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윤리학사
로버트 L. 애링턴 지음, 김성호 옮김 / 서광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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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의 한 부분인 윤리학만을 따로 떼어놓아 볼 수 있는 개론서는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분께 추천할 만한 '딱'인 책이다. 제목과도 같이 이 책은 '서양윤리학사'를 다루고 있다.

 조지아 주립대학에서 교수로 지내고 있다는 에링턴의 저서로, 윤리학 분야에 대해서는 많은 책을 남겼다고 한다. 또한 현재(이 현재가 어느 시점인지는 모르겠다) 20세기 윤리학에 대한 방대한 저술을 준비중이라니 사뭇 기대된다.

 이 책의 옮긴이 김성호는 익히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 석자정도는 접해봤을 만하다. 그가 어떤 철학이론에 대해서 대가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흔히 철학사를 배울 때 쓰고 있는 교재인 코플스톤의 <합리론>의 옮긴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느 대학에서 교수자리를 쥐고 있지는 않지만 활발한 철학 번역 활동으로 철학 학부생에게도 이름이 잘 알려져 있다. 이 역시 기반을 확립하지 못한 철학 연구자가 자신의 이름을 빛내는 또다른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가 이를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간에 말이다. 또 의도했다 하더라도 외국의 좋은 철학서를 번역한다는 작업은 고되고 돈도 안되는 일이기에 그에게 더욱 힘내라 말하고 싶다.

 서론이 길었다. 본 책은 아무래도 국내에서는 딱히 다른 경쟁적인 윤리학사를 다룬 철학서가 없는 마당에 독보적인 윤리학 개론서로 읽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책은 매우 두껍고, 각각의 철학자들에 대해서 세심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초보자가 처음부터 이 책을 접한다면 질려버리고 말것이다. 하지만 어느정도 윤리학사, 철학사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깔려있는 독자에게라면 그의 지식을 더욱 깊이있게 만들기에 적합한 책이라 생각된다.

 소크라테스는 물론이고 소피스트까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 그리고 중세의 윤리설, 홉스, 스피노자, 버틀러, 흄, 칸트, 헤겔, 니체, 20세기의 윤리학이라는 많은 목록을 지니고 있고, 더불어 더 읽어야 할 책을 소개함으로써 윤리학에 있어서는 자기 할일을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더 읽어야 할 책이 에링턴이 만든 목차 뿐 아니라 옮긴이가 현재 번역되어 있는 철학서 중에서 추천한 더 읽어야 할 책이 함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여기에 나와있는 '더 읽어야 할 책'은 모두 영어원서이기 때문이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각각의 철학자들의 윤리학부분을 엮어내면서 아무래도 해당 철학자의 윤리학 저서를 기본으로 하고 이를 풀어내는 형식으로 책을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해당 철학자의 윤리학 이론을 소개하면서 그와 반대되는 철학자의 비판과 문제점 모색, 반론 등을 함께 다루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윤리학 저서를 풀어냄으로써 한눈에 알아보기 힘들게 엮여져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는 물론 내가 철학사를 한 눈에 볼 수 없는 지경이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철학을 수박 겉 핥기 식으로나마 4년간 접했다는 내가 볼 때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본다. 그리고 그저 의심으로 끝낸다. 나의 내공의 한계 때문일거라는 스스로의 학문탐독의 소홀함으로 그 이유를 돌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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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에티쿠스 - 윤리적 인간의 탄생
김상봉 지음 / 한길사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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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모 에티쿠스>는 서양윤리학에 대한 윤리학 개론서라 할 수 있다. 현재 서양철학사만을 놓고 본다면, 램프레히트의 서양철학사, 버틀란트 러셀의 서양철학사 두권, 요한네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 두권, 코플스톤의 합리론과 영국경험론, 그리스로마철학사, 중세철학사 등이 있고, 우리나라 서양근대철학학회에서 따로 엮어 만든 서양근대철학이 있으나, 윤리학이라는 독립된 학문으로서의 철학사는 부재한 것이 사실이었다. 최근 윤리학 분야에서도 윤리학만을 따로 다룬 윤리학사들이 출간되고 있는데, <호모 에티쿠스>는 그중의 하나이다.

 이 책의 저자 김상봉씨는 일간신문을 통해서도 자주 이름을 접한 분이다. 연대 철학과와 대학원을 나온 뒤 독일의 괴팅겐, 프라이부르크, 마인츠 대학에서 서양철학, 서양고전문헌학, 신학을 공부하고 칸트연구로 마인츠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 그리스도신대학대의 종교철학과 교수로 임용되었지만, 학교측의 일방적인 통보로 다른 세명의 교수와 함께 쫓겨나게 되었다. 학계 풍토상 쫓겨난 경우 다른 어느 학교에서도 교수나 강사로 받아주질 않아 사실상 주류 철학계에서는 밀려난 분이시다. 이후 학벌없는 사회 모임을 꾸리고 있으며, 철학자라는 명칭으로보다는 학벌없는 사회 사무총장이라는 이름으로 일간 신문 칼럼란에 자주 오르내리신 분이다.

 김상봉씨는 지금 소개하고 있는 <호모에티쿠스>뿐만이 아니라 그 외에도 철학에 관한 많은 책을 썼다. <나르시스의 꿈>,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 <자기의식과 존재사유> 등이 그러하고, 역시 학벌반대모임 사무총장 답게 <세 학교 이야기>라는 책도 썼다. 그의 저서들은 순수 학술적인 부분에 기반을 두고 있다기 보다는 철학의 언저리를 다루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그러나 그 언저리가 철학에서 많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으나 자기사유를 통해 재생산된 철학이라는 의미에서 언저리다.

 <호모에티쿠스>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히 서양윤리학사의 이론적인 부분만을 엮어서 낸 것이 아니라 자기사유를 통해 우리의 현실과 연관하여 재생산된 윤리학사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중간중간 윤리학 이론 사이에 우리네 과거에서 현재까지를 아우르는 현실이 녹아들어 있다는 것은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이 책은 서양윤리학의 시초인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 이어, 스토아 학파와 에피쿠로스 학파, 중세의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스피노자, 흄, 칸트에 이르기까지 윤리학의 핵심 철학자들을 뽑아서 엮었다. 그중에서도 칸트에 대해서는 세 장에 걸쳐 할애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김상봉 자신이 칸트윤리학에 심취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보게 한다.

 다만 이 책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은 홉스, 버틀러, 헤겔, 벤담과 밀, 니체, 그리고 이후의 윤리학에 대한 부분이 빠져있다는 점이다. 서양철학사를 모르는 초보자가 보기에도 쉽게 설명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지만, 이 책의 부족한 부분들을 다른 책에서 보충해야한다는 단점이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그 부족한 부분은 서광사에서 나온 <서양윤리학사>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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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본지 며칠이 지난 영화다. 이제야 영화감상평을 올리는건 철저히 나의 게으름때문이다. 하긴 다른 생각을 하느라 좀 늦어지긴 했다.

 밥을 먹으며 켜게 된 티비 케이블 영화 채널에서 우연히 마주친 영화다. 맨처음부터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앞에서부터 본거 같긴 하다. 내용의 흐름상. 그냥 밥 다 먹을 때까지만 보려고 했는데 역시 내 취향의 영화에 제대로 걸린 나는 끝내 끝까지 다 보고야 말았다.

 지루한 하루하루에 싫증을 느낀 실직 회계사 모건 설리번이 다국적 하이테크 기업 디지콥의 산업스파이가 된다. 그는 이제 위조된 이름을 부여받아 모건으로서의 삶을 접는다. 그러던 중 어느날 리타라는 여인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데, 디지콥에서는 스파이들에게 세뇌용 약을 투입해 자아를 잃게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건은 모건을 잃어버리고 완전한 조직에 충실한 산업스파이가 되어버린다. 디지콥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이렇게 만들어 효용가치가 없어지면 버린다. 리타는 썬웨이의 스파이가 되면 모건을 구해주겠노라 약속하고 모건은 이에 응한다. 결국 이중 스파이가 되어버렸다.

 영화 <매트릭스>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마치 <매트릭스>와 같이 느껴지는 이유는, 그 영화에서나 이 영화에서나 주인공이 자아를 상실한다는 것이다. 두 영화의 중심에는 자아정체성이라는 주제가 가로놓여있다. 현실과 이상사이에서 괴로워하는 네오와 또한 어느 것이 나인지, 어느 것이 현실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모건. 그래서 이 영화는 <매트릭스>에서 느껴지는 신비감이 고스란히 다른 방식으로 느껴진다.

 어떤 긴박감은 없다. 하지만 중간템포의 빠르기로 진행되는 영화 속에서 모건의 고민은 결국 관객의 고민이 될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다. 관객 또한 어느 것이 진짜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매트릭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관객은 이미 답을 예상하고 있었고, 네오의 혼란을 지켜볼 뿐이었다. 하지만 <싸이퍼>에서는 영화를 보고 있는 당신이 바로 모건이다. 그러나 <싸이퍼>는 <매트릭스>와 같이 그 고민이 영화가 끝난 현실에까지 와서 우리로 하여금 머리아픈 고민을 하게 하지는 않는다. 현실로 돌아왔을 때 <싸이퍼>는 순전히 스릴러 영화나 책속의 가공세계 이야기일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여실히 깨닫는다.

 본래 싸이퍼는 cipher 영(零, zero)을 의미한다고 한다. 아랍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여기서 '영'이란 모건의 '자아정체성'을 두고 하는 말일터이다. 그러나 '자아정체성'은 비단 영화 속 모건의 문제만은 아니다. 현실을 사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고, 그나마 스스로에게 내가 누구인지 묻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물음을 던진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이제 남은 것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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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래트럴(collateral)의 사전적 의미는 1. 평행한, 부차적인, 부수적인, 2, 방계(傍系)의 3, 담보로 한 이라는 뜻이다. 아무래도 이 영화에서는 3번의 뜻으로 사용되지 않았나 싶다.

택시에 탄 한 살인청부업자에게 그날 밤의 생사가 '저당잡힌' 택시기사를 지칭하는 말일 수도 있고, 거꾸로 청부업자의 입장에서는 그날밤의 일처리의 성공여부가 택시기사에게 달려있다는 면에서 그의 삶이 '저당잡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더 크게는 로스엔젤레스에서 탐크루즈의 말마따나 "LA 지하철에서 사람이 하나 죽었다고 눈 하나 깜빡할 사람은 없다"는 점에서 LA의 거리를 바쁘게 걸어다니는 모든 이들의 삶은 이미 '저당잡혀' 있는건지도 모른다.

영화는 다소 지루하다. 액션영화, 헐리우드 영화로서의 어떤 긴박감이나 빠른 진행을 보기 힘들다. 그래서 이 영화를 평범한 할리우드 영화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겉으로는 할리우드 영화로 치장을 하고, 정작 영화의 속은 비주류에 가깝다.

이 영화는 심야영업을 하는 택시기사와 살인청부업자의 하루밤의 이야기다. 600달러의 돈을 주며 택시를 하루 대여하자는 청부업자 빈센트에게 맥스는 멋모르고 그리하겠노라 허락한다. 그러나 사건은 이제 벌어진다. 빈센트가 잠시 친구를 만나러 나갔는데 건물 3층에서 웬 시체 하나가 떨어진다. 빈센트가 죽인 것이다. 놀래자빠지는 맥스를 추스리고 이들은 서서히 목적지에 도달한다.

빈센트는 말한다.
"LA 지하철에서 사람 하나가 죽었다고 눈 하나 깜빡할 사람 없다"
그는 모든 것이 순리이고 우주의 이치라며 자신이 이들 몇 사람들을 죽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저 세계 60억의 인구중 몇명 죽은 것 뿐이다. 그에게 도덕심은 없는가?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 빈센트의 이 말은 되풀이되며 스스로를 결박한다. LA지하철에서 죽은 이름모를 시체로 방치된 채 말이다. 빈센트는 어쩌면 인간으로서의 도덕성을 상실한 냉정한 인간이기 보다는 삭막하고 각박한 냉혹한 도시사회에서 살아가기 철저히 적응된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소외 현상을 다루었다고 보면, 인간성의 상실을 다루었다고 보면 이 영화에 대해 너무 과대평가한 것일까? 영화가 끝난 뒤 조용히 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다. 그다지 재미는 없다. 하지만 탐크루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또다른 연기를 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아니면 헐리우드 영화를 보고도 뭔가 '생각할 꺼리'를 찾고픈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단지 흥미를 원한다면 이 영화는 당신의 선택에서 벗어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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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이 영화는 나의 관심사 안으로 들어와있었다. 영혼의 무게를 잰다니... 참 놀라운 발상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영화에서 실제로 사람이 죽는 상황에서 저울에 대고 몸무게를 재리라는 생각을 한건 아니었다. 단지 영혼의 무게를 잰다는 것이 굉장히 깊이있고 철학적인 주제라고 생각했다. 물론 애초 이 영화에서 흥미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난 이미 이전에 이탈리아 대표적인 좌파감독이라 불리던 난니 모레띠의 <아들의 방>이라는 작품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 영화에서도 감독은 필름 속의 아버지가 아들의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매우 섬세하고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그려냈었다. <21그램>은 그런 영화이다.

 하지만 <21그램>은 죽은 자의 영혼의 무게를 재기보다는 심장병에 걸려 죽어가는 남자와 여자의 '사랑의 무게', 과거에 코카인을 하는 등 약물중독자였으나 건축가 남편을 만나 행복한 삶을 살던 여자에게 닥친 가족의 죽음, 그녀의 '복수심의 무게', 전과자의 삶을 살다 종교를 통해 구원을 받고자하는 남자가 교통사고로 한 남자와 두 딸을 죽게한 뒤의 '죄의 무게'를 재는데 초점을 맞춘다. 이미 죽은 자의 영혼의 무게가 아닌, 살아있는 자의 영혼의 무게를 말이다.

 본래 이 영화의 아이디어는 과학자들의 실험에서 따온 듯 하다. 미국의 윌리엄 맥드갈 교수는 죽는 자의 사진을 찍은 결과 흰 뭔가가 몸에서 빠져나감을 발견하고 그것을 영혼이라 생각하고 무게를 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매사추세츠 병원의 원장으로 있으면서 그는 죽음 직전의 환자들의 영혼의 무게를 재는데 성공했다. 우선 종이한장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계량기를 만들고, 여기에 곧 죽게 될 환자를 눕힌 뒤 바늘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 결과 환자가 죽는 순간 바늘이 내려가 약 28그램 이상의 체중이 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죽는 순간 몸무게가 갑자기 줄어든 점에 착안하여 영혼의 무게를 달아봤지요. 그랬더니 사람에 따라 조금식 차이는 있지만 평균적으로 따져보니 영혼의 무게는 약 7g정도 나가더군요"

 결국 그의 말은 사람이 죽는 순간 땀이나 오줌같은 수분과 폐에 들어있는 공기가 몸밖으로 빠져나가는데 그것들을 모두 합하면 줄어드는 몸무게 28그램 중 21그램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따라서 나머지 7그램은 당연히 영혼의 무게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영화 제목은 21그램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실험대로라면 7그램이라고 해야하는데 말이다.

 어쨌든 이 영화는 매우 아웃사이더적인 영화다.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 절대 흥미를 추구하는 관객들이 보기에는 아까운 영화다.

 나는 영혼의 존재, 신의 존재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본바가 없다.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철학적 성찰을 하는 내가 유독 이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것은 이것이 당면한 현실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그 직전에 이런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여전히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나는 결론을 내리지 않겠다. 다만 차분히 이런 것이 있구나 라고 내게 알려주는 <아들의 방>이나 <21그램>과 같은 영화들을 통해 조심스럽게 접근할 뿐이다.

 영화는 매우 남미적인 냄새가 난다. 왜 그런고하고 찾아봤더니 감독이 역시 멕시코 출신이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2001년에 이미 <아모레스 페로스>라는 영화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바 있다고 한다. 그리고 <21그램>을 통해 숀펜은 2003년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 전미 비평가 협회 남우주연상, 영국 아카데미에 노미네이트되기까지 했으며, 나오미 와츠도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배우 관객상, LA영화평론가협회 여우주연상을 차지하고, 베네치오 델 토로는 2003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남자배우 관객상을 수상하는 등 이 영화로 출연배우들이 온갖 상을 다 휩쓸었다고 한다.

 영화는 또 한편에서는 <메멘토>같다. 과거, 현재, 미래의 구성이 시간순으로 배열되지 않고 뒤섞여있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해 미리 줄거리를 꿰고 가지 않으면 나중에는 정신이 없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어지는거야 라고 생각하며 그 실타래를 푸는데에만 정신이 팔릴 것이다. 줄거리를 꿰고가도 영화를 보는 재미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이래저래 온갖 비주류 영화들 짬뽕된 묘미를 가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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