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내 옆에 책이 있었으나,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다 읽었어도 후기를 남기지 못하거나 하는 시간의 반복이었다. 늘 그렇듯, 바쁘기만 한 마음에 시간이 협조해주지 못한 게 아닐까 핑계를 대보기도 하지만, 결국은 게으름이다. 좀 더 부지런하게 움직이지 못한 습관의 결과라고 해야 하나. 생각해 보니 이게 최근의,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구나 싶어서 할 말이 없기도 하다. 꽤 여러 해 동안 이랬던 것 같기도 하고, 말하고 보니 반복된 게으름에 부끄럽기도 하고. 머릿속을 빙빙 도는 하고 싶은 말을 더 생각하게 하지 못하는 저급한 체력,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게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정신을 갉아먹게 하는 일상, 그러다 보니 지친 몸을 뉘고 싶은 간절함만 남은 마음을 달래주는 방법은 그냥 눕는 것뿐이었다. 최근 만났던 책들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왜 연속적으로 그 재미를 이어가는 게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읽었으니 몇 마디는 하고 싶어서 남겨본다.



쌈리의 뼈

해환의 엄마 윤명자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윤명자는 자신이 치매에 걸리자, 자기가 쓰던 작품을 딸 해환에게 이어서 쓰게 한다. 윤명자의 말에 의하면 소설은 그녀의 인생이었다고 하니, 해환 역시 엄마의 인생을 이어가게 하는 이유를 거부할 수 없었으리라. 엄마가 쓰던 그 작품 <쌈리의 뼈>를 이어가고자 하던 그때, 쌈리의 재개발 과정에서 사람의 뼈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엄마 윤명자의 소설과 지금 일어나는 일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으며, 과거 엄마가 살아온 생을 마주하면서 해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한때 많은 사람이 오갔으나 지금은 폐쇄된 집창촌 쌈리. 소설가인 엄마가 그곳과 어떤 연관이 있어서 쌈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썼을까 궁금하던 것도 잠시, 계속 발견되는 뼈는 엄마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한다.


도대체, 치매는 무슨 병일까. 의학적으로 설명되는 거 말고, 우리가 겪는 하루하루의 장면에서 어떤 작용을 하기에 이렇게 위협적인 느낌부터 생기는 걸까.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진짜 어려운 병이라는 게 맞는 듯하다.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공감이 이 소설에 묻어나서 그런지, 주인공 해환이 정신을 잃어가면서 엄마의 몸에 상처를 내는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생생했다. 소설은 미스터리하면서도, 지금은 치매에 걸려서 현실과 과거를 오가는 한 사람의 역사를 보여준다. 과거 어느 시점의 이야기는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누군가의 죄는, 시간은 또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묻기도 한다. 처음에는 윤명자와 지금 발견되는 뼈 사이에서 범인을 찾으며 읽기에 급급했는데, 과거의 어떤 시간이 현재를 흔들기도 하는 흐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슬프고 아프지만, 불안과 혼란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이해하고 싶다.



돈가스 : 씩씩한 포크와 계획적인 나이프

누군가의 힐링 음식이 될 수도 있는 돈가스. 가끔 먹기는 해도 나의 최애 음식은 아니건만, 이 책을 읽고 나면 돈가스를 찾아 여행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돈가스 맛집을 찾기도 하지만, 늦은 귀가에도 어김없이 찾아내는 냉동실의 돈가스는 어지간한 애정이 아니면 가까이하기 어려울 것도 같은데, 이만한 보상에 웃음꽃을 피울 수 있다면 이것도 행복이겠지. 함께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부부 디자이너, 돈가스 앞에서는 더없는 화합을 보여주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일에 지치기도 하고, 통장을 스치고 지나가는 월급에 서글프기도 하지만, 언제 어디서든 돈가스가 위로해주고 있으니 마냥 슬픈 것만도 아니었다.


돈가스가 그냥 돈가스지, 하는 생각을 가진 나에게 색다른 방식의 접근을 보여준 책이었다. 아니, 돈가스 종류가 이렇게나 많은가 싶기도 했고, 돈가스와 다른 재료(음식)를 더해 새로운 버전으로 먹는 돈가스가 태어나는 것 같기도 했다. 게다가, 음식으로 위로받을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폭발적으로 살이 찌고 맞는 옷이 없어서 우울하기도 하지만, 맛있는 음식 앞에서 행복해지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매일 다이어트를 생각하면서, 사흘 만에 한 번씩 다이어트를 시작(첫날 식사조절 둘째 날 치팅데이 셋째 날 요요)하면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사실이 꼭 슬픈 것만은 아니었다. 이 책 읽고 나면 며칠 동안 돈가스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테니 조심할 것.



우리는 결국 부모를 떠나보낸다

이런 소재의 책이 처음은 아니지만, 읽을 때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누구나 부모를 떠나보내는 과정이 똑같이 찾아온다는 사실, 죽음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느끼는 마음은 조금씩 다를 수도 있다는 이해. 죽음으로 부모와 이별하게 되는 것이 너무 당연하니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게 또 말처럼 쉽지 않아서 여러 가지 감정이 충돌한다. 저자는 언젠가 우리가 마주할 이 과정에서 겪어야 할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반드시 직면할 이별을 의미 있게 준비하도록 돕는다. 지금 이 과정(나이 든 부모를 돌보는)을 겪는 사람들, 혹은 다른 가까운 이와 이별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 시간을 잘 건너갈 수 있는 현실적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병원을 자주 드나들다 보니 환자와 보호자의 모습을 자주 본다. 어느 순간부터 자주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있는데, 60대의 자녀가 80대 이상의 부모를 모시고 진료받으러 오거나 입원 생활을 하는 거였다. 말 그대로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시대가 와버린 거다. 나 역시 병원에서 봤던 그들과 다르지 않다. 80대 엄마를 모시고 다니면서 버거움을 느낄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감정이 파도를 치고, 지금 이 상황을 부정하고 싶어진다. 내가 왜? 왜 나만?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걸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화들짝 놀라곤 한다. ‘언제까지가 끝나면 진짜 이별이라는 사실이 무서워서. 저자의 말을 새기면서 이 과정, 이 시간을 잘 건너가야겠다는 마음을 다잡아본다. 이 시간을 더 의미 있게 써야 하는, 지금이 아니면 못 할 것들을 더 소중하게 대해야겠다는 다짐을 그려본다. 다시 못 올 시간이기에 말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읽어도, 읽은 책보다 못 읽은 책이 더 많을 거다. 구매한 책이 지금도 옆에 쌓여 있고,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은 다 못 읽고 반납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꾸준히 희망 도서를 신청하고 있다. 그렇게 또 대출 가능 알림이 오면 도서관으로 향하곤 한다. 이게 무슨 시간 낭비인가 싶어서 가끔 멍해지다가도 습관처럼 반복하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보면, 어쩌면 이런 반복은 내가 나를 위로하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차피 못 읽을 거 알면서 외출할 때 가방에 책을 챙겨 넣는 것처럼, 다 살 것도 아니면서 신간 카테고리를 계속 기웃거리는 것처럼, 그러면서 또 무슨 책을 사면 좋을지 궁금해하면서 책 소개 글을 읽고 있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이런 반복, 이런 습관이 엄청난 위로일지도 모르니, 그저 이해해달라는 말로 변명을 하면서, 다음 달 희망 도서는 또 어떤 책을 신청할지 메모하고 있다










#쌈리의뼈 #조영주 #돈가스 #씩씩한포크와계획적인나이프 #띵시리즈

#우리는결국부모를떠나보낸다 #기시미이치로

##책추천 #자비의시간 #안녕이라그랬어 #벌집과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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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사람들 - 문래동 야간 택시 운행 일지
이송우 지음 / 빨간소금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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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몇 번 다녀왔더니 한 달이 그냥 지나가 버렸다. 진료받고 예약하고, 다시 진료받고 예약하고. 비슷한 과정이 반복되니 그냥 하루 중 일부 시간을 병원에 쓰는 것뿐인데, 뭔가 마감에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감 치고 나니 다시 또 마감을 치는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주일의 반복 같은 느낌 말이다. 병원 가는 날과 다음에 병원 가는 날, 그 사이의 시간이 오롯이 편하지 않은 게 이상했다. 뭣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일상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고 불안을 내려놓아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새벽에 굵은 빗방울들이 사나웠다. 폭우가 내리면 와이퍼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견디기 어렵다. 와이퍼의 움직임 사이로 빗발 내리는 풍경이 날카로웠고, 풍경의 칼날에 베이지 않으려면 집중해야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전면에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안개처럼 사위를 채우는 빗줄기 속에서 물기가 번들거리는 얼굴의 숱한 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나였다가, 당신이었다가, 아이들이었다가, 부모님이 됐다. 나의 모든 들이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니다. 그들은 사랑을 유예하고, 사랑을 전하고 싶고, 사랑에 울부짖는 청년들에게 손을 흔들었을 것이다. (62페이지)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살아가는지 궁금해지던 차에 만난 이 책은 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개인적인 상황으로 반년 정도 택시를 운전하던 저자는, 택시에 오른 우리 시대 사람들을 이야기했다. 특히 야간 택시를 운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우리 사는 모습 그대로였다. 시대가 다르고 나이가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이 변화했기에 미처 알지 못했던 방식도 있었지만,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하루의 노동을 마친 청년들이 땀내를 풍기면서 택시에 탔지만, 열심히 사는 모습 자체에 괜히 뿌듯했다. 밤늦은 시간 대학교 안으로 콜을 부른 연구원은 나아갈 길이 멀지만 멈추지 않고 연구가 계속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콜을 부르는 방법을 몰라서 한참을 길가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노인의 모습은 우리 엄마였다. 구치소로 면회하러 가던 젊은 여성을 보고 저자는 오래전 교도소로 아버지를 만나러 가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해 택시를 모는 운전사와 각자의 목적지로 가는 승객의 만남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둘 사이의 묘한 분위기와 대화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병원 갈 때마다 한 달에 한두 번쯤 택시를 타는 나에게 저자가 승객과 나눈 대화의 모습은 좀 낯설다. 그냥 조용히 가고 싶어서 시트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가는 나는, 택시 기사님의 이런저런 대화 시도가 좀 버겁다. 이쪽 길은 공사 중이라 다른 길로 돌아서 가겠다는 등의 안내를 하려는 말 말고, 정치나 경제 얘기를 당연하게 해야 한다는 자세로 말을 꺼낼 때마다 속이 답답해진다. 그러니 저자가 택시에 오른 승객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잠깐이지만 대화에 참여하는 모습이 편하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런 참견(?)이 싫은 나도 저자의 사색을 듣고 있노라면, 가끔은 택시 기사님과 승객과의 대화가 필요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다.


저자는 인혁당재건위 피해 생존자의 아들이다. 택시에 오른 승객들의 이야기 속에 자신과 비슷한 처지를 느낄 때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전도유망한 아버지의 삶은 오랜 시간 계속된 수감생활과 보호관찰로 무너졌다. 고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저자에게 연좌제가 적용되어 소박한 꿈마저 접게 했다. 미래의 어느 날 자신이 완성하고 싶었던 삶, 그 자유마저 빼앗기고 빨갱이 가족이라는 낙인은 친구조차 제대로 사귀지 못하게 했다. 이런 환경에서 사람이 어떻게 자랄 수 있었을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 궁금증만으로 내가 이들의 시간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 사건이 다시 언급된 건 몇 년 전 일이다. ‘인혁당재건위 피해자 대상 국가 배상금 반환 소송은 피해자들을 그 고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했다. 피해자들이 오랫동안 싸워서 받게 된 배상금, 그 배상금이 과하다면서 다시 시작된 소송, 결국 피해자들이 부당이익금이라는 명목으로 반환하면서 끝나게 된다. 이게 정말 끝난 걸까? 과거의 사건은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다. 그 지난한 삶이 앞으로 없을 줄 알았는데, 그동안의 세월을 보면 그것도 장담할 수 없다.


성장하면서 배우지 못한 사회화를 저자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배운 것 같다고 말한다. 혼자 조용히, 많은 것을 숨기듯 살아왔던 그의 환경이 타인과 함께해야 하는 필요성을 갖지 못하게 한 듯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협업의 구조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이제는 야간에 택시를 운전하면서 승객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누군가의 어깨에 무겁게 얹어있는 짐, 대리운전을 마치고 다시 택시에 올라타는 승객, 좋은 일로 회식하고 만취해서 귀가하는 가장의 모습, 자식이 걱정할까 봐서 몰래 직접 택시를 잡고 병원으로 향하는 중년 여성 등 저자의 택시에 오르는 많은 사람이 제각각 살아가는 모습은 친근했다. 내가 아직 다 겪지 못한 사연마저 익숙했다. 아마도 우리가 서로 다른 곳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살아가는 모양새가 비슷해서라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느끼는 기쁨과 슬픔, 고통과 아픔마저 닮아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미술을 전공하고 그것을 생업으로 삼았던 이도, 대기업 임원으로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이도 밤과 새벽의 차량 속에서 모두 똑같았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잊기 위해서 가로등 아래 펼쳐진 검은 도로 위를 달렸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그 고속의 질주 속에서 시간을 거스르기도 하고 시간을 앞당겨 쓰기도 하면서 말이다. 홀로 맞는 죽음처럼 우리는 적막 속에서 우리는 적막 속에서 홀로 삶을 맞고 있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그 지극한 외로움이 주는 위안에 빠진 서로를 알아챘다. 누군가의 외로움을 채워주기 위해서 우리는 오랫동안 외로움을 쌓아 두었던 것이 아닐까. (149페이지)


참 잘 견뎠다. 무너지는 고통, 치열한 경쟁, 스스로 물러나야 했던 순간까지, 잘 견뎌왔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 않게, 잘 될 거라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에도 마냥 좋기만 한 것도 아니게, 이상하게도 문장 속에 감정이 다 실리지 않은 건가 싶을 정도로 담백했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살아가는 내내 견디는 중이라는 게 맞는 듯하다. 오늘도 밤의 택시에 오르는 많은 승객처럼, 괜찮아질 거라는 마음으로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는 나도, 제각각의 사연으로 오늘을 견디는 사람들도 힘을 모으는 중이라고 말이다.



#밤의사람들 #이송우 #문래동야간택시운행일지 #에세이 #한국에세이

##책추천 #견딤의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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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할 틈이 없는 무덤 관리인의 하루
한수정 지음 / 희유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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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가족인 삼촌의 죽음은, 수영에게 실직과 빚을 남겼다. 삼촌의 장례를 치르는 게 억울한 건 아니다. 누구보다 자신을 아낀 삼촌을 잘 보내드려야 하는 마음이었으니까. 할 도리를 다하고 남은 게 현실을 걱정하는 일이었으니, 그런 수영을 누가 내려다보기라도 한 듯이 공동묘지의 구인 공고를 보게 된다. 마침 장례식이 끝나면 삼촌이 묻힐 곳이었다. 일도 구하고 삼촌도 계속 볼 수 있으면 좋을 거라, 고민 없이 면접을 보고 그곳에 취직하게 되었다.


죽음 너머의 또 다른 세상이 있을까? 죽은 후에 내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가 없지만, 지옥이든 천국이든 간다는 게 정말 맞는 말인지 알고 싶었던 적이 있다.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 보는데,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고 잘 살아야 지옥의 뜨거움을 맛보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더라만, 그게 어디 마음먹은 대로 살아진다더냐. 죽음 이후의 시간을 살아보지 못했으니, 알 수가 없지. 마찬가지였다. 살면서 공동묘지를 상상한 적도, 상상할 이유도 없었는데, 한 가지 궁금한 건 있었다. 아버지는 시립 묘지에 묻혔다. 설날이나 추석, 기일에 한 번씩 찾아가거나 시간 될 때 잡초를 정리하러 가곤 했다. 물론 항상 낮에 갔다. 해가 짧은 겨울철에는 시간이 애매하면 다음 날로 방문을 미루곤 했다. 어두워지면 무서우니까. 낮에 방문한 그곳에서 종종 다른 묘지의 방문객을 보기도 하고, 관리인을 마주치기도 했다. 길게 머물러야 10분 이상이니까, 그곳의 관리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내가 지켜볼 겨를은 없었다. 하지만 가끔 궁금하긴 했다. 혹시 밤에 이곳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하고 말이다. 아마, 무섭긴 하겠지?


24시간 운영하는 공동묘지. 근무하는 직원들의 업무를 모두 경험하는 수습 기간을 잘 마치면, 수영은 정식 직원이 된다. 주간 근무와 특별 1조 근무, 특별 2조 근무, 야간 근무를 경험하고 적응하는 시간이 쉽지 않았다. 만만하게 생각한 적도 없지만, 이렇게 다양한 성향과 사연을 가진 직원이 있을까 하면, 무덤을 찾아오는 방문객의 마음까지 헤아려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수영이 이대로 3개월을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하면서 읽다 보니, 이거 묘한 매력이 있는 장소가 아닌가.


무덤을 관리하는 일은 간단하지 않았다. 때를 맞춰 물을 줘야 하고, 매번 섬세하게 살피면서 벌초도 해야 한다. 사무실과 화장실 등 건물 관리와 무덤을 잘 관리하는데 사용하는 장비들 점검하는 것도 필수다. 방명록 확인은 기본이고, 방문객과 마주치면서 대화를 하게 되면 근무일지에 상세하게 적어야 한다. 방문객이 적어낸 건의 사항도 확인하고 해결해야 한다. 물론 함께 일하는 동료와 잘 지내는 것도 중요했다. 사람 좋아 보이는 동윤이 일을 가르쳐주면서 보여준 호의, 부소장으로 불리는 상원의 시니컬한 응대에도 이미 따뜻한 마음을 읽어버렸다. 마지막에 만난 선주가 처음부터 세워놓은 벽에 이유가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그 벽은 잠깐 사이에 스르르 무너져내렸다. 뭐든 진심이 통할 때, 이유 없이 세워놓은 벽은 사라지지 마련이니까. 어느 정도 적응하니 공동묘지에서 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다. 정해진 일정표에 맞춰 마음을 다해 소화해내면 되었다.


어려웠던 건 방문객과의 대화, 그걸 정리하는 방식이었다. 누군가 멍하니 무덤을 내려다보기도 하고, 봉분에 사람 키만큼 올라온 풀을 정리하지 말라는 요구도 의아했다. 매일 다른 사진을 들고 와서 죽은 남편에게 보여주고 가는 여성도 있고, 어린 동생을 먼저 보낸 슬픔을 가슴에 묻은 형의 사연도 안타까웠다. 이상하게 자주 망가지는 가로등은 야간 근무의 긴장감을 높였고, 밤에 도깨비불과 소복 입은 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은 이 스산함에 소름을 더해주기도 했다. 설마 귀신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죽은 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생기더라만. 밤에 근무하는 일을 마냥 쉽게 여기지도 않았지만, 아무래도 일하는 곳의 특성이 이러한지라 더 집중하고 살펴보기는 해야 할 것 같다.


등장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있자면, 살아가는 일이 참 당연하면서도 고단해 보이기도 한다. 마음을 나누며 즐겁기도 하면서, 누군가를 잃은 슬픔을 감당하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알겠더라. 옆에 있을 때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상실을 경험하는 순간 너무 소중했다는 걸 조금 늦게 알게 되는 일. 이런 것들을 겪으며 살아가는 게 현실이라는 걸 피부로 느끼면서도, 종종 잊곤 하는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하는 이야기였다. 비슷한 슬픔을 겪은 사람들, 이 슬픔을 어떻게 견디고 살아갈까 궁금할 때 서로 마음을 나누며 치유하고 위로받는 장면들에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한 장면 저장하는 것도 같고, 서로 다른 성격에 어떤 문제를 대처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또 꿋꿋하게 살아가는 게 우리의 모습이자 의무가 아닐까 싶다고.


수영이 모든 근무조를 다 체험하며 수습 기간을 잘 마칠지, 만약 정직원이 된다면 어떤 근무조를 선택할지 궁금해하면서 읽었다. 몇몇 장면들은 머릿속에 그려가면서 공동묘지의 일과를 이해하기도 했다. 이 소설 속 누군가의 말처럼, 죽은 자의 무덤을 깨끗하고 단정하게 관리해주고, 방문객(주로 유족이겠지만)의 마음도 헤아리는 게 그들의 역할이라는 의미를 이제는 조금 알겠다. 직접 경험하지 못하니, 가끔 그곳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궁금하기도 했던 곳이다. 그곳에 묻혀 누군가 기다리는 이를 생각하게 되는, 지금까지는 내가 방문객으로 찾아가는 곳이었다. 언젠가 내가 죽어 어딘가에 묻혔을 때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리움으로, 혹시 그곳에 묻힌 사람들과 모여서 수다 떨고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런데 정말, 도깨비불이랑 소복 입은 귀신이 나타나는 걸까?



#지루할틈이없는무덤관리인의하루 #한수정 #희유출판사 #소설 #한국소설

##책추천 #치유 #위로 #살아가는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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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메이드 2 - 하우스메이드의 비밀
프리다 맥파든 지음, 황성연 옮김 / 북플라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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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나 비슷한 걸까. 전과를 가진 사람을 편견 없이 봐주는 사람이 거의 없는 듯하다. 1편에서 불행한 한 여자를 도우며 자신의 재능(?)을 뽐냈던 밀리. 밀리의 팔자가 뭔가 달라졌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2권을 펼쳤다. 하지만 밀리의 전과는 여전히 그녀의 직업 구하기에 발목을 잡았다. 웬만한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다. 신원조회가 필요한 일은 아예 지원서조차 넣기 힘들었다. 구직 사이트에 자기 이력을 등록하고 누군가에게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일이, 신원조회가 필요하지 않은 조건으로 누군가 자기를 선택해 주기를 기다리는 일이 계속됐다. 한 달 월세를 걱정하며 지내기를 이어가고 있었던 거다. 그나마 좋은 소식은 그녀가 사회복지를 전공하며 학업을 이어가고 있었고, 자기가 옳다고 믿으며 구해줬던 여성들의 입소문과 그녀의 전공이 결합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성과가 있었다. 그래도 그녀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게 현실이기도 했다.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는 날들에 행운처럼 밀리에게 새로운 고용주가 나타났다. 뉴욕 맨해튼, 부자 동네의 펜트하우스에서 코인스탁의 CEO 더글러스가 그의 아내 웬디를 위해서 집안일 해줄 사람을 찾던 것. 재산이며 외모, 아내를 사랑하는 다정함까지, 더글러스는 나무랄 게 없는 남자였다. 하지만 밀리가 그의 집에서 일하기 시작한 후에도 한동안 그의 아내 웬디를 보지 못했다. 웬디는 몸이 좋지 않아서 2층의 손님 방에서 쉬고 있다며, 그 방에 접근하지 말라는 더글러스의 주문이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웬디가 아픈 줄 알았는데, 이 집에서 일하는 동안 밀리는 이 부부의 드러나지 않는 생활을 보게 된다. 곧 웬디의 구조요청 신호를 알아챈 밀리는 기꺼이 웬디를 돕기로 한다. 그동안 밀리가 몇 명의 여자를 구해왔듯이, 이번에도 그래야만 했다. 웬디를 이 지옥에서 꺼내줘야만 했다.


1편과 달라진 게 뭐가 있을까 싶었는데, 밀리와 한 팀을 이뤄 활약했던 엔조의 소식은 없었고, 밀리는 썩 괜찮은 조건의 변호사 브록과 연인이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의 접점이 어디였을까 궁금할 사이도 없이, 밀리의 미래가 환하게 밝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두 사람의 연애를 지켜보게 된다. 살인 전과가 있는 여자와 변호사의 만남이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의아하기도 했지만, 뭐 만나면 안 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어쨌든, 브록은 밀리와 빨리 같이 살고 싶어 했고, 밀리는 자기의 비밀을 아직 브록에게 말하지 못한 것을 괴로워한다. 자기에게 살인 전과가 있다고 브록에게 말해야 하는데, 적당한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그가 지금처럼 밀리와의 미래를 좀 더 구체적으로 계획하기 전에 말해야 했다. 그녀에 관해 다 알고 나서도 그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변함이 없다면, 그때는 브록과의 먼 훗날까지 그려봐도 좋으리라.


밀리의 용기가 많은 여성을 구해줬듯이, 그녀는 보이는 그대로 마음이 정하는 대로 움직였다. 대책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죽음에 가까이 닿아 있는 여성들의 손을 잡아주었다. 웬디를 보면서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녀를 더글러스에게서 구해내지 않으면 밀리 역시 그 펜트하우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동안 해왔던 대로, 한 생명을 구하는 마음으로 해냈다. 웬디를, 구해냈다.


그동안 나는 수많은 여성들을 도왔다. 항상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나는 항상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여성들이 내게 도움을 요청할 때면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었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391페이지)


이번에도 밀리의 선택은 기대했던 결과를 낳았을까? 이렇게 밀리의 활약을 보여주는 시리즈가 계속되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1편을 끝냈고, 2편의 흐름을 보면서 의문이 들었다. 밀리의 선한(?) 의도가 전해지면 좋은데, 누군가는 사람의 선한 의도를 이용하려고 들기도 한다는 게 씁쓸하더라. 죽어야만 끝나는 일이 있다. 나는 밀리가 구해준 여성들이 이런 생각을 자주 한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떤 고통 앞에서, 내 의지와 노력으로 그 고통을 벗어날 수 없다면, 결국 내가 죽음으로써 그 고통도 끝날 테니까. 그래서 자기가 죽는 어느 날을 상상하며 버티고 있던 건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녀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듯 도움을 주었던 밀리의 진심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의미로 다가가지 못했음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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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마다 첫차의 운행 시간이 다르겠지만, 고등학교 다닐 때 탔던 첫차는 새벽 6시 반이었다. 그 차를 타고 학교에 도착하면 거의 7시였다. 여름은 그나마 나은데, 시골의 겨울에 7시는 아직 캄캄한 밤이었다. 그래도 하루를 조금 일찍 시작하고 싶어서, 머리가 따라주지 못하는 공부에 그래도 성의를 보이고 싶어서 일찍 등교하곤 했다. 그때 이후로 새벽 첫차를 탈 일은 없었다. 그저 조금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을 뿐, 버스가 조금 밀려도 시간을 꽉 채워서 움직이곤 했으니까. 지금 생각해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건, 그 이른 시간에 나만 버스에 타고 있던 게 아니었다는 거다. 그리고 세월이 더 흘렀고, 거의 이십 년 전쯤이었던가. 서울에 종종 다니던 때다. 친구가 퇴계원에 살았고 거기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일을 보고 다녔던 적이 있다. 새벽 여섯 시쯤 친구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나와서, 강변역에서 지하철로 갈아타고 움직였는데, 거의 죽을 뻔했다. 아침 7시도 안 되는 시간에 지하철은 움직일 수조차 없을 만큼 사람이 꽉 찼고, 겨울의 추운 날씨에 지하철 안의 히터는 내 속을 뒤집어 놓았다. 목적지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내려서 화장실에서 구토하고 변기 위에 앉아서 한참을 기대어 있던 기억. 며칠을 그렇게 다니고 집으로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정말 열심히 사는구나.




동이 트기도 전,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서 첫차를 타는 이 사람들은 어디로 그렇게 바삐 가는 걸까. 예상했겠지만, 이들은 어느 건물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해낸다. 건물의 청소부, 밤새워 근무한 이와 교대하는 경비,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조리사 등 이 도시의 구석구석을 지키는 필수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지난주부터 시작된 긴 연휴에 아파트 쓰레기장의 쓰레기가 쌓여 있는 것만 봐도 이들이 해내는 노동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연휴 동안 쉬었다고 해도 편하지만은 않았을 거다. 연휴가 끝나면 밀린 일이 산처럼 쌓여 있을 테니까. 단지 해야 할 일의 양이 많아서 힘든 건 아니다. 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순간이 생길 때마다 자존감이 무너지는 상황 때문이다. 이름으로 불리는 게 아니라 그들을 아줌마나 노인네로 부르며 낮게 보는 사람들 때문에, 분명한 휴게시간임에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을 따지지 못해서, 편하게 밥 한 숟가락 뜰 공간조차 없어서 괜한 서러움에 눈물이 난다. 그래도 무너지지 않고 자기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 자리가 비워진다면 많은 사람의 일상을 지켜내지 못할 테니까.


어느 날 갑자기 학교 급식실 파업으로 엄마들은 도시락 준비에 당황하기도 한다. 도로의 한쪽에 쌓인 쓰레기가 치워지지 못해서 지저분해질 때도 있다. 모두가 퇴근한 건물의 안전은 누가 지키려나. 제조업의 한 부분이 멈춘다면 생활필수품의 어떤 건 사용하지 못할 거고, 고장이 난 자동차의 부품은 또 어디서 구하게 되는 걸까. 근로자, 혹은 노동자. 노동력을 제공하고 얻은 임금으로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 많은 사람이 노동자로 살아간다. 이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자기 일 열심히 하며 살아가는데, 왜 투명 인간 취급당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의 자리가 다 비워진다고 생각해 보면 끔찍한데 말이다. 힘 있는 자의 목소리는 잘 들으면서, 왜 전쟁 같은 일터에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쳐다보지 않으려 하는지. 이 사회를 구성하는 많은 사람이 6411번 버스에 타는 사람들인 텐데, 바로 우리인데 말이다.




고 노회찬 국회의원의 말로 알게 된 6411번 버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버스를 검색해 봤다. 서울에 살지 않는 내가 알 수 있는 버스가 아니어서 더 궁금했다. 평일 기준 12분의 배차 간격, 신정동과 선릉역 사이를, 새벽 345분에 첫차가 운행된다고 한다. 정말이었다. 그 시간에 버스가 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운행하는 버스가 한번 돌고 오면 거의 세 시간이 소요된다. 그 사이에 버스에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은 숨 한번 돌릴 사이도 없이 바삐 움직인다. 일터로, 혹은 밤샘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많은 정책이 새롭게 도입되고 사라진다. 그 정책들이 직접 적용되어야 할 대상의 목소리는 어디까지 전해지는 걸까. 그 목소리가 무시당하고 힘을 갖지 못해서 늘 약자의 어려움은 사라지지 않는 듯하다. 그런 어려움을 직접 지켜보면서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윤지영 변호사도 있었다.


직장갑질119’의 대표이자 노동인권 변호사인 윤지영 저자의 안녕하세요, 한국의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의 법정투쟁 이야기다. 사실 피해자가 혼자 법을 이야기하고자 했다면 어려웠을 듯하다. 저자의 전문적인 지식이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었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도 있었고, 처음 접하는 내용도 있었다. 아니, 근로자에게 성별로 다른 정년의 나이를 적용하는 곳이 국정원이었다. 현장 실습생의 실습은 어디까지인지 따져 물을 수 있을까. 파견 노동자들에게 대놓고 성희롱해도 누구 하나 그게 잘못인지 알지 못하는 회사라니. 그날의 기록들이 아니었다면 증명하지 못했을 택시 기사의 사납금 사건은 어떤 계산법으로 나온 금액인가. 비정규직 PD의 업무는 어디까지였을까. 말도 못 할 사연들이 가득했다.


진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무섭기까지 했다. 노동자로 살아가는 일이 힘들다는 건 너무 잘 알았지만, 이 책을 읽고 오랜 시간 동안 싸워온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숨이 턱 막혔다. 피해자가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하는 게 법으로 싸워야만 하는 거라면, 이들이 선뜻 법으로 싸우고자 결심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노동자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존엄을 지키는 게 노동법이라는데, 노동자가 법정에서 이 노동법을 주장하는 현실은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한 건지. 그 과정에서 노동변호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그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저자의 고군분투가 이 책에 그대로 녹아 있다. 이보다 더 몰입해서 빠져드는 드라마가 또 있을까 싶어질 정도였다. 누구라도 이 책 속 사례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억울하고 기가 막히고, 힘이 없다는 이유로 이렇게 당하고 있어야만 하는지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힘 있는 자들이 법을 앞세워 싸우고자 할 때 저자와 같은 조력자가 없다면 이 싸움의 결말이 어떨지 눈에 보이는 듯하다. 저자에게 다가온 사건이 이 정도였다면, 법의 도움조차 받지 못하고 미리 포기해버리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읽으면서 분노가 일었고, 저자와 같은 이들이 있어서 용기를 잃지 않는 순간은 또 만들어지는구나 싶었다. 이 책 속의 피해자들이 미리 겁먹고 포기하지 않고 저자를 찾아왔던 것처럼, 피해를 보상받고 노동의 현장에서 다시 일할 수 있도록 연대하는 이야기에 저절로 힘이 난다.


51. 공식적으로는 근로자의 휴일일지만, 남편은 회사 노동조합의 일정에 맞춰 집회에 갔다. 태풍급의 바람이 불고 비가 많이 내렸는데, 약속된 일정에 참여한다고 휴일을 반납했다. 특별한 주제를 이유로 만들어진 자리는 아니었다. 근로자의 날을 기념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내는 정도인 것 같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서울이 아니라 옆 도시로 가는 거여서 하루의 절반 정도 시간을 보냈지만, 곧 있을 임금 협상과 함께 무거운 일들을 앞둔 때여서 그랬는지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고 했다. 그저 하루하루, 자기에게 주어진 일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언제쯤 아무 근심 없이 아침 출근길을 나설 수 있을까. 다행인 건 저자와 같은 노동변호사와 많은 인권운동가, 노동의 가치와 억울함을 대신 표현해주는 작가들, 이들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방송인 등 많은 사람이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함께 해주고 있다는 거다. 더 많은 당사자가 용기 낼 수 있게, 노동자의 존재가 부정당하지 않을 이야기로 남아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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