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둔의 기억 2 - 제1부 저항군, 제2권 드러나는 진실
라우라 가예고 가르시아 지음, 고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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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키르타슈는 나의 예감을 벗어나지 않고 멋있는 인물이었다.

멋있는 악역이 되는 조건은 주인공 못지않은 카리스마와 더불어 극중에서 캐릭터의 변모가 이루어져야한다는 생각을 해봤다. 사실 모든 악역이 다 멋있다면 문제가 있는 거잖아. 어쨌거나, 2권에서의 키르타슈는 1권에서 느낀 호기심과 관심을 멋지게 풀어내어 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잭이란 캐릭터는 중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밋밋한 인물이다.

한편으로는, 잭과 빅토리아에 대한 나의 예감이 맞아떨어졌음을 알고 조금 싱겁다는 생각도 했는데, 키르타슈가 그 싱거움을 단숨에 날려주었다. 빅토리아가 잭과 키르타슈, 둘 다를 사랑한다는 설정은 의외긴 했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잭과 빅토리아의 관계는 뜨거운 열정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동지애적인 사랑으로 묶여있는 반면, 키르타슈와 빅토리아의 관계는 정열의 불꽃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랑이다. 여자로서 생각할 때 어떤 사랑을 택해야 할지는 사실 조금 미묘하다. 빅토리아처럼 둘 다 사랑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키르타슈의 비밀이 풀리면서 새로운 동맹관계를 맺게 된 저항군. 저항군에게는 죽은 줄 알았던 샤일과, 빅토리아를 보호해주던 할머니의 정체, 그리고 새로이 투입된 게르데라는 요정까지 2권에서는 1권보다 더 활기차고 박진감 있는 스토리가 펼쳐진다. 키르타슈가 요정족 마법사를 원했던 이유가 뭘까 궁금했는데, 그것이 풀렸다. 요정의 마법으로 보호를 받는 빅토리아를 잡으려면 요정의 힘과 요정의 마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키르타슈가 빅토리아를 지키기 위해 잭을 끊임없이 죽이려하는 것은 일견 이해가 가는 행동이다. 용이건 빅토리아건 간에 둘 중 하나만 없어도 되기 때문에 빅토리아보다는 잭을 없애는 쪽을 선택한 것이고, 또, 세크와 용은 서로가 원수처럼 지내는 종족이기 때문에 별다른 양심의 가책 없이도 일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빅토리아라는 매개체가 있기 때문에 둘은 부딪칠 일은 피하고 있다. 그것이 저항군의 새로운 동맹을 이어주는 힘이기도 하다. 유니콘의 힘은 그런 것이다. 폭력성과는 거리가 먼 존재의 힘.

어쨌거나, 2부에서 새롭게 맺어진 동맹이 이둔에서 어떻게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 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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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둔의 기억 1 - 제1부 저항군, 제1권 수색
라우라 가예고 가르시아 지음, 고인경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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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둔의 기억은, 아침부터 불길한 예감에 시달리던 잭이라는 소년이 부모님의 죽음이 일어난 장소에서 낯모를 사람에게 이끌려 ‘림바드’-시간과 공간이 겹치는 경계의 집-란 곳으로 가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림바드에서 만난 저항군-단 두 명뿐인-과 빅토리아라는 여자아이는 잭에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부모님이 죽게 된 원인이고, 잭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계속 림바드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이다.

저항군은 잭을 온전히 믿지는 못하지만, 브룬 왕의 아들이자 바니사르 왕국의 왕세자이기도 한 저항군의 리더 알산은 잭을 위해 검술을 가르쳐준다. 잭보다 먼저 림바드에 온 빅토리아는 샤일로부터 마법 수련을 받고 있으며 약간의 마법을 다룰 줄 안다. 저항군은 이둔의 마법사들을 보호하는 일을 맡고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임무를 갖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용과 유니콘을 찾는 일이다.

용과, 유니콘.

이 두 생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화나 전설 속의 동물로 등장하는 캐릭터다. 그래서 판타지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생물이다. 이둔에서도 이 두 생물은 이둔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을 하는데, 둘 중 하나만 있어서도 안 된다. 셰크-날개 달린 뱀-들의 공격으로 용과 유니콘이 거의 다 죽고 겨우 살아남은 새끼용과 어린 유니콘을 발견한 것이 바로 알산과 샤일이었다. 그런가하면, 불을 일으키는 염화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뱀을 싫어하는 잭과 치유능력을 가진 빅토리아는 용과 유니콘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알산이 잭을, 샤일이 빅토리아를 발견하고 돌봐주는 모습은, 알산과 샤일이 용과 유니콘을 발견했을 때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마도 이 둘-잭과 빅토리아-이 알산과 샤일이 찾는 용과 유니콘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다시 이둔을 아슈란과 셰크들로부터 되찾을 힘이 될 용과 유니콘.

그러나, 이 책에는 또 한명의 중요한 인물이 있다. 얼음같이 차고 냉정한 눈을 가진 키르타슈가 바로 그 인물이다. 아슈란이 맡긴 일을 하고 있는 인물로 지구에 숨어 살고 있는 이둔의 마법사들을 찾아내 죽이는 임무와 함께 용과 유니콘을 찾아내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키르타슈에게는 이해하지 못할 점들이 몇 가지 보이는데, 그의 진짜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캐릭터이다.

여기서 잠깐. 알산과 샤일, 그리고 키르타슈까지 그들은 용과 유니콘을 찾아내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책에서는 용보다 유니콘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샤일이 어린 유니콘을 발견하여 찾아오는 장면의 묘사라든가, 자주 언급되는 루나리스-유니콘의 이름-가 그렇다. 용의 경우에는, 알산이 어딘가에서 새끼용을 데리고 왔다는 언급만 있을 뿐이다. 또한, 그들이 찾고 있는 대상으로서의 구체적인 용의 이름도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은, 잭의 이미지가 용이고, 빅토리아의 이미지가 유니콘이라고 했을 때 두 사람을 대하는 저항군의 태도에서도 빅토리아에 대한 의존도가 더 큰 것을 알 수 있다. 잭이 불의 신 알둔(용들의 아버지)이 그려진 드미바트를 손에 쥐는 장면은, 빅토리아가 아이셸의 지팡이-유니콘의 마법이 깃든-를 손에 넣는 장면과 비교하여도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이둔이 아슈란과 셰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분명히 용과 유니콘이 둘 다 있어야하는데 말이다. 이 점은 책을 읽는 내내 의아했던 점이다.

자, 다시 키르타슈에게로 돌아가 보자. 키르타슈는 아슈란의 신임을 얻고 있고, 아슈란이 시킨 일을 하고 있지만, 그에게는 뭔가 다른 속셈이 있다. 그가 아슈란에게 새로운 마법사를 요구하는 장면을 보자. 거기서 그는 요정 중에 마법사가 있다면 보내달라고 말한다. 요정은, 샤일이 어린 유니콘을 발견하는 장면에서도 나온다. 어린 유니콘을 보살펴주고 있던 요정이 샤일에게 유니콘을 맡긴 것이다. 키르타슈가 요정을 언급하는 장면에서 나는 유니콘과 함께 있던 샤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빅토리아에게 함께 가기를 권유하던 키르타슈, 엘리온으로부터 빅토리아를 지켜주던 키르타슈의 모습이 그와 연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책을 읽어가는 동안, 잭이 용이고, 빅토리아가 유니콘일 것이란 생각을 하는 순간부터 조금 맥이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베일에 싸인 키르타슈란 인물의 정체가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잭과 빅토리아의 맥 빠지는 관계설정-물론 이 책을 읽는 독자인 내가 내린 관계의 설정이다-은 중요하게 인식되지 않기 시작했다. 보통 이런 종류의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보다 더 호감이 가는 캐릭터가 있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는 키르타슈가 후반부(1부의)로 갈수록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로 변모한다.

‘이둔의 기억’에는, 중요한 장소로 이둔 외에 ‘림바드’가 등장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림바드는 시간과 공간이 겹치는 경계의 집이다. 1부에서 잭이 림바드를 떠나기 전까지 이 장소는 잭과 빅토리아를 지켜주는 방패로, 또, 키르타슈의 추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장소이다. 림바드를 상상하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작가의 설명과 잭의 설명을 이용해 머릿속에 온전히 새로운 상상의 공간을 그려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둔의 비현실적인 물건들과 함께 지구의 일반적인 물건이 교묘하게 섞여있는 인테리어까지 함께 고민하다보면 더욱 그러하다.

또, 이 책에는 인간 외에 여러 가지 생물들이 나온다. 이둔에서 생활하던 생명체들은 인간도 있지만 다른 종족들도 많이 있다. 판타지 소설을 읽는 재미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등장인물들을 상상하는 것이 아닐까?

‘네 안엔 네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있어’라는 구절처럼 잭과 빅토리아의 운명을 뒤바꿔놓을 그 많은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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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습관이 아이를 망친다
정경옥 지음 / 눈과마음(스쿨타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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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이 책의 제목이 모든 것을 다 말해준다. 이런 종류의 자녀교육서의 맹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국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다. 내 아이의 역할모델은 그 누구도 아닌 부모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사람은, 바로 부모의 행동이 자녀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책을 처음 읽는 사람이다. 혹여, 교육학을 공부했거나, 이런 류의 자녀교육서를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읽지 않아도 된다. 읽고 나면 다 아는 얘기를 뭣하러 이렇게 써놨어? 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다.

내가 자기계발에 관한 책이나 이런 류의 자녀교육서를 읽고 나면 항상 하게 되는 생각은 바로 다 알지만 미처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는 일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알면서도 못한 게 참 많구나를 깨달으면 그 책은 그걸로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생각한다.

다음달이면 아이가 돌이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직장에 다녔다. 아이를 낳은 후 아이를 봐줄 사람도 없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보다 내가 아이에게 더 못해주면 어쩌나 하는 이유도 있고해서 직장에 다시 나가지 않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런데, 아이를 낳기 전에 생각햇던 것과 실제로 키우면서 내가 하는 행동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걸 깨닫게 해준 책이다. 결국은 이 책처럼 아이를 대하고자 했지만 나는 그렇게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당분간은(그 유효기간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지만) 나는 다시 모범엄마로 살아갈 것이다. 어느날, 다시 내가 보통 우리 엄마들처럼 변했을 때 또다시 나를 채찍질하는 책을 만날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가정교육, 가정교육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가정교육이 차지하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교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늘 지적하곤 했는데 결국은 사회의 시선은 가정교육으로 돌아오고 만다. 어떤 이는 학교는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지 인성을 형성시키는 곳이 아니라고도 하고, 선생들이 수업 외에 아이들 인성교육까지 신경쓰기에는 잡무가 많아서 안된다고까지 말한다. 예전과 지금은 교사의 역할 자체가 다르게 인식되는 듯하다. 그래서, 맞벌이 부부거나 한부모가정이 많은 요즘 사회가 교육을 일정부분 담당해주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학교나 사회의 역할은 축소되는듯하다. 그래서 결국은 부모들에게 그 책임이 돌아온다. 내가 하는 행동이 내 아이의 행동이 되듯이 밖에서 하는 내 아이의 행동은 결국 나(부모)의 행동이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요지는 그것이다. 그러니 부모가 잘하면 내 아이도 잘할것이다라는... 다 아는 얘기지만, 이런 류의 책을 한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도 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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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온하트
온다 리쿠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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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운명적인 사랑, 이런거 믿지 않는다. 만날 사람은 꼭 만나게 되어있다라는 말도 싫다. 이 말을 믿었다가는, 지금 나와 함께 한평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뭐 어찌보면 그 사람이 운명적인 사랑일 수도 있지만...(--)

라이온하트, 단순히 노래 제목일 뿐일까? 책을 읽는 내내 라이온하트에 대한 궁금증은 전혀 풀리지 않았다. 그저 작가가 노래를 듣고 그 노래의 제목을 차용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이야기와는 별로 연관이 없어보인다.

대신, 책을 읽으면서 계속 머리 속에 맴돈 것은 [시간여행자의 아내](미토스북스)였다. 물론 시간여행자의 아내에서는 두 사람 모두 그 사실을 어느 정도 인지한 상태며 한 사람의 일생이긴 하지만, 라이온하트에서의 에드워드와 엘리자베스는 시공을 뛰어넘어 몇세대를 걸치는 것이 다르다면 다를까? 어쨌든, 운명의 만남은 육신의 껍데기를 바꿔가며 계속 되었다. 결국 사라진 네이선교수와 기자 엘리자베스의 만남 역시 되풀이된 운명적 만남의 일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또다른 생에서 또다시 만날것같다. 영국의 역사 속 사건과 인물을 배치시켰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어색할지 모르겠지만, 그 어색함이 그들의 시공초월의 사랑을 부각시킨듯하다.

이 책에는, 온다리쿠가 자주 사용하는 듯한 기법(?)들이 제법 있다. 결국은 이 책도 [온다리쿠의 소설]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어디선가 본듯한 기시감, 연극적 요소의 결합, 하나의 줄거리로 수없이 갈라지는 이야기들이 그렇다. 뭐, 사랑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순간의 만남을 거듭하는 것 외에는 사랑을 느끼기 어렵다. 적어도 나는. 그 만남의 순간 느끼는 애틋한 사랑의 감정 또한 아주 짧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와 엘리자베스가 몇 세대를 거쳐가며 만나고 헤어지는 아픔따위는 없다. 순간의 만남을 통한 순간의 사랑의 불꽃은 잠시 타올랐다가 다시 냉정하게 사라진다.

한평생을 같이 살고도 그가 운명의 상대였다는 걸 죽음 앞에서야 눈치를 채는 것도 허망하다. 지금까지 함께 살면서 부대낀 사랑은 뭐였을까? 그래서 나는 운명적인 사랑 이런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현재를 살면서 현재의 인간관계에 만족하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나의 과거, 나의 미래가 몇번을 되풀이될 지 모르는 삶이라면 현재를 사는 의미가 너무나 미약할 것 같다.

어쨌든, 라이온하트에서 온다리쿠는 사랑의 엇갈림을 여러가지 이야기로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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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니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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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온다리쿠의 책에 빠져 - 중독성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새 책이 보이니 사게 되고 또 읽게 되는, 혹은 실망을 하더라도 계속해서 보게 되는 - 읽다 보니 어느새 12권째이다. 이렇게 한 작가의 책을 계속해서 읽은 게 90년대 중반 한국작가들의 작품 이후 오랜만인 것 같다. 아마도, 그때 그랬던 것처럼 똑같은 주제, 똑같은 이야기에 질리게 되면 온다리쿠를 나에게서 떠나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다행이랄까? 번역되는 소설의 양이 많아지면서 내용도 약간씩 달라지는 듯하다.

어쨌든 서두부터 이런 잡설을 늘어놓는 이유는, 일각에서 보여지는, [온다 리쿠를 추종하는 무리들, 온다 리쿠에 열광하는 무리들]이라며 낮춰보는 시각때문이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좋아하는 이야기가 다르듯이 미미여사에게 열광하는 이가 있듯이 온다리쿠에게 열광하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온다리쿠의 이전 책들에서 미소녀 중심의 학원물 같은 이야기에 약간 질리기도 했지만 연이어 나온 책들에서 달라진 스토리를 만남으로써 그 지루함에서 탈피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온다리쿠의 소설들이 장르문학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차치하고서라도 자꾸 읽게 만드는 중독성을 가진 것은 틀림없다. 이전의 소설에서 보았던 온다 리쿠의 세계와는 많이 달라진 듯 하지만, 이것 역시 온다 리쿠라고 생각한다.

[유지니아]라는 소설을 다 읽은 지금,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야기의 핵심포인트라는 군청의 방이니 백일홍이니 하는 것들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히사코가 범인이라는건지 아니라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사람들의 인터뷰 내용을 읽는 동안, 똑같은 것을 보지만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어떤 대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 대상에 자신의 감정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따라 서술이 틀려지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묘사에서도 마찬가지고 사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이 느끼는 세계는 너무나 다르다. 보이는 사람은 오로지 시각적으로만 세계를 바라보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은 시각을 제외한 나머지 감각-청각, 후각, 촉각, 미각-으로 세계를 본다. 그러면, 보이는 우리가 더 많이 볼까? 보이지 않는 그들이 더 많이 볼까?

생일날 일가족과 동네사람들이 독살된 사건이라는 개요를 가지고 온다리쿠는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결국은, 그 이야기들이 각각의 단편을 구성하고 있는 셈이다. 범인이야, 히사코면 어떻고 히사코가 아니면 또 어떤가? 우리가 접하는 세상의 수많은 뉴스들은 확실하거나 증명할 수 있음을 근거로 해야하지만, 사실은 온갖 추측성 보도가 난무하는 것도 사실이 아니던가? 그런 뉴스를 보며 내 맘대로 해석해버리는 세상에 살고 있기에, [유지니아]에서 보여준 사건들 역시, 그런 매스컴의 보도 중 일부가 아닐까 생각하며 책을 덮는다.

여름날, 그래도 몇시간 집중해서 읽히는 책으로 시간을 보냈다는 즐거움이 있다. 어떤 이는 풀리지 않는 이야기에 갑갑함을 느끼고, 어떤 이는 각각의 단편을 읽는 여운을 느끼기도 한다. 이 책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보이는 하나의 대상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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