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어 스콜라 창작 그림책 101
서수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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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문어가 귀여운 모습으로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그림책이다. 

제목을 보자.

"나는 문어"


그림책을 보기 전에 상상을 해 본다.

이 그림책은 무슨 내용일까?

제목을 보니, 

'자존감, 자기애, 자긍심'

'자신감, 확신, 자기신뢰'

'자기의식, 자기성찰, 자기이해'

와 같은 단어가 떠오른다.


앞표지에서는 단서를 그다지 잡을 수 없다.

뒷표지에서는 "깊은 바닷속에서도 보물처럼 반짝이는 나, 있잖아, 나는 내가 정말 좋아!"라는 카피가 보인다. 역시 제목과 연결되는 내용이다.


건강하게만 태어나렴

다른 건 아무 것도 바라는 게 없단다.


음, 나는 참 못된 생각이긴 한데,

이 말처럼 가식적으로 느껴지는 문장이 또 있을까 싶다.

모두들, 이런 마음으로 아이의 탄생을 기다린다고 해놓고

아이가 태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생각도, 행동도 다 바뀌어 버리니까..

그저 건강하게 태어나서 무탈하게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런 생각을 가진 양육자들도 이 그림책을 읽어보면 좋겠다.


이건 아이들에게 

'너는 소중하단다, 너는 너라서 아름답단다'를 알려주고 싶다기보다

양육자들에게 건네는 이야기같다.


온갖 육아서적을 쌓아두고(물론 읽었겠지?) 

좋은 음악을 들으며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저 조개 안에는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진주가 있다.

동글동글한 진주, 반짝반짝 빛나는 진주 말이다.


읏차~~ 진주가 태어나리라는 상상은 깨지고, 

문어가 태어난다.

물론 '진주'라는 이름을 가진 문어의 엄마는 

문어를 진주로 키우려고 애쓴다.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당연히 진주일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만...

내 아이가 다른 진주들과는 좀 다르다는 걸 알아챘겠지만,

그래도 수많은 진주들처럼 우리 '진주'도 빛나는 진주가 되기를 바란다.


동글동글 진주가 되기 위해 굴려지는 진주들.

어째서 타코야끼가 생각나는걸까?

진주들은 동글동글해진 모습으로 나오지만, 

'진주'인 문어는 힘들기만 하다.


결국, '진주'라는 이름을 가진 문어가 자기정체성을 발견하고,

자신이 반짝반짝 빛나는 진주는 아니지만, 

먹물을 힘차게 뿜어내며, 

긴 다리에 붙은 빨판을 이용해 진주들과 함께 논다.


진주인 줄 알고 태어났지만,

문어였던 문어 이야기.

문어는 자기정체성을 확인하고 자기가 잘하는 것을 하면서 살 때

행복해졌다.

우리는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고 있을까?

획일화된 모습으로, 남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그렇게 키우고 있지는 않을까?


내가 나라서 행복한 삶,

그런 삶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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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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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작가의 『작은 일기』를 가제본으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일상을 기록한 에세이집이다. 작은 일기라는 제목처럼, 일기로 써내려간 기록이다.

작가가 써내려간 기록들을 읽으며, 나는 내가 경험한 그 시간들을 다시 되살려본다. 내가 잠든 그 밤에, 기습적으로 이루어졌던 계엄령 선포와 국회의 의결로 해산, 그리고 그 뒤로 지리멸렬하게 이어진 내란 우두머리와 그를 추종하는 자들의 끊임없는 상식 밖의 짓거리는 아직도 여전하다.

작가는 거리와 광장을 오가며 시민들의 분노와 연대, 그리고 그 속에서 느낌 소외와 따뜻함까지를 생상하게 담아낸다. 나와 우리집 딸아이도 그 일이 일어났던 다음날 서면에 나가 길거리에서 함께 했지만, 서울에서 느꼈던 것과는 조금 느낌이 달랐다. 지역의 목소리는, 아니, 부산의 목소리는 조금, 조금 작았다고 느낀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과 염원은 서울, 부산이라는 공간을 떠나 같았을지라도... 뭘 하든 눈감고 표를 주는 부산에서는 확실히 내가, 내 아이가 서울에서 느꼈던 감정과는 분명 달랐던 것 같다.

이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작가는 식물을 돌보거나, 책을 읽거나(아, 저자가 언급한 도서들을 읽어보리라 생각하며 장바구니에 담아둔다), 몸과 마음을 돌보는 사소한 순간도 함께 기록한다. 그리고 광장에서 만난 다양한 세대와 연대하는 사람들을 통해 아직은 세상을 사랑하고 싶어지는 마음을 발견한다.

하룻밤 사이에 상황은 바뀌었지만, 그날 이후 (지난 3년 동안 일어난 비상식의 세계를 압축하여 보여주듯) 상식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를 보았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2016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광장이 진화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아마도 이 사태 초반부터 광장을 채운 다수 구성원의 영향일 것이다. 십대, 이십대, 삼십대 여성들."(p.58)

"누가 그랬나. 케이팝과 응원봉의 물결을 보며 축제 같다고. 그런 면도 물론 있지만 이 집회의 가장 깊은 근원을 나는 그 순간에 본 것 같았다. 술픔. 저마다 지닌 것 중에 가장 빛나는 것을 가지고 나간다는 그 자리에 내가 바로 그것을 쥐고 나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무사를 바라며 앉아 있었다."(p.83)

"도대체 이 마음을 어떻게 글이나 말로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미안하고.

놀랍고.

고맙고.

그리고 미안하고.

고맙고."(p.85~86)

"현장에서 체포된 사람 줄 절반 이상이 이삽십대 남성이라는 뉴스 보도가 있었다. 같은 세대 여성들이 이 나라 민주주의와 헌법을 지키려고 추운 날 거리를 돌아다니고 서로를 돌보며 밤을 새우고는 할 때, 저들은 비틀린 세계 인식과 자아 인식으로 국가기관인 사법부에서 난동을 부렸다. 대가를 치를 것이다. 동시에 이 광경을 봐야 하는 사회 구성원들도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가 그들에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가려쳐온 걸까. 1월 19일 새벽, 우리 사회가 그간 육성해 온 일부가 크게 자라나 이 괴상망측한 열매를 거뒀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다, 이것도 과정이지, 결과도 아닐 것이다. 젊은 남성들의 이 고집스러운 고집이 징그럽다.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 냉소와 혐오와 자기연민과 기만으로 가득한 그들이 놀이 삼아 자신과 타인의 삶을 조롱하고 위험에 빠트리는 일은 이제 더 보고 싶지 않다. 불법 계엄이라는 국가 폭력이 그들과 너무도 매끄럽게 연결되어 있다. 스펙트럼으로 이 내란을 보면 윤석열이 그들의 일면이기도 할 테니까."(p.98~99)

"나는 딱히 상식의 편도 아니었는데, 이 사회 상식의 수준이 무너져가는 걸 지켜보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p.99)

"지난 두달은 아름답고 좋은 것들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지만 그보다 내게는 오염의 시간이었다. 뭐가 오염되었느냐면. 매일 갱신되는 새로운 사건과 경악과 한계가 없는 것 같은 질 낮음으로, 어제의 경악이 오늘의 경악으로 무던해지는 일이 반복되어서, 그런 식으로 세상을 향한 감(感)이 오염."(p.102)

"공부를 잘한다는 건 뭘까. 내린 이후로 엘리트 카르텔과 부패의 면면을 이렇게 속속 확인하고 보니 이 사회의 '공부'가 틀렸다는 걸 새삼, 정말로 뼈가 아프게 알겠다. 이제 이 사회에서 어떤 이가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건, 그를 양육한 보호자들에게 경제적, 문화적, 인적 자원이 충분했다는 것 말고, 무엇을 증명할 수 있을까."(p.111)

"초법적 존재들. 초밥적 운명 공동체들. 초법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며 온갖 위법한 일을 저지른 자들이 법의 보호를 이토록 꼼꼼하게 받아내고 있다는 것이, 내게 너무나 큰 무력감을 안긴다. 이 사회에 강고하게, 혹은 헐겁더라도 분명하게 장벽으로 존재했던 상식, 규범, 법규.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모든 것을 홀로그램인 양 관통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들이 그렇게 하는 걸 지금 매일 목격하고 있다. 저들에게는 저들의 도덕률이 있다. 나머지 다수의 세계가 비난하고 경악해도, 자기들끼리 는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주고받고 납득하는, 되니까 되는, 어떤 도덕, 어떤 상식, 어떤 자연율이 저들에게 따로 있다."(p.112~113)

그 일이 있고 난 후, 윤석열은 파면되었고, 곧이어 대통령 선거가 치뤄졌다. 작가의 에세이는 여기까지는 가지 않는다. 나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일, 그리고 선거를 치루고, 대통령이 당선되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뻔뻔스러운' 그들은 본다.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상식이 어디까지 몰상식화되는지, 국민을 대변한다는 그들이 얼마나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지를 본다.

요 며칠은, 부산지역 정치인들이, 해수부 이전을 반대하고, 민생지원 25만원이 필요없다고 외치고 있다. 이건, 미친 짓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노인과 바다'라던 부산이 '노인과 아파트'라는 오명으로 불리우고 있는다는데, 일거리도 발로 차고, 소비진작을 위한 지원금마저 튕겨내려고 발악한다.

나는 황정은 작가의 '작은 일기'를 읽으면서, 숨가쁘게 흘러 온 지난 반년을 떠올린다. 지금 내 눈 앞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지금 현재의 내 모습이 겹쳐진다. 그 일을 겪고도 붉은색으로 덮여있던 우리 지역의 대통령 선거를 기억한다.

덧붙임: 상식이 무너진 국가가 한국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더 경악스럽다.



** 클럽창비 회원으로, 이 책은 창비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협찬(광고)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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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판소리 - 조선의 오페라로 빠져드는 소리여행 방구석 시리즈 3
이서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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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를 조선의 오페라로 해석했다는 점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판소리 열두마당 중 현재 전승되고 있는 판소리 다섯마당(춘향가, 심청가, 홍보가, 수궁가, 적벽가)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사라진 일곱마당 중 줄거리가 확실하고 널리 알려진 네마당(옹고집타령, 장끼타령, 변강쇠타령, 숙영낭자전)을 책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이 외에 판소리가 어디에서부터 왔을까를 살펴보며, 한국의 전통 서사(향가, 고전소설 등)를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국어 시간에 졸지 않았다면, 웬만하면 들어본 내용일 겁니다. 그렇지만, 챕터마다 소개된 음악을 듣는 경험은 특별합니다.   


심청가의 핵심 주제는 '효'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내용이지요. 최근에는 낲 못 보는 아비를 두고 목숨을 버린 것을 두고 오히려 불효라고 말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정승 부인이 공양미를 대신 내 주겠다고 하는데도 인당수에 빠지는 것을 선택합니다. 심청이 효녀로서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운명적으로 희생을 합니다. 저자는 심청이의 효 실천이 단순한 도덕적 가치에서 벗어나 신의 은혜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독창적인 사고(P.35)를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당시 사람들의 신앙적 보면,조선 사회의 가장 중요한 미덕 중의 하나로 그 시대의 유교적 가치관을 뚜렷하게 드러(P.34)내고 있습니다. 
심청전의 대표곡으로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소개합니다. 송가인과 남상일이 설특집으로 출연하여 불렀던 영상입니다. 이 책에서 우리에게 소개하는 음악들은 판소리에 대한, 그리고 우리 음악에 대한 선입견을 조금 깨줄 수 있는 곡들인 것 같습니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많은 음악 자료 중에서 책의 내용과 어울리는 곡을 찾아줍니다. 


수궁가에서는 첩첩 산중의 호랑이가 별주부의 말을 듣고 내려오는 모습을 그려냅니다. 몇 년전 우리에게 이 노래가 꽤나 핫했던 적이 있지요. 이 노래가 수궁가의 한 장면이란 걸 알았나요?


​범나려 온다 범이 나려온다 송림 깊은 골로 한김생이 내려온다
누에머리를 흔들며 양귀 쭉 찢어지고 몸은 얼쏭달쏭 꼬리는 잔뜩 한발이 넘고 
동이 같은 앞다리 전동같은 뒷다리 새낫같은 발톱으로 
엄동설한 백설격으로 잔디뿌리 왕모래 좌르르르르르 헛치고 
주홍입 쩍 벌리고 자래 앞에 우뚝서 흥행흥행허는 소리 
산천이 뒤덮고 땅이 툭 깨지난 듯 (P.76)


​아주 신나게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판소리 또한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면서 당시의 음악적 유행이 가미되지 않았을까요?
수궁가는 구토지설이라는 이야기로부터 왔는데, 불교의 전파가 성행했던 시기에 불전 설화가 들어오면서 우리에게 널리 알려졌다고 합니다.


​적벽가는 중국의 유명한 소설인 삼국지연의 중 적벽대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판소리인데, 고향을 그리워하는 군사들의 목소리가 많이 담긴 것이 특징입니다. 19세기 양반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나 신분제가 해체되는 20세기 즈음에는 그 인기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소개된 곡은 THE MASTER에서 왕기철이 부른 적벽가입니다. 찾아서 한번 들어보시면 좋겠네요. 


옹고집타령은 소설로도 만들어져 옹고집전으로 전해집니다. 창을 잃어버려 판소리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옹고집전으로 우리에게 다양한 버전이 전해집니다. 이 책에서는 박동진 명창이 1972년 복원하고 완창한 내용을 참고하였다고 합니다. 
재미나게도 옹고집타령 부분에서는 설날마당극 [옹고집전]을 연결하여 소개합니다. 어렸을 때 명절 때마다 마당놀이 보는 재미가 꽤 좋았는데, 오랜만에 이 책의 큐알코드를 통해 마당놀이를 다시 보았습니다. 1989년 설말 마당극을 소개하고 있으니 한번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향가를 삼국시대의 뮤지컬이라고 하니 조금 낯설게 여겨집니다. 그 당시 이 도솔가는 어떻게 가창되었을까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4구체 향가의 가사뿐이지만, 그것을 모티브로 하여 창작뮤지컬 등으로 다시 불려질 수 있습니다. 
도솔가에서 월명사가 부르는 노래는 신과 인간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P.180) 신라시대는 불교가 널리 퍼져 있던 시기였기에 사람들은 인생의 고통을 극복하고자 불교적 구원을 열망했을 거라고 봅니다. 
판소리댄스컬 '몽연'의 넘버로 듣는 서동요, 국악그룹 길의 '처용가' 등을 들어봅니다. 이러한 향가를 노래가 아닌, 글로 배웠기에 그저 어려운 문장들로만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당시의 노래는 알 수 없지만 새롭게 창작되어 가창될 수 있어 어렵게만 느껴졌던 향가들이 조금은 가깝게 느껴집니다.


​'판소리'를 대표 제목으로 내세웠지만, 판소리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두 장에 걸쳐있습니다. 그 외의 장르들은 큐알코드로 새롭게 창작된 음악을 함께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만, 이 책은 초심자를 위한 길라잡이라고 생각됩니다. 책을 통해 우리 음악의 무궁무진한 변신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가사나 내용이 주는 깨달음도 있었고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의 고전을 좀더 가깝게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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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북 - 검은 핏방울
조강우 지음 / 미다스북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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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사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에서 처음 지역 이름을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탄광촌이라는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다. 그 이상은 내가 잘 모르는 지역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관심사가 아닌 것에 대해 그리고 깊이 있는 지식이나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다. 나에게 사북은 드라마의 배경이었을 뿐이고, 내가 가기 힘든 곳이기에 관광이라는 이름으로도 접하기 힘든 장소였다. 이 책을 추천받았을 때, 그냥 그 제목만으로 '사북사건'을 다룬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하였다. 사북이라는 지명 자체를 제목으로 쓴 게 그런 느낌이었다. 그저 믿어야 했다. 저들이 말하는 것이 진실이기를 바라며, 무력하고 비참한 밤이 지나고 모든 것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들의 폭주를 그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저들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적어도 국민의 눈치를 아니면 이 세상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격식이라도 갖출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이미 인간성을 상실한 저들에게 양심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명백한 내란이었다. 그 목적이 분명했다. 국가 전복 시도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이 나라의 권력은 쿠데타를 일으킨 일부 군인들, 그들이 독식하게 되었다. 그들은 신명 나게 웃고 노래하며 축배를 들었고 오랜 역사를 지닌 군사정권은 그 전통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이어져 온 군인들의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진압 또한 그 명맥을 이을 수 있었다.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는 막연히 기대했다. p.70 초반부에 나온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지난 겨울의 그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명백한 내란이었고, 명백한 불법이었음에도, 오히려 그들은 더 당당했다. 이건 뭐지? 무엇이 그들을 저토록 당당하게 만드는걸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당당함이 '당당함'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조차 아까울 정도의 '맹목적인 믿음'으로, 사이비 종교보다 더한 믿음을 드러내는 모습에 기가 찼다. 게다가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에 더 막막함을 느꼈다. ​사북 사건이 있었던 그 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현장을 직접 눈으로, 실시간으로 볼 수 있음에도 '믿음'이라는 눈가리개가 작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엔 '믿음'이 없어서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젠 그렇지 않다. 그 믿음이 무엇을 위한 믿음인지, 해결하지 않고 덮어두는 것이 과연 '믿음'인 것인지... "아무도 싸우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한 일을 당하겠죠. 저는 저들과 싸우겠습니다. 제 위치에서." 그 맹세를 듣고 한없이 초라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p.135 그랬을거다. 그도, 예전엔 그런 생각을 했을테니까.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할 수만 있어도 뭔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적어도 그때는... 그리고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그 시절에는. 사북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북을 폭력시위라고 규정하는 뉴스가 텔레비전에서 나왔다. 광부들의 기대와 다르게 첫 보도는 무자비했다. ​공포의 탄광촌 사북 광부폭동 치안 마비 경찰서 방화 경찰 사상자 다수 북괴의 개입 의심 ​비열하고 참담한 보도였다. 광부들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 뉴스에서는 선량한 경찰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광부들의 불법 시위라고 떠들어댔다. 그 어디를 눈 씻고 찾아봐도 광부들의 피해와 소장의 부패에 관한 소식은 없었다. 사북은 고함과 욕설로 시끄러웠다. p.136~137 그랬다. 외부의 시선으로 볼 때는 양쪽의 입장을 충분히 확인해야 한다. 누군가의 시선이 한쪽으로 치우쳤다면, 그건 당연히 편파적일 수밖에 없다. 사북의 광부들이 분노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한쪽으로 기울어진 정보를 접할 수 밖에 없다면, 애초부터 그렇게 편향된 정보밖에 얻을 수 없다면, 그들은 고립될 수 밖에 없다. "제가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건지 자꾸 의심이 드네요.' "내가 네 나이였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안한거지. 변명할 수 없어." p.139 너는 단 한 번도 책임을 진 적이 없잖아. 총칼에 죽어간 이들에 대해서 책임을 진 적이 있냐고. 무참히 짓밟힌 민주주의에 대해서 책임을 진적이 있냐고 대답해 보아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 나라가 망가질 때까지. 모른 척 외면하고 도망가는 비겁자, 그게 바로 너 아닌가. 머릿속 목소리가 나를 집요하게 괴롭힌다.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비겁한 겁쟁이가 맞으니까. 그러나 적어도 이번에는 도망가지 않겠다. 성인의 책무를 지고 한번 싸워 보겠다. 그림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겠지. p.140~141 무자비한 경고에 시위대는 뿔뿔이 흩어졌다. 협박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대개 협박은 허풍과 과장이 가득하다. 그러나 저 협박은 결이 다르다. 저런 종류의 협박은 실행력이 바탕이 되어 있다. 그들은 이미 저 남쪽 지방에서 실행했었다. 태극기를 들고 있는 시민들에게 찾아간 것은 자유의 여신이 아니라 길고 긴 전차 행렬과 공수부대원들이었다. 염증이 나는 현실이다. ​평화로운 시위가 일어나면 그 연쇄반응은 항상 똑같다. 결국 군인들이 시위를 찾아간다. 그리고 피해자가 발생한다. 누군가는 죽거나, 누군가는 불구가 되거나, 누군가는 어눌하게 간신히 말을 내뱉는 바보가 된다. 늘 그래왔다. ​폭도들을 진압했다. 간첩들을 색출했다. 질서를 되찾았다. 모든 게 종료되면 나라에서 국민들에게 알린다. 항상 이랬다. 굳건하고 듬직한 국군이 빨갱이 폭도들을 진압하고 대한민국을 지켜 냈다는 것. 이렇게 위대한 군사정권의 치적이 또 하나 추가된다. 이에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다. 무관심하거나 믿지 않거나. 무관심한 이들은 위태로운 사회에서 불똥이 자기에게 튀기지 않기만을 원했고 믿지 않는 이들은 그 나름대로 반항해 보고자 했다. p.144 이 소설은, 사북 사건의 한쪽에 관심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갖고 온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미쳐간다. 아이들의 곁에는 그들 틈을 파고 든 무당이 있다. 창은,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아이들을 살려보겠다고 움직인다. 하지만 나는 그의 행동이 여전히 사북의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여기까지 왔지만 거기에는 끼고 싶지 않다. 그런데 학생들이 미쳐간다. 아이들을 구해보겠다고 애써본다. 애써 다른 현실로 눈을 돌려버리려는 모습 같다. ​종교적 믿음과 신념도, 사북의 현실을 바라보고 있는 권력자들의 믿음도, 다 하나로 이어진다. 저자는 사북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두 번째 기회 그러나 반드시 신문사에서 일해야만, 그와 관련된 직종에 몸을 담아야만 기자가 되는 것일까? 나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언론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언론을 선택하겠다. 다치고 짓밟힌 이들을 위하여, 죽어 간 이들을 위하여. 더는 숨지 않겠다. 더는 방관하지 않겠다.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 눈치를 보며 가능성을 저울질하지 않겠다. 진정으로 믿겠다. 나 자신을. 내가 반드시 해낼 수 있으리라고 믿겠다. 의심하지 않겠다. 남에게 끌려다니지 않겠다. 확고해지겠다. 뭐, 믿음이 배반당할 수도 있겠지. 아무렴 어떤가. 적어도 나는 나 자신을 믿기로 했는데. 진실은 사북에 있다. p..294~296 2024년 11월에 출간된 이 책을 지금 읽어보는 이유는, 아마도, 그렇게 똑같은 역사를 되풀이하는 상황을 한번쯤 되돌아보고 싶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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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은 왜 오해를 부를까 - 소통이 어려워 손해 보는 당신을 위한 현실 밀착 대화 공식
김윤나 지음, 고은지 그림 / 나무의마음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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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대화의 기술을 어떻게 습득할까?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충분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던 대화의 기술을, 이제는 일부러 노력해야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만큼 면대면의 기회가 줄어들었기 때문일까? 익명의 세계에서, 친절한 말씨는 눈길을 끌기 어렵다. 구구절절 긴 이야기도 그렇다. 


오랜 시간 블로그를 써왔지만, 나는 짧고, 한 눈에 들어오는 글은 잘 못쓴다. 그렇게 쓴 글이라야 사람들이 읽는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저 스크롤만 쭉쭉 내려야 하는 글보다는 그래도 곱씹으며 읽을 내용이 있는 게 좋다. 현실의 나의 말생활은 나의 블로그와 많이 닮아있다. 


내 말은 왜 오해를 부를까?

이 책의 목차를 봤을 때, 지금 딱 내가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이 책은 언젠가 한 번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하고 고민해 본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서두에 밝혔다. 나는, 이 책을 그 반대편에 있는 사람도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왜 저런 말을 할까? 저걸 바로잡아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해 본 사람들 말이다. 


목차를 먼저 보면 

1. 신경질 내지 않고 부드럽게(반대의 말씨)

2. 어색해하지 말고 다정하게(친밀의 말씨)

3. 애쓰지 않고 진솔하게(위로의 말씨)

4. 사양 말고 센스 있게(칭찬의 말씨)

5. 끙끙거리지 말고 정확하게(피드백의 말씨)

6. 냉담해지지 말고 원활하게(해결의 말씨)

7. 어려워하지 말고 정중하게(거절과 부탁의 말씨)

8. 불안해하지 말고 똑똑하게(자기 보호의 말씨)

9. 휘둘리지 않고 단단하게(불평불만, 뒷담화 대처 말씨)

10. 오해받지 말고 품위 있게(비호감 방지 말씨)

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이 큰 목차보다 소제목들을 보면 더 와 닿는 부분이 많다. 즉, 그에 해당하는 솔루션을 읽고싶어진다. 내가 관심 있게 읽고 싶은 부분은 5부, 8부, 9부, 10부이다. 내가 회사에서 담당하는 역할에 필요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내용은, 고은지 그림작가님의 만화로 시작한다. 상황을 한 눈에 보여준다. 그리고 x와 o로 단순 명료하게 말투를 구분해준다. 그런 다음 저자(김윤나 님)의 글로 어떤 상황인지 설명한다. 이때, '당신'이 한 말투가 어떤 말투인지 알려준다.  



이 경우엔 '부정형으로 답하기'에 해당한다. 함께 일하는 사람이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태도나 언어를 사용하면 팀 전체의 분위기 또한 부정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왜냐면, 사람의 감정은 전염되기 때문이다. 좋은 감정 나쁜 감정 할 것 없이 그렇다.


최근에 나는 이러한 이유로 직원 상담을 했고, 직원 상담을 하는 한 달 내내 나의 기분은 부정적인 감정이 많이 지배했다. 나의 감정을 균형 맞추고 그 직원에게 끄려가지 않기 위해 나는 무진장 많은 노력을 해야했다. 그런 점에서 상담사님들은 정말 멘탈이 강해야겠다 싶더라. 


저자 역시 그와 반대 되는 말투로 바뀌기 위한 노력에 대해 말한다.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다시 한번 정리한다. 정리하는 페이지는 약간 이론적인 느낌이지만, 앞에서 다른 사례를 참조하며 읽어보면 도움이 된다. 


천천히 꼼꼼하게 읽고 내 삶에도, 내 역할에도 적용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인 김윤나 님은 이 책 이전에도 말에 관한 글을 썼다. 꽤 오랫동안 소통에 관한 연구를 하신 분이 그런지 내용이 도움이 많이 된다. 결국 변화는 개인의 노력과 선택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내말은왜오해를부를까 #나무의마음 #김윤나 #고은지 #직장인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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