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글쓰기 : 실전편 - 싸움의 기술 - 박종인의 장르별 필승 글쓰기 특강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지음 / 와이즈맵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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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세상의 글쓰기는 두 부류다. 팩트에 기반한 글쓰기와 판타지에 기반한 글쓰기. 영화에 비유하면, 전자는 다큐물, 후자는 SF물이다. 팩트에 기반한 글쓰기의 전범은 기자의 글쓰기다. 기자의 글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가 팩트이고, 언론에서 팩트는 가장 신성한 가치다. 한마디로, 저널리즘은 팩트에 기반한 실용적 글쓰기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 베테랑 기자 출신의 작가 박종인이 바로 그런 실용적 글쓰기의 꽃, '전쟁 같은 글쓰기'의 핵심과 원칙을 알려준다. "글은 원칙을 알면 누구나 쓸 수 있다. 원칙을 몰라서 못 쓴다." 저자의 오랜 신념이다.

현장에서 30년간 갈고닦은 저자의 글쓰기 원칙은 간단하다. 전작 《기자의 글쓰기: 원칙편》에서 다음 세 가지 철칙을 내세웠다. 첫째, 글은 쉬워야 한다. 둘째, 문장은 짧아야 한다. 셋째, 글은 팩트다. 주장은 팩트, 사실로 포장해야 한다. 좀더 부연하면, 글은 문장으로 주장 또는 팩트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좋은 글은 리듬 있는 문장으로 팩트를 전달한다. 리듬 있는 문장은 입말로 쓴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좋은 글이란 일단 "읽히는 글, 팔리는 글, 목표를 이루는 글"이다.

이번 신작 《기자의 글쓰기: 실전편》은 세상 모든 장르를 꿰뚫는 글쓰기 실전 전략과 예시 사례를 두루 수록했다. 인물에 관한 글, 수필, 기행문, 역사 비평, 칼럼, 인터뷰, 자기소개서까지 총 일곱 장르를 각개격파하는 기술을 전수한다. 여기서 수필을 제외한 모든 예시문과 사진은 저자가 직접 쓰고 찍었다. 수필 장르의 예시문은 김별아 작가의 <삶은 홀수다>와 <비밀> 두 편이다. 그리고 각 장르마다 '전술 요약'과 '실습 과제'가 있다.

장르별 글쓰기 전략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물은 사소한 디테일과 강력한 장면으로, 수필은 복선과 반전으로, 기행문은 영상 같은 장면으로, 역사는 의심하고 검증하는 칼날로, 칼럼은 심장을 찌르는 송곳으로, 자기소개서는 나라는 브랜드로 무장한다.

글쓰기의 보조도구인 AI와 사진을 활용하는 노하우도 알려준다. AI는 글쓰기에 가장 영리한 비서다. 제대로 질문하고 정확하게 요구하면 AI는 초안을 잡고 구조를 짜주고 표현을 정리해 준다. 단, 어설프면 AI는 오발탄을 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셔터 한 번이 200자 원고지 열 장을 대체한다. 사진은 직관이다. 사진은 때로 글보다 무섭고 더 빠르고 더 설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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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삼국지 - 4050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삼국지
허우범 지음 / 생능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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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덕후로서 읽지 않을 수 없었다. 4050을 위한 『삼국지』라는 말에 자석처럼 끌렸다. '삼국지의 인물들을 통해 리더십, 인간관계, 처세술, 전략까지 인생의 통찰을 얻는다!'거나 중년이라는 인생의 전환점에 도움이 될 만한 자기계발 테마를 '위기, 성장, 용기, 관계, 지혜' 같은 다섯 가지로 구분하고 있는 점이 매력이다.

삼국지 덕후도 급이 있다. 나는 주로 텍스트를 파고드는 삼류 덕후다. 삼국지는 소설과 정사를 구분해야 하고, 연의의 뻥과 판타지, 교묘한 각색을 해부해 역사적 사실을 추리는 작업을 게을리하면 안 되는데, 나는 여전히 소설에 대한 관심이 정사보다 앞선다. 삼국지와 관련된 드라마와 영화도 그닥 챙겨보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저자인 허우범 선생은 다르다. 삼국지 현장 답사까지 마치고 연구서를 펴낸 일류 덕후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삼국지연의』를 펼치면 나오는 법칙이 있다. 바로 열역학 제2법칙이다. 소설의 첫 구절 "천하대세, 분구필합, 합구필분"과 맨 마지막 구절 "천하대세, 합구필분, 분구필합"은, 모두 흥망성쇠의 역사법칙을 강조한다. 사람에게 생로병사가 있고, 사물에게 성주괴공이 있다면, 역사는 일치일란(한 번 다스려지면, 한 번 혼란해진다)의 법칙이 있다.

주역의 논리도 빠질 수 없다. 격변의 시대를 이끄는 세 영웅을 천지인 '삼재'로 파악한 점이 그러하다. 가령 제갈량이 유비를 만나 천하삼분의 계책을 논하면서, 조조는 천시가 따르고, 손권은 지리, 유비는 인화가 있다는 평가를 했다. 즉 조조는 하늘이 내려 준 때를 만났고 손권에게는 장강이라는 천연의 장벽이 있고 유비는 민심을 모으는 힘을 가졌다는 얘기다. 적벽대전에서 조조에 대항하기 위해 촉오 동맹을 맺은 것도 지리를 통해 천시를 막는 주역 논리에 따른 것이다. 이 논리가 깨질 때 촉오는 공멸했다. 오나라가 관우를 죽이고 형주를 차지하는 순간, 오의 멸망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삼국지 인물은 크게 리더, 참모, 장수 세 부류로 나뉘고, 유명할수록 특유의 아이콘이 붙는다. 가령 조조는 '난세의 간웅', 유비는 '어진 군주'의 대명사, 제갈량은 '지혜의 화신'이며, 관우는 '충의의 무신'이다.

리더의 경우, 위의 조조는 냉혹한 현실주의자, 오의 손권은 치밀한 균형 감각의 소유자, 촉의 유비는 넓은 포용력을 지닌 인본주의자다. 나관중의 소설 연의는 촉한 정통론을 고수하고 있어서 유비와 제갈량을 최고의 인물로 높이고, 상대적으로 조조를 악인으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내가 삼국지를 처음 읽었을 때 두 번 크게 울었는데, 각각 유비와 제갈량이 죽었을 때다.

하지만 사실상 조조야말로 문무를 겸비한 인재에다가 "능력 위주의 인재 등용과 상벌 위주의 법치주의를 시행"한 탁월한 용인술의 대가였다. 혹자는 시대의 영웅으로 회남의 원술, 하북의 원소, 형주의 유포 등을 언급했지만, 조조는 천하의 영웅은 오직 조조와 유비뿐이라는 말을 했다. 관상에 능한 허소는 조조를 '치세에는 능신이요, 난세에는 간웅'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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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의 생각 없는 생각 - 양장
료 지음 / 열림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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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료의 생각 없는 생각》(열림원, 2025)을 보면서, 감수성이 남다른 작가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료'라는 무척 생소한 필명이었는데, 이름만 들었을 땐 만화 '시티헌터'의 사에바 료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정작 필명은 일본 만화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동료'의 료에서 따왔다고 한다. 책 내용은 런던살이를 주무대로 펼쳐지는 '아티스트 료'의 감상 에세이다.

감상의 전개는 점묘법 스타일이다. 사유의 전후맥락를 쳐낸, 짤막한 직관적인 감상이나 오랫동안 곱씹은 생각에서 건져낸 덩어리의 형태랄까. 글 중간 중간 직접 그린 그림과 여행 중에 찍은 사진들이 매실액처럼 감각적인 글의 풍미를 살려준다. 그래서 빈티지에 푹 빠진 개성 넘치는 예술가의 라이프스타일 노트를 펼쳐보는 듯한 기분이 강하게 든다. 하지만 필자의 이력이나 사적인 생활사가 글속에 분명히 드러나지 않고 있어서 의도적인 '신비 마케팅' 아닌가 싶기도 하다.

료의 글엔 평소 내가 해온 생각과 맞물리는 게 많다. 그러다 료의 왼손 사진을 보니 감정선이 나와 꼭 닮은 것이 아닌가. 이른바 '다정검객무정검'과 같은 타고난 외강내유 스타일이랄까. 특히 "'무언가 주고 싶다.'는 마음과 '무언가 갖고 싶다.'는 마음은 어쩌면 같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헤아려주고 헤아려지는 것은 어쩌면 말이다."란 대목에서 절로 무릎을 쳤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미를 중시하는 료의 생활철학에 공감이 간다. 그렇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 아티스트 웨이는 곧 인간다운 삶 그 자체다.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진과 선, 참과 바름에 너무 집착했던 관계로, "하루도 빠짐없이 나타나주는 매일의 아름다움과 귀여움, 축하함과 감사함"을 가벼이했던 적이 있다. '문질빈빈'이란 성어를 빌면, 나는 그동안 '문'을 가벼이한 죄를 지은 셈이다.

매일의 삶을 참된 자유와 행복으로 이끄는 근본적인 힘이 바로 예술적인 감수성 아닐까 싶다. 료의 말대로, "모든 걸 알 수는 없어도, 자세히 보고 느끼는 것, 진짜의 마음을 알고 싶어지는 것, 그리고 가능한 저 마음속 끝에 헤아려지길 원하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저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도전하고 실패할 자유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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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자유 - 일의 미래, 그리고 기본 소득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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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고용시장은 양극화되고 중간 지대는 축소되고 있다. 새로운 일자리는 주로 고도의 교육을 받은 소수 근로자에게 집중되고, 중산층은 옅어지고, 저임금 부분은 거의 그대로 유지된다. 컴퓨터와 로봇, 인공 지능이 주도하는 급진적인 기술 진보가 노동 세계의 이런 구조적 모순(부의 양극화)을 한층 심화시키고 있다.

산업 혁명 이후가 제1차 기계 시대라면, 디지털 혁명 이후는 제2차 기계 시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제2차 기계 시대의 도래로 노동 시장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자동화 가능성이 높을수록 고용 증가율은 떨어진다. 많은 이들이 일자리의 소멸을 걱정하지만, 디지털 혁명 시대에도 확실히 승리를 거둘 네 가지 직업군이 있다. 바로 첨단 컴퓨터 공학 분야,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제4차 산업의 서비스업 분야, 수공업 분야, 그리고 다른 것들보다 월등히 비중이 큰 이른바 공감 직업 분야다.

앞으로 이 네 분야는 피고용자의 수가 뚜렷이 증가할 전망이다. 다만 네 가지 직업군에 걸맞은 인력을 충당하기에는 나름 고충이 예상된다. 가령 첨단 컴퓨터 공학과 제4차 산업 분야는 장기적으로 그에 맞는 고도의 자격을 갖춘 전문 인재를 충분히 구하기 어렵고, 수공업과 공감 직업은 상대적 저임금을 감수하면서 친절과 인내, 공감으로 기꺼이 함께 일할 인원이 부족할 수 있다.

학계에 나도는 탈산업사회 담론은 앙꼬 없는 찐빵과 같다. 산업 사회와의 단절을 강조하기 위해 갖다붙이는 '앙꼬명'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독일 철학자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는 18세기와 19세기에 생산 기계의 혁명으로 노동 사회(성과 사회)가 탄생한 것처럼, 1970년대 이후 정보 기계의 혁명으로 '의미 사회'가 탄생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성과 사회와 의미 사회의 '노동' 개념에 주목할 만한 의미 변화가 있다고 강조한다. 성과 사회가 노동을 삶과 생존을 위한 활동으로 이해하여 물질적 번영과 양적 성장을 강조했다면, 의미 사회는 노동을 삶의 의미와 목적, 사회적 소속감을 위한 활동으로 이해하여 일의 질과 조건, 자유로운 삶을 중시한다고 말이다.

저자는 의미 사회 담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노동과 소득을 철저하게 분리하면서 '무조건적 기본 소득'의 제도화를 주장한다. 무조건적 기본 소득은 인간이 생업 노동에 매이지 않고, 자유와 진정한 자아실현을 추구할 수 있도록 기반을 구축하는 제도다. 경제적으로 가능하다면 한 국가의 모든 시민이 노동 여부와 무관하게 생계 보장용 소득을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면서, 무조건적 기본 소득이 사회적 기본권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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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 - 창의성은 어떻게 현대사회의 중요한 가치가 되었는가
새뮤얼 W. 프랭클린 지음, 고현석 옮김 / 해나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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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는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다. 시대정신이랄까, 유행이랄까. 생산성, 효율성, 창발성과 더불어 신자유주의 시스템도 무척 중시하는 으뜸 가치가 바로 창의성이다. 창의성은 경영과 교육은 물론 과학과 예술 등 거의 모든 사회 영역에서 만병통치약으로 신성시되곤 한다. 이런 창의성 숭배 분위기는 역설적으로 이미 역사박물관에 봉인된 진부한 가치를 소생시키곤 하는데, 대표적인 게 바로 민주주의가 강조한 평등 덕분에 가치가 많이 바랜 엘리트주의다. 천재나 영재 등 소수 엘리트와 탁월한 상상력 혹은 영감에 대한 높은 관심은 '창의성 숭배 사회'의 반작용이다. 물론 창의성은 천재성이나 지능과는 그 결이 다르다.

"창의성은 천재성보다 더 민주적이고, 지능보다 더 영웅적이며, 단순한 창의적 발명이나 재능보다 더 기발하고, 단순한 상상력이나 예술성보다 더 유용한 무언가를 상징했다. 창의성은 ㅡ적어도 창의성 연구자들이 상상하기로는ㅡ 군사적·문화적·정신적 진보를 연결하는 공통의 실이었으며, 과거의 에디슨과 미래의 화이트칼라 노동자를 이어주는 개념이었다."(262쪽)

산업사회에서 탈산업사회로, 굴뚝 경제에서 디지털 경제로 이동하면서, 창의성을 숭배하는 신자의 수는 더욱 늘어났다. 그 배후에 심리학 분야를 주축으로 하는 학계의 창의성 연구 붐이 있었다. 창의성 연구가 심리학 분야의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특히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은 창의성을 자기실현의 핵심 요소로 보고, 창의성의 중요성은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과 심리적 만족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창의성 연구 결과가 평범한 대중이 자기혁신이나 자기실현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되리라 낙관했다. 교육심리학자들은 창의성은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는 재능이며, 모든 아이에게 창의적 잠재력이 내재되어 있다는 관점을 확산시켰다. 그렇게 창의성은 숭고한 자기실현 욕구와 결합되었다. 한편, 학계 바깥에서는 브레인스토밍과 창의적인 인재를 활용하는 경영 기법 등이 창의성 운동가들에 의해 확대되었다.

자본주의는 교활하다. 창의성의 도구화에 성공했으니 말이다. 창의성이 시장의 마케팅 도구로 소비되며 상품화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생산성과 자기실현의 가치를 순조롭게 결합시켜, 개인의 자기실현 욕구를 기업의 혁신 동력으로 변질시켰다. 그 결과 탈진증후군이나 포모 증후군이 전염병처럼 범람하고 있다. 창의성 숭배의 역설 혹은 배신에 주목해야 할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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