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블루레이] 퍼시픽 림 : 콤보팩 (3disc: 3D+2D) - 3D(본편) + 2D(본편 & 부가영상)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 찰리 헌냄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이야기 자체는 엉성하다...
겉만 번지르르한 유치하고 상투적이고 올드한 스토리라인을 가졌다.

태평양의 한 가운데 구멍에서 나오는 거대외계생명체...라니!
오염된 환경에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가 서식지를 넓히기 위해서 넘어온다라는 설정이...
얘들 읽는 동화책도 아니고 납득할 수 있는 현실감이 없이 식상하다.

(고전 영화들에서는 그리 나쁜 설정은 아니지만 지금은 21세기다.) 
그에 대한 현실적인 매커니즘과 미래 디테일을 제대로 심어주었더라면

(아니면 거대한 세계관과 우주관 그리고 외계생명체들과의 관계설정에 대한 디테일을) 
목숨을 건 주인공들의 전투에 관객들이 더 몰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팔짱끼고 팝콘 먹으며 그저 즐기는 정도에 그친다.) 
그래서 아쉽다.


그럼에도 이 영화 안에서의 그려지는 거대로봇의 현실감은 발군이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로봇과는 사뭇 다른 거대하고 육중한 움직임은 중력감을 제대로 표현한다.
그래서 빠르지는 않지만 더욱 처절한 사투와 실제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그리고 기본 얼개에 충실하며 성장 영화처럼 자기 내면의 한계를 극복하는 동시에 세계를 구한다.
그래픽의 수준과 매카닉의 디테일한 동작들만 보았을 때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으나
아쉽다. 아쉬울 따름이다.

 
이렇게 올드하고 엉성한 이야기를 가지고 거대 예산을 통해 영화를 만들다니 말이다.

헐리우드에서나 가능한 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표지가 압권! 뭔가 고전SF영화 같으면서도 신선한 느낌의 색감이 소장하고 싶은 느낌이네요. 투자완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알라딘 북펀드 티켓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물리학자의 철학적 세계관> 이 책의 표지가 마치 전대통령같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웃음이 났다. 각설하고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바라본 형이상학세계라는 점에서 끌렸다. 철학이라는 것에 대해 재미를 느끼는 요즘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라딘 북펀드 티켓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드디어 <양심의 문제>에 투자했다. 워낙 SF를 좋아하는 것도 있고 대강의 설명을 읽어보니 현실세계에 대한 적절한 비유가 녹아나 있는 수작이라는 생각에 얼른 나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7의 봉인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 거너 본스트랜드 출연 / 피터팬픽쳐스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잉마르 베리만. 대학시절 이름만 들어도 떨리는 감독이었다. 영화 안에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모두 위대하게 느껴질 무렵이었다. 잉마르 베르히만의 주제의식은 그래서 궁금했었다. 그 사람은 무엇을 다루기에 거장으로 불리울까. 그의 마지막 작품인 <사라방드>를 보았다. 이게 뭔가 싶었다. 그때는 전 작품과 연계된 영화라는 것도 몰랐고 방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끝없는 수다처럼 느껴졌다. 거장이고 나발이고 영상미란 보이지도 않았고 단지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보았던 기억만 남아있었다. 그게 잉마르 베리만의 첫 이미지였다.

 

예전에 한 영화감독이 이런 말을 했다. (아마 장 뤽 고다르인 것 같다.) 영화라는 매체는 죽어가는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라고. 인간을 죽음의 운명으로 시간이 간다는 것을 죽음을 향해 가는 것으로 받아 들인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말했다. 우리가 최초로 부딪치는 인간 실존의 문제는 언젠가 찾아오는 죽음의 공포다.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내리지 못하며 이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다. 죽음의 문제는 언젠가 부딪힐 중대한 문제다. 

베리만은 이런 사유를 영화를 통해 접근한다. 기사가 죽음(의인화)과 체스를 두어 자신의 수명을 연장한다. 그는 단지 더 살고 싶은 욕구가 아니라 구원의 확신, 특히 하나님의 실존에 대해 명확하게 느끼기 위해서다.(죽음과 연관이 있다. 하나님이 실존하신다면 그는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아 영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머릿속으로 모든 것(교리, 성경)을 알고 있다. 겉모양으로도 신실하다. 첫 등장부터 하늘에 감사 기도를 올린다. 하지만 그는 십자군 전쟁과 흑사병을 겪으며 회의감에 빠졌다. 그는 알고 싶다. 진리의 실체를 확신하고 싶다.

죽음의 이미지는 영화 곳곳에서 배어있다. 그 안에서 비이성적인 인간들이 무지한 행위는 반복된다. 자신들의 죄 때문이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행진하는 이들. 그 행위를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흑사병이 멈출 것이라 한다. 또, 마녀를 잡아 화형시키는 사제와 군인들. 그 행동으로 흑사병이 멈출 것이라한다. 기사가 보기에 이 모든 행위들은 미신이다. 미신으로 전락한 종교행위에 대한 회의감. 맹목적인 신앙에 대한 불신. 그리고 그 속의 인간들의 광기와 무관심이 그를 괴롭힌다.

 

기사    나는 지식을 원합니다.신앙이나 가정이 아닌 지식 말입니다. 나는 신이 내게 손을 내밀고 그 자신을 내게  

드러내어 말해 주기를 원합니다.
죽음    하지만 그는 침묵을 지키고 있지.
기사    나는 어둠 속에서 그 분을 소리쳐 불렀지만 아무도 거기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죽음    어쩌면 거기 아무도 없는지도 모르지.
기사    그렇다면 인생은 끔찍한 공포입니다. 만사가 허무하고 눈앞에 죽음이 있다면 누가 살 수 있겠습니까?
죽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이나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지.
기사    하지만 언젠가 그들도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어둠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죽음    그날이 오면...

 

서양인의 사유는 기독교를 떠날 수 없나보다. <제7의 봉인>이라는 제목도 요한계시록에 나와있는 예언에서 따온 것이다. 그들에게 죽음이란 부활 또는 영생으로 이어지는 단계다.  그래서 기독교 장례를 보고 있으면 죽음에 대한 슬픔보다는 천국에 대한 기쁨이 내재되어있다. 하지만 이런 말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려한다면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 기사의 모습은 마치 현대인의 모습과도 같다. 그 문제를 감독은 관객에게 던진다. 알고는 있지만 믿어지지 않는 상태로 끝없는 회의감을 경험하는 기사거나 아무런 관심도 없는 미친 동네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그리고 그 근본적인 고통을 하나님께 던지는 것 같다.

영화에서는 이와는 상반된 인물 유형이 하나 나오는데 그는 시대속에서 놀림과 괴롭힘을 당하는 존재중 하나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그의 가족만 오로지 죽음에서 도망친다. 그는 죽음과 성모 마리아, 천사를 직접 느낀다. 그는 그 존재들에대해 의심을 갖지 않는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그의 눈으로 죽음에게 끌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비춰진다. 그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듯하다.

 

죽음에 대해 증명할 길은 없다. 감독은 그것 전체를 영화를 통해 표현한다. 무엇이 맞는 것인가? 죽음의 대사처럼 그 날이 오면? 기사는 결국 죽었고 그는 답을 알고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