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는 런던의 겨울을 좋아했다는데 - 좋은 것들을 모으러 떠난 1년
조민진 지음 / 아트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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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직장인들에게 저자와 같은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직장 생활 중 1년을 휴가로 얻을 수 있는 기회 말이다. 한달도 아닌 1년을 그녀 말대로 '삶의 쉼표' 찍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면.

JTBC 방송국 기자인 저자가 2018년 7월부터 2019년 7월까지, 서른 아홉살에서 마흔 살 절반까지 1년을 통째로 영국 런던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쓴 글 모음이다. 영국의 다른 도시와 다른 몇 나라를 방문하긴 했으나 본거지는 런던의 카나리워프의 아파트. 여기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면서 좋은 것을 모으러 떠난 1년을 보냈다. 얼마나 좋았을까.

평소 기자라는 직업으로 인해 스트레스에 찌들어 살 던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누구보다 기자라는 직업과 일을 사랑했고 열심히 일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직업에서 온전히 벗어나 누리는 시간은 금쪽 같았다. 평소에 좋아해오던 미술에 대한 흠모를 런던의 그 많은 미술관을 다니는 것으로도 성이 안차 아트 아카데미의 미술 프로그램에 등록하여 미술에 대한 수업을 듣고 그림 수업을 받았다. 런던의 집값이 비싸지만 안전을 위해 런던 2존의 비교적 괜찮은 아파트를 선택하여 마음껏 음식을 해먹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살아야하는 불편을 피해갈 수 있었다. 소위 포시 잉글리시라는 억양을 배워보기 위한 시도로 발음 교정 강의 (Accent Softening) 를 들으러 다니기도 했다. 피트니스 센터에 등록하여 개인 지도를 받는 기회도 만들어 탄탄한 건강 유지를 위해 아낌없는 투자도 하였다. 소더비 경매가 있던 날은 기자라고 밝히고 300~400억 예상 낙찰가인 그림의 경매가 이루어지는 현장의 프레스석에 앉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도 누렸다. 읽으면서 부럽지 않았다면 거짓말.

내가 지금까지 읽은 런던 여행기만 해도 적지 않은데 굳이 이 책을 또 구입하여 읽게 된데는, 당분간 여행을 꿈꾸기 어렵다는 현재 상황이 부추킨 것도 있고, 저자가 런던에 있던 그 1년 속에 나 역시 혼자 런던을 다녀온 시기 (2018년) 와 겹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비록 열흘에 불과했지만 시기적으로 그녀의 글에 더 공감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 점도 분명 있었다. 그런데 앞에서도 썼다시피 읽다보니 부러움이 조금씩 차올랐다. 2018년이 아니라 그보다 수십년 전 내가 혼자 영국에 더 오래 머물렀을 때의 생활과 너무나 대조적인 생활을 하다가 온 저자가 부러웠던 것이다. 비교할 것을 비교해야지, 곧 정신을 차렸다. 각자의 경험은 모두 그 나름대로 소중한 것이니까.

1년이라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그녀는 아주 꼼꼼히 계획을 세우고 성실하게 시간을 채워나가기 위한 노력을 했다. 혼자 하는 일의 서투름에 대해 털어놓는 솔직함도 보였다. 길 못 찾는 길치에, 기자이면서도 소셜 미디어에 대한 기피증, 영국식 영어의 낯섬, 그림을 좋아하고 좋아한 세월이 오래이지만 전문적인 단계는 전혀 아니라는 고백도 털어놓는다.

 

좋아하는 것과 직업은 일치해야하는가?

역설적이게도 내 전공이나 일이 그림과는 전혀 무관했기 때문에 마냥 그림을 좋아한 것이다. 그림 에세이를 읽고 화집을 보고 전시회를 가는 것은 모두 내가 힘든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을 쉬게 하는 방법이었다. 잘 몰라도 되고, 잘하지 못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영역이었다. 자기만족을 위한 순수한 관심사가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었고 꼭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98쪽)

 

루틴의 중요성

살면서 좋은 루틴을 많이 만드는 건 좋은 취향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좋은 루틴과 좋은 취향을 차곡차곡 쌓아나갈 때 인생도 차츰차츰 더 좋아진다고 믿는다. 런던에서 새로 얻었던 일상의 루틴들은 참 좋았고 소중했다. 갈망하고 동경하는 데 그쳤던 좋은 것들을 모아 내 취향도 한층 견고해졌다. 덕분에 앞으로 더 풍성한 인생을 살 수 있는 힘이 생겼다. (190쪽)

 

그녀의 의견이지만 나도 공감한다. 나 역시 미술과 전공은 전혀 무관하지만, 그리고 미술에 대해서는 부족한 상식이지만 마음을 쉬게 하는 힘이 그림 속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림이 그냥 그림이 아니라 그 속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있음을 알게 되고 나서 더 좋아졌다. 잠 안오는 밤 조그만 화집을 이불속까지 가지고 들어가 펼쳐보다 잠드는 것이 일상이었던 때가 있었다.

루틴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겠으나 루틴이라 하면 누군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습관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런던으로 떠날 때부터 책을 쓰기로 계획을 했었던 것 같다. 그녀가 그림을 좋아했고 제목도 암시하고 있기에 그림에 대한 얘기가 대부분 차지할거라 기대했거나, 그녀가 기자라는 점을 생각해서 혹시 정치, 경제, 시사, 사회 문제에 대해 좀 더 파고들어 썼을거라 짐작했다면 오해. 오히려 런던에 머무는 동안의 소소한 일기에 가깝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무리없이 줄줄 읽힌다는 장점이 있으나, 좀더 특별한 내용을 기대했다면 아쉬울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여행을 할때마다 여기에 다시 오게 될까 생각해보게 된다고 했다. 그녀가 가본 여행지를 내가 다 가보진 않았지만 최소한 런던은 다시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때는 또 다른 느낌일 것이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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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6-28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년쯤 일을 쉬고 어딘가 좋아하는 곳에서 지내보는 것. 모든 사람의 로망이겠지요. 그래서 제 꿈은 연금받는 퇴직자입니다. ㅎㅎ

hnine 2020-06-29 05:03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연금받는 퇴직자 ^^
그런데 주위에서 보면 막상 연금받는 퇴직자가 되니까 그동안 하고 싶던 일을 하며 보내기 보다 늘어난 시간을 주체하기 부담스러워하며 심심하게 보내는 경우도 의외로 많더라고요.
이 책의 저자는 한창 나이때 일년 휴가를 낼 수 있었으니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이, 남편, 직장, 모두 두고 혼자 떠나는 마음!
 
베를린 일기
최민석 지음 / 민음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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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께

 

이렇게 작가님께 쓰는 편지 형식으로 리뷰를 대신해본 적이 이전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최민석 작가님.

관심 작가였으면서 작가님의 소설을 아직 한편도 제대로 읽지 않았답니다. 관심 작가이기 때문에 그래요. 혹시 실망하게 되면 어쩔까 하는 주저함이랄까요. 에세이는 그런 부담이 좀 덜하기도 하고, 엊그제 우연히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작가님 나오신 걸 듣게 된 것이 계기도 되고, 그래서 <베를린 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꼭 읽게 될 작가님의 소설과 아무 관련 없는 이 여행 에세이 <베를린 일기>는 2014년 가을과 겨울 동안 베를린에 90일 머물면서 쓰게 된 일기 모음이지요. 한 예술기관의 지원으로, 그것도 처음엔 다른 나라를 희망했었으나 다른 선배작가분과 겹치는 상황이 될 것 같아 의도지 않게 선택한 곳이 베를린이었고요. 베를린 자유대학에 적은 두었으나 와이파이를 맘껏 쓸수 있었다는 것 외에 딱히 학교와 관련된 어떤 일을 해야할 책임과 의무는 없으셨다니 그야말로 자유로운 시간이 많았겠으나 그 시간들이 마냥 좋지는 않으셨던듯. 외롭고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쓰기 시작한 일기였으니까요. 외롭고 심심함에 고마와해야하나요. 이렇게 한권의 책을 탄생시켰으니까요. 책을 의도하고 쓴 일기가 아니라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기도 하고 아쉬운 점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하루를 넘기지 않은 그날 그날의 생생하고 솔직한 기록이라는 점이 장점이라면, 그렇게 가볍고 부담없는 기록의 차원을 크게 넘지는 못했다는 것은 아쉬운 점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절대 재미없는 글은 쓰지 않으실 분 입니다. 읽으면서 간혹 미국의 여행 작가 Bill Bryson을 떠올렸던 것도 아마 그런 유머 코드때문인 것 같아요.

 

동의합니다. 살던 곳을 떠나와서 다른 외모, 다른 언어를 쓰는 곳에 떨어지면 기본적으로 외롭습니다. 자연히 심심해지고요. 나 혼자 좀 하게 내버려 뒀으면, 나 혼자 맘대로 할 수 있었으면, 했던 일들 그 이상으로 혼자 해결해야하고 혼자 놀아야 하는 일들이 태반이지요. 그 당시는 그 시간들이 지루하고 힘들지만 그게 또 뭔가를 하게 만들더라고요. 그래서 꼭 손해보는 시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작가님도 인정하시지요? 물론 다시 하라면 반복은 안하고 싶을지 모르지만요.

 

이 책을 읽으며 베를린에 대해 알게 된것은 별로 없어요. 베를린이 궁금하다면 이 책보다 다른 책을 읽어야지요. 차라리 최민석이라는 작가에 대해서는 조금 알게 되었다 쓰고 싶지만 생각해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네요. 조금, 아주 조금이라고 강조하면 모를까. 글 쓰기를 힘들어하기보다는 즐기는 사람이구나, 자신의 발견과 사유, 통찰의 결과를 진지한 문장 보다는 유머 코드 속에 표현하고 싶어하는구나, 이 정도랄까요.

밑줄 친 부분도 있습니다. 76쪽 열네 번째 날 일기 마지막 부분이요.

때로 일상은 살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 살아 내야 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때로 그 일상이 다시 살고 싶은 대상이 되기도 하기에, 살아내야 하는 오늘을 무시하지 않으려 한다. 소중한 날로 이어지는 다리는 필시 평범한 날이라는 돌로 이뤄져 있을 것이다. 보잘것없는 돌 하나를 쌓은 밤이다.

 

필요한 날이었다.

밑줄 친 부분이 더 많았으면 좋겠지만 위의 대목도 충분히 좋고 공감합니다.

 

자유로움의 댓가는 외로움이라는 것에 작가님 동의하시나요? 외로움이 생각보다 더 견디기 어렵고 힘들다는 것도요.

작가님이 출연하시는 날은 아니었지만 그 라디오 프로그램을 어제도 들었는데요. 진행자께서 "당신은 자유인입니까 노예입니까?" 라는 질문을 던지시고 그에 대한 청취자의 의견을 남겨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어제 제가 남긴 댓글은 이렇습니다.

"노예 근성이 있는, 엄연한 자유인입니다. 자유, 어려워요." 라고요.

 

이젠 본격적으로 작가님의 소설을 읽어보려고요. 무엇부터 읽어야할지 생각좀 해보고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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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6-25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hnine님의 자유로움의 댓가는 외로움이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정말 그래요.

hnine 2020-06-25 10:27   좋아요 0 | URL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큰 동기 중 하나가 외로움에서 벗어나보려는 시도에서 비롯하는 것 같아요.
어떤 방식의 시도를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지는 것 같고요.
자유, 어려워요 ㅠㅠ

페크pek0501 2020-06-25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 님이 책에서 뽑으신 글, 참 좋네요. 저런 표현을 할 수 있다니... 감탄하게 되네요.
저자의 유머를 저도 인정합니다. 잘 살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무래도 SNS에 올린 글과 종이책으로 읽는 글은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없는 것 같아요. 같은 글에 대해서도요.

작가의 역량을 다 보여 주지 못한 듯해서 아쉬운 책이었다는 게 제 소감입니당~~
나인 님의 느낌도 저와 비슷하신 듯합니다 .

hnine 2020-06-26 04:33   좋아요 1 | URL
남과 다르게 보는 통찰력도 있고 유머 코드를 담아 표현하는 능력도 있고 무엇보다도 힘들여 글을 쓰기 보다는, 즐기며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 부럽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 책은 그렇다쳐도 작가에 대한 저의 관심은 아직 유효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 낮에 걷기엔 덥다.

그래서 아침 나절에 아파트 뒷산을 간단하게 산책삼아 걷고 있다.

적당한 지점까지 슬슬 걸어갔다가 돌아오기.

 

오늘 아침.

요기까지 걷고 돌아와야지 정한 지점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 8시 43분이다.

오늘이 시작되고나서 작은 일이나마 뭔가를 성취한 첫 일이라 생각하니 기쁘다.

 

걷다 보면 산길 바닥에 꼬물꼬물 작은 송충이들이 잔뜩이다.

혹시 내 머리 위에도 떨어졌나 해서 걷는 도중 자꾸 손으로 머리를 만져보게 된다.

 

걷다보면 마주치는 사람들.

라디오를 들으며 걷는 사람, 팔을 힘차게 휘저으며 걷는 사람, 옆 사람과 얘기를 하며 걷는 사람, 휴대폰으로 전화하며 걷는 사람, 걷지 않고 뛰는 사람, 맨발로 걷는 사람.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같은 행위이지만 여러 가지 모습이다.

오늘 아침엔 손에 묵주를 꼭 쥐고 걷는 분도 보았다.

 

밤나무엔 밤꽃이 만발했고

요즘 눈에 많이 띄는 까치수염.

금계국은 오래 가는 꽃이니 아직 한참 더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래 노각나무와 살구나무는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찍은 것인데, 차나무과에 속하는 노각나무는 꽃이 아직 생생할때 나무에서 떨어져서, 떨어진 후에 봐도 여전히 예쁘다.

살구나무엔 살구가 잔뜩.

 

 

 

- 까치수염 -

 

 

 

 

 

- 금계국 -

 

 

 

- 노각나무 -

 

 

 

 

 

 

 

 

 

 

 

 

 

 

 

 

 

 

 

- 살구 나무 -

 

 

 

 

 

 

 

 

 

 

여행은 당분간 꿈꿀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일까.

최근 구입한 두 권의 책이 모두 저자가 집을 떠나 지낸 기록들이다.

 

 

 

 

최민석의 <베를린 일기>는 작가가 베를린에 머무는 세달 동안 매일 쓴 일기였으며,

조민진의 <모네는 런던의 겨울을 좋아했다는데>는 세달보다는 길어서 1년 동안 런던에 머물며 쓴 기록인데, 여러 나라도 아니고, 여러 도시도 아니고, 런던 한 곳이다.

오래, 여러 곳을 여행해야 책 한권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새삼스런 생각을 하게 된다.

중요한건 역시 기록을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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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6-22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산책하면서 보이는 식물들의 이름을 알아보는건 또 다른 세상일것 같아요. 이름을 불러줄때 내게로 와서 꽃이 되는게 사람만은 아니잖아요. ㅎㅎ
저는 코로나덕분에 날마다 몸무게기록을 갱신하는 바람에 요즘은 매일 저녁에 해지고 나면 집앞 공원을 한시간씩 산책히고 옵니다. 지나다 보이는건 예쁜 꽃 멋쟁이 나무 향기로운 풀들입니다. ㅎㅎ

hnine 2020-06-22 14:32   좋아요 0 | URL
이름을 알면 더 불러주게 되니까 늘 궁금해해요. 이름을 알고나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궁금해지고요. 원래 오후에 걸었는데 이제는 너무 더워서요. 오늘은 가만히 앉아있는데도 후끈거리네요.
걷기라도 하지 않으면 하루가 너무 단조롭고 활기없고 가라앉는 것 같아서, 움직이는걸 좋아하는 편이 결코 아닌 저이지만, 이렇게 아침부터 발동을 걸어놓는거랍니다. 의외로 성취감도 있고요.
매일 저녁 공원 산책 한시간, 그것도 참 좋을 것 같아요.

페크pek0501 2020-06-23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를린 일기, 를 오디오북으로 한 시간쯤 들었는데 제가 기대했던 글이 아니었어요.
어디를 가고 어떤 기차를 타고 어떤 맥주를 마시고, 하는 게 궁금한 게 아니라서요.
저자가 생각한 것들을 듣고 싶었거든요. 더 들어 봐야 알겠지만...ㅋ

hnine 2020-06-24 04:41   좋아요 1 | URL
안그래도 지금 베를린 일기 리뷰를 올릴 참 이어요.
작가가 애초에 출판을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니고 SNS에 재미로 일기처럼 올렸던 것을 출판사측에서 책으로 내자는 제의를 하여 나온 책이라고 해서 저도 실망감을 쪼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답니다.
최민석 작가에 대해 관심은 있었는데 정작 그의 소설은 아직 읽어보질 않았더라고요.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소설보다 최근 에세이로 더 알려지고 있는 듯한 느낌도 있네요.
 
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
이춘기 지음, 이복규 엮음 / 학지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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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에 나셔서 1991년까지 사신 이춘기 님의 30년 일기 모음집이다. 1961년 아내분이 병으로 돌아가실 무렵부터 쓰기 시작하여 본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기 1년 전까지의 30년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써온 일기이다. 나중에 후손 중 한 분이 이 일기를 알게 되었고 그냥 두긴 아깝다 생각하였는지 아는 사람을 통해 출판사와 연락을 하여 이렇게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일기를 쓰신 이춘기 님은 소위 대단한 업적을 남기고 돌아가신 분도 아니고 평범하게 농사를 지으며 살다 가신 분이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이전과 다르게 사는 생활이 몇달째 계속 되는 요즘이다보니 평범하게 산다는 것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이 책도 사실 사놓은지는 꽤 되었지만 막상 손이 안가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눈길이 간 것인지 모르겠다.

30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기를 써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다. 누구에게 검사 받거나 제출해야하는 압박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 쓰는 일상의 기록 쯤이야 뭐 어려울까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꾸준하게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은 또다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좋은 날보다 불만스럽고 고단한 날이 많았음에도 이 어른은 그날 그날 있었던 일과 심정을 구체적으로 찬찬히 적어놓는 일을 해오셨다. 

일기 초반부엔 아픈 아내 얘기가 주 내용이었다가 1년 여 투병 끝에 아내가 세상을 뜬 후에는 혼자서 농사일과 자식들 돌보는 일을 해내느라 동분서주, 우왕좌왕 하는 얘기가 주 내용이 된다. 아들만 여섯을 두었는데 위의 넷은 장성했지만 늦둥이로 둔 아래 두 아들은 아직 초등학생이었으니, 혼자된 남자가 본인뿐 아니라 두 아들을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는 일들이 쉽지 않을 것은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요즘도 아니고 1960년대 이니.

아마도 돌아가신 아내 분께서 생전에 살림과 육아, 농사 일등 대부분의 일을 책임있게 잘 해오셨는듯, 혼자 되신 어르신은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아이들도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결국 주위의 권유도 있고 본인도 필요성을 느껴 재혼을 하지만 두번의 재혼 모두 좋은 결말은 아니었다.

55세의 나이에 일기를 쓰기 시작하신 계기도 아내분의 발병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후로는 일기를 안쓸 수 없도록 쉬운 날이 없는 날들이었다. 나이가 들어가면 고민도 없고 중요한 일들도 없고 그저 평범하게 살아질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도 겪어보니 그렇지 않더라. 

아내분 투병하는 동안 남편으로서 옆에서 보살피며 느끼는 심정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자세한지, 읽으면서 그 애절함이 전해져 왔고, 여섯이나 되는 아들들에 대한 애석한 심정, 일일이 다 보살피고 잘 먹이고 공부시키고 도와주지 못하는 미안함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일기란 무엇일까. 개인의 기록으로 시작하지만 끝은 그냥 개인의 기록에서 끝나지 않는 예를 많이 본다. 나중일은 모른다 할지라도 매일 자기 생활을 돌아보고 흐트러지지 않게 추스리고 나 자신을 지탱해주는 작은 노력. 최소한일지 모르지만 최대한의 노력이 일기 쓰기가 아닐까.

곁들여, 이 책을 읽으며 부부란 무엇일까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내, 남편으로 사는 세월이 더해지다보면 점차 상대방을 남이 아니라 나와 동일시 하게 되어가는 것 같다. 아내가 아프면 나도 아프고 아내가 불행하면 나도 불행하고 상대에게 결핍된 곳은 내가 채워줘야 할 것 같은 것. 아내나 남편의 모습에서 바로 내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그런 배우자를 먼저 떠나보내고 났을때의 상실감은 아마 남은 일생동안 영영 메꿔지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잠시 잊을 수는 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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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6-21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nine님 오랫만에 인사드려요. 잘 지내셨죠? 여전히 따뜻한 글 좋네요.

hnine 2020-06-21 09:50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너무 너무 반갑습니다.
해아와 수아 (이름 맞나요?)는 어찌 지내는지요.
시간이 참 많이 흘렀습니다. 아직도 저는 여기를 못떠나고 이렇게 끄적거리며 지내고 있답니다.
제가 나이 먹는 만큼 서재도 나이 들어가고 있어요 ^^

바람돌이 2020-06-21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아와 예린이요. 다 컸어요. 예린인 올해 대학교 1학년이 되었으나 코로나때문에 집콕으로 온라인강의와 리포터만 줄줄이 쓰고 있고요. 해아는 고2예요. 아이들 둘다 중고등학교 다닐때는 이 둘 따라 다닌다고 힘들더니 한명이라도 졸업하고 나니 훨씬 낫네요. ㅎㅎ hnine님같은 분이 계셔서 저같이 돌아와도 덜 수줍은듯... 감사한 마음이예요. ^^

hnine 2020-06-21 22:27   좋아요 0 | URL
아, 예린이였군요. 두 아이 얘기를 재미있게 읽곤 했었어요. 그러고보니 예린이가 제 아이와 같은 학년이네요.
바람돌이님 다시 뵐 수 있어서 정말 반가와요. 수줍으시다니요. 바람돌이님 서재도 거의 알라딘 서재와 역사를 같이 하시잖아요.

moonnight 2020-06-21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아프네요ㅜㅜ 아들만 여섯. 아직 어린 아들 둘 남겨두고 가실 때 아내분은 또 어떤 심정이셨을지ㅠㅠ;;; 30년 일기.. 어르신께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채워나가시면서 먼저 가신 아내분을 참 많이 그리워하셨을 것 같아요.

hnine 2020-06-21 22:31   좋아요 0 | URL
짐작하신대로 아내분께서 안타까워하고 더 살고 싶어하는 절절한 마음이 책에 잘 나타나있어요. 어린 아들 둘에게 공부는 좀 못하더라도 마음이 따뜻한 좋은 사람이 되라고 마지막 말씀을 남기셨다고.
끼니 걱정, 농사 걱정, 살림 걱정 끊일 날이 없고 그럴 때 마다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 마음이 글자마다 새겨져 있는 것도 말씀하신대로고요. 제가 부부라는 관계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된 것도 그래서랍니다.
 
한국추리문학 걸작선
한국추리작가협회 지음 / 태동출판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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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잘만 쓰여졌다면 추리소설만큼 책에서 손을 놓지 못하게 하는 쟝르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추리문학이라니까 금방 떠오르는 작품이 없기에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그나마 최근에 나온 책은 아니고 2002년에 출간된 책이니 거의 20년전이다. 

900여쪽의 두툼한 책 속에 한국 추리 작가 스물 여덟 명의 스물 여덟 작품이 들어있다. 스물 여덟 명 작가 이름을 훑어봐도 아는 이름은 김내성, 이상우, 김성종, 이렇게 겨우 세명. 다른 작가들의 이력을 보니 신춘문예 출신 작가도 있고, 시나리오 공모전으로 등단한 작가, 한국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한 이력을 가진 작가, 방송드라마를 쓰고 있는 작가등 다양하다. 

간단하게나마 작가 이름, 제목, 읽은 소감 정도라도 적어놓지 않으면 기억하기 어려울 것 같다. 스포일러를 최대한 피해서 몇줄씩 남겨본다.


김내성, 타원형 거울

-치정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범인으로 지목받는 사람이 화자가 되어 사건을 풀어나간다. 마지막 반전으로 인해 끝까지 독자는 누가 진짜 범인인지 혼란스럽다.

현재훈, 그밤에 있은 일

-역시 치정에 의한 살인. 수사보다는 유도심문으로 자백을 받아내도록 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는 것이 좀 안타깝다.

이경재, 바꿔바꿔

-거짓말을 하는데 든 시간과 노력에 비해 푸는데는 단순한 추리력과 증거만 있으면 된다. 깔끔한 마무리였다.

노원, 짧은 불륜, 긴 악몽

-아무리 사랑에 눈이 멀었다고 해도 이렇게 헛점 많은 범인이 있을까. 전체적인 줄거리는 자연스럽게 짰지만 캐릭터를 좀더 살렸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제목이 너무 직접적인 것도 유감이다.

이상우, 두 사람이 가는 지옥

-분량만큼 간단한 이야기이다. 사건 발생 동기, 범인 추적 과정,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 등,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제목의 '두사람이 가는 지옥'이란 불륜지옥. 역시 치정살인 이야기라는 뜻이다.

이원두, 아내 지키기

-무난한 스토리 라인이지만 추리문학이라고 하기엔 추리할 기회가 별로 없이 이야기가 끝난다. 바람난 여자와 남자, 그를 의심하는 상대방. 여기까지 읽어오는 동안 모든 작품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 구성이다.

김성종, 어느 창녀의 죽음

-'여명의 눈동자' 작가이다. 그런 선입관을 가지고 읽어서인지, 추리 소설이라기 보다 한편의 드라마를 연상시켰다. 사회소설의 성격도 있긴 하지만 두드러진 정도는 아니다.

김남, 바닷가의 두 남자

-은행 권총 강도가 썩은 방탄 조끼로 인해 범행 실패라니, 너무 뻔한 스토리 아닌가.  이 작품에도 역시 추리는 없다. 수사도 없다. 그냥 에피소드일뿐.

정현웅, 어느 여공의 죽음*

-지금까지 읽은 작품들중 사회성을 보여주는 확실한 경우이다. 여대생의 위장 취업, 중소기업 경영 비리, 갑질 문제, 언론사의 공정 수사 결과 은폐 등, 일개 기자의 소신은 감히 여기에 대적할 수 없었다.

강형원, 여름 추리 학교의 살인*

-실제 존재하는 추리 작가들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특이한 구성이다. 추리학교에 참석한 추리작가들중 한명이 거기 모인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다. 참신해보이는 구성에 비해 살해동기나 수사과정이 빈약하고 전형적인 것이 아쉽다.

권경희, 늪은 허우적거리는 자를 더 깊이 끌어들인다

-이게 왜 추리문학으로 분류되는지 모르겠다. 살인 사건이 나오면 다 추리 소설인지. 자살인줄 알았던 아내의 죽음에 목격자가 있었고 자살이 아닌 타살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절대자에 대한 저항을 목적으로 위증을 결심하는 대목이 현실성이 없어보인다.

김상헌, 작전완료*

-제목만 봐서는, 그리고 마지막 줄에 이르기 전에는 도무지 어떤 결말인지 예측이 안되는, 의외로 참신한 작품이다. 비행기 폭파범에 의한 테러 사건 처럼 전개되다가 반전 결말까지, 단편의 특징을 충분히 이용하며 진부하지 않았다.

유우제, 빛의 살인

-극장에서 영화 관람중이던 한 남자의 죽음의 원인은 심장마비로 밝혀졌지만 나중에 그날 옆자리에 앉았던 남자는 그날을 되돌아보다가 그때 심장마비를 유발시킨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이수광, M의 사냥

-이쯤에서 이책 읽기를 그만 두어야 할까 망설이게 한 졸작이다. 여자들만 골라 연쇄살인을 벌이는 사이코패스의 독백, 그 이상의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이다.

장세연, 위험한 주말

-심드렁한 부부관계에 찾아온 아내의 옛 애인에 대한 질투심으로, 아내와 동승한 차에서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남편. 나중에 아내는 임신 중이었던 것으로 밝혀진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그냥 꽁트.

한대희, 수출살인

-역시 치정에 의한 살인 사건이다. 특이한 제목이지만 내용과 큰 관련 없어보인다. 스토리보다 그저 하나의 평범한 사건 기록 수준. 초반부 완전범죄에 대한 설명도 불필요해보인다.

백휴, 휠체어 여인

-묘하게 빨려 들어가는 스토리이다. 다만 과거 여인과 헤어진 동기가 여인의 등의 흉터 보기가 싫증나서라는 설정이 현실성 떨어지고 억지스러워 보인다. 그래서 여자가 투신하는 것으로 복수를 계획한다는 것도 현실성없고 억지스러운 건 마찬가지이다.

이승영, 숲속의 마녀

-화성에서 발생하고 있는 연쇄살인의 공통점은 성교후 독극물에 의한 살인이라는 점이다. 성적인 내용과 엽기적 방법의 살인을 접목시켜 흥미를 만들어내고 싶었나. 저속함과 불쾌함만 남긴다.

최종철, 빨간 스카프

-범행에 사용한 물건을 담당형사에게 보내는 선물 포장용으로 사용하는 어리숙한 범인도 있나? 플롯의 어리숙함이다.

김차애, 열대어를 사랑한 남자

-구성이나 이야기 흐름에 무리가 없다. 문장이 자연스럽고 편하게 읽힌다. 살인의 동기와 결과가 엽기적이긴 하지만 갑작스럽지 않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

류성희, 사쿠라 이야기*

-추리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미스터리라고 하면 맞다. 이야기의 소재도 신선하고 역사의식도 담고 있어 여기 실린 수십편의 글중 좋은 작품으로 꼽고 싶다.

서미애, 남편을 죽이는 서른 가지 방법

-그럴듯하다. 제목부터 독자를 끌어당긴다. 서른 가지 방법을 무색하게 만든 타인의 한가지 방법이 나온다.

이기원, 라스트 카니발

-연쇄성 폭행사건을 다루고 있다. 고단수 범인의 정체가 결말에 드러난다. 살인동기가 모호하다는 단점과 의외의 긴장감을 주는 구성이라는 장점을 보여준다.

정석화, 종족보존의 법칙

-환상에 기반한 이야기. 앞에 전개된 상황들이 다소 황당한 결말로 급마무리 된 느낌이다.

현정, 거울여자의 죽음

-상대에게서 자신의 퍼스나를 발견할때 그 상대방을 사랑하게 되지만 꼭 정상적인 사랑으로 진행되진 않는다.

황세연, 천생연분

-천생연분과 천생악연은 종이 한장 차이일수 있음을 보여준다. 애초에 이 세상에 천생연분이란 없다고 해야할까. 부부 사이 말이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몇 작품 (* 로 표시) 을 제외하고는 실망스럽기만한 책이었다. 스물 여덟 명의 작가에게 자신의 작품이 들어간 저서 한권을 더해주었다는 것 외에, 독자들에겐 어떤 의미를 주었을지 모르겠다. 

이십년이 지난 지금은 이 책이 나온 2002년보다 한국추리문학에 뚜렷한 변화와 발전이 이루어져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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