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권 시절이던 1990년 10월.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 소속의 윤석양 이병은 야당 정치인이 포함된 민간인 1300여 명의 사찰카드를 공개하며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했다. 윤 이병의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로 정권은 '민간인 사찰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다음해 1월 보안사의 명칭도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로 바꾸었다.   


기무사는 명칭을 바꾼 1991년 1월 이후부터 지금까지 민간인 사찰은 하지 않고 있다고 공언해왔다. 하지만 12일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공개한 기무사 요원의 수첩과 동영상, 사진은 기무사의 공언이 '말'뿐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작년에 이어 기무사의 공안본색이 드러났다"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부활'을 폭로한 이정희 의원은 13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그동안 감춰져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번에 민간인 사찰이 부활했다는 것만은 분명히 드러났다"며 "작년에 불온서적을 지정하고, 이를 헌법소원한 법무관을 수사했던 기무사의 '공안본색'이 다시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민간인 사찰이 과연 민주노동당에만 한정된 일일지 의문"이라며 "기무사령관이 대통령을 독대하면서,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그것을 보고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의원은 "대통령 독대를 시작하면서 (기무사가) 그런 속성을 가지도록 (청와대가)  사찰을 조장하고 보장해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국민의 의식은 후퇴하지 않았지만 집권층은 권력기관에 의존해 정권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분명히 20년 전으로 후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 의원은 사찰메모수첩에 나오는 'CCTV설치건'과 관련, "아마 고정적으로 몇 사람을 추적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어떤 집이나 회사 등의 장소에 드나드는 사람들까지 보기 위해 CCTV 설치를 요구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추정했다.  

또한 이 의원은 기무사가 공무집행방해죄로 고발하겠다는 것과 관련, "기무사의 민간인 미행과 촬영 등은 적법한 공무가 아니기 때문에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할 수 없다"면서 "형사고발을 하더라도 무혐의 처리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조중동이 민간인 사찰을 보도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용산참사 등에) 무대응한 것처럼 조중동도 빨리 일을 지워버리고 싶어 하는 것 같다"며 "기무사나 국방부도 기묘할 정도로 연락을 안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의원은 사찰자료 입수경위와 관련, "입수자를 보호할 의무가 내게 있고, 사찰자료가 국가기관의 불법행위를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입수경위를 묻지 않았다"고 설명한 뒤,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이 드러났기 때문에 먼저 사과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정희 의원과 나눈 인터뷰 전문이다

"써먹지 않을 정보를 왜 사찰까지 하며 수집하겠나?"

- 기무사가 민간인을 '조직적이고 장기적으로 많은 비용을 들여' 사찰하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증거가 뭔가? 


"먼저 '조직적'이라는 근거는 동영상에 있다. 거기에는 찍고 있는 사람(기무사 요원)의 얘기가 녹음됐는데 "부장님"으로 직함을 부르고, "버스 타고 쫓아가라" 등 여러 명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런 걸 보면 서너 명이 한 팀이 되어서 차를 타고 움직였던 것 같다. 또 (사찰메모수첩에) '수사활동 세미나'를 하고 어떤 식으로 (사찰을) 할지 계획을 하는 것도 '조직적'이라는 증거다. 

'장기적'이라는 것은 1월에 쫓아다닌 사람들과 7월에 쫓아다닌 사람들, 8월 평택에 와서 찍은 사람들이 연관돼 있었다. 8월에 찍은 사람들은 7월에 서울에서 찍었다. 이렇게 연결이 되기 때문에 장기적 사찰이라고 봤다. 또 '고급아파트 출입 시 소형차가 곤란하다, 중장기 예산에 반영해야 한다'는 대형차를 사달라는 요구가 있고, 장비를 탑재한 승합차도 필요한데 이것의 구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메모도 나온다. 결국 많은 비용(예산)을 들여 사찰활동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 노태우 정부는 1991년 '민간인 사찰을 하지 않겠다'며 보안사를 기무사로 바꿨다. 결국 18년 만에 민간인 사찰이 부활했다고 보는 건가?

"그렇다. 그동안 감춰져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번에 드러난 것만은 분명하다. 8월 초 찍은 사진을 보면 기무사의 해명이 말이 안 될 정도로 (민간인 사찰 증거가) 뚜렷하다. 특히 민주노동당이라는 공당의 활동을 사찰했다. 다른 영상에서도 군이나 군인, 군무원과 관련된 활동은 찾아볼 수 없다. 조직적으로 민간인 사찰을 부활시켰다고 본다." 

-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은 이명박 정부의 '공안파 득세'와도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기무사가 작년에 불온서적을 지정하고, 이것을 헌법소원한 법무관을 수사하면서 '공안본색'을 드러낸 바 있다. 이런 '공안본색'이 이번 민간인 사찰로 다시 확인됐다." 

- 기무사령관의 대통령 독대 부활도 민간인 사찰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나?

"현재 확인된 사람이 민주노동당 당직자다. 하지만  과연 민주노동당에만 한정됐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을 독대할 정도로 정보보고를 해야 한다면, 더 많고 중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것을 보고했던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 

- 그렇다면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활동을 청와대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

"써먹을 때가 없는데 정보수집활동을 할까? 쓰임이 있기 때문에 정보수집을 한다고 생각한다. 기무사령관 독대 부활, 검경의 공안 분위기 등 (청와대가 알고 있다는 정황과) 맞아떨어지는 것이 있다. 게다가 민간인 사찰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놓고 그걸 뛰어넘어 정보를 수집하러 나섰다. 국정원도 업무범위를 한정당했지만 그걸 뛰어넘는 활동을 해오지 않았나?  정보를 보고받지 않는 한 정보기관의 속성상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싶어 한다. 누군가 정보를 보고받는 한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자 하는 속성을 버릴 수 없다. (청와대가) 기무사에 대한 대통령 독대를 시작하면서 그런 속성을 전면에 내세우도록 조장해주고 보장해줬다고 볼 수 있다." 

"고정적으로 몇 사람을 추적한 것 같다"

- '다음 주부터 경찰과 동행'이라고 메모된 대목을 놓고 '경찰의 협조' 아래 사찰이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경찰이 다음 주부터 동행한다'는 것은 이미 (기무사와 경찰이) 협의했다는 얘기다. 무엇이든간에 경찰이 직접 수사를 하도록 해서 수사자료를 남기겠다는 것이고, 심지어 체포까지 하겠다는 것이다. '경찰 동행'은 사건을 빨리 만들어내기 위해 것 아닌가 싶다. '오늘부터 일활 작성'이라는 메모는 일일활동 일지를 작성해 보고하겠다는 것인데, 그런 것을 보면 (기무사와 경찰이) 공조해서 민간인 사찰을 묵인하거나 공모해서 진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CCTV 설치 메모는 어떻게 해석하나? 

"아마 고정적으로 몇 사람을 추적한 것 같다. 어떤 집이나 회사 등의 장소에 드나드는 사람들까지 보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CCTV 설치 요구가 나온 것으로 판단한다." 

- 수첩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16명인데 사찰대상자는 모두 몇 명인가?

"고정적으로 사찰을 당한 사람은 서너 명이다. 계속 쫓아다니면서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했다.  감청을 하려면 영장을 받아야 하고, 끝나면 본인에게 통보해야 한다. 그렇게 법원으로부터 최소한의 통제를 받는다. 미행에는 어떤 통제도 없다. 촬영에도 어떤 통제가 없다.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쫓아다닌다. 내 일상을 감시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수사기관은 이런 행위를 '현장활동'이라며 막대한 예산을 들이고 있나." 

- 사찰대상자로 확인된 사람 중에 민주노동당과 관련된 인사들이 적지 않은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추측하기 어렵다. 다만 이게 민주노동당에만 한정된 것인지 의문이다."  

- 혹시 조직사건을 엮기 위한 사전작업은 아닌지?  


"확신하기 어렵다. 이게 사건일까 사찰일까? 특정한 범죄수사로 보려고 해도 군과 관련된 연관성이 전혀 없다. 민주노동당 당직자가 24시간 일해도 모자랄 판에 다른 무슨 일을 할 가능성은 없다. (당직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찍힌 것을 봐서도 군과 관련된 활동은 없다. 그냥 개인의 일상이다. 이게 사건을 염두에 둔 것인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경찰이 동행하겠다고 한 것은 뭔가 꾸미려고 한 것 아니냐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 기무사는 수첩메모 내용 등과 관련,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건과 연관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군과 관련, 헌법에 기본 규정이 있다. 민간인은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지 않는다. 이렇게 군과 민간을 철저하게 분리해놓았다. 민간인이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는 경우는 계엄 시거나 중대한 국가기밀에 관한 죄를 저질렀을 때다. 군과 민간의 철저한 분리가 헌법정신이다. 그에 따라 수사기관도 분리되는 게 정상이다. 군 수사기관은 헌법에 규정된 선에서만 조사를 하는 게 맞다." 

- 이미 국정원도 정치정보를 수집하겠다고 나선 상황에서 민간인 사찰까지 터져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로 후퇴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철저히 20년 전으로 후퇴하고 있다. 1990년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 사찰을 폭로하기 이전으로 후퇴한 것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서 87년 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국민의 의식은 후퇴하지 않았지만 집권층은 권력기관 의존을 되살리고 부추기고 있다. 이것은 20년 전으로 후퇴하는 것이다." 

"조중동, 빨리 잊히길 바라면서 '무대응' 하고 있어"

- 수첩, 동영상, 사진 등 사찰자료를 입수하게 된 경위는?

"제가 그 자료를 입수하면서 그 경위를 묻지 않았다. 입수자를 보호할 의무가 내게 있다. 사찰자료가 국가기관의 불법행위를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입수경위를 묻지 않았다. 먼저 적법한 공무가 있고, 그걸 방해해야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한다. 민간인 미행, 촬영 등은 적법한 공무가 아니기 때문에 (사찰자료 입수행위는)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기무사가 항의하고 형사고발할 처지가 아니다. 기무사는 국민의 감시를 받은 국가기관이고 민간인 사찰이 드러났으면 먼저 사과하는 게 맞다." 

- 기무사측에서는 강제로 빼앗겼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제가 (입수경위를) 더 알려고 하지 않았다." 

- 기무사가 형사고발하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기무사에 자료가 있다면 고발할 때 뭔가 내놓을 것이다. 일단 기무사가 무슨 자료를 가지고 있는지 봐야 한다. 기무사는 신아무개 대위가 자신이 하는 일과 직급 등을 밝혔다고 했는데 그렇게 했는지 의문이다. 기무사가 불법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형사고발해봐야 무혐의 처리 받을 가능성이 높다." 

- 조중동은 민간인 사찰 보도를 전혀 하지 않았는데. 

"예상한 일이다. 이명박 정부의 특징이 무대응, 무답변이다. 그렇게 해서 빨리 일을 지워버리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이 사건을 보는 조중동의 의견도 그럴 것이다. '무대응이 상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잊고, 문제는 잠잠해지겠지 하고…." 

- 기무사나 국방부에서 연락이 왔나?

"기묘하다 싶을 정도로 연락이 안 온다. 다른 사안들은 잘못됐다든지 사실관계를 설명하겠다든지 늘 연락이 왔는데 이번에는 철저하게 무대응이다."

출처 : "기무사령관 대통령독대가 민간인 사찰 불러
 기무사 요원이 CCTV설치 요구한 이유 뭘까?"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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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87년 체제 이전으로 후퇴하고 있는 것은 정말 맞다고 보여진다. 형식적인 민주주의 마저 후퇴하고 있고, 인권은 이제 찾아보려해도 찾아 볼 수 없다. 항의해도 대답은 없고, 폭압적으로 밀어붙이기만 일삼고 있다. 이젠 군정보기관에서 민간인 사찰까지 하는 일이 드러났다. 군사정권도 아니고 노태우만 해도 군사정권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어느 정도 그 행태가 이해가 되지만.... 21세기에 군사조직에서 민간인 사찰이라니....이러다 조직사건이라도 터지는 날에는 그야말로 민주주의 사망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쇼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어떻게든 논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조중동의 행태도 그렇고... 민주주의란 정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키고 싸워야 겨우 유지되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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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8-13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중동은 아예 기사를 안내보냈다면서요?
참 희한한 것들이예요..

머큐리 2009-08-13 23:37   좋아요 0 | URL
그러니 폐간시키자고 하는 거지요..징글징글헌 넘들이에요...
 

세월의 흐름이라는 것이 지나고 나면 왜 이리 빠른걸까? 벌써 1년이 흘렀단다.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에 광우병에 대한 우려가 제기 되면서, 촛불을 들었던 때... 참여정부에 실망하면서도 정치적 무관심 내지 외면으로 일관했던 나는 이 정권의 어이없는 행동에 대해 그저 냉소만 날리다가 촛불의 바다에 그만 놀라버렸다. 직장에서 집에서 시간나는 짬짬이 시청으로 나갔지만, 막차를 타지 않으면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처지라 항상 아쉬움을 달래면서 집으로 가야 했었다. 그러다 아고라에 차량을 가지고 가려는 사람들이 동행을 찾는 걸 보고 무작정 연락해서 같이 집회가고 같이 정리하고 돌아오다 보니 전화말고 안정적인 연락처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와 카페를 하나 개설하게 되었다. 그 카페가 '부천시와 동작구 촛불시민 모임'이다.  

부천사람들과 동작구사람들과 친해진건 스크럼짜고 물대표 맞다가  뒷풀이 한 방에 의기투합해서 그리된 것이고....지금도 꾸준하게 같이 연대해서 촛불을 들고 있다. 시청집회가 뜸해질 무렵....언젠가 다시 시청에게 촛불을 들때 같이 했던 사람들이 모두 모일수 있도록 모임을 정례화하자고 해서 지역에서 주1회 촛불 선전전을 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을 맞이하고....여름을 넘어서는 이 시점에 카페를 개설한지 1년이 되었다. 회원들의 부침도 많았고 사건도 많았고 사고(?)도 있었지만....1년을 견디어 냈다는 사실에... 세월을 느낀다. (앞으로 몇년을 더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는 ...뭐라 할말 없음이다...)

지금도 진알시 활동을 하고, 미디어악법 반대 선전전도 꾸준하게 하고 있다. 회원도 400을 넘어섰다. 물론 오프활동은 그리 많은 사람이 하고 있지는 않다. 그래도 한때 전문시위꾼 카페로 이름이 오르내린적도 있고 내부의 논란도 많았지만 여전히 시민단체들과 사안별로 연대하면서 꾸준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한계도 많이 있다. 직장 땜시 바쁘다는 핑계로 출석율이 저조한 내가 이런 저런이야길 한다는 것도 좀 그렇지만...오늘 지역집회는 항상 같으면서도 왠지 새로울 것 같다. 직업도 성격도 살아온 배경도 다른 사람들이 촛불을 함께 들고 있는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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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4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망각과 자유 - 장자 읽기의 즐거움 問 라이브러리 8
강신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문 라이브러리 8권을 읽는다. 짤막하면서도 사고할 거리를 많이 준다는 점에서 문라이브러리 시리즈는 일독할 만 하다. 장자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 중에서 이 책은 '망각'에 대해 다루고 있다.  

장자에 대한 깊은 지식이 부족한 나는 강신주가 주장하는 '망각'에 대해 뭐라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역량은 못된다. 장자를 읽으면서도 난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그것도 역설적 쾌감이 짙은 이야기를 읽는 것이지 그 글에서 어떤 철학적 주제를 숙고하지 못한다. 그게 나의 한계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펼쳐지는 사유를 평가하지는 못하겠다. 다만, 장자의 철학을 논하면서 인용되는 많은 서양철학자들 (칸트, 니체, 레비나스, 사르트르, 베르그손 등) 과의 장자와의 유사점과 차별점에 대해서는 퍽 간명하면서도 친절하게 잘 설명해 주고 있다고 느낀다. (느낌이다...ㅎㅎ)

이 책에서 내가 깊이... 아주 깊이 공감했던 것은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고, 그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 그 사람 (타인)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는 그건 오산이라는 것이다. 사랑은 혼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양자가 서로 소통하여야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타인과 소통한다고 해도 타인이 거부하면 그만일 것이다. 내가 내 본위로 타인을 재단하고 생각한다고 그것이 타인에게 기쁨이 된다는 것도 희망사항일 것이다. 기쁨이 된다면야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그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하는 원하지 않는 폭력이 될 것이다. 장자는 사랑의 행복과 더불어 사랑의 불행에 대해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은 근원적으로 불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근원적으로 불행할 수 있는 사랑... 그러나 사랑은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 아닌가? 행복한 사랑을 하고 싶다면 자신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바로 '망각'이다. 타인과 만나면서 가지는 자신의 생각, 선입관, 사고 일체를 판단 정치하고 타인에게 순수하게 동화될 수 있으려면 '망각'이 필요하다. 최소한 사랑에 접근하고자 하는 필요조건인 것이다. 물론 '망각'했다고 다 사랑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망각'은 필수조건일 뿐이지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수조건도 없이 충분조건을 만족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람은 '망각'을 통해 타인과 연대할 준비를 갖추고 나서야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길을 확보하는 것이다.  

사랑이 쉽지 않은 것은 그토록 많은 사랑에 불화가 많은 것은 서로 타인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사고와 감정만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망각'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장자는 '망각'이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덕목으로 사랑을 위해 우리에게 권고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도 나의 관점과 사고와 생각에 따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재단하고 평가했는지 반성하게 된다. 나만의 생각으로 실망하고 나의 고집으로 타인을 배척했던 많은 순간들...어쩌면 내가 좀 비웠으면 그들과 다른 관계를 맺을 수도 있었는데... 그들과 다른 사랑을 할 수 있었을텐데... 지금도 늦지 않으리라 자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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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도 내렸다.  

비오는 날... 남들 처럼 낭만적인 감상에 젖지도 못하고, 쏟아지는 빗방울을 원망스레 쳐다보고 산지 벌써 몇 해... (글타고 뭐 수재민이나 그런 것도 아닌데...에고) 

어제 퇴근길의 빗줄기는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힘찬 것이었다. 걷다가 보니 바지는 절반이상 젖어버리고 어깨도 반 이상 젖었다. 이렇게 젖어 드는 날엔 아에 옷이라는 걸 다 벗어버리고 다니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든다... 왠지 자유로울 것 같은....그냥 거칠 것 없을 것 같은 느낌 아닐까? 

우산 마저 무력해 지는 날... 난 우의를 꿈꾼다. 우산없이 우의를 걸치고 양 손 자유롭게 활보하고 싶은 생각.... 작년에는 무척이나 많이 그렇게 돌아다녔는데.... 작년에 우의를 입고 맞은 비는 아마 내가 지금껏 살면서  맞는 비의 양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았을터.... 어제 비는 작년의 우의를 입고 돌아다니던 내 모습을 아련하게나마 떠올리게 해 주었다.  

아마 어딘가에 고이 접혀 보관중인 내 빨간 우의..... 그냥 기억 속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입고 돌아다니고 싶다.... 그 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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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8-12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어제 그 비 쏟아지는 길을 걷는데 싸구려 샌들의 끈이 죄다 끊어졌어요. 저는 덕분에 맨발로 강남 거리를 걸었답니다. 제가 신발을 벗고 걸어봐서 아는데요, 머큐리님. 자유롭다기 보다는 면팔림이 가득하더군요. orz

머큐리 2009-08-12 17:0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은 이뻐서 면팔려도 괜찮아요...ㅎㅎ 근데 싸구려 샌들과 다락방님과는 뭔가 잘 매칭이 안되는 느낌인데요...

후애(厚愛) 2009-08-12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가 우리나라에 그만 내리고 이곳에 좀 내려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도 요 며칠 날씨가 많이 서늘해져서 에어콘, 선풍기 없이 지내고 있어요.
(전기세 많이 안 나올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ㅎㅎㅎ)
미국에는 비가 와도 우산을 쓰고 다니는 걸 못 본것 같아요. 비 맞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본 것 같아요. 우의는 거의 아이들이 입고 다니는 걸 보았고요.

머큐리 2009-08-12 17:10   좋아요 0 | URL
후애님 검사 잘 받고 건강하셔야 해욧~~

무해한모리군 2009-08-12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우의는 형광연두색인데 머큐리님과 있으면 세트 같겠는데요.
가까운 시일에 우비입고 볼 일이 또 있겠지요?

머큐리 2009-08-12 17:11   좋아요 0 | URL
아이고 정말 가까운 시간에 우의 입고 시청찍고 명동 돌아 종각을 지나서 ...ㅎㅎ 언제 그 시절이 다시 오려나...

2009-08-13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13 1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13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13 19: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장영희 교수....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난 그녀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지금도 그녀가 에세이에서 밝힌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짐작만 할 뿐 그녀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어느날 즐찾하는 서재에서 그녀의 부고 기사를 보았고, 그녀의 책이 출간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보고 그녀의 삶이 평범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삶이 기적일까? 그녀에게 삶이란 기적이었을까? 사실 그녀의 에세이에서 난 답을 찾지 못하겠다. 기적이라고 하기에 그녀는 그녀의 삶에 대해 당당했고, 그녀의 부족함을 부족함이라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남들이 불리함으로 여기는 그녀의 목발에 대해 그녀는 담담했다. 장애란 사회적 편견과 시선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란 그녀의 말은 그녀의 삶에 대한 자긍심을 나타낸다.  

그렇다고 그녀가 마치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느껴지는 글은 없다. 오히려 어려움 속에서 교수까지 된 그녀는 자신을 결점투성이로 묘사한다. 지독한 방향치에 언제나 마감때나 되어서 허둥지둥 쓰는 글쓰기 버릇, 정리하지 않아 폐지 처분장인 것으로 오해받는 그녀의 교수방 등 그녀는 자신의 모자람에 대해 숨기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항암투쟁을 하며 삶에 대한 긍정을 보여줄 때, 이기기 위해 노력할 때 그녀는 삶을 기적으로 만들었다.  

그녀의 에세이에서 가장 커다란 울림은 타인에 대한 공감일 것이다. 언제나 자신의 시선을 중심에 두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그녀의 에세이에 구비구비 흐른다. 더불어 나이가 들어감에 따른 연륜과 지혜가 보이는 부분도 많다. 항상 일상의 반복적이니 기계적인 흐름 속에서도 병과 싸우며 그 반복의 소중함도 전해준다. 어쩌면 죽음 앞에서 인간은 실존적으로 될 수 밖에 없나보다. 그럼에도 원망하면서 반성하는 그녀의 모습은 나약한 인간이 왜 위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살아가는 것이 기적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 기적 같은 일을 매일 반복하면서 느끼지 못하는 사람. 기적이라는 것이 별것 아니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느끼지 못해서 그렇지 살아가는 것에는 힘겨움 외에서 다른 가치들은 분명하게 있는 것이다. 다만 힘겨움에 매몰되어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녀는 그 힘겨움과 더불어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잡지에 기고한 글 같지 않게 진솔하다. 아마 그것이 그녀의 글에 생명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더불어 늦었지만, 그녀의 다른 글들을 찿아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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쟈니 2009-08-11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그녀의 글을 늘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머큐리님 글을 보니 얼른 읽어봐야겠어요.

머큐리 2009-08-12 12:07   좋아요 0 | URL
쟈니님 읽고 힘내세요...아자~

웽스북스 2009-08-11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장영희 선생님 참 좋아해요- 돌아가셨다는 소식 들었을 때 참 속상했었는데, 그래도, 김점선 선생님이랑 만나서 즐겁게 수다떨고 계실 거에요, 그죠 ㅎㅎ

머큐리 2009-08-12 12:08   좋아요 0 | URL
웬디님 반가와요...^^ 라님이 하도 괜찮은 분이라 칭찬을 많이 하셔서...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