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 심리학 개념어 사전
대릴 샤프 지음, 고혜경 옮김 / CRETA(크레타)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모임에서 혈액형별 성격을 들먹이면 '시인' 소리를 듣는다. 원시인 말이다. 요즘은 MBTI가 대세다. 유명 연예인마다 방송에 나와 자신의 MBTI를 신분증처럼 까고 있다. 오늘날 대중에 널리 쓰이는 성격 유형 검사인 MBTI는 미국의 교육자 캐서린 브릭스와 이사벨 마이어스가 카를 구스타프 융의 성격 유형론에 기반해 고안한 것이다. 외향과 내향, 감각과 직관, 사고와 감정, 판단과 인식의 조합에 따라 총 열여섯 가지 성격 유형을 제시한다.

좀 더 살펴보자. 일단 에너지를 얻는 방향에 따라 외향성과 내향성으로 갈린다. 외향적인 사람은 외부 세계와 대인관계에 에너지를 쏟는데, 내향적인 사람은 자기 내면세계를 지향한다. 세상을 인식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기능 유형은 합리적 기능인 사고형과 감정형, 비합리적인 기능인 감각형과 직관형으로 나눈다. 사고형은 객관적인 기준이나 분석적 논리에 따라 세상을 인식하고, 감정형은 인정이나 주관적인 기준에 따라 세상을 인식한다. 감각형은 경험에 바탕하고 사실적, 현실적, 구체적이다. 직관형은 순간적인 육감에 기반하고 무의식적, 상상적, 통찰적이다.

융의 분석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일반 독자가 참조하면 딱 좋은 공구서가 나왔다. 캐나다 출신의 융 심리학 권위자 대릴 샤프가 펴낸 《융 심리학 개념어 사전》(2025, 크레타)이다. 개념어 사전은 공구서지만 분석심리학의 지적 영토를 조망할 수 있는 키워드를 알려주고, 분석심리학의 기본 원칙과 이미지를 이해하고 심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카를 융은 인간의 인격 요소를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눈다. 의식 영역을 자아(ego), 페르소나(persona), 무의식의 영역을 그림자, 아니마(anima), 아니무스(animus), 자기(self)로 구분한다. 먼저 자아와 자기의 구분에 주목해 보자. 사전에 따르면, 자아는 "의식의 장에서 중심 콤플렉스"이며, 자기는 "온전성과 정신을 조절하는 중심의 원형으로, 자아를 초월하는 초개인적 힘"이다. 다시 말해서, 자아가 의식의 중심이라면, 자기는 의식과 무의식을 모두 포괄하는 전체성의 중심이다.

이런 식으로 페르소나, 그림자, 아니마/아니무스에 대해서도 개념어 사전을 참조해 그 의미를 심화시킬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카이 마코토의 세계 - 시공을 넘어 공명하는 영혼의 행방
에노모토 마사키 지음, 민경욱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현대 일본을 대표하는 선구적 애니메이션 감독이자 영상 크리에이터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언어의 마술사'로 불린다. "도구와 사회 상황, 음악, 주제, 풍경 등의 조합 효율성을 생각하는 재능"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덕후 기질이 있는 문학평론가 에노모토 마사키가 신카이 감독의 작품 세계를 체계적으로 고찰하는 평론서이자 '팬 북'을 펴냈다.

주로 문예 비평 방법론(가령 신화적, 설화적 구조)에 따라 밀레니엄 시대를 대표하는 초기 작품 <별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첫 장편영화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연작 단편 애니메이션 <초속 5센티미터>, 청춘 영화 <별을 쫓는 아이>, 유일한 중편 작품 <언어의 정원>,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린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스즈메의 문단속>까지 다루고 있다.

신카이 감독이 자주 활용하는 서사 모티프가 있다. 가령 과거와 현재를 왕복하는 시간 구성과 시골과 도시의 대조적인 배치, 나아가 고층 빌딩과 전차에 대한 집착 등이 그러하다. 화면 가득 펼쳐지는 하늘 묘사, 명멸하는 빛들, 흩날리는 바람 표현 등 신카이 감독 특유의 영상 표현도 빼놓을 수 없다. 때로 웅대하고 때로는 치밀하고 선명한 자연 묘사가 특징인데, 여기서 자연은 배경 묘사라는 장식 차원을 넘어 등장인물의 심상과 기억을 반영하는 거울로 기능한다.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관통하는 최대 주제는 커뮤니케이션과 디스커뮤니케이션, 혹은 교류와 단절이다. 신카이 작품은 휴머니즘에 기반하고 휴머니티의 원점은 '세계 긍정' 내지 '세계 사랑'이다. 비록 '너와 나' 두 사람의 소통과 불통, 접속과 단절, 연애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교차하지만, 결국은 대지진 같은 '세계의 위기'를 계기로 두 사람 모두 세계를 긍정하는 태도를 내보인다. 두 주인공은 재난과 위기의 극복을 통해 한층 성숙한 개성화를 이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용인 66계명 - 용인보감
김영수 엮음 / 창해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지인(知人)이 용인(用人)보다 어렵다. 사람을 쓰는 일보다 사람을 아는 일이 훨씬 어려운 법이다. '위사조인', 일을 위해 사람을 찾는다는 말이다. '인인설사', 사람에 맞추어 일을 마련한다는 말이다. 사람을 위해 일을 만들 것인가, 일을 위해 사람을 찾을 것인가, 이를 분명히 해야 한다.

지인과 용인의 성패를 확연히 보여준 역사적 사례가 항우와 유방의 초한쟁패다. 초한쟁패는 한마디로 인재 경쟁이었다. 건달 출신인 한고조 유방을 보좌한 인재는 출신이 다양했을 뿐만 아니라 각자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기회를 가졌다. '서한삼걸'로 불리는 장량, 소하, 한신 등 전략, 행정, 군사 방면에서 유방 자신보다 나은 인재를 적재적소에 활용했다. 일본 소설가 시바 료타로는 이런 유방의 리더십을 '허(虛)의 리더십'으로 표현한 바 있다. 마음이 넓게 비어 있어 어떤 인재든지 포용할 수 있었다는 비유다. 유방이 중용한 인재들은 사회의 하층민 출신이 많았다.

"가장 귀한 신분 출신인 장량은 몰락한 귀족이었고, 명장 한신은 떠돌이였다. 맹장 주발은 북을 두드리고 퉁소를 불던 딴따라 출신이었고, 주발 못지 않은 맹장 번쾌는 개를 잡아 그 고기를 파는 백정이었다. 유방의 마차와 호위를 책임졌던 관영은 옷감 장수였다. 도읍 선정과 초기 국정 안정에 큰 공을 세운 누경은 마부였으며, 유방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기막힌 꾀를 내어 위기를 넘겼던 진평은 떠돌이 유세가였다. 유세가 역이기는 몰락한 지식인이었고, 장수 경포는 죄인이었다."(42, 43쪽)

반면 귀족 출신인 항우는 '신임 리더를 파멸로 이끄는 함정들'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반면교사다. 항우 리더십의 실패는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세부적인 내용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둘째, 비판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행동을 보인다. 셋째, 상대에게 위협감을 주는 행동을 보인다. 넷째, 성급하게 결론에 도달하는 행동을 보인다. 다섯째, 직속 부하 직원들의 업무에 지나치게 간섭한다.

인재와 용인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은 과거제 실시였다. 수 문제 양견의 과거제는 당시 가장 공정하고 합리적인 인재선발 방식이었다. 그런데 송대 후기에 이르면 과거 시험을 독점하는 기득권의 부패가 심화되었고, 과거제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관리는 재능에 따라 기용해야 한다. "수레를 끌거나 소금을 짊어지는 데는 천리마보다 황소가 낫고, 장작을 패는 데는 보검보다는 도끼가 낫다."

이재명 정부의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한창이다. 일을 위해 사람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관리 선발은 재능과 깜냥이 우선이고 덕과 인격은 다음이지만, 덕과 인격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으면 곤란하다.

"사리사욕에 집착하는 사람, 사소한 불법과 탈법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 인재는 특권을 누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삐뚤어진 특권의식을 가진 사람, 부와 권력을 능력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왜곡된 의식의 소유자… 이런 자들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임용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들의 재능과 능력이 오히려 백성과 나라를 크게 망치기 때문이다."(32,33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행복 강박 - 행복 과잉 시대에서 잃어버린 진짜 삶을 찾는 법
올리버 버크먼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플레저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행복은 중도에 있다. 이 소박한 진리를 속세는 숨긴다. 긍정성도 부정성도 행복에 이르는 첩경이 아니다. 다만 오늘날 너무나 지나치게 긍정성을 숭배하는 강박적 이념이 횡행하고 있기에, 부정성은 이를 치유하는 요긴한 해독제일 뿐이다. 나는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나 '하면 된다'와 같은 낙관주의, 긍정적 사고보다 '항상 최악을 염두하라'나 '메멘토 모리'와 같은 부정적 사고가 행복한 인생의 진짜 도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지금 여기 현실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야 되겠지만 말이다.

대중문화는 현대인들이 행복한 인생에 집착하게 만든다. 행복에 걸린 이해득실이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행복 산업은 이른바 동기 유발이나 긍정심리학 같은 자기 계발 산업을 뿌리로 한다. 하지만 행복 산업이 발달한 서구 선진국이 가난하고 개발이 더딘 후진국보다 더 행복한 사회인 것은 아니다. 유명한 행복 멘토와 자기계발 프로들은 행복에 이르는 긍정적 사고를 강조했다. 가령 긍정적 시각화와 끌어당기기의 법칙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행복을 언제나 물질적 안정과 미래의 확실성에 연계시켜 왔다. 바꿔 말해서, 불행을 불안정, 불확실함, 실패와 같은 부정적 요소에 연계시켜 왔고, '부정성은 나쁘다, 해롭다'는 통념을 확대 재생산해왔다.

하지만 영국의 논픽션 작가 올리버 버크먼은 이런 통념에 딴지를 건다. 비교나 풍요에서 오는 세속적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실존적 행복에 이르는 다양한 부정적 경로를 강조한다. 가령 스토아철학의 부정적 시각화, 불교의 무자 화두나 마음챙김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행복을 가리키는 대중문화의 나침반이 심각하게 고장난 상태이기에 현대인은 행복하고자 애쓸수록 점점 불행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역으로 부정적 경로를 취해야 한다. 진정 행복하고자 한다면 불확실성을 즐기고, 불안정을 포용하고, 실패에 익숙해지고, 심지어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 영화 읽기 - 무성 영화부터 디지털 기술까지
마크 커즌스 지음, 윤용아 옮김 / 북스힐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영화계는 개판이지만 영화 자체는 너무 매력 있는 매체다."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명언이다. 영화판의 갑질과 야만적 관행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니 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90년대 천재 소리를 듣던 김기덕 감독의 만행을 떠올려 보라. 나는 할리우드 키드의 일원으로, 로렌 바콜의 이 말에 공감이 간다.

영화를 극장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영화다운 영화'를 극장 개봉 영화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 넷플릭스에 넘쳐나는 영화를 보라. 내가 그동안 공들여 수집한 DVD 더미가 허탈해진다. 영화팬으로서의 내 첫사랑은 영국 출신의 코미디 배우 찰리 채플린에게서 멈춘다. 나는 X세대인데 성룡과 소피 마르소 이전에 채플린이 먼저였다. 영화 초창기 시절의 대표적인 천재 배우이자 감독인 채플린은 영화를 사랑하는 할리우드 키드들의 영원한 첫사랑일 것이다.

내 '영화 전작주의' 리스트의 시작도 채플린 작품이었다. 1921년 작품 <키드>에서 시작해 <황금광 시대>, <시티 라이트>, <모던 타임즈>, <위대한 독재자>, <라임 라이트> 등을 섭렵했다. 1920년대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채플린에 푹 빠져 있던 내가 전혀 주목하지 못했던 또다른 획기적인 영화 흐름들이 있었다. 가령 "스칸디나비아의 자연주의, 프랑스의 인상주의, 독일의 표현주의, 소비에트 연방의 편집, 일본의 정면 촬영 스타일 등"이 그것이다.

역사에서 탄생일은 나름 의미가 있는 법. 영화의 탄생일은 1895년 12월 28일이다. 이 날 세계 영화사에서 인정한 최초의 영화가 파리에서 유료 상영했다. 그중 매우 짧은 다큐멘터리 영화 <열차의 도착>이 시각적 충격으로 관객의 경탄을 자아냈다. 이 최초의 영화를 바로 다음 해에 관람한 아시아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일본의 오사카, 태국의 방콕, 필리핀의 마닐라 관객들은 이 최초의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한제국의 고종도 못 본 영화를 방콕과 마닐라의 평민들이 극장에서 편하게 볼 수 있었다는 게 의외였다. 19세기 말의 태국과 필리핀이 조선보다 훨씬 국제적인 시각과 기술적 안목을 갖추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한편, 특수효과를 사용한 최초의 SF영화는 1902년 <달세계 여행>이다. 역시 영화는 '집단적 꿈의 저장소'란 사실을 실감하게 해주는 고전이다.

영국 북아일랜드의 영화감독, 영화평론가이자 작가인 마크 커즌스는 영화를 삐딱한 시선을 지닌 아웃사이더들의 '국제어'에 비유한다. "영화는 시공간을 뛰어넘으며 몽상가, 소외자, 이상주의자, 절규하는 자, 소심한 자의 국제어다." 그렇다, 영화는 충분히 추하고 불편한 예술이 될 수도 있다.

영화 매체의 문화적 가치를 논할 때 자주 언급되는 사상가 한 명이 떠오른다. 바로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이다.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표현주의 작가 베르펠의 견해를 인용하는데, "영화의 참다운 의미와 가능성은 자연스러운 수단과 탁월한 설득력을 가지고 동화적인 것, 기적적인 것, 초자연적인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그 특유의 능력에 있다."고 했다. 특히 철학적이거나 사회학적 상상력을 구비한 거장 감독은 형식주의, 사실주의, 표현주의, 이상주의 등 영화의 네 가지 상호 배타적인 요소를 한 스크린에 담아낼 수 있다. 가령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나 봉준호의 영화를 보면 혁신적인 영화의 요소를 반추하게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