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 '제노사이드'와 '인도에 반하는 죄'의 기원
필립 샌즈 지음, 정철승.황문주 옮김 / 더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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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와 '반(反)인도죄'
- [East West Street], Philippe Sands, 2016.


제목을 왜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로 지었을까, 
처음에는 궁금했다.

인간사에서 '정의(正義)'의 범위는 넓다. 
어쩌면 편향적일 수도 있는데, 보편적이어야 할 '정의'의 본래 속성과는 형용모순일 수 있는 이런 상황은, 
멀리 볼 것 없이 '계급투쟁'의 인류역사에서는 가능한 현실이다.
각자의 계급적 관점에서는 살기 위한 생존권적 선택이 바로 각자의 '정의'가 된다.
자본가에게는 돈이 '정의'인 반면,
노동자에게는 단결이 '정의'다.

하다못해 미국의 정의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2010)의 정의조차도 미국식 공화주의적 정의였지 인류 보편의 정의가 아니었다.

영국의 국제인권법 학자 필립 샌즈(Philippe Sands)의 책 [East West Street](2016)의 주제는 인류의 '정의(正義/Justice)'에 관한 내용은 맞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승전국인 연합국측이 1945년 11월부터 1년간 열었던 뉘른베르크 국제전범재판소가 히틀러의 독일 제3제국 핵심인사들의 죄를 기소 및 판결한 과정에서 그 국제인권법의 이론적 기원을 추적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책은 더 이상의 세계대전을 통한 국제적 살상을 방지하고자 하는 국제인권법적 '정의' 실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국역본 제목이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로 된 이유가 비로소, 아직 청산되지 못한 우리의 일제강점기 식민역사와 결부하여 '정의'의 범위를 유럽 뿐만 아니라 우리 동아시아로까지 확장시키려는 이 땅의 민주개혁세력의 정치적 의도로 판단되었는데, 책의 대표번역자 정철승 변호사의 <옮긴이의 말>을 읽고 나서 알 수 있었다.

책의 원제는 [East West Street(동-서 거리)],
부제는 '제노사이드와 인도에 반하는 죄의 기원에 관하여(On the Origins of 'Genocide' and 'Crimes Against Humanity')'다.

저자 필립 샌즈는 영국의 국제인권법 학자로 유대인이었던 외할아버지 레온 부흐홀츠(같은책, <part 1>)의 출생과 삶의 궤적을 따라 뉘른베르크 국제전범재판소 판결에 큰 영향을 끼친 유대인 출신 두 법이론가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


"전쟁 전과 전쟁 동안 민간인에게 자행된 살인, 말살, 노예화, 추방 및 기타 비인도적인 행위; 또는 행위가 자행된 국가의 법 위반과는 관련 없이 재판소의 관할권 내에서 범죄의 실행 또는 범죄와 관련되어 정치, 민족 또는 종교적 이유로 자행된 학대 행위"
-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part 2. 라우터파하트>, '뉘른베르크 헌장 제6장 c항', 필립 샌즈, 2016.

뉘른베르크 협정 또는 헌장의 제6조 c항이 정한 '인도에 반하는 죄(Crimes Against Humanity)'의 내용이다.
'인도에 반하는 죄'는 국제법에 개인의 권리를 처음으로 정착시킨 중요한 시도로서 유대인 법학자 허쉬 라우터파하트(Hersch Lauterpacht)가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의 영국측 수석검사(영국 법무장관) 하틀리 쇼크로스를 통해 관철시켰다. 

제1차 세계대전 후만 해도 패전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투르크 등의 '제국'이었다. 즉, 국제법이라고 해도 주권은 왕국에게 있었고 국가권력은 국민이든 그 어느 민족이든 제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고 여겨지던 전근대적 법이론이 주류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이른바 '전간기' 동안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러시아 소비에트 혁명을 비롯한 대중민주주의 혁명과 독일 바이마르공화국 건설 등의 의회민주주의 개혁을 통해 왕국이 아닌 공화국으로 전환되었다. 즉 국가주권의 주체가 비로소 국민이 되었고 근대법이론 또한 이에 따라 국민 개인의 권리에 초점을 맞춰가게 된 것이다.
이것이 내가 보기에 허쉬 라우터파하트의 '인도에 반하는 죄'가 천착하는 법에서의 개인권리 우선 원칙의 배경이다.
나는 '인도에 반(反)하는 죄'를 줄여 '반(反)인도죄'로 부르고자 한다.

저자의 외할아버지 레온 부흐홀츠와 동시대에 동유럽 너머 리비우(렘베르크/로보프/리보프)에 살았고 레온의 외가와 리비우 인근 도시 주기에프의 '동-서 거리(East West St.)에 걸쳐 살았을 라우터파하트는 당시 폴란드령 리비우(현 우크라이나 지역) 지역의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유대인 법학자로서 전쟁 시기 영국에 정착하여 국제법에 개인 인권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시켰다. 
서로 일면식은 없었지만 라우터파하트는 같은 리비우대학 법대 후배였을 라파엘 렘킨의 사상과 일정 정도 거리를 두게 된다. 

요약하자면,
국제법 현장에서의 '개인 vs. 집단' 관념이다.

전직 폴란드 검사 라파엘 렘킨의 '제노사이드'의 등장이다.

"특정 민족과 계급의 사람들 그리고 국가, 민족 또는 종교집단, 특히 유대인, 폴란드인, 집시 및 다른 집단을 파괴하기 위한 목적으로 특정 점령 지역의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민족과 종교 집단의 말살"
-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part 4. 렘킨>, '뉘른베르크 공소장', 필립 샌즈, 2016.

'제노사이드(Genocide)'는 유대인이자 전직 폴란드 검사였고 전쟁 동안 미국으로 건너간 법학자 라파엘 렘킨(Rafael Lemkin)이 주장한 개념으로 정의는 위와 같고, 어원은 그리스어로 '종족'을 뜻하는 'genos'와 라틴어로 '살인'을 의미하는 'cide'의 합성어다. 원래 리비우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렘킨이 1915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과 한참 후 아르메니아인의 오스만 제국 장관 살해의 복수행위를 보며, 그리고 국제법이 무죄를 판결한 오스만 제국과 달리 장관 살해자의 보복행위는 유죄로 선고하는 것을 보면서 생각하기 시작한 '집단학살(barbarism)'과 '파괴행위(Vandalism)'의 관계를 미국에서 새롭게 정립한 개념이 바로 '제노사이드(Genocide)'였다.
정리하면, 한 집단이 다른 특정 집단을 말살할 목적으로 행하는 일련의 '집단학살'을 의미한다.

역시 유대인이자 전직 폴란드 검사였던 미국 법률가 라파엘 렘킨은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소의 미국측 수석검사 로버트 잭슨(미연방 법무장관)을 통해 '제노사이드'를 뉘른베르크 헌장에 삽입하기 위해 적극 시도하지만 계속 실패하게 된다. 열정적인 렘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뉘른베르크 국제전범재판소의 주체국이었던 미국과 영국은 허쉬 라우터파하트의 '인도에 반하는 죄(반인도죄)'의 개인권리는 적극 수용한 것과 다르게 '제노사이드'의 집단주의는 계속 무시하다가 최종 기소문과 판결문에서야 일부 언급하기 시작한다. 

그 배경은 흑인노예 차별로 점철된 미국의 인종주의와 식민지 착취 및 학살의 역사를 가진 영국의 제국주의였다.
렘킨의 '제노사이드'는 전쟁 시기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자행된 '집단말살' 행위 일체에 대한 단죄를 목표로 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열린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의 목적은 패전국 독일에 대한 전쟁범죄 처벌이었다. 역시 제국주의였던 승전국 그 누구도 '제노사이드'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테니, 뉘른베르크 국제재판에서는 패전국 독일에 대한 승전국들의 '전쟁범죄'에 대한 판결만으로 제한시켰던 것이다.

이로써, 히틀러 독일제국의 2인자 헤르만 괴링과 리비우 지역을 포함하여 지배관할하던 독일령 폴란드총독 한스 프랑크(같은책, <part 6>) 등은 사형판결을 받았다. 
뉘른베르크 피고인 21명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유대인 대량이주와 집단학살의 하수인으로 국외로 도주했던 아돌프 아이히만 같은 자들은 전후의 신생 유대인국가 이스라엘의 독단적 체포와 처벌이 불가피해졌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사형은 국제법적 논란을 야기한 일종의 '사적 보복'으로도 보였다.

'제노사이드'가 국제인권법에 주요하게 인정된 것은 그 이후 더 많은 국지적 전쟁과 크고 작은 집단학살이 더 자행되고 난 후였다.
뉘른베르크 국제전범재판 후 50여년이 지나서야 '반인도죄'와 '제노사이드'가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동시에 자리를 잡게 되면서 국제인권법에서 '개인(반인도죄)'과 '집단(제노사이드)'의 법이론적 균형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지금의 국제인권법에서는 개인권리에 초점을 둔 허쉬 라우터파하트의 '반인도죄'와 집단에 중점을 둔 라파엘 렘킨의 '제노사이드' 모두가 상식이 되었다.
물론, 리비우와 뉘른베르크를 포함한 그 어디에서도 단 한 번 마주치지는 못했던 라우터파하트와 렘킨의 '개인'과 '집단'이 이론적으로는 상호교차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만, 라우터파하트의 '반인도죄'의 개인인권주의는 렘킨의 '제노사이드'가 천착한 집단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표명했고, 렘킨은 '개인'을 강조하면 전쟁 전부터 벌어진 '집단'적 학살행위를 처단할 수 없다는 주장을 간헐적으로 했을 뿐이다. 

현대 국제인권법에서 '정의'의 기원은 유대인 출신의 리비우대학 법학과 선후배인 라우터파하트와 렘킨의 행적을 쫓으며 추적된다.

'개인'과 '집단'이 동시에 존중받는 국제법적 '정의(正義/Justice)'의 탄생기원이다.

***

-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East West Street - On the Origins of 'Genocide' and 'Crimes Against Humanity')](2016), Philippe Sands, 정철승 책임번역, <더봄>, 2019~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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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조선 - 제국이 재편한 음식경제사
임채성 지음, 임경택 옮김 / 돌베개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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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와 소비자의 분리?
- [음식조선], 임채성, 2019.


1.

음식 이야기인 줄 알았다.

더구나 믿고 보는 <돌베개> 출판사의 '한국학총서'라는 말에, 우리 한반도의 음식 역사 이야기를 또 다시 읽어볼 요량으로 살펴보고 두고 볼 일 없이 바로 주문했다.
모든 책은 결국 '역사책'이라 생각하는 나는, 세상 만물에 결국 '역사'가 깃들여져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전쟁에도, 미술에도, 그리고 '음식'에도. 
모든 것들의 이야기는 결국 '역사'인 것이다.

기대하던 책을 받아보고는, 그제서야 제목이 다소 심상치 않다는 생각과 함께 '서문'격인 <들어가며>를 읽고는 '음식의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국제경제학' 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내 다시는 본격적으로 수학과 경제학을 다루는 도서는 읽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이미 책을 구입했으니 '국제경제학'을 전공한 저자 임채성 선생과 책을 통해 대화를 끝까지 이어가고자 출퇴근길에 며칠을 들고 다녔다.

다른 건 몰라도,
한 번 잡은 책을 끝까지 읽는 건 자신있다.
수학과 경제학 같이 100% 이해를 못하는 분야라도 저자와 대화를 하듯이 쭉 읽어가면 된다. 모든 대화를 다 이해하지는 못해도 끝까지 대화를 하고나면 반드시 줄거리가 이해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내게 독서는 '역사'에 관한 저자와의 대화다.


2.

"... 이러한 역사인식(식민지 수탈론)은 '강좌파'적인 견해가 강하게 반영된 '식민지 반봉건론'을 기초로 한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개발론적 역사인식(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지 수탈론'을 통해서는 파악할 수 없었던 새로운(실증연구) 역사상을 제시하였다. 그 후의 식민지 경제사 연구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계승하는 입장을 취하든 비판적 입장을 취하든, 이 논의를 전제로 할 수 밖에 없었고, 종래의 일방적 '수탈론'으로는 설명해 낼 수 없는 역사상이 그려져 왔다. 이와 같은 새로운 움직임은 '신고전파 경제학'이 경제사 분석의 방법론으로 도입된 것과도 관련이 있다."
- [음식조선], <들어가며. 식료제국과 조선>, 임채성, 2019.


[음식조선(飲食朝鮮/Inshoku Chosen)](2019)의 저자 임채성 선생은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했지만 우리나라 학자는 아니다. 일본 도쿄대 경제학 박사를 거쳐 현재 릿쿄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 주제는 '일본 경제사'인데 일본을 넘어 한국과 대만, 나아가 중국까지 아우르는 동아시아 국제경제학과 비교경제학까지 확장하고 있단다. 연구의 소재는 '음식', '건강'과 '위생' 등이라고 한다.

[음식조선]은 임채성이라는 한국 출신의 일본 경제학자가 일본어로 쓴 책을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임경택 교수가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일제강점기 멸망한 조선 땅에서 새롭게 재편된 '음식경제사'다. 결국 동아시아 국제경제학에 깃든 '역사' 이야기는 어느 정도 맞기는 하다. 그러나 '역사' 보다는 '경제학'에 방점을 둔다. 

곡물의 대표로서 쌀(미곡)과 농업 생산수단이자 고기로서의 소, 고전적 사치품인 홍삼의 동아시아 교류가 <1부. 재래에서 수출로>의 소재다. 
쌀은 일제의 '산미증산계획'을 통해 생산성이 향상되었지만 일본으로 대거 수출되었는데 사실 식민지 착취였다. 일제가 조선을 자본주의적 '근대화'를 시키려고 했다지만 결국 농업은 '자유 시장'으로 편입되지 못했다. 일제와 총독부의 국가권력에 의한 대대적인 계획통제 및 착취가 이루어진다. 1940년대 세계대전 시기의 전시계획경제에 의한 강력한 통제는 비단 쌀 뿐만 아니라 모든 산물의 공통적 상황이었다. 소도 마찬가지고 대한제국 말기까지도 국가 전매를 시도했던 홍삼도 그랬다.

원래 조선에는 없던 상품으로서의 우유와 사과는 일본을 통해 외부로부터 들어와서 역시 일제와 총독부의 국가권력에 의해 여러 독과점적 '동업조합'으로 재편되었고, 반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확장된 명란젓(명태알)은 일제의 주도로 조선 특유의 상품이 된다. 

<2부. 자양과 새 맛의 교류>에서 다룬 우유와 사과는 서울우유의 전신인 '경성우유(서울우유)동업조합'을 통해 한반도의 새로운 자양분 음식으로서의 우유를 정착시켰고, 조선 토종이 아닌 19세기에 이식된 외래종 과일인 사과는 역시 동업조합의 독과점적 발전을 통해 일본의 아오모리 사과와 경쟁하게 되는 국광과 홍옥 등의 조선사과로 태어난다. 명란젓은 원래 일본에서는 먹지 않았다는데 지중해의 참치와 북대서양의 대구와 같이 한반도 동해의 명태를 주로 먹던 우리나라의 명란젓이 자본주의적 상품으로서 일본에까지 확장된 사례다. 조선의 사과처럼 일본의 명란젓은 이제 해당나라 특유의 산물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가던 <3부. 음주와 흡연>은 소주와 맥주, 그리고 담배에 관한 이야기다.

소주는 원래 재래식 증류주다. 몽골제국을 통해 서아시아 아랍에서 동아시아까지 넘어왔을 소주는 중세 아랍의 연금술사들이 물과 알코올의 끓는 온도가 다른 점에 착안하여 발효주를 끓여 먼저 수증기가 되는 알코올 성분을 다시 액화시키는 방식으로 처음 발명한 술이다. 증류기에 '땀'처럼 맺힌 것을 보고 아랍인들은 이 증류기를 '알렘빅(Alembic:땀)'이라 불렀다. 중국 원나라는 이를 '아라길'이라고 불렀는데, 소주는 서아시아는 '알렘빅', 동아시아에서는 '아라길' 주였다. 우리의 전통 소주는 이런 방식으로 만든 가정식 생산물이었지만 일제는 자본주의 상품으로서 주정식 소주를 대량생산한다. 사탕무 당밀로 원액(주정)을 만들고 물로 희석시킨 지금의 화학식 소주는 재래식 자가용 소주를 제치고 보편화되었다.

맥주는 한반도에 원래 없던 술로 독일의 제조방식이 일제를 통해 이식된 상품이다. 원래는 양주와 같이 일본인과 친일 상류층을 위한 사치품으로 시작되었지만 자본주의적 상품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식민지 경제성장을 통한 소득 증대로 인해 민간에도 확대되었다. 일제가 서울 영등포를 비롯해 평양 등지에 독일식 맥주공장을 세웠는데 이게 조선 '비루(beer)'가 된다. 남한의 조선맥주(크라운)와 북한의 대동강맥주 등의 유래가 되겠다.

17세기에 조선에 들어온 담배 또한 자가용 곰방대 엽초를 넘어 일제가 궐련식 상품으로 대거 재편했는데, 술이나 담배 같은 기호품의 자본주의적 상품화의 과정은 국가의 직간접적 독점전매를 통한 세수 확보의 역사다. 일제와 총독부는 술을 주류동업조합에 대한 지배를 통한 간접적 형태로, 담배는 국가전매라는 직접적 방식으로 하여 국가재정을 확충했다. 해방과 6.25 전쟁 후에도 이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주류와 담배를 통한 세수확충의 유래는 따지고 보면 일제강점기부터다.


[음식조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식민지 반(半)봉건론'에 기초한 '식민지 수탈론'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조선을 자본주의 체제라기 보다는 식민지 체제 하 절반의 봉건국가를 벗어나지 못한 후진 체제로 규정하고 일제가 한반도의 자본주의적 발전을 이식한 것이 아닌 대대적 수탈만 했다는 역사관이다. 
일본의 국제경제학자인 [음식조선]의 저자 임채성 선생은 '신고전파 경제학자'로서 복잡하고 매우 광범위한 '실증적' 통계자료를 근거로 일제가 조선에 이식한 자본주의 상품화를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내세우고 있다.

책 서술 내내 일본을 '식민지 본국' 나아가 '내지'로 매우 일관되게 표현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매우 불편하다. 아마도 일본 학계의 연구서로 원서가 일본어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돌베개> 출판사가 왜 이 책을 '한국학총서'로 분류했을까 의아하기도 하다.

물론 저자는 대놓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책의 '서문'격인 <들어가며>에서는 '신고전파 경제학'적 통계수치를 근거로 삼지 않아 '실증적'이지 못한 '식민지 수탈론'을 '강좌파'로 부르면서 '실증적'인 경제학 통계에 기반한 '식민지 근대화론'의 역사인식과의 일종의 '조화와 균형'을 주장하는 듯 하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결국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시기였지만 분명 일제에 의해 한반도조선이 자본주의 '근대화'가 되었다는 역사인식이다.

'음식'을 통해 '근대적' 자본주의로 재편된 우리의 역사를 다룬 경제학 책이지만, 역사인식은 어딘가 익숙하다.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의 균형을 말하지만 '실증주의'를 앞세운 궁극의 '식민지 근대화론'의 재편이다.

이렇게 조선인이 쓴 일본의 경제학 저서 [음식조선]은 '음식'을 매개로 한 동아시아 '식민지 근대화론'의 재판이다.


"주의해야 할 점은 '푸드 시스템'이 '제국' 내에서 일상적인 것으로 확장되었고, 나아가 그 경계에 있는 중국에까지도 퍼져갔던 것이다. 이른바 '식료제국'의 성립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소비자의 성장'에 대해서는 경제성장이 부를 나누어 가질 수 있는 '대중소비사회'의 도래를 연상하기 쉬운데, 시작은 경우에 따라 국가의 물리적 강제력을 수반할 수 있는 '생산과정으로부터의 소비자의 분리'였다. 밀매 단속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것은 '국가 폭력'적인 과정이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은 동아시아에서 전반적으로 볼 수 있는 역사적 과정이었을 것이다."
- [음식조선], <나가며. 식료제국과 전후 푸드 시스템>, 임채성, 2019.


3.

[음식조선]이 보편화한 일본 제국주의 '내지' 주도로 재편된 동아시아 '음식경제사'에서 일관되게 주장되는 표현이 하나 있다.

바로 "생산자와 소비자의 분리"다.

쉽게 말하면, 자본주의적 '상품화' 과정이다. 
재래식이 아닌 공장식 생산과 '상품화'를 통한 자본주의화다. 즉 쌀이나 술과 담배를 내가 만들어 내가 먹는 것이 아닌, '생산자'와 '소비자'가 따로 '분리'되는 과정인 것이다. 지금의 '대중소비사회'의 전형적 표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자본주의 초기 과정은 '자유시장'이 아닌 국가 주도의 경제체제 재편이었으며 국제적으로는 일종의 '보호주의'였다.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초기 자본주의 착취체제의 정착을 '생산수단으로부터 노동계급의 분리'라고 규정한 것이 생각난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가 가진 것이라고는 노동력 밖에 없는 노동자들을 하나의 '상품'으로 구매하는 과정이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시작이라는 역사인식이다.
이는 한편으로 '식민지 수탈론'의 역사인식이기도 하다.

반면, [음식조선]의 결과적 '식민지 근대화론'은 '계급투쟁'의 정치경제학이 아니라 '실증'적이고 '수치통계학'적인 '신고전파 경제학'에 기반하고 있어서, '노동'과 '착취'가 아닌 '생산자'와 '소비자'만을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음식'을 매개로 재편된 제국주의 주도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분리' 과정을 '자유 시장'으로 포장하지는 못하고 국가권력과 사적 자본의 융합으로서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솔직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보기에도 '자유 시장'은 없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국가권력 주도의 자본주의화로서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공통의 보편적 현상이었다.

여담이나, [음식조선]에서 일제 식민지 '본국'과 '내지'라는 표현은 수백 번 나오는데, 1905년의 '을사늑약'은 단 한 번 나온다.

'식민지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의 역사전쟁은,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적 '계급투쟁'과도 같이,
심지어 '음식'의 '경제사'에서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

- [음식조선(飲食朝鮮/Inshoku Chosen)](2019), 임채성, 임경택 옮김, <돌베개>,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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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골동품 서점
올리버 다크셔 지음, 박은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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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 저 '골동품'으로부터...
- [기묘한 골동품 서점], 올리버 다크셔, 2022.


1.

둘째가 곧 튀어나올 정도로 배가 부른 마님이 관내를 시찰하던 중 어느 한 집을 점지하고는 자리를 뜨자마자 집안의 마름아재가 군소리 없이 바로 가서 값을 치른다. 3년 전엔 분명 신랑신부 사이였던 것 같은데 어느덧 마님과 머슴 관계가 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느날 아침에 눈을 뜬 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나는 끓는 물 속 개구리처럼 잘 익어 있었다. 우리 집에 머슴은 나 하나 밖에 없었으니 그나마 나는 머슴 중 서열 1위였다. 치열한 마름 경쟁은 없었다. 모든 계산은 내가 해야 했다는 말이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돈도 마님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다 알아서 내야 한다는 것 정도. 

우리집 역사에서 처음 집을 구입하려던 예산의 세 배가 넘는 주택을 아내가 가리키면서 값을 치르라 지시했던 2007년에는 몰랐다. 은행 대출서류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사랑하는 나의 아내 은미가 아파트를 당장 사내라는 독촉을 이리도 꾸준히 해댈 줄은. 세상에서 제일 이쁘다는 말도 필요없고 탑골공원 할아버지가 예언한 사주팔자 바로 그대로 자식 셋을 안겨줬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의 모든 귀결은 아파트였는데 금을 깔고 앉았다는 그런 아내에게 칼만 쥐었다던데 지금은 그 무딘 칼을 어디다 뒀는지도 모를 재물에 어두운 내가 해줄 말은 세속의 물욕을 버리라는 말 외에는 없었다. 

주택에 금세 물린 아내는 우리 생애 첫 집을 사서 이사한지 몇 년 되지도 않아 1층 안방의 구석 서재 말고는 죄다 은행 소유였던 시절부터 당장 아파트로 옮기자고 틈만 나면 졸라댔는데, 집안의 유일한 머슴이자 마름으로서 주택 관리 상 할 일이 많은데 할 줄 아는 건 전혀 없음에도 나는 주택을 고집했다. 은행대출 갚으려면 백 년은 걸린다는 명분을 이사의 반대이유로 내세웠지만 사실 마당에서 큰 개를 키우는 게 좋았고, 세상 모든 벌레가 우글대지만 마음만 먹으면 실은 담배를 피우며 밤하늘을 마음껏 볼 수 있는 나만의 옥상이 좋았으며, 무엇보다 아주 오래된 '골동품 서점'처럼 책들을 여기저기 매우 두서도 없이 쌓아놓는 게 싫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당을 지키던 알래스칸 말래뮤트 에코는 급한 약속이라도 있는 것처럼 약속의 강 스틱스강을 카론의 배를 타고 건너 갔고, 옥상은 어느덧 담배를 끊었음에도 나의 주요 임무가 되고 만 음식물 쓰레기를 텃밭에 묻는 과업을 수행할 때 말고는 올라가지 않고 있으며, 아이들의 어릴적부터 쌓여온 오래된 책들이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처럼 흘러넘친 결과 나는 사면초가로 포위된 항우처럼 아내에게 눈물을 짓고는 홀로 책과의 전쟁을 치르고자 분연히 일어서게 되었다.


2.

"충분히 오랫동안 '눈이 잘 띄는 곳'에 숨어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 서점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찬장 문 뒷쪽이라든지 책장 꼭대기에는 어김없이 한때 누군가에게 중요한 물건이었다가 이제는 존재가 희미해진 물건들이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야말로 오래된 서점이 지닌 매력의 본질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하나 '골동품' 아닌 존재가 없다는 것."
- [기묘한 골동품 서점], <2-25. 소서런의 골동품들>, 올리버 다크셔, 2022.


18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부터 있었다는 오래된 고서점 '소서런(Sotheran's Sackville Street)'의 인턴 직원 올리버 다크셔(Oliver Darkshire)가 중고책을 사고 파는 본업은 제쳐둔 채 회사 sns에 일종의 업무일지 비슷한 것을 썼고, 인터넷 보다는 깃털펜에 잉크를 찍어 써야 한다는 과연 고서점스러운 직업적 신념으로 회사 트윗 팔로워 4명을 꾸준히 유지하다가 인턴 직원의 가상공간 업무일지로 팔로워가 천 명이 넘은 걸 보고 깜짝 놀란 직장 상사 매니저 크리스 샌더스의 응원으로 [기묘한 골동품 서점](2022)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원제는 [Once Upon a Tome]인데, 'Tome'은 'Time'의 오타가 아니라 '오래된 두꺼운 책' 또는 누군가 들춰본지 백만년은 되었을 벽돌같은 '학술서'라는 뜻이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Frankly speeking), 'Tome'은 영문학을 전공한 나도 처음보는 단어였는데, 어느 블로거가 '옛날 옛 적에(Once Upon a Time)' 대신 '옛날 옛 책에(Once Upon a Tome)'라고 매우 적절히 번역해 주었기에 나는 한 발 늦었다는 분한 마음에 책상을 쳤지만 그에 군말 없이 따르기로 하고, 'Tome'을 이 책의 키워드 중 하나인 '골동품'으로 나름 이해하기로 한다. 책장을 들출 때 '쩍' 소리가 나면서 수백년 묵은 존재들이 튀어나오는 그런 오래된 책들 말이다.

[기묘한 골동품 서점]에서 저자 올리버 다크셔는 단 한 순간도 결코 진지하지 않다. 
빅토리아 시대부터 존재했던 만큼 21세기 인턴 급여도 18세기 수준으로 받고, 골동품 같은 책과 물품들을 열심히 사고 파는 게 직업이지만 정작 마흔아홉 가지 에피소드 중 저자가 정상적으로 사거나 판 골동품은 없다. 가히 주식만 빼고 다 잘 하는 증권회사 직원이나 합의만 아니면 뭐든 뒤지지 않는 보험회사 보상직원과도 같다. 저자의 글만 읽다보면 런던 새크빌가(Sackville St.)의 고서점 '소서런(Sotheran's)'은 영원히 팔리지 않을 골동품과 함께 푹 썩어 통째로 그 외진 골목길 땅 속에 아무도 모르게 묻힐 참이다. 사실 저자의 글이 시종일관 진지함은 0도 없고 농담이 아닌 문장이 진짜로 단 한 줄도 없어서 독자인 나는 대체 저자가 이 고서점에서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책을 덮고 나서야 알 것 같았다. 
그만큼 책은 온통 개그로 시작하여 개그로 끝난다. 
그리고 그만큼 재미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고서점과 골동품, 그 곳을 4백년(18~21세기) 동안 골동품처럼 지켰을 법 하던 서점의 선배동료들(제임스/앤드류/크리스 등)에 관한 이야기들과, 특히 마지막 49장 에필로그에서 매니저 제임스의 죽음을 언급한 한 단락을 뜬금없이 갑자기 읽게 되면 문득 깨닫게 된다. 올리버 다크셔의 끊임없는 개그가 실은 오래된 골동품을 시공간적 매개로 하여 그 어디에나 있을 법한 "삶과 죽음", 그리고 사라지는 것들에 관한 "기억"(같은책, <금정연 작가의 추천사>)을 이야기하고자 했음을. 
마지막에 저자 또한 고서점 '소서런'을 떠나게 되는데 글쎄, 그건 무슨 인위적이고 주체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그렇다고 외부적 요인은 더더욱 아닌, 일종의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냥,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존재했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 같은데,
어느 순간 둘러보면 더 이상 내 곁에 없는,
어쩐지 슬프기도 하고 어딘가 애잔한 듯 하지만 예외없는 자연스러움에 오히려 잔잔하게 무언가를 남기는.

나의 오래된 집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동안,
삶의 외로움 같은 것이 웃고 즐기던 중 어느 순간 마음 한 구석에 싸한 바람을 일으킨다.

그렇게,
세상 모든 것은 애줄없이 사라질 운명이지만,
한편으로 오래오래 어딘가에 남게 되는,
'골동품'이다.

그래서,
이 책의 원제 '원스 어폰 어 터움(Once Upon a Tome)'을 나 나름대로 번역해 본다.

"옛날 옛 저 '골동품'으로부터 남는 것은..."


3.

어둑하고 음침한 고성과도 같이 서서히 무너져가는 20세기의 주택에서 유령처럼 내가 버티는 이유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사시사철 주택의 하자보수를 도맡으셨던 부지런했던 정비공 출신의 부친께서는 이미 2년 전 '천 개의 바람'이 되셨다. 
옥상의 텃밭에서 각양각색의 무성한 채소와 그보다 더 다양한 벌레를 함께 키우시던 모친께서는 이제 더 이상 호미를 들 수 없도록 어느새 어깨도 빠지고 늙으셨다. 
북극의 알래스카 대신 폭염의 마당을 질주하고 호령하던 말래뮤트 썰매개 에코는 썰렁한 마당과 뒷골목만 남겨둔 채 나의 세 자녀들의 어린 시절 추억들과 함께 사라졌다. 
이제 남은 건 매일매일 습관적이고 인공적으로 퍼부어지는 남편의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집값 더 떨어지기 전에 얼른 팔아치우고 새 아파트로 뜨자는 아내의 쌍꺼풀 수술한 인위적으로 매서운 눈빛 뿐이다.

물욕 가득한 아내의 그윽한 눈빛에 대고,
사라지는 것들의 애잔함과 그 오래된 것들이 남기는 잔상, 그리고 가끔 심장에 폭행을 가하는 추억을 이야기할 만한 이유들 자체가 '골동품'이 되고 있다.
은미는 나의 골동품 'Tome'의 책장을 펼쳐볼 생각이 전혀 없다.

20세기 소년인 나의 20세기 저택은,
한없이 쌓여가는 오래된 것들과 함께,
그 자체로 거대한 '골동품'이다.

***

- [기묘한 골동품 서점(Once Upon a Tome)](2022), Oliver Darkshire, 박은영 옮김, <RHK>,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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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미술관 - 지친 하루의 끝, 오직 나만을 위해 열려 있는
진병관 지음 / 빅피시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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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위로받다
- [위로의 미술관], 진병관, 2022.


여전히 '미술관' 시리즈다.
아마도 미술사 관련 책의 제목으로 출판사들이 뽑은 키워드가 '미술관'인 듯 하다.

명화를 통해 역사를 읽어주는 김선지 작가의 [사유하는 미술관](2024)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나중에 천천히 읽으려고 예전에 사두었던 프랑스 미술해설사 진병관의 [위로의 미술관](2022)을 잠시 들춰 보다가 역시 채 이틀도 지나지 않아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내게 '놀이터'와도 같은 미술사 책은 항상 그렇다. 넋 놓고 먹다가 어느새 바닥나 버린 과자와도 같이 아쉬움에 손가락을 빠는.
'Finger-licking good'이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화가들은 작품에 자의식을 담으려 노력했다. 눈앞에 보이는 세상을 평면에 표현하는 방법을 사진술에 넘겨주면서, 다른 방식의 표현법을 찾은 것이다."
- [위로의 미술관], <1장. 너무 늦었다고 생각되는 날의 그림들 - 폴 세잔>, 진병관, 2022.


19세기 인상주의에서 20세기 현대미술로 넘어오는데 가장 큰 영감을 주었다는 폴 세잔은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분류되기도 한다. 

'인상주의'는 프랑스 살롱의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아카데미즘에 대항하여 개인전을 연 모네와 마네, 르느와르 등 일군의 화가들을 조롱하기 위해 붙여진 명칭이었다. 클로드 모네의 [인상, 해돋이](1872)를 본 기득권 화가들이 사물의 '실체'가 아닌 '인상'만 그렸다는 비평이 곧 그들 화파의 이름이 된 것이다.

사진기가 발명되기 전의 '시각예술(Visual arts)'로서의 그림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또는 미화시키면서까지 '본질'을 그리고자 했지만, 19세기에는 사진처럼 직접 묘사하는 것을 넘어서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인상'은 말그대로의 '印象(Impression)'이 아닌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는 또 다른 표현법이 되었다. 
망막에 비친 빛의 반사에 따른 일시적 풍경을 그린 '인상주의'의 대표화가 모네가 시시각각 변하는 하나의 사물을 여러 편의 연작으로 그린 이유다.

이처럼 '인상'이라는 '현상'을 통해 사물의 '본질'에 접근하는 '인상주의' 자체가 약 한 세기 이상 흐른 뒤 등장한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뮬라크르(Simulacre;흉내내다)'를 예고하기도 하는데, 이 모든 현상은 언제나 '현재' 또는 '현대'를 뜻하는 '모더니즘'의 특징이다. 모든 '모더니즘'은 스스로를 극복하기 위해 '후기' 또는 '말기'적 현상으로 전환되는데, '~이후' 또는 '부정'의 의미로 붙여진 '후기~'라는 개념은 해당 '모더니즘' 경향을 부정하는 동시에 연속되도록 갱신한다.

'후기 인상주의' 거장 폴 세잔의 역할도 그랬다. 사과를 한 각도만이 아니라 여러 각도에서 본 관점을 하나의 장면으로 그려낸 실험은 오래전 르네상스 시대 전후 러시아와 비잔틴, 동양화풍의 '역원근법'의 왜곡에서도 보이기는 했지만 당시는 인류가 '원근법'을 익히던 시대였기에 아직 일렀다. 이제 19세기 말 세잔의 '사과(Apple)'는 뉴턴의 '사과'나 스티브 잡스의 '사과'만큼이나 미술사에서 혁신의 아이콘이 된다. 
이후 앙리 마티스의 '야수파'적 색채와 파블로 피카소의 '입체파'적 관점은 폴 세잔의 '후기 인상주의'를 거쳐야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빈센트 반 고흐처럼 당대에는 크게 인정받지 못했으나,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폴 세잔의 꾸준한 열정이 늦었다고 생각하고 지친 이들에게 '위로'가 된다.


"그리고 젊은 화가들은 더 이상 누군가에게 평가받기 위한 수동적인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쿠르베가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독립 전시회를 열었듯, 1874년 제1회 인상주의 전시회를 개최하며 모더니즘 시대를 활짝 열게 된다."
- [위로의 미술관], <2장. 유난히 애쓴 날의 그림들 - 귀스타브 쿠르베>, 진병관, 2022.


인상주의 화가들이 기득권 살롱에 대항한 단체개인전을 열 수 있도록 용기를 준 것은 의도했든 아니든 귀스타브 쿠르베의 역할이었다.

19세기 '사실주의'의 대표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 역시 당시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대세였던 아카데미즘에 저항한 화가다. 실제하지 않는 천사를 데려오면 '사실'대로 그려주겠다고 장담한 쿠르베는 자신만만한 예술가였다. 여인의 나체를 그리스 신화처럼 미화하지 않고 너무 적나라하게 그렸다는 비판에 굴하지 않았고 후원자에게 간택받는 것이 아니라 화가 본인이 후원자를 선택했으며 결국 만국박람회장 맞은편 임시 건물에서 '사실주의 관'이라는 본인 개인전을 열면서 이후 젊은 후배 화가들에게 예술가적 자존심의 본보기가 되었다. 쿠르베의 이 '사실주의 관'에는 당대의 낭만주의 거장 외젠 들라크루아가 한 시간 동안 관람했다는데, 신화와 역사화를 강조한 아카데미즘에 맞지 않게 사소한 개인적 소재를 크게도 그렸다고 살롱전에서 거부당한 쿠르베의 [화가의 작업실](1854~1855)을 들라크루아가 특히 극찬했다고 한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높은 자존감과 혁신적 도전은 유난히 애쓴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위로'가 된다.


"그녀는 미술이 아름다움만을 고집하는 것은 삶에 대한 위선이라고 했고, 자신의 예술이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말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예술은 사회를 반영한다. 권력의 입맛에 맞게 순응하는 예술도 존재하지만, 시대의 고통과 아픔을 표현하고, 공감하며, 위로하는 예술은 우리에게 더 큰 감동을 준다."
- [위로의 미술관], <3장. 외로운 날의 그림들 - 케테 콜비츠>, 진병관, 2022.


'사실주의(Realism)'의 힘은 여기에 있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사실주의'는 현실을 그리스-로마 신화적인 역사로 미화하는 신고전주의나 낭만주의에 대한 반발이었다. 쿠르베는 현실과 동떨어진 신화를 그리지 않았고 당대의 현실을 '사실주의'라는 이름으로 그려냈고 1871년 파리 코뮌의 민중혁명에도 가담하여 옥살이까지 한다.

19세기 말 독일 슐레지엔 직조공 파업을 새겼고, 20세기 들어 1,2차 세계대전으로 아들을 잃은 케테 콜비츠는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그림과 판화, 조각을 남겼다.

법학을 전공한 지식인이었지만 스스로 노동자가 된 아버지의 영향으로, 19세기 여성이지만 미술가가 된 콜비츠는 평생 노동자와 빈민의 현실을 대변하고 전쟁에 반대하는 삶을 살았다.

케테 콜비츠는 항상 노동자, 민중과 함께 했지만, 전쟁으로 자식을 잃은 그녀는 언제나 고독하게 혼자 지냈다고 한다. 
외롭지만 끝까지 민중과 함께했던 케테 콜비츠의 예술은 외로움으로 힘든 이들에게 희망의 '씨앗'이 짓이겨지지 않도록 '위로'를 보낸다.


"칼이 100여년 전에 남긴 그림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을 짓거나 따뜻한 감정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사실 우리는 알고 있다. 행복이란 나와 가장 가까운 이들과 보내는 일상에 존재하며,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 [위로의 미술관], <4장. 휴식이 필요한 날의 그림들 - 칼 라르손>, 진병관, 2022.


마지막으로 스웨덴 화가 칼 라르손의 그림은 무슨 사상이나 '주의(~ism)'를 말하지 않는다. 

가난한 환경이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미술의 도시 파리에서 그림을 배웠다. 변방의 화가로서 파리 미술의 중심에 머무는 대신 역시 화가였던 아내 카린을 만나 스웨덴으로 돌아와 '릴라 히트나스(작은 용광로)'라는 이름의 집을 짓고 가족과의 평온하고 즐거운 일상을 그린다. 라르손은 그림을 그리고 아내 카린은 집의 인테리어로 명성이 높아졌다는데 특히 라르손 가정의 인테리어는 북유럽 인테리어 브랜드인 이케아의 뿌리가 되었다고 한다.

아마데오 모딜리아니는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느냐'는 아내 에뷔테른의 질문에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눈동자를 그릴 것'이라고 답했지만 모딜리아니의 삶과 사랑은 비극이었다. 

반려견과 아이들을 친근하게 그린 찰스 버튼 바버의 그림들도 푸근하지만 그는 왕족과 귀족의 일상만 담고 있다.

그런 반면 칼 라르손의 그림들은 우리 일상의 접시와 찻잔에 어울리는 풍경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일상과 가족 안에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100년 전 북유럽의 그림이 새삼 보여준다. 

역시, 휴식이 필요할 때는 내 힘의 원천, 가족 밖에 없다. 세상 누구보다 나를 제일 알아주는 내 가족만한 '위로'가 또 어디 있겠는가.

***

- [위로의 미술관], 진병관, <빅피시>,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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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는 미술관 - 그림 속 잠들어 있던 역사를 깨우다
김선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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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은 역사의 동력이다
- [사유하는 미술관], 김선지, 2024.


"그림 속에는 그 시대와 사회를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다양하고 풍요로운 정보가 들어 있다. 이런 점에서 예술 작품은 역사를 반영하는 기록물이자 인간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에게 수많은 말을 건네고 의미를 전한다... 나의 관심은 그림을 매개로 한 인문학적 사유다. 그리고 나의 글에는 늘 역사적 배경이 주요한 요소로 바탕에 깔려 있다. 과거는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다."
- [사유하는 미술관], <서문 - 내 안의 사유를 깨우는 미술관으로의 초대>, 김선지, 2024.


다시 '미술관'으로 들어선다.

내 비록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시각예술(Visual Arts)'로 분류된 그림을 좋아해서 미술사 관련 작가와 책들은 계속 읽게 된다. 
꼭 읽게 되는 미술사 작가로는 일본의 나카노 교코가 있고 우리나라 김선지 작가가 있다. 나카노 교코는 왠지 귀족적 역사관이 깔린 듯 하나 [무서운 그림] 시리즈처럼 명화에 담긴 인간사의 주제 선정에 끌린다. 이에 비해 김선지 작가는 명화가 담고 있는 역사 속 '모순'과 그로 인해 밝혀지는 역사의 이면이라는 일관된 주제 선정에 동감하기 때문에 읽는다. 
김선지 작가의 글에는 변함없이 소외된 계층과 피지배계급에 대한 연민과 연대의식이 스며들어 있다.

김선지 작가가 2024년에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로서의 과거, 역사를 비추는 '거울'인 명화를 통해 '인문학'적 사유를 이어가는 '미술관'을 열었다길래 첫번째 관람객이 되고자 바로 책을 펼쳤고, 역시나 이번에도 아끼고 아껴 읽고자 했으나 이틀이 채 지나기도 전에 30관의 전시실을 다 돌고 말았다. 
내게 미술사 책은 항상 그렇다. 아무리 아껴먹으려 해도 눈 깜빡하는 사이 다 먹어버리는 달디단 곶감이자 어느새 해가 저물고 어둑해지는데 홀로 남겨진 외롭지만 정겨운 놀이터다.

[그림 속 천문학](2020)과 [그림 속 별자리 신화](2021)를 통해 알게 된 김선지 작가가 [사유하는 미술관](2024)을 열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내가 보기에 '역사' 속 '모순'이다.

'모순'은 변증법적 역사관으로 보면, 세상 만물의 동력이다. 씨앗이 품고 있는 생명의 맹아는 곧 현재의 씨앗 상태를 깨고 생명을 틔운다. 씨앗 속에 움튼 맹아라는 말 자체가 현재와 미래의 공전상태를 이른다. 인류사에서 새로운 세상은 한 번에 나타나지 않는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망하지 않았고 르네상스는 한 번에 오지 않았으며 러시아 혁명의 맹아는 러시아의 잔혹한 차르 체제 자체에 오랫동안 살아숨쉬고 있었다. 소비에트와 볼셰비키의 대대적인 혁명은 러시아 차르 체제가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다. 레닌이라는 전대미문의 혁명가는 서유럽 같은 곳이었다면 빛을 볼 수 없었다. 가까운 우리 역사의 사례로 내가 존경하는 삼봉 정도전의 급진적 성리학은 이미 고려말 체제가 충분히 만들어 주었다.
자연사 뿐만 아니라 인류사의 동력은 역시,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모순'이다.
역사는 이 '모순'을 동력으로 전진해 온 과거를 반추하는 것이며, 김선지 작가는 이런 역사를 그림들을 통해 읽어준다.

[사유하는 미술관]은 그림 속 투영된 권력과 성, 음식과 신앙 등을 통해 역사의 이면을 파헤친다.


"메리 1세는 역사에서 블러디 메리라는 악명으로 기억되며 부정적 평가를 받아 왔다. 영국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성공적인 군주로 인정받는 엘리자베스 1세와 비교되며 더욱 빛을 잃었으니, 죽어서도 그들은 숙명의 라이벌이긴 한 것 같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의심할 여자 없이 언니에게 많은 빚을 지었다. 메리가 잉글랜드의 첫 번 째 여왕이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 [사유하는 미술관], <1-3. 튜더 왕가의 라이벌 공주>, 김선지, 2024.


이혼하고 싶어 영국 국교회를 창시한 영국의 헨리 8세에게는 메리와 엘리자베스 두 공주가 있었는데, 어머니가 다른 두 공주는 잉글랜드 최초의 여왕이 되고자 권력투쟁을 이어간다. 이혼의 희생양이 된 엄마 캐서린을 위해 가톨릭을 옹호하며 개신교도들을 학살한 '블러디 메리'는 5년 후 개신교를 앞세운 엘리자베스 여왕 세력에 의해 패퇴되었지만, 영국 최초의 여왕으로서 후대인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초석을 깔았다는 평가도 있다. 조선 태종의 왕정 패악질이 세종의 치세를 닦은 토대였다는 시각과 같다. 
권력보존 역사의 '모순'이다.

오스만의 술탄 슐레이만 1세의 왕비 술타나 록셀라나와 동로마 비잔틴제국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의 황후 테오도라는 각각 노예와 고급 매춘부에서 술탄 및 황제와 거의 동급의 반열에 올랐다. 역사에서 이들은 악녀의 이미지로 전해졌지만 사실 역사는 시대적 한계는 있지만 고대와 중세 당시의 여성 인권을 보호했던 인물로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근대와 현대에 성취된 여성 인권은 다수 여성들과 이에 연대한 계급투쟁으로 쟁취되었지만 역사의 이면은 신분의 벽을 깨부순 여성 권력자를 여러 명화들을 통해 보여준다. 
여성 권력자들은 비록 지배계급이었지만 당시의 피지배신분으로서 여성으로서의 '모순'을 품고 있었기에 여성 인권 진보의 역사를 담보한다.


"설탕의 역사는 인류사의 어두운 장이었다. 설탕은 달콤하지만 그 이야기는 매우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단맛에 빠진 당대의 사람들 중 설탕 플랜테이션의 냉혹한 현실을 생각해 본 이가 있었을까?"
- [사유하는 미술관], <3-14. 그림 속에 차려진 설탕의 유혹>, 김선지, 2024.


우리 주변의 사소하지만 중요한 요소인 음식에도 '모순'은 있다. 

설탕의 단맛은 근대 식민지 플랜테이션의 흑인 및 비백인 노예 착취를 배경으로 한다. 노예와 식민지를 쥐어짠 사탕수수의 단맛은 사실 역사의 쓴맛과 '모순' 관계에 있다. 
역시 식민지와 노예무역이 배경이 된 커피와 후추 또한 그 알싸함 뒤에는 아픈 역사가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음식에서 향신료의 고마움과 민주주의 역사를 발전시킨 '커피하우스'의 역사적 역할은 사라지지 않는다.
음식의 역사에도 '모순'은 도사리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은 성격이 사납고 충동적이며 과대망상에다 편집증이 있었다. 베토벤은 병적인 변덕스러움과 분노 조절 장애를 가졌으며, 스티브 잡스는 완벽주의에 대한 강박 증세로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광기는 천재성과 통하기도 하지 않은가?...
... 생각과 가치관은 늘 바뀌어 왔다. 과거의 비정상은 현재의 정상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 경우도 있다. 진짜 문제는 나와 우리는 정상이고 너와 너희는 비정상이라는 독선적 이분법이다."
- [사유하는 미술관], <5-25. 정신 질환, 그 폭력의 역사>, 김선지, 2024.


권력투쟁만큼 첨예한 인간사가 있을까 싶다. 권력 앞에서는 에미애비도 자식도 없다. 권력의 역사는 광기의 역사다. 역사의 위인으로 남기 위해 권력자들과 천재들은 기꺼이 '미친년놈'들이 되었다. 권력자들의 광기는 일일이 열거할 것도 없다. 지역 내부 정치를 넘어 알렉산더와 칭기스칸, 나폴레옹을 배우고자 했던 히틀러는 그 대명사에 불과하다. 그냥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을 미화한 교활한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과 그 과정을 사실대로 묘사한 폴 들라로슈의 그림을 비교하면서, 인간사 '모순'의 정점인 미친 권력자들 얘기는 넘어간다. 

한편으로 권력에 의한 폭력의 피해자가 된 여성은 '창녀'와 같은 억울함의 표상이 되고는 하지만 더 이상의 폭력을 방지할 수 있는 '성녀'의 힘도 갖게 된다. 결연한 죽음을 통해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세운 기폭제가 스스로 되어버린 루크레티아를 기억한다.
역시, '모순'은 폭력의 역사를 뒤집는 동력이다.


[사유하는 미술관]의 제목은 원래 '사(史)적인 미술이야기'로 김선지 작가가 정해 두었단다. 그런데 출판사에서는 '역사(史)'를 제목으로 앞세우면 독자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제목을 [사유하는 미술관]으로 바꿨다는 후문을 작가의 페이스북을 통해 들었다. 

아쉬웠다. 
책이 안 팔릴까봐 제목에 '역사(史)'를 올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물론 이런 아쉬움 또한 대중적이지 못한 나의 한계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한다.

한편으로 다행이기도 하다.
'사유'를 역사와 함께 노니는 '사유(史遊)'로 생각하기로 했다는 작가의 후일담을 들으니.
이로써 김선지 작가는 그림과 함께하는 '역사(史)'를 지켜낼 수 있었다.

세상 만물은 예외없이 '모순'을 담고 있다.
어떤 일이 생겨도 역사는 전진하는 미래를 담고 있는 그때 그때의 현재다.

명화들을 보며 읽어내는 역사를 봐도 역시,
'모순'은 역사의 동력이다.

미술사를 넘어 미술을 통해 '역사'를 이야기하는 김선지 작가의 발전이 반갑다.

***

- [사유하는 미술관], 김선지, <알에이치코리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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