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순종 세계기독교고전 59
앤드류 머레이 지음, 김원주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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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이 아닌 순종


이 책은 앤드류 머레이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순종에 대해 알려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기로 결심한 이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예전에는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믿는 것에 대한 거부감과 이질성으로 비판을 받아왔다면 현재는 기독교인들이 믿지 않는 이들보다 더욱더 범죄를 비롯한 악한 행동들을 저지르기에 지탄을 받고 있다.


우선 순종과 복종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순종(順從)’은 순순히 따름이란 뜻으로, "아버지가 근심 있어 뵈면 명랑하게 설치던 유치한 반항도 자연스러운 순종으로 변해 갔다”와 같이 쓰이며, ‘복종(服從)’은 남의 명령이나 의사를 그대로 따라서 좇음이란 뜻으로, “그의 부모는 아들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였다.”와 같이 쓰인다. '순종'과 '복종'은 '따르다'의 뜻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같지만, '순종'은 '성질이나 태도가 매우 고분고분하고 온순하게'라는 '순순히'의 뜻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복종'과 차이가 있다.


하나님은 자신을 믿는 이들을 복종시킬 수 있지만 순종하기를 바라셔서 늘 참고 기다리신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분은 자신을 온전히 내어줌으로써 끝까지 순종했다. 저자인 앤드류 머레이는 피조물의 가장 고귀한 덕이자 모든 덕의 뿌리는 겸손이라고 이야기 하고 반대로 교만, 교만의상실이 모든 죄와 악의 뿌리라고 지적한다.


이 책의 첫 번째 목적은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생활로 알고 있는 저급한 영적 상태가 악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완전한 순종이 불가능하다고 은근히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스도의 교회에 해를 끼치는 일은 없다. 두 번째 목적은 하나님이 솔로 그리스도, 곧 전능하신 구주 안에서 죄로부터 구원하는 준비를 하셨고, 또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가 매 순간 우리 속에 구원의 능력을 실제로 발휘하도록 준비하셨으며, 그로 인해 승리와 평안과 교제의 생활이 유지될 수 있게 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려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목적은 넘어지고 교제가 자주 중단되는 옛 생활을 벗어나 새 생활로 넘어가는 일이 한 순간, 한 걸음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완전한 순종은 우리의 의지와 노력으로 가능 한 것일까? 결론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완전한 순종은 바로 하나님의 본성 자체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완전한 순종을 받지 않으면 일을 하실 수가 없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은 천지차이일 수 있지만 어찌 보면 종이 한 장 차이일수도 있다. 우리가 애인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지속적으로 애인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 이를 보고 과연 누가 그의 마음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하나님은 믿는 이들에게 완전한 순종을 바라시는 이유는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라는 말씀으로 서로 사랑하라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신다.


또한 골로새서의 말씀에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으라 라고 말씀하신다. 성경에서 지속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행했던 모든 것을 행하라고 명령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가득찬 상태여야만 가능하다.


우리의 생각, 이성, 판단으로는 도저히 행할 수 없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사람이 진지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고 열심 있는 목사가 될 수 있으며 선을 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런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머무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른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건물인 교회의 목사는 대표성을 띤 기독교인 중에 한 명에 불과 하지만 상징성과 영향력은 엄청 날 수 밖에 없지만 그러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수 많은 과오에 대해 과연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는지 반문해볼 필요가 있다. 개교회 중심이 되면서 이기적이고 배타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지만 건물인 교회와 성도들은 이웃의 범위를 한정 시키고 자신만 사랑하는 괴물로 변해가고 있다. 자기 교회 교인들을 위해서 기도하지만 모든 신자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 기도회가 존재하는 사실을 초대 교인들이 알게 된다면 아마 기절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순종이 필요하다. 그러한 순종의 결과를 통해 열매 맺는 삶이 가능 할 것이다. 약 100여년전에 쓰여진 이 책이 현재에도 똑같이 읽어지고 감동을 주는 것은 인간의 악한 본성은 쉽사리 변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리는 결코 변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교회의 몰락, 쇠퇴는 이미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남은 자들은 어떻게 앞으로 살아가야 할까? 예전에 누렸던 부귀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을 허송세월 보낼 수는 없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는 완전한 순종을 통해 자신부터 되돌아보는 계기가 필요할 듯 하다.


말과 행동의 괴리로 인한 고민하는 수 많은 기독교인들이 읽으면 좋을 책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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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아름다운 수학 이야기 - 최신 개정증보판
김정희 지음 / 혜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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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포자에서 수학자로


이 책은 산수가 아닌 수학이 필요한 시대에 걸맞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수학이라는 용어는 학창시절에만 익숙하고 사회에 나오면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특히 문과 출신이거나 인문계열 출신이 아닌 이들은 더 심하게 생각하는 듯하다. 수학[mathematics, 數學]이라는 뜻을 요약 하면 물건을 헤아리거나 측정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수(數)•양(量)에 관한 학문이다. 다른 학문의 기초가 되기도 하며, 인류의 역사상 가장 오래 전부터 발달해 온 학문이다. 그렇기에 수학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개개인과도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삶의 모든 순간을 수학으로 증명 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의 문명이 가능 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소설가이지만 어느 날 아마추어 수학자가 되는 과정을 이야기 하면서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수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수학이 취미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흔히 취미라고 하면 영화보기, 음악감상, 낚시, 쇼핑 등을 생각하기 쉽지만 취미란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밥 먹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몰입하게 되는 행위, 개인의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건전하고 자발적인 유희를 말하기에 수학이 취미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많은 이들이 수학은 학교를 떠남과 동시에 벗어나야 할 감옥처럼 여겨지고 있다. 현재 중고등학생의 30%이상은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수학을 포기함으로써 진로와 진학에 많은 애로사항이 있음에도 결코 수학을 정복하거나 극복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이 느끼는 수학은 딱딱하고 어렵고 난해하며 학문으로써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수학은 오랜 역사를 거쳐 오면서 많은 철학자와 수학자들이 일생을 바쳐 연구한 업적이고, 어떤 이는 자신의 목숨까지 내던지며 수학적 진실들을 밝혀내기도 했다. 수학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생동감 있고 자유롭고 창조적인 학문이다. 


4차 산업 혁명이 대두된 요즘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은 창의력이고 그 창의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되는 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수학이다. 수학 공부는 머리에 기름을 둘러주며 답답한 마음을 풀어 주기도 하고 지적인 사고의 바탕이 되는 논리력을 키워준다.


수학은 천재들만 하는 지루하고 한심한 학문이라는 고정관념 따위는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수학은 음악이며, 문학이며, 놀이이며, 움직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노력해야만 한다. 


흔히 역사 속의 수학 천재들을 생각하면 머릿속에 계산기가 있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엄청난 공식을 풀고 암산을 척척 해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암산 실력이 계산기 정도로 뛰어났던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암산에 능한 것은 기계적인 기능이지, 수학적 깊이와는 무관하다. 간단히 분류하면 도형을 취급하는 것이 기하학이고, 수식을 취급하는 것이 대수학이다.


이 책 2장에는 역사 속 수학이야기 펼쳐진다. 여기에 수 많은 낯익은 이름들이 등장을 한다. 이들에 대해 공식을 배울 때 들어본 경험이 많거나 우화로 전해지는 이야기로만 알고 있던 이들의 삶과 업적에 대해 소설처럼 잘 묘사되어 있다. 

 

논증수학을 처음으로 체계화한 탈레스, 비밀 결사 단체 형식인 피타고라스(a^2+b^2=c^2), 무리수(√2)를 발견한 히파수스, 기하학의 성서를 집필한 유클리드, 동화적이자 만화적인 인물로써 유레카를 외쳤던 아르키메데스, 악마성이 다분한 천재이고 삼차방정식의 해법을 제시한 카르다노를 비롯한 케플러, 데카르트, 페르마와 파스칼, 뉴턴과 라이프니츠, 오일러 등이 쓰여 있다.


아마추어 수학자가 되려면 첫째는 감수성이다. 이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문화생활이 필수이다. 저자는 독서와 영화, 연극 감상을 추천한다. 또한 수학에 관심을 갖게 해주고 도움을 책들을 소개해줌을써 더욱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책은 수학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기성 세대들 뿐만 아니라 현재 수학을 포기한 학생들이 읽으면 좋을 책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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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가족이 되었습니다 서유재 어린이문학선 두리번 1
박현숙 지음, 김주경 그림 / 서유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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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마미


이 책은 반려견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로 되어 있다. 반려 동물의 대표는 개 일 것이다. 반려(伴侶)의 사전적 의미는 짝이 되는 동무이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가족과 동일한 느낌과 감정을 느끼면서 같이 살아간다. 현재 한국에서 반려견을 키우는 가구수는 500만 가구이며  660만 마리를 키우고 있다. 


반려 동물을 키우는 것은 불과 20년 전만 해도 특별한 사람만의 소유물이었지만 이제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결혼을 하지 않고 반려 동물과 평생을 살거나 결혼을 하고 나서도 아이를 갖지 않고 반려 동물과 살기로 결심을 했다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보고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특히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와 맞물려 1인 가구 수의 급증으로 반려견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반려견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인프라는 미비하기 그지 없다. 또한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 중 몇몇의 몰지각한 행동으로 인해 갈등의 골이 좁아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세는 거스를 수 없듯이 반려동물은 가족의 일원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이 책은 반려견 마미와 서민이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인 서민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다. 그는 엄마 아빠가 몇 달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나자 할머니는 충격으로 쓰러지고 서민이 갈 데가 없었다.그때 민준이 엄마인 고모와 같이 살기 시작했다.


민준이는 어느 날 같이 살게 된 서민이를 지속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고 서민이가 키우는 마미도 같이 괴롭히기 시작한다. 서민이가 키우는 마미는 몇 년 전 엄마가 길에서 주워 온 개다. 그 개는 출산만 집중적으로 하다 버려진 개이지만 서민이 엄마가 불쌍히 여겨 지극 정성으로 키워 줬다.


그러던 어느 날 민준이는 서민이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 마미를 데리고 한적한 재개발 지역에 버리고 온다. 마미는 난생 처음 본 곳에서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하지만 떠돌이 개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된다. 서민이는 마미가 없어진 사실을 발견하고 마미를 찾기 위해 사방으로 다닌다. 같은 반 동주라는 시골에서 전학 온 학생의 도움으로 전단지를 만들고 주변을 수소문 하게 된다. 포장마차 아저씨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결국은 마미는 다시 서민이의 품으로 돌아 오게 된다.


이 책은 부모를 잃고 고모집에 얹혀 살게 된 서민이와 유기견이었지만 반려견이 된 마미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고 이 둘을 바라보는 양극단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부모를 잃은 건 자녀의 책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시선은 마치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바라보는 태도가 여전히 존재를 한다. 또한 주인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길거리에 버려진 유기견도 강아지의 책임이 아님에도 더럽고 냄새나는 현재의 모습에만 집중하고 그 탓을 전부 강아지에게 돌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반려견에 대해 그깟 개 라고 치부하는 민준과 민준이 아버지의 입장은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이들을 대표하는 생각과 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주인공인 서민과 동준, 그리고 예전에 개장수였던 포장마차 아저씨를 비롯한 이들은 반려동물에 대해 단순한 동물이 아닌 가족의 구성원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이 둘의 대비를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게 만들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나 단돈 몇 만원이면 강아지를 쉽게 구입할 수 있다. 사람을 입양하기 위해서는 아주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현재 강아지를 비롯한 동물들은 누구나 쉽게 구입하기에 책임감이 그만큼 떨어진다. 그래서 조금 키우다가 실증이 나거나 귀찮아지면 다시 쉽게 버리는 행위를 반복하게 된다.


이러한 근본적인 시스템은 당장에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이것을 바라보는 시각도 큰 문제로 작용된다. 반려견이라고 하면서 타인에 대해 배려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견주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목줄, 몸줄을 하지 않은 채 공원이나 아파트를 거닐고 있는 모습, 맹견임에도 불구하고 입마개를 하지 않는 모습, 길거리에 소변이나 대변을 치우지 않는 모습, 식당에서 가슴에 품고 밥을 먹는 모습등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이 아직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반면 반려견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식용 개나 하나의 동물로만 치부하는 말과 행동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것은 견주들에게는 크나큰 상처가 될 수 있다. 어느 누가 가족을 쉽게 버리고 학대하고 잊을 수 있을 것인가? 본인이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똑 같은 생각과 마음을 강요하는 것은 어쩌면 또 다른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은 수 많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이들과 반려동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고민하는 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 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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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발이 몰려온다! 한울림 생태환경동화
황종금 지음, 문종훈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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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의 공존


이 책은 자연 파괴로 인해 점차 살 곳을 잃어가는 동물들의 이야기다. 갯벌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많지 않다. 그 중에서 면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이다. 이렇기에 갯벌을 매립해서 계속 영토를 확장해 나갈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영토의 70%가 산으로 되어 있기에 지속적으로 산을 없애고 길을 만들고 갯벌을 매립해서 영토를 확장하는 방식을 취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자연을 파괴할 수 밖에 없다. 그곳에 살고 있던 동식물들은 무참히 인간의 개발이라는 이름하에 사라질 수 밖에 없었다.


점차 자연의 보존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요즘 갯벌이 새로운 화두가 되어 가고 있다. 갯벌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적고 한국의 갯벌이 관광 유치에 도움이 되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갯벌을 바라보는 시각은 쓸모 없는 땅이라는 개념이 지배적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꿈눈’이라는 칠게와 꿈눈의 단짝친구 ‘털보’의 갯벌 여정기를 그리고 있다. 이들은 갯벌에서 유유히 살고 있지만 큰 발들이 수시로 찾아와 잡아가기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다른 갯벌을 찾기로 하고 떠난다. 새로운 갯벌을 찾기 위해 여행을 가던 도중 어린 도요새가 목에 뭐가 걸렸는지 부리를 바닥에 탁탁 부딪치고 있었다. 도요새의 주된 먹이는 게 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려고 했지만 마음씨 착한 꿈눈이는 어린 도요새를 도와주기로 한다. 도요새 입에는 큰 발들이 버린 유리 조각이 들어 있어서 고통 당하고 있었다. 


어린 도요새는 꿈눈이와 털보를 생명으로부터 도와주고 안전한 곳으로 옮겨준다. 하지만 그곳에서 큰 발들은 이 둘을 사로 잡아 물통에 가둔다. 움직임이 없자 죽은 줄 알고 산행을 하던 큰 발들은 산에 버려버린다. 이 모습을 본 어린 고라니가 발견을 하게 되고 같이 여행에 참여 하게 된다.


어린 고라니는 숲에서 물을 마시러 도로를 가로 지를 때 차에 치여 엄마가 죽어버렸다. 우여곡절끝에 새로운 갯벌에 꿈눈이와 털보는 도착을 한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도 인간이고 자연을 보존하는 것도 인간이고 자연을 보호하는 것도 인간이다. 인간은 자연에게 큰 빚을 지고 살고 있음에도 마치 자연을 지배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 듯하다. 인간이 파괴한 자연은 다시 인간에게 엄청난 고통을 현재 주고 있음에도 아직도 자연 파괴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생계 수단이 아닌 무차별적인 채취로 인해 갯벌이 멍들고 있다는 소식은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관광객들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은 아주 작은 새끼까지 싹 잡아가고 있다.


알을 밴 새끼 쭈꾸미는 원천적으로 낚시가 금지 되어 있지만 낚시꾼들 사이에서는 이 때 잡은 쭈꾸미가 맛이 있기에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이 몇 년만 더 지속된다면 아마 씨가 마를 것이다. 후손에게는 쭈꾸미는 서민들이 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 값비싼 음식이 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낚시꾼이지만 쭈꾸미를 보호하려는 사람들은 찾기 어렵다.


숲 한 가운데에 길을 내면 사람들의 왕래는 편해진다. 한편 숲을 왕래하던 수 많은 동물들은 갈 곳을 잃고 도로에 뛰어들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도로를 내는 것에 급급한 나머지 동물들이 지나가는 통로를 만들 생각을 미처 못한 결과이다. 


아이들에게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코를 찌르는 폐수, 매연이 넘쳐나고 있다. 과연 인간과 자연은 공존할 수 있을까?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시대이다. 너무 늦어서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좋을 듯 하다.


아이들에게도 자연의 소중함을 말과 글뿐이 아닌 일상 생활에서도 실천을 통해 지켜 나갈 수 있게 해줘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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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 아이가 나를 미치게 한다 - 첫 반항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카차 자이데.다니엘라 그라프 지음, 장혜경 옮김 / 생각의날개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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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이 책은 첫 반항기(2~5세)를 맞이한 부모들을 위한 이야기이다. 아이들이 태어나면 부모들은 천사를 얻음 기쁨에 취한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는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고 말귀를 알아듣고 말을 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육아와의 전쟁에 돌입한다.


육아와 전쟁은 상반된 이미지이지만 현재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조합임에 틀림이 없다. 이것은 비단 요즘 아이들이 유별나거나 요즘 부모들이 나약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성 세대들은 육아에 대해 큰 고민과 정보가 부족했지만 현재 부모들은 과도한 정보로 인해 더 큰 고민을 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또한 부모가 되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망각한 채 아이가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가 된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실수와 잘못을 했을 경우 반복적으로 설명을 하면 아이가 행동을 고칠 것이라고 예상을 하지만 쉽게 아이가 변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폭언과 폭력을 가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책의 결론은 아이의 행동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그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 부모의 몫이라는 것이다. 아이는 아직 미성숙한 존재임을 인식해야 한다. 말귀를 알아듣고 의사표현을 한다고 해도 아이는 어른과 똑 같은 변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기다려주고 이해해주고 용납해주어야 한다.


식당에서 뛰어 다니고 그릇을 던지는 아이, 마트에서 운동장처럼 뛰어다니는 아이, 공연장에서 소리를 괴성을 지르는 아이를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럴 때 부모가 아닌 입장에서는 아이를 탓하기 보다는 부모를 탓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럴 때 아이의 부모는 자신을 향한 시선과 말들로 인해 더욱 위축되고 문제의 본질을 잊은 채 사건의 발단을 아이에게 전과시키려고만 하는 우를 범하기 쉽다.


어른은 항상 옳기 때문에 더는 노력할 필요가 없고 아이들만 달라져야 하고 아이들만이 어른에게 순응해야 하고 훈육되어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많다. 이러한 일반적인 시각을 수정하고 넓은 차원으로 확장 시켜야 한다. 화목한 관계는 나이와는 상관없이 모두가 서로 주고받을 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화를 내는 이유는 정말 너무나 별일 아닌 게 대부분이다. 부모는 아이의 내면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2~5살 아이의 경우 스트레스 상황에서 대부분 자체조절능력에 과부하에 걸린다. 이 연령대의 아이들에겐 분노 상태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외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어른들은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혼잣말을 하거나 숨을 크게 쉬면서 자신만의 노력을 통해 이를 극복 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아직 성장 과정이기에 미처 배우지 못했다. 이 시기는 첫 번째 반항기로써 스트레스 해소를 집중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기이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유발시키는지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가 스트레스로 인해 자신이 좋아하는 인형을 안거나 빰을 비비는 경우에 그것을 인위적으로 떼어놓으려고 한다면 아이에게 자신의 감정 처리를 할 학습기회를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 하는 것이다. 혹은 아이가 스트레스 상황 속에 혼자 내버려 두면 알아서 좋아 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은데 이것은 옳지 못한 방법이다. 6살 이전 아이는 절대로 혼자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없다.


아이는 공감 능력이 없다. 즉,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거의 느끼지 못하기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최우선 되는 것이다. 자신의 떼?로 인해 부모가 슬퍼하거나 화를 낸다고 해도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결코 멈추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부모들은 아이가 온갖 종류의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한다. 건강하게 자라려면 즐거운 경험만 해봐서는 안 된다. 때론 실패도 겪어봐야 하고, 자연스러운 경계도 경험해봐야 하며 아파도 보고 질투도 해봐야 한다. 부모의 할 일은 아이가 고통을 겪지 않도록 무조건 막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고 위로하며 아이의 감정에 응답해야 한다. 부모가 되면 흔히 자신이 겪은 부정적이고 지우고 싶은 감정들을 아이는 경험하지 못하게 원천 봉쇄하려 들지만 이러한 시도가 오히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것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1960년대 미국에서 5살 아이에게 자기통제에 대한 실험을 하였는데 그 결과 충동조절을 잘하는 아이들은 훗날 자라서 더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 이 실험이 그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아이들은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때 충동을 더 잘 조절한다. 즉, 부모가 약속을 자주 어기면 아이들은 욕구를 참으려는 노력을 덜 하게 된다.


아이는 무엇이든 만지고 탐구하고 싶어 하기에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 ‘안 돼’라는 말을 최대한 적게 쓰도록 해야 한다. 부모가 일상적으로 ‘안 돼’라는 말을 남용하고 있는지 언어 습관을 되돌아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이는 부모를 괴롭히겠다는 의도를 품고 실수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 어른의 감정 세계를 공감할 수 없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실수를 하는 것이고 이것을 통해 하나씩 배워나가는 과정인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아이의 행동으로 시작된 분노는 사실 아이 때문이 아니라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해 해야만 한다. 보통의 경우 진짜 원인은 부모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자존감에 난 상처 때문이다. 그것이 내면 깊숙이 숨어 있다가 아이를 통해 밖으로 표출이 되면서 그 방식이 아이에게 폭언과 폭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나타날 뿐이다.


부모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이나 모욕을 정당화 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폭력과 모욕을 받았기 때문이고 현재도 아이들을 제압해야 하고 버릇을 고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폭력과 모욕이 가능하다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일부러 반항을 하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기에 적당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틀린 생각이다.


어린 시절 스트레스와 공포를 느꼈던 상황에서 무시하고 야단치는 말을 많이 들었던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 아이 때문에 공포를 느끼면 자기도 모르게 폭력적인 말이 튀어나온다. 반대로 힘든 상황에서 긍정적인 격려의 말을 많이 듣고 자란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말을 먼저 떠올린다.


아이에게 폭언이나 폭력을 가하고 싶어지면 무언의 자기와 대화를 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말과 폭력을 상상으로 그려보면서 제3자가 되어서 자신을 바라 보는 것이다.


아이들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부모가 듣기에는 일방적이고 무례하고 버릇 없는 말들을 쏟아낸다. 대표적으로 무조건 ‘아, 네에에에에~~!’ ‘엄마 미워, 아빠는 바보야!’ ‘엄마랑 친구 안 할 거야!’ ‘싫어, 안 해!’ 등이 있다. 이 말들의 내면을 보면 정말로 부모와 대화를 단절하고 싶거나 엄마나 아빠와 그만 놀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말을 들어달라고 간청을 하는 방법임을 기억해야 한다. 아이들은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자신의 감정의 상태가 평온하지 않으면 돌발적이고 과격한 표현 방식을 채택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가 어른의 말을 안 듣는 건 대부분 어른의 관심을 끌고 싶다는 뜻이다. 부모들의 갖은 협박에 아이들은 하던 짓을 멈추고 어른이 시키는 대로 얌전히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럴 경우 부모들은 자신의 협박이 아이들에게 먹혔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아이가 어른의 사랑을 잃고 싶지 않아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것 뿐이다.


모든 부모는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고 싶어 한다. 폭력과 폭언으로 아이를 키우고 싶어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내면에 아이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용서하며 기다려줄 수 있는 마음이 없지 한 아이의 여러 행동, 말투를 이해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돼! 안 돼! 이 두 가지 극단으로 아이를 키우는 방식은 이미 틀렸음이 증명 되었다. 또한 오냐오냐로 키우는 것도 잘못된 방식임을 모든 부모는 알고 있다. 진정한 사랑을 기반으로 아이의 행동 내면을 보면서 이해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2~5세의 아이와 날마다 전쟁을 치르는 부모들이 읽으면 좋을 책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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