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운명 : 기후, 질병, 그리고 제국의 종말
카일 하퍼 지음, 부희령 옮김 / 더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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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운명'을 가른 '자연의 복수'
- [로마의 운명](2017), 카일 하퍼, 부희령 옮김, <더봄>, 2021.


1. 기후 변화와 로마의 운명


"고대인들은 '포르투나 여신(운명/복수의 여신)'의 섬뜩한 지배력을 존경했다. 그들 나름대로, 역사를 이끌어가는 것은 구조와 우연, 자연의 법칙과 순전한 운이 혼합된 변덕스러운 것임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인류 서사 중에서도 '운명'적인 시기에 살았다... 역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문명 중 하나를 만들고 해체하는 일에 '환경'이 일정 부분을 담당했음을 여러 방식으로 알 수 있다. 로마는 거의 필연적으로 거울이자 척도이기도 하다... '자연의 복수'... 이 문명의 '운명'을 좌우할 '자연환경'의 막강한 힘을 생각하면, 우리는 로마인들에게 공감하며 다가갈 수밖에 없다."
- [로마의 운명], <에필로그>, 카일 하퍼, 2017.


흔히 지금 우리들 사는 시대를 '인류세'라 부른다.
46억살인 우리 지구는 생명체가 등장하고 약 20여 만년 정도는 '플라이스토세(홍적세)'인 빙하기에 있었고, 최근 약 1만년 정도는 '홀로세(충적세)'라는 신생대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인류의 원시 조상과 구석기인들은 빙하기를 겪었고, 신석기 시대 농경을 하면서는 다소 온난해진 기후에서 정착 문명을 영위할 수 있었다. 사피엔스의 입장에서 보면, 위대한 발견과 문명의 발전이겠지만, 지구의 입장에서는 온난다습한 기후가 뒷받침해주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유발 하라리가 보기에는 '밀'이라는 종이 정착과 스스로의 번식을 위해 사피엔스를 이용했을 수도 있단다. 농경과 정착을 하면서 예전의 수렵, 채취 시절에 비해 더욱 빈번해진 각종 질병과 기근으로 고생한 사피엔스는 오히려 '밀'을 포함한 다른 종들에게 사기당한 것이란다. '인류세'는 지구 기후환경의 폭력적 변화를 가속시키는 인류가 그만큼 환경에 영향를 크게 미치기 때문에 더욱 자연을 보호하고 경계하자는 뜻에서 이르는 일종의 은유이자 경고일 뿐, 학문적으로 아직까지 지금의 지구는 '홀로세'를 지나고 있다. 그런데 '홀로세'라고 하여 항상 기후환경이 같을 수는 없었다. 지구는 약간 기울어져 있기에 태양을 공전하는 동안 각도의 변화로 태양열을 일정하게 받을 수도 없고 지각변동은 끊임없으며 화산폭발로 대기가 변화되면 오랜 기간 기온이 떨어지기도 했다. 과학은 자연을 정밀하게 관찰하여 그 객관적이고 '필연'적인 법칙을 찾고자 했으나 역사 속에서 이런 지구의 변화는 '우연' 그 자체다.
고대인들이 '신'과 같은 절대자를 떠올렸던 것은 과학이 미처 발달하기 전이기도 했지만 이러한 지구환경의 '우연성'을 직감했기 때문이리라. '운명' 또는 '복수'의 여신인 '포르투나'는 어떤 때는 눈을 가린 채 공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지구라는 자연 앞에 선 인류도 그렇다.

기원전 8세기에 시작된 도시국가 로마는 기원전 3세기부터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이후인 기원후 1세기를 지나 '5현제'의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통치하던 2세기 경에 걸쳐 '기후최적기'를 맞게 된다. 지중해를 둘러싼 이 고대 로마 문명은 고온다습하고 온난한 '홀로세'의 변덕에 힘입어 발전하고 팽창하면서 거대 제국이 되었으나, 크고 작은 기후 변화를 동반한 과도기를 거쳐 기원후 5세기 이후인 '고대 후기 소빙하기'가 닥치면서 제국의 해체를 향해 노정한다. 이러한 기후 변화는 로마의 도시국가들이 삼림벌채 등의 대개발로 인해 지구를 건조화시킨 영향도 다소 있었겠지만, 고대에는 지금처럼 화석연료를 태워대며 대놓고 환경을 오염시킬 만한 단계는 아니었다. 고대인들은 고작 나무를 베고 만든 도시에 모여서 배설물이나 오물을 집단으로 버리는 수준이었다. 

18세기에 [로마제국 쇠망사]를 지은 에드워드 기번은 로마가 쇠망한 것은 "무절제한 팽창이 가져온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결과였다"고 썼다. "번영은 쇠망의 원리를 성숙시켰고, 정복의 확대에 의해서 파괴의 원인이 증가했으며, 그리고 시간이 지나 또는 우연히 인위적 기둥들이 허물어지게 되자 그 방대한 구조물은 자체의 무게에 짓눌려 무너졌다([로마제국 쇠망사])"는 것이다. 인간의 욕심으로 인한 팽창이 시작하자마자 쇠망의 기운이 함께 싹튼다는 고찰이며, 이런 원리는 세상만물에 투영된다. 로마의 멸망에 관한 후대의 논의는 많고도 복잡하겠지만, 기번의 평가는 인류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 수긍할 만 하다. 그러나 관점을 좀더 넓혀 우리 지구별로 확장하면 이야기는 '기후'와 '질병'을 피해갈 수 없다. '자연의 복수' 또한 불가피하다.


"로마제국의 몰락은 곧 인간의 야심에 대한 '자연의 승리'였다. '로마의 운명(The Fate of Rome)'은 황제들과 야만인들, 원로들과 장군들, 병사들과 노예들에 의해 좌우되었다. 그러나 또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화산'과 '태양주기'의 영향도 컸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생태환경의 변화'라는 거대한 드라마에 로마인들이 자신도 모르게 배역을 맡고 등장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는 '과학적 도구(자연기록보관소)'를 갖게 되었다."
- [로마의 운명], <프롤로그>, 카일 하퍼, 2017.


미국 오클라호마대학 역사학 교수인 카일 하퍼(Kyle Harper)는 [로마의 운명(The Fate of Rome)](2017)에서 로마의 몰락은 "인간의 야심에 대한 '자연의 승리'"로 규정한다. 로마와 중세 초기 사회경제사를 연구하는 하퍼는 에드워드 기번부터 시오노 나나미까지 로마의 역사에 관한 대작들에 공감하며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도구는 '자연기록보관소'에서 최근에서야 얻을 수 있는 '자연'에 관한 정보와 데이터들이다. 

방대한 제국으로 팽창한 로마는 고대 서방의 중심으로서 사통팔달의 도로를 통해 세상만물과 만인의 교류가 가능하도록 만든 대명사가 되었다. 전쟁이든 교역이든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다'. 제국의 팽창과 함께 로마 특유의 '공화정'이 자리잡는 한편, 이를 뒷받침했던 '기후최적기'는 지구 고유의 변덕스러운 운동을 토대로 도시문명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환경, 즉 지중해와 근동지역 일대의 건조화를 서서히 진행시키고 있었다. 여기에 아직 풍토화되지 않았던 미생물들의 확장으로 세 차례의 '페스트(전염병 팬데믹)'를 겪는다. 로마 '기후최적기'가 끝나가는 기원후 2세기의 '안토니누스 페스트'와 3세기의 '키프리아누스 페스트', 그리고 마지막 6세기부터 8세기를 거쳐 지속적으로 창궐한 '유스티니아누스 페스트'가 그것이다.


2. 팬데믹과 로마의 운명


"... 물건(교역)과 신(종교)이 가는 곳에는 '병원균'들도 간다. 인도양 체제의 진정한 생물학적 의의는 '유라시아의 문명화된 질병집단들'을 융합시킨 것이 아니라, 장애물 없이 신종 전염병을 통과시킬 수 있는 통로를 형성했다는 데 있었다... 질병사의 드라마는 병원체의 진화와 인간의 연결성이 끊임없이 충돌하는데 있다. 로마제국에서는 그 두 가지 힘이 특별히 중대한 방식으로 함께 어우러졌다."
- [로마의 운명], <3. 아폴로의 복수>, 카일 하퍼, 2017.


'기후 변화' 이후에는 항상 '전염병(질병)'이 왔다. 이는 로마만의 일이 아니었지만, '팬데믹'의 관점에서 보면 아마도 로마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제국의 도로망으로 제국의 군대와 생산물을 퍼뜨리기 시작한 최초의 거대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세 차례 '페스트'는 팬데믹으로 불리는 대재앙이었고 한때 7,500만 명에 이르던 로마 인구의 절반을 죽였다. 사망률은 60~40%에 이르렀다고 하퍼는 고대의 기록과 현대의 데이터로 추정한다. 

기원후 165년, '5현제' 중 네번째 '안토니누스' 황제의 치세와 번영에도 불구하고 '기후최적기'가 지나자마자 '5현제'의 마지막 다섯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집권 초기 '안토니누스 페스트'가 발생했다.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하퍼는 이를 '천연두'로 추정한다. 하퍼가 로마를 "유럽에 결핵이 퍼져나가는 분수령"이자 "달팽이처럼 퍼져나가던 나병의 전파를 가속화([로마의 운명], <3. 아폴로의 복수>)"한 주범으로 지목했듯 '결핵'과 '나병', '말라리아'와 '탄저병' 등은 이미 이들 병원균들이 유입된 후 도시에 토착화된 로마가 전유럽에 퍼뜨린 질병이었는데, 역시 도시로 밀집정착하는 생활로 인해 발생했을 이 1차 '천연두' 팬데믹은 역사에 기록될 정도의 전방위적 파괴력으로 로마 인구를 10% 정도 감소시켰다. '안토니누스 페스트'는 인류에 의해 정복되지 않은 채 공공보건이 정착되기 전까지 다른 질병들과 함께 풍토병이 된다.

제국의 쇠망을 지켜보던 알렉산드리아 주교 키프리아누스는 '안토니아누스 페스트' 이후 로마제국의 모습에서 '세계의 노년기'를 본다. 냉랭해지고 건조해진 기후와 팬데믹으로 지쳐가는 제국의 실상을 본 것일 수도, 그리스 문명의 뒤를 이어 전염병을 '아폴로(태양의 신)'에 기대 극복하려던 다신교적 문화를 본 기독교인의 절망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주교의 기록으로 기원후 249년부터 10년 이상 지속된 2차 팬데믹은 '키프리아누스 페스트'로 남았다. 로마 중기 '기후최적기'에서 고대 후기 소빙하기로 변화하던 과도기에 등장한 이 2차 '페스트'를 하퍼는 역시 과학적 데이터를 토대로 '인플루엔자'로 추측한다. 아마도 파르티아(페르시아) 원정으로 인한 동방의 모기나 벼룩, 설치류를 접한 군대의 복귀로 유입된 '바이러스성 출혈열'일 수도 있을 이 '키프리아누스 페스트'의 결과는 '세계의 노년기'의 확인이었다. 1차 팬데믹 이후 로마는 제국의 활발한 연결망과 황제 및 원로원 등 '공화정'의 정통성으로 다시 이전처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국 전체를 강타한 2차 팬데믹을 겪은 '노년기' 로마의 회복탄력성은 떨어졌고 군대 신병 모집은 어려워졌기에 북방 '야만인'과의 타협이 불가피했다. 북방의 전선이 뚫리면서 변경의 용맹한 장군들은 스스로 황제가 되고자 했는데, '키프리아누스 페스트'는 정권의 '정통성'이 약한 '군인황제'의 시대를 열었다. 

어느덧 기독교는 슬그머니 지배이념이 되었는데 아마도 '세계의 노년기'를 본 로마인들이 더 나아가 '세계의 종말'을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회복탄력성'과 '정통성'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로마제국과 시민들의 자부심은 그냥 무너지지 않았다. 여전히 군대를 앞세운 호전적인 정복활동과 제국의 팽창은 멈추지 않았고 서로마의 도시 로마는 제국의 상징적 중심, 동로마의 콘스탄티노플은 실질적 중심으로서 건재해 보였다. 그러던 중 지구는 기원후 536년 '여름이 없는 해'가 올 정도로 냉랭하고 추운 기후를 점차로 드러냈고 이로 인해 아래로 내려오는 이민족들과 '곰쥐' 같은 설치류, 벼룩으로 인해 3차 팬데믹을 겪게 된다. 로마의 '기후최적기' 이후 슬슬 추워진 제국의 동북방 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 밀려온 훈족에 의해 밀려난 고트족이 로마의 변경을 밀고 들어왔고 알라리크 왕이 통일하여 결집시킨 강력해진 고트족 군대에 의해 5세기에 서로마는 멸망했다. 기독교인들이 전염병과 같은 '신의 채찍'이라 부른 훈족의 아틸라 왕이 헝가리에서 진군을 멈추고 돌아간 이유 또한 로마제국의 중심부가 '말라리아'라는 "세균갑옷으로 무장([로마의 운명], <5. 운명의 수레바퀴>)"했기 때문이었다. "이탈리아를 구하고도 찬양받지 못한 구원자" 말라리아를 옮기는 "아노펠리스 모기는 춥고 건조한 곳까지는 따라갈 수 없었다(같은책, 같은곳)". '말라리아'는 로마인에게 이미 풍토병이었는데, 6세기에 새롭게 창궐하여 '유스티니아누스 페스트'로 불리게되는 전염병은 말 그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 '페스트(흑사병)'의 시작이었다. 주인공은 서혜부 림프종을 일컫는 '부보닉 페스트'와 '폐 페스트'의 원인이 되는 '예르시니아 페스티스' 박테리아였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걸렸다가 살아남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이 진짜 '페스트'는 기원후 541년에 이집트 해안에 상륙한 이후 약 2세기 동안 15년 마다 또는 나중에는 65년에 한 번씩 창궐하면서 로마 인구를 절반으로 줄였다. 이 '페스트'는 14세기 이후 500년 동안 유럽인구를 반토막 냈다는 바로 그 '흑사병'이었다. 로마 공화정은 역시 재기를 꿈꾸었지만, 서로마는 이미 5세기에 이민족에 의해 멸망되었고 이를 되찾으려는 동로마(비잔틴) 제국은 어느새 예전의 제국의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인구는 정체되었고 "고대 후기의 소빙하기로 알려진 물리적 기후 악화와 팬데믹으로 인해 고대 질서의 마지막 기반이 깨끗이 사라졌다([로마의 운명], <6. 분노의 포도착즙기>)".


3. '자연의 복수'와 사피엔스의 운명


"'종말이라는 열쇠'...
... 안토니누스 페스트는 고대적 가능성에 대한 상상력의 방향을 바꾸었고, 아폴로 숭배가 보편적이 되도록 했다. 키프리아누스 페스트는 고대 시민의 다신교라는 기반을 무너뜨렸으며, 기독교가 슬그머니 세상에 나오도록 허용했다. 6세기와 7세기에는 페스트와 기후 변동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기독교, 유대교, 그리고 고대 후기의 마지막 자손인 이슬람교 안에서 '종말론(메시아주의)'의 시대를 열었다. 환경의 격변, 정치적 해체, 종교적 소요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로마가 몰락해가는 마지막 순서를 결정했다...
그것이 '세상의 종말'이었다."
- [로마의 운명], <7. 심판의 날>, 카일 하퍼, 2017.


카일 하퍼는 우리가 지금껏 역사를 볼 때 "자연을 정적인 배경으로 여겨왔다([로마의 운명], <에필로그>)."고 하면서 그 사례로 토머스 맬서스의 [인구론](1798)을 들며 책의 '에필로그'를 연다. 역사는 인류의 정치경제 및 사회체제의 프리즘에 국한해서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정치경제체제를 인구통계학적 고찰로까지 상승시킨 업적에도 불구하고, 18~19세기의 맬서스는 이후 인류가 해법으로 내놓은 '산업혁명'을 예측할 수 없었고 한편으로 현대와 같은 '기후변동' 또한 고려할 수 없었다. 
급격한 기후 변화와 이에 밀려 남쪽으로 내려오던 이민족들 및 듣도보도 못한 전염병으로 몰락한 고대 로마인들 또한 자연을 항상 그대로인 '정적인 배경'으로 전제했을 수도 있다. 로마인들은 로마가 망한다고 보지 않았다. 다만 변화한다고 보았다. 그들에게 로마의 멸망은 '세상의 종말'이었다. 이는 아마도 근현대 다수 경제학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본주의 정치경제체제의 몰락은 '세계의 종말'이라며 불안을 조성한다. '과학'이 아닌 '종교'가 된 주류경제학이다. 불평등 체제의 종식에서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평등체제로의 이행이라는 과학적인 '희망'을 보는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이 더욱 필요한 지점이다. 여기에 현재는 급격하게 진행 중인 '기후 위기'에 대한 대안이 항상 결합되어야 한다. 
카일 하퍼는 [로마의 운명]을 논하면서 최근의 방대하고 정교한 정보와 데이터를 토대로 하여 '역사'를 또 하나의 '과학'으로 만들고 있다. 고대의 로마인들이 '기후 변화'와 '전염병'을 보며 '세상의 종말'을 보았다면, 현대의 우리는 임박한 '기후 위기'와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이 끊이지 않을 '팬데믹'을 앞두고 과학적 예측과 그럼에도 불구한 세계의 '종말'이 아닌  '희망'을 보아야 하겠다. 
그것이 기존의 로마 쇠망의 전통적인 원인에 덧붙여 역사학자 카일 하퍼가 다시금 '로마'의 '운명'을 고찰하는 이유 아니겠는가.

자연은 로마제국에 '복수'를 했고, 로마시민들의 욕망에 맞서 '승리'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자연에 맞서 '승리'하기 위해 다시금 정복하고 '복수'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기후'와 '질병'이라는 이 대자연에 얹혀사는 사피엔스의 '운명'이다.

***

1. [로마의 운명(The Fate of Rome)](2017), Kyle Harper, 부희령 옮김, <더봄>, 2021.
2. [로마제국 쇠망사](1776~1788), 에드워드 기번 지음, 데로 손더스 편집, 황건 옮김, <까치>, 2010.
3. [공화국의 몰락](2003), 톰 홀랜드, 김병화 옮김, <웅진닷컴>, 2004.
4. [청소년을 위한 로마제국 쇠망사], 에드워드 기번 원저, 배은숙 지음, <두리미디어>,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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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의 민중사 - 민중의 전쟁 VS 제국의 전쟁
도니 글룩스타인 지음, 김덕련 옮김 / 오월의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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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진행 중인 '두 개의 전쟁' : '평행 전쟁'
- [2차 세계대전의 민중사](2012), 도니 글룩스타인, 김덕련 옮김, <오월의봄>, 2021.


"연합국 정부들의 동기와 야만, 독재 정권에 맞서 싸운 사람들 사이의 간극은 메울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따라서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세계를 산산조각 낸 사건들은 추축국과 맞서 싸운 단일한 전투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뚜렷이 구별되는 '두 개의 전쟁'에 해당한다... 내각과 소작농들, 육군사령부와 막사, 중역들과 노동자들은 각각 다른 전쟁을 벌였다 - 한쪽은 '제국주의 전쟁'을, 다른 한쪽은 '민중의 전쟁'을... 2차 세계대전은... 누가 지배해야 하는가를 놓고 연합국 정부들과 추축국 정부들 간에 벌어진 다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파시즘 대 반파시즘'이라는 보통 사람들의 믿음은 추축국/연합국으로 나뉜 양측 지배자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었다."
- [2차 세계대전의 민중사], <들어가는 말>, 도니 글룩스타인, 2012.


2차 세계대전은 전쟁영화 소재의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현대사 가장 최근의 전세계적 '총력전'이었다. 전쟁영화의 2/3 정도가 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데 2차 세계대전이 절반, 1차 세계대전이 12%,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이 각 2%씩 된다고 한다(도니 글룩스타인, 같은책). 
1789년 프랑스대혁명 이후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국민(민족)국가'는 예전 중세봉건적 체제와 달리 국가 중앙군의 강화를 이루어냈다. 초기 자본주의 시초축적과 함께 봉건제를 탈피하려던 '절대왕정' 시기의 중앙집중적 국가체계를 계승한 근대 부르주아 국가체계는 자본주의 과잉생산 발달과 함께 전세계로 시장을 넓히면서 '제국주의'로 진화한다. 국가의 중앙군대로서 '국민군'은 전 민중의 총동원을 의미한다. 
자본은 필연적으로 대자본으로 독점화되고 이와 결탁한 국가권력은 해외 팽창을 통해 전세계 식민지를 분할하고 또 다시 재분할한다(레닌, [제국주의론]). 

1차 세계대전은 현대 '제국'으로 탈바꿈하려는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합스부르크)  제국의 구지배에 대항한 프랑스-영국-러시아 제국의 기득권 투쟁이었다. 이 전형적 '제국주의 전쟁'은 각국에서 점차 발전하던 노동계급의 내전으로 인해 종전되는데, '총력전'으로 피폐해진 각국의 다수 노동자-농민들이 대중파업과 같은 계급투쟁을 통해 국가독점자본주의 권력으로 하여금 전쟁을 더 수행할 수 없도록 강제했다. '제국주의 전쟁'과 평행한 '민중의 전쟁'은 1917년 러시아 소비에트 혁명과 1918년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1920년대 오스트리아 '붉은 빈' 건설 등으로 나타났다. 

1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의 막대한 배상청구로 파산한 독일과 떡고물을 별로 챙기지 못한 이탈리아 및 일본의 제국주의 국가권력은 '파시즘(이탈리아)', '나치즘(독일)', '천왕군국주의(일본)' 등의 국가주의 사상으로 나타나 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 전선을 형성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승전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은 이 전쟁을 '정의'가 승리한 '반파시즘' 전쟁으로 선전했고 전쟁 영화의 대부분 소재가 된 이유도 '정의의 전쟁'이라는 믿음에 근거한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이론가 토니 클리프의 아들이자 트로츠키주의자인 도니 글룩스타인은 [2차 세계대전의 민중사](2012)에서 2차 세계대전을 '평행 전쟁(pararell war)'으로 규정한다. 일반의 믿음과는 달리 2차 세계대전은 '정의의 반파시즘 전쟁'이 아니라 '제국주의 전쟁'과 '민중의 전쟁'이 여전히 병행했던 '평행 전쟁'이었는데, 1차 세계대전은 다수 노동계급의 계급투쟁 내전으로 종식되었으나 더욱 진화된 지배계급의 2차 '제국주의 전쟁'은 새로운 형태의 국가독점자본주의 정치체제인 '파시즘(나치즘)'의 등장으로 인해 이에 대항한 지배계급의 전쟁과 피지배계급의 전쟁이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2차 세계대전을 조망하는데, 유고슬라비아에서 친왕정 기득권인 미하일로비치 게릴라부대는 침략자인 독일 나치즘과의 전쟁보다 티토가 이끄는 국내 공산주의 게릴라 토벌에 더 힘썼고 연합국의 지원만 기다리는 '대기주의'로 일관하며 기득권 체제 유지를 위해 나치와의 타협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는 그리스 지배계급도 마찬가지였다. 히틀러가 배신하기 전까지 스탈린 또한 '반파시즘' 전쟁에 나서느니 불가침협정을 맺었고 영국이나 미국 등 연합국 또한 '선전포고'는 말 뿐, 추축국이 자기들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한 후에야 마지못해 방어전에 나섰다. 영국은 히틀러를 믿어서 뮌헨 협정에 서명했다기 보다 공산주의 세계혁명을 막기 위해 차라리 이 전쟁광과 손잡으려 했다. '제국주의 전쟁'의 주체인 연합국 지배계급의 목적은 '반파시즘'이 아니라 '파시즘'과의 타협이었다. 이들 제국주의 연합국의 본질은 2차 세계대전 직전 파시스트 프랑코의 승리로 끝난 스페인 내전에서 이미 드러났다. 무솔리니든 히틀러든 프랑스나 영국 정부 모두 스페인 노동계급을 탄압하는 프랑코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는데 이들 제국주의자들의 공동전선은 다수 노동계급의 혁명을 막는 것이었다. 공산주의를 공동의 적으로 설정하였으나 현실 '공산주의' 소련 또한 스페인 내전에서 노동계급에 도움을 주지 않았다. 자유주의든 '파시즘'이든 스탈린주의든 그들 모든 지배계급이 두려워한 것은 바로 다수 노동계급의 체제전복, 즉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도니 글룩스타인은 2차 세계대전의 전주곡으로서 스페인 내전으로부터 시작하여 유고, 그리스 등 중간 교전지대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국, 독일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의 추축국은 물론, 인도와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의 아시아에서 일본제국주의 침략전 등의 전쟁 상황을 서술하면서 이 '두 개의 평행 전쟁'의 양상을 추적한다.
'민중의 전쟁'은 현 체제 유지를 위한 '제국주의 전쟁'을 너머 새로운 세상을 지향했고, 각국 레지스탕스 게릴라군대는 양성 평등의 진원지이기도 했다. 치마를 입고 총을 든 여성전사들의 사진이 인상깊다. 소설 [태백산맥]의 '외서댁'은 '민중의 전쟁'의 전세계적 흐름이었다.

한편, 이 모든 2차 세계대전의 전장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수행한 연합국들의 목표는 식민지들의 '해방'이 아니라 본인들의 하수인 정권 수립이었다. 지배계급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이를 위해서 좀전의 적이었던 '파시스트'와의 협력도 불사했다. 우리 한반도는 이 책에서 별 언급이 없는데, 아마도 일제의 직접지배를 이미 받고 있었으므로 일제강점기 국내에서 게릴라전과 같은 '민중의 전쟁' 양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겠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의 직접지배지인 우리의 항일 게릴라전쟁은 주로 해외에서 전개되었다. 그럼에도 종전 후 한반도에서 나타난 계급지배의 양상은 비슷했다. 국내 계급투쟁이나 해외 항일 게릴라전쟁 등의 '민중의 전쟁'을 이어갔던 세력은 미국과 소련에 의해 축출되었고 남한에서는 미군정과 이승만 단독정권의 지배를 위해 친일 부역자들이 다시 부활했다. 유고의 티토나 프랑스 레지스탕스, 독일과 이탈리아의 노동계급과 정당은 파시스트 부역자들을 대대적으로 단죄하였으나 강대국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된 그리스는 격렬한 레지스탕스 투쟁에도 불구하고 전후 괴뢰왕정이 복고되었으며, 우리 한반도는 해외에서 '민중의 전쟁'을 수행한 독립운동가들 조차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친일-친미 부역정권이 오래도록 막았다. 일제강점기 '민중의 전쟁'이 부각될 수록 독재정권의 '정당성'은 부정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리하여 김원봉 선생은 아직도 구천을 떠돌고 홍범도 장군은 2021년이 되어서야 고향도 아닌 남한땅에 그것도 부역자들도 묻힌 곳에 함께 모셔졌다.


"'평행 전쟁(pararell war)'은 다른 면에서도 달랐다. 연합국의 지배계급은 그들이 특권을 누리는 현재 상태를 내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싸웠고, 그에 반해 대중의 무장투쟁은 진정한, 모든 이를 아우르는 인간해방과 더 공정하고 민주적인 미래를 위해 분투했다... 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전쟁'과 나란히 '민중의 전쟁'을 창출한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였다 - '제국주의 전쟁'을 멈추기 위한 '민중의 봉기'였다. 2차 세계대전은 다른 많은 면에서 1차 세계대전과 상당히 달랐다."
- [2차 세계대전의 민중사], <나가는 말>, 도니 글룩스타인, 2012.


친일, 친나치, 파시스트 부역자들은 결국 연합국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여기저기에서 부활했는데, 자본의 이익을 확대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하며 계급지배를 공고히 하는 목적을 애초부터 함께 공유했기 때문이다. 친일파 이완용은 자식들에게 앞으로는 친미파가 되라는 '선견지명'이 담긴 유언을 남겼고, 그 자식들의 이익은 사유재산을 신성시하는 대한민국이 아직도 법으로 보호해주고 있다. 독점자본이 된 대자본들은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파시즘에 부역하지 않은 사례가 없다. 그들의 목적은 '공동체'가 아니라 '사적 이익'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적 이익'만을 신성시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변하지 않는 한 이러한 경향은 반복된다.

"2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전쟁'이었나, '민중의 전쟁'이었나?"라는 질문에 도니 글룩스타인은 이 책을 통해 답한다. "둘 다였다."라고. 그리고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스테판 에셀의 유언과도 같은 [분노하라!](2011)를 인용하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21세기인 지금도, 세계 자본주의 체제 지배계급이 일으키는 '제국주의 전쟁'과 이에 맞서는 '민중의 전쟁'은 진행 중이다.

***

1. [2차 세계대전의 민중사(A People's History of the Second World War)](2012), Donny Gluckstein, 김덕련 옮김, <오월의봄>, 2021.
2. [제2차 세계대전](2014), 게르하르트 와인버그, 박수민 옮김, <교유서가>, 2018.
: 2차 세계대전의 진행사는 대부분 방대하고 분량도 많다. 독일 출신 유대인으로 미국의 군사역사학자인 게르하르트 와인버그의 이 책은 간략한 서술로 2차 세계대전의 전체를 조망하고 있어 추천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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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최전선
박찬희 지음 / 빨간소금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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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확장
- [박물관의 최전선], 박찬희, <빨간소금>, 2021.


"박물관 전시실, 그곳은 '박물관의 최전선'이다... 전시실은 어떻게 구성될까? 전시실의 주제 구성은 논문의 구성과 비슷하다. 꼭 논문이 아니더라도 책의 차례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편하다. 전체 주제, 그 아래 몇 개의 중간 주제, 그 아래 몇 개의 소주제가 피라미드처럼 이어진다. 논문 주제를 한 가지로 정하듯 한 전시실도 대부분 하나의 주제로 구성된다. 이 주제는 보통 그 전시실의 이름이 되고, 전시실의 입구에 표시된다. 전시실 이름을 알면 그곳이 어떤 곳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어떤 전시실인지 알고 들어가는 것과 그냥 들어가는 것은 차이가 크다. 이름표를 외롭게 두지 말자."
- [박물관의 최전선], '2-9. 전시실과 친해지는 법', 박찬희, <빨간소금>, 2021.


아주 어렸을 적 나의 꿈은 '고고학자'였다. 
어린 나의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준 공룡을 발굴하고 싶었고 조금 더 큰 후에는 그리스 미케네 문명을 발굴한 독일인 하인리히 슐리만이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메소포타미아의 살인] 등에 나오는 고고학자들에 매료되기도 했다. 더 이상 '고고학자'가 꿈이 될 수 없었던 성인이 되어서는 미술 작품의 역사를 밝히고 그 의미를 도출하는 '미술사'나 '예술사'에 관한 책을 찾아 읽기도 했다.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나 줄리오 레오니의 [단테의 모자이크 살인] 같은 책은 베스트셀러를 떠나 꼭 읽어야만 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새로운 유물이 발굴되었다는 기사를 보면 가슴이 뛴다.

어렸을 적 꿈이었다 보니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나중에서야 박물관 큐레이터나 학예사 연구원 등의 직업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이미 내 꿈은 '고고학자'가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온갖 유물에 관심이 있고 그 유물들이 한데 모인 박물관을 사랑한다. 게으른 성정에 자주 가지는 못해도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자주 구경했고 각 지역에 가면 무조건 그 지역의 박물관을 들른다. 
눈으로 '책'을 읽는다면, 발로 '박물관'을 읽어야 그 지역을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술사를 전공하고 호림박물관 큐레이터로 근무한 박찬희 선생은 [박물관의 최전선](2021)을 통해 박물관의 유물과 일반 관람객의 일상적 접속과 소통을 시도한다. 
박물관 전시기획자의 시각을 너머 관람객의 관점에서 박물관의 오랜 유물과 현재의 관람객을 잇는 역할을 하는 저자에게 '박물관의 최전선'은 유물과 사람이 만나는 접점, 바로 '전시실'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마따나 미리 공부하고 유적지나 사찰을 답사하거나, 박물관을 한 권의 책을 보듯 목차에 따라 읽어 나가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를 때가 있다. 함께 간 처자식이나 일행은 빨리 보고 지나가자고 재촉하기 일쑤인데, 한 번은 후딱 보고 지나가야 할 후쿠오카의 박물관에서 인솔자인 내가 박물관 관람에 빠져 문닫기 전에 겨우 빠져나온 적도 있었다. 일행들이 인솔자인 나를 찾아다니고 난리였다. 
우리 국보와 보물의 대부분을 간직한 사찰도 내게는 박물관이다. 해당 사찰의 역사와 배경을 각종 답사기 책으로 먼저 읽고, 직접 찾아가서 나름의 '목차'에 따라 주제별로 '읽어 간다'. 각 유물의 설명판은 보통 초등학교 수준이면 이해할 정도로 쉽게 쓴다고 하니 웬만하면 모든 설명판을 다 읽는다. 일본의 박물관에서 오래 걸린 이유 중 하나도 일어를 모르니 영어 설명판을 다 읽으려다 그랬으리라. 
마치 책으로 공부라도 하듯이 눈으로 읽고 머리로 유추하고 발로 다니려는 나와 함께 사찰이나 박물관을 간 일행은 빨리 가자고 독촉할 수 밖에 없을 게다.
그렇게 '박물관'은 내게 살아 있는 '책'이며, '박물관의 최전선'으로서의 전시실은 오래된 책냄새와 함께 육감으로 한장 한장 넘겨지는 책장이다.



"이전에는 유물 자체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유물이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때로는 진열장과 박물관을 벗어날 때 속 깊은 이야기가 들렸다. 유물을 사람들과 연결시켜 살펴보자 유물이 생생하게 살아났다... 거듭되는 발걸음으로 박물관을 명사에서 동사로 만들기를 바란다."
- [박물관의 최전선], '책을 펴내며 - 박물관의 최전선에서', 박찬희, <빨간소금>, 2021.


저자 박찬희 선생은 박물관의 전시는 유물이나 전시기획으로부터 일반 관람객과 접속으로 '확장'되어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말한다. 오래된 유물의 보호를 위한 '조명발'과 안락한 의자 등의 배경은 그 유물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편안함을 주는데 이 모든 것이 옛날의  유물과 지금의 사람이 만나는 방식이다. 누군가는 '공부'를 하고 누군가는 편하게 심신을 쉬면서 다스리는 공간으로서의 박물관. '아는 만큼' 보인다지만, '모른다' 하여 어떤가. 책이나 논문을 보듯 박물관을 섭렵할 수도 있지만, 오래전 조상들의 삶이 담긴 유물과 같은 공간에서 편히 쉬어가는 것도 역사와 함께 숨쉬는 방법이다. 
전시기획자를 너머 관람객까지로 '박물관의 확장'을 바라는 저자는 [박물관의 최전선]을 통해 신라금관, 김홍도의 풍속도와 정선의 풍경화, 불화와 불상, 반가사유상 및 청자와 백자 등의 각종 유물에 담긴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관람객의 힘으로 함께 오래오래 살려내자고 말하는 듯 하다.


자녀들 어렸을 적에는 유물의 이름이나 설명판을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바람에 박물관에 가자고 하면 우리 아이들은 손사래부터 쳐댔다. 아빠의 탓이다. 함께 쉽게 가 볼 수 없는 '대영박물관'에서 펴낸 [100대 유물로 보는 세계사]를 자녀들에게 사주었지만 아빠인 나 혼자 읽던 시절에는 몰랐다. 박물관이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공부'를 눈과 머리로 접속하는 '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듯, 그냥 스쳐지나며 편히 쉬어가는 '박물관'도 중요한 경험의 공간이자 삶의 '공부'일 게다. 

사람마다 다양한 것처럼 박물관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각자 다르다는 것을 박찬희 선생의 [박물관의 최전선]을 통해 다시금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할 때 전부는 알 수 없더라도 대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듯 그렇게 '책'을 읽는 내게는 여전히 '박물관' 또한 오래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책'과 같은 장소다. 물론 게으른 나는 발품을 파느니 눈품을 파는 '책'을 더 선호하지만.

박물관의 '확장'을 위해 조만간 처자식과 함께 박물관을 다시 가봐야겠다. 
나부터 이젠 '책'이 아닌 '쉼'의 공간으로서 '확장'된 박물관과 새롭게 접속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

1. [박물관의 최전선], 박찬희, <빨간소금>, 2021.
2. [100대 유물로 보는 세계사], 닐 맥그리거(대영박물관장), 김미경 옮김, <다산초당>, 2014.

#박물관의최전선 #박찬희 #빨간소금 #박물관 #책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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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읽는 세상의 모든 것 - 잠들어 있는 당신의 수 감각을 깨워라
앤드류 엘리엇 지음, 허성심 옮김 / 미래의창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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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것은 큰 수인가(Is that a big number)?"
- [숫자로 읽는 세상의 모든 것], 앤드류 엘리엇, 허성심 옮김, <미래의창>, 2021.


"이 책을 쓰는 사이에 관찰 가능한 우주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은하의 수가 1,000억 개에서 2조 개로 20배나 증가했다. 이는 단순히 의견이 바뀐 것이 아니라 전례 없이 정교해진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20년 동안 관측한 데이터를 연구해서 얻은 결과다. 현재 허블 우주망원경의 뒤를 이은 제임스 웨브 우주망원경이 건설 중에 있고 2021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새로운 망원경을 통한 관측으로 허블 우주망원경이 제시한 '큰 수'를 갱신할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숫자로 읽는 세상의 모든 것], <3. 과학의 수 - 하늘 위까지>, 앤드류 엘리엇, 2018.


1980년대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를 경이롭게 저술했을 때 우주에는 약 1조 3천억 ~ 1조 5천억 개 정도의 별들이 있었다고 했던가. 그로부터 10년도 지나지 않아 인류는 허블 망원경을 지구 밖 우주로 쏘아 지금은 별이 아닌 은하가 2조 개 정도 된다고 본다. 2021년 10월에 차세대 우주망원경인 제임스 웹 망원경이 발사되고 상용화되면 '창백한 푸른 점'에 사는 인간의 시야가 더 넓어지고 '우주'적 범위에서 가늠될 숫자는 무한대로 가까이 더욱 더 커질 것이다. 내 생각이지만 아마도 1980년대의 '1조 몇천억 개'는 이미 '무한대'의 다른 표현이었을 것이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일정하다고 볼 때 1년에 약 3,150만 초를 사는 인간은 1초에 하나 씩 수를 세며 수천 년을 살아도 칼 세이건이 세었던 1조가 넘는 별들을 셀 수 없다. 그렇기에 인류는 대를 이어 유산을 물려주게 되는데 이것이 '역사'다.

태양계는 태양의 중력이 미치는 범위를 보는데 지구를 포함한 8개 행성계는 전체 태양계의 1/3 정도에 불과하다. 태양과 같은 강력한 인력으로 여러 행성들을 거느리는 또 다른 항성이 또 하나의 '항성계'를 구성하고 이들이 모인 것이 '은하'인데, 이 2조 개의 '은하'들이 모인 '은하계'가 현재 우리 인류가 정의한 '우주'의 질서, 즉 '코스모스(Cosmos)'다. 
산술적으로는 인간이 아무리 역사를 거쳐도 일일이 셀 수 없는 '큰 수(big number)'다. 태양과 지구의 거리는 1억5천만 km고 이 단위를 '1'로 정한 단위가 'AU(Astronomical Unit)'라고 하는데, 너무 단위가 커서 '천문학적(astronomical)'으로 환산한 것이다. 태양에서 명왕성까지 거리가 약 '40AU'라니 약 '60억km'다. 이것의 3배인 '180억km'가 대략의 태양계의 반지름인데 1시간에 약 11억km(10.8억km/h)를 간다는 '광속'으로 따지면 태양계의 반지름은 '2만 광년', 즉 빛이 2만년을 가야 닿는 거리란다. 전체 태양계의 지름이 '4만 광년'이라는 말이다. 1광년이 예의 'AU'로 환산하면 6.3만AU라고 하니 어마무시하다. 
우리 은하의 폭이 12만 광년이고 우리 은하 옆에 전체 폭 22만 광년의 '안드로메다' 은하와의 거리도 256만 광년의 거리에다가 군소 은하를 포함한 국부 '은하계'로서 '가시적' 주변 은하군의 폭은 '1천만 광년(6천억AU=9천5백경km=9.5X10의19승km)' 정도가 된다. 참고로 이런 '은하군'이 모인 '가시적' 전체 우주의 폭은 8,800해km(8.8X10의23승km)란다.


영국의 보험수리학자 앤드류 엘리엇(Andrew Elliott)은 2018년 세상 만물의 수치를 들어 세계를 이해하는 [Is That a Big Number?]라는 책을 통해 '숫자를 통한 세계관'을 이야기한다. 수학 이야기가 아니다. 숫자를 이해하면 세상 만물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자연과학의 시조인 수학처럼 논리가 정연하고 수치가 정확히 떨어져야 하는 게 아니다. 어떤 기준에 따라 어림셈하고 비교하여 해당 사물의 본모습을 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큰 수인가(Is that a big number)?"라는.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는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이르는 시베리아 횡단철도다. 길이가 9,290km이며, 철로가 직선으로 뻗어 있다면 지구 둘레(4만km)의 4분의 1보다 조금 짧다... 오리엔트 특급은 원래 파리에서 시작해  당시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에서 끝나는 대략 2,800km를 이동하는 여행이었다... 중국 시안에서 이탈리아 베니스까지 이어진 실크로드의 직선거리가 7,800km 정도이므로 실제 육로는 1만km가 넘고 왕복하는데 2년이 걸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 [숫자로 읽는 세상의 모든 것], <2. 측정하기 - 대략 그 정도의 크기>, 앤드류 엘리엇, 2018.


유라시아 전역을 지배했던 칭기스 칸의 장수 수보타이(수베데이)는 증원부대나 네비게이터 없이 8천km를 주파했고 그 이전 알렉산더 대왕은 약 5천km(4,800km)를 달렸단다. 지구의 적도 지름이 4만km니 수보타이는 지구의 1/5을 다녔고 알렉산더는 1/8을 지났다. 지구 전체 표면적인 5억 평방km의 1/3인 1억5천 평방km가 육지이니 그들의 지배 영역은 직선거리를 너머 더욱 넓었을지도 모른다. 인류가 항해술을 발전시켜 대륙간 교역을 활발하게 하게 된 것이 15~16세기니 그 이전의 육로만 생각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고 하늘과 바닷길로 더 멀리 다니는 지금과는 비교할 바 없이 고된 역정이었을 게다.


앤드류 엘리엇은 세상을 이루는 이런 '큰 수(big number)'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다섯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첫째, '이정표 수' : 적절히 골라 맥락을 설정하는데 필요한 잣대를 삼는다.
둘째, '시각화' : 주어진 수가 합당한지 볼 수 있는 시각을 형성한다.
셋째, '분할 점령' : 복잡한 상황을 분할하고 표준화하여 전체로 종합한다.
넷째, '비율과 비' : '인간적 척도(인치/피트/척/자)'로 큰 수를 재거나 비율화한다.
다섯째, '로그(log) 척도' : 10진법의 지수와 배수를 이용하여 크기 차이가 매우 큰 기하급수적 수치 변화를 표현하고 이해한다.
적도길이인 지구의 지름이 4만km인데 호주대륙의 동서횡단길이가 4천km이므로 호주는 지구의 1/10이다. 양키 스타디움 관중 5만석은 면적당 5백명씩 100구역으로 계산한다. 이런 식으로부터 시작하여 위에서 본 우주의 크기와 은하의 갯수 등을 헤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일이 갯수를 헤아리던 조상들이 수리적 '세계관'을 키워 후대에게 물려준 유산이자 위대한 역사다.

마지막 기법으로 '로그 척도'에 이르면 "결국 수학 이야기 아니냐?" 하겠지만 고등학교 수학 과목에서 배운 지금은 그게 뭔지도 모르겠는 '로그 함수'가 아니다. 로마인들이 10진법에서 1천 단위로 묶어 '큰 수'에 접근한 것처럼(지금 1천 단위 별로 '컴머(,)'가 찍힌 기원), 억-조-경-해, 그 이상을 넘어가는 숫자들에 접근하기 위한 10의 배수를 표현하는 것이 '로그 척도'다. 이미 과학 전문 분야에서는 '유효 숫자' X '10의 배수'로 표현하는 그 '렌즈'로 우주적 '큰 수'를 이해하자는 것이다. 관측 가능한 우주의 지름인 '8,800해km'는 '10의 24승km'의 범위 내의 크기로 표현한다. 이 '로그 렌즈'를 통해야만 현재 76억 인구수의 추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5천년 전 숫자가 처음 발명된 기원전 3천년 경 세계 인구수는 약 4,500만 명이었다가 3천년이 지나 서력 기원이 시작했을 즈음에는 약 1억9천만 명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2017년 76억 명을 넘는 추이를 시각화된 그래프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로축의 숫자가 일정해서는 안되고 10의 배수인 '천'이나 '백만' 또는 '십억' 단위로 표시되어야 한다. 이러한 척도가 바로 '로그 척도'다.
빅뱅 이후 140억년의 우주 역사와 이 중 46억년의 지구 나이, 그 중에서 600만년의 인류 역사를 가늠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척도다. 우주의 나이가 한 살(1년)이라면 지구의 나이는 한 계절 정도이고 인류의 전 역사는 1초에도 못 미친다. 


"요컨대, '안다'는 것은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대상을 확인하는 활동이다. 곧 '안다'는 것은 '직관' 바로 그것이다."
- [직관 수학], <머리말 - 본래 수학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것>, 하타무라 요타로, 2004.


우리 어머니의 꿈은 아들을 공대로 진학시켜 평생 먹고살 걱정 없는 '기술'을 갖게 하는 거였는데 아쉽게도 어린 시절 나는 '수학이 인생에 왜 필요하지?'라는 고민이 컸다. 수학을 못했다는 말이다. 성인이 되어서야 수학은 과학의 어머니이고 철학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걸 깨닫고 뒤늦게나마 또 다시 아쉬워했으나 그렇다고 수학이 쉬워졌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집 중학생 아들도 "수학이 왜 필요하냐?"는 질문을 되풀이하고 있는 걸 보면 역시 내 아들이다 싶다.


2차대전 때 전투기 엔진에 총탄을 맞은 비율이 가장 낮아 엔진이 튼튼한 부위라는 의견에 반대해 오히려 엔진이 약하니 더욱 보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낸 오스트리아 출신 미국의 수학자 아브라함 발드 이야기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전투기 엔진이 튼튼하다고 본 이유는 그들이 엔진을 피격당해 폭파되어 돌아오지 못한 전투기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을 간파한 수학자의 일화부터 시작하여  '틀리지 않는 수학의 힘'을 역설한 미국의 수학 천재 조던 엘렌버그의 [틀리지 않는 법](2014)은 재미도 없고 대부분 이해하기 어려웠다. 수학을 싫어했던 내게 가장 인상적인 '수학책'은 일본의 공학교수 하타무라 요타로의 [직관 수학](2004)이었다. 수학을 정확하게 공부해야 하는 입시생이나 전문 수학자 또는 공학자들은 엄격한 논리와 계산이 즉 수학이겠지만, 나 같은 일반인에게 수학이란 '피타고라스 정리'와 같은 논리적 추론을 바탕으로 한 논리학의 한 분야일 수도 있고 이 대강의 논리를 대략이나마 이해하는 '직관'의 영역일 수도 있다. 하타무라 요타로는 [직관 수학]에서 삼각함수와 미적분 등의 개념을 소개하고는 있지만, 결론은 두 가지다. 하나는 직관적으로 뭉뚱그려 먼저 계산하되 중요한 몇 가지 기준은 암기하여 바로 적용한다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아무런 도구가 없어도 머리로 각 조건들을 스스로 계산해 보라는 것이다. 구구단을 비롯한 각 배수와 로그지수 등 몇 가지를 암기한 후 큰 수에서 뭉뚱그려 계산한 후 다음에 세부적으로 검산하는 것과, 우리 주변의 경험들을 총동원하여 머릿속으로 산출해 보려는 습관이 중요하다는 말인데, 습관이 안 된 나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기는 하나 '수학'에 관한 '직관'을 깨닫게 된 인상적인 책이었다.


앤드류 엘리엇의 [숫자로 읽는 세상의 모든 것(Is That a Big Number?)]은 '수학'에 관한 책은 아니다. 우리 주변의 '큰 수'에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정확한 수학적 논증과 정밀한 계산이 필요없는 나 같은 '문과적' 인간이 '숫자'로 이루어진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 책은 '숫자'의 망망대해에서 헤엄칠 수 있는, 적어도 가라앉지 않고 뜰 수 있는 '직관'을 선사하고 있다.


***

1. [숫자로 읽는 세상의 모든 것(Is That a Big Number?)](2018), 앤드류 엘리엇, 허성심 옮김, <미래의창>, 2021.
2. [직관 수학](2004), 하타무라 요타로, 조윤동 옮김, <서울문화사>, 2005.
3. [틀리지 않는 법 - 수학적 사고의 힘](2014), 조던 엘렌버그, 김명남 옮김, <열린책들>,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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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서, 조선을 말하다 - 혼란과 저항의 조선사
최형국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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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서(兵書)'로 읽는 조선의 역사
- [병서, 조선을 말하다], 최형국, <인물과사상사>, 2018.


"정조는 [무예도보통지]에 군사 업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입장까지 담아놓았다. [무예도보통지]는 사도세자의 [무예신보] 편찬 의도와 맥을 같이하며, 이 병서로 기존의 당파와 무관한 새로운 무반을 육성하고 장용영을 중심으로 무예 체계를 표준화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후에 이루어진 단병 무예서 편찬은 [무예제보], [무예제보번역속집], [무예신보], [무예도보통지]로 이어지며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 [병서, 조선을 말하다], <3-4. 동양 삼국 무예의 집대성 [무예도보통지]>, 최형국, 2018.


성리학 '이념국가' 조선은 군주부터 신하는 물론 가능하다면 일반 민중들까지도 '유학'으로 신념화되기를 바랬다. 권문세족과 불교로 인해 부패한 고려 왕조를 뒤집어 엎은 급진 성리학자들은 "토지는 농민에게, 권력은 성리학자에게!"라는 민본주의적 '계민수전(計民收田)'의 슬로건으로 새로운 국가 조선을 건설하고 절대왕권을 견제하기 위한 성리학자들의 관료지배체제를 공고화시키고자 하였다. 이러한 사상계는 조선을 '문인' 관료의 사회로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 개국의 '혁명가' 삼봉 정도전은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에서 새 국가 체계의 틀을 잡고 군사적으로 사병을 혁파하여 국가 상비군을 강화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정도전은 사찬 형식의 병서 [진법(陣法)]을 저술한다. 혁명 초기 '혁명국가' 조선의 권력을 호위하기 위한 '문무겸전'의 시작이다. 20세기 초 '러시아의 정도전' 레온 트로츠키가 소비에트 연방의 외무부 인민위원이자 붉은 군대 사령관으로 내전을 지휘한 것과 같다. 물론 정도전의 '문무겸전' 프로그램은 그를 죽이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던 태종 이방원이 그대로 물려받는다. 정도전에 의해 '사병', 왕자의 개인군대를 해체당하기 직전 이방원은 그의 사병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지만 왕권 강화를 위해 형제 및 처가와 사돈 등의 사병을 해체하고 중앙군 체제를 확립했다. 태조 이성계의 북방 사병들은 새 국가 조선에서 '신권 강화'를 바탕으로 한 삼봉 정도전의 중앙군제의 [진법]으로 개편되어야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왕권 강화'를 위한 태종 이방원의 사병 쿠데타로 혁파된다. 이방원은 '역적' 정도전의 길을 따라 사병을 해체하여 중앙군을 강화했고, 조선 최초의 병서인 정도전의 [진법]을 [진도지법]으로 계승한다. 세종 즉위 초 상왕으로 병권을 잡고 있던 태종에 의해 병조가 공식편찬한 조선 최초 어정 병서가 [진도지법]이다. 
물론 두 사람의 정치강령은 달랐다. 정도전은 성리학 관료들이 지배하는 조선, 이방원은 성리학 군주가 지배하는 조선을 각각 꿈꾸었고 결국 이방원이 승리했다. 


국내 유일의 '문무겸비' 학자인 최형국 박사는 수원시 무예24기 시범단장이다. 그는 2021년 정조가 편찬한 조선 최후의 무예서, [무예도보통지]를 번역하고 해설하였다. 조선 후기를 개혁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했던 정조가 '문치 개혁'의 핵심인 규장각과 '무치 개혁'의 중심인 장용영에게 명하여 조선의 단병접전 전투기술을 총망라하게 한 병서다. 

( https://brunch.co.kr/@beatrice1007/216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1790) - 정조 )

조선은 16~17세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급격한 체제 위기를 맞았다. 왕권 강화를 위한 중앙군은 시대를 따라가지 못했고 국가 위기에도 성리학 관료들은 쓰잘데기 없는 유교식 예법 강화에서 국난 위기 극복의 해법을 찾았다. 대외 국력은 허약한데 내부 신분적 계급체제를 격화시켜 조선 후기는 필연적으로 '민란의 시대'를 불러왔다.
그 중에도 조선 후기 군사전술 변화의 큰 계기가 된 사건은 1811년 관서지방의 '홍경래의 난'이었는데,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으로 격화된 민심이반을 토대로 허술한 조선의 군사력이 만천하에 드러난 사건이자 이후 조선 농민들의 치열한 반란을 예고하는 중대 사건이다. 이로부터 자생적으로 훈련된 '직업혁명가'들은 한반도 일대를 누비며 각종 민란을 조직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세도정치'와 '민란의 시대'를 배태하고 있던 조선 후기를 개혁하기 위해 조선 22대 왕 정조는 '성리학 부흥'과 '왕권 강화'의 길을 택하는데, 국가의 사상적으로 [대전통편], 군대의 집단 진법적으로 [병학통], 군인의 단병접전의 [무예도보통지] 등 '3통(通)'이었다. '통(通)'은 과거시험 만점과 같이 모든 것을 '통달'했다는 자심감의 표현이자 각 부문별 '소통'을 의미할 수도 있었겠다. 최형국 박사는 "'통'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막힘없이 소통할 수 있는 상태([병서, 조선을 말하다], <3-4>)"로 정의한다. '문치규장, 무설장용'의 '문무겸전' 부활을 통한 전방위적인 조선 개혁을 꿈꾸었던 정조는 [경국대전]을 '개헌'한 [대전통편]에서 군사력 강화의 <병전>을 특히 더 개혁하고, 단병술인 '무예24기'를 전국적으로 통일 확립하는 [무예도보통지], 즉 각 단병접전술(무예) '24기'의 그림(도)과 해설(보)을 총망라한 기록(통지)를 완성하는데, 이는 임진왜란 중 선조 때(1598년) 편찬된 [무예제보] '6기'와 광해군 때(1610년) 증편된 [무예제보번역속집]의 '10기', 사도세자의 대리청정 시절(1759년) 지어졌으나 소실된 [무예신보]의 '18기'를 이어 조선의 단병접전 무예를 '24기'로 확정한 기록이다. [대전통편]과 [무예도보통지]의 중간에 위치한 집단적 군사진법 병서인 [병학통]은 정도전과 이방원이 길은 달랐지만 함께 꿈꾸었던 조선 중앙군의 [진법]과 [진도지법]과 같은 조선 진법의 집대성이었다.


"[병학지남]은 명나라 장수 척계광이 쓴 [기효신서]에서 군대 훈련과 군사 선발에 필요한 부분을 발췌해 편집한 병서로, 임진왜란을 겪으며 대대적으로 변화한 조선 후기 군사 조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병서다. [병학지남]은 그 이름처럼 조선 후기 '군사학의 길잡이'가 되었다.
[병학지남]은 명나라 병서인 [기효신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조선군에 필요한 내용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주체적인 문화 수용이 나타났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처음에는 [기효신서]의 내용 몇 가지를 뽑아서 훈련에 차용하다가 수정, 보완을 거듭하면서 점차 단일 병서로 묶어나갔을 가능성이 높다."
- [병서, 조선을 말하다], <2-6. 정조, 새로운 군대를 꿈꾸다 [병학지남]>, 최형국, 2018.


정도전의 [진법]과 이방원의 [진도지법], 문종과 수양대군의 [오위진법] 등 왜란과 호란 전까지 조선의 진법 관련 '병서'들이 있었다. 이후 조선 중후기 진법서들은 발췌본과 편집본 형식으로 숙종 시기부터 [병학지남] 이름으로 산재한 것을 정조가 1787년에 통합편찬본 [병학지남]을 간행했다. 이 집단 교련서에 앞선 것이 1785년 [병학통]이었다. '지남철(나침반)'처럼 군사학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병학지남]이 조선 중후기 조선 진법을 집대성한 병서라면, [병학통]은 이를 위한 정조의 '진법'을 총망라하는 개혁 '3통'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당시 조선은 중국대륙의 영향을 많이 받던 동아시아 문화권에 있었기에 [무예제보]로부터 시작한 무예서 일반 또한 명나라 장수 척계광의 [기효신서]와 모원의의 [무비지] 등의 중국 병서에서 발췌한 것이 기본이었다. 그러나 우리식으로 수정과 보완을 거쳐 주체적 문화수용를 통해 조선식으로 재구성했다. 

해방 후 1949년 무예가 곽동철이 지은 [무예도보신지]는 '조선 최후의 무예서' [무예도보통지]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책 제목도 비슷하게 지었는데, 국정 편찬은 아니지만 아마도 '해방 후 남한 최초의 무예서' 아닐까 싶다. 조선 무예서의 전통을 이으면서 현대식 '총검술'과 '검도'를 포함했다는데 일본식 검도술이 아닌 우리식으로 수용하고 재구성한 주체적 검도술도 담고 있단다. 총검술의 달인이었던 저자 곽동철은 조선의 '본국검'과 같은 검술을 망라하면서 검도술에서 맨손무예인 다리걸기와 상박 등도 포괄하고 있다는데 이는 대한검도회의 '정통(일본)' 검도와는 맥을 달리 한다고 최형국 박사는 평가한다.

이외에도 최형국 박사는 국내 유일 '무예 인문학자'답게 무예와 인문학을 접목한 서술을 이어왔다. 
모든 만물에는 '역사'가 깃들여져 있다. 그러므로 '전쟁 인문학'은 물론 '음식 인문학', '스포츠 인문학' 등의 다양한 '인문학'은 '역사'를 필수로 바탕한다.
'무예 인문학'의 권위자 최형국 박사의 [병서, 조선을 말하다]를 통해 조선 5백년의 역사는 물론 일제강점기 독립투쟁과 해방 후 역사를 '통사'로 돌아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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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병서, 조선을 말하다], 최형국, <인물과사상사>, 2018.
2. [정조, 무예와 통하다 - 正譯 武藝圖譜通志], 박제가/이덕무/백동수 지음, 최형국 역해, <민속원>,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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