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 부리 이야기 - 제11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난 책읽기가 좋아
황선애 지음, 간장 그림 / 비룡소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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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부리 이야기』는 제11회 '비룡소문학상' 수상작이다. ~~수상작이라는 타이틀때문에 책을 선택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 눈이 한 번 더 가는 것은 사실이다.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 오리부리의 이야기.


최근 들어 '가짜뉴스'가 얼마나 심각한 사회문제인지를 실감하고 있어서일까? 이런 류의 책들이 좀 출간되는 것 같다. 사회 현상이나 사회 문제가 은연 중에 드러나는 것이다. 어린이책에서 이런 주제를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보통 '어른들'은 자신의 생각을 잘 바꾸려 하지 않는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자기가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웃긴 건, 그렇게 철썩같이 밑고 있는 그 이야기도 실은 남한테 들은 이야기다.


'가짜뉴스'에 세뇌되는 것이다. 그나마 뇌가 말랑말랑한 어린이들은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이라면 희망이다.


오리 부리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오리다.

엄마가 늘 하던 말이 "넌 물에 빠져도 부리만 동동 뜰 것 같구나."였다. 


입이 너무 가벼워서 그렇단다.


오리 부리는 늘 말을 한다. 그런데 말이란 것이 하면 할수록 실수하기 쉽다.

해서는 안 되는 말, 옮겨서는 안 되는 말, 사실이 아닌 말 등등 의도하지 않았지만 문제가 될 수 있는 말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리 부리도 그렇게 말 많이 하다가는 언젠가는 큰일이 날텐데 하는 걱정이 되었다. 


오리는 어쩌다 오리 부리가 되었을까?

총을 든 사냥꾼을 피해 도망을 가다가 몸이 지친 상태에서 몸은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부리만 쏙 빠져서 도망을 간 것이다. 


사냥꾼은 동물을 잡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도 총으로 잡지 않았다. 

총만 든 바보라고 놀림을 받았지만, 그건 사냥꾼의 마음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오리는 그런 사냥꾼에게 잡히기 싫어서 도망을 쳤는데, 결국 부리만 달아나고 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사냥꾼은 부리가 빠져버린 오리를 잡지 않았다. 왜냐면 사냥꾼이 잡고 싶었던 것은 오리부리였으니까. 


오리는 이때 굳이 자기 몸이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겠다는 기발한 생각을 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부리가 다 할 수 있으니 가볍게 부리만 돌아다녀도 될 일이었던 것이다. 아니 이런 깜찍한 생각을 하다니.


오리 부리는 우연히 토끼의 찢어진 그림 이야기를 듣게 된다. 누가 토끼의 그림을 찢어버린걸까? 동물들은 제각각 자기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가 들쥐를 지목하고 마치 그가 토끼 그림을 찢어버렸다고 단정을 짓는다.


들쥐는 자기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한번 소문이 나면 겉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는 법이다. 소문이란 것은 또 희안한 게 움직이면서 살을 붙여 나간다. 처음에는 작은 거짓말이었지만 돌고 돌아 돌이킬 수 없는 큰 거짓말이 된다.


오리 부리가 사는 마음에는 앞치마 요리사고 살고 있다. 앞치마 요리사가 이 마을에 살게 된 것에도 그러저러한 사연이 있다. 이제는 세월이 흘러서 마음에 두고 있지 않지만, 그래서일까? 세상을 보는 시선이 많이 부드러워져있다. 앞치마 요리사와 만난 들쥐는 앞치마 요리사의 위로를 듣는다.


"그래그래, 정확하지 않은 얘기라면 나한테 전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그렇게 미안한 표정은 짓지 마렴."(p.50)


"확실하지 않은 말은 지나가는 바람과 같단다."

"바람이요?"

"그래, 바람. 나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그걸 마음대로 전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우스운 일이냐?"

"누구나 살다보면 소문의 바람을 맞을 때가 있단다. 태풍처럼 큰 바람을 맞을 수도 있고, 그저 마음이 살짝 아플 정도의 살랑바람일수도 있겠지."(p.51)


이 책에는 소문을 퍼뜨리며 다니는 오리 부리도 있지만, 그 소문의 피해자인 들쥐, 앞치마요리사, 사냥꾼도 등장해서 양쪽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헛소문이나 가짜뉴스를 퍼뜨리고는 누가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를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듯, 여기서는 무당벌레가 그 역할을 한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해서 '내 잘못'이 아닌 것이 아니다. 내 입에서부터 그런 소문이 만들어져서 나갔다면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 정확하지 않은 것을 마치 사실인양 떠벌리다가는 큰일 난다. 이걸 우리 어린이들에게만 알려줘서 될까? 


어이, 정치인들 보소. 툭 던져놓고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의 행동을 이제는 그만 둘 때가 되지 않았는가 반성 좀 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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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심부름 키다리 그림책 64
홍우리 지음 / 키다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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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은 누구나 쉽지않다.

새롭고 낯선 것에 도전하기를 좋아하는 이들도 마음 속을 들여다보면 '처음'이기에 느끼는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한다.

나는 특히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과, 모르는 사람과의 통화를 어려워한다.

요즘 젊은 세대는 메신저와 SNS사용이 익숙한 반면 통화를 어려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구나 익숙하지 않은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 그림책 '나의 첫심부름'은 처음 혼자 심부름 가는 아이의 뒤를 쫓아간다.

아이는 두려움보다는 오히려 신나보인다.


그림책을 펼쳐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니 아이의 움직임과 이동이 잘 드러나는 그림책이다. 고양이와 장난치며 걷는 아이, 할머니집에 와서도 마당을 이리저리 걸어다니는 아이으 뒤를 좇다보면 아이들 특유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실수로 깨버린 그릇때문에 점점 작아지는 아이 모습이 아이의 심정을 대변해준다.

"너무 놀라서 심장이 개미만큼 작아졌어!"


심장만 쪼그라들었을까?

심부름 오던 길에서 보여준 여유로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마음은 먹구름이 뒤덮인다.

걱정구름을 애써 피해도 자기탓인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던 아이는 급기야 화를 낸다. 자기가 잘못해놓고 화를 내다가 또 금새 빌어볼까 쭈그러지고 미안한 마음에 온통 가시밭이 되어버린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결국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

아이의 심리묘사가 그림과 글이 어우러져 잘 전달된다. 아이들이 이 그림책을 읽는다면 그 마음에 공감하며 자기 이야기처럼 느낄 수 있을것같다.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기로 결심하는 장면에선 작아졌던 아이가 다시 자기자신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보인다.

할머니는 깨진 그릇을 받고 어떻게 했을까? 그건 그림책을 보고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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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둘리지 않는 말투, 거리감 두는 말씨 - 나를 휘두르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책
Joe 지음, 이선영 옮김 / 리텍콘텐츠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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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협찬을 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나를 휘두르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책'

'점점 불행해지는 관계를 정리하는

인간관계 기술 43가지'

'가스라이팅에 현혹되지 않고

자존감을 지키는 방법'

이 책은 위의 '부제'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아주 일상적이거나, 평소 그렇게 억울한 감정이 없거나, 만날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 따위 없거나, 부부 또는 연인 간에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지 않은 건강한 사람이라면 읽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제목이 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일상에서 적용할 수 있는 인간관계에 관한 책이라 생각을 했는데, 읽다보니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는 조언들이다.

그래서 저자에 대해 찾아보았다. 책에서 소개하는 저자의 정보가 너무 적다. 정신적 학대 대책 상담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번역자가 일본어과이니 저자도 일본인이겠다 싶어 원제를 찾아 검색을 해보았다.

이 책을 읽고 남긴 일본인들의 리뷰를 보니 '모라하라 モラハラ,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말이나 태도로 괴롭히는 정신적 학대'를 당하고 있거나 그럴 거라고 짐작이 되는 사람들의 글이 많았다. 우리가 흔히 그냥 거절하거나 벗어나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이 책이 알려주는 방법들이 효과가 있을 거라고 본다.

어떤 인간관계든 '적당한 거리'라는 것이 있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고 해도 지켜야 할 선이 있고, 가족이라 해도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가스라이팅'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부부나 연인처럼 남녀관계에서도 일어나지만 부모와 자식 간이나 동성 친구 사이에서도 일어나며, 직장 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타인에게 휘둘리기 쉬운 사람들의 공통점으로 '항상 상대방에게 자신의 마음을 너무 활짝 열어놓고 있다'는 점을 든다. (P.13) '상대 앞에서 의도적으로 마음과 다른 행동을 해' 보라는 조언과 함께 43가지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휘둘리는 사람'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 내 얘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자의 조언을 실천해봐도 좋겠다. 내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혹시 '내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행동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 관계란 너무 멀어져도 안 되는 것이지만 가까운 게 무조건 좋다는 것도 아니다. 인간 관계란 상대와의 거리감을 측정하면서 자신에게 알맞은 상태로 조정해 나가는 것(P.26~27)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사이 좋게 지내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기 때문에 거리를 두거나 상대에게 무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은 특히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강박적인 생각을 갖고 있고, 본인이 피해를 당했으면서도 사회에 '죄송하다'고 말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들이 '하기 쉽지 않은' 방법일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심해야 할 부분은, 그런 일을 당하는 것(휘둘리는 것, 종속관계가 되어버리는 것, 가스라이팅 당하는 것)이 내 탓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남이 무리한 부탁을 하거나 자신의 일이 아닌 것을 떠맡는다거나 하는 것이 모두 '내 탓'이 되어버린다면 자신의 주체성, 자존감을 되찾는 데는 오히려 실패할 수 있다.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들은,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아주 원초적인 솔루션이다. '더는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어떤 행동이나 태도를 하면 좋은가, 거절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방어를 할 수 있는 무게감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 등이다.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행동할 수 있게 되면 자연히 자신감이 붙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은 존중을 받는다.

2장 누구도 파고들 수 없는 베이스를 만들어라에서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은근한 미소를 지어라, 크고 느긋하게 움직여라,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천천히 말하라, 침묵이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어라, 자신의 TMI를 드러내지 마라'는 조언을 한다. 2장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도 사용하면 괜찮은 방법들이다.

3장에서는 거절의 방법을 알려준다. 이 거절의 방법은 정말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다.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거절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 '상황'이라는 것이 언제를 말하는 것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 이 책에서 알려주는 조언들은 내가 몇 번을 이야기하지만 '정말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실 사회생활이 좀 어려울 수도 있겠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지나치게 쉬운 것은 권태로움과 지루함을 유발할 수 있고, 지나치게 어려운 것은 지레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약간 어려운 도전을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데 아래 직원들에게 그런 도전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럴 때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그걸 왜 제가 해야 하죠?'하는 표정을 짓거나, '못하겠습니다'라고 단칼에 거절하거나 바쁜 척하거나(실제로 바쁜 게 아닌데 바쁜 척 하는 모습은 신뢰를 무너뜨린다) 하면 그 직원은 내가 함께 이끌고 가거나 같이 성장해야 할 직원으로 인식할 수 없다. 이 책이 조언하고 있는 내용은 그렇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는데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보니 이 책은 호불호가 많이 갈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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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소망 - 나만의 주문을 외다! 우리말 시리즈
조현용 지음 / 마리북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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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십년 쯤 전, 나의 직업은 '한국어교사'였다. 그러니까,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었다. 언어를 가르치는 일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문화, 철학과 역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언어 사용자의 환경이나 배경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미묘한 어감의 차이를 알기 어렵고 경우에 맞지 않는 언어를 사용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사람은 한국어를 사용하므로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이런 말은 언제 사용할 수 있는지', '이것과 저것은 어떻게 다른지', '왜 같은 뜻인데도 이 문장에서는 쓸 수 없는지' 등 구체적으로 답을 해주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역사와 문화, 환경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굳이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문장을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들에게는 어려운 부분이다. 그래서 어휘 하나를 제대로 설명하기 위해서 '말로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어와 언어문화를 연구하다보면, 우리말에 담겨 있는 삶의 지혜를 더 많이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 중에서도 삶을 긍정적으로 이끄는 우리말을 소개한다. 우리말 어휘를 소재로 삼아 미래를 기대하는 소망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에세이로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국어의 어휘를 소개하는 책으로도 볼 수 있다. '별이나 우주'를 이야기하면서 내 삶을 반추하는 글을 쓸 수도 있고, '자연 현상'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의 삶을 읊을 수도 있다. 이 책은 바로 우리말,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를 빗대어 삶을 이야기한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책을 읽으며 우리말이 품고 있는 '소망'을 함께 찾아 본다.

'까짓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별거 아니니까 툭툭 털어버리자'라는 느낌이 들며 속이 시원할 때가 있다. 까짓것의 의미를 '까지'와 비교해서 보면 '그 정도까지는 괜찮다'는 느낌이 있다고 한다. 즉, 대수롭지 않게 여기라는 의미다. 까짓것의 범위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마음도 덜 괴롭고 우울함도 줄어든다. (P.44 요약)

'고통'은 사전에 '몸이나 마음의 괴로움과 아픔'이라고 정의되어 있는데 '괴롭다'와 '아프다'가 합쳐진 말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비슷한 말을 합쳐서 의미를 강조하는 표현을 동의중첩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다른 이의 큰 상처보다 자신의 손톱 아래에 박힌 가시를 더 아프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별 것 아닌 일도 당사자에게는 가장 힘든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다. 육체적으로 아픈 것은 통(痛)이고 정신적으로 아픈 것은 고(苦)가 아닐까 생각한다. 고통은 부정적인 생각을 수반하지만 때로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괴롭고 고통스럽다는 것은 일종의 성장통으로 괴로움의 순간이 성장의 환희가 되기도 한다.

'어떻게 해'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는 공감을 나타낸다. '어떻게 해?'는 '방법'을 물어보는 의문문인데, 내가 지금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때도 사용한다. 감탄문으로 사용되는 것인데, 이때 느껴지는 감정은 당황하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어떻게 해'는 큰 슬픔에 빠진 사람이나 굉장히 좋은 일이 생긴 사람에게도 다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반대의 상황에서 사용되지만 속뜻은 비슷하다. 즉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것.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말이다. 공감을 아주 잘 표현한 말이지만, 때로는 아무 말 없이 손을 꼭 잡아주는 것으로도 위로는 전달할 수 있다.

저자는 인생에서 제일 괴로운 단어로 '혼자'를 떠올린다. '혼자'라는 말은 듣기만 해도 외로움이 느껴진다고. 아무도 없는 빈 공간에서 철저히 외로움을 느껴본 사람은 혼자의 고통을 알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혼자'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 '외로움'도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누군가에 의해 고립도거나 버려진 느낌을 받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예전에는 대가족에다가 늘 함께 어울려야 하는 사회활동 때문에 '혼자'가 되는 상황이 되면 외로움의 크기가 상당히 컸을거라 생각된다. 요즘은 혼자 뭔가를 하는 것이 낯설지 않은 시대이기에 느낌이 조금 달라졌다. 스스로 '혼자'의 삶을 즐기는 것이 아닌 '따돌림'의 결과일 때는 부정적인 단어로 작용을 한다. 혼자라는 말은 '하나'라는 말과 통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하나가 자기 존재를 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한낱'이 되고 만단다. 한낱은 하나하나가 낱낱이 흩어지는 것을 말하는데 이것이 외로움과 두려움의 이유가 된다.

어휘를 통해 인생의 쓰고 단 맛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에세이와 어휘 설명서의 어중간한 지점에 있는 것은 조금 아쉽지만, 내가 사용하는 언어의 뜻과 느낌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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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위로 - 글 쓰는 사람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곽아람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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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대학 입학 성공기를 다룬 책은 많은데, 입학 후부터 졸업까지 이르는 성장 과정을 다룬 책은 없는 걸까? 해외 대학에서 유학한 이야기를 다룬 책은 많은데, 국내 대학에서 공부한 이야기는 왜 드문 걸까? 의문을 거듭한 끝에 결심했다. 그러면 애가 한 번 써 보자고. 그리하여 이 책은 40대 직장 여성이 대학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보낸 20대 초반을 돌아보는 성장기가 되었다." (p.11)

오래 전에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인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것들, 첫 사회생활이라 할 수 있는 유치원에서 배우는 것들이 살면서 우리가 지켜야 할 무수한 규칙과 실천방법들이다. 곽아람의 '공부의 위로'를 읽으면서 그 책이 떠올랐다. 내용의 유사함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한 모든 것들이 지금을 살고 있는 나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공부의 위로'에서 저자는 대학에서 배운 교양 수업을 중심으로 지성(知性)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이야기한다. '대학 때 작성한 대부분의 리포트 파일을 가지고' 있다는 저자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많은 리포트들을 피드백을 포함하여 되돌려받았다는 것도, 그 리포트들을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다는 것도.

나는 '혹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꼭 '대학시절'이라고 대답을 했다. 그만큼 의미있었고 즐거웠던 시잘이었지만 나는 내가 들은 교양 수업이 기억나지 않는다. 돌려받은 리포트도 없다. (그 당시 교수님들이 돌려줬는지도 기억에 없다.) 대학 때 쓰던 전공 교재들은 20년 정도는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공부의 위로'를 읽다보면, '친구들이 수강신청해서' 따라 신청한 과목이 대부분이지만 그때 배운 것들이 저자의 인생 어느 구석에서든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금 삐딱한 나는 매 학기 21학점을 꽉꽉 채우면서 수업을 들었는데도 기억에 남는 강의가 없는 것이 '내 탓'도 있겠지만 '가르치는 사람'의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수준 차이'를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저자는 교양수업으로 외국어를 배우는데 원서로 읽는 것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한다. "번역서의 문장들은 매끄럽고 아름답지만 내 것이 아니므로 관념적이고 피상적이다. 원어로 읽으면 다르다. 날것 그대로의 뜻을 곱씹게 되므로 구체적으로 내 것이 되어 손에 잡힌다."(P.50) 이 부분에서 크게 공감하였다. 나야 남들 다 하는 영어는 못하지만, 그래도 제2외국어로 배운 외국어 한 두개가 있다. 나 역시 원서로 읽으면서 번역서와는 다른 맛을 충분히 맛본 터였다.

'인문교양의 힘이란 남과 같은 것을 보면서도 뻔하지 않은 또 다른 세계를 품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저자는 말한다. 대학에서 배우는 교양 수업 몇 시간이 엄청난 지식을 쌓게 할 수는 없지만 이때 배운 교양을 바탕으로 해서 삶의 지혜, 지식의 확장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 대학에서 전공과목 교육이 부실해진 것을 사람들이 걱정하지만, 저자는 교양과목 수업이 망가지는 것에 대해서도 크게 우려하고 있다. "대부분의 이들에게 대학이 교양을 습득하는 마지막 장소이기 때문이다."(P.63)

"인도미술사는 무용한 수업이었나?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었고, 새로운 지식을 안겨 주었고, 한 인간으로서의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제 안다. 그 수업의 쓸모는 그 수업을 듣겠다 결심하던 시절의 내가, 그 수업이 무용하리라 여겼다는 점에 있다는 것을.

무용한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쓸모 없는 것을 배우리라 도전하고, 쓸데없어 보이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 그것이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젊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이자 가장 소중한 가치였다는 걸. 그 시절 무용해 보였던 수많은 수업들이 지금의 나를 어느 정도 '교양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P.117)

저자의 주장에 공감했던 부분이 있는데, 바로 창의성과 암기에 관한 부분이다. 많은 이들이 '주입식 교육'을 비판하지만 암기로 지식을 주입하는 일이 선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을까? 소수의 천재들이라면 태어나면서부터 번떡이는 아이디어로 가득차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평범한 우리는 지식과 정보를 암기하는 수고를 거쳐야 한다. 기본적인 정보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보는 것과 아무 것도 모르고 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어떤 것은 직관적으로 느껴야 하는 것이 있지만, 어떤 것은 나의 직관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솔직히 후자가 더 많지 않은가? 즐기기 위해 공부를 하는 셈이다. 그렇게 하는 공부는 또 즐거우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 수업 시간에 읽은 아리스토파네스가 내가 살면서 읽은 유일한 아리스토파네스였고, 그 수업 때문에 읽은 볼테르가 내가 만난 유일한 볼테르였다. 소포클레스도 에우리피데스도 몰리에르도 솔제니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그렇게라도 접했기 때문에, 나중에 그 이름들을 다시 만났을 때 두려워하지도 머뭇거리지도 않을 수 있었다. 교양은 어떤 상황에서든 주눅 들지 않을 수 있는 힘이 된다."(P. 169~170)는 문장을 보고 나는 또한번 공감하였다. 저자는 나중에라도 그 이름들을 다시 만날 기회라도 있었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다시 만날 일도 거의 없다.

해외 여행 한 번 가자고 했더니, 우리나라도 구석구석 안가본곳이 많은데 왜 나가냐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지구상에 그 많은 장소가 있는데, 어차피 못 가본 곳, 안 가본 곳 투성이인데 좀 유명하고 좀 특이하고 지금 나의 생활에서 벗어나 리프레쉬할 수 있는 곳에 가 보면 좀 어떤가? 때로는 두 번 다시 가지 않을 길도 한 번 가보면 좋지 않은가? 내가 평생 다시 만날 일 없어도 그렇게 대단하신 분들이 남긴 저서 한 권 슬쩍 읽고 지나갈 수 있는 기회라도 고맙지 않은가?

"대학 시절에 수강했던 많은 강의들이 선배들과 동기들의 그럼 '추천'에 의해 엉겁결에 택하게 된 것이었는데, 배움을 갈망하는 이들이 한곳에 있으면서 서로의 배움을 공유하고 부추기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것이 대학이라는 공간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겨우 스무 살 남짓한 학생들에게 학점을 잘 주는 강의가 아니라 '정말 좋은 강의'를 듣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고, '좋은 강의'를 판별할 만한 식견이 있었다는 것도 지금 생각하면 대견하게 느껴진다. '쉽기만 한 길'과 '어렵지만 얻을 게 있는 길'이라는 다양한 선택지 앞에서 앎의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도 대학의 역할일 것이다."(P.253)

대한민국의 많은 대학이 저자가 말한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다. 배움을 갈망하는 선후배가 모여 좋은 강의를 추천하고, 그런 좋은 강의가 많아서 고를 수 있고, 앎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는 그런 대학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대학에서 배운 '교양'이 나의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라도 '교양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면 좋겠다. 그렇지 못했기에 나는 책을 읽고 또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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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03-30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가 넘 별로인데 무슨 연관이 있나요??

하양물감 2022-03-30 13:20   좋아요 1 | URL
책 표지랑, 책날개도 좀 마음에 안들어요... ㅎㅎ
표지 그림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읽는 사람](1994)이라는 작품입니다.
책 읽는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넣지 않았을까요?

라로 2022-03-30 14:56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다시 표지를 자세히 보게 되네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좀 거리가 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호두파이 2022-03-30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쓰신 글 보니 읽고싶어져요ㅎ 언급하신 <내가 배워야할...>도 아직 안 읽었는데, 열심히 읽고 있지만, 저는 아직도 북린이네요. ㅎㅎ;

하양물감 2022-03-30 14:19   좋아요 1 | URL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부럽고 한편으로는 속상하고 그랬어요.
대학을 다니면서, 명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다는 것이 그랬고, 그런 강의를 추천해줄 수 있는 안목과 식견을 가진 친구들이 있다는 것도요. 알수없는 자격지심이^^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