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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낮은 언덕들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2월
평점 :
배수아의 신간 서적이 나왔다. 그녀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지 못한 나에게 그녀의 신간 '서울의 낮은 언덕들'은 이해하기 쉽거나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소설은 아니었다. 낭송 전문 배우라는 직업도 생소하고 스토리가 주는 이야기가 자꾸만 끊어지듯 이어지고 있는 것이 불투명한 느낌의 소설이라 읽는내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서울의 낮은 언덕들'의 저자 배수아씨는 자기만의 색깔이 확실한 독특한 문체를 보여주는 작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화학과를 졸업하고 국어를 싫어하던 그녀가 소설가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는 것부터 남다르다고 느껴졌으며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주로 쓰는 그녀의 작품에 열광하는 매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 작가다.
주인공 경희의 직업은 낭송배우라고 한다. 경희는 세계 여러나라 여러 도시들에 자신이 살았던 집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우리.. 경희의 이야기를 듣는 우리와 경희의 첫만남은 기차가 출발하려는 역 앞이였다. 자신과 만남을 가질 사람을 만난적도 연락처를 아는 것도 아닌 비엔나에 살고 있는 친구를 통해서 잠시 머무를 집의 주인인 사람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경희에게 호기심이 발동한 우리는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지게 된다.
낭송전문배우 경희가 방랑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몇 년 전 갑작스럽게 헤어져서 그 이후 몇 년 동안 만남을 갖지 못한 독일어 선생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들게 된다. 그 소식을 접한 경희는 막연하면서도 우울하고 감정이 메말라 가듯 암울한 기분에 휩싸여 독일어 선생을 찾아서 무작정 걸어서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충동적인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경희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진다. 나이든 교사부부의 이야기나 인터넷을 통해서 알게 된 사람들끼리 서로의 집을 공유하며 아무런 조건이나 제약없이 집을 제공 받을 수 있는 방랑자 포럼 카라코룸을 마리아를 통해서 알게 되고 마리아를 통해서 낯선이와 잠자리를 공유하는 것이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연히 길을 나선 곳에서 보이는 스타벅스 표지판이 주는 안정감에 들어가게 되고 밀크커피 두잔을 시켜 놓고 앉은 자리 옆자리의 동양인 남성에게 별다른 감흥없이 시작한 이야기는 남자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정작 남자가 보이는 호기심이 경희는 부담스럽다.
자신의 기를 빼앗기면서도 귀에 입술을 대고 흡착하는 치유사, 경제적으로 항상 경희에게 도움을 준 미스터 노바디와 그의 아들 반치, 마리아 등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들을 수 있다. 찾으려고해도 찾을 수 없었던 경희를 마지막에 우연히 보게 된 포스터를 보고 찾아가며 그녀와의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화자의 희미한 영상처럼 인식되는 나란 존재에 대한 부정...
한동안 책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스토리가 주는 모호한 느낌으로 인해서 겨우겨우 책장을 넘기다 어느순간부터 작가 배수아씨가 주는 언어의 유희를 느끼게 되면서 경희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 빠지게 된다. 19년을 글을 쓴 배수아씨가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에 귀 기울리고 싶어진다.
여행에 대한 치유사의 이야기와 반치가 경희를 보며 하는 이야기는 인상에 남는다. 여기에 반치가 한 말을 적어본다.
나는 네가 이 도시를 네가 태어나고 자란 도시와 쉽사리 겹쳐서 생각 할 수 있는 그 방식이 놀랍고도 두려워. 네가 즐겨 말하는 '동시에'란 어휘가 두려워. 그건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하고 무해한 게 아냐. 반복되는 엉휘는 어휘 이상의 힘을 갖지. 나는 이렇듯 바람처럼 홀연히 나타났다 수없이 많은 별의 어휘를 쏟아놓고 다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사라져버릴 것이 분명한 네가 놀라워. 놀랍고 두려워. 이 도시에 도착해서 저 도시를 떠날 수 있는 너를 감탄해. 너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이야기를 낭독하는 사람, 그 이야기 속에서 계속해서 살아 있는 사람처럼 보여. 너는 구분할 수 없는 우주만큼이나 현기증나. 나는 네가 어린 시절에 들었던, 사흘 밤 낮 동안 계속해서 낭독되던 옛날이야기 같아. 네 입은 늘 뭔가를 낭송하듯이 말하는데, 너는 늘 너는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어느새 말해지는 것은 너 자체라는 생각이 들어. 변형되고 파생되고 비유되고 한없이 희박해져서 성분이 투명해진 너. 네가 이상하고 놀랍지만..... -p118-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