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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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김용철 변호사의『삼성을 생각한다』출간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처음 떠오른 생각은 조만간 절판되겠구나, 였다.
웃어야 할지, 나 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 예언처럼 떠도는 반응이 대체로 그랬다.
이 책의 저자인 김용철 변호사는 2007년 삼성 비자금 폭로 사건으로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책 구입을 망설였다. 이런 분류의 책은 원래 내 취향이 아니다. 재미도 없고, 대개 기획인 경우가 많아서 소문난 잔치에 갔다 온 것 마냥 시간 낭비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데 신간 정보를 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상한 얘기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자가 원고를 출판해줄 곳을 찾아 여러 곳을 전전했다는 얘기, 주요 5대 일간지 모두 책 광고를 거부했다는 얘기...
개인 저작 출판을 공공연히 거부하고 막는 세상이라니, 요즘 시대에 이게 말이 되는가... 아니, 그전에 혹시 나는 '요즘 시대'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쯤되면 더 고민할 것도 없다. 이 책은 일단, 무조건, 사서, 읽어야 되는 거다.

책을 받은 것은 2월 초. 읽기 시작한 것은 중순 경. 다 읽은 것은 3월 초다. 완독하는데 한 열흘 쯤 걸린 것 같다.
대부분 하룻밤새 다 읽었다고 말하는 이 책이 내겐 쉽지 않았다. 나는 쉬엄쉬엄 읽었고 어떤 장은 더디게, 어떤 장은 닫았다가 다시 펼쳐서 읽은 것이 열흘이다. 그러고도 책 얘기를 하기가 쉽지 않아 계속 미루었다.
(지금은 둘 다 그만 뒀지만)아는 동생이 법무부에 근무하고, 아는 선배가 김앤장에서 근무한 덕택에 간혹 관련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말 그대로 판타스틱한 얘기들을 듣다 보면 간혹 가십처럼 언론에서 터져나오는 얘기들은 정말 빙산의 일각이고,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가 다름 아닌 저기구나 싶은 것이 바로 고위층 혹은 사회지도층으로 불리우는 그들이 사는 세상이다.

- 김용철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아, 이 사람 그냥 보통 사람이구나, 였다.
그래서 울림이 더 남달랐던 것 같다.
나라면, 내 가족 중 누구였다면, 내 친구였다면…. 나는 물론 용기를 내지 않았을 것이고 가족, 친구에게도 그러지 말라고 말렸을 것이다.
그의 말, 그의 생각, 그의 진심을 의심하든 믿든, 무시하든 관심을 가지든, 비난하든 박수를 치든, 그건 모두 각자의 판단일 것이나 다만 한 가지, 나라면 '못 했을'도 아니고 '안 했을' 거다는 거. 그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저자의 용기에 빚을 짐을 느낀다.

- 불의한 양심
「불의한 양심에도 진실은 있다」는 1부 첫 장의 제목이다.
이 한 줄이, 참……
아마 이 책 전체를 통해 저자가 가장 하고 싶었던 얘기는 바로 이 것, '불의한 양심에도 진실은 있다'가 아니었을까. 자꾸만 눈에 밟히는 이 간단한 한 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많은 것을 더듬게 한다.
2007년,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비자금'을 폭로했을때 그에게 쏟아진 시선은 대부분 두 종류였는데, 그 하나는 '용기와 소신 있는 결단'이라는 박수였고, 다른 하나는 '결국 너도 똑같은 놈 아니더냐'는 비난이었다.
안타깝게도 박수 소리는 작았고 비난의 목소리는 컸다. 아니. 큰 것처럼 보였다.
주인 밑에서 그 녹을 먹은 주제에 이제 와서 주인을 문다, 는 세간의 시선은 말 그대로 보라는 달은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는 양상이 되었고, 그가 말하고 싶어했던 진실의 무게를 서슴없이 아래로 아래로 끌어내렸다. 

- '야사'로만 기록될지도 모른다
책 속에서 저자가 자주 하는 얘기 중에는, '내 증언은 야사로밖에 안 남겠구나' 하는 걱정이 있다. 특검에서 심문을 받던 중에도 '기록으로 남겨달라' 요구했다는 부분이 자주 언급되는데, 법조인 경험이 있는 저자는 기록되는 것과 기록되지 않는 것의 차이를 잘 알고 있다. 또 그렇기 때문에 이제껏 쌓아온 자신의 거의 전부를 포기하고 준비한 자료와 증언이 기록으로 남지 않고 폐기될 것을 염려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한편으론, 삼성 비리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저자의 마지막 의지로도 읽힌다. 때로 어떤 진실은, 그것이 정당한 평가를 받기까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분명한 사실은 더디기는 해도 언젠가는 그 시간이 틀림없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더더욱 개인과 사회는 '기록'을 남길 책임이 있고 그것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당대 뿐 아니라 후대를 위해서라도.

- 감히 주인을 물어?
드라마《추노》에는 양반 세상을 갈아 엎고 노비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자는 노비당이 등장한다. 그런데 막상 중무장(?)을 하고 원수 같은 양반댁을 털러 간 노비들이 양반과 마주 서자 엉거주춤 우물쭈물 물러선다. 상투 틀고, 갓 쓰던 시절에만 존재할 것 같던 이 '노비근성'이, 뜻밖에도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내부고발자'를 바라보는 시선에서다. 현대에도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있는 이러한 노비근성의 생명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 삼성이 무너지면
삼성이 무너지면 우리 경제가 망한다, 는 얘기는 부모님 세대만 하는 얘기가 아니다. 뜻밖에도 또래 젊은 사람들한테서도 심심찮게 이런 얘기를 듣는다. 도대체 그런 생각의 근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그들 대부분은 "그래도 삼성 같은 기업이 하나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한때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세계 경영을 부르짖던 거대 기업이 있었다. 바로 대우그룹이다. 재계 5대 그룹의 하나였던 대우그룹이 정리되는 것을 모두 지켜보고도 사람들은 삼성이 망하면 나라도 망할까 두려워 한다. 그들은 삼성과 대우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 "참 순진하군"
책을 읽던 중에 정치, 경제에 관한한 나름 얘기가 잘 통한다고 생각했던 친구와 큰 부딪침이 있었다. 삼성이 실패한 투자에 대한 얘기를 할 때였다. 친구는, 그러면 기업은 성공하는 투자만 해야 되는 것이냐, 고 강하게 반박했다. 친구는 거대 기업의 실패한 투자가 국민의 손해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했다. 나는 결국, "너 참 순진하구나" 비꼬고 말았는데, 물론 곧 이런 내 행동을 후회했지만, 실제로 그 순간 내가 떠올린 것은 '참 순진하군'이었다.
기업은 절대로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 환율이 오르자 얼른 밀가루 가격을 올렸지만 이후 가격 인상의 원인인 환율이 내렸는데도 여전히 요지부동인 밀가루 가격이 기업의 마인드를 잘 대변하고 있다.
기업이 투자를 해서 손해를 본다. 물론, 가능한 일이고 욕 먹을 일도 아니다. 친구의 표현처럼 오히려 기업의 도전 정신으로 칭찬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손해를 처리하는 방식인데, 기업은 대부분 그 손해를 소비자(자국민)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메꾼다. 간단한 얘기인데,
A는 사장이고, B는 직원이다.
A가 경영을 잘못 해서 손해를 본다.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A는 자기 회사 제품의 가격을 인상한다.
B는 물가가 오르자 지금 월급으로는 살기가 힘들다고 A에게 월급 인상을 요구한다.
A는 B의 요구를 들어준다.
A는 월급 인상분의 손해를 메꾸기 위해 자사 제품의 가격을 올린다.
방법이 어떻든, 과정이 어떻든 기업은, 절대로, 손해 보는 장사는 안 한다.
"기업이 잘못 하고 있다" 하니, "기업을 망하게 하자는 소리냐"고 핏대를 세우는 그들의 무조건적인 대기업 충성심이 감동적이다. 어려울 거 없다. 시선을 조금만 더 들면 된다. 그럼 손가락 말고 달이 보일 것이다. 자국의 산업을 이끄는 기업을 망가뜨리자는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의 환경을 다시 보자는 얘기다. 그 환경에는 나와 내 가족의 미래도 있다.

- 하지만 현실은
며칠 전, 사용하던 삼성 제품이 고장을 일으켜 A/S센터에 갔다. A/S센터만 가봐도 안다. 삼성이 얼마나 특별한지. 휴게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간단하게 마실 수 있는 차가 구비되어 있고, 컴퓨터와 TV와 책이 있다. 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잠시 후 직원이 직접 데리러 온다. 그리고 그 직원은 수리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일일이 설명을 해주고, 수리가 끝나면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배웅 나와서 인사한다. 대접 받은 것 같아 나는 기분이 좋고, 삼성에 대한 호감도는 당연히 높이 저 높이 올라간다. 그리고 그 높이 만큼 내가 삼성을 소비할 때 이미 그 비용을 치렀다는 사실도 까마득하게 잊는다. 남는 것은 친절한 삼성, 글로벌 초일류 기업 삼성 뿐...

- ......
일본과 미국에 가면 우리나라에서 하듯 으레 서점에 들려 책 구경을 하고 책을 산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이, 우리나라가 겉표지부터 내지까지 책을 참 고급스럽게 꼼꼼하게 예쁘게 잘 만드는구나, 다.
그런 이유로, 배송 받은 박스에서『삼성을 생각한다』를 꺼내 들었을 때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이만한 가격에 양장이 아닌 것은 그렇다 치고, 바깥 커버를 벗겼더니 나타나는 내지 커버가 마치 마분지 같다. 순간 헐벗은 아이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 만만치 않았다던 출판 과정이 중첩되어 기분이 편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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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로 가는 마차
김수현 지음 / 열매출판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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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오랜만에 詩集이 읽고 싶어서 서점에 갔는데 드라마 작가로 더 유명한 김수현의 소설『겨울로 가는 마차』(이하, '겨울로')가 눈에 띄었다. 서서 몇 페이지 읽다가 구입. 시집은 M군이 골라준 백석詩集으로 구입.

2. 최근 몇 년간 읽은 로맨스소설에서 내가 만난 최고로 멋있는 남자주인공을 꼽으라면『겨울로』의 '박우섭'을 꼽겠다. 

3. 나는 말을 할 때, 표현을 할 때 미사여구를 아끼지 않는 버릇이 있다.
최고야, 제일 좋아, 정말 좋아... 아낌없이 최상급을 가져다 쓴다.
아주 오래 전 이런 내 말 버릇에 제동을 건 건 역시 M군이었다. 오늘은 좋지만 내일은 안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르는데 왜 그렇게 단정지어 버리느냐는 거였다. 실제로 나의 최고와 제일과 정말은 그동안 여러번 바뀌었지만, 게중엔 좀처럼 바뀌지 않는 것도 물론 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 말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박우섭에 대한 애정은 아마 꽤 오래 갈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멋있는 남자'에 대한 취향은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만약 이 '멋있는 남자'에도 원형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 박우섭같은 남자가 아닐까 한다. - 참고로 영화에선,《라스트 모히칸》의 '호크아이(Hawkeye /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부동의 내 애정을 독차지하고 있다. 

4. 이 소설은 내용 곳곳에서 보이는 몇 가지 흔적으로 보아 그리고 동명의 영화가 80년대 초반에 개봉했었던 걸 볼 때, 오래 전에 이미 출판되었던 것을 이번에 다시 출판한 것으로 보인다. 제목부터가 옛 냄새를 솔솔 풍기지 않는가. 물론 이야기 또한 신파와 통속 그 자체다. 하지만 뻔하디 뻔한 과정을 도는 롤러코스터에 독자를 끌어다 앉히는 것은 작가의 능력. 시청률 귀신이라는 작가는 그녀의 통속적인 세계 속에 시청자인 나를 잡아다 앉혔듯 독자인 나도 그렇게 만들었다.  

5. 금방이라도 나열할 수 있는 몇 개의 작품을 리스트에 올린 작가라면 누구나 자유로울 수 없는 자기복제의 혐의를 김수현 작가 역시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작가가 공통적으로 변주하고 있는 요소를 꼽으라면 역시 캐릭터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의 캐릭터들은 식상하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예순이 넘은 이 노련한 작가는 캐릭터를 구현하는데 있어 가히 발군의 감성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6. 보수적이고 반듯하고 언뜻 마초적인 냄새도 풍기지만 사랑하는 여자앞에서는 굽힐 줄도 알고 부드러워질 줄도 아는 남자와, 더없이 신파적이고 청순가련형에다 쉽게 순응하지도 비굴하지도 않는 자존심을 가진 여자는 김수현식 로맨스에 빠져서는 안 될 요소인 동시에 김수현식 로맨스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왜냐하면 김작가의 로맨스는 캐릭터에서 출발하기 때문.
다시 말해서 강하지만 유연한 남자와 약하지만 부러지지 않는 여자는 가부장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한편 역설적으로 김수현식 신파와 통속을 대중과 소통하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이들 캐릭터는 다소 구식이고 답답하지만 그런만큼 성실하고 정직하고 주도적이고 주체적이다. 한 마디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숙한 성인의 성숙한 연애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들은 매력적이다. 이 점이 김수현 드라마의 힘은 스토리보다도 캐릭터에 있다고 보는 이유이다. 스타가 드라마를 성공으로 이끌기도 하지만 김수현 드라마는 드라마속 캐릭터가 바로 스타다. 작가의 뚜렷한 스타일로 인해 몇 가지 면에서 계속 비판을 받고 있지만 어쨌든 작가 김수현은 국내의 어느 드라마 작가보다도 로맨스의 속성을 가장 잘 이해하는, 로맨스를 로맨스이게 구현해낼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작가다.

물론 드라마 시청과 독서의 집중도는 엄연히 다른 점이 있고 그래서 책을 읽는 중간 중간, 작가의 어법을 빌려 '쩍' 소리가 나는 부분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 예로 이제는 구닥다리처럼 보이는 몇 가지 소품들 그리고 부모님 세대에나 통할 것 같은 경직된 말투는 애교로 봐준다 쳐도 '흰 런닝, 흰 팬티'에 이르면 작가를 향한 원망의 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하지만 그 시대의, 그 시대를 위한, 그 시대에 의한 정서는 그것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 후대를 사는 우리의 몫이 아닌가 관대해지기로 한다.
다만 완벽주의라고 소문난, 그래서 세간의 감탄을 자아내게 했던 드라마 대본에서 보여주었던 작가의 꼬장꼬장한 장인 정신이 책에도 발휘되어 오타와 표준문법, 편집등에 좀 더 신경을 써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해방前에 태어난, 국내 드라마 역사에 계속해서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있는 이 노작가를 내가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완전한 사랑을 그리는 작가의 밑그림은 늘 감동 받는다. 고백하건데 그런 사심이 이 책에 점수를 후하게 준 것일 수도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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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걸 미미양의 모험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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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틴 호프먼의 영화《졸업》을 봤을 때, 나는 결혼식장에서 도망쳐 나와 버스에 올라탄 연인의 뒷얘기가 몹시 궁금했다. 마찬가지로 드라마《불꽃》의 마지막 장면, 두 남녀가 각자 자동차를 몰고 와서 해후한 뒤의 얘기 역시 진심으로 궁금했다. 순전히, '그들은 과연 그 후 행복했을까? 아마 아닐 것 같은데...', 라는 이유에서 그들의 후일담이 궁금했던 것이다.
갑자기 웬 영화 타령인고 하니, 이 소설『본드걸 미미양의 모험』이 007과 본드걸의 후일담'격' 소설인 까닭이다.

일단 먼저, 본드걸의 이름은 '미미'다. (성은 끝내 안 나온다. 혹시 양?)
그럼 007의 이름은? 당근 제임스 본드다.
007의 무수한 본드걸중 하나가 되지 않기 위해 스파이가 되기로 결심한 미미양. 미미는 테스트를 통과하고 신입연수도 무사히 마친 뒤 013을 부여받는다. 왠지 재수 없을 것 같은 번호 '13'은 다들 거부해서 남아 있던 번호.
그럼 미미양이 사랑해마지 않는 007은 어떤 남자인가.
우선 007은 만둣국, 청국장, 라면, 감자탕을 먹는다. 그리고 TV로 축구와 코메디 시청하는 것을 좋아하고, 섹스할 때 애무하는 걸 귀찮아 한다. 잘 때는 코도 골고 입가에 침도 묻힌다. 참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만 한국적 남성형인 찌질한 007이다. 

주인공들의 면면에서도 보여지듯『본드걸 미미양의 모험』은 본격소설도 장르소설도 아닌 굳이 장르속으로 밀어넣자면 로맨스판타지액션어드벤처쯤 되겠다. 임무를 마친 007의 품에 안겨 오렌지색 열기구를 타는(p.8) 시작이 그러하고 내부 스파이를 잡기 위해 성냥팔이 처녀로 위장하고 성냥갑 모서리에 성냥을 그으면서 주문을 외는(p.205) 소설의 말미가 그러하다.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의 암호같은 구절을 종종 발견한다. 이를 테면, 미미양이 스파이 테스트를 받기 위해 찾아간 술집의 주인 이름은 강내휘인데 미미양이 술집에서 공짜로 계속 주워먹었던 것이 강냉이다. 또 미미양은 1.5리터 사이다를 한 번에 마시는데 미미양이 첫번째 임무에서 부여받은 가명은 '오란실'이다. 이 부분에서 나는 오란C를 연상했는데 오버인가? 어쨌든 이런 식의 언어 유희가 소설 여기저기에 심심찮게 포석처럼 깔려있다. 미미양이 스파이가 되려고 열심히 탐독하는 저서들의 제목들도 마찬가지.『스파이는 페루에 가서 죽다』『너희가 스파이를 믿느냐』『암호 읽어주는 여자』『간첩이 있던 자리』『스파이와의 인터뷰』『꼬리에 꼬리를 무는 작전』... 참고로 나는 이러한 제목들을 작가의 농담으로 그냥 유쾌하게 읽었다. 사실 소설에서 발견하게 되는 몇 가지 이유로 작가가 소설을 가볍게 썼으리라 짐작되는 혐의가 있긴 하다.

나는 작가 후기나 소설의 말미에 있는(이를 테면 비평에 해당하는) 해설 읽기를 좋아하는데 말하자면 본 메뉴를 잘 먹고 나서 후식을 먹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재미있게 읽고 난 이 소설의 해설은 좀...
해설의 제목은 '남근이여 안녕'인데 최근 몇 년간 출판되는 본격문학의 경향을 '남근(남성성)의 붕괴' '아버지의 부재' '가부장주의 해체'등으로 해석하는 것이 유행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소설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보다는 그냥 순수하게 '재미있는 소설'로 읽으면 그만이지 않나 싶다.

다음은 영어 55단어로 쓰인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중 하나다.

<침실에서>

"조심해. 그 총 장전되어 있어." 그는 침실로 다시 들어서면서 말했다.
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이 총으로 부인을?"
"아니, 그건 너무 위험해. 청부업자를 고용해야지."
"나는 어때요?"
그는 씩 웃었다. "순진하긴. 어떤 바보가 여자를 고용하겠나?"
그녀는 총구를 겨누며 입술을 적셨다.
"당신 부인."
  

이 짧은 소설을 읽고 현대 가족사회의 붕괴,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부부의 소통의 단절, 총기소유 허가가 낳은 비극, 남근의 아이러니... 등등을 떠올려야 한다면 즐거워야 할 독서가 얼마나 피곤해지겠는가. 이렇듯 원작자의 의도를 넘어서는 과잉해석은 늘 넘쳐난다.

결론은『본드걸 미미양의 모험』은 재미있고 가벼운 소설이다. 재미있는 소설은 그냥 재미있게 읽으면 된다. 나는 이 소설을 그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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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여행자의 아내 1
오드리 니페네거 지음, 변용란 옮김 / 살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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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있습니다 

한때 내겐, 유학 시절에 만난 일본인 친구, 말하자면 '베스트 프렌드'가 있었다.
언어가 통하는 것과 정서의 뿌리가 통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탓에 그 친구와 나는 매우 친한 것 같기도 하고, 좀 친한 것 같기도 한 그런 애매모호한 사이였는데 녀석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어느 날 저녁, 진지한 얼굴로 나한테 말했다. 자기와 Best friend가 되려면 두 가지 조건, funny 하거나 smart 하거나, 중 적어도 하나는 만족시켜야 하는데 내가 그 조건을 만족시킨다는 거다. 즉 내가 녀석의 Best friend인데 이유는 내가 매우 'funny'해서라는 것이다. (이왕이면 smart로 해주지-)

사실 '영리하거나 재미있거나'는 친구보다는 책을 고르는데 더 유용한 사항이다.
그리고『시간 여행자의 아내』는 이 두 조건의 중간쯤에 있는 소설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이 소설의 제목이 왜『시간 여행자의 아내』인가 알게 되는데 소설의 주인공은 헨리와 클레어 두 사람이지만 어떤 면에서 클레어가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보여진다. 다음은 책을 읽다가 콧날이 시큰해지더니 기어이 눈물이 나와 버린 장면이다.

아이가 선생을 돌아보며 미소를 짓는 바람에 나도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나는 내 딸의 얼굴을 보고 있다. 바로 옆 전시관에 서 있던 나는 아이를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몇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갔고, 아이도 나를 보더니 얼굴이 환해지면서 작은 접이식 의자를 쓰러뜨리며 일어나 나에게 달려온다. 영문도 알아차리기 전에 나는 무릎을 꿇고 앨바를 내 품에 꼭 안고 있고 아이는 몇 번이고 나에게 '아빠'라고 속삭인다.
- p.144, 같은 제목 2권 

이후 눈물은 시시때때로 나왔는데 즐겁고 재미있었던 1권에 비해 작가의 묘사와 서술이 두드러지는 2권은 클레어에게 감정이 제대로 몰입이 되게 한다. 아이는 참으로 경이로운 존재다. 새롭게 생성된 삶과 그 속에 깃든 새로운 미래의 희망만으로도 아이란 그 자체로 축복이 가득한 존재다. 그러니 평생을 서로 사랑하고, 기적에 다름아닌 아름다운 아이를 가진 헨리와 클레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다. 

삶의 시계가 43년이면 긴 걸까, 짧은 걸까. 
누구에게나 주어진 하루와 헨리의 하루는 같지 않다. 그러나 ('시간일탈장애'로 불리는)시간여행을 해야 하는 헨리에게 43년은 '시간은 아무 것도 아니야'라던 그의 말처럼 짧기만 한 시간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에 잠깐 등장하는 '원숭이 손' 일화가 주는 교훈처럼 삶은 우리에게 공짜로 뭔가를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헨리와 클레어가 행복한 연인이었으며 그들 앞에 어김없이 찾아온 이별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를 향한 조그만 투정은 있다. 헨리는 왜 미래의 클레어 앞에 좀 더 자주 나타나 주지 않았을까. 클레어라면 행복한 기억을 좀 더 많이 가질 자격이 있는데...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운명이 왜 헨리를 클레어 앞에 데려다 놓은 것인지 수긍하게 된다. 클레어야말로 시간 여행자의 아내가 될 자격이 있는 용감하고 현명하고 아름다운 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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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작가, 위대한 상상력 - 서머싯 몸이 뽑은 최고의 작가 10명과 그 작품들
서머셋 모옴 지음, 권정관 옮김 / 개마고원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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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전에 M군이 "네 책장에서 책 세 권을 꼽는다면?" 질문을 던졌을 때 한참 고민하다 세 권을 고르고 그러고도 또 한참을 더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 M군이 다시 "책 한 권을 추천한다면?" 물었을 때는 별 고민 없이 금방 한 권을 골라내었다. 세 권과 한 권의 차이는 과연 뭐였을까...

사실 열 권이든 세 권이든, 누군가 고심 끝에 꼽은 그 몇 권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고 가장 재미있는 소설은 아닐 것이다. 흔히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는 꼬리표를 단 추천 목록은 거기에 언급된 작품이 가장 뛰어나다라는 절대 우위의 개념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우연적 요소가 포함된 비교 우위의 목록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불멸의 작가, 위대한 상상력』(이하 『불멸의...』)에서 10인의 작가와 작가의 대표 소설을 소개하면서 서머셋 몸 역시 이 부분을 염려하고 있다.
『불멸의...』는 서머셋 몸이 직접 꼽은 열 권의 소설에 관한 비평집(평론집)이다. 몸은 어느 날 기자의 청에 별 생각 없이 열 권의 책을 추천했다가 이후 출판사로부터 그 내용을 엮어 출간하자는 제안을 받고 고민에 빠졌던 과정을 책의 서두에 밝히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불멸의...』출판 과정을 밝히는 의미 외에도 세상의 수많은 책 중에 열 권의 책을 고르는 고민이 담겨 있다.

작가의 독서일기 또는 비평집은 재미면에서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다. 한식당에서 비빔밥을 고르는 것과 비슷하달까, 이미 검증된 작가의 필력은 소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어서 소설만큼 혹은 소설보다 더 재미있는 비평집도 많다. 그러니까 장정일의 경우처럼 소설이 아닌 독서일기 때문에 장정일의 팬이 된 나 같은 사람도 있다. 

서머셋 몸은 소설이란 무릇 첫째도 둘째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 그 자신의 경우는 어떠한가. 소설이야 이미 검증되었으니 말할 것도 없겠고, 거기에 비평까지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게 잘 쓰니 한마디로 '쓰는 재기'를 타고난 작가가 아닌가 싶다. 

『불멸의...』의 목차는 10인의 작가로 나뉘어져 있는데 작가의 출생과 성장배경, 작가를 둘러싼 해프닝, 작가의 소설과 관련된 일화들로 꽉꽉 채워진 내용은, 올이 풀린 스웨터처럼 다음 얘기로 유기적으로 이어져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책에서 한 눈을 팔지 못하게 만든다. 특히 작가의 사생활을 얘기할 때 몸의 어조는 어찌나 수다스럽고 유창한지 천일야화로 왕의 분노를 가라앉힌 세헤라자드가 이랬을까 싶다.

『불멸의...』에서, 몸은 '작가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이라는 명제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입장을 취한다. 물론 몸이 고른 10인의 작가들은 모두 그 범주에 포함되는 인물들이다. 

오늘날은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18,19세기만 해도 작가가 글의 소재나 자료를 얻는 경로는 지극히 제한적이고 한계가 있어 세상의 모든 사람, 모든 사물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의 사생활까지도 몽땅 소재로 끌어다 썼다고 한다. 샐린저처럼 철저하게 은둔하는 작가도 있지만 근대에 활발하게 활동한 작가들에게 사생활의 비밀을 지키기란 거의 불가능했던 걸로 보인다. 그리하여 지인들과 주고 받은 편지뿐만 아니라 작가 스스로 작품 속에 자신의 얘기를 대놓고 하니 작품을 통해 작가를 읽는 것이 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작품 자체가 작가를 연구하는 자료인 경우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목차중 내가 특히 재미있게 읽은 건 발자크와 스탕달 편. 이 두 사람은 A.뒤마의 소설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그들 특유의 기질만으로도 배꼽을 쥐게 하는데 거기에 몸의 맛깔나는 서술이 더해지니 재미가 배가 된다. 몸은 그들에게 '위대한 작가' 호칭을 붙여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얄미울 정도로 신랄하게 '까'는데 왠지 그런 모습이 밉지 않고 정겹다. 동네아줌마들한테 남편의 치부를 흉보는 중년의 아내 같다고나 할까, 얼핏 '우리 남편은 무식하고, 교양 없고, 파렴치한 놈이에요' 라고 고자질하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호흡 사이사이 '그래도 내 남편이 최고지' 하는 것 같은 애정이 느껴진다.
인상 깊었던 대목은 발자크나 스탕달은 물론 디킨스에 이르기까지 '원고 노동자'라는 표현. 실제 그들의 집필력은 이러한 표현이 가히 부족하지 않게 양적으로 대단하다. 이는 오늘날로 치면 '연재'에 해당하는 방식을 고수했던 당시의 출판 관행이 작가들로 하여금 원고 노동자로 전락하도록 했다는 것인데, 한편으로는 이들 작가 스스로도 글 쓰기를 돈버는 수단으로만 봤다고 하니 그 시대의 풍속이 그러했던 모양이다.

책 넘김이 느려졌던 목차는 허먼 멜빌과『모비딕』편인데『모비딕』은 미드 시리즈 CSI에서 그리섬 반장이 즐겨 인용하던 소설이기도 하다. 유명세에 비해 국내에 제대로 된 번역본이 없어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몸의 설명에 의하면 멜빌의 문장이 꽤 난해한데다 다층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다 하니, 타국의 번역자에겐 상당히 어려운 도전이겠구나 싶다.
(몸에 의하면)멜빌은『모비딕』이 알고리즘 소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지만 멜빌의 소설은 실제로 그렇게 읽히고 있고 또한 그 덕에 오늘날까지 각종 '읽어야 할 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소설이 되었다 하니 일견 아이러니하다. 어쨌든 같은 언어권인 몸조차도 난해하다고 고백하고 있으니 번역자의 어려움이 능히 짐작가고도 남는다. 일간 모 출판사에서 출간 예정이라니 기대를 해봐도 좋을 듯.

도스토예프스키 편은 다른 의미에서 인상적이었는데 최근 읽은 이병주의『허망과 진실 1 - 서양편』에 등장하는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듯 사뭇 달라서였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사람, 같은 에피소드를 다루면서도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해석은 판이하게 달라지는 점이다. 그러니까 몸의 도스토예프스키는 (어린 소녀와 강제적으로 맺은 성관계를 자랑처럼 떠벌리고 다니는)파렴치한에 한심한 도박꾼에 열등감 가득한 찌질이 작가지만 이병주의 도스토예프스키는 요절한 형의 가족들을 평생 부양하고, 부정한 부인이지만 그녀가 죽을 때까지 헌신적이었던 순정파 로맨티스트이며, 사형을 사면받고 복역했던 감옥에서의 경험에 빗대어 소설의 사회적 기능에 고민이 많았던 작가다.
사실 누구의 도스토예프스키가 실제에 가까운가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작가의 사생활이 작가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독자인 우리는 작가의 작품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덧. 역자의 공은 웬만하면 드러나기 힘든데《불멸의...》는 정성을 들인 역자의 주석이 감탄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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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0-03-23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는 발자크 평전 한 권 읽는데도 엄청 오랜 시간을 소비했는데요. 이런 책이 있었군요. 리뷰당선 축하드립니다.

인삼밭에그아낙네 2010-03-24 14:00   좋아요 0 | URL
발자크평전이면 혹 츠바이크의 책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책장 좋은 위치에 꽂아두고 늘 읽어야지 읽어야지 노려보는 책 중 한 권인데 벌써 읽으셨다니 부럽습니다.
'불멸의 작가...'의 장점은 목록 중 관심 가는 작가만 골라 읽어도 된다는 거 아닐까 합니다. 취향이 다르실 수도 있어 조심스럽습니다만, '발자크 편'은 소리 내어 웃어가면서 정말 재미있게 읽은 목록이에요.
(앗, 감사합니다. 리뷰에 당선되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