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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걸음의 여행
리처드 C. 모라이스 지음, 서현정 옮김 / 노블마인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천재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보면 우선 감탄부터 하게 된다.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 이런 천재가 존재한다면 어떤 기분일지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모짜르트의 뛰어난 천재성을 보며 질투하고 시기하고 미워한 살리에르는 넘을 수 없는 벽에 무릎을 끊지만 가난하고 미개한 나라라고 생각했던 인도에서 온 소년 하산의 절대미각과 손을 보면서 처음에 느꼈던 질투와 놀라움을 넘어 마담 말라리는 하산을 자신의 애제자로 삼으며 그에게 모든 것을 알려주고 하산이 더 큰 세계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남모르게 도와준다.
할아버지가 경영하시는 식당 위층에서 6남매의 둘째로 태어난 하산 하지는 태어난 순간부터 자신의 운명은 결정 지어졌다고 말한다. 가족 모두 남다른 성실함으로 식당은 날로 번창해가지만 어느날 폭도들이 식당에 들이 닥치고 미처 피하지 못한 하산의 어머니는 폭도들이 지른 불길 속에서 돌아가신다. 남다른 추억을 안겨준 어머니의 죽음은 하산에게 커다란 충격을 남겨두고 평생 여자와의 관계에서 거리감을 두게 만들고 아버지 역시 아내를 잃은 조국에서 벗어나 영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삶을 지탱해 주는 끈이 없어진 가족들은 각자 방황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고 하산 역시 대마초와 여자들, 유흥의 물결 속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어느날 하산의 모습을 보고 정신이 든 아버지에 의해 가족 모두는 자동차에 몸을 싣고 유럽의 도시들을 떠돌기 시작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가는 가족들은 우연히 파리의 깊은 산속 마을 뤼미에르에서 운명적으로 그들 앞에 나타난 집을 발견하고 정착하기로 한다. 이 집 앞 딱 100걸음만 걸으면 요리사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가문의 마담 말로리가 운영하는 음식점이 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서양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거나 수용하지 않는 하산의 아버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뤼미에르 마을 사람들에게 새로운 식당이 탄생 했다고 알려주는데 이 일은 마담 말라리와 충돌하고 두 사람 사이의 충돌은 언제 큰 싸움으로 번질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마담 말라리는 화를 이기지 못한 의도하지 않았던 행동으로 인해 하산에게 커다란 아픔을 주고 만다. 하산의 모습에 슬픔에 빠져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하산의 아버지를 잡는 말라리는...
뛰어난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고해도 최고의 자리에 가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과 고난의 시간이 존재한다. 하산 역시도 적지 않은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배우고 익힌다. 스스로 독립을 해서도 식당을 운영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우리처럼 모든 것이 주인의 마음대로인 식당과는 다르게 임시직인 6개월까지는 종업원을 해고하고 채용하는 것이 쉽지만 6개월을 넘어가면 해고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이런 맹점을 알고 이용하는 나쁜 습성을 가진 종업원들도 있으며 맛집으로 소문만 나면 대박을 터트리는 우리네와 달리 끊임없이 요리를 평가하는 기관의 점수에 따라 식당의 흥망성쇠가 좌우되는 프랑스의 요리문화는 몰랐던 것을 알게 해주며 신선하게 다가왔다.
평소에 요리를 잘 하는 사람을 보면 마냥 부럽다. 주부로 살아온 시간도 적지 않은데 생각처럼 요리 실력은 썩 좋아지지 않고 있어 수시로 요리 책자를 들쳐보며 나름 비슷한 맛을 내려고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고 자신 있는 요리 몇가지 중에서 카레가 있다. 누구나 만들어도 비슷한 맛을 내는 카레지만 식구들의 평가는 음식점에서 사 먹는 카레보다 낫다는 이야기를 듣는 편이다.
'백걸음의 여행'은 하산이 자신의 집에서 마담 말라리의 음식점까지 가는 거리지만 그 속에는 인종차별이나 타인에 대한 선입견 등이 담겨 있다. 최고의 스승과 친구를 만나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하산....자신의 꿈을 위해 좌절을 딛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성공에 이르는 하산을 만날 수 있는데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읽는내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