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일간의 아라비안나이트 - 상상초월 이집트, 버라이어티 수다로 풀다
김정은 지음 / 동아일보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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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집트는 나에게 항상 가보고 싶은 나라 중의 하나이다. 아시아나 아메리카, 유럽은 쉽게 갈 수 있지만 이집트는 중동이라는 지역 특성상, 여자 혼자서 여행하기란 만만치 않은 곳이라고 들었다. 원래 하지 말라는 일은 더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청개구리 심보인가 보다. 덕분에 나중에라도 이집트는 꼭 가보고 말리라, 다짐하게 되었는데 그 전에 이집트에 대한 정보부터 착실하게 쌓기로 했다. 사실 이집트라고 하면 피라미드, 람세스 밖에 아는 단어가 없어서 이집트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부터는 현대의 이집트 모습에 한 걸음 다가간 듯한 느낌이다. 이 책은 단순한 관광 안내서가 아니라 3년동안 이집트에 살면서 경험한 내용과 함께 일반 여행책자에는 등장하지 않는 장소도 함께 소개하며 그녀의 감상과 함께 유적도 잠깐 나와있어서 이 책을 읽는 동안은 함께 이집트를 여행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 또한 이집트의 모습을 그리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집트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방식도 나와있기 때문에 이집트를 여행하는 동안 어떤 점을 주의하면 되는지도 참고할 수 있다.

 

사실 상상 속의 이집트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과거의 유물을 보존하고 있는 나라답게 고요할 줄 알았더니, 여기에 등장하는 이집트는 완전 시장바닥이다. 거기에다가 우기기는 대박으로 잘해서 자칫 잘못하면 어리버리한 관광객은 치한을 만나거나 있는 돈은 다 뜯기기 일쑤인 곳이 바로 이집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의 유물이 가득한 이집트는 여전히 매력적인 나라이다. 고대문명과 현대의 문명이 오묘하게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전 세계의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다채로운 색깔을 가진 이집트의 모습과 함께 이 책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바로 작가의 맛깔스러운 문체이다. 사실 여행책자는 굉장히 많이 서점에 있지만 이렇게 재미있는 안내서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사진을 잘 찍고 경험을 많이 했어도 문장 표현력이 떨어져서 조금 아쉬운 책자들도 여럿 봤던터라 이 책도 사실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다소 정신 사나운 표지와 달리 저자의 문장은 상당히 안정되어 있으면서도 유머가 느껴진다. 덕분에 이집트 문화와 유산에 대해서 보다 재미있게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이집트에 꼭 가보고 싶었지만 아직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간접적으로나마 이집트를 가까이서 체험할 수 있는 멋진 책이다. 그리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신비의 나라로 각인이 되어있는 듯 하다. 아무튼 이 책을 읽고나니 이집트에 가고 싶은 나의 열망은 더 커졌다. 이 책에 등장한 핫 플레이스들을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이집트를 방문하게 된다면 꼭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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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의미
마이클 콕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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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출생의 비밀이라는 주제는 은근히 한국 드라마에서 참으로 많이 나온다. 하류 인생으로 살던 착한 심성을 가진 주인공과 태어날 때부터 부자로 태어나서 굉장히 성격이 좋지 않은 경쟁자의 구도는 마치 한국 드라마의 너무나도 뻔한 레파토리가 아니었던가. 주인공이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출생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경쟁자와 위치가 뒤바뀌었을 때 복수를 하지 않고 너그럽게 용서를 해주는 천사와도 같은 행동은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끔찍한 짓을 했던 사람에게 똑같은 강도의 복수를 하고 싶어하는 것이 본능이다. 아무튼 이 책은 우리에게 왠지 친숙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나, 내용의 전개나 깊이면에 있어서는 일일 드라마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수준을 자랑한다. 그 때문에 엄청난 두께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게 책을 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처음에 이 책을 봤을 때, 과연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을까 내심 걱정도 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러한 나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책이 두꺼워서 불편한 점이 있다면 무게가 좀 나가기 때문에 휴대성이 떨어진다는 점과 내가 누워서 책을 주로 읽는 습관이 있어서 책을 오랫동안 읽으면 팔이 아프다는 것 외에는 분량에 대해 전혀 불만이 없다. 이 책이 이렇게까지 두꺼워진 이유는 단순히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분량의 주석과 그 시대를 묘사하는 대목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 시대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더라도 꼼꼼하게 쓰여진 주석을 읽으면서 이해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어 별다른 참고 서적을 활용할 필요가 없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사랑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은 언제나 환영이다. 이 책의 주인공도 책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학구적이고 머리가 좋은 청년으로 책을 읽는 내내 또다른 책과 함께 호흡하는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현대 소설 속에서 고서의 향기를 발견하는 즐거움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무엇보다도 주인공이 가진 많은 지식과 끊임없는 집념에 감탄했다. 사실 영국에서 손에 꼽히는 가문의 숨겨진 후계자가 바로 내가 된다면 누구라도 끝까지 그 사실을 밝혀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데에는 상당한 실력이 필요하다. 주인공은 다소 은둔자 스타일이면서도 그가 가지고 있는 뛰어난 능력 덕분에 결국에는 원하는 문서를 손에 넣고야 만다. 사실 이런 소설들은 중간까지 지루하게 사건을 끌다가 마지막에 가서 갑작스럽게 결말을 맺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오랫동안 준비되어서 그런지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안정적인 흐름을 보여주며 주인공의 결말도 조금은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런 내용으로 전개가 된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이 일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쓰여져서 다소 편협된 시각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워낙 이야기거리가 풍부한 주인공이라 그리 지루하지는 않다. 책에 대한 묘사를 할 때는 오히려 좀 더 길게 해주어도 좋을 법 했다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긴장감이 팽팽하게 느껴지는 빠른 이야기 전개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뒷 이야기가 무엇일까 궁금하게 만들어서 끝까지 책을 읽게 만드는 강한 흡입력을 가진 매력적인 소설이다. 독서와 추리 소설, 역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한 번 손에 잡은 순간부터 끝까지 이 책을 눈에서 떼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나 역시도 동일한 경험을 했고,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다 읽은 지금은 뒷 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하면서도 허전하기까지 하다. 다행스럽게도 이 책의 저자가 '밤의 의미'속편을 집필하고 있다니, 그 책이 출판된다면 반드시 서점으로 달려가서 구입할 의사가 있다. 그 정도로 상당히 매력적인 소설이다. 요즘에 읽을만한 소설을 찾지 못해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당신이 어떤 타입의 독서가이든,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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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이야기 - 추리 마니아를 위한 트릭과 반전의 관문 126
파트 라우어 지음, 이기숙 옮김 / 보누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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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소설을 읽는 과정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과정과 마지막의 반전이 무척이나 기대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단 추리소설 마니아로서 내가 추리소설을 찾는 것은 앞의 이유 때문이다. 사실 워낙 게으른 나는 특히 탐정이 나오는 소설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소설 속의 탐정이 독자인 나를 대신해서 범인을 찾아주기 때문이다. 탐정이 나오는 스타일은 상당히 고전적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인기가 유효한 테마임에는 틀림없다. 머리가 총명한 탐정은 직관과 아주 작은 실마리를 보고서도 금방 범인이 누구일지를 추론해낸다. 아마 그런 방법의 대가로는 셜록 홈즈와 에르큘 포와로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탐정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독자 스스로가 탐정이 되어야 한다. 그닥 두꺼운 책은 아니만, 꽤 많은 추리 문제가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퀴즈나 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장황하게 서술한 글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조금은 실망할 수도 있겠다. 여기에 등장하는 추리 문제들은 길어봤자 2장을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굉장히 짧은 글 안에 숨어있는 문장의 뜻을 이해하고 미심쩍은 부분을 찾아내는 것이 이 책에 등장하는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요령이다. 사실은 여기에 등장하는 문제들이 엄청난 추리력을 요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약간의 센스를 가진 사람이 더 유리하게 되어 있다. 글 자체가 길지 않다보니 복잡하게 얽힌 문제는 등장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추리력이라기 보다는 조금 어려운 넌센스 퀴즈 문제도 상당수 실려 있다. 한 두 문제 정도는 다른 퀴즈 책에서도 봤을 법한 문제인데, 아무튼 내용 자체가 신선해서 그냥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정말 장황한 표지에 비해서 내용의 깊이는 다소 떨어진다는 것이다. 사실 표지만 보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인 사건이 등장할 듯 싶은데, 실제로는 유쾌한 문제들이 가득하기 때문에 아무런 정보없이 이 책을 접한 독자는 어리둥절할 수도 있겠다. 책 디자인은 굉장한데, 내용은 추리 퀴즈이니 디자인이 내용과의 밀착성이 떨어지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혼자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휴가지나 친구들과의 여행에 가서 함께 즐길 수 있는 문제들이 가득해서 퀴즈 대결을 펼치는 것도 꽤 재미있을 듯 하다. 나는 이미 휴가가 다 끝난 이후에 이 책을 보게 되었기 때문에 정작 활용은 하지 못했지만, 올해 겨울이나 내년 여름에라도 한 번 써먹어 보고 싶다. 방구석에 틀어박혀 앉아서 혼자 수수께끼를 푸는 즐거움도 상당하겠지만 많은 친구들이 함께 추리문제를 푼다면 그 즐거움은 배가 될 듯 싶다. 수많은 반전이 등장하니 누구의 추리 센스가 더 훌륭한지 비교해보는 것도 좋겠다. 퀴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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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듯 시크하게 Nobless Club 17
한상운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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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라는 단어가 왠지 어색하지 않으면서도 친숙하게 다가온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정확한 의미는 잘 모르겠으나 일단 패션감각이 꽤 있다는 소리가 아닐까 하는 막연한 추측만 할 뿐이다. 아무튼 상당히 멋쟁이의 느낌이 가득한 책 표지에 막연하게 이끌려서 읽게 되었다. 사실 우리나라 작가가 쓴 소설은 참으로 오랜만에 읽는다. 서점에는 워낙 많은 종류의 책들이 깔려있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보니 사실 외국 작가들에 비해서 인지도가 낮은 한국 작가들에게는 시선이 덜 가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표지에 큰 느낌은 없어도 내가 좋아하는 사건과 형사가 등장하는 소설이라고 해서 왠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태석은 전형적인 한국 형사이자, 한국 남자이다. 물론 얼굴이 잘 생겼다는 점은 전형적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성격이 무뚝뚝한 점이나 자신의 잘 생긴 얼굴 덕분에 여자들에게 집착을 해 본적이 없다는 점은 주변에 있는 남자들과 꽤나 비슷한 듯 싶다. 아무튼 마초적인 남자 주인공이 우연하게 일생일대의 대 사건을 맡게 된다. 워낙 사건이 큰지라, 사실 제대로 사건을 해결해나가기도 쉽지 않다. 그런 와중에 여자 문제까지 덤으로 끼어들었다면 사건이 꽤나 복잡하게 엮인다는 것은 누구나 불 보듯 뻔한 사실이다. 아무튼 여자들은 너무나도 착한 남자들보다는 나쁜 남자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전제하에 이야기가 진행된다. 나름대로 제멋대로 하는 것이 나쁜 남자라면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들은 모두다 하나같이 나쁜 남자들이다. 뭐, 나름대로 매력들은 잔뜩 있겠지만 솔직히 나는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에게 이성으로서 큰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래서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이 나왔나보다.

 

잠깐 이야기가 옆으로 새기는 했는데, 나름대로 마약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 로맨스까지 곁들이니 읽는 재미는 쏠쏠하다. 책장도 술술 잘 넘어가고 독자를 책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요즘 한국 소설은 별로 읽을 것이 없어! 라고 투덜대기만 했었는데 이런 작품이 나오는 것을 보면 한국 소설 시장에 쑥쑥 커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캐릭터들이 유쾌하고 아무리 어려운 사건이라도 희망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더더욱 끝까지 소설을 읽게 만들었다. 사실 무거운 분위기로만 갔다면 금방 질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당히 한국의 거친 형사의 모습과 함께 사람과 사건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서 꽤나 사실적으로 그려졌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 책의 제목인 '무심한 듯 시크하게'는 남자 주인공이 추구하고자 하는 이미지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소설에서 '무심한 듯 시크한' 사람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모두 다 무심한 한국 남자의 전형일 뿐이며 여자 주인공들도 똑똑하지만 그리 시크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무지막지한 폭력적인 장면도 등장하지 않는다. 한국적인 정서에 맞춘 배경에 추리소설의 요소를 가미하여 꽤나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엮어놓은 형사 소설이다. 평소에 추리소설을 즐겨 읽거나 좀 가벼운 소설을 읽고 싶었다면 이 책이 제격일 듯 싶다. 책 두께가 약간 두툼하기는 해도 책장이 쉽게 넘어가기 때문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책의 중간에 '무심한 듯 시크하게'보이는 방법이 살짝 공개되니 이 내용은 책을 읽는 독자만이 알 수 있는 서비스가 아닐까 싶다. 오랜만에 참 재미있는 소설을 만났다. 한여름밤에 잠을 이루기 어렵다면 재미있는 책과 함께 밤을 지새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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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못 읽는 남자 - 실서증 없는 실독증
하워드 엥겔 지음, 배현 옮김 / 알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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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에 보았을 때, 책을 못 읽는 남자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렇게 특이한 병도 있었다. 멀쩡하게 글을 창작하는 작가에게도 어느날 갑자기 뇌졸증이라는 무서운 질환이 들이닥쳤다. 뇌에 경미한 손상을 입었는데 하필이면 책을 못 읽게 된 것이다. 물론 활자로 쓰여진 것은 이제 더이상 문자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스스로 글은 쓸 수가 있다. 비록 자기가 쓴 글은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지라도 말이다. 이러한 놀라운 병력을 가진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냈다. 사실은 다시는 책을 읽을 수가 없기 때문에 퇴고의 과정이 줄어들어 내용이 조금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이것은 온전한 작가 자신의 목소리가 그대로 담긴 책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이 작가가 앓고 있는 병은 정신병 중에서도 상당히 특이한 질환에 속한다. 책 읽기와 쓰기를 모두 못하는 경우는 가끔 볼 수 있지만, 쓰기 능력이 살아있다는 것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이러한 뇌질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책 읽기를 광적으로 좋아하던 사람에게 갑자기 책 읽기를 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도 단 하루라도 읽을 거리나 책이 주변에 없으면 굉장히 초조해하는 편이라 이 남자의 심정이 절실하게 이해가 되었다. 사실 글자를 읽는다는 것이 어릴 때 어느 순간부터 저절로 된 느낌이라 굉장히 복잡한 사고의 과정을 거쳐서 되는 일인 줄은 전혀 몰랐다. 하지만 문자를 이해하고 그것을 다시 의미로 풀어내는 과정은 순간이지만 지적인 뇌의 운동을 통해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한다. 아무런 거리낌없이 글을 읽을 수 있는 나는 어쩌면 굉장히 복받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세계의 공용어인 영어를 포함해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는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으니 말이다. 원래 불행한 타인을 보면서 스스로의 위안을 받는 감정이 있다고 하던데,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아주 약간은 우월감을 느꼈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실이다.

 

책을 거의 읽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는 책을 끊임없이 사들인다. 책을 아예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이전보다 많이 걸리지만 읽기는 가능하기 때문에 책에 중독된 사람은 끝까지 책을 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전에 비해서는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심지어는 원래 직업인 추리소설 작가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한다. 원래 추리소설이라는 자체가 글을 쓰면서 중간중간에 단서를 묻어두기 마련인데, 기억력도 끊어지고 예전에 자신이 쓴 글을 읽기 어려운 상태에서 추리소설을 쓴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름대로 영미권에서는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하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듯 싶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영어로 된 책은 나오는데 한글로 번역된 책은 나오지 않았다. 작가가 실서증 없는 실독증에 걸리면서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도 같은 질병을 앓게 되었다. 본인이 직접 체험하고 있는 병이니 그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그 상황을 묘사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점도 왠지 아이러니하다.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서 뇌질환 중에는 이런 병도 있구나, 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고, 또 그 병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수한 노력을 기울이는 한 사람의 땀방울도 보았다. 나에게서 책 읽는 즐거움이 없어진다면 아마 삶의 즐거움 중 절반은 저절로 없어지게 되는 일이 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으나 언제 어디에서 나에게도 뭔가 불행이 닥칠지도 모른다. 항상 나에게 주어진 소소한 것들에게 감사하면서 살아야겠다. 그리고 조금더 치열하게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독서의 즐거움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다. 자신이 책 중독에 빠져있다면 적극적으로 작가와 공감하면서 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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