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닉 혼비 지음, 이나경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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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자살자들이 이 소설의 주인공인다.
삶에 지쳐 탈출구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의 혼란스러운 농담과 비꼼과 뒤틀림 속에
살아가야 할 따뜻한 이유를 찾아가는 이야기... 

'어바웃 어 보이'라는 영화를 재미있게 본 기억이 난다. 다 큰 어른이 사춘기 소년과 함께 
철들어 가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 놓은 영화로 기억한다. 그 작품의 원작이 닉 혼비라는
것을 이 책을 소개하는 역자 후기를 통해서 알았다.
영화에서 나오는 경쾌한 대사들이 이 책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아니 오히려 자살과 죽음
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이렇게 유쾌하게 풀어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죽음에 대한 그 냉소적인 모습들이란... 

내내 유쾌하지만, 결국 귀결은 상식적이다.
세상은 좀 더 살아 볼 만 하다는 것. 그리고 자살은 실패한 사람들의 심리적 탈출구 라는 것.
그러나 소설 속에서이들은 자살에 실패한 사람들이고, 자살하고자 하는 극단적인 순간이
지나고나서 숨을 고르며 삶을 뒤돌아 보았고 모양은 다르지만 죽음에 까지 이르게  고통을 
겪은  사람들과 연대하면서 지나온 나날 속에서 삶을 긍정한다는 이야기는 동화적이면서
묘하게 위로감을 준다. 여기서 상식은 승리한다.   

어쩌면, 정말 죽음을 선택해야 할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온전한 삶을 꾸려가지
못하는 사람들이란 전제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을 위해 싸우면서 살아갈 만한 세상은
존재한다는 것이 이 책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메시지 아닌가 한다. 다만, 삶의 희망을 깨우치기
위해서는 죽음이라는 것을 한 번쯤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정도....
그러나 과연 그런가? 

유쾌하지만 명쾌하진 않다.
주제는 무겁지만 해결은 단순하다.  
그렇기에 유쾌하게 읽었지만 그렇게 쉽게 별점을 주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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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10-13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쾌하지만 명쾌하진 않다는 걸 보니 닉혼비스러운가 보군요

머큐리 2009-10-13 13:30   좋아요 0 | URL
닉 혼비 책은 이게 처음이라...^^;
 

오랫만에 추석이라고 안부 전화하는 친구
잘 지내냐고... 교회 좀 나오라고....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한다.  

웃으면서 잘 지내고 있다고,,,아픈데 없이 잘 살고 있다고...그리고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날 위해서 기도는 그만 하라고...다시는 교회 갈 일이 없을 거라고...
친구는 웃으면서 대답한다.
"여전히 자신만만하구나 하나님 뜻이지 니 뜻이 아니야...그러니 조만간 교회에서 보자" 

인간적으로도 별 흠이 없는 친구다. 열성 신도라는 점만 빼고는.. 
어린시절 교회에서 만나서 청년이 될 때까지 같이 자란 친구다. 여전히 그 친구의 신앙은
흔들림이 없었고, 교회를 떠나 잘 살고 있는 나를 집 떠난 탕자 취급을 한다.
언젠가 회개하고 돌아와서 눈물 흘릴 것으로 진심으로 믿고 있다는 얘기다.
난 솔직히 탕자가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죄를 고백하는 모습이 맘에 안든다.
떠났으면 거기서 끝을 냈어야지 비루하게 돌아와서 다시 품 속에 파고드는 모습은 정말
굴욕적이다. (성경에 대해서 난 여전히 삐딱하다) 

한 때 정말 난 구원받고 싶었다. 무엇으로부터 구원인지 몰라도 난 마음과 몸이 깨끗하게
정화되었으면 하고 소망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기도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교회에 봉사
했다. 그리나 하나님으로 부터의 구원은 오지 않았고, 어느새 난 뱀의 유혹에 빠진 이브 
처럼 선악과를 따서 먹고야 말았다. 그리고 교회 전도사로 부터 교만한 자라 칭함받고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을 시험에 들게하지 말고 떠나라 해서 교회를 떠났다.
에덴에서 추방된 것이다.  

그 후로 기독교는 나의 영원한 수수께끼가 되었다. 알면 알 수록 혐오스럽지만, 그 속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매혹당한다는 사실이 의문이었던 것이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의 말에 따라 세상 끝까지 전도하는 그 열성과
죽은 후의 보상을 위해 현재의 삶을 버리는 순교의 힘까지.... 사랑의 종교라는 말이 무색
하게 인종말살적인 피의 역사까지 기독교는 정말 알 수 없는 종교다.
나는 이성의 전능함을 믿지 않는다. 다만, 한계가 있더라도 이성의 능력에 대해 다른 것
보다는 신뢰하는 정도다. 그럼에도 초 현실적 실체에 대한 믿음은 없으며, 더구나 우리들
삶에 간섭하는 인격신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이게 내 교만의 실체다) 

내 친구는 나의 구원을 기도할 것이다. 그러나 구원은 교회에 나감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를 위해 기도하는 그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건 그 친구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선의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그 친구의 또 다른 교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난 그 친구가 믿는 신은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기독교를 정말 인정할 수 있는 길은, 독점적 구원을 폐기하고 모든 종교의 구원에
대해 기독교가 인정하는 때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길은 보이지 않는다. 성서의 일점
일획도 진리가 믿는 그들이 어떻게 다른 종교를 인정할 수 있을까?
오늘도 밤하늘엔 별보다 많은 십자가가 떠있고,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선정적 구호가
난무하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보다 신에 대한 애정이 더 강한 종교는 결국 온기없는
냉혹한 독재자와 다를 바 없음을 그 친구는 알고 있을까?  

그저 이제 기도하길 그만두길...친구여 지옥에 가도 내가 가는 거 아닌가?
정말 지옥이 있다면...나 같은 인간들이 많이 올텐데...결코 심심하진 않을 것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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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09-10-06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심심하지 않다면 그건 지옥이 아니겠네요;;; ㅋㅋ(웃으면 좀 그런가;; 왠지 상상하니 재밌어서^^;;)

전 그 무엇보다 '열성'기독교인에 대한 제 편견부터 버려야겠는데요. 이게 참 쉽지도 않고, 굳어지는 경우가 더 많아서. 평생 어쩔 수 없이 짊어지고 가야 할 아집인지,,
 

올 한가위는 정말 아무 사고(?)없이 흘러갔다. 매년 명절이 되면 무슨 사건사고가 그리
많은지... 복잡한 가족사 털어봐야 욕 밖에 나오지 않고, 시끄러운 일은 매년 벌어지는
일이라 무덤덤하게 넘어갔더니 정말 사고없이 흘러간것 같은 느낌이다.  

무료하게 먹고 자고 치우고...를 반복하는게 지겨워서 책장에 있던 책들과 파일을 들춰보다
내가 결혼하기 전 대학 때까지 모아놓았던 사진들이 오롯히 들어있는 사진첩을 발견했다.
어딘가 집에 있으려니 했던 사진첩이 아버님집에서 나오다니...하긴 집에 있는 사진첩도
들여다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으니 집에 있어도 들춰볼 일은 없겠지만... 

사진첩은 크게 세파트로 나누어져 있다. 교회 다니던 청소년 시절, 대학시절, 그리고
내 어린시절의 가족사진들... 별로 특별하진 않지만, 내가 교회 다니는걸 포기(?)하게 
만들어준 전도사 (지금은 잘 나가시는 목사님이 되셨다고 한다)의 재수없는(?)얼굴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는 것. (지금은 그 분이 고맙게 여겨진다. 그분의 단호한 결단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난 어정쩡한 신도 노릇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
그리고 사진 두장.... 한 장은 고등학교 때 잠깐 좋아했던 친구의 동생 사진이었고 나머지
한 장은 철들고 첫사랑이었던 여자의 사진이었다.  

이제는 어디서 어떤 삶을 살지도 모르는 두 사람의 사진이 사진첩에서 발견되니 기분이
묘했다. 옆지기가 누구냐고 묻길래...그냥 어린시절 교회 친구라고 대답했다. 예전에
좋아했던 후배나 첫사랑 여인이라고 말하기도 쑥스럽고, 그렇게 말한다 한들 그녀들에
대해 무슨 할 말이 있을리도 없기에 그냥 슬쩍 넘어간 것이다.
한 때나마 나의 감정을 뜨겁게 만들었던 사람들을 그렇게 추억조차 지워진채 사진으로
대면한다는 것...그럼에도 그녀들에 대한 기억조차 가물거렸다는 것... 세월은 그렇게
지울것을 확실하게 지우나 보다.  

특히 대학교 일학년때 날 처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가버린 그녀는 사랑의 쓰라림이 뭔지
확실하게 교육시켜 준 장본인이다. 그 때 난, 폐인처럼 집안에 박혀서 라디오와 책에
파묻혀 지냈으며...그렇게 비웃었던 대중가요의 사랑타령이 그토록 깊고 심오한 의미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되었고,  왜 싸구려 사랑타령의 노래가 이토록 강인한 생명력을
갖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게 되었다
이런 아픈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도 그녀들에 대한 다른 기억은 가물가물한 것이 결국
상처난 자존심에 대한 기억은 남아도 상처를 준 그녀의 기억은 스스로 자기검열로
지워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끔이라도 그녀들이 생각난 적이 있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다. 그 때가 언제인지도
이제는 떠올리지도 못하는 지금... 그녀의 사진들은 그 떄의 그 순간에 머물러 밝고 싱그런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그 시대의 스타일로 매우 촌스럽게 말이다)
시간과 기억은 그렇게 대립하고 있었다. 시간은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어 버리고, 기억은
거기에 맞서 자신이 유리하게 할 기억만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아마도 내가
상처받지 않는 기억들일 뿐일 것이다. 상처 받는 기억들은 어딘가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 살면서 어쩌면 그녀들만 아니라 사진에 남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나의 기억속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또 다시 어딘가 불쑥 나타나
새롭게 나와 조우할 것이다.  

잊어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잊고 살다가 문득 조우하던 때, 시간은 그렇게
나를 다스리고 나는 그렇게 순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니,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란 말을 누구에게 감히 쓸 수 있단 말인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움의 강도는 같이 한 시간에 비례한다고 난 믿는다. 그러나 영원을 같이 한 사람이
아닌 이상 영원한 그리움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난 인간의 한계에 대해 절망하면서도
그 한계로 인해 새롭게 출발함을 기뻐한다.  

하지만 잊혀진다는 것은 서러운 일이다. 그것이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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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산한 새벽녘, 괜히
    from 시간의 흐름, 그 속의 책 2009-10-05 04:04 
      이렇게 새벽녘까지 일을 하다보면, 피곤도 피곤이지만, 이상하게 스산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 이제 겨우 보고서 하나 마무리했고 (나 혼자 마무리이다. 그쪽에선 또 수정하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에잇), 정리하려다 보니 나오는 노랫가락에 잠시 손을 멈추게 된다. 이렇게 새벽에 일할 땐 클래식도 그렇고 재즈도 그렇고 팝송도 그렇고..그저 가요가 최고인 것 같다. 물론 집중해야 할 일을 할 때는 좀 그렇지만 편집이라든가 반복적인 일을 해야 한다면
 
 
무해한모리군 2009-10-05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프지 않고 그저 그리운 느낌으로 문뜩 떠올릴 날이 있겠지요?

다락방 2009-10-05 09:07   좋아요 0 | URL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면 그때 우리가 사랑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다 그런것 같아요..

머큐리 2009-10-05 10:10   좋아요 0 | URL
역시 쿨하신 다락방님....^^
 
팝스타 존의 수상한 휴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북스토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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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당신이 비틀즈의 팬이었다고 하면, 존레논의 부인인 오노요코는 마녀였을 것이다.  
존레논을 사로잡고, 비틀즈를 해산 시킨 주범... 그 위대한 그룹의 음악을 더 이상 듣지 못하게
한 그 여자...
더구나 극단적 반일감정이 팽배한 이 땅에서 그 이야기는 존레논의 실망감을 전이시켜줄
대상이 필요했던 나에게 더욱 합당한 이야기이다.

오쿠다 히데요의 소설 답게 심리적 테마가 풍부한 소설이다. 그 테마의 주인공은 비틀즈의
전설설 리드싱어이자 평화운동가, 반전주의자 존 레논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장소는
존이 1967년부터 여름 휴가를 보낸 일본의 가루이자와이다.  오노요코 때문에 일본에 체류
했던 존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로 형상화 시켜 낸 것이다.  

소설의 주요 흐름은 존이 철없던 시절 자행했던 무수한 일탈과 그로 인한 괴로움이 변비라는
신체장애로 등장하고, 심리적 문제가 해결되면서 신체적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인데...
오쿠다 히데요 아니랄까봐 '변비'를 통해 존의 심리 분석을 이끌어가는 대목에서는 절로
미소짓게 만든다. (그의 엉뚱하면서 진지한 점은 너무 사랑스럽다)
다만 초기 작품이라 그런지 밀도 있는 긴장감은 많이 떨어진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변인물로 등장하는 여자에 대해 급 관심이 일어났다.
오노요코... 소설에서 그리 비중있게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존이 마음의 평화를 느끼고
평생의 동반자로 선택한 그녀의 모습은 간간이 무언가를 초월한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어
같은 일본인이라 그렇게 형상화한 것인지 궁금했을 뿐이다.
존이 평범한 음악가가 아니었고, 그가 선택하고 그의 음악과 사고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여성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다는 자각이 들었다고 할까? 

이 소설을 읽고 연관된 책 읽기나 해야겠다. 그리고 그 대상은 당연 오노요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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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9-10-04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해 전에 로댕갤러리에서 했던 오노 요코 전시회를 보러갔었습니다.
마녀가 아니라 천재 예술가더군요. 엄청 놀라고 감동했었어요.

머큐리 2009-10-04 22:49   좋아요 0 | URL
오~ 천재 예술가 수준이던가요??
존의 부인이라는 것 말고는 그녀에 대해 너무 몰아요... ㅡㅡ;

무해한모리군 2009-10-05 00:09   좋아요 0 | URL
네 그녀는 아주 훌륭한 행위 예술가이지요.

2009-10-04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큐리 2009-10-04 22:49   좋아요 0 | URL
아마 취향과 맞지 않을지도 몰라요..ㅋㅋ
 
영화처럼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몇몇 일본 작가들의 소설은 내용을 떠나 무조건 집어들게 만든다.  
일단 미미여사와 게이고 그리고 오쿠다 히데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는 제일 맘에
드는 소설 중 하나이다. 미미여사나 게이고는 작품이 너무 많아 뭐라고 평하기도 힘들다
더불어서 이 책의 저자인 가네시로 가즈키... 유쾌한 듯 하면서 그 속에 애잔한 슬픔을
품고 있는 그의 소설은 따뜻하면서도 희망차다.  

일본에서 얼마나 대중문화가 사람들을 사로 잡는지는 몰라도 우리 사회보다 좀더 대중문화
의 위력을 실감한 사회임에는 틀림없을 것 같다. 서구 좌파가 정치, 경제 분석에서 문화로
자신의 이론적 분석틀을 확장한 이후 그리고 포스크모더니즘이 이 땅에서 극성을 부린 이 후
문화에 대한 많은 관심들이 확장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영화가 있다.
<시네마 천국>을 보고 나서 느낀 따뜻하면서 왠지 쓸쓸한 느낌의 소설들이 연작으로 이어져
있는 소설들이다. 그리고 소설의 중심에는 <로마의 휴일>과 <정무문>이 있었다.  

일본에서 재일한국인이란 위치는 어떠할까? 솔직히 모르겠다. 다만 서경식 선생의 글을 접하며
그들이 가진 존재의 정체성의 위기에 대해서는 순전히 감으로만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위치에서 오는 불안정성은 현재에 매몰되어 있는 나의 안이한 사고를
흔들어 놓는다. 생활 뿐 아니라 남북으로 분단된 정치 상황에서 오는 긴장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전에 난 <금단의 땅>이란 소설을 읽고 깜짝 놀란적이 있었다. 분단과 한반도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그렇게 현실감 있게 형상화한 소설을 처음 접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재일한국인이란 항상 무언가 어둡고, 불안정한 사람이고 그것이 작품으로 반영
된다는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편견을 깨준 사람이 가네시로 가스키다. 그의 소설은 유쾌했고, 주변에 머물러 있어도
중앙에 대한 우월감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삶을 위해 유쾌하고 치열하게 횡단해
버린다. 그것이 소설이고 허구일지라도 같이 횡단하는 독자들은 유괘하고 즐겁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횡단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마음 속 깊이 깨닫게 된다.
원래부터 출발선이 틀린 그들이 그 출발선에 연연하지 하고 세상 속으로 뚜벅 뚜벅 걸어가는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 책은 퍼즐같은 책이다. <로마의 휴일>이 상여되는 시민회관의 공간속에 들어오는
군상들이 각기 다른 이야기들을 펼쳐 놓고 있다. 그러나 주제는 동일하다. 근 군상들은
자신의 과거의 아픔을 정화하고 그리고 그 아픈 기억 속에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영화를
보러온다. 거기서 대중문화와 추억과 기억과 치유의 순간이 전개된다.
추억과 기억으로서의 영화.....
그 영화속에서의 과거와 미래....
소설은 대중영화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미래 묵시론적인 만화가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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