던 날들은 유명작가들의 공통관문이나 다름없는 허기진 삶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작가 지망생이었을 때  겪었던 재능의 회의, 작가였기에 느껴야  했던 삶의 곤궁함이 결국에는 훌륭한 글감이 되어 글쓰기의 원동력이 되는 그 과정들을 자신과 작가들의 경험에서 건져올린다. 그 안에는 헤밍웨이, 김훈, 김연수, 모리스 블랑쇼,파블로 네루다 , 하루키의 글들이 장석주의 사유와 버무려져 있다. 또한 장석주는 온갖 시련과 고통에서 살아남으며 날마다 꾸역꾸역 글을 씀으로 해서 작가로 살아남게 되었다는 말을 들려준다.  

 

예로부터 글을 잘 쓰기 위해서 많이 듣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라는 삼다를 권장해 왔다. 장석주는 그 삼다를 모두 성실하게 하는 작가같다. 읽기 만큼이나 쓰고, 쓰는 것만큼이나 생각하는 것이 글에서 전해질 뿐아니라 그런 모습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책을 읽는 것이나 쓰는 것이나 자신만의 채찍질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책을 읽은지 한참 되었지만 다시 읽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문장들이 다시 눈에 들어와 읽던 부분을 반복적으로  읽고 있다. 장석주 같은 인문학자는 정말 대단하다. 다독보다도 책에서 이끌어내는 명문장들의 향연과 삶의 통찰이, 독서가에게도 내공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게 한다. 


이 밖에도 많은 책을 구매했다. 휴가는 이제 끝나지만,

좋은 책들이 삶에서 늘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선사해 준다는 것이

지리멸렬한 삶에서 그나마 위로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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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박열

72주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박열>영화를 본 건 의미있는 일이었습니다. 😄
3.1 운동 이후 조선인 대학살이 일어나고
그 대학살을 은폐하기 위해
일본은 ‘박열‘이라는 불량선인이자
독립운동가를 희생자로 만들기 위해
재판을 시작하게 됩니다
어차피 답정재(답이.정해진 재판=사형) 이었지만
박열은 이 재판을 통해
조선인 대학살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죠

그 가운에 일본여자인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과 함께 합니다.
정신적인 동지이자
일본이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에 대한
시대의 증인으로써 말입니다.

영화는 암울한 시대에도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사랑으로
우리의 삶이
절망 가운데에서도 희망을 잃어서는 안되는 이유를
깨닫게 해 주는 듯 합니다.
배우들의 열연이 인상깊었고
일본어로 감정을 표현하는데도
그 감동이 어색하지 않았던
배우 이제훈과 여배우 최희서의 연기에 절로
감탄이 나오는 영화였습니다.
시간 되실 때 영화 <박열> 꼭 보시길 바랍니다.😃
(글 쓸 시간이 없어 짤막하게 소개만^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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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하지 않는다

-윌리엄 어네스트 헨리

온 세상이 지옥처럼 캄캄하게
나를 엄습하는 밤 속에서
나는 어떤 신들에게든
내 굴하지 않는 영혼을 주심에 감사한다.

생활의 그악스러운 손아귀 속에서도
난 신음하거나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우연의 몽둥이에 맞아
머리에서 피가 줄줄 나도 숙이지는 않는다.

천국문이 아무리 좁아도,
저승명부가 형벌로 가득 차 있다 해도
나는 운명의 지배자요
내 영혼의 선장인 것을.

🌷
어렸을 때 결핵으로 한 다리를 절단해야 했던 시인은 어른이 되어서도 온갖 병마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정말이지 온 세상이 까매지는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분연히 일어나 운명의 횡포에 맞서 싸웁니다. 걸핏하면 야비하게 뒤통수를 내려치는 ‘우연의 몽둥이’에 죽도록 맞아도 고개 숙이지 않습니다. 고개 숙인다는 것은 곧 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의지와 투지가 비장하다 못해 슬프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나는 내 운명의 지배자요, 내 영혼의 선장인 것을.’
이런 믿음이라면 무얼 못하겠습니까.
운명도 길을 내 주고 피해갈 것 같습니다.

-장영희 <축복>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고든 리빙스턴과 장영희님의 책이랍니다.
마음에 파란이 일때
마냥 기대고 싶은 그늘이 필요할 때
저는 항상 이 책들에게 숨었던 것 같아요.
고든 리빙스턴 뿐만아니라
장영희님 뿐만아니라
윌리엄 어네스트 헨리도
모두 우리가 경험하지 못할 만큼의
고통을 겪은 이들입니다.
자식을 모두 잃었고
암으로 평생을 고통 가운데 지내야했고
장애를 안고 살았고
수많은 불행앞에서 굴하지 않았죠.
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글은 아름답다 못해
성스럽기까지 합니다
삶의 지혜가 초밀도로 농축되어 있죠.
극한의 고통을 겪은 이들에게만
열리는 생의 가치가
그들의 책에는 있는 것 같습니다.

운명의 지배자처럼
영혼의 선장처럼

굴하지 않고
삶을 살아가는 것,

우리는 그래야합니다.
그들의 삶이 그러했듯이

#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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