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시집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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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진 세월 가고 /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고 하는 작가의 말을 들으며, 아직 젊다는 사실 하나로, 내 삶에서 미련스럽게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저이는 저리 편안히 내물리친 것들이건만, 내 삶에는 그리 버리고 갈 것들보다는 내 속에 쌓아두고 어떻게든 잃지 않고싶은 것들이 대부분이니, 아직은 작가가 말하는 그러한 삶과 죽음의 문턱에 이르는 지혜의 키는 한참이나 부족한 것이겠지요. 작가도 뒤돌아본 삶에 후회가 없지는 않았던 듯이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그러한 뒤돌아봄은 나같은 범부가 가지는 집착이나 회한이 아닌, 뒤에 남겨진 삶에 대한 애정이 담긴 정리의 시간이겠지요.

 <토지>로 처음 만난 작가에 대한 기억은 실제로는 박경리라는 작가에 대한 기억이라기 보다는 그의 작품 토지에 대한 기억이요, 느낌이었을 겁니다. 작가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가 처음 생긴 것은 언젠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나온, 시골 집의 장독대 옆에서, 그리고 밭에서 잡초를 매며 땀을 닦아 올리던 모습을 통해서였던 듯 합니다. 이미 나이가 많이 들어 포근한 할머니의 웃음 띤 얼굴을 보였던 모습이었는데..... 아마도 토지를 읽고 나서 두고두고 '박경리'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새기게 되었지만, 진짜 실체를 더듬어 확인하지도, 모습을 찾아 굳이 기억할려고도 하지도 않았는데, 우연찮은 기회에 눈앞에 소개된 작가의 모습은 순간 충격을 주고, 아련한 울림을 남겼었다는 기억입니다. 뭔가 달라보이기를 바랐을텐데, 단아하고 흐트러짐 없는 곧음은 느껴지나 내 주위의 어른들과 많이 달라보이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들 때문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책 따로, 작가 따로 식의 이해에 머물러 있었다는 말이 아마 작가와 그녀의 작품에 대한 솔직함일 텐데..... 이리 홀연히 이승을 버리고 가버린 작가의 유고시집을 받고서 보니, 이제야 같은 하늘아래 있었던 작가의 한과 삶, 과거와 미래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이 책에 실린 40여편의 시는, 작가가 소설을 통해서 독자에게 말했던 것들보다는 훨씬 직접적인 감성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이나 등장인물이라는 하나의 분신을 가지고, 이야기의 이면에 앉아서 글을 진행하는 소설보다는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서 쓴 작가의 시들은 훨씬 직접적이고 감성적이기도 하고, 또한 세상의 생사화복을 품고자 한 작가의 넓은 품을 멀지 않게 느껴지게도 합니다.

 '사시사철 나는 / 할 말을 못하여 몸살이 난다 /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며 / 다만 절실한 것은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 그 절실한 것은 / 대체 무엇이었을까' 누구나 가졌을 절실한 비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바로 그것', 이 책에 담긴 시들은 바로 그 절실한 그 무엇의 일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게 지극히 개인적이든, 사회참여적인 발언이든, 그냥 바라만 보는 관조자의 모습이든..... 작가가 자신이 삶속에서  순간순간 모아 두었던 비밀 꾸러미일 수도 있겠습니다..... 작가는 버리고 갈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도 내 안에 많은 것을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잃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범부의 모습일 뿐입니다. 세상과 삶을 알기에는 아직은 조금 젊다는 핑계를 둘러대곤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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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
알렉산드르 R. 루리야 지음, 한미선 옮김 / 도솔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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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하지만 다른 젊은이들처럼 부푼 꿈을 안고 살던 청년, 과학기술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멋진 프로젝트와 직장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한 삶을 살았던 청년 자세츠키. 이 이야기는 청년 자세츠키가 2차대전의 포화에 휩쓸려 참전하고, 독일군과의 한 전투에서 총에 맞아 두개골이 깨지고 좌측 두정부쪽으로 총알이 파고들어 좌측 두정후두부를 손상당한 뒤에 겪은 기억상실과 실어증으로 인한 고난과 회복을 위한 부단한 시도와 노력을 담을 기록입니다. 자세츠키는 부상후에 온전히 읽지도 쓰지도 말을 하지도 못하였지만, 남아 있는 자신의 능력으로 그러한 상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며 -물론 완전한 의미에서의 회복은 아닙니다- 25년에 걸쳐 3000여쪽의 기록을 하였고, 그의 주치의였던 루리야 박사가 그의 일기를 바탕으로 그의 노력을 재구성하고 거기에 그러한 증상이나 상황이 의미하는 바를 덧붙여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한편의 이야기가 이 책의 내용입니다.

 책의 내용이 비록 실화와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씌여졌고, 환자의 병력을 기록한 투병기록으로서의 의미도 강하게 담겨있지만, 이 책에 대한 가장 단순한 접근방식은 아마 한편의 소설처럼 총상으로 인한 부상에 의해 기억상실과 실어증이 발생한 한 청년의, 인간다워지기 위한 부단한 노력과 투쟁을 담은 기록이라고 생각하고 읽는 방법일 듯 합니다. 내용이 시간과 의미의 전개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고, 기억상실과 실어증이라는 의학 분야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전문적인 용어나 해설을 배제한 증례로서의 이야기 형식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프로이드의 저작들을 읽을 때 등장하는 증례에 대한 보고와 이에 대한 해석이라는 형식과 비슷한 형식이라서 낯설은 방식도 아니구요. 물론 쉽게 읽힐 수 있는 소설류와 비슷하게 취급하더라도, 내용에 대한 포인트를 어디에 맞추느냐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와 반응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다. 책의 말미에 루리아 박사가 에필로그 형식으로 쓴 '전쟁이 없다면......'의 내용처럼 전쟁으로 인해 철저히 파괴된 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전쟁에 대한 신랄한 고발을 외칠수도 있겠습니다. 또한 순수한 의학적인 입장에서 자세츠키의 증상을 분석하여, 그의 상실과 뇌의 특별한 부분의 연관성을 하나씩 되짚어 나가는 학구적인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겠지요. 한편으로는 절망하지 않고 기어이 읽고 쓰는 법을 배우고 상실했던 여러 가지 것들을 배우고 이해하고자, 반복되는 실패에도 괘념치않고 꾸준히 노력해가는 인간승리에 대한 감동을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외에도 몇가지 다른 감상 포인트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책을 읽으며 집중하게 되는 부분은, 기억의 상실과 그것의 회복을 위한 과정에서 어렴풋이 그려지는 기억의 비밀과 의미, 그리고 인간답다고 인정되는 인간성을 구성하는 기본단위 역할을 하는 기억의 실체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입니다. 사람을 다른 동물들과 구분되게 해주는 것들에 대한 것들로 언급되는 것이 언어와 문자, 도구와 문화 등이 있는데, 그러한 것들의 바탕에는 인간의 뇌에 새겨진 기억능력과 언어능력 등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자세츠키의 투쟁을 보며 새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은 현대 과학의 발전으로 뇌과학 및 뇌영상에 대한 분야도 진보를 이루어, 단순한 해부학적인 구조를 넘어서 뇌에서의 여러가지 물질들의 역할에 대한 규명, 사람의 다양한 상태에서 반응하고 활성화되는 뇌부위의 촬영 및 활성정도의 측정, 뇌신경망의 연구를 통한 인공지능의 개발 등 여러 획기적인 내용들이 소개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아직도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이 옳은 말이겠지만, 적어도 자세츠키가 25년에 걸친 투쟁을 거치며 자신의 상태에 대한 기록을 남긴 시대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옳겠지요. 이러한 면에서의 이 책의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바로 뇌과학이 아직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시기에 증상의 기록과 분석을 통해 환자의 뇌손상 부위와 기억 상실 및 언어능력 상실에 대한 성실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과, 읽는 이로 하여금 그러한 것들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할 만한 구석을 남겨주는 부분이 그 중 하나에 해당하지 않을까 합니다. 단순한 루리야 박사의 임상관찰 기록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의사의 눈으로 관찰한 무미건조한 환자의 증상과 손상의 나열로 끝나버렸을 수 있었을테지만, 환자 자신의 느낌과 감정이 담긴 잃어버린 기억과 언어능력의 회복을 위한 투쟁과 고뇌가 고스란히 환자 자신의 손으로 기록되고 그것이 전문가인 루리아 박사의 지식을 통해 설명되고 있기에, 기억과 언어라는 것이 한 사람의 사람됨에 대해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기억과 언어에서 한단계 진보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그것을 상실한 상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생생한 체험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사람이 말을 이해하고 말을 한다는 것, 그리고 어떠한 것을 머릿속에 기억하고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기억해 낸다는 것이 어떠한 과정을 거치고 그 하나하나의 과정이 무엇을 의미하고, 그 과정의 하나하나의 상실이 인간의 삶에서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알수 있으리라는 점도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한 사람의 삶을 향한 투쟁의 기록이기도 하고, 또한 뇌가 손상당한 환자의 임상경과에 대한 기록 및 해석이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딱딱한 의학지식을 담는 방식에 대한 또 다른 시도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책에서는 이것을 고전적인 방법과 낭만적인 방식이라는 말로 구분하였습니다. 한 뇌손상 환자의 25년간의 절망과 승리(?)를 담은, 그리고 정작 기초가 되는 일기를 적은 자세츠키 본인은 끝나지 않은 나의 싸움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이 이야기를, 많은 이들이 서로 다른 느낌과 시각으로 읽게 되고 평가하겠지만, 내게는 기억이라는 것의 실체와 의미, 그리고 그것과 연관된 인간답다는 것의 바탕을 이루는 기억이라는 뇌의 기능 각 부분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큰 의미를 남겨 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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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스트리트
산드라 시스네로스 지음, 권혁 옮김 / 돋을새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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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름한 집은 안 된다. 뒷골목에 있는 공동주택도 안 된다. 남자들을 위한 집도 안 되고 아빠의 집도 안 된다.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한 집. 나를 위한 현관과 나만을 위한 베개와 예쁜 진홍색 페투니아가 있는...... 내 책들과 내 삶의 이야기들이 있는...... . 침대 밑에는 늘 내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그 누구도 내 평화를 흔들어 대지 않는...... 따라다니며 주워야 할, 남들이 버린 너절한 쓰레기도 없는...... . 언제나 눈처럼 조용한 집. 나만을 위한 공간. 시를 쓰기전의 깨끗한 종이 같은...... . - 나만의 집-

 아빠가 복권을 살 때마다 말씀하시고, 엄마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꿈을 꾸듯 들려 주시던 그러한 집..... 아마도 주인공 에스페란자는 두 분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러한 '나만의 집'을 상상하곤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복권에 그들의 꿈을 담아야 하는 가장의 모습이 암시하듯이, 이 가족은 그러한 집을 가질 형편이 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 저곳 여러번의 이사를 하다가 드디어 이 가족이 말하는 진짜 '우리 집'이 마련된 곳은 바로 망고 스트리트의 빨간 집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꿈꾸던 물도 잘 나오고 수도관도 멀쩡한 집, 텔리비젼 속의 멋진 저택처럼 멋진 계단도 있고 지하실도 있고, 욕실도 세 개쯤 있어 순서를 정해 목욕을 하지 않아도 될 수 있는 그런 집은 아니었지만, 수녀님에게 그리고 교장 선생님에게 집을 알려주려고 손가락으로 가르키려할 때면 한편으로는 얼굴이 화끈거리기까지 하는 집이었지만, 비록 현관앞 계단이 너무 비좁고 창문은 너무 작아 답답하고 집 주변에 깨진 벽돌들이 널브러져 있는, 앞마당 같은 건 없고 시시한 가로수 몇그루와 조그만 차고에 욕실도 하나요 침실도 하나밖에 없는 집이었지만 에스페란자의 모든 가족에게 진짜 '우리 집'은 그 망고 스트리트이 작은 빨간 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여전히 복권을 사면서 소망을 품고, 어머니는 이야기 속에 꿈을 담고, 에스페란자 역시 '나만의 집'을 그리며 그리 생활하겠지만, 그러한 소망과 꿈과 바람을 담고 있는 현실은 멕시코 이주민들이 모여살고 있는 허름한 망고 스트리트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에스페란자는 그 공간에서 친구를 만나고 사람을 사귀고 가족과 부대끼며 마음과 영혼과 정신이 성숙해져 갑니다. 때로는 가슴 아픈 사연들과 절망스런 모습들 가운데서, 때로는 정겨운 모습들 가운데서, 그리고 가끔씩은 소망과 웃음이 담긴 사연들 속에서......

 저자가 에스페란자를 통해서 말하는 망고 스트리트는 아마도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우리네 옛 집과 길과 골목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에스페란자가 '나는 할머니의 이름을 물려 받았지만, 창가의 자리만은 물려받지 않겠다'고 자신의 또렷한 자아를 깨닫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세상살이의 이치를 알아가고, 또한 자신의 가슴속에 꿈을  키워가는 자람의 공간이었던 망고 스트리트는 바로 우리가 그리 간직하며 자랐던 우리네 집과 동네, 길과 골목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니 말입니다. 에스페란자가 마지막에 '그들은 내가 다시 돌아오기 위해 떠났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남겨 두고 온 그들을 위해, 떠날 수 없는 그들을 위해, 돌아오기 위해 떠났다는 것을...... .' 이라고 말하였듯이, 우리가 남기고 온 그곳도 매번 우리의 추억의 샘을 자극해 돌아가고픈 곳이 되어 있을테니 말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망고 스트리트와 그곳의 빨간집은 에스페란자가 그리도 벗어나기를 원하였던 곳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에스페란자가 자라고 꿈을 꾸게 한 근간이 되어준 없어서는 안될 곳이었다는 아이러니도 함께 담고 있는 그런 곳이요, 나중에라도 영혼이 쉼을 바랄 때 등기대어 쉬고 싶은 추억이라는 공간의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란히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겠지요. 장소와 지명과 사람이 서로 바뀌어 있기는 하겠지만 말입니다...... 당신의 망고 스트리트는 어디십니까?...... ^^

 참고로 역자 후기를 보면 이 책이 산문시라고 불릴 만큼 문체가 아름답다는 소개글이 있는데, 앞에 언급한 '나만의 집'같은 경우는 번역된 글을 읽어도 그러한 맛을 느낄 수 있지만, 다른 많은 글들에서는 그러한 맛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먼저는 번역이라는 과정을 거쳤다는 한계로 인함이겠지요. 그런 면을 고려한다면, 그리고 어느 정도 언어에 대한 능력이 되는 사람이라면 원서를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는 생각이 드는 면이 있어 마지막에 사족을 붙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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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 조선왕조실록 - 조선왕조실록으로 오늘을 읽는다
이남희 지음 / 다할미디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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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와 현재의 대화',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비롯된, 먹물을 먹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곱씹었을 역사에 대한 간단명료한 정의입니다. 그리고 이 순간 그 간단명료한 정의가 머릿속을 스치는 것은, 이 책이 그 말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라고 할만하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디지털화 작업을 통해 <국역 조선왕조실록 CD-ROM>이 보급되고, 일반인들도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서 방대한 조선왕조실록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면에서 어려운 한자속에 파묻혀 있던 조선의 생생한 역사가 우리곁에 다가섰는데,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그러한 역사와 우리가 대화하는 방식에 대한 한가지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방대한 자료에 대한 지식이 우선되어야 겠지만, 저자 자신이 그러한 과거속으로 들어가 구체적인 오늘의 현실을 비추어 보고, 답을 구하고자하는 진솔한 대화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과거 역사의 성공과 실패 통해서 오늘 우리에게 닥친 현실의 질곡을 헤쳐나가는 지혜를 얻는다는 것, 과거의 역사에서 배운다는 것에 대해서 여러가지 생각과 자각을 하게 합니다.

 조선의 법과 정치, 무역과 경제, 사회와 유교, 문화와 생활로 나뉘어진 내용은 각각 일곱 꼭지의 우리의 현재와 연관시켜서 생각해 볼만한 흥미로운 내용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일본의 독도에 대한 반복되는 영유권 주장과 잠시의 논란으로 끝났지만 미국의 독도에 대한 주권미지정이라는 애매한 태도로 인해 우리 온 국민의 혈압이 몇계단 올라간 사건이 있었는데, 사회와 유교편에 실린 '독도는 우리 땅 - 울릉도의 아들 독도'를 통해서 저자는 역사적 그리고 문헌학적으로 독도의 영유권에 대한 타당성과 건설적인 한일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매사에 흥분하기를 잘하지만 정작 냉정하고 논리적인 대응에는 항상 미숙한 우리 국민들에게 정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에 대해서, 역사의 논리와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속에서, 잠시 진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부분입이다. 또한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사업과 관련하여 백성들의 의견을 물어 청계천의 준설작업을 통한 백성의 구휼과 매년 물난리의 원인이 되는 하천 정비라는 두마리 도끼를 잡은 영조의 뉴딜정책, 선거 때면 매번 국민의 매서운 눈길을 명심하겠다고 절절하게 반성하고서도 선거가 끝나면 국민 무서운줄 모르고 개(?)판을 치곤하는 우리의 정치현실을 비춰보았을 때 차라리 제왕의 권력을 가지고서도 신하들과 민심의 올바른 뜻을 따르고자 했던 성군들의 모습은 이야기 자체로도 많은 책망을 우리 정치인들에게 던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외에도 조선시대판 살인의 추억, 성과 관련된 스캔들, 한양의 인구과밀과 택지개발, 탐관오리와 뇌물에 대한 징벌, 인사청탁에 대한 처벌, 조선에 귀화한 외국인들에 대한 이야기, 인재선발에서의 지역별 할당제, 왕실의 웰빙 문화, 왕실의 한가위와 달구경 등에 대한 이야기들은 우리의 현재 사회에도 그대로 반복되고 또한 적용되는 이야기들이지만, 시대와 사람들의 의식수준, 정치체제와 도덕관 등의 차이로 인한 서로의 다름과 같은 사람 또는 민족으로서 여러면에서 서로의 닮음도 함께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다르지만 생각만큼 많이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통해서, 역사를 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역사의 의미를 해석하고 이해한다는 것의 또다른 색다른 재미들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오늘과 과거를 상관시켜 상고하는 각각의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역사속에서 우리가 배울수 있는 교훈들의 다양한 모습을 새삼 깨닫게 되고, 멀게만 느껴지던 역사와 조상들의 모습이 현재의 생활이나 우리가 겪는 사실들과 닮아 있는 모습도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또한 살아있는 역사, 우리의 삶속에서 반복되는 역사의 의미에 대한 일면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이 디지털화 된 여파로, 요즈음은 다양한 조선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하여 더 다양하게 해석되고 각색된 역사적 사실들이 우리에게 소개 되겠지요. 하지만 그러한 노력들이 단순한 재미를 위한 또는 화석화된 과거 사실들에 대한 흥미위주의 이야기가 아닌, 저자와 같은 이들의 노력을 통해서 우리 삶속에서 살아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고, 막힌 곳에 길을 열어주는 그러한 보고로서의 유산이 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또한 나를 비롯한 읽는 이들도 그러한 역사에 대한 열린 마음과 귀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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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 비타민
한순구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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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괴짜 경제학'. 처음 출판사의 기획의도가 아마 이러한 원대함을 담고 있었던 듯 합니다. 저자는 겸손하게 그러한 원대함을 부담스러워하며, 이유의 첫번째로 자신이 스티븐 레빗에 미치지 못하는 경제학자라고 하고 있지만, 실제 이유는 저자가 두번째 이유로 거론한 방대한 자료의 축적과 분석을 통해 축적된 여러가지 상황에 따른 답의 축적이라는 양과 질에서의 차이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한 차이가 저자가 말하는 여러가지 상황에 대한 분석의 세밀함이나 세련됨이 조금은 부족한, 논리의 투박함이나 뭔가 부족한 듯 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의 스물 세꼭지에 담고 있는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사회 현상이나 문제들에 대한 번뜩이는 통찰의 날카로움이나 그러한 문제들의 우리 상황에 맞는 해석과 이해를 위한 노력이라는 장점마저 왜소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저자가 부족한 자료와 정보, 그리고 척박한 기초 위에서도 열과 성을 다하여 이 책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천작하고 되새김질한 결과이겠지요.

 스티븐 레빗이 자신의 <괴짜 경제학>에 다양하고 흥미로운 사회현상들에 대해서 경제학자로서의 자신의 돋보기를 들이대고, 그러한 문제를 경제학자의 언어로 풀어냈듯이, 이 책은 우리 사회가 맞닥뜨리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경제학자의 시각에서 분석하고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다양한 능력계발의 기회를 억누르면서까지 공부에 열중할 것을 강조하는 우리의 모습을 위험과 수익률의 관점에서 살펴본 '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이 공부다'에서 시작하여, 많은 직장인들이 자신의 직장에 많은 불만을 표출하면서도 과감하게 뛰쳐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위험과 기대수익을 통한 분석을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벌이라는 배경을 출세의 발판으로 삼고 각종 인센티브를 얻고 있다고 비판받는 명문대생들이 실제로 출세하는 이유가 그러한 배경 때문인지 실력때문인지, 요즈음도 문제가 되곤하는 고교평준화가 학생들의 실력을 떨어뜨리는 건지 -서울대에 갈 확률을 낯추는 것인지-, 강남의 교육여건이 정말로 천정부지로 치솟던 아파트 값의 진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반복해서 불거지고 있는 영화 스크린 쿼터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인지, 미국 쇠고기 수입과 맞물려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의 초미의 관심사 중의 하나인 한미 FTA에 대한 자세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등 우리 사회의 심각한 갈등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경제학자의 뇌를 통해 분석된 이야기들은, 많은 부분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방향과 보기좋게 엇박자를 이루며, 새로운 시각과 깨달음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대답들이 도덕적인 면이나 윤리적인 면, 사회적인 면 등을 모두 고려한 것이 아닌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이해되고 대답을 구한 것이라는 전제를 무시하지는 말아야겠지요.

 반복적인 일 중의 하나지만 작년말엔가도 치과병의원들의 위생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방송이 있었고, 이것이 한동안 사회문제가 된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병원 진료에 대해 이야기할때면 빠지지 않는 것이 30분대기, 3분 진료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매번 제기되지만 결코 쉽게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자는 그 문제를 돈의 문제라고 이야기합니다. 윤리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한편으로는 위생적으로 엉망으로 보이는 그러한 문제들을 목청껏 외치곤 하지만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해결책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제시해야 했을 비용의 문제, 즉 그러한 위생과 도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투여되어야하는 경제적인 부담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넘어가 버리기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올 수가 없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또한 FTA 문제에 대해서 경제학자의 시각을 빌릴 수 있는 부분은,  실크로드의 흥망성쇠에 따라 동일한 운명의 길을 걷고 있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예를 통한 교역의 중요성에 대한 고찰부분입니다. 중국과 유럽을 이어주는 길이 오로지 실크로드에 의지하는 동안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힘을 키워가던 국가들이 서유럽의 해양국가에 의한 해상항로의 개척과 함께 교역의 중심이 해상항로로 기울면서 쇠망해간 이유를, 교역이라는 틀에서 설명하고 있는 저자의 관점은 FTA가 현재 우리세대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후손들의 흥망성쇠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중요한 상황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반대가 아닌, 우리 몸무게에 맞춰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적응하는 것이 아닐는지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교육여건과 아파트 가격에 대한 분석이 담긴 '착각에서 비롯된 기이한 현상'이라는 꼭지인데, 강남 부동산 문제가 불거질때마다 정부정책에는 학군조정이나 학원가 조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단골처럼 등장하는데, 책에 실린 내용 -간접적인 분석이기는 하지만-을 고려한다면, 정부정책이 한치 앞도 제대로 못본 눈가리고 아웅하는 정책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물론 이러한 예민한 문제들에 대한 저자 나름의 분석들이 길을 잘못들어선 것일 수도, 가치관이나 편견등이 작용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뿌리깊은 문제들에 대한 경제학자가 이야기하는 시원스런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또한 해결되지 않고 고질적으로 반복되는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과감하게 경제학자의 뇌를 빌어 해결책을 추구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조금 위험하고(?) 단순한 생각도 이 더운 여름날에 머릿속을 스쳐 지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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