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 국민, 국가, 고향, 죽음, 희망, 예술에 대한 서경식의 이야기 철수와영희 강연집 모음 4
서경식 지음, 송현숙 그림 / 철수와영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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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교수가 한국에 잠시 머무는 동안 사람들과 만나 세미나 및 강연을 한 내용이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 에 서술된 강연 내용은 서경식이라는
재일조선인이라는 존재의 위치가 가져온 변방적 사유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  

디아스포라 지식인이 생각하는 '국가', '국민', '고향', '죽음' '희망', '예술'은 일상적으로
획일화된 사고에 충격을 가한다. 더구나 한국 사회가 무기력해 보이는 일본 사회를 점점 닳아
간다고 느껴진다는 서교수의 지적은 미래에 대한 전망에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물론 자민당 독재를 끊어낸 일본인들의 쾌거가 얼마전에 있었다고 하지만, 사실 좀 더 두고 관찰
할 내용이기에 뭐라 말하기 어렵기는 하다. 다만, 일본을 따라가고 있는 모습에 많은 걱정을 하는
서경식 교수는 이번 사태진전에 대해 어떤 의견을 내놓을지 궁금하긴 하다.  

디아스포라의 시선은 주류에게 곤혹스러움을 준다. 나 스스로가 변방이라고 생각하지만, 진짜
변방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나 역시도 주류임을 인정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주류라고 하는 건 결국 소수자나 변방자에게 익숙하지 않는 일들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결국 주류라는 이야기다.
집단에 매몰되지 말고 철저한 개인 존재를 기반으로 변화를 일궈야 한다는 서경식의 논리는 차
가와 보이면서도 합리적이다.  

국가와 국민이라는 개념도 자연스럽게 생긴 것 처럼 보이지만, 그 국가와 국민에 속하지 못한
주변을 생각하면, 결코 합리적 개념은 아닐 것이다. 전체주의적 함정에 빠져 국가의 이익이
자신의 이익인 것 처럼 포장되는 사회에서 국가를 냉정하게 짚어 보고 사유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주류들이 국가의 존재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당연한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개념도 마찬가지다. 국민을 한정지을 때 그 주체는 국가가 될 수 밖에 없고, 국가가 인정
하지 않는 사람은 국민이 될 수 없다. 태어나면서 한 국가의 성원으로 자란 사람은 그 사실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지는 몰라도 재일조선인아니 이주자는 국민의 허구성에 대한 국가의
폭력을 가감없이 기억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그러한 소수자와 변방의 문제는 언제나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극적으로 방어해야 할 문제가 아닌 적극적으로 소수자나
변방자의 입장을 반영해야 한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진실을 알리지 않고 그저 예쁜 것만 표현한다면 그건 예술이 아니다. 아니
형식은 갖추었는지 몰라도 진정한 미적 의식이 표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편함에도 그것을
직시하도록 만드는 힘에 미적인 힘이 있다고 서교수는 주장한다. 이 미적 의식에 관한 논의는
'고뇌의 원근법'에서 논의를 심화하고 있다.

희망도 마찬가지다. 막연한 기대에 대한 거부감이 이 주제를 관통하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
근대를 규명하기 위한 '루쉰'의 분석에서 나오는 희망은 절망을 긍정하면서도 결국 가야 할
길을 가는 자를 드러내고 있다. 희망은 바라는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희망이 거의
없음에도 묵묵히 가야할 길을 감으로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사고도 당당하다. 살아있는 자는 태어남을 선택하지 못한다. 자신의 의지로 태어
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죽음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자살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삶을
결단해서 놓아 버리는 자세는 죽음으로 삶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개인의 주체적
결단에 대한 사고를 나타낸다고 본다. 죽음을 미화하진 않지만, 죽음의 결단도 없는 주체의
고뇌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말에는 많은 공감이 간다.  

그는 이 사회의 지식인이 없어지고 스페셜리스트 이른바 전문가가 등장하는 것에 많은 걱정을
한다. 지식인으로서의 사회적 사명감 보다, 전문가로서 행정관료들이 넘쳐나고 그것이 당당해
지는 사회는 결국 병든 사회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학의 보수화는 결국 진정한 지식인이 줄어들고, 관료적 전문가들이 넘쳐나면서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더불어 민주주의와 개혁에 대한 열망도 총체적 전망이 아닌 공정한
경쟁을 위한 준비단계로 이루어진 것이 결국 신자유주의적 질서을 쉽게 용인하게 된 것은 아
닌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된다.

결국 타인의 타인됨을 먼저 인정해야만, 그 타인과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을 수 있다.
타인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는 주입식 이데올로기가 스스로를 에워씨지 않은지 항상 점검하고
또 반성해야 한다. 결국 개인의 발전없는 공동체의 발전은 허상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개인의 혁신과 반성을 요구하는 서교수의 강조는 인정하나, 사실 힘들어 보이고 이상
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주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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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09-20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요즘 다방면의 책을 많이 읽고 계시군요.
이 책 궁금하기는 한데, 너무 이상적이라는 의견도 많아서 쉽게 장바구니로 들어가진 않네요 ㅎㅎ

머큐리 2009-09-21 18:11   좋아요 0 | URL
그래도 서경식 교수님 책은 무조건 읽으셔야 할 듯 합니다..ㅎㅎ
뽀님~ 언능 읽으세요~~~

무해한모리군 2009-09-22 08:08   좋아요 0 | URL
우리가 여성주의 시점으로 쓰여진 책들을 보면 불편하고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선생님 글도 그런 식의 불편함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흔히 하는 말로 다른 색깔 안경을 썼을 때의 불편함이지요.. 우리가 주류에 있다는 생각이 들면 들수록 더 많이 읽어야할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만 저는 만년 비주류지만 서선생님 팬 ^^
 
쇼크 독트린 - 자본주의 재앙의 도래
나오미 클라인 지음, 김소희 옮김 / 살림Biz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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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쇼크를 통한 신자유주의 실험의 전개와 그 야만성에 대한 고찰과 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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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경향신문 기사에 행정안전부에서 공직자 재산 공개 시 토지 지번을 비공개하는 법개정을
추진 중이란 기사가 보인다. 그냥 딱 필이 오는 것이 '눈 가리고 아웅' 한 번 더 하자는 야그가
되는 것이고...이런 사례들이 쌓이다 보면 결국 민주주의란 형식적 말만 남게 되는 거 같다.   

참고 기사 : 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

자본주의 사회다... 인정
개인의 이기심이 사회적인 풍요를 이룰 수 있다....반만 인정
경쟁이 사회를 발전시킨다..... 부정 

공직에 취임한다 함은 공공의 재산을 관리하는 자리에 자신이 들어가서 일한다는 의미다.
내가 MB정권을 바라보면서 가장 시니컬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공공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들을 선정함에 있어 공익보다는 사익에 투철한 사람들이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선정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능력이란, 공공의 재산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익화한다는 의미말고 다른 뜻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더욱 더 맘에 들지 않는 것이다.
우리나라 선도층의 자질이 부동산 투기와 위장전입이 필수 항목이 되고, 이러한 불법행위로
재산을 모은 사람들이 능력있다고 평가 받는다면, 도데체 이 사회의 올바른 가치관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 인정한다. 개인의 이기심이 사회적 풍요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이기심에도 정도와 균형의 게임의 룰이 적용되어야 사회적 풍요가 이루어진다.  
그렇지 않고는 전체의 부는 늘어날지 몰라도 극단적 양극화로 대부분의 사회구성원에게 사회
적 풍요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전체적 부가 늘어난다는 것에도 사실 의문이다)
무엇보다 사회는 협력과 협동과 배려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서 공동체적 가치가 파괴
된다면 그것은 이미 후퇴된 사회일 뿐이다. 오리려 퇴보하게 된다. 따라서 룰이 지켜지지 않는
경쟁은 결국 사회를 파편화시키고 파괴시킬 것이다.

공직자에게 좀더 엄격한 윤리를 부과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부정을 방지하고자 함이지
그 사람의 인권을 유린하고자 함이 아니다. 최소한의 윤리적 심사에 걸린다면 공직에 나가지
말아야 함이 원칙이지, 재산을 검증하지 못하도록 해서 국민들을 속이는 것은 또 다른 기만이고
결국 민주주의에 대한 중요한 위반이 될 것이다.
종의 자질을 검증하지도 못하는 주인이 과연 주인이라 말할 수 있는가 말이다.  

점점 민주주의적 가치를 파괴시키는 시도들이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시행된다면, 다시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항상 감시의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는 것, 피곤하지만 필요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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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스 투~
어느날 적립금이 나도 모르게 쌓여 있는 걸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른바 알라딘의 땡스 투 제도인데....이거 은근히 짭짤하다.
그런데 짭짤한 맛에 약간의 이질적인 맛이 있어 좀 그렇다... 

이건 순전하게 내 마음의 태도 때문에 그렇다.
난 책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다.
때문에 리뷰나 페이퍼로 책 이야기를 제대로 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르는 사람이고,
그래서 주로 남의 서평 (주로 신간소개 기사들)들로 페이퍼를 도배질 하는 편이다.

책은 많이 못 읽지만 책에 대한 욕심은 많아 가지고, 토요일 서평이 실리는 날은
실린 서평을 페이퍼로 정리하기 바쁘다.
정리 하면서 해당 책들을 '알라딘 상품넣기'로 이미지를 띄우는데, 그것을 통해 땡스 투가
이루어지는가 보다. 얼마전까지 몰랐다가 아프님 때문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몇몇 분이 땡스 투~를 해주신 것을 알게 되면서 눈여겨 보게 되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짭짤하다. (머 대박은 아니다... --;;)
다만, 신문에 소개된 신간은 원래 내가 관심이 있어 자료를 축적해 놓았다가 기회가 되면
구입하고자 하는 자료 정리 차원인데... 이게 마치 적립금을 쌓아놓기 위한 페이퍼질로
오해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슬슬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이 신간을 정리해 놓으려다가도 언제부턴가 순간 멈칫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흠 그런거 신경쓰는거 보니... 기대도 없지 않은게 맞나 보다) 

참신한 리뷰와 페이퍼질로 보다 당당하게 땡스투를 받고 싶으나.... 능력이 모자르고 욕심만 
많다. 땡스를 날려주시는 분들에게 그저 고맙다고 인사드린다. 
더 부지런하게 책을 사고 읽으라는 격려로 알고 열심히 독서할 예정이다.
어차피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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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9-17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머큐리님께 땡스투 날린 1人

머큐리 2009-09-17 19:01   좋아요 0 | URL
저도 한방 날렸어요...그 유명한 세벽세시..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9-17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일이 찾아보자면 번거로운데 정리하시는 노고를 생각하시면 겨우 1%로야~~ 글고 땡투하면 나한테도 오잖아요 ㅎㅎㅎ

머큐리 2009-09-17 19:01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아 걍 책 한권 선물하고 싶다니까...언릉 얘기해~~

2009-09-17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7 1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09-09-17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하고 싶은데 이곳에서는 안 되네요.
제가 나가서 해 드릴께요.
그런데 제가 땡스투를 하면 제가 그 책을 구입을 해야하나요?^^
한번도 못해봐서리...ㅎㅎ;;

머큐리 2009-09-17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를 하고 기간내에 책을 구매하면 되는 겁니다..ㅎㅎ 후애님 들어오심 꼭 연락주세요

후애(厚愛) 2009-09-19 15:25   좋아요 0 | URL
어디로 연락을 하면 되나요? ㅎㅎㅎ
 

 [매거진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377070.html

Q 2PM의 박재범 사태는 번역의 문제에서부터 파시즘이란 담론까지 논쟁의 범위가 하도 넓어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이 사건을 정리 좀 해주세요.

A 1. 그려, 정리 함 해보자. 이 사건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 반응을 최소 세 부류로 구분해 읽을 필요가 있겠다. 왜냐. 보면 안다.

1) 첫 번째. 소비자로서의 반응. 우리 동네서 장사하면서 우리 동네 욕했다고, 우씨. 이 경우 배신감은 대체로 자연스러운 거다. 해당 상품에 대한 충성도가 유난한 골수 소비자들이야 어떻게든 이해해주려 하겠지만 나머지 소비자 일반까지 그래야 할 의무는 없는 거다. 그러니 이 반응의 속성은 상도의에 관한 일반 감각과 그 마지노가 지켜지지 않은 데 대한 서운함, 정도 되겠다. 하필이면 그 상품이 아이돌이라는 데서 오는 생경함과 당혹감이 보태졌을 뿐.

2) 두 번째. 문화 소비자가 아니라 수컷 경쟁자로서의 반응. 돈 많이 벌고 인기도 있고 미국 시민권도 있는데다가 군대까지 안 가는 자식이 뭐라고. 내 몫일 수 있었던 암컷들 앗아가더니 이젠 한국을 비하까지 해? 이 새끼, 너 오늘 잘 걸렸다. 어느 날 그렇게 틈을 보이고 만 알파 수컷을 다구리 하는 베타 수컷들의 집단 린치. 하여 이 리액션의 키워드는 적대감이요, 그 엔진은 상대적 박탈감이라. 주로 군 미필 남성들이 여기 속한다.

3) 세 번째. 아니 대한민국을 비하했다고? 있을 수 없지. 딱 그만큼. 이 순수하게 우파적, 보수적, 국가주의적 관점도 없진 않았다. 매우 소수였을 뿐. 물론 감정이란 게 이렇게 블록을 쳐 칼같이 구획되는 게 아닌데다 아예 무관심하거나 서로 뒤섞인 경우도 적지 않았으나, 틀 파악에는 이 구분으로 충분하다.

이 셋 중 가장 수가 많았던 건 첫 번째요 가장 먼저, 격하게 반응한 건 두 번째며 가장 본질과 거리가 있었던 건 세 번째였으되, 일이 꼬이기 시작한 건 두 번째가 세 번째의 언어를 구사하며 첫 번째처럼 행동하면서다. 두 번째는 세 번째의 이념을 차용해 자신들의 분노를 정당화한다. 그게 안전하니까. 나를 주눅 들게 만들던 알파 수컷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데, 애국의 완장까지 채워진다. 이 얼마나 남는 장사인가.

그러자 그 완장을 애국주의의 집단발호로 해석하고 만 먹물들의 관습적 훈시가 등장한다. 그것은 파시즘이다! 이에 첫 번째가 먼저 반발한다. 아니 소비자로서 내가 내 맘대로 섭섭해하지도 못한다는 건가. 어디서 훈장질이야. 이 반발은 대체로 합당하다. 첫 번째는 그런 구호를 외친 적 없었으므로. 두 번째는 실제 애국엔 관심이 없었으므로. 하여 그 질타는 세 번째에게나 적합한 것이었으므로. 그러나 세 번째는 워낙 소수라 그 판에 거의 참여도 않았으므로

그렇게 첫 번째가 세 번째에게나 마땅한 훈계를 당하는 사이, 정작 사건을 만든 두 번째는 첫 번째의 반발 뒤에 숨어, 포괄적 첫 번째인 골수 소비자-아이돌의 팬들을 역공한다. 빠순이라고. 훈계와 반발과 공격이 온통 뒤죽박죽이다. 더구나 첫 번째는 자초지종에 따라선 아이돌의 사정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집단. 파시즘 질타가 있던 시점엔 이미 그 내막 듣고 아이돌을 용서한 뒤다. 더욱 억울할밖에. 그리고 바로 여기서 첫 번째와 두 번째가 갈린다. 두 번째는 그 전후사정을 듣고도 모른 척한다. 자신의 분노가 명분을 잃을 테니.

여기에 예술적 감성이란 체제 저항의 언행까지 포용하는 사회에서만 성숙할 수 있다는 예술 지상주의 옹호론까지 더해진다. 그러나 그 관점은, 그 선의와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핀트가 어긋난다. 아이돌이 그 모든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 비난에 나름의 논거를 고수했다면, 그 옹호론이 옳다. 그것까지 보호하는 게 예술의 역할, 맞으니까. 허나 그는 어렸고 두려웠고 철이 없었을 뿐. 거기 특별히 더 보호받아 마땅한 예술적 가치란, 없다.

대미는 소속사가 장식한다. 소속사, 그를 버린다. 계산속 한번 신속하고 비정하다. 우리 사회의 내재적 자정작용이 균형점을 찾아가기도 전에. 욕먹어 마땅하다. 버려서가 아니라 기다리지 못해서. 사건은 여기서 반전된다. 이미 그를 용서한 첫 번째의 목소리가, 이미 목적을 달성한 두 번째의 목소리를 그제야 압도한다. 불쌍하다. 돌아오라, 돌아오라. 오, 다이내믹 코리아. 정리 끝.

2. 여기서부터 미니 감상. 포인트는 많다. 확대 재생산의 주체, 언론을 문제 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이 대목, 짚어두고 싶다. ‘애국’ 감성은, 일차적이고 원시적인 공동체적 감수성이다. 그게 다치면 집단 반응하는 것까진 당연한 거다. 문제는 그 정도를, 우리 사회가 자율 통제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일 뿐. 그런데 그런 감성의 존재 자체를 촌스럽고 위험하다 여기는 게, 비장한 책무인 줄 아는 흐름, 있다. 자신의 열패감을 애국주의로 치환하는 치졸한 수작들만큼이나 웬만한 ‘애국’ 감성은 간단히 파시즘으로 매도하는 그 게으르고 강박적인 호들갑이 안쓰럽다. 그건 오만한 것이기도 하거니와 지적 태만이다.

마지막으로 박재범은 결국 돌아온다, 에 오백 원 건다. 결국 다, 장사니까. 이상.

김어준 딴지 종신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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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9-17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100원.

머큐리 2009-09-17 15:38   좋아요 0 | URL
딴지 총수보담 좀 더 쓰세요...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9-17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총수는 때로 정말 명쾌해요.

머큐리 2009-09-17 15:39   좋아요 0 | URL
때로 그렇지요...그리고 항상 명랑하죠..ㅎㅎ

라주미힌 2009-09-17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백원이라... 좀 인상할때도 됐건만 흐

머큐리 2009-09-17 15:39   좋아요 0 | URL
라님이 또 강림하셨다...ㅎㅎ
요즘 넘 바쁜척하시는데...뭔일???

순오기 2009-09-18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아와야죠~ 쫓아버릴것 까지야~ 그러면 정말 후진 대한민국이잖아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