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의 마법사 어린이작가정신 클래식 4
라이먼 프랭크 바움 지음, 리즈베트 츠베르거 그림, 한상남 옮김 / 어린이작가정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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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씹을수록 맛이 난다. 미국 작가 라이먼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는 그런 맛깔나는 고전 동화다. 어린 독자들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출발, 입문, 귀환의 영웅 서사적 구도다. 도로시 일행의 여정은 자기이해를 향한 모험이기도 하고,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아 발달 요소와도 얼마간 맞물려 있다. 도로시가 차례대로 만나는 캐릭터인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는 보통 지식, 사랑, 힘과 용기를 대변하는데, 이는 개인 양심의 구성 요소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등장인물이 품고 있는 풍부한 상징성이다. 가령 정치경제학적 상징을 덧씌우면, 도로시는 평범한 미국 시민을 상징하고, 허수아비는 농부, 양철 나무꾼은 공장 노동자, 겁쟁이 사자는 정치인, 동쪽 마녀는 은행가와 자본가를 상징한다. 자기계발적 차원에서 사랑과 지혜, 용기 등 양심 덕목을 일깨우고 있어 이야기 본래의 인성 교육적 가치가 높다. 그냥 인의예지신 같은 덕목만 강조했다면 시골 훈장의 구닥다리 훈계와 다를 바 없겠지만,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사자와 같은 인상적인 우화적 캐릭터를 등장시켜 색다른 재미와 심리 역동성을 제공한다. 허수아비는 똑똑한 두뇌를, 양철 나무꾼은 따뜻한 심장을, 겁쟁이 사자는 용기를 가지려고 하지만, 이들 모두 원하는 것을 이미 갖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상태다. 자기무지 혹은 자기신뢰의 결여 측면에선 도로시도 이들과 다를 바 없다. 

세 번째는 보드 게임과 같은 오락 측면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처럼 마법사와 마녀가 나오는 환상 이야기인 점도 어린 독자들의 흥미와 시선을 잡아 끌지만, 에메랄드 시티로 향하는 노란색 벽돌길은 모험 미션이 주어지는 보드 게임판과 다를 바 없다. 독자와 도로시 일행은 게임 플레이어가 되어, 닥친 위기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기 안에 잠재된 능력과 재능을 깨닫게 된다. 도로시 일행을 방해하는 훼방꾼 세력으로 사악한 마녀, 곰의 몸뚱이에 호랑이 머리를 한 괴물, 날개 달린 원숭이들이 등장한다. 역사적 맥락에서 본다면, 에메랄드 시티로 향하는 노란 벽돌길은 당시 금본위제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동안 다양한 판본을 접했다. 매번 느끼는 바지만, 고전 동화는 번역보다도 그림체가 개성과 스타일을 결정짓는다. 이번엔 오스트리아의 일러스트레이터 리즈베트 츠베르거의 그림이었는데, 솔직히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특히 허수아비와 도로시의 모습은 너무 엇나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전형적 이미지를 벗어났다. 지식과 농부를 상징하는 허수아비가 너무 병적으로 부풀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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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시계탑
니시노 아키히로 지음, 노경실 옮김 / 소미아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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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양탄자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양탄자가 날 수 있게 된 이유로 사람들은 신기한 '마법'을 떠올리곤 하는데, 나는 양탄자를 만든 이의 극진한 사랑과 아낌없는 보살핌 덕분이 아닐까 싶다. 말 못하는 사물이라도 정을 주고 아끼고 돌봐주면 그 마음에 반응하는 신비한 영물이 되는 법이다. 일본의 그림책 작가 니시노 아키히로가 소개한 반딧불로 가득한 숲속에 있는 '약속의 시계탑'도 바로 그런 경우지 싶다. 누군가의 사랑과 관심과 보살핌 덕분에 영물이 되어버린 신비한 시계탑 이야기다. 아, 고장난 시계를 터부시하는 이들에겐 약속의 시계탑이 '요물'처럼 비춰질 수도 있겠다. 

틱톡과 니나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마치 시계의 큰 바늘과 작은 바늘이 서로 만나는 12시처럼 친밀했다. 틱톡은 시계탑 안에 사는데, 평소에 시계의 톱니바퀴를 성실하게 관리한다. 시계에 대해 모든 걸 아는 시계박사이고 특기는 시계 수리다. 니나는 고아원에서 애완용 장수풍뎅이를 돌보고 있는 마을의 인기녀다. 날마다 그들은 시계탑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계탑 창을 통해 은빛 별똥별과 밤하늘을 나는 배달부와 산타클로스도 보았다. 

그런데 니나의 팔에는 저주에 걸린 '드럼 섬'에서만 자라는 불꽃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니나의 엄마도 불꽃나무에 걸려 결국 한 그루 나무로 변해버리고 말았는데 말이다. 니나도 마을 사람들도 불꽃나무가 유전이 아니라 일종의 전염병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틱톡과 나나는 시계탑에서 자정을 알리는 12시 종소리를 함께 듣기로 굳게 약속한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어느날, 불의 비를 퍼붓는 무서운 구름인 불새가 마을에 나타나자 순식간에 마을이 불길에 휩싸였다. 마을 사람들은 지하 대피소로 대피하고, 니나의 고아원 친구들이 시계탑으로 달려왔는데 니나가 사라졌다고 한다. 틱톡과 사람들은 사흘 내내 니나를 찾았지만 아무 종적도 찾을 수 없었다. 틱톡은 니나가 죽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기적처럼 시계탑이 멈추어 버렸다. 틱톡과 니나가 만나기로 약속한 그 때 그 시각 직전에. 그후로부터 시계탑은 12시가 되기를 거부한 것처럼 11시 59분에 그대로 멈추어 있다. 자정의 종소리를 울리지 않음으로써 니나와 함께 듣기로 약속한 틱톡의 소망을 지켜준 것이다. 

시계탑은 고장나지 않았다. 오히려 살아있는 감정을 지닌 활물과 같았다. 흔히들 고대인들의 마술적 사고의 핵심으로 모든 사물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애니미즘과 신령한 사물을 기도의 대상으로 삼는 페티시즘을 든다. 여기선 커다란 약속의 시계탑이 바로 동네의 당산나무와 같은 그런 신비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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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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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하는 한국 근대사를 배경으로 한 대하소설은 사랑과 혁명, 이념과 현실, 충성과 배신의 이항대립을 축으로 삼는다. 재미 작가 김주혜의 첫 장편 데뷔작『작은 땅의 야수들』(다산책방, 2022)은 1917년부터 1965년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의 소용돌이를 헤쳐나가는 다양한 군상들의 인연과 행적을 그리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권번 기생, 독립투사, 명문가 후손들과 거지 패거리들이 등장하고, 3·1 독립운동부터 해방 후 좌우 이념 분쟁,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 그리고 박정희의 등장까지 굵직한 격동의 세월을 주요 인물들이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더구나 우리말 번역이 유려해, 마치 처음부터 한국어로 쓰여진 소설처럼 다가왔다. 

소설 제목인 '작은 땅의 야수들'은 협의로는 한반도의 외세 침탈과 일제의 잔혹한 만행을 비유하지만, 광의로는 전세계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탈을 뜻한다. 만약 '야수들'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영물 호랑이와 호랑이를 닮은 한국인의 기상을 뜻한다고 볼 수도 있다. 이처럼 소설 제목은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한반도라는 작은 땅에서 벌어진 식민수탈과 독립운동은 전지구적 차원의 식민수탈과 민족해방운동의 집약체라 할 수 있겠다. 

소설의 주인공은 경성 명월관 출신의 종합예술인 옥희지만, 나는 옥희보다도 독립운동가 출신의 남정호에게 오히려 감정이입을 하며 읽었다. 소설은 백두대간의 사냥꾼 이야기에서 시작해 한라산의 해녀 이야기로 마무리짓는데, '평안도 호랑이'로 불린 사냥꾼이자 대한제국군 출신인 남경수의 아들이 바로 남정호이고, 남정호의 억울한 죽음 이후 제주도로 내려간 옥희가 물질을 배우며 바다와 하나가 되는 체험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옥희 주변의 가족과 같은 친한 지인들로 기생 출신의 은실, 단이(예단), 월향, 연화가 등장한다. 참고로 옥희, 연화, 월향, 은실의 이름은 원서에서 Jade, Lotus, Luna, Silver인데, 역자 박소현이 저자 의견을 참고해 지은 이름이다. 저자는 은실과 은실의 사촌인 단이를 통해 일제강점기 때 권번 기생들이 독립운동 자금의 소중한 모금처였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특히 경성 권번을 이끈 유명한 기생 단이는 3·1만세운동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느라 동분서주했다. 은실은 평양 권번에서 제일 유명한 기생으로, 큰딸 월향과 작은딸 연화가 있다. 

단이는 인물을 알아보는 선구안이 남다른데, 월향, 연화, 옥희의 성격을 각각 꽃에다 비유한 바 있다. 이를테면 옥희는 "한결 같은 사랑을 받는" 겨울 동백, 연화는 "밝고 건강하며 행복한 여름 해바라기", 그리고 월향은 "단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라는 가을 코스모스"에 비유된다. 그러자 옥희는 단이를 "여왕의 품격을 갖춘 봄 장미"에 비유한다.

옥희가 '사랑'과 '현실'의 분신이라면, 남정호는 '사랑과 혁명'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남정호의 연적이라 할 수 있는 가난한 인력거꾼 출신의 김한철은 뼈대 있는 안동 김씨 가문의 방계 친족으로 '사랑보단 현실'을 택하는 출세지향적 인물이다. '혁명'과 '이념'의 전형으로 꼽을 수 있는 인물은 남정호의 스승인 독립운동가 이명보다. 

'이념과 현실'의 이항대립 구도로 본다면, 남성 등장인물 가운데는 노련한 사업가 김성수와 김한철이 '현실' 노선의 대표이고, 독립운동가 이명보와 남정호가 '이념' 노선의 대표라 할 수 있다. 김성수와 이명보는 모두 만석꾼 가문 출신의 동경 유학 엘리트인데, 한때 기생 단이의 애인이기도 했던 김성수와 한때 옥희의 첫사랑이던 김한철이 장인과 사위 관계가 되는 것이 아무리 유유상종이라지만 다소 도식적이다. 더구나 둘 모두 훤칠한 미남자로 그려진다. 독립운동가가 잘 생기면 어디 덧나나. 만약 이 소설이 드라마화된다면, 제발 남정호 역을 김한철 역보다 훨씬 잘생긴 배우가 맡았으면 좋겠다.

누군가 내게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한 구절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경성의 대기를 감각적으로 묘사한 남정호의 다음 글을 꼽을 것이다. 

"경성의 대기에서는 비,식용유, 쓰레기, 소나무, 감, 향수, 고추장, 뜨겁게 데워진 금속 그리고 눈 냄새가 났는데, 계절과 시간과 동네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다."(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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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이야기 모해그림책 2
방승희 지음, 정인성.천복주 그림 / 모해출판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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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학의 으뜸 원칙은 '시원을 기억하라'다. 강과 산의 시작과 끝을 알아야 문화의 터전에 깃든 생태학적 유전자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강의 시원을 둘러싼 이야기는 보통 신화나 전설과 같은 신비한 이야기와 연관이 되는데, 영산강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영산강은 호남 곡창지대를 이루는 큰 젓줄이다. 나주평야와 호남평야를 굽이굽이 흐르는 강이기 때문이다. 영산강은 금빛 비늘을 지닌 용의 전설을 품고 있는데, 발원지가 바로 담양 가마골 용소인 것과 관련이 있다. 

강이 한 마리 용이라면, 강의 꼬리가 있는 곳이 바로 발원지에 해당하고, 머리가 누운 곳이 종착지에 해당한다. 용 꼬리에 용소란 연못이 있고, 용 머리에 '용섬'이라 불리는 고하도가 있다. 영산강은 담양 가마골 용소에서 시작해 광주, 나주, 영암, 무안을 거쳐 목포까지 흐르는 젖줄기다. 들르는 곳마다 반짝이는 금 비늘을 한 움큼씩 나눠주는 선한 마음을 지닌 용이라서 어린 독자들에게 친근감을 준다. 승천하지 못한 용이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 가마골 용소의 전설을 보다 따스한 내용으로 각색한 셈이다. 

글은 매우 짧다. 동화시 형식이라고는 하지만, 시적 운율의 특성은 강하지 않다. 오히려 글보다는 그림이 영산강의 신비감을 더하고 있고 정서적인 내용을 보충하고 있다. 판화 작업으로 이런 향토 사랑이 깃든 풍광을 그려내고 있기에 감동 받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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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은 미끈미끈 요리조리 사이언스키즈 10
세실 쥐글라.잭 기샤르 지음, 로랑 시몽 그림, 김세은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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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은 인간에겐 일종의 비밀병기와 같은 든든한 존재다. 식용유나 참기름, 들기름처럼 먹을 수 있는 기름은 음식의 풍미를 높인다. 불맛도 음식의 맛을 크게 좌우하지만, 기름과 음식이 일으키는 다양한 화학 반응과 궁합은 평범한 음식을 정말 깜짝놀랄 별미로 만든다. 튀기지 않으면 맛볼 수 없었던 미각과 후각의 대향연을 펼쳐보이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식재료가 고온의 기름과 만나 노릇하게 갈색으로 변하는 것은 마이야르 반응 덕분이다. 우리가 튀김요리를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가령 건빵과 꽃빵, 오뎅, 감자를 한번 기름에 튀겨 먹어보라. 한 번 맛보면 헤어나기 어려운 별미가 된다. 한동안 빌려온 만화책을 보면서 튀김 요리를 먹는 재미에 중독된 적이 있었다. '바로 이런 게 행복이지' 싶은 감상에 젖게 만든 소소한 도락이었다.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는다. 물은 전기적 성질을 띤 극성물질이고, 기름은 전기적 성질이 없는 비극성 물질이다. 그래서 물은 물과 잘 섞이고, 기름은 기름끼리 잘 뭉친다. 그런데 물과 기름을 서로 섞이게 만들 수 있다. 그걸 바로 유화라고 한다. 유화는 요리과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개념이다. 물과 기름을 잘 섞이게 하려면 계면활성제를 쓰면 된다. 요리 드레싱에 자주 활용되는 겨자가 바로 그런 물과 기름을 서로 섞일 수 있게 돕는 계면활성제다.

이 책 『기름은 미끈미끈』(아름다운사람들, 2022)은 기름에 대한 기본적인 과학적 호기심을 토대로 밀도, 유화, 마이야르 반응, 어는 점 등에 대해 알려준다. 솔직히 먹는 기름만이 아니라 마블링 작품 같은 미술이나 자전거 정비에 사용되는 기름들도 함께 소개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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