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올해는 한국사, 그중에서도 고려의 예술과 문화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공부해보기로 했다.

세부 분야 별로 네 분의 교수님께서 돌아가며 강의해주시는데 우선 불교미술에 대한 것으로 시작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불교미술 강의해주시는 분 이름을 보니 알아보겠다. 그 선생님.

대학교때 전공을 제외하고 교양으로 들은 과목들중 가장 기억에 남는 강의를 꼽아보라고 한다면 나는 4학년때 들은 <한국미술사>를 꼽는다. 전공이 자연계열이었다는 것은 핑계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역사에 대한 지식도 별로 없으면서 미술사라니. 학점 관리 해야하는 4학년이 들을 과목이냐 싶기도 했지만 뭔가에 이끌리듯 수강신청을 하고 말았다.

그때 그 과목 강의해주시던 외부 강사님, 지금은 대학의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님으로 계신 그분의 조근조근한 음성의  강의를 30여년 지나 다시 듣게 된 것이다.

 

참고서적으로 읽을만한 책을 찾으니 집에 옛날옛적 남편이 보던 오래된 책이 있다. 펼쳐보니 밑줄까지 그으며 공부를 한 흔적. 흠, 적어도 장식용은 아니었군. 그런데 너무 오래된 책이라 혹시 개정판이 나와있나 알아보니 동일 저자의 개정판은 없고 마침 이번에 강의해주시는 교수님께서 쓰신 책이 나와 있기에 구입하였다. 두툼하고 칼라 도록이 포함되어 있어 가격은 좀 되지만 망설임없이.

확신하건데 이 책은 끝까지 나와 함께 할, 나의 소장도서가 될 것이다.

 

 

 

 

 

 

 

 

 

 

 

 

 

 

 

 

 

 

 

 

 

 

 

 

 

 

 

 

 

 

 

 

 

 

 

 

 

 

 

 

 

 

 

 

 

 

 

 

 

 

 

 

 

 

 

 

 

 

 

 

 

우선 고려시대 전반에 대한 기초를 짧은 시간에 복습하기에 아이 어렸을 때 사준 이런 책들이 아주 유용했다.

아이가 컸어도 아이 어릴 때 보던 책들을 선별해서 버려야 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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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3-19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저도 그럴 때 있어요. 애들 책을 버리려고 보다가 제가 갖는 경우요.

hnine 2019-03-19 22:50   좋아요 1 | URL
그런데 모순인것이, 버리려고 마음 먹을때 다시 한번 들춰보게 된다니까요. 계속 두겠다 싶으면 좀처럼 다시 들춰보게 되질 않아요 앞으로도 계속 갖고 있을거라 생각해서요.
저 두권 아주 유용하게 보았답니다. 최단 시간에 고려시대 한번 쭉 훑는 용으로 최고! ^^
 

 

 

 

 

 

 

 

 

 

 

 

 

 

 

 

 

 

 

 

 

 

 

 

 

 

 

 

 

 

 

 

 

 

 

 

 

 

 

 

 

 

 

 

 

 

 

 

 

 

 

 

 

 

 

 

 

 

 

 

 

 

 

 

 

 

 

 

 

 

 

 

 

 

 

 

 

 

 

 

 

 

 

 

 

 

 

 

 

 

 

 

 

 

 

 

 

 

 

 

 

 

 

 

 

 

 

 

 

 

 

 

 

 

 

 

 

2017년 3월에 갔던 장곡사에 어제 또 다녀왔다.

지난 번 갔을때 눈여겨 보지 않았던 금동약사여래좌상 (보물 제337호) 을 이번엔 잘 보고 와야지 싶었다.

3월 3일 막을 내린 국립중앙박물관 대고려젼을 위해 700년 만에 서울나들이를 마치고 제자리에 잘 돌아와있는지.

가서 보니 하대웅전 가운데 자리로 잘 돌아와있었다.

이 절은 특이하게 대웅전이 상대웅전, 하대웅전으로 나뉘어 있다. 하대웅전보다 조금 위로 올라가면 상대웅전이 있고 그곳엔 철조아미타불좌상,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보물 제174호) , 철조약사여래좌상 (국보 제 58호) 을 모시고 있다. 약사여래는 아픈 곳을 낫게 해달라고 일념으로 기도하면 낫게 해준다는 부처이다.

규모가 크지 않은 절이지만 신라시대 지어졌다고 전해지는 천년 고찰이며 대웅전 바닥이 나무 아닌 무늬벽돌이 깔려져 있는 것도 특이하다.

 

사람이 별로 많지 않은 절의 경내. 요사채 문이 열려있어 들여다보니 오랜만에 보는 가마솥이 걸려있다. 곧지 않고 구불구불 휘어 있는 나무를 들보로 사용한 것을 보라며 남편은 아마도 우리나라집에서나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경내 한쪽에 자고 있는 흰둥이. 덩치가 꽤 커서 가까이 다가가면 깨서 크게 짖을까봐 살짝 셔터만 눌렀는데 나중에 보니 어느 할아버지께서 머리를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을 정도로 순둥이였다.

 

여전히 겨울 코트를 입고 가긴 했지만 누가 뭐래도 이제 겨울 공기는 아니었다. 봄기운을 확인시켜주듯 막 피기 시작한 매화와 산수유. 바닥에 작게 피어있는 제비꽃은 남편이 알려주지 않았으면 못보고 지나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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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0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비꽃도 작은 무당벌레도 봄은 만물을 살아나게 하니 참 좋아요.
우리집 마당에도 지난 주에만 봐도 머위가 싹도 안보이더니, 이번 주에는 보니 백원짜리 동전만하게 쏙쏙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기뻐했답니다. 까맣게 그을은 가마솥도 반짝반짝 윤이 나네요. 그 솥을 닦았을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집니다.

혜덕화 2019-03-10 14:16   좋아요 0 | URL
로그인 하고 글을 쓴 줄 알았는데... 혜덕화입니다. 수정하려니 안되네요.^^

hnine 2019-03-10 14:20   좋아요 0 | URL
가마솥을 보고 반짝반짝 윤나게 닦았을 누군가의 손길까지 느끼시는 혜덕화님.
만물이 살아나게 하는 봄을 느끼며 한편 감사하며 한편 쓸쓸하기도 했어요. 다시 살아나지 못하는 그리운 사람들 생각이 나서요.
마당에 머위처럼 쑥쑥은 못되어도 제 마음 조금씩 조금씩 자라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어요.
 
사라진 요일
이현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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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란>, <신기생뎐>, <나흘>에서 보여주던 이현수 작가 특유의 구성지고 능란한 문장과 서사가 그리웠다.

이 소설은 단행본으로는 2017년에 나왔지만 2013년 부터 2015년까지 '자음과 모음'에 연재했던 작품이다. 이후 무려 3년 동안 퇴고를 거쳤다고 하는데, 3년이나 걸려 퇴고를 해야했던 이유가 작품에 남아있는 듯 하여 아쉽다.

라론 증후군 (Laron syndrome) 이라는, 나도 여기서 처음 들어보는 유전자 이상이 소재로 등장하고, 이로써 삶과 죽음의 문제를 문학의 입장에서 다뤄보려나, 바이오테크놀로지가 인간의 잇속 싸움에 어떻게 잘못 이용되는지에 대한 진지한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나 기대하며 끝까지 읽었지만, 장편소설 치고 길지 않은 분량 (250여쪽)내에서 이런 각각의 구슬은 멋있게 꿰어지지 못했다.

1. 주인공 한정원이 한동안 왕래도 없던 고향친구를 만나 느닷없이 동동섬까지 가게 된 이유가 설득력있게 보이지 않는다.

2. 라론 증후군의 당사자인 김경훈에 대한 묘사가 처음과 뒷부분에서 일관성이 없다. 앞에서 묘사된 김경훈은 내면에 아픔과 상처를 지닌, 어딘가 비밀스러운 성격을 가진 인물이지 악인으로의 가능성은 조금의 힌트도 보이지 않는 남자였는데 한정원 일행을 만나고부터 갑자기 악인 캐릭터로 돌변, 과격한 행동을 서슴치 않는다. 갑작스런 간질 발작을 일으키는 대목도 다소 엉뚱하다. 마치 라론증후군와 간질이 연관이라도 되어 있는 것 처럼.

3. 뭔가 더 보여줄 것 같았던 하마담의 역할이 뚜렷하지 않다. 한정원 일행을 비밀리에 도와주기도 하는데 나중에 이름 대신 기호로 사람을 지칭하며 누군가 내통하는 대목은 또 무엇인가. 한정원이 어릴때 동네 아줌마 하마담이라는 인물과 이러한 변신 사이를 독자는 어떻게 연결시켜 이해해야 하는가. 한정원 아버지와의 인연때문에 동동섬에 나타난 한정원 일행을 도와주려 했던 것일까.

4. 이 소설에서 진정한 악인은 김경훈인지 아니면 안상협인지.

5. 이 소설의 형식으로서 굳이 한정원이 아닌 그의 후배가 대신하여 동동섬에서 있었던 일을 소설로 쓴다는 설정은 꼭 필요했을까.

6. 김경훈이 오랫동안 마음에 칼을 품고서 복수를 하려는 동기가 그가 벌이는 복수의 규모에 비해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정원의 오빠때문에 자기 여동생이 죽었다는 것이 내용중에 드러나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살인도 아니었고 그것을 한정원을 향하여 복수를 한다는 설정이 다소 억지스럽다.

7. 중요한 단서들의 해결이 내용중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게 아니라 소설의 뒷부분에서 설명으로 급마무리된 느낌이다.

8. 내용과 꼭 맞지 않는 소설의 제목 <사라진 요일>도 아리송하다.

 

제일 결정적인 것은 작가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는지 뚜렷하게 마무리를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읽는 사람에게 긴장감을 주는 문장력은 여전하나 그 문장력으로 꿰어낸 목걸이는 실망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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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6 - 5부 1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6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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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 대화 할 것 없이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기 위한 설명이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읽기 진도가 잘 안나가던 15권에 비해 이번 16권은 읽기가 훨씬 수월했다.

서희 나이 이제 48세. 여전히 기품있고 아름답다. 간도로 이주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함으로써 조준구에게 잃은 평사리 땅을 되찾고 조준구에 대한 복수를 해냄으로써 삶의 목표를 이루어낸 서희는 진주로 돌아와 정착하였고 큰 아들 환국은 공부를 마치고 결혼하여 손주까지 보았으며 작은 아들 윤국도 일본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다. 독립 자금을 대주는 일을 은밀하게 진행할 수 있을 만큼 일본인들과 좋은 관계도 유지하고 있는 서희이지만 늘 쓸쓸하다. 옆에서 시중드는 사람이야 있지만 길상도 없고 봉순도 없이 살아온 세월이 많다. 봉순은 오래 전에 이미 목숨을 스스로 끊었고 부부이지만 길상과 함께 지내는 시간보다 떨어져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길상 역시 외롭기는 마찬가지. 선택하지 않고 선택당한 결과일까. 자기와 맞는 자리는 따로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이기 때문일까.

 

"아버지는 참 외로운 분 같습니다."

환국이 말문을 열었다.

"관음상을 본 감상인가?"
"네."

"자네 말이 맞네. 원력 (願力: 부처에게 빌어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을 걸지 않고는 그같이 그릴 수는 없지. 삶의 본질에 대한 원력이라면 슬픔과 외로움 아니겠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

"그렇게 오랫동안 붓을 들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세월인 게야. 자네 부친의 세월 말일세. 식을 맑게 간직하고 닦아온 자네 부친의 세월. 사람들은 대부분 본래의 때묻지 않는 생명에 때를 묻혀가며 조금씩 망가뜨려가며 사는데 결국 낡아지는 것을 물리적인 것으로 인식하지. 생명은 과연 물리적인 것일까?"

지감은 자신에게 묻듯 말했다. (402쪽)

 

절에서 자랐던 길상의 원래 꿈은 금어 (金魚: 단청이나 불화를 그리는 일에 종사하는 승려) 가 되는 것이었다. 그 길에서 떠나와 살아온지 오래. 하지만 무슨 맘으로 원래의 꿈을 모아 도솔암에 관음탱화를 그리게 되었고, 그것을 와서 본 아들 환국이 도솔암 주지인 지감 스님과 나눈 대화이다.

오랜 원력의 결과, 외로움이 묻어나는 그림을 그린 길상. 그 외로움을 읽는 아들.

길상은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렸다. 그의 삶이 그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향해가는 토지 읽기. 쓰는 사람도 있는데 읽는 것이 뭐 어려우랴 하며 읽어오고 있다.

아직 네권이 남아있지만  다 읽고난 후 소감은 결국 이것이 되지 않을까 하여 미리 이번 리뷰의 제목으로 써보았다. 다 읽고나서는 물론 바뀔 수도 있겠지만,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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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숲 - 긴팔원숭이 박사의 밀림 모험기
김산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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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숲' 은 비가 많이 오는 숲, 즉 열대 우림을 말한다. 

과학서적? 소설?

동물학자 김산하가 인도네시아 열대 우림에서 긴팔원숭이를 연구한 이야기. 순수과학서적보다 재미있고, 소설 못지 않는 재미와 가독성이 있다.

이 책에 대해서는 출판되었을 당시부터 저자 인터뷰를 듣고 알고 있었는데 들으면서 책 내용도 내용이지만 일단 저자가 참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짐작했다. 책을 읽어보니 역시 그렇다.

 

 어릴 적부터 나는 당돌한 인생철학이 하나 있었다.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말자. 왜 먼 미래 때문에 소중한 현재를 낭비하나? 그냥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살피고, 주변 시선일랑 싹 무시하고 하는 일을 즐기자. 학원에서 몇 년 앞을 예습하던 징글징글한 동년배들에 대한 반감의 표시였을까? 뭐가 됐든 나는 동물이 좋고, 좋은 게 당연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적성 검사의 장래 희망을 묻는 칸에는 늘 동물학자라, 서명하듯이 적어 내곤 했었다. 그리고는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았다. (43쪽)

 

대학 진학할때 동물에 대한 공부를 하는 곳이면 아무데나 원서를 써달라고 해서 가게 된 자원동물학과.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거기서 배우는 것은 얼마나 동물을 인간에 유리한 자원으로 잘 이용할까에 집중되어 있는 것에 실망했고 그러던 참에 동물학과 최재천 교수가 연구하는 분야를 알게 되어 (동물 행동, 생태) 내가 하고 싶은건 이런거다 싶었다고 한다. 대학원 진학을 동물학과로 했고 지도교수인 최재천 교수로부터 영장류에 대한 연구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언젠가 사석에서 나의 이런 연구 주제를 설명한 일이 있었다. 뜬금없이 받은 질문은 대체 이런 연구를 왜 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긴팔원숭이가 밀림에서 뭘 먹건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그러게요?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사실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우리에게, 눈앞에 있지도 않고 이 나라에 속하지도 않은 무슨 원숭이의 밥 먹는 얘기는 더할 나위 없이 우리와 무관한다. 내 당장의 일상은 도시의 건물 속에, 내 책상과 모니터에서 벌어진다. 그런 직접적인 의미에서라면 물론 긴팔원숭이와 우리 사이에 상관관계 따위는 없다.

하지만 어린이 책을 들춰 보라. 숲 속의 호랑이가 어흥 포효한다. 예쁜 색깔의 음료수를 골라 보라. 열대의 태양 아래 영근 과일이 상큼하다. 영화관에 가서 앉아 보라. 울창한 정글에 사는 종족이 등장한다. 카페에서 커피를 살펴보라. 열대산 원두의 포장지에 앵무새가 날개를 편다. 가구점에서 원목을 두들겨 보라. 보르네오 한가운데에 섰던 나무일지 모른다. 그냥 리모컨을 눌러 보라. 악어와 아나콘다가 아마존에서 씨름판을 벌인다. 그리고 숲을 깊이 들이켜 보라. 지구의 허파에서 내뿜은 산소의 맛을 보라. (62-65쪽)

 

우리는 주위 많은 것들이 시작은 원초적인 자연에서 비롯된 것임을 잊고 산다. 자연에 대해 연구하는 것에 대해 "왜 하느냐"고 묻는다.

실제 생물학과 연구의 대부분은 저자처럼 동물, 식물등 개체를 대상으로 하기보다 생물을 이루는 세포, 그보다 더 내려가 DNA, RNA, 단백질의 수준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저자와 같은 분야를 하는 사람은 아주 아주 드물고 눈길을 받게 마련이라는 얘기다.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 저자의 다음과 같은 교감의 순간은 맛볼 기회가 없다.

동물들은 대개 정신없이 자기 일을 하거나, 도망가거나, 무관심하다. 영장류는 쳐다보는 자를 쳐다본다. 대체 넌 뭐 하는 녀석인고? 한심한 듯 묻는 눈초리로 대면하고 응시한다. 노트에는 횟수와 빈도 등의 수치가 기록되지만, 머릿속에는 심상과 기억이 남는다. (113쪽)

 

자기의 연구대상과 눈 맞춤하고 서로의 마음을 읽는 행위란 얼마나 귀한 경험일까.

 

그가 긴팔원숭이 연구를 위해 들어가서 산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열대 우림은 전기도 낡은 물레방아로 돌리는 수력발전기로 겨우 충당하고 오락거리나 장식품, 편의 설비라곤 아무 것도 없는 지역이다.

핸드폰과 인터넷의 디지털 그물망이 쳐지지 않은 녹색 사각지대, 박테리아처럼 번식하는 정보와 고삐 풀린 자기 중계로부터 자유로운 삶의 성소였다. (237쪽)

 

그래서 컴퓨터 화면이 아닌 눈 앞의 세계에 충실할 수 있었다고 한다.

 

빈 방을 물끄러미 둘러보았고, 벽에 붙여 놓은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본 책은 또 보고, 바닥에 떨어진 이파리는 주워서 돌리고 쓰다듬었다. 앞마당에 부는 산들바람에 내 다리털이 흔들리는 것을 보다가 눈을 들어 야자나무 잎의 야성적인 움직임에 감탄했다. 끊임없는 벌레의 이민 행렬을 지켜보았고, 음식을 바라보며 식사하였다. 고양이의 기지개를 따라 하고, 물고기가 첨벙거리며 남긴 동심원을 따라갔다. 햇빛이 빨래를 말리는 속도를 목격하고, 달빛으로 동심원을 따라갔다. 햇빛이 빨래를 말리는 속도를 목격하고, 달빛으로 박쥐 날개의 실루엣을 분간했다. 나는 진짜 삶을 살았다. 현실은 충분했다. 증강 현실도, 가상현실도, 강화 현실도 모두 불필요했다. 풍요와 연결 속의 빈곤 대신 제한과 단절 속의 자족을 누렸다. 그리고 나는 붓과 색연필을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의 것이었던 그림을 다시 그리시 시작했다. 그림의 세계에서는 따라가기 어려운 긴팔원숭이와 어깨동무도 가능하지 않은가. (239쪽)

 

실제 저자의 그림 실력은 만화가로서도 모자람이 없는 수준이어서 중간 중간 삽입해놓은 그의 그림은 이 책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동물을 그린다는 것 (사진찍는 것이 비해)에는 실로 여러 의미가 있다고 했는데, 그냥 보는 것으로 넘어가는 부분들을 깨알같이 짚어 보게끔 해주고, 채집이나 포획 같은 침해적 행위에 대한 멋진 대안이 될 수 있으며, 동물의 행동과 생태의 세계를 자연스럽게 들여다보게 해주는 창문 역할을 하며, 사진처럼 현장을 포착하기 위해 동물을 방해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더 자세히 '관찰'하게 해준다는 것은 그림이 가진 덕목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돌아온 후 그는 다양한 연구, 집필, 운동, 창작 활동을 하고 있으며 생명 다양성 재단의 사무국장으로 야생 동식물 연구와 보전, 환경 운동과 교욱, 생태 예술 등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생명 다양성 재단'은 침팬지 연구로 유명한 제인 구달, 최재천 교수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고 나도 작년에 회원으로 가입한 상태라서 반가왔다.

저자의 동생 김한민 역시 형 못지 않게 재미있는 사람. 이 사람의 책도 곧 읽지 않고 못배길 것 같은 예감이다.

 

(개인적으로는 '랩걸'보다 더 재미있었다.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와서 하루를 못넘기고 다 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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