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의 슬픔 - 근대의 문턱에서 좌절한 중국 문명을 반성하다
샤오젠성 지음, 조경희 외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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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의 중국문명사 비판
- [송나라의 슬픔](2009), 샤오젠성, 조경희/임소연 옮김, <글항아리>, 2021.


"(진나라의) 일원화된 정치 설계는 권력에 대한 끝없는 탐심을 지닌 역대 왕조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었기 때문에 이후 역대 왕조의 제도적 모델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구조는 서주처럼 천자, 제후, 대부, 국인이라는 다극적 힘으로 서로를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체제가 아니었다. 이 체제 아래서는 황제와 관료(통치자), 그리고 백성(피통치자)이라는 양극의 힘만 있을 뿐이어서 사회는 매우 불안정해졌다. 통치자가 우위를 점하면 전제이고 피통치자가 우위를 점하면 혁명이었다."
- [송나라의 슬픔], <3장. 폭력과 전제로 비롯된 재난>, 샤오젠성, 2009.


냉전 이후 미-중 간 대립이 치열하다.
미국은 '자본주의', 중국은 '사회주의' 대국인 듯 하나, 바야흐로 21세기는 체제의 대립이라기 보다는 '불평등'의 세계체제에서 각국의 이익만이 충돌한다. 전세계 민중들은 '불평등'을 타파하기 위해 결집하는데 국가권력들은 이에 편승하는 듯 하면서도 기후위기가 임박했든 말든 '국가자본주의' 이익을 위해 전쟁도 불사한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모두 '국가자본주의' 체제라는 점에서 대동소이하다.


중국의 언론인 샤오젠성(1955~)은 중국의 문명사를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책 [중국문명적반사(中國文明的反思)](2009)에서 현대 중국의 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중국사를 큰줄기로 하여 서술하는 이 책은 2007년에 중국 당국의 심의에 걸려 대폭 삭제된 채 출간되었다가 2009년 홍콩에서 무삭제로 재출간되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지금의 '사회주의' 중국을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맹렬하게 비판하는데 그 비판적 근거는 진시황의 진나라로부터 설계된 중앙집권적 전제와 독재적 정치체제다. 2021년 한국어판의 제목은 [송나라의 슬픔]이다. 샤오젠성이 보기에 중국 문명사에서 가장 전성기는 5대10국 이후 조광윤이 건국한 송나라였고 원-명-청의 전제 독재가 다시 들어서면서 중국문명과 인권이 재차 무참하게 짓밟혔으므로 그에게 중국사는 그 자체로 '송나라의 슬픔'이었다.


"송나라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정책을 펴는 한편 우민정책을 타파했다. 송나라 백성은 언론의 자유,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았고 나라의 법제는 완비되었으며 사회는 나날이 번영했다. 뛰어난 인재가 대거 배출되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명나라가 건국되고 주원장이 전제통치를 펴면서 송나라의 사회상은 철저히 파괴된다. 주원장은 송나라의 자유롭고 개방적 정책을 계승하는 대신 남송때 나타난 도학(성리학)을 수용하고 발전시켰으며 그렇게 인성파괴의 시대가 도래했다."
- [송나라의 슬픔], <6장. 황권지상 인권추락의 시대>, 샤오젠성, 2009.


샤오젠성이 중국문명사를 돌아보는 결론은 하나다.
지금의 '사회주의' 중국은 사회적으로 개인의 인권을 짓밟고 정치적으로 견제받지 않는 일당독재 국가이므로, 영미 서구사회처럼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첫째 개방적 인재선발과 둘째 사유재산 보호, 셋째 언론자유와 개방정책, 넷째 '인권보장법' 제정(같은책, <결론>)이다.

그가 주장하는 중국사의 적폐로서 황제 개인독재의 전제정치는 동서고금을 막론한 심각한 역사적 병증임에 틀림없다. 
하늘과 땅을 나눈 반고 시대 이후 삼황오제 시기부터 중국인은 서양인과 같은 '신앙'이 없이 '인간화된 신'을 믿은 결과 하-상나라의 독재적 왕권을 신성시했고 주나라와 춘추전국시대의 봉건제도를 통해 '민주적' 가능성이 잠시 나타나기도 했지만 진시황이 전국의 민중들을 몰살시키면서 이룩한 '대일통' 이후 독재자를 신격화('천자')하는 정치문명적 전통을 이어왔다는 것이다. 마오쩌뚱은 이러한 전제정권을 뒤집어 엎은 숱한 농민혁명이 중국역사를 이끌어온 주된 동력이라고 했다. 그러나 마오쩌뚱의 중국 사회주의 혁명을 이러한 중국적 전제정치의 대단원으로 보는 샤오젠성에게 농민혁명은 문명의 파괴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2천만명의 춘추전국시대 인구가 진나라의 통일과 8년간의 초한전쟁을 거치면서 반토막 났고 유방이 건국한 전한시기에 회복된 인구수는 후한 말 황건농민반란과 삼국쟁투 과정에서 1/7 정도 남았으며 수나라 초 다시 회복된 인구가 수나라 말기 군웅반란을 거치며 1/3 토막 났다가 당나라의 정관의 치와 개원성세를 거쳐 다시 회복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는 것이다(같은책, <7장. 기형의 사회>). 부패한 왕조의 타도 후 들어선 새로운 왕조는 황권 독재의 반복이었을 뿐이므로 다수에 의한 혁명은 신문명을 건설한 것이 아니라 '문명파괴'에 불과하다는 것이 샤오젠성의 일관된 역사관이다. 

이 중 예외는 한나라 문제와 수나라 문제 양견, 송나라 태조 조광윤 정도였다. 유방 사후 외척인 여후가 타도되면서 귀족들에 의해 '민주'적으로 옹립된 한나라 문제는 이후 경제에 이르기까지 '문경의 치'를 열었는데 사대부의 '공화'적 지배가 가능하도록 노장사상의 '무위'를 실현한 황제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수나라를 건국한 문제 양견은 5호16국과 위진남북조의 성과를 딛고는 검소한 통치로 경제를 발전시켰으며 당나라 멸망 후 5대10국의 마지막 강국 후주의 세종 시영이 급사하고 어린 왕으로부터 선양을 받은 조광윤의 송나라는 무리한 '대일통'이나 북벌이 아닌 열린 내치를 통해 나라의 상공업을 장려하고 사상을 자유롭게 하여 중국문명의 최대 번영을 이루었다고 샤오젠성은 평가한다. 
현재의 중국공산당을 비판하기 위한 답을 정해 놓았기에 저자가 보는 송나라의 번영은 '사상과 언론의 자유'와 '사유재산 보호'의 유토피아와도 같다. 문치와 사유재산 보호의 천국 송나라는 북쪽 요나라와의 '전연의 맹' 조차도 굴욕이 아닌 평화의 정책이었단다. 북송 마지막 황제 휘종은 이러한 사유재산 보호정책을 거스르며 사욕을 채우다가 망국의 군주가 되었다는데, 전반적으로 황권독재를 비판하는 '공화주의'적 시각에는 나 또한 동감해 마지 않으나 저자가 워낙 현대 중국공산당의 독재를 비판하는 것에 치중한 나머지 '사유재산 신성화'의 18세기 부르주아 혁명정신에 집착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그러면서도 프랑스혁명 식의 다수 혁명이 아니라 미국 독립전쟁처럼 정치체제에 국한된 혁명이 바람직하다고 결론과도 같은 장황한 <8장. 실패로 끝난 문명전환>에서 강조한다. 송나라 문명이 몽골의 야만에 의해 파괴되고 한족의 반원 독립투쟁으로 세워진 명나라 홍건반란 또한 주원장의 독재로 마무리되었으며 만주족의 청나라는 명나라의 썩은 황권정치 위에 더 공고한 황권독재를 세우면서 중국 근대문명이 결과적으로 파탄났다고 보는 샤오젠성은 '공화주의'적 근대혁명인 1911년 신해혁명 조차도 대규모 반청운동이 됨으로써 중국의 민주주의 혁명이 실패했다고 본다. 나아가 쑨원의 신해혁명이 반청운동에 몰입하지 않고 청나라 황실 주도의 '입헌군주국'이 되었다면 영국처럼 발전된 자본주의가 되었을 수도 있었으며, 지방자치 분권을 기획한 '연성자치'를 쑨원이나 장제스, 마오쩌뚱이 지켜나갔다면 미국과 같은 민주적 정치제도가 가능했을 수도 있다고 본다. 
참으로 자의적인 역사해석이다.  


"헌정의 비밀은 '한 천사의 통치보다 두 마귀의 공정한 경쟁이 낫다'는 데 있다. 민주, 법치, 공화, 헌정제도를 싹 틔울 수 있는 우선적인 조건은 국민의 참정이 아닌 사회 상층세력의 다원화다."
- [송나라의 슬픔], <8장. 실패로 끝난 문명전환>, 샤오젠성, 2009.


'사유재산 신성화'와 그 핵심으로서 '토지 사유화'를 일관되게 틈만 나면 주장하고 중국역사 속 서주나 송나라 등을 지방분권과 상업발전의 국가체제로 미화하는 샤오젠성의 역사관은, "한 천사의 통치보다 두 마귀의 '공정한' 경쟁이 낫다"는 한 줄의 문장이 잘 표현해 주고 있다. 그에게 국가권력은 상업과 자본의 성장에 기여해야 하고 다수 민중의 참정권은 '사유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권력을 파괴하므로 제한되어야 하는 것이 된다. 법치와 헌정의 이름으로 민중혁명은 상층 정치가들의 '다원화'로 대체되어야 하는데, '평등'한 이상사회를 꿈꾸는 '천사' 하나보다는 자본의 탐욕에 찌든 '마귀' 두 마리가 '공정'하게 경쟁하는 정치체제가 더 낫다고 말한다. 
중국의 체제가 너무도 싫은 나머지 자본주의 미국과 한국 같은 보수자본가 양당정치를 동경하는 듯 하다. 샤오젠성이 보기에 양당정치의 두 '마귀'들의 경쟁이 '공정'해 보이나 본데, 신성한 '사유재산' 보호를 최고의 존재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 국가권력이 다수 민중들에게 현실에서 얼마나 '공정'한지 모르는 소리로 들린다.


"열린 정치 없이는 인권의 보장을 논할 수 없다... 서구의 민주헌정 제도는 권력에 대한 불신임, 즉 인치(人治)에 대한 불신임이라는 중요한 사상에서 기원했다... 1911년 중국은 아시아 최초로 공화국을 세웠고, 1949년 다시 한 번 공화국을 건립했다. 당시 중국인들은 민주가 진정 도래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여전히 이긴 자는 왕이 되고 진 자는 역적이 되는 정권교체에 다름 아니었다. 민주와 자유의 꿈은 또 다시 물거품이 되었으며 헛수고가 되었다."
- [송나라의 슬픔], <서문>, 샤오젠성, 2009.


전제적 '황권독재'를 비판하다가 '사유재산 신성화'의 신앙과 민중혁명에 대한 혐오 앞에서 '입헌군주제'를 옹호하기도 하는 갈짓자 역사관에도 불구하고, 샤오젠성의 '중국문명사비판'은 자의적인 '인치(人治)'보다 '법치(法治)'를 중시하고 독재보다 인권을 앞세우며 폭력보다는 평화를 강조하는 관점에서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다수의 혁명이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요 동력이지만, 권력자만 바꾼 채 '불평등'의 체제를 전환하지 않는 한 결국 반쪽짜리 혁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우리도 2016~17년의 '촛불항쟁'을 통해 또 한번 배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중국사를 관통한 권모술수와 폭력 미화의 정수인 [삼국지연의]와 [수호지]를 비판하는 대목(같은책, <7장. 기형의 사회>)에서는 역시 중국체제를 비판하는 '자유주의' 지식인 류짜이푸의 [쌍전]과도 맥을 같이 한다.


'민주'와 '인권', '평화'는 '불평등' 체제의 전환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아마도 샤오젠성의 갈짓자 역사관 또한 중국 체제전환의 '자유주의'적 과정이리라.


***

1. [송나라의 슬픔(中國文明的反思)](2009), 샤오젠성, 조경희/임소연 옮김, <글항아리>, 2021.
2. [진붕(秦崩) - 진시황에서 유방까지](2015), 리카이위안, 이유진 옮김, <글항아리>, 2021.
3. [초망(楚亡) - 항우에서 한신까지](2015), 리카이위안, 김영문 옮김, <글항아리>, 2021.
4. [쌍전(雙典)], 류짜이푸, 임태홍/한순자 옮김, <글항아리>, 2012.
5. [주원장전;朱元璋傳], 오함 지음, 박원호 옮김, <지식산업사>, 2003.
6. [위진풍도 - 이중톈 중국사 11](2015),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18.
7. [남조와 북조 - 이중톈 중국사 12](2015),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20.
8. [수당의 정국 - 이중톈 중국사 13](2015), 이중톈, 김택규 옮김, <글항아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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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인 - 상
박영규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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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인(活人)', 사람을 살리는 삶
- [활인(活人)], 박영규, <교유서가>, 2022.


"그렇습니다. 활인(活人), 즉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 유학이든 불교든 모두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단지 어떻게 살릴 것인지 방법론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모두 같습니다. 세상에 나온 모든 학문과 경전은 사람 살리는 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활인], <8. 인연의 실타래>, 박영규.


조선 태종 이방원의 셋째아들 충녕대군이 '활인원'의 탄선대사에게 찾아가 왜 불교에 귀의했는가 묻는다. 성리학 이념국가 조선의 왕자에게 불교는 온갖 요설로 백성을 현혹하는 '불씨잡변'에 불과했다. 할아버지인 조선의 태조 이성계도, 자신의 부인 심씨도 자주 부처를 찾았지만 조선은 엄연히 성리학의 나라였고 그럼에도 왕족의 불심은 예외였다. 젊은 충녕은 이러한 모순을 내심 비판하면서 탄선대사를 마주하고 앉았다.

'활인원(活人院)'은 역병과 질병으로부터 민중들을 구하기 위해 중앙정부의 지원 아래 한성부에서 관할하던 공공의료기관이었다. 태종이 고려때부터 있던 수도 개경의 동서 '대비원(大悲院)'을 조선 수도 한양(한성부)의 동쪽과 서쪽에 '활인원'으로 이름을 바꿔 설치한 일종의 '지방공공병원'이다. '제생원(濟生院)'이 조선 태조때 생긴 전국적인 각지의 국립의료원이자 약방이었다면 '활인원'은 태종때 설립한 국립서울의료원인 셈이다. 소설 속 탄선대사는 한양 사대문 중 사람이 죽어나가던 서대문(돈의문)의 '서활인원' 소속 의료원장이자 의사인 스님이다. 
성리학 왕자 충녕의 비판적 질문에 대한 탄선대사의 답변은 결국 사상과 종교, 신분과 계급을 떠나 '활인', 즉 '사람을 살리는 삶'은 모두 같다는 지극히 동양적 사상이다.

[조선반역실록](2017)의 저자인 역사작가 박영규 선생의 최신 근간 예정인 소설 [활인]의 배경은 조선 초기다. 고려말에 함경도 변방의 무인집안이었던 이성계의 5남으로 열일곱에 과거급제했던 이방원이 정도전 등 개국공신들과 형제들을 죽이고 조선이라는 공적인 국가권력을 이씨왕조 사유화하는 조선 최초 반역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태종도 본래는 유생이었다. 그가 빈민의료기관 '대비원'의 이름을 고친 이유도 '큰 자비(大悲)'라는 불교용어를 없애기 위함이었다. 성리학의 국가는 내세가 없다. 바로 현세에서 정치가 민중을 구한다. 유교에서 '귀신'은 절대자로서의 신(神)이 아니다. 나를 낳고 나와 현세에 함께하는 조상의 혼(魂)일 뿐이다. 유학과 성리학이 말하는 '하늘'은 내세가 아닌 온 우주 운동의 근본원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성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가 아니라 정치다. 고려말 급진적 성리학자들의 유혈 역성혁명은 결국 다수 민중을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으로 합리화되었다. 맹자를 따랐던 고려말 급진적 신진사대부들의 '살인'은 '활인'을 위한 성리학적 해답이었지만 이방원이 후에 몸소 보여준 것처럼 이 대규모 '살인'은 결국 전주 이씨가문의 탐욕으로 귀결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예의 서활인원장 탄선 스님과 그의 여제자 소비, 남제자 노중례다. 배경은 일단 '가제본'인 <상권>에서는 15세기 태종이 상왕으로 군림하던 세종 즉위 초년이다.

탄선대사는 고려말 유학을 공부한 궁정의원인 태의였다가 이성계의 역성혁명 후 불가에 귀의하며 한양의 국립의료원인 활인원에서 무급으로 역병과 질병에 시달리는 빈민들을 돌본다. 고려말 자신보다 신분이 낮았던 동문 양홍달은 조선의 이씨왕조에 붙어 조선 최고의 태의가 되었으나 고려말 권문세족의 일원이었던 탄선은 이씨에 대항하고 왕씨를 지키는 '충신'이 되지 못했기에 유학을 버린다. '살인(殺人)'의 삶을 산 이성계와 그 아들에 비해 본인은 '활인(活人)'의 삶을 살 것이며 그 사상은 유교든 불교든 방법론이 다를 뿐 모두 한 가지라는 깨달음이 그를 부처의 품으로 인도했다. 탄선이 제자들에게 말하는 의술은 사람을 억지로 살리는 것이 아니다. 사람 몸의 균형을 맞춰주면서 원래의 명줄대로 살 수 있도록 지켜주는 것이다. 최근 다시 번역된 미국 내과의사 리처드 거버의 [파동의학](1987)은 '과학'의 힘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현대의학을 넘어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서양적 '에테르체' 또는 동양적 '기'의 균형을 통해 질병을 예방하고 극복하는 길을 열고자 한다. 15세기 조선의 의사 탄선의 길이 그것이다.

시체를 검안하는 천민인 '오작인' 노중례는 열여섯에 원래 생원시 장원까지 했던 양반집 자제였다. 그러나 성균관에 입학하여 대과를 준비하려던 때 의주에서 관직을 하던 부친이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쓰고 옥에서 의문사한 후 가족은 흩어져 관비가 되고 말았다. 천민 중 천민이라는 오작인이 되어 검시로 연명하며 부친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나름의 조사를 하던 중 우연히 탄선을 만나고 그 총명함으로 인해 활인원 소속 의원으로서 탄선의 제자가 된다. 탄선의 제자가 된지 2년 만에 각지에서 그 의술을 인정받아 대군의 연경행(명나라 사신단)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친을 음모로 죽인 원수들의 목숨을 의술로 살리게 되는데, 부모의 원수라도 목숨은 살리는 게 참된 의술이라는 것이 스승 탄선대사의 가르침이었다. 한편으로 중례는 동문인 소비를 차츰 연모하게 된다.

궁정무녀인 가이의 집앞에 버려진 고아소녀 소비는 매우 뛰어난 의술을 부리는 탄선의 수제자로 충녕의 큰아들(문종)을 애기때 살리고 부인 심씨가 안평군을 낳는데 도움을 주면서 궁정의 내의녀까지 오르는 실력있는 여의사로 태의 양홍달의 시기를 사는 여인이다. 소비는 세종인 충녕과 주인공 노중례와의 삼각관계 구도를 암시하며 소설 속 뛰어난 존재감을 과시하는데, <상권> 중후반을 지나며 그녀가 버려지게 된 내력이 서서히 벗겨지면서 소설의 재미를 더욱 깊어지게 한다.
나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 끝까지 봐야겠다는 생각을 굳히는 이 플롯은 수년 전 이미 죽은 삼봉 정도전의 등장이다. 소비는 바로 거의 멸족의 화를 입은 정도전 가문의 손녀였다. 

이렇게 박영규 작가의 역사소설 [활인]은 '반역의 나라' 조선에서 의술과 추리소설의 기법을 토대로 무한반복 '반역의 정치'를 그리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활인]의 '가제본'을 받고 처음 몇 장을 읽을 때는 오래전 드라마 '허준'이나 '대장금'처럼 당시 의술이나 궁정 주변생활에 관한 신변잡기 이야기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상권>의 중후반부로 갈수록 조선 초기 정치사회 전반을 다루는 역사소설의 징후를 보았다. 
더욱이 내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존숭하는 삼봉 정도전이 부활할 분위기니 당최 마저 읽지 않을 도리가 없다.
역시 역사작가 박영규 선생이다 싶다.
<하권>이 기다려진다.

***

1. [활인(活人)-가제본], 박영규, <교유서가>, 2022. 예정.
2. [조선반역실록], 박영규, <김영사>, 2017.
3. [정도전을 위한 변명], 조유식, <푸른역사>, 1997.
4. [파동의학](2001), 리처드 거버, 최종구/양주원 옮김, <에디터>,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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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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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술'의 역사 : 역사가 역사다워지는 '서사의 힘'
- [역사의 역사], 유시민, <돌베개>, 2018.


"이 책은 굳이 분류하지면 '히스토리오그라피(historiograph)'에 넣을 수 있을 듯 하다. '히스토리오그라피'는 역사학 이론과 역사서술 방법의 발전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인데 우리말로는 보통 '사학사(史學史)'라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역사학의 역사'가 아니라 '역사서술의 역사(history of writing history)'에 초점을 맞추었으니 '사학사'는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니다. '역사학'과 '역사서술'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목적과 성격과 작업방식이 다르다. '역사학'은 학술연구 활동이지만, '역사서술'은 문학적 창작행위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독자들이 이 책을 '역사 르포르타주'로 받아들여주기를 기대한다."
- [역사의 역사], <서문 - 역사란 무엇인가>, 유시민, 2018.


20세기 말에는 세기말 징후로 여전히 '종말'과 '휴거'가 거론되기도 했지만, 신세기에 대한 막연한 '희망'도 가득찼다. 우리 '20세기 소년'들은 어려서부터 왠지 21세기가 되면 갑자기 새로운 세상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두려움 등을 무의식 중에 가지고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20세기 후반부 격동의 시대에 30~40대 청장년을 보낸 1960년대생 '20세기 청년' 선배들이 어린 우리 1970년대생 '20세기 소년' 후배들에게 남긴 자취였을 수도 있다. 
소소하지만 인류의 '역사'란 이런 계기들의 집합이다.

내가 스무살 청년기에 접어들었을 때 역시 우리를 각성시킨 것은 여전한 현실과 이런 세상을 분석해주는 '20세기 청년' 선배들이었다. 일면식은 없지만 군부독재에 용감하게 항거하고 새세상의 대안들을 치열하게 학습하며 노동현장에서 스러져간 사람들과 잠시 서구로 탈주했다 돌아왔다는 그 지식인들의 멋진 글들이었다. 일제강점기 목숨을 건 독립투사들은 너무 멀었지만, 어찌보면 나와 한 세대임에도 치열했던 '20세기 청년'들의 후일담은 가깝게 느껴졌다.
스무살의 나는, 이들의 '역사서술'에 매료되었다.

21세기 하고도 사반세기를 통과하는 지금 보니, 그 용감했던 '역사서술가'들은 다들 그들끼리 동지였고 친구였다. 1980년 '서울역 회군' 과정에서 노선투쟁을 했고, 비합법 지하 패밀리에서 이래저래 다들 아는 사이였고, 그렇게 비판하던 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부동산을 비롯한 자산관리에 성공했고, 그들의 80년대생 자녀들 스펙과 세습자산을 불려줬다. 그렇게 그들은 본인들이 그토록 비판했던 이 자본주의 체제를 강화하며 지금 우리 사회를 아예 부동산과 금융투기, 학벌중심의 '세습자본주의'로 고착시켰다. 
지금 시대는 이들을 정치권 여야를 떠나 공통되게 '586 세대'라 칭한다.

그렇지 않은 선배들이 더 많다는 것도 나는 안다.
20세기 말에 세계의 '종말'이 아닌 민중의 '희망'을 말하며 노동자 진보정당을 만들고 분투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길을 찾기 더 어려운 지금도 그 '희망'을 놓지 않고 산다. 
그 당시에도 역시 '선구적'이었던 사람들이 있었다. 유시민이 그랬고, 진중권이 그랬고, 조국도 그랬다.
유시민은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진보정당을 존중했지만 그 유려한 말발과 글발로 소수 진보정당의 고군분투를 허망한 '사표'로 만들어줬다. 진중권은 같은 편인 것 같지만 다수와 함께 하기에는 너무 읽은 책이 많아 내부의 적을 늘 만들고 동지들을 조롱했다. 조국은 잘생기고 똑똑하고 그 중 가장 급진적이고 싶었겠으나 그러기에 너무 부자집 출신이었던 것 같다. 어찌보면 이 세기의 '천재'들이 자본가가 아닌 다수 노동자 민중의 편에 서 있어준 것 자체가 나쁘지 않았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이들 '20세기 천재들'은 다수 민중을 너무 비웃고 우롱했다. 
나 개인적으로 매우 아쉬운 점이다. 일단 글쓰기로만 보면, 유시민과 진중권은 당최 미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사회 '지식소매상'을 자처하는 유시민은  선거철만 되면 노무현식 '좌파 신자유주의'를 다시금 유행시키기 위해 묵직한 주제의 책들을 가볍게 내곤 하는데, 유투브로 갈아타기 전 2018년의 저서 [역사의 역사]는 그래도 내가 그 중 유일하고도 유익하게 생각하는 책이다. 물론  사무금융 산별노조 독서회 '수요회'에 추천했다가 좌파 동지로부터 '손절' 당할 뻔도 했지만, 여전히 다른이들에게 주저없이 추천하고 싶은 책 중 하나다. '정치'가 아닌 '역사'를 다루는 위험한 자유주의자 유시민은 그래도 아직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유시민은 [역사의 역사](2018)에서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역사가의 시조'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로부터 기원전 1세기 중국 한나라 사마천의 [사기], 14세기 이슬람 '문명사학자' 이븐 할둔, 19세기 프로이센 제국의 '천생 역사가' 레오폴트 랑케, 유물사관의 칼 마르크스를 비롯하여 20세기 우리의 박은식과 신채호, 백남운 선생, [역사란 무엇인가]의 에드워드 카와 '문명의 충돌'로 인한 서구중심사관의 몰락을 징후하는 슈펭글러, 토인비, 헌팅턴의 20세기 역사학을 거쳐 최근의 '빅히스토리' 역사가 제러드 다이아몬드와 유발 하라리 등의 '역사서술(writing history)'의 역사를 충실하게 요약하고 있다.
21세기의 유시민은 이제 더 이상 다수 민중이 '승리'하는 당위론적이고 목적론적인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역사학자'가 아니라 '역사 르포작가'로서 '역사' 자체가 아닌 '역사서술'을 주제로 하여 [역사의 역사]에서 다루는 기라성 같은 역사가들이 '역사'라는 사실적 소재를 빚어 문학적 창작을 이루어낸 성과물로서의 그들의 저서들과 그 사실들의 연속성의 '역사'를 파헤친다.

'역사'란 19세기 독일의 반동적 군주제 역사가인 레오폴트 랑케(같은책, <4장>)의 건조한 문헌적 역사가 추구한 '사실 그대로'의 서술이 불가능하며, 각 '역사가' 개인들의 시대적 한계와 나름의 '철학'적 관점, 정치적 성향에 따라 '취사선택'되어 기록되고 기억되는 것이므로 '역사서술의 역사'인 '히스토리오그라피(historiography)' 또는 '사학사(史學史)'를 주제로 하는 이 책 [역사의 역사] 저자인 유시민 본인의 '글쓰기'는 학술적인 것이 아니기에 '역사 르포르타주(르포)'라고 <서문>에서 명확히 규정한다.


"헤로도토스에게 역사서술은 돈이 되는 사업이었고(낭독회), 사마천에게는 실존적 인간의 존재증명이었으며("하늘의 도는 무엇인가!"), 할둔에게는 학문연구였다. 마르크스에게는 '혁명적 무기'를 제작하는 활동이었고, 박은식과 신채호에게는 민족의 광복을 위한 투쟁이었다. 사피엔스의 뇌는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지만 뇌에 자리잡는 철학적 자아는 사회적 환경을 반영한다. 그들은 각자 다른 시대에 살면서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이야기를 남겼다. 그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의 철학적 자아와 공명하기 때문이다."
- [역사의 역사], <6장 - 민족주의 역사학의 고단한 역정, 박은식/신채호/백남운>, 유시민, 2018.


[역사의 역사]에서 개인적으로 인상깊은 역사가는 이슬람의 이븐 할둔(같은책, <3장>)이다. 그는 '역사'를 '이야기'나 서사가 아닌 '학문'의 대상으로 설정한 아마도 최초의 역사가였단다. 그의 [역사서설]은 이슬람 공동체의 사회문화인 '아싸비야'를 중심으로 기후와 자연 등 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는 복합다단한 역사 이야기 이전에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학문적이고 체계적인 이론화를 시도한 '서설(무깟디마)'이었다. 14세기 이슬람 문화인 북아프리카 튀니지 출신의 이븐 할둔의 이 '역사학'은 칭기스 칸의 세계제국이 분할된 후 이슬람권의 칸으로부터 공식 역사서가 되고 할둔 본인도 '칸의 스승'과 같은 대우를 받기도 했다. 만년의 할둔은 역시 말년의 티무르와 독대했지만, 그가 티무르에게 어떤 교훈을 남겼는지는 알 수 없다. 중앙아시아 일대를 제패하고 동아시아 중국대륙의 명나라를 정벌하려던 티무르는 죽었고 할둔 또한 그 이듬해인가 죽었으므로 후세는 칭기스 칸의 후예를 자칭한 정복자 티무르가 한 도시 정복의 대가로 역사가 이븐 할둔과의 접견을 요청했다는 사실만 알 뿐이다. 정복자의 스승인 '역사학의 아버지' 이븐 할둔은 오만한 정복자들도 우러러 본 역사가였다.

유시민에게 칼 마르크스는 아마도 '애증의 대상'이 아닐까 싶다. 마르크스는 전세계 수많은 청년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자유주의자였던 '20세기 청년' 유시민에게도 세계를 변혁하라는 가르침을 처음으로 준 역사가였을 테고, 그로 인해 적어도 마르크스의 저서만큼은, 최소한 [공산당선언](1848)만큼은 유시민은 그 누구의 번역이 아닌 원전을 통한 스스로의 번역만을 인정하고 싶었을는지도 모른다. 유시민은 비록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이 '역사를 비껴간 역사법칙'(같은책, <5장>)이었다고 결론짓고 있지만, 칼 마르크스는 유시민의 자유주의적 사상경로에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역사가'임에 틀림없는 듯 하다. 자유주의자든,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자든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19세기 유럽의 칼 마르크스는 늘 그런 선학이다. 마르크스가 철학자였든 역사가였든 정치경제학자였든 아니면 백수나 문학가였든, 그는 우리 인류 사상사에 항상 그런 역사적 '서사의 힘'을 유산으로 남겼다.

20세기 초 우리 식민지 조선의 역사가 박은식, 신채호, 백남운 선생(같은책, <6장>)은 더욱 인상깊다. 
성리학 선비였던 박은식 선생의 피를 토하는 역사학과 [한국통사]는 아마도 식민지 조선이라는 조건이 아니었다면 없었을 것이다. 식민지 조선이 아니었다면 이 개명 유학자가 왕정이 아닌 민주정을 주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며 일제에 끝까지 항거한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와 [조선혁명선언] 또한 마찬가지다. 의열단의 강령이었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조선혁명선언](1923)은 20세기 조선판 [공산당선언]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역시 유학자였던 신채호 선생은 민주주의자 박은식 선생보다 더 급진적으로 사회주의 또는 아니키즘 성향까지 보이나 이들 또한 역사가였기에 고대 문헌의 철저한 고증과 비교분석을 통해 가장 개연성이 높은 역사이론을 채택한 것이었다. 이들은 외세를 물리친 을지문덕과 연개소문, 강감찬과 이순신 등의 민족적 영웅전을 쓰면서 식민사학에 대항한 우리 고유의 민족사학을 바로 세우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 
해방공간에서 북조선으로 넘어간 백남운 선생은 우리의 역사를 마르크스주의 '역사단계론'에 끼워 맞추기는 했으나 아마도 우리 역사학계에서 최초로 '역사유물론'을 정초한 역사학자일 것이다. 백남운 선생의 [조선사회경제사]는 우리 역사를 '고대노예제-중세봉건제-근대자본주의'의 '역사단계발전론' 틀에서 해석하면서 식민지 조선은 '특수한 단계'로 서구의 마르크스주의를 우리 사상계에 이식하여 식민사관과 투쟁하는 유물사관(역사유물론)을 정립하자는 시도였다. 
우리 역사가인 이들 선학들의 '민족사관'과 '유물사관'이 지금 후세들에게 다소 과격하고 도그마적으로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의 특수단계에서는 필연의 역사학이었다. 
[역사의 역사] 저자 유시민은 말한다. "식민지 시대 지식인들이 쓴 역사를 읽으면 가슴이 아리다"라고. 
나 또한 그렇다. 식민지 시대든 군부 파시즘 시대든 그 시절 지식인들의 역사는 슬프다. 
내게는 유시민 작가도 그렇다.

이후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오랜 질문에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답변한 에드워드 핼릿 카(같은책, <7장>)가 정초한 '현대 역사학'과 제러드 다이아몬드와 유발 하라리의 지구환경 역사학 및 미래지향적 '빅히스토리'(같은책, <9장>)는 세간에 너무 많이 언급되고 있어 유시민의 이 책에서 그리 새롭지는 않다. 다만,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화두와 '빅히스토리'는 '역사서술'의 역사를 돌아볼 때 반드시 거쳐야 할 현대사의 한 단계가 되었다. 이들은 이미 지난 '역사서술'이 아니라 지금도 한창 진행 중인 '현대사'이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로서 '역사'는 걸출한 역사가들의 탁월한 안목으로 취사선택된 서사를 통해 비로소 역사다워진다고 소감을 밝히며 [역사의 역사]를 마무리한다. 
인류의 역사는 역사가들의 "서사의 힘"(같은책, <에필로그>)으로 '발전'한다고 믿기에 유시민은 '역사서술의 역사'를 묵직하게 엮어냈다.
사회과학 저서 출판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돌베개> 출판사의 편집과 디자인 또한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나는 역사를 역사답게 하는 것이 '서사의 힘' 또는 '이야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역사는) 변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 예측할 수 없는 우연, 사회제도와 자연환경이 뒤엉켜 빚어낸 과거의 사건들 가운데 당대의 역사가들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을 언어로 엮어낸 서사다. 역사의 역사가 드러내 보이는, '발전'이라고 하는 몇 가지 역사서술 환경과 내용과 관점과 방법의 변화는 힘있는 서사로 구현할 때만 독자의 생각과 감정을 움직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역사의 역사에 남은 역사서들을 만나본 소감이다."
- [역사의 역사], <에필로그 - 서사의 힘>, 유시민, 2018.

***

1. [역사의 역사(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돌베개>, 2018.
2. [독서의 역사(A History of Reading)](1996), 알베르토 망구엘, 정명진 옮김, <세종>,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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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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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기(武器)'로서의 '철학(哲學)'
-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2018), 야마구치 슈, 김윤경 옮김, <다산북스>, 2019.


"지옥으로 가는 길은 이상적인 사회를 추구하는 선의로 깔려 있다. 그렇다고 해서 더 나은 세상을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자기기만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우리는 허무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 더 좋은 세상을 구축하고자 하는 이상을 잃지 않은 채 그러한 '이상 사회'를 꿈꾸며 운동을 벌이는 일이 독선과 기만에 빠질 위험성 또한 동시에 의식할 수밖에 없다.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과거의 철학자가 남긴 사회에 대한 고찰이 우리에게 중요한 길잡이가 되는 것이다."
-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1부. 무기가 되는 철학>, 야마구치 슈, 2018.


1888년, 죽은 칼 마르크스의 살아남은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독일 고전철학'에 '종말'을 고한다. 
본래 '철학(哲學)'은 고대 인류의 의식이 각성하면서 "세계는 무엇(what)으로 이루어졌으며, 어떻게(how) 돌아가는가?"에 관한 답을 찾는 '학(學)' 자체였다. 자연과학이 발전하기 전인 고대에는 '철학'이 당연히 학문의 최고 지위였고, '과학'이나 '종교'가 곧 '철학'이었다. 이 궁극의 학문으로서 철학은 인간의 주체가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과정으로 주관적 관념은 객관적 대상에 1차적 영향을 받는다. 그에 따라 '주체'가 먼저라 보는 철학을 '관념론', '객체'가 우선이라 전제하는 철학을 '유물론'이라 했다. '양자역학'의 현대과학 시대인 지금은 무엇이 1차적이고 우선인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종교'와 '신화' 또는 '이데올로기'로 당대 지배체제를 옹호하는 집단이나 계급의 철학이 '관념론'인 한, 다수 민중의 '유물론'은 언제나 되살아난다. 근대 이전 썩은 왕조를 무너뜨린 수많은 농민반란이 종교적인 '관념론'의 이데올로기 아래로 모였을지는 몰라도 사실 다수 민중은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우선이었던 현실적 '유물론자'들이었다. 이 다수 유물론자들에게 선택지는 늘 둘 중 하나였다. "이대로 굶어 죽느냐, 아니면 뒤집어 엎느냐?"
엥겔스가 종말을 고한 '독일 고전철학'은 바로 고대로부터 19세기 당시까지 철학사를 지배해 온 '관념론' 및 독일 사변철학이었다. 자연과학은 발전하고 대다수 노동계급이 자본으로부터 대규모 착취당하는데 더 이상 철학은 세계를 '해석'하기만 해서는 안되었다.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혁'하는 철학이었다. 따라서 이제 철학은 '관념론'에 종말을 고하고 '유물론'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무기'가 되어야 했다. 엥겔스에게 인류의 위대한 유산인 '철학'의 상속자는 바로 자본주의 착취로 억압받는 다수 노동계급이었다.
19세기 말에 이미 '철학'은 그렇게 세상을 바꾸는 '무기'가 되었다.


일본의 기업경영 컨설턴트 야마구치 슈는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원제 : 무기가 되는 철학)](2018)라는 책에서 지루한 철학사를 돌아보지는 않는다. 근대 철학의 분기점이라는 칸트를 건너뛰고 과학철학의 맹아를 담은 스피노자를 무시한다. 으레 철학사 서적이 다루듯 고대 그리스 철학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기업 컨설팅 그룹 소속답게 비즈니스에서 '실용'적으로 중요한 철학 개념 50가지를 추려 '사람', '조직', '사회', '사고'의 네 가지 범주에 각 콘셉트(개념)들을 배치하여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철학'은 기업경영과 비즈니스 세상에서 '혁신'을 통해 '영속'하고자 하는 기업가들의 인문학적 '무기'이자 다수 기업 실무자들 삶의 '무기'가 된다. 그는 인용한다. "교양이 없는 CEO는 '위험천만'하다"고.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 앨런 케이, 야마구치 슈의 같은책 <4-49> 중.


자본가로부터 비용을 받고 기업경영 컨설팅을 하고 보고서를 작성하지만, 저자는 언뜻 경영자의 입장에서만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성과급을 목표로 하는 것보다 자율적인 상황에서 목표 달성이 더 용이하다는 근거를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같은책, <1-3>)에서 찾고, 기업 의사결정에도 끝까지 집요하게 이의를 제기하라며 존 스튜어트 밀의 '악마의 대변인'(<2-16>) 이야기를 한다. 열심히 노력하면 결국 성공한다는 '1만번의 법칙'은 틀렸다며 질 들뢰즈의 '파라노이아(편집증)'와 '스키조프레니아(분열증)'를 거론하며 여의치 않으면 현실 직장으로부터 탈주하라(<3-33>)고 말한다. 온갖 '능력주의'로 포장된 기업의 인사평가는 애초에 공정할 수 없다며 캐나다 심리학자 멜빈 러너(<3-37>)의 '공정한 세상 가설'을 소개한다. 즉, '능력주의'가 전제하는 '공정세상'이라는 가설은 틀렸다고 본다. 자본주의 모순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칼 마르크스까지 다루는 이 기업 컨설턴트는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자본주의 체제비판의 핵심인 '물화'가 아니라 초기 마르크스 철학의 인간적 요소였던 '소외'(<3-25>)를 소개하는데 그친다. 저자가 철학적 사고에서 중요하게 소개하는 사고방식은 헤겔의 '변증법'(<4-42>)인데, 서로 대립하고 모순되는 사물이 '맞서고 얽혀('맞얽힘')' 새롭고 창의적인 사고로 '나선형 발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야마구치 수는 기업의 돈을 받고 컨설팅 보고서를 쓰기는 하나, 기업 담당자들에게 '미래'가 어떨지 묻지 말란다. 그는 미국의 퍼스널 컴퓨터 선구자인 앨런 케이(<4-49>)의 말을 빌어 답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내는 일이다"라고.


"평범한 인간이야말로 극도의 악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은 누구나 아이히만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에 관해 생각하는 것은 두려운 일일지 모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 가능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사고하기를 멈추면 안된다고 아렌트는 호소했다. 우리는 인간도 악마도 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이 되느냐 악마가 되느냐는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1-10. 한나 아렌트_악의 평범성>, 야마구치 슈.


야마구치 슈가 50명의 철학자와 사상가들을 빌어 소개하는 '삶의 무기'로서의 철학 개념들의 핵심은 결국 체제와 시스템에 대한 '비판적 사고'다.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평론가인 한나 아렌트(같은책, <1-10>)는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량학살을 기획한 아돌프 아이히만의 전범재판을 방청하고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을 썼다. '악'은 히틀러나 무솔리니, 일본 천왕처럼 거대악으로 상징될 수 있으나 정작 이러한 악의 집행은 지배 시스템이나 이데올로기에 무비판적으로 '실무'를 맡아 처리한 평범한 자들이 자행했다. 1960년 예루살렘에서 재판받고 처형된 아이히만이 법정에 등장하는 것을 본 한나 아렌트는 그 살인자가 '악마'가 아닌 지극히 나약해보이고 평범한 모습이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단다. 
히틀러의 나치즘과 무솔리니의 파시즘은 폭력으로 집권하지 않았다. 1차대전 패전국의 전후 경제위기에 불만을 품은 다수 민중들이 그 파시스트들에게 합법적으로 권력을 주었고, 자기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그 권력을 지지했다.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 악마와 같은 권력자가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만 한 그 평범한 '악마'들은 결국 수천만 명을 살육했다. 한나 아렌트는 무비판적 실무자들에 의해 자행된 이 악행들을 보며 '악의 평범성'이라는 유명한 말을 지어냈다.
 이 '악의 평범성'은 절대악을 이상화하면서 '지옥으로 가는 길'을 열었고, 스스로의 맹목성과 무비판성을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했다. 그들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실무능력'은 주변의 다수 지지자들의 이익이라는 '선의'로 포장되는데, 이것이 가능하게 한 건 현실 체제와 제도, 지배 시스템과 이데올로기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이었다. 연말에 폭탄과 같이 사면복권된 박근혜가 절대권력을 휘두를 때 대한문 앞에 있던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의 농성장을 갈아엎고 화단을 만든 서울 중구청 공무원 실무자들의 삽질이 떠오른다. 그들은 오직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한 공무원이었지만, 29명의 정리해고 조합원 사망자들과 유족들에게, 그리고 그들과 연대하는 시민들에게 '평범한 악마들'이었다.


기업경영 컨설턴트인 야마구치 슈가 말하는 비판적 사고로서의 철학이 '삶의 무기'가 된다는 주장에 깊이 동감한다. 이 비판적 무기를 벼리기 위해 저자가 소개하는 개념들 또한 매력적이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가 칸트와 스피노자 등을 제끼면서 돌아보는 철학사 또한 재미있고 유익하나 '비판'은 얘기하되 '변혁'을 담지 못하는 철학은 역시 공허하다. 그냥 '철학'이라는 주제로 책과 강연을 팔아 명성을 사기 위한 '교양'에 불과할 수도 있다.
'철학'이 삶의 '무기'가 되기 위해서는 현 체제와 시스템을 "왜 비판하는가"에 관한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다시, '무기'로서의 '철학'의 상속자가 체제의 전환을 요구하는 다수 대중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

1.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2018), 야마구치 슈, 김윤경 옮김, <다산북스>, 2019.
2.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1888), 프리드리히 엥겔스,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89.
3. [맞얽힘 : 맞선 둘은 하나다], 이철, <움직이는책>,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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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의 힘 - 기후는 어떻게 인류와 한반도 문명을 만들었는가?
박정재 지음 / 바다출판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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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의 힘'을 억제해야 우리가 산다
- [기후의 힘], 박정재, <바다출판사>, 2021.


"'빅 히스토리(Big history)'는 역사학에서 처음 파생된 개념이지만 인문학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 하다. 역사학 외에도 천문학, 지질학, 기상학, 해상학, 생물학, 인류학, 고고학, 지리학 등 다양한 학문이 서로 얽혀 진행되는 학제 간 연구인 '빅 히스토리'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준다."
- [기후의 힘], <프롤로그>,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박정재 교수는 자신의 책 [기후의 힘](2021)에서 '빅 히스토리'는 역사학의 범주에 속하지만 '인문학'은 아니라고 한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1997)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2011) 등으로 촉발된 '빅 히스토리' 유행을 보면 역사학이라고 해서 인류만 중심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 일체의 연구 성과를 접목하여 과거를 분석하고 현재를 들여다 보며 미래를 내다본다. 우리나라 지리학계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는 박정재 교수는 그러면서도 이 책의 말미 <감사의 글>에서 "기후변화를 연구하는 전문가는 기상학자와 같은 자연과학자가 아니라 인간을 함께 공부하는 지리학자"라고 설파한다. 
저자는 과학에 매몰되지 않는 '인간주의'로서 '인문학'에 단단히 뿌리를 두고 '기후의 힘'을 살펴보고 있다.


"플라이오세를 마지막으로 제3기가 끝난 후 대략 260만년 전부터 제4기가 시작된다. 제4기는 플라이스토세와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기인 홀로세로 구성되므로 제4기의 시작은 곧 플라이스토세의 시작이다. 학자들이 말하는 '빙하기'는 대체로 '플라이스토세'를 의미한다."
- [기후의 힘], <2. 빙하기란 무엇인가>, 박정재.


19세기 스위스계 지질학자 루이 애거시즈(Louis Agassiz)는 '빙하기(Ice age)'라는 말을 처음 썼다. 그는 진화론이 아니라 창조론을 끝까지 옹호했다지만 종교가 아닌 과학의 입장에서였다. 
260만년 전부터 대략 1만년 전까지의 오랜 기간인 '플라이스토세' 전체가 '빙하기'였다. 그 중 가장 추웠던 '최종빙기 최성기'는 2만4천년 전부터 1만9천년 전이었단다. 이후 약 1만년 간 '만빙기' 등의 쇠퇴기를 거쳐 1만년 전부터 지금까지 기간이 바로 '홀로세'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 파울 크뤼천은 인류가 자연을 망치고 있는 지금의 기후변화 시기를 '인류세'로 부르기도 했고, 이와 같은 관점에서 자연이야 파괴되든 말든 자연과 인간을 상대로 한 끊임없는 잉여가치 착취를 멈추지 않을 작금의 자본주의는 아예 '자본세'라 불러야 한다고 일본의 마르크스주의자 사이토 고헤이는 주장하기도 한다. 어쨌든, 인류가 수렵과 채집을 벗어나 농경사회로 정착한 1만년 전부터 지금까지를 이르는 학문적 시기명칭은 '홀로세'다.

600만년 전 오스랄로피테쿠스가 나무에서 내려와 초원을 거닐 때는 지구가 온난했는데, 이들이 아프리카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시기가 대략 이 '빙하기'와 겹칠 것이다. 빙하기에는 한 곳에 정착이 불가능했기에 상대적으로 덜 추운 해안가로 몰려갔을 테고, 해안가와 강가는 먹을 거리를 구하기가 상대적으로 더 나았을 테니 점차로 정착 비슷한 생활을 했겠지만 농경을 통해 먹고 살기 시작한 것은 그래봐야 '고작' 1만년 전부터였다. 물로부터 문명이 시작되고 치수에 성공한 지도자가 추앙받은 이유다. 
아무튼,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기 시작한 약 20만년 전은 여전히 들쑥날쑥 빙하기였으니 인류는 수렵과 채집을 오랜 기간 영위하다가 비로소 원시 작물과 가축을 길들이며 물가 주위에서 지금으로부터 약 1만여 년 전부터 정착 문명을 구축했다.


"'여섯번째 대멸종'... 인간의 환경교란 때문에 멸종된 동식물의 수가 과거 있던 '다섯 차례의 대멸종'으로 사라진 동식물의 수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다섯 차례의 대멸종에는 백악기에 운석 충돌로 발생한 대형 파충류(공룡)의 멸종 또한 포함된다."
- [기후의 힘], <6. 거대동물이 갑자기 사라지다>, 박정재.


1만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과 이집트 나일강, 인도의 인더스강과 중국 황하 문명이 정착 농경문화를 발전시켰으나 이후 '8.2ka(8천2백만년 전)'와 '4.2ka'(4천2백만년 전)'를 비롯한 수차례의 정기적인 '한랭기 이벤트'들과 대략 5백년 주기로 찾아온 '소빙기'는 이 정착민들을 다른 지역 해안가 등지로 내몰았다. 
우리 한반도에서 본격적으로 농경이 시작된 시기가 약 4천년 전이었고 이로부터 발달한 한반도 서남부의 남방 '송국리' 문화가 또 다른 '소빙기'를 맞아 일본 남부로 건너가 '야요이' 문화로 정착한 게 대략 3천년 전이다. 기후변화에 맞아 앉아서 죽느니 이에 맞서 미지의 땅을 찾아 적극적으로 이동한 '사피엔스'들의 혁신이 우리 동아시아 한반도 일대에서도 펼쳐졌다. 
인류가 문명을 일군 약 1만년 전부터 지금까지 대략 5백년 주기로 '소빙기'가 찾아왔는데 각 지역별로 그 시기는 차이가 나지만 중국의 한, 당 고대왕조와 송, 명 중근세왕조가 약 그 주기로 번성하다가 멸망했다. 기후 위기로 농사가 안되고 왕조들이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을 때, 전염병이 돌고 대규모 농민반란이 일어났으며 썩은 왕조가 무너졌다. 로마의 주기적인 위기와 쇠망도, 고구려와 백제의 쇠퇴와 멸망도, 몽골제국 및 원나라의 번성과 우리 고려의 '무신정권' 및 아홉 차례 '여몽항쟁'도, 이후 고려와 조선의 흥망 또한 이 주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가까운 우리 역사에서 19세기 삼정 문란과 홍경래의 난과 같은 조선 후기 '민란의 시대' 또한 조선 초기 이후 다시 도래한 '소빙기'의 영향이 아니라고 볼 수도 없다. 18세기 서양의 산업혁명은 석탄을 많이 태우기 시작하여 지구의 온도를 높이기는 했지만 그 시기 서양 또한 '소빙기'였을 수도 있다. 기후변화로 힘든 와중에 자본은 '인클로저'로 농민들을 땅으로부터 도시로 쫓았는데 도시의 산업노동자가 된 이들을 대규모로 착취했고 정부는 이를 부추기고 옹호했다. 새로운 혁명 주체인 노동자 계급은 19세기 중반부터 혁명의 반란을 시작했다. 자본주의 발전과정에서 등장한 산업 프롤레타이라 계급은 '계급투쟁'의 인류역사를 종결짓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역사적 임무'를 과학적으로 부여받았다.

인간 중심으로 보면 정치경제학적 분석과 규명이 가능한 한편, 자연과학적으로는 주기적 기후위기와 이를 가속화시키는 인류가 보인다. 
박정재 교수가 천착한 지점이다.


"대략 8천년 전에 기온이 최고점에 오른 후 그 수준이 4천3백년 전까지 유지되었다. (홀로세 기후 최적기) 이후 5백~2백년 전에 이르면 '8.2ka 이벤트' 이후로 기온이 가장 낮아지는데, 이 시기가 신빙기의 핵심 구간인 '소빙기'다... 고대 사회의 흥망성쇠를 이러한 신빙기 기후변화와 연관시키려는 시도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 [기후의 힘], <9. 생태계가 풍요로워지다>, 박정재.


자본의 무한증식 운동에 편승한 인류의 탐욕이 지구 온난화의 기후위기를 확대하고 주기를 단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와 이로 인한 '세차운동' 및 태양 흑점 변화가 복합된 일조량 축소 등 기본적인 기후변화는 수십억년 반복되어 왔다. 이로 인해 백악기 말 공룡의 멸종까지 다섯 차례의 대멸종이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운석 충돌이나 화산 대폭발 등의 외부 요인도 한 몫 했단다. 그러나 지금 기후 대위기 시대의 '여섯번째 대멸종'의 주범이 우리 '사피엔스'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 신대륙의 대형 포유류는 인간이 새로 정착하고 반세기 이내에 대부분 멸종했다. 
이 자본가들은 지금도 지구를 착취하다가 우주로 튈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의 홀로세 또는 '인류세'를 '자본세'로 바꿔 부르자는 마르크스주의자 사이토 고헤이의 주장은 지구 평균기온이 2~3도 오르기 전에 자본주의를 끝장내자는 매우 급진적인 대안을 내놓으며 본인은 자연과학을 심화학습하던 말년의 마르크스와 같은 심정으로 '인류세의 [자본론]을 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론이나 다듬으며 기다릴 시간이 없다. 당장 변혁을 실천해 나가야 한단다. 

박정재 교수는 이 정도 급진성은 아니더라도 자본을 통제하고 나아가 변덕스러운 '기후의 힘'을 억제하는 우리 인류, 즉 '사피엔스'의 혁신을 믿고 더 나은 미래를 그리고 있다. 그 조건은 무지막대한 '기후의 힘'을 억제하는 우리 '사피엔스'의 '혁신'적 지혜와 실천이다.
'자연과학자'가 아니라 '인문학자'를 자청하는 지리학자가 기후위기 시대의 '책문'에 제출한 답안이다.


"인류는 지구의 생태계가 회복불가의 임계점에 다다르기 전에 온실 기체(이산화탄소, 메탄가스 등)의 증가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일의 가능 여부가 미래 인류의 생존을 결정할지도 모른다... 호모 사피엔스가 농경 시작 이후 문명을 이루고 국가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혁신 능력은 실로 대단했다... '기후의 힘'을 억제해야 우리가 산다."
- [기후의 힘], <14. 지구를 위협하는 변화의 증후들>, 박정재.

***

1. [기후의 힘], 박정재, <바다출판사>, 2021.
2. [지속불가능 자본주의 - 기후위기 시대의 자본론](2020), 사이토 고헤이,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2021.
3. [사피엔스](2011), 유발 하라리, 조현욱 옮김, <김영사>, 2011.
4. [로마의 운명](2017), 카일 하퍼, 부희령 옮김, <더봄>, 2021.
5. [공산당 선언](1848), 마르크스/엥겔스,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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