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 작나?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손자가 혼잣말을 듣기라도 했는지 들고 있던 테니스 공을 내려놓고 환하게 웃었다.
그는 평생 무심한 가장이자 무심하고 냉정한 할아버지로 살아왔다.
지금 이 손자를 돌보는 것도 어쩔 수 없이 한 일 중의 하나였다.
젊은 시절 플레이보이였던 그는 손자가 태어나는 것을 최악의 일 중의 하나로 생각했지만 하나가 태어나자 그 뒤로도 줄줄이 태어나 이제는 진심으로 늙어버렸다고 생각했다.
한때는 사진을 취미로 삼아 딸이나 아내를 자주 찍곤 했는데, 손자들이 태어나고 난 이후에는 사진 찍는 일이 부쩍 줄어들었다. 그는 특히 자신의 얼굴을 종종 모델로 삼곤 했다. 하지만 주름살이 하나 둘 씩 생기고 난 후에는 그 즐거움도 사라져버렸다.

간만에 찍은 사진을 놓고 그가 고민하는 건 다른 게 아니었다.
역광을 두고 찍은 사진인데 얼굴 표정은 그가 원하는 기가 막히게 멋졌지만 얼굴 전체가 너무 작게 나왔던 것이다
음...어떻게 하지?
예전같으면 그런 걱정도 하지 않았을 터였다. 사진이 작다고 해서 자신의 매력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오늘은 좀 걱정되었다. 사진이. 사진이. 아무래도 작다고... 그것 용으로 쓰기엔.
화들작 놀라면서 그는 자신에게 다시 물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아마  이 사진이 조금만 더 크면 사용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꼭 커야만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확대하면 상관없는 거잖아. 아니. 그 전에 내가 왜 그 생각을 하는 거지?
그는 사진을 창가에 내려놓고 밖을 쳐다봤다.
유리창 너머로 평온한 물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그는 얼마 전 친구의 부고를 받았다.
상가에서  그는 친구의 보잘것 없는 사진을 보면서 지금처럼 중얼거렸었다.
사진이 너무 작아 친구여. 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그때같이 되지 않으려면 사진은 좀 클 필요가 있겠어. 그는 그 조그만 폴라로이드 사진을 빈 액자에 끼워넣었다.

적어도  조금은 큰 사진이어야 해.
내 아름다운 이들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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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넓얕. 들으시는 분이 많으신 걸로 아는데(책도 나왔으니.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맞나?;;;;;;)나는 이 팟캐스트를 최근에야 듣기 시작했다. 미술하고 커피 이야기는 좋았고...음, 지금은 비트겐슈타인 이야기하는 걸 듣고 있다. 좋아하는 것만 골라서 듣는 중...비트겐슈타인은 알지도 못하지만 워낙 유명해서리..

 

 

거기서 비웃음의 대상이 된 초병렬독서법... 팟캐스트에서 부르는 호칭은 마사장님.

알라딘 블로그에 초병렬독서법을 낸 출판사 블로그도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도 있으시려나.

나는 마사장님 좋아한다. 원체 모자란 구석이 많다 보니 책으로 채워보면 좀 괜찮을까 싶어서 생각하는 사람이라서...아, 마사장님 표현대로라면 원숭이...1 쯤 되려나.

 

나는 책 이야기 나오면 우선 책 이야기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도통 관심이 없다. 그래서 최근 자기계발 붐에 대해서 비판의 말이 쏟아져도 별 관심이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내가 좋아하는 거 가지고 말이 많군. 이 정도다.

지대넓얕에 대해서 실망하고 할 것도 없고, 생각하는 게 다르군. 이 정도랄까.

다만 그 책 끼고 한 5번 읽다보니 마사장님께 드는 의문 하나

그런데 다른 독서는 별 도움이 안되고 초병렬독서법으로 하면, 다른 사람도 똑같이 하게 되면

그땐 다른 독서법이 필요한가요?

초병렬독서법이 그렇게 굉장한 건가요? 이게 진리일 순 없는 거잖아요...

 

 

언젠가 마사장님이 후속편을 써주시지 않으려나...라고 기대하고 있는 중.

이 의문은 꼭 해결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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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동적으로 끝에 내용무. 라고 적을 뻔 했다.

막심 므라비차.

10년전 그의 음반은 참 즐거운 곡들이었다. 장중한 곡은 장중했고, 전자음도 거기에 썩 잘 어울렸다. 하지만 리마스터 된 최신곡들을 들은 순간, 나는 굳어지고 말았다.

 

과연 이것이 막심의 것인가?

전자음이 강하게 튀고, 전반적으로 막심의 건반은 생기를 잃은 것 같았다.

만약 음악이 진짜로 사람들의 성격과 시대를 반영한다면, 막심이나 최근의 팝적인 스타일을 강조하는 음악가들은 갈수록 찌들어서 생기를 잃어가고 있단 말인지...(가장 좋은 예 bond)

 

리마스터된 곡들이기에, 크게 내용물이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내가 어리석은지도 ...

 

내 인생의 포르테는 아니긴 한데, 한때 포르테였으니 태그는 여전히 내 인생의 포르테로 붙인다.

 

막심. 기운내서 예전보다 더 나은 연주를 들려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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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는 한 시간이 지나도록 계속되었다. 어전에서 일어나는 비무야 하루이틀이 아니지만, 오늘은 더욱 특이했다.
용가에서 올라와야 할 진상품들은 모두 하품이었고, 용가의 가주는 갑자기 하늘로 날아올라가 사라졌다고 하니
황제의 심기가 좋을리 없었다.
늘 용가에 대해서는 듣기 좋지 않은 이야기만 들려왔다.
황후의 심기도 그다지 좋진 않았다. 전설속의 여황제가 그녀가면 그녀의 조카는 그 자리에서 죽었어야 했던 것이다. 눈치없는 미축을 보는 게  탈이었을까...하고 황제와 황후는 생각했다.
일어경을 읊조리고 있는 미축은 아무 생각도 없이 비무를 지켜보았다.
소녀들의 어전시합이었다. 얇은 비단천을 상대에게 휘두르며 검을 날린다. 쌍검으로 겨우 막아내고 다시 반대편 소녀가 비단 채찍으로 상대를 겨냥하면서 장검으로 공간을 가른다.
신발은 잘 만들어붙인 진주로 되어 있고, 대모로 된 검집을 두른 그녀들은 잘 만든 인형같았다.

그 검이 그녀들에게 쥐어졌다면...
미축은 고개를 저었다.
저 인형들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황제와 황후는 피를 멀리해야 하기 때문에 검을 들 수 없었다. 신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 대신 황제의 검을 옛 황제시절부터 쓰던 인형에게 맡겼다.

"비도 천공. 쌍검 자야."
 
중얼중얼거리면서 황제는 손을 들어 인형들을 멈추게 했다.

"잠깐만 봐도 알겠군. 그래, 비룡, 그대의 친가의 수장은 겨우 이런 걸 만들어놓고 도망갔단 말이오?"

"...그저 말씀드리기 송구하올뿐."

"미축에게 맡겨야겠군. 검문제는 검을 쓰던 자가 다루는 것이 맞는 게요."

"예. 폐하. 신 미축 준비되었사옵니다."

"황가의 검과 새로운 용가 가주를 불러오라...그리고 사라진 가주는 숭문사에 억류시키도록."

황제는 뭔가를 알고 있는 것일까? 미축은 잠시 혼란에 빠졌다.
새 가주가 있을 리 없다. 용자가 붙은 직계는 이제 황후밖에 남지 않았다.
당연히 황후는 황제의 아내이므로 성이 말소되었다.
그렇다면 황제는 그 검에 대해서 뭔가를 아는 것이다...
패설사관도 파고들기 전에는 알기 어려운 무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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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을 그리는 건 허망한 짓이다. 
운룡은 자신의 이름자의 용을 좋아하지 않았다.

"용?"

미축의 말에 운룡은  망상에서 깨어났다..

"아, 미축인가. 황산에서 돌아왔나보군."

"......"

순간적으로 굳어지는 미축의 얼굴을 보고 운룡은 슬며시 미소지었다.

"난 왜 당신의 굳어지는 얼굴만 보면 기분이 좋을까."

"비뚤어졌기 때문이지."

미축은 그렇게 말하고는 흙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번 용이 죽었으니 황가도  드디어 안심하겠군."

운룡의 말에 미축이 고개를 저었다.

"그저 소문일 뿐이니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네."

"다음 황제야말로 하늘이 내린 용일테니 앞으로는 용자를 피휘하게 되리라 하지 않았던가."

"그건 믿을 수 없는 헛소리네."

"그거 자네가 한 헛소리라네. 미축. 그거  덕분에 자네가 패설사관으로 승진한 거 아닌가. 그리고  감시도 받지만 말이야."

미축은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인즉슨 내가 자네 일족을 위험으로 빠뜨렸다는 이야기처럼 들리는군."

"말이야 사실이지. 자네만 아니었으면 사기장이던 고모님이 황후가 될 일도 없었을테니."

미축은 서서히 불만을 표하고 싶어졌다. 아무리 황후의 조카라지만, 자신에게 계속 반말을 하다니...

"어딜 가나 자넨 제사냄새를 흩뿌리게 되는군."

운룡은 빙긋 웃으면서 하얀 가루를 미축에게 갑자기 뿌렸다. 향을 잡아주는 가루였지만, 미축은 갑작스런 공격에 옛날 하던 버릇대로 검대로 손을 가져갔다. 

"저런."

"아..."

운룡은 하하하고 웃고는 그 가루를 미축에게 던져주었다.

"이젠 마지막 용은 나겠지. 용자붙은 건 이제 고모님과 나하나뿐이니...하지만 나도 얼마 후엔 죽게 될거야. 그때가 되면 자네가 그 가루로 내 몸 전체에 불냄새 나지 않게 흩뿌려주게. 유품이야. 미축."

용가의 자손들은 성씨를 앞에 붙이지 않는다. 원래는 용을 앞에 썼다고도 하는데 황제의 권력이 세지고 나서부터는 그걸 돌림자로 썼다. 그럼으로써 그들이 원래 이 대륙의 선주민이었다는 것을 알리어 왔다.
하지만 황제들은 그걸 용납하지 않았고, 그들이 이름을 그대로 쓰는 대신, 장인이 되게 만들었다.용자붙은 이는 장인이 될 수는 있어도, 관리나 무사가 될 수 없었다.
오로지 예외가 있다면 일인지하 만인지상인 황후자리뿐이었다. 그래서 전대 용가의 장녀는 사기장이었다가 황후가되었다.

"아, 하나 부탁할게 또 있는데..."

운룡은 손질이 좀 덜 된 듯한 날붙이를 갑자기 미축 앞으로 쑥 내밀었다.
운룡이 하는 일은 늘 이랬지만 미축은 항상 적응이 덜 되어 놀랄 뿐이었다.

"이거 어떻게 생각하나?"

"검?"

"음. 눈이 달렸으니 대답은 정확하군."

운룡은 검을 들어서 이리 저리 흔들어보였다. 시엑! 쉥!
버드나무 가지가 기분좋게 흔들리는 느낌...이라고 하기에는 살벌했다. 하지만 검 자체에 탄력이 있어 비무하는 순간을 즐길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살인자가 쓸 만한 검이군. 그게 이번에 진상품인가? 움직임을 보아하니 어장을 많이 건드린 것 같군."

"호오. 역시."

운룡이 날붙이에 나무집을 대어보면서 말했다.

"원래 백부께선 간장과 막야를 기본으로 잡으셨지. 하지만 황가에 진상 올릴 날은 다가오고, 병은 심하시니 어쩌겠나. 내가 대신 만들었지."

"충고 하나할까?"

미축의 말에 운룡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필요없어."

"그 검 가지고 가면 자넨 죽어."

그말에 운룡은 미축의 옆에 주저앉아 날붙이 하나를 더  꺼냈다.

"이건 이름 없는 검이야. 무명이라고 하지."

"이름 있잖나."

"하여간 진상할 검은 이거네."

"...죽진 않겠지만 자넨 호되게 경을 칠거네. 진상품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니..."

"하지만 이 두 검의 주인은 따로 있어."

운룡은 검 두개, 아니 아직 검이 되지 않은 날붙이 두개를 엇잡았다.

"이 검에 이름을 붙여줄 사람. 자네."

"...나까지 곤란하게 할 셈인가?"

"그리고 이 검을 가지게 될 이름없는 어떤 무사. 그가 룡을 이어받게 되겠지."

"정말 죽을 셈인가. 이걸 황제에게 바치지 않겠다고?"

"내가 만들었지만 정말 이 검들은..."

아쉬운듯 운룡은 말을 흐리고는 갑자기 땅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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