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대한 발명, 수 GO GO 과학특공대 1
정완상 지음 / 이치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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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 3, 4, 5, 6, 7, 8, 9, 0, 이리 열개가 지금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 숫자입니다. 아이들이 처음 배울 때 손가락을 사용하며 어려워하기도 하지만 이내 익숙해지만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는 숫자들입니다. 하나를 1이라고 하고 두개를 2라고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지만, 이렇게 숫자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까지는 기나긴 숫자의 발명과 변천이라는 과정을 거친 것이지요. 바로 이 책은 숫자가 자연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기막힌 발명품이라는 사실과 이렇게 훌륭하고 편리한 모습을 갖추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매쓰팬 -12살의 수학천재-이 '수학현실 (MR)' 프로그램을 통해 수에 대해서 처음 여행을 떠난 곳은 숫자가 없는 '수몰라' 왕국의 '수시로' 왕의 궁전입니다. 숫자를 모르는 왕국의 사람들에게 매쓰팬이 제시한 방법은 일명 '찔찔수'. 물건의 갯수만큼 '찔'이라는 말을 일대일 대응시키는 것입니다. 인류가 최초로 숫자를 표현한 방법을 이야기한 것인데,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에서 처음 사용된 숫자의 형태에 대한 설명입니다. 하지만 찔찔수의 가장 큰 단점은 숫자가 커질수록 기록이 어려워진다는 사실이었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이 '코찔수' 즉 하나는 '찔' 5를 '코'라고 표현하고 5보다 하나 더 작으면 '찔코', 하나 더 크면 '코찔'로 표현하면 훨씬 기록이 간단해지지요. 또한 십은 '뽀'로 표현하구요. 이 '코찔수'는 그리스와 로마 숫자에 대한 설명입니다. I, II...IV, V, VI...IX, X, XI 의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찔', '코', '뽀'로 변형한 것입니다. 코찔수가 찔찔수에 비해 많이 편리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에는 서로 더하는 등의 셈을 할때 난해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우리가 숫자라고 하는 모습의 '앗사라비아 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아라비아 숫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부분은 설명이 필요없겠고, 마지막으로 소득과 빚의 개념에서 비롯된 '수와 빽수'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부분은 양수와 음수에 대한 것입니다. 음수의 개념과 필요에 대한 이해를 돕는 내용입니다. 

 초등학생이 되면 수에 대한 개념과 기본적인 셈에 대한 것들을 배우게 됩니다. 요즈음은 유치원에서 미리 선행학습이 되지요.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은 숫자와 사칙연산, 그리고 여러형식의 수학적 접근 등에 대한 것이지, 수의 기원이나 발전 등에 대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숫자가 얼마나 대단한 발명품인지, 그리고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과정이 얼마나 환상적(?)인 일인지 모르고 고단하게 셈을 익히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러한 책을 통해서 숫자의 발명과 발전과정을 이해하게 된다면, 자신들이 가지고 노는 숫자가 얼마나 대단하고 흥미로운 것인지, 자신들이 하는 셈이 얼마나 대단하고 마술같은 과정인지 알고 놀라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수학시간이 지루한 배움의 과정이라기 보다는 책속의 매쓰팬처럼 흥미로운 여행의 시간이 될 수 있겠지요. 특히 '찔찔수'와 '코찔수' 부분은 다른 책에서는 쉽게 볼수 없었던 숫자의 탄생과 초기 변천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한 탁월하고 흥미를 끄는 부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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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 콘서트 - 창세기 1장이 가슴 벅차게 믿어지는
이재만 지음 / 두란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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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블 TV의 과학관련 채널에서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요즈음도 두 진영의 주장과 이야기를 꾸준히 방송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당시 프로그램이 주의를 끌었던 것은 대학생이 된 미국의 독실한 크리스챤 가정의 청년-가정의 분위기 못지 않게 신앙에 충실하려고 하는 젊은이였습니다-이 학교생활 가운데 부딪히게 되는 창조와 진화에 대한 갈등을 나름대로 해결해 나가려는 노력을 그린 내용이었습니다. 자신이 신앙안에서 믿어왔던 것과 상반되는 증거와 자료를 담고있다고만 생각해온 진화론자들의 의견, 하지만 진화론자들의 주장속에도 일견 타당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떻게든 자신의 신앙안에서 그러한 주장들을 받아들이고 포용하고자 고심하던 청년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와 언쟁을 하면서 진화론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아버지의 강한 주장에 대해, 거기에도 뭔가 합당한 이야기와 주장들이 있어서 그것들은 수용하고 싶다는 청년,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그러한 과정을 겪으며 진화론자가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를 자신의 대화속에 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청년의 아버지와 다르게, 프로그램 중에는 창조주를 믿으면서도 진화론을 옹호하는 교수에 대한 소개도 있었는데, 그는 창조론과 진화론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창조론에 대한 진화론의 몇가지 첨예한 대척점을 보류한다면 창조론 안에 진화론의 성과들을 품을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주장이었던 듯 합니다. 물론 다른 시각에서 보면 진화론 자체의 논거가 창조론과는 양립할 수 없는 기초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소홀히 한다는 생각을 할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당시 그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청년이나 그 교수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내게 인상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신앙인의 모습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를 보더라도 창조론과 진화론은 서로 다른 영역처럼 내 안에 분리되어 존재하면서, 교회안이나 일상의 정서적인 측면의 일들은 창조론에 입각한 사고방식이 우위를 점하지만 세상을 이해하는 지식, 그러니까 생물학이나 지구과학, 그리고 인류의 기원 등에 대한 과학적인 사실을 따질 때면 어김없이 창조론적인 관점은 수그러들고 그동안 학교에서 그리고 각종 서적들을 대하며 익혔던 진화론적인 사고가 자동적으로 작동하곤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홍수보다는 공룡들이 노닐던 쥐라기나 백악기의 이야기들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고, 성경이 말하는 천지창조에 대한 기록보다는 과학책이 말하는 우주와 지구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들이 더 사실적으로 생각되는 면이 있었습니다. 그런면에서 그 청년의 고뇌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신선하게 다가왔고, 아직까지 그처럼 현실세계속에서의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충돌을 심각하게 고민하지 못했던 사실에 대한 자각이 생겼다고나 할까요.... 한데 이러한 자각에 더하여 그동안 신앙적인 면에서만 인정하고 살던 창조론에 대한 믿음을 현실세계에 적용하여 사실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말 것을 외치는 음성을 이 책 <창조과학 콘서트>를 통해서 듣게 됩니다. 단순한 창조론의 틀안에 진화론의 타당한 부분을 받아들여 포용하자는 타협에 의해서가 아니라,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의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노아의 홍수로 이어지는 사건을 철저히 창조자의 입장에서 들여다보면, 그러한 사건이 단순한 신화적인 기록이 아닌 사실 그대로의 역사라는 것을, 천지만물에 새겨진 흔적들을 통해서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저자가 말하는 진화론적인 관점으로 설명하였을때 어색하거나 실제와 부합되지 않지만 성경적인 창조론에 입각하여 설명하였을 때 더 완벽하게 이해되는 것들에 대한 사실 중의 몇가지 흥미로운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는 진화론에 바탕을 둔 지질학에서 지구의 역사를 말할 때, 이제는 당연한 진실이 되어버린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 등으로 표현하는 지질학적인 연대와 단순한 무척추 동물에서 시작하여 복잡한 고등동물의 화석까지 순서대로 나열한 지질주상도의 수직적인 배열의 진실성에 대한 것인데, 실제로 그 순서대로 지층이나 화석이 발견되는 곳은 지구상의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고, 실제 화석이 발견되는 지층은 그러한 수직적인 순서보다는 다분히 수평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으며, 지질주상도를 이루는 화석 가운데 빠진고리가 발견된 적이 아직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실제 많은 화석이 진화론적인 순서로 발견된 것이 아니라, 진화론이라는 가설을 설명하기 위해 가정의 순서에 따라 그 자리를 정해놓은 것뿐이라는 것, 즉 진화의 증거가 먼저가 아니라 진화론이라는 가설에 대한 믿음이 먼저였고 그 믿음에 따라 모든 화석들을 재배열하다보니 설명할 수 없는 오류나 빠진 고리들이 메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오류들은 노아의 홍수 등의 대격변으로 설명한다면 훨씬 타당하게 설명되며, 그랜드캐년의 지층 구조를 통해 태초에서 삼일째 만들어진 창조시의 땅과 홍수이후의 땅으로 나누어 지질학적인 특성이나 화석의 분포등에 대해서 살펴보면 그러한 주장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입니다. 또한 퇴적암이나 화석의 생성에 대한 고찰을 하다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오랜세월에 걸친 퇴적작용에 의한 것이 아닌 환경의 격변에 의해 생성된 것이며, 화석도 죽어서 묻히는 긴 과정을 통해서 생성되었다는 진화론적인 설명이 아닌 노아의 홍수와 같은 격변의 과정속에서 살아서 묻혀서 생성된 모습들이라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고찰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공룡의 화석이나 멸망에 대한 창조론적인 해석도 담겨 있는데, 솔직히 아직까지 진화론에 세뇌된 내 뇌는 약간의 거부감을 보이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정말일까?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왜 고등동물이나 인간의 화석은 그리도 드물게 발견되는가에 대한 설명도 홍수상황에 대비하여 명쾌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논점은 아마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창조론은 신앙적인 믿음과 연관된 문제이고, 진화론은 과학이라는 틀안에서 증명된 객관적인 사실들이라는 것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지적에서 시작해야 할 듯 합니다. 진화론에 입각한 세상에 대한 설명도 객관적인 사실이 먼저가 아니라, 세상의 생명이나 우주의 시작이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의 긴 세월의 흐름속에서 발전해 왔으리라는 믿음이 먼저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결국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은 신앙과 과학의 대립이 아닌, 세상의 처음이 어떠하였느냐에 대한 믿음, 세상의 질서가 어찌 형성되고 유지되고 있는가에 대한 믿음의 대립이라는 점을 확실히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한 논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리학이나 화학 등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 확증된 사실들을 보일 수 있는 과학의 영역과 진화론이나 우주의 빅뱅 등 실험과 관찰을 통해 확증된 것이 아닌 가설에 의한 설명들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 그래서 지질학자인 저자의 입장에서는 진화론과 동일 과정설 -옛날의 지구도 현재와 동일한 자연과정을 겪었을 것이다는 가설-에 기댄 현대 지질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창조론과 노아의 홍수 등 성경적인 기록에 의거해서 설명한다면 훨씬 합리적으로 설명된다는 사실도 창조론의 관점에서 중요한 부분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신앙인 자신들도 자라면서 매일 보고 듣는 것이 진화론이다 보니 그러한 사고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고백과 그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창조과학이 과학적인 접근을 추구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성경을 완전히 믿고 신뢰해야 한다는 믿음의 문제가 더 중오해진다는 사실도 흥미롭고 새겨야 할 주장이라 하겠습니다. 

 창조론에 입각한 세상에 대한 해석방법은 천지만물의 시작이 창조주의 의지로 시작되었다는 믿음에 기초하여 하나님이 세상에 남기신 증거들을 과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차분히 확인해나가려는 연역법적인 자세라면, 진화론은 천지만물의 시작을 현재의 모든 만물과 지구나 우주라는 공간에서 찾은 단서들을 재배열하여 세운 과거에 대한 가설을 끊임없이 수정하고 개정해가는 귀납법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근본적인 시작의 차이는 세상에 창조주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사실에 있고, 여기에 대한 대답이 세상 만물을 어떤 시각을 가지고 이해할 것인가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으로서 이 책의 내용이 무엇보다도 반가운 것은 아마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이라고 생각했던 진화론 안에 담긴 헛점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이 지구와 우주에 새겨진 여러가지 창조주의 흔적들을 단순히 '믿음으로'라는 구호로 믿기를 강요하기보다는 흥분하지 않고 조리있게 그것들이 창조의 흔적임을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사실들에 대한 증거임을 설명할 수 있는 근거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 사실입니다. 이 이야기들은 진화론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혼돈스러워하는 많은 신앙인들에게 창세기 1장의 내용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먼저는 믿는 자들에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진실과 '태양이 없어도 하나님의 섭리안에서라면 인간이 살수 있다'는 고백이 공허한 외침이 아닌 삶의 현실속에서도 살아 숨쉬는 진실과 고백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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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 불완전한 과학에 대한 한 외과의사의 노트
아툴 가완디 지음, 김미화 옮김, 박재영 감수 / 동녘사이언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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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 누구나 의학이 아직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많은 진보를 이루었다는 의학기술로 어찌하지 못하는 질병들이 도처에 널려 있고, 또 다른 새로운 질병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페니실린으로 시작된 항생제의 혁명을 거쳐 일견 많은 감염성 질환들을 정복해가면서 한껏 부풀어 올랐던 모든 질병을 정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현대의학에 대한 기대는 결국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한발한발 더디기만 한-하지만 의미있는- 발걸음으로 또다른 개선의 과정을 걷고 있을 뿐이라는 느낌입니다. 물론 그러한 개선의 과정이 과거에 비하면 놀랄만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완전하지 못하고, 실수투성이기도 하고 때로는 어이없는 실수로 사람을 놀래키는 모습으로 현대의학은 우리 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환자들은 현대의학이 완전하지 못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만큼은 완전하고 안전하게 손을 내밀어 주기를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완전하지 못한 의사와 현대의학에 기대어서 말입니다.

 저자는 들어가는 말을 '우리는 얼마나 모르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현대의학이 얼마나 모르는가에 대한 예로 엉덩이에 총상을 입은 젊은 청년에 대한 자신의 진료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방광과 장을 관통한 것이 의심되어 응급수술을 했건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고, 기존의 관통을 의심할 만한 소견도 이내 말끔히 사라져버린 환자, 하지만 수술을 마치고 다시 확인한 사진에 복부안쪽에서 총알이 발견된 환자에 대한 황당한(?)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의사들이 안다는 것, 그리고 그 지식을 통해서 확신을 가지고 하는 의료행위들이 얼마나 쉽게 부정될 수 있는지에 대한 자신의 고백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시작으로 외부에서 기대하는 현대의학의 논리정연하고 정확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불완전성과 불확실성, 부단한 변화와 오류에 빠지기 쉬운 인간의 모험이 담긴 목숨을 건 줄타기인지에 대한 고백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현대의학 안에 있는 과학이 또한 그 안에 있는 인간의 습관과 직감, 때로는 낡은 추측으로 얽혀, 아는 것과 목표로 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만들고, 그 간극으로 인해 일이 꼬이게 되는 이야기들을 가감없이 풀어내고 있습니다. '보기보다는 덜 완벽하지만, 또한 보기보다는 특별한' 의학에 대한 이야기들을 말입니다. 

 저자가 현대 의학을 들여다보는 내용은 다양한 진보와 발전을 자랑하는 의학의 눈부신 모습이 아니라, 완벽해 보이고 적어도 어느정도 잘 통제되고 있어 보이는 의학과 의료시스템 속에 숨어있는 오류의 가능성과 불가사의, 그리고 불확실성에 대한 것들입니다. 정확하고 논리정연하게 진행되는 듯한, 의사를 통한 의학의 실행속에 담긴 불확실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은 결국 많은 이들에게 의학에 대한 불신과 비난을 낳는 소재가 되고 -서점가의 많은 책들이 이러한 냉소적인 시각을 담고 있습니다- 있지만, 적어도 저자는 그러한 이야기를 통해 결국 의학의 본모습이 그러하다는 고백을 하고 있고, 또한 애정어린 시각으로 그 안에서 고민하며 문제를 헤쳐나가려는 의사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특별할 수 밖에 없는 의학의 모습을 말입니다.

 1부에서는 의학의 오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신출내기 의사들이 술기를 배우는 과정을 통해서 한 사람의 능숙한 의사가 탄생하기까지 겪어야 하는 위험과 암묵적인 인정 등에 대한 이야기에서 부터 의사들이 실수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그러한 실수를 의사사회 내부에서 치열한 의견교환을 통해서 교정해 나가는 과정, 의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아픈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닌 건강한 사람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남들과 단절된 혼자의 삶을 사는 모습에 대해서, 그리고 굿맨이라는 의사의 실례를 통해서 나쁜의사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좋은 의사가 어느 순간에라도 나쁜 의사로 변질(?)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그러한 과정이 잘 통제되거나 걸러질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2부에서의 의학의 지식과 실제 현실속에서 발생한 사건들 사이의 불가사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미신일 뿐이라고 믿었던 '13일의 금요일의 보름달'인 날, 당직을 서며 그 미신이 현실이 되어버린 일, 의학의 역사를 지배하였던 통증에 대한 가설의 변화에 따른 통증에 대한 이해와 치료의 변화, 그리고 의학적이라기 보다는 사회문화적이라거나 정치적인 성격을 띠어가는 통증의 성격, 심한 임신성 구역증을 겪는 산모가 갖은 고난을 극복하고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는 과정을 통해 보는 병적인 것이라고 취급하여 -그래서 그것을 어떻게든 치료하려고만 했던 의학의 모습에 기대어- 호전시켜보려고 했던 구역증의 또 다른 의미에 대한 고찰, 수술을 통해 안면홍조를 치료했지만 심리적인 위기를 겪는 아나운서를 통해 단순한 수술을 통해 달라진 그리고 더 당당해지기까지하는 모습과 진정한 내면은 그대로이고 수술을 통해 겉으로 나타난 모습만 바뀌었을 뿐인 자아 사이의 충돌, 현재 효과가 인정되었지만 미래의 여러 합병증이나 위험성까지는 확인되지 않은 위수술을 통해서 비만증을 고치려고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의학이라는 표면뒤에 감춰진 의학으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의학의 수수께끼와 아직까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3부에서는 의학의 불확실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죽은 이의 부검을 통해서 진단오류의 경우가 의사의 무지와 무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경우도 있다는 것, 소아 돌연사 증후군의 사례처럼 이유나 원인을 알거나 증명하기 어려운 상황, 풀어내기가 쉽지 않은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의사 사이의 치료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문제, 의료인으로서 무수히 부딪히는 불확실성의 회색지대에서 결국 객관적인 증거나 알고리즘의 부족속에서 의사의 감(느낌)에 의존하여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경우 등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그러한 불확실성과 무지에 현명하게 대응하고자 하는 의사들의 고민을 담아 들려주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분명 냉정하고 딱딱해 보이는 의학을 주제로 삼고 있지만 저자는 이야기 책을 엮어가듯이 내용을 술술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의학의 본질에서 시작하여 내면에 숨겨진 고민과 부족함, 그리고 특별함 등에 대한 것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의사와 환자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진심도 잃지 않고 있구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의사와 병원 그리고 현대 의학에 대한 따뜻한 이해의 기회가 되고, 의사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겸손함과 불확실성과 오류의 가능성에 대항해 현명하게 싸우고자 하는 열정, 그리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환자와 질병과 부딪치는 현장속에서 더 나아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겨 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인간의 지식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생각이다. 우리는 아직 더 나아질 수 있다.'

'어떤 조치가 취해진다해도 의사들은 때때로 비틀거릴 것이며, 그런 우리에게 완벽을 요구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우리에게 요구할 것은 완벽이 아니라 완벽을 향한 중단없는 노력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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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아이 사이 우리 사이 시리즈 1
하임 기너트 외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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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아의 목적은 무엇일까? 아이가 반듯한 인간, 곧 동정심이 있고, 남을 보살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인간다운 사람으로 키울 수 있을까? 자비로운 방법으로 키울 때에만 그럴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과정이 방법이라는 것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을, 예절바르게 행동하도록 하는 데 효과가 있을까 하여 아이들의 감정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에만, 인간다운 사람으로 키울 수 있다./ 아이들은 경험을 통해서 배운다. 아이들은 아직 굳지 않은 시멘트와 같아서, 무슨 말이든 그 위에 떨어지면 선명한 흔적을 남긴다. 그러무로 부모들에게는 아이들을 분노하게 하거나, 상처를 입히거나, 자신감을 떨어뜨리거나, 자신의 능력과 자존심에 대한 믿음을 파괴하지 않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가정으 분위기를 좌우하는 것은 부모이다. 모든 문제에 대해 부모가 반응하는 태도에 따라 분위기가 살아나거나 가라앉거나 한다. 그러니까 부모들은 배척의 언어를 버리고, 너그러움의 언어를 익혀야 한다. 부모들은 너그러움의 언어를 알고 있다. 자기 부모들이 손님과 낯선 사람들에게 그 언어를 사용할 때, 들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행동을 비판하는 언어가 아니라 감정을 보호하는 언어이다."

  책의 마지막 장 <요약: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기> 의 첫머리의 글입니다. 아마도 이 세 문단의 글에 저자가 부모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대부분이 들어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아이를 돌보고 교육하는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서 시작하여, 그러한 목적을 이루어 가기 위해서 사용되는 수단과 방법, 아이를 존중하고 감정을 보호해 주는 대화의 필요성, 그리고 그러한 대화에 사용되는 언어는 비판하는 언어가 아닌 감정을 보호하는 너그러운 언어라는 것 등에 대한 기술인데, 이 간단한 글 속에 저자가 말하고 싶은, 그리고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를 바르게 키울 수 있는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이 글 뒤에 저자는 청바지를 입고 길을 건너다가 택시에 치일뻔한 청년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놀란 택시 기사는 우리 대부분이 상상하듯이 -아마 우리 대부분이 그렇게 하겠지요- 그렇게 험하게 청년에게 쏘아 붙이는데, 청년은 그에게 말합니다. '의사한테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합니까?' 그의 말에 택시 기사는 잘못을 깨닫고 사과합니다. 아마 택시 기사를 부모로, 그 청년을 우리 아이들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번 아이들에게 택시 기사처럼 퍼부을때, 청년의 말을 기억해야 겠습니다. "의사한테도 그런식으로 말하세요?"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아이들을 의사로 생각하고 말한다면 야만인의 언어가 아닌 문명인의 언어, 상처를 주고 화나게 만드는 언어가 아닌 조심스럽게 자신을 이해시키고 존중하는 언어로 말할 겁니다. 바로 그러한 대화의 기술이 부모들이 육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즉 아이들을 반듯하고 올바른 인간, 동정심이 있고 남을 존중하고 돌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 배워야 할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며 기술입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영어 몰입식 교육에서부터 시작하여 항상 정권이 바뀌면 되풀이하던 요란한 교육개혁에 대한 나팔 소리가 울립니다. 부모들과 아이들은 그 소리에 놀라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로 너도 나도 뛰어가기에 바쁘구요. 하지만 그러한 소란에 파묻혀 뒤처지지 않기 위한 부산함은 있지만, '왜 이러는 거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진지함마저도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인 듯 합니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면, 아이들이 행복은 그들이 원하는 것들에 대한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되지 못하고 결국 학교에서 받아오는 시험점수와 부모들의 만족감으로 표현되고 평가된다고나 해야할까요? 이러한 모습은 결국 왜곡된 우리 나라 교육의 현실이지만, 좀더 확대한다면 어렸을 때부터 아이를 보살피고 키우는 육아의 왜곡에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릅니다. 많은 어린 아이들에 대한 육아나 교육에 대한 서적들을 돌이켜보면, 진지한 육아나 교육의 목적을 고민하고,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들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보다는, 아이를 더 똑똑하게 키우고 더 많은 것들을 가르치고, 더 좋은 학교를 보내기 위한 교육방법이나 경험들에 대한 서적들이 훨씬 더 관심을 끌었다는 기억이 있으니까요. 그런면에서 이 책은 기존의 육아서적에 비해 훨씬 덜 자극적이고, 덜 화려하고, 어떤 면에서는 밋밋하기까지도 하지만, 진지하게 읽는다면 육아에 대해서 깊은 통찰력과 기본을 담은 진국의 맛을 볼 수 있는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아이와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는 모든 부모가 고민하는 올바른 육아를 위한 시작과 끝에 해당하는 질문일 듯 합니다. 결국 많은 사람과의 관계가 그러하듯이, 아이와의 관계도 말로 대표되는 의사소통의 과정이고, 그러한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다면 결국 서로의 관계도 매끄럽지 못할 것은 너무 당연 것이겠지요. 저자의 이 질문에 대한 해결책은 '부모들이 아이를 존중하고,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감정을 보호하는 언어를 구사하는 기술을 배워야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부모들의 경우, 아이에 대한 사랑과 육아에 대한 통찰력이 없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기술을 익히지 못해서 자신이 무슨 짓을 아이에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바르게 교육한다고 잔소리를 해대지만 결국 그러한 무지 가운데 내뱉어진 언어로 아이를 비난하고, 감정에 상처를 입히고, 창피주고, 꾸짖고, 조롱하고, 위협하고, 낙인찍고, 처벌하고,설교하고, 훈계하게 되고, 결과는 자신이 바라던 행복하고 올바른 아이가 아닌 겁 많고, 부끄러움 타고, 경솔하고, 버릇없고, 겸손하지 못하고, 미움받는 바람직하지 못한 성격을 가진 아이로 내모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결국 아이에게 깊은 애정과 사랑을 품었지만, 그에 걸맞는 훌륭한 부모가 되기 위한 기술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이고,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부모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훌륭한 부모가 되기 위한 기술, 즉 대화의 기술이 책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언급했듯이 부모들이 집에 온 손님이 우산을 놓고 갔을때, 우산을 가지고 따라가서 전해주면서 "여기 당신 우산 있어요."라고 하지 "당신 주위가 산만하군요."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의사에게 가서 자신의 증상을 설명할 때, 앞의 택시 기사처럼 막말을 해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많은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사고가 날뻔한 청바지를 입은 청년에게 택시 기사가 했듯이, 아니면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가서 때로 자신에게 무례하게 구는 사람에게도 내뱉지 않고 참던 험악한 말들을 쏟아내곤 할 겁니다. 아이들이기때문에? 그 순간 한 인격체로써 아이들을 존중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조심하고 아끼는 마음을 순간 잃어버렸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내 가정의 아이들은 분명 집에 온 손님보다, 우리가 아팠을 때 찾는 의사들보다 훨씬 더 소중한 이들인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그런 소중한 보물들을 우리가 장롱속이나 은행금고 속에 애지중지하며 보관하는 보석보다도 더 귀하게 관리하고 다루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진주를 돼지우리에 던지지 않듯이, 아이들을 시궁창에 쑤셔넣고 싶어하는 부모는 없겠지요. 아이들의 귀중한 영혼을 반듯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격려하면서 기를 수 있는 지혜를 이 책을 통해서 많은 부모들이 얻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나를 비롯한 자녀를 가진 모든 어른들이 '부모가 되지 말고, 부모로서의 인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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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인을 말하다
이중텐 지음, 박경숙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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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옛날 텔리비젼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중국사람 행세를 할려면,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은 말 끝에 '~했어(다)해'를 붙여서 줄기차게 말을 쏟아내는 것으로 표현해 내곤 했던 기억은 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에 덧붙여, 독특한 머리모양과 복장 등이 일반인들이 중국사람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이미지겠지요. 물론 좀더 깊은 인간성이나 문화 등에 대한 이야기로 옮아가면 많은 이견이 생기고, 미묘한 차이들이 생기겠지만, 우리의 중국사람에 대한 형상은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닮아 있는 것은 사실일겁니다. 과거의 역사에서 중국과 우리나라는 결코 뗄려야 뗄수 없는 관계를 유지해온 터이라, 많은 것을 서로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구요. 역사속에서도 그랬지만, 요즈음은 성장하는 중국의 영향력이 갈수록 중시되는 때인지라, 그들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고, 그에 편승한 다양한 시각의 책들이 소개되고 있고, 그만큼 그들에 대한 지식도 깊어지고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여하튼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우리의 처지에서는 중국인이 직접 자신들의 속살을 들여다보면서 말하는 중국인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울 수 밖에 없는 소재 중의 하나입니다.

 '백가강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삼국지>를 강의하여 유명세를 탔고, 그러한 연유로 우리에게까지도 널리 알려진 이중톈 교수가 이 책의 저자입니다. 저자의 그러한 이력이 곧, 중국인 스스로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던 스스로의 모습을 들여다 보고 표현해 낼  수 있는 남다른 능력을 지녔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중톈 교수가 이 책에서 말하는 중국인에 대한 이야기는, 어찌보면 중국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중국인이 지닌 특성이나 독특함을 문화적인 면에서 고찰하고 있다는 이야기지요. 물론 여기서 문화라고 하는 것은 박물관이나 역사책에 기록된 그러한 문화가 아닌, 일상의 삶 속에 배여있는 문화, 그러니까 일상속에서 행해지는 여러가지 일을 중국인의 문화라는 코드를  사용하여 해석해 내고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저자가 읽어내는 그러한 문화적 코드의 키워드로 사용되는 단어는 바로 음식, 의복, 체면, 인정, 단위, 가정, 결혼과 연애, 우정, 그리고 한담의 9가지 단어입니다. 간단한 단어들이지만 저자는 그 단어와 연관시켜 중국인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일상의 삶속에 담긴 문화적인 특징과 의미에 대해서 깊은 이야기들 -중국인이 아니라면 알수 없을, 그리고 중국인이라면 너무도 익숙해서  깜빡해버릴 사실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과의 역사적인 관계라는 측면을 생각해보면 이해되고 예상할 수 있겠지만, 많은 부분에선 우리의 정서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내용들입니다. 물론 더 광활한 대륙에, 더 다양한 민족과 복잡한 역사의 과정, 그리고 공산당의 집권 이후로 다른 길을 걷게 됨으로 인한 가치관의 영향에 의한 차이점이 큰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의 정서와 사고방식이 비슷하게 닮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누군가 말하길, 중국 문화는 먹는 것에서 나왔고, 서양 문화는 사랑에서 나왔다고 한다'로 시작되는 책의 첫 구절처럼, 먹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중시하던 중국인들의 문화를 시작으로 하는 다양하고 박식함이 넘치는 이야기들은 의복과 체면, 인정과 가정 등의 중국인들의 삶을 표현해 줄 수 있는 단어들로 옮겨가며 펼쳐집니다. 여러가지 주제들을 저자가 다양한 역사적 기록들을 섭렵하여 설명하며 자신의 주장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현재 중국인들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관찰과 분석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매번 그러한 주장과 해석의 타당함과 탁월함에 고개들 끄덕이게 하고 ,새롭게 그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게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자의 교수라는 직업에 어울릴 듯한 학구적인(?) 자세로 문제를 다루는 부분들이 있어 읽어내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 물론 이것은 처음 책을 집어들 때 가벼운 읽을 거리를 기대하였고, 저자가 말하는 다양한 것들을 다 알거나 이해하지 못한 무지에서 비롯된 면이 클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하지만 각각의 주제에 대한 저자의  방대한 고찰과 예리한 통찰력을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던 중국인의 모습을 좀더 깊고 합리적인 이해에 도달하게 만든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하여야겠습니다. 예를 들면, 중국인과 사업을 하는 사람이 왜  함께 식사를 하고 술을 마셔야 했는지, 왜 사업상으로 만나는 그들의 말이 신용이 없어보였고, 권모술수를 부리는 듯이 보였는지, 어떻게 뇌물이 그리 쉽게 일을 처리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었는지 등 불합리하게 생각되던 그들의 모습속에 담긴 역사적, 문화적 사실에 대한 지식의 깊이를 더하고 또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많은 숨겨진 '왜? 에 대한 이유'를 알려주고 있으니까요.

 호흡이 길게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부담스러움을 갖게 하기도 하지만, 인내를 가지고 읽어 낸다면 '강직한 듯 원만하고, 솔직한 듯 속물스러운 중국인'의 본 모습을 만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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