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청소년 소설치고 좀 하드코어 하다라고 해야 하나?
드러나는 주제들과 사건들은 평범하진 않다. 하기사 평범하지 않아야 흥미진진 할 테지만
흥미진진함을 위한 소재로서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
청소년 소설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난 항상 이 책을 아들들에게 어떻게 소개해야 할 지
고민하면서 읽는 다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순수하게 책에 집중하기 보다 여기저기 곁가지에
더 신경이 써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마법의 존재와 마법에 대한 책임의 문제, 문제 가정(?)에 대한 배경, 새엄마와의 갈등.
그리고 아동 성 추행.... 이러저러한 소재들이 뒤범벅 되어 있는 이 청소년 소설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 지 참 난감하다. 세상을 따뜻하게 보기 보다 보다 냉소적으로 보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게 이 소설의 최대의 문제점이다. (청소년들이 세상을 무조건 따뜻하게 희망차게
바라봐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 

마법이 등장하는 만큼, 의지로 인한 모순의 극복보다 마법을 통한 모순의 극복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는다는 점에서 그러나 의지가 아닌 마법을 통한 문제의 해결은 결국 자신에게 되
돌아 온다는 설정이 그나마 조금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결국 욕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가를 이 책은 말하고 있나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재의 선정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편하다.  

마법을 잃어버린 순간 어른이 되어 버린 것일 텐데...
어쩌면 마법을 잃어 버린 사람이 마법의 세계를 동경하는 청소년의 마음을 마구 제 멋대로
해석한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난 이미 마법을 잃어버린 중년의 남성이고
마법의 소재도 애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따지고 있는 고루한 어른일진데...
 

그래도 책은 술술 참 잘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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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11-06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이 책장을 술술 넘어갔는데요, 작가가 역량에 비해 지나치게 하드하게 나간게 아닌가 싶어졌어요. 그러다보니 오히려 청소년들이 읽기엔 더 불편한 소설이 되지 않았나 하는거죠. 분명 어느 부분들은 좋기는 했는데 '문제들'을 지나치게 많이 깔아버린 것 같아요. '심하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답하다 - 서른 살의 강을 현명하게 건너는 52가지 방법 서른 살 심리학
김혜남 지음 / 걷는나무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이러저러한 심리학책을 나는 꾸준하게 읽는 편이다.
나에 대해 궁금하니까... 무언가 해답을 주는 이야기들이 있지 않을까 잔뜩 기대하면서...

어느 덧 30을  훌쩍 넘긴 중년이 이 책을 읽는 다는 것이 우스워 보일지 모르겠다.
30 대의 독자들이 대상이겠지만, 더 어린사람도 나 처럼 더 먹은 사람도 유용한 이야기가
많다. 다만, 심리학이란 학문이 그렇듯이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보다 감정적으로 반응해야
더 많은 효과가 있음은 물론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감정적인 반응보다, 이성적인 반응으로 일관했더니 꼭 잘 꾸며진 처세술
같아 보인다.   

이렇다는 거다.
" 자 세상은 원래 힘들다. 그거 인정해라. 그리고 인정을 바탕으로 열심히 살자. 열심히
살다보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 많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편견에서 해방되라. 자신에게
상처를 주지 말고 ......."
물론 과도한 축약이자 뻔뻔한 이야기라는 것 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실천적으로 얻어갈 지혜도 많이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예전에 신에게 받던 위안을 심리학으로 부터 받길 원한다는 의혹을
떨치기 힘들다. 나 역시 그런 이유로 심리학을 탐독하고 있으니까... 무언가 자신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누구에게 상담해야 할까? 부모? 친구? 그냥 독서?
어쩌면 심리학이야 말로 우리들을 구원해 주는 새로운 친구이고 부모이고 신이다.

그래도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속에서 불안정한 개인들에게 이런 위로라도 전해주는 학문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도 많은 위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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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다가 문득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
나라는 존재는 결국 많은 사람들의 영향을 통해 만들어져 왔다는 사실.  
그 사람들이 영향을 주지 않았다면 혹은 그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영향을 더 많이 주었다면, 아마도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물론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리거나 조정당하는 꼭두각시는 아니다.
나를 강하게 누르는 것에 대해서는 나는 언제나 저항해 왔다고 생각한다.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그리고 모든 사람이 똑 같은 영향을 나에게 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더 강하게 어떤 사람은 그리 크지 않게...

전화 통화 중에 문득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나에게 참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난 그때서야 알았나보다.
살면서 그렇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아.... 그 사람 참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것.
그리고 인연이란 그렇게 폭풍처럼 몰아치는 것이라기 보다 일상 속에서 조용히
젖어드는 것이 더 무서운 것이라는 거....  

바쁘게 살면서 까마득하던 저 편의 기억들
어느 순간 번개치듯 섬광처럼 지나가는 순간들
길을 걷다가 바람에 내 몸이 열려져 버린듯한 투명한 느낌들
그리고...희미해진 윤곽에도 선명한 선들이
가끔은 삶을 마법처럼 신비하게 한다.
냉소적이면서도 힘을 내고 살아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면 충분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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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11-03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가 삐딱하다고 생각했는데 취향이나 말투까지 비슷하더라구요ㅎ
머큐리님이랑 같이 도서관에 나란히 앉아 책 읽으러 어서 가야할텐데..
내일은 날씨가 풀린다니 또 다행입니다.

머큐리 2009-11-03 22:45   좋아요 0 | URL
휘모리님 뱃놀이나 한 번 가시는건 어떠신지요..ㅋㅋ
살짝 준비해 놓은 것이 있는데...

무해한모리군 2009-11-04 08:04   좋아요 0 | URL
으흐흐 좋아요 좋아~

Arch 2009-11-04 09:39   좋아요 0 | URL
배를 준비해놓은건가요? 와~

자신의 정체성은 결국 타인 안에서 이름지어지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2일 저녁, 서울광장서 용산 참사 해결 촉구 시국미사…서울시 '불허' 통보 

지난 1월 발생한 용산 참사에 대해 정부는 여전히 해결 의지가 없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8일 법원은 1심 재판에서 당시 농성에 참가했던 철거민 9명에게 최고 징역 6년까지 중형을 선고했다.

참사 현장에서 매일 철거민들과 미사를 진행하며 용산 참사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2일 오후 7시부터 서울시청 앞 광장(서울광장)에서 '죽은 자들과 죽어가는 뭇 생명들을 위한 위령미사'를 연다 

한편, 이날 서울시는 사제단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기로 한 미사를 두고 광장 사용을 불허한다고 통보했으며, 경찰은 시설 보호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사제단은 예정대로 미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다음은 사제단 시국선언문 전문이다.
 

대한민국 경찰·검찰·법원은 자본 권력의 용역인가?

빌라도는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너희가 맡아서 처리하여라.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고 말하였다.(마태오복음 27,24)

1. 죽음을 부르는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다. 불의가 검은 강물처럼 넘실거리고, 죄악의 독버섯은 활짝 꽃을 피웠다. 권력자들의 추악한 거짓과 노골적인 탐욕이 갈수록 당당하고 뻔뻔스러워지는데 허다한 생명들은 무참히 시들어간다. 지난주 두 건의 재판 결과는 이명박 정부가 민주주의 발전에 백해무익한 정치집단이라는 점을 명백하게 해 주었다. 국민의 보편적 권리를 위해 마련된 갖가지 권능을 특정 자본권력과 극소수를 위해서 그릇되게 남용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국민에게는 가혹한 철퇴를 휘두르고 있으니 도저히 정부라고 볼 수 없고 차라리 강도 집단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바야흐로 신앙과 양심의 이름으로 국민 불복종을 선언할 결정적인 때가 닥친 것이다.

2. 10월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한양석 부장판사)는 구속된 용산 철거민 아홉 명에게 6년 등의 중형을 선고했다. 누차 지적했지만 검찰은 끝까지 핵심수사기록 3000쪽을 감췄고, 재판부는 핵심수사기록 공개 명령을 거부한 검찰의 주장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이로써 공권력의 무리한 진압작전으로 빚어진 용산참사는 검찰과 법원이 합작한 부정한 판결로 일단락되었다. 가히 수미쌍관(首尾雙關)의 완결판이라 하겠다. 참사발생 이전부터 참사 287일째를 맞는 오늘까지 국가의 어떤 기관도 일터와 삶터를 빼앗긴 채 울부짖는 국민을 편들어 주지 않았다. 용산구, 서울시, 경찰청, 정부 여당 그리고 검찰과 법원이 하나로 똘똘 뭉쳐서 궁극적으로는 재개발건설사의 이익을 도모했다. 그런 점에서 판결의 의미는 실로 중차대하다. 앞으로 자본권력의 이해에 맞서는 자는 누구나 이와 같은 최후를 맞을 것이라고 국가기관이 공적으로 선고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슬프다! 가해자인 국가권력이 반성은커녕 피해자 국민들을 단죄해버렸으니 이토록 가혹하고 불합리한 형벌권 행사를 그냥 두고만 볼 것인가? 국민을 괴롭히고 특정권력을 위해서만 복무하는 국가형벌권이라면 그 위임을 철회하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3.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그럴 이유가 더욱 절실해졌다. 언론법 관련 헌법재판소의 기상천외한 판결은 놀랍다 못해 우스꽝스럽다. 심의표결권 침해, 대리투표와 일사부재의 위배 등 입법절차의 위법성을 낱낱이 밝혔으면서도 법안의 효력을 인정해버렸다. '과정은 위법이나 결과는 합법'이라니 도대체 무슨 짓인가? 국가 권력기관의 뻔뻔스러움은 국민이 인내할 수준을 훨씬 넘어 버렸다. '악법도 법'이라던 유신독재가 부활한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위법도 법'이라는 괴설이 어찌 이리 위풍당당한가?

4. 권력기관들의 부당한 처신이 어디서 비롯했는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것은 2007년 말 삼성 사태에서 여실히 드러났듯 자본에 의한 매수와 오염현상 때문이다. 당시 김용철 변호사와 우리 사제단은 재벌기업 일가의 비자금 축적과 경영권의 불법승계 그리고 이를 무마하기 위한 불법 로비의 실상을 낱낱이 증언한 바 있다. 그러나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 검찰 그리고 특검, 마지막으로 법원까지 극구 진실을 가리고 사실규명을 방해하였다. 그들은 이런 공통된 태도야 말로 매수와 부패의 실상을 반증해주는 것임을 알지 못했다. 용산참사와 언론법에 관한 두 가지 어이없는 판결은 이런 맥락에서 빚어진 웃지 못 할 촌극이다.

5. 지금 대한민국은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과 같은 운명을 맞고 있다. 방향을 바꾸지 않는 한 재앙과 파국을 면할 길이 없다. 과연 누가 나서서 멸절 직전의 민주주의를 살려내고, 파괴일로를 걷고 있는 자연생태계와 아이들의 미래를 지킬 것인가? 오로지 국민 각자의 손에 달렸다. 권력의 주인이 바로 국민이라는 진리를 확고부동하게 만들지 못하면 무참히 얻어맞고 일터에서 쫓겨나 감옥에 갇히는 불쌍한 종살이는 나날이 극심해질 것이다.

6. 한편 오만과 탐욕의 괴물을 탄생시킨 것은 바로 국민이라는 점 또한 통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우리부터 욕심을 줄이고, 약자에게 겸손하며 공정과 원칙에 입각한 삶을 살지 않는 한 국가권력은 언제나 우리를 괴롭히고 핍박할 것이다. 힘든 때 일수록 희망의 표징을 해석할 줄도 알아야 한다. 지난 4월에 이어 10월 28일 재보선에서도 한나라당이 연패하였다. 국민 대다수가 정부와 여당의 실체를 깨닫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특히 대학생들이 적극 나서서 분발했다는 점은 긍정적인 변화다. 더욱이 헌재의 판결을 보며 비분강개 대신 명랑한 풍자로 즉각 대응하는 네티즌의 태도는 촛불 이후에도 시민들의 자신감과 활력이 여전함을 증명해주었다. 부디 불굴의 정신으로 정부의 탈선과 광기를 잠재우고 새로운 국가 공동체를 준비하는 일에 다 같이 신명을 내자. 군사독재의 흉악을 물리쳤던 우리의 저력을 기억하자.

2009년 11월 2일 죽은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하는 위령의 날에
서울광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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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요괴전 - 넓게 생각하고 좁게 살기 생태경제학 시리즈 1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어린시절에는 워낙 독재가 판을 치던 시대였고, 물리적 압박이 다른 것들을 사소하게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에 군사정권만 물러나면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 새로운 시대가 무엇이 되었건, 일종의 공공의 재산이 전체 민중의 생존 조건을 퐁
요롭게 만들 것이라고 상상했고, 막연하나마 좋은 세상이 무조건 도래할 것이라 믿었다.  

민주화 10년의 역사는 어쩌면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는 그 자명한 사실이
상부구조의 장악을 통해 하부구조까지 변혁시키겠다는 의지를 순차적으로 배반해온
시절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민주화라는 당위적 명제만을 가지고 정권을 획득하려고 했을 뿐 그 정권
을 지탱하고 있는 자본의 질서에 대해서는 너무 안이하게 대응했는지도 모르겟다.
결국, 자본의 전면적 자유는 노동과 전체 사회질서의 숨막히는 통제를 가져왔고 문제는
군사정권의 물리적이고 폭력적인 통제가 아닌, 자본의 섬세하면서도 더욱 촘촘한
통제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이다. 

생태의 문제는 결국 자본의 문제다. 자본의 작동 방식에 대한 문제이고 자본주의적
삶을 유지하는 우리 모두의 생활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석훈이 문제제기하는 부분에 대한 의식은 이전 부터 꾸준하게 이어져 왔을 것이다.
그러나 나 개인적으로는 이제야 이 문제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 책은 중고생을 위해 썼다고 한다.
기성세대는 이미 생태파괴로 인한 물질적 기득권을 가지고 있고 미적으로 이미 구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렇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누구도 생태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자라나는 세대들이 이런 문제의식을 느낄 수도 없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돈이 개발이 기술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탈출구는 적기 마련이다.  

삶의 문제는 소소하다. 그러나 그 소소한 삶도 거대한 사회의 움직임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소소한 삶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귀찮아 지는 여러가지 일들을 감내하지
않고 좋은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정치도 경제도 이제는 생태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럼에도 왜 이리 그 길은 멀기만 해 보이는 것인지... 그래도 등에처럼 끊임없이
주의를 환기시키는 우석훈 같은 사람은 너무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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