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없는 것 하영 연대기 3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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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 연대기의 마지막 작품이 출간되었다. 눈앞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보고서도 아무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였던 열한 살 하영의 표정이 섬뜩했는데(잘 자요, 엄마), 그 아이는 자라서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해서 많은 독자의 요청에 답하듯 그 이후 하영의 청소년기를 이어서 보여줬다(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그래서? 미성년자였던 그 아이의 심성은 거기서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했다. 언제까지나 보호자의 사인이 필요한 미성년으로 살아갈 수는 없을 테니까. 성인이 된 하영은 앞선 출간작에서 확인했듯이 악이 가득한 인간으로 보였다가도, 선한 인간으로 거듭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하기도 했다. 악의 근원이 하영의 아버지일까, 아니면 자라면서 익숙해진 습관 같은 것일까.


성인이 된 하영은 미국으로 떠난다. 하영이라는 이름도 버리고, 부모의 경제적 지원도 받지 않았다. 그런 현실이 뉴욕 생활을 더 힘들게 했다. 카페의 아르바이트만으로는 뉴욕의 높은 물가와 월세를 감당하는 게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의 유명한 아트센터 대표로부터 제안받는다. 자기 딸 세나와 친구가 되라고, 자기에게 세나의 일상을 알려주면 된다고. 말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이게 가능할까 고민할 사이도 없었다. 돈이 필요했다. 하영에게 관심을 두고 먼저 카페로 찾아오는 세나와 친해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돈이 생기니 일상이 여유로워진 하영도 이 일이 나쁘지 않았다. 다만, 궁금했다. 세나의 엄마는 왜 감시하듯 딸을 지켜보는 것인지, 세나의 몸에 있는 흔적은 어떤 이유로 생긴 것인지, 이 관계가 언제까지 이렇게 지속될 수 있는지.


세나가 친구라고 카페에 데리고 온 아이들을 본 그날, 세나의 친구가 하영에게 무례하게 굴었고, 세나는 응징하듯 그 친구의 애인을 지하철에 떠밀어버렸다. 그 장면을 하영이 목격했다. 하영은 다시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항상 자기 주변에 떠도는 죽음의 냄새, 죽음을 도구처럼 휘두르는 사람들의 체취를 다시 느끼기 시작한다. 어쩌면 세나는 자기와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다. 하영은 수시로 자기 귓가에 속삭이는 죽음의 목소리를 떨쳐내려고 애썼지만, 그것마저도 쉽지 않다. 그래서 떠났다. 조용히 살아가면서, 자기에게 있는 줄도 몰랐던 그림의 재능을 찾아내고 화가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운이 좋았는지 첫 전시회를 크게 하게 되었고, 거기에서 세나를 다시 만난다. 그리고 그날, 또 한 번 화재가 일어나고 하영은 또 한 번의 죽음을 목격한다. 이제 정말 떠날 때가 되었다.


여전히 냉혹한 모습으로 죽음을 일으키는 주인공의 자리에 있을 거로 생각했다. 내가 생각한 하영은 선함이 있으면서도 언제나 악함이 먼저 그 힘을 발휘하곤 한다고 여겼으니까 말이다. 그동안 많은 죽음의 한가운데 있던 하영을 생각하면, 여전히 드러나지 않은 비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런 예감이 틀린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도 어떤 기대가 사라지지 않는다. 악의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찾게 만드니까. 하영이 세나를 보면서 마치 거울을 보는 느낌을 받았을 때, 비슷하게 이유를 찾게 된다. 하영에게 죽음을 행하게 했던 아버지, 세나를 조종하듯 감시하며 기대에 부응하게 하는 세나의 엄마. ‘너를 위해서라는 꼬리표를 달고, 엄마니까 믿고 엄마니까 의심하지 않게 하면서 따르게 하는, 주문 같은 말에 빠지게 되는 거다.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고민할 사이도 없이 엄마가 갖고 싶어?’라고 묻는 순간 세나는 자기가 그걸 원한다고 믿었다. 아이는 그렇게 자란다.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엄마의 간절함에 부응하듯, 엄마가 만드는 완벽한 인형으로.


태어나는 순간 탯줄을 끊었음에도 여전히 아이가 자기 품에 있어야 한다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라야 한다고 믿는 부모들이 너무 많다. (328페이지)


앞서 출간된 두 작품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다양한 모녀 관계가 등장한다. 엄마에게 느끼는 죄책감, 딸에게 느끼는 미안함 같은 마음이 선경이 의뢰받은 상담 과정에서 들려온다. 이 부분 읽으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부모와 자식이 단순한 관계가 아니어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답을 찾는 것도 간단하지 않았던 시간이 떠올랐다. 마음의 상처가 말 한마디로 치유될 수 없듯이, 이미 상처가 아물었다고 해도 그 자리에 흉터가 그대로 남아 있듯이, 우리는 가족으로 살아가면서 온전히 치유될 수 없는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결국 이 작품은, 이 시리즈는 부모와 자식이라는 관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는 폭력의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들, 그 과정에서 아이가 어떤 인간으로 자라는지 보여주는 게 아닐까. 마냥 평범하고 다정한 부모를 만나지 못한 하영은, 또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상처받으며 자라고 있는지, 어떻게 그 상처를 회복하고 부모의 폭력을 끊어내면서 혼자 서는지 보여줬다. 살아가는 매 순간 이렇게 부딪히고 상처받고 또 싸워가면서 혼자 서는 법을 배우는 게,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건가 싶기도 하다.


2010년 처음 독자 앞에 나타난 하영. 그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이 궁금해서 계속 지켜보게 했던 작가는, ‘하영이는 이렇게 자랐는데, 어때?’라고 묻는 것처럼 이렇게 어른이 된 하영을 또 독자 앞에 등장시켜 지켜보게 했다. 글쎄, 결말을 보니 하영은 잘 자란 건가 싶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한 마디로 결론을 낼 수 없었다. 어쩌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 것 같기도 하고. 작가의 말처럼, 우리 삶은 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 내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느냐에 따라 그 삶은 변하기 마련이라고. 어린 시절 부모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건 당연하고, 성장하면서 가정과 학교가 삶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였다면, 성인이 된 우리는 다양한 경험과 인연으로 또 다른 삶을 만들 수 있다는 건 아닐까? 소설 속 결말의 하영의 모습이 이럴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서미애 #나에게없는것 #잘자요엄마 #모든비밀에는이름이있다 #엘릭시르

#하영연대기 #하영시리즈 ##책추천 #신간추천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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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를 만들 수가 없어서요
강진아 지음 / 한끼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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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의 성차경. 공부는 잘하는 편이고 특히 미술 실력이 뛰어나다. 딱히 좋은 관계의 친구도 없고 할머니와 둘이 사는, 어려운 형편의 아이다. 어느 날, 늘 혼자였던 차경에게 같은 반 도희가 친한 척 접근한다. 그렇게 가까워진 둘은 함께 위조지폐를 만들어 사용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함께 위조지폐를 사용하던 또 다른 친구 혜미가 죽게 된다. 놀랄 사이도 없이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차경은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지만, 혜미의 죽음이 꿈에서 계속 나올 정도로 불안한 날들이었다. 정작 위조지폐를 만들자고 먼저 말을 꺼낸 도희는 유학을 가버린다.


아니, 원래 도희가 차경에게 관심이 있었는데 주변에 관심이 없던 차경이 도희의 호감을 몰랐던 걸까? 처음부터 의심스러웠다. 갑자기 나타난 도희가 차경에게 친근한 척 구는 게, 이상하게 보기 싫더라. 뭔가 의도를 갖고 접근하는 것만 같은 불길함이 번졌다. 사실 우리 현실에서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면 서로 친해질 기회라고 생각하고 좋아해야 하는데, 너무 나쁜 것만 먼저 봐서 그런지 오히려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도희를 보자마자 나는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서로 형편이 너무 다른 두 아이가 어떤 접점으로 친해질 수 있을까 잠시 기대하기도 했지만, 역시나...


위조지폐를 사용하다가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도망치듯 떠났다. 남은 차경이 얼마나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왔을지 안 봐도 알 것 같다. 그렇다고 살아가는 일을 멈출 수는 없어서 차경은 자기 방식대로 열심히 살았다. 대학 졸업반이 되고 유명 기업에 입사 지원서를 냈다. 차근차근,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길이 점점 짧아지고 있던 그때, 이제 인생 좀 피려나 싶어서 두근거렸던 그때, 도희가 나타났다.


왜 사는 일은 이렇게 팍팍할까.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좀 주면 안 되나? 못된 것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아가게 하면서, 왜 힘들다는 사람에게 더 힘든 상황만 던져주는 걸까. 그때의 기억은 차경의 머릿속에서 잊히지도 않아서 하루도 편하게 잠든 날이 없었는데, 도희는 다시 나타나서 또 다른 위조를 요구한다. 이번에도 도희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나? 안 하면?


사람이 벼랑 끝으로 몰리면 선택은 둘 중의 하나다. 벼랑 끝에서 뛰어내리거나, 눈앞의 상대를 벼랑으로 밀어서 떨어뜨리거나. 매 순간 안간힘을 써도 살아가는 일이 버겁던 차경은 완전히 변한다. 살아남기 위해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답을 찾는다. 더는 머뭇거리면서 끌려다닐 수 없다.


생각해 보니 차경은 살아가는 모든 순간 악몽을 떨치기 위해 발버둥 친 건 아닐까 싶다. 고등학생 때도 미술로 대학을 가기 위해 손끝의 모든 감각을 키웠다. 결국은 대학 등록금이 문제가 되었지만, 어떤 식으로든 이 형편을 끝내기 위해서 차경의 재능은 훨훨 날아야 했다. 대학 지도 교수는 엉망인 사람이었지만, 차경은 추천서를 받기 위해서 대놓고 요구 사항을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완성된 작품을 진열하기만 하면 되는 그 순간을 지켜내야 했다. 거기까지 가는데 저질렀던 범죄는 물론 해서는 안 될 짓이었지만, 진짜 인생을 만들기 위해 달리던 그녀가 버티는 방식이었다고 이해해주면 안 될까? 진짜를 가질 수가 없어서, 진짜를 만들 수가 없어서 가짜라도 만들어야만 했던 상황을 들여다보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이해해주고 싶을 거라고 말하고 싶은데, 너무 오지랖인가 싶기도 하다.


처음 위조지폐를 만들고 그것을 사용하는 순간에, 들킬지 안 들킬지 지켜보는 재미가 상당했다. 들키면 망한다. 아니, 인생 끝장이다. 안 들키고 넘어갈 수 있다면 차경의 실력을 검증하는 순간이 될 테고. 한편으로는 이 아이들이 이 순간을 들켜야 하는 게 맞는 건가 싶었다. 자신들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 죄의 대가를 얼마나 크게 치러야 하는지 한 번쯤은 겪어봐야 세상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고 알려주어야 하는데, , 어렵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세상을 원망하고 싶기도 하더라. 그래서 더 갸우뚱하면서 읽게 된다. 이 소설이 그냥 드라마 같은 느낌인지, 한 편의 스릴러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어서.


책의 앞표지와 뒤표지의 두 사람은 같은 사람인데, 묘하게 다르다. 고등학생 성차경과 회사의 입사 직전의 성차경의 표정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같은 사람이지만, 표정에 나타난 분위기와 단단함이 다르다. 진짜를 찾아가는 그 시간이 만들어준, 가짜를 덮어버릴 수 있는 진짜 같은 표정이, 지금 성차경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되었다. 생존의 문제만 남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그 생존을 위해 욕망이 깃든 사람의 표정으로 바뀌는 과정을 지켜보게 하는 소설이다.


#진짜를만들수가없어서요 #강진아 #한끼 #한국소설 #소설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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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 라이
프리다 맥파든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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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작정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프리다 맥파든의 작품을 계속 읽고 있다. 이번에는 네버 라이. 분량은 적은 편이라 그만큼 빨리 읽히기도 하지만, 앞서 만났던 작품들과 사뭇 다른 주인공의 등장으로 악인의 전성시대같은 느낌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들려오는 이야기는 3년이라는 시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상하게 하면서, 처음부터 범인 추적에 열을 올리게 한다.


결혼 6개월 차 부부 이선과 트리샤. 이 부부는 맨해튼을 떠나 교외에 집을 구하고 있다. 부동산 중개인 주디와 약속하고 어떤 집을 보러 갔는데, 네비게이션도 정확히 알려주지 못하는 곳에 있는 저택에 가까운 집에 다다른다. 부동산 중개인 주디는 아직 오지 않았고, 폭설은 내리고 있고, 추위를 피하고자 주인 없는 집에 들어가게 된다. 어쩌다가 이런 집이 매물로 나왔을까. 집안을 살피던 이선과 트리샤는 내부의 모든 것이 그대로인 것을 보고 놀란다. 단순한 매물이 아니었다. 이 집의 주인은 3년 전에 실종된(이미 죽었다고 판단되는) 유명한 정신과 의사 헤일 박사다. 죽은 사람의 집을 사도 되는지 고민에 빠지기도 했지만, 우선은 배고픔과 추위를 달래는 게 우선이다. 두 사람은 집안을 살피면서 남겨진 음식을 먹기도 하고, 벽난로에 불을 지펴 집안의 온기를 채우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헤일 박사는 사라진 지 3년이나 되는데, 그동안 이 집은 계속 비어 있었는데, 유통기한이 남은 음식이 이 집에 남아 있었다. 이거 무슨 일인가.


몸이 떨리는 이 긴장감은 단순히 추위 때문은 아닌 듯하다. 집 안에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꺼림칙한 기운이 맴돈다. 마치 누군가 이 집안에서, 두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기분이다. 뭔가 자꾸 시선이 따라붙는 것 같고, 벽에 걸린 초상화를 누가 손을 댄 것 같기도 하고. 트리샤는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서 남편에게 말하지만, 이선은 그녀가 너무 예민한 거라고 말한다.


3년 전 헤일 박사는 이 저택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상담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책도 썼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인정받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헤일 박사의 상담 내용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었는데, PL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로 큰 사건을 겪고 그 시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EJ는 자기애가 넘치는 인물로 인격적으로 큰 장애를 안고 있다. 피해망상 환자 GW는 누군가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며 괴로워한다. 이들 모두 헤일 박사와 꾸준히 상담했지만 금방 좋아지지 않는 듯했다. 헤일 박사의 애인 루크는 헤일 박사가 실종되자 그녀를 죽인 용의자로 지목된다.


읽으면서 내용이 현재와 과거 사이를 오갈 때마다 연결고리를 찾으려고 애썼다. 굳이 이렇게 보여주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과거의 헤일 박사와 환자들, 현재의 이선과 트리샤. 아무리 봐도 이 사람들 사이가 무엇으로 연결되어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즈음, 헤일 박사가 상담 내용을 기록할 때마다 환자 이름을 이니셜로 적은 것을 떠올렸다. 실명이 아닌 이니셜, 그녀가 책에 상담 사례를 담으려고 일부러 실명을 숨길 수밖에 없었겠지만, 그것 말고도 이유가 있을 거다. 소설의 초반부가 조금 지났을 때, 나는 범인을 확신했다. 이 사람이 범인이다. 하나씩 드러나는 단서에 이 사람이 분명 연관되어 있다고 믿었다. 3년 전과 지금, 연결고리가 이어진 사람은 단 한 명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이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갈수록 나의 확신은 의문이 되어 갔다. 아닌가? 저자가 다른 작품에서 보여준 등장인물의 특성이 어떤 식으로 그려질 것인지 예상했었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물론 의심은 계속 이어졌고, 그 의심 속에서 또 다른 이유와 상황으로 범인은 밝혀지지만, 뜻밖의 인물이었다. 아직 추리소설을 더 읽어야 점쟁이 빤스를 입을 수 있나 싶기도 하면서, 범인으로 밝혀진 인물의 인격에 헛웃음이 나는 걸 보면, 역시 세상에는 갱생이 안 되는 나쁜 인간이 분명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그 와중에 선한 사람도 분명 있었지만, 그들이 가진 힘으로 보면 역시 악이 선을 이기는 게 되는 건가?


도심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교외의 저택이 배경이 되면서 음산함과 공포는 더욱 커진다. 이선과 트리샤 두 사람 모두 이 집에 처음 온 것일 텐데, 의외로 의연하게 이 집을 편하게 살피면서 꼭 이 집에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의심스러웠다. 트리샤는 이 집이 주는 분위기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집 안의 이곳저곳을 확인하듯 하나씩 열어보는 게 수상했다. 한밤중에 헤일 박사의 초상화를 걸었다가 다시 내려놓은 사람은 누구일까. 마치 조금 전까지 이 집안에 사람이 머물렀던 것처럼 보이는 흔적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폭설에 고립되듯 갇힌 두 사람이 무사히 이 집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먼저, 헤일 박사는 실종일까 사망일까. 갑자기 이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건 아니겠지? 알 듯 모를듯한 단서의 조각들을 어떻게 맞춰야 이 소설의 결말이 완성될지 궁금해서 끝까지 읽게 되는 건 당연했다. 누구나 거짓말을 하지만, 누구도 그 거짓말에 완벽히 속지 않는다.


두 사람이 비밀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 사람이 죽어서 사라지는 것뿐이다. (340페이지)


우리나라에서의 출간 기준으로 보면 이 작품은 프리다 맥파든의 세 번째 작품이다. 아직 핸디맨은 못 읽었고(곧 읽을 예정), 그다음 출간작 하우스 메이드를 읽었을 때는 너무 재미있어서 바로 하우스 메이드 2를 펼쳤으나, 시리즈의 첫 작품을 뛰어넘지는 못한 것 같다. 어느 정도 기대치를 내려놓고 읽어서 그런지 더 코워커도 만족스럽지는 않았으나 크게 실망하지도 않았다. 저자의 어떤 작품이든 가독성은 뛰어났다. 읽는데 전혀 지루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동안 저자의 작품을 계속 읽어오면서 갸우뚱하게 만드는 게, 주인공의 삶의 자세가 악인인지 의인인지 알 수 없이 흘러오는 느낌도 있었는데, 이 작품은 그냥 이기적이고 나만 아는 악인의 탄생을 보여준 듯하다. 하우스 메이드의 밀리의 범죄가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한 이유였다고, 더 코워커내털리나 돈 쉬프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구석이 있었지만, 이 소설의 범인은 그냥 나쁜 인간인 거였다. 그러니 살아가면서 매 순간을, 모든 사람을 의심하게 만드는 습관이 저절로 생기는 건지도 모르지. 에휴, 세상 왜 이러냐.



#네버라이 #프리다맥파든 #밝은세상 #소설 #추리소설 #공포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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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다가, 울컥 - 기어이 차오른 오래된 이야기
박찬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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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지은 밥에 버터와 간장을 넣고 비벼 먹는 거예요. 요리를 하지 않는 당신도 그 정도는 하겠죠. 버터가 얼마나 훌륭한지 가장 잘 알 수 있는 음식이에요.”

(중략)

버터는 냉장고에서 막 꺼내서 차가운 채로 넣어요. 정말로 맛있는 버터는 차갑고 단단한 상태에서 식감과 향을 맛보아야 해요. 밥의 열기로 바로 녹으니까 반드시 녹기 전에 입으로 가져가야 해요. 차가운 버터와 따뜻한 밥. 일단 그 차이를 즐겨요. 그리고 당신 입속에서 두 가지가 녹아서 섞이며 황금색 샘이 될 거예요. , 보이지 않아도 황금색이란 걸 아는, 그런 맛이죠. 버터가 엉킨 밥 한 알 한 알이 자기 존재를 주장하고, 마치 볶은 듯한 향기로움이 목에서 코로 빠져나가죠. 진한 우유의 달콤함이 혀에 감기고…….” (버터유즈키 아사코, 39~40페이지)


유즈키 아사코의 추리소설 버터를 읽다가 마주한 장면, 책을 다 읽고서도 책의 내용보다는 이 버터를 녹인 밥을 오랫동안 기억했다. 우리의 추억 돋는 간장 달걀밥과 비슷한 구절이어서 말이다. 달걀 한 알도 귀한 시절의 기억은 저절로 소환된다. 따로 반찬을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아이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엄마가 준비하는 최선은 갓 지은 하얀 쌀밥에 달걀노른자 하나를 올려주고, 간장을 두르고 참기름을 살짝 끼얹어 주는 것. 그 고소함에 취해 밥 한 그릇 뚝딱하면서 배 속이 꽉 찬 기분을 느꼈더랬다. 엄마가 나에게 그런 밥을 만들어주시던 기억은 벌써 과거의 일이고, 한참 아이였던 그때의 감정이 떠오를 때면 지금도 가끔 엄마의 간장 달걀밥을 흉내 내어 먹곤 한다. 갓 지은 하얀 쌀밥에 달걀노른자를 올리고 간장을 몇 방울 떨어뜨리면서 참기름을 살짝 뿌린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유즈키 아사코의 소설에서처럼 버터를 한 조각 넣는 거다. 이미 참기름으로 코를 자극하던 감각은 뜨거운 밥에 녹아내리는 버터의 풍미를 추가하면서, 1980년대와 조금 다른 간장 달걀밥이 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아무리 고소함이 배가 되어도, 엄마가 해주시던 그때와 같은 맛은 아니다. 비슷하지만 다르다. 뭐가 빠진 걸까.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밥인데, 늘 먹던 밥이고 메뉴가 달라도 밥이 그냥 밥일진대, 가슴 속에서 뭔가 끓어오르게 하는 밥이 있다. 기억 속의 밥이다. 언제, 누구와 함께, 어떤 사연을 나누며 먹은 밥인지, 그 시간을 불러오는 방법도 참 여러 가지다. 저자가 기억하는 밥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다. 그의 삶을 거쳐 간 사람들과의 추억은 아름답고, 슬프고, 아팠다. 그 시절의 많은 사람이 그랬듯 많은 게 모자란 환경이었다. 사는 게 서럽고 고달픈 게 일상이었고, 가난이 버거웠다. 듣고 있자면 이게 추억인지 고통을 끄집어내는 일인지 모를 정도로, 나도 모르게 힘들었겠다라는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다. 그의 세월을 동정하는 게 아니다. 내가 그보다 여유롭게 살았다고 하는 말도 아니다. 사는 일이 참 고단하다는 생각에, 이렇게 서럽다가도 좋은 날 오겠지 하는 기대를 품고 듣고 있게 되더라. 한 번씩 엄마의 간장 달걀밥이 생각날 때마다 그 시절의 이야기가 따라오듯, 그에게도 살아온 날들의 추억은 추위에 떠는 마음을 연신 쓰다듬는 것만 같았다. 사라져 가는 것들, 서늘하게 돌아가는 세상의 모습들, 조금 기대고 싶어도 갑자기 얼음을 맞는 것처럼 긴장하게 되는 순간들이 고단할 때마다 그리움을 불러온다. 다정하고 고마웠던 음식들과 그 음식을 함께 나눴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의 그리움 속에 가득하다.


저자가 이탈리아 타향살이에 눈물이 나도록 힘들 때, 후배가 보내준 멸치와 고추장을 눈물 흘리면서 먹었던 일. 갑자기 날아든 세무서 독촉장에 잊고 지냈던 조선족 동포와의 시간이 떠올랐다. 결혼식장의 뷔페가 성행할 때 상승세를 타던 친구는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먼저 하늘로 갔단다. 돈을 빌려달라는 말이 마지막 대화였다는 걸 알았을 때는 먹먹하기도 했다고. 친구가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자신보다는 직원 월급을 해결해주려고 애쓴 사람이었으니, 보내는 사람의 마음은 무너진다. 고생 끝에 빵집 일급 기술자가 되었지만 프랜차이즈 빵집에 골목 빵집은 망했고, 이제는 도배 기술자가 되어 먹고 사는 이를 기억하면 빵 굽는 냄새가 난다. 팔에 동그랗게 기름이 튄 흔적(중식), 팔뚝의 칼날에 베인 듯한 상처(양식)로 누군가의 밥벌이를 알게 된다는 게 새삼 울컥한다. 지금 내 눈앞의 음식이 어떤 이의 손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게 되니, 음식에 의미가 쌓이는 기분이다. 경상도 해안의 해녀들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성게 잔가시와 내장을 빼내는 뒷모습에, 성게가 목에 걸린다고 했다. 따뜻하게 배달받은 시장의 백반은 산재 처리도 못 받는 이의 몸을 상하게 했다. 남에게 밥을 해주겠다고(물론 그게 자기 장사이고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지라도) 고생하는 이들의 사연에 설명하기 어려운 고마움이 저절로 따라왔다. 이런 장면들, 어디서 많이 본 것도 같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냥 생각이 났다. 저자가 살아가면서 마주친 음식 속 많은 사람과 사연 속에 엄마가 있었다.


엄마의 왼쪽 검지 끝은 아직도 손톱이 잘 자라지 않는다. 식당 주방에서 칼질하다가 베였다. 검버섯처럼 거뭇거뭇한 흔적이 엄마의 손을 밉게 보이게 한다. 통닭집을 하다가 얻은 기름 튄 자국들이다. 연골이 다 닳아버린 무릎과 제대로 펼 수 없는 허리는 백반집을 하면서 배달하다가 쌓인 통증을 참아낸 시간의 흔적이었다. 식당에서 사용할 밑반찬을 만든다고 멸치 배를 따고, 느타리버섯을 한 상자 사서 갈래갈래 찢고, 손님상에 내놓을 동태탕을 끓인다면서 얼린 동태를 손질하면서 찬물에 담겨있던 손은 지금도 일년내내 차갑다. 저자에게는 많은 음식을 떠올리면서 그 시간에 함께 했던 사람들이었지만, 음식과 연결된 많은 사람의 사연들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많은 음식에 그대로 엄마가 있는 게 이상했다. 저자가 만나고 사연을 들려주는 그들의 시간 속에, 그 자리에 엄마가 있었다. 희한하게도, 안 그래야지 하고 매번 다짐하는데도 잘 안된다. 그동안 세상을 돌면서 밖에서 먹은 음식보다 엄마가 집에서 내어주던, 엄마가 식당을 하면서 손님상에 내놓던 음식들이 눈에 선명해서 그렇다. 그 많은 음식을 준비하던 시간 대부분에 내가 있었다. 교복을 입고 엄마의 식당에 갔고, 손님상으로 음식을 날랐다. 그렇게 살아야만 했던, 할 줄 아는 게 음식밖에 없어서 그랬던 것을 알아서, 그게 미안하고 고마워서 말이다. 저자가 떠올리는 서글픈 순간들, 눈물 나게 고마웠던 사람들, 지금 앞에 둔 음식에 저절로 떠올라서 울컥해지는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비슷한 기억을 가진, 너무 닮아서 등을 쓰다듬고 싶은 순간을 간직한 이들의 이야기였다.


평생을 살아도 옛날만 사는 것 같다는 저자의 말이 왜 이렇게 안쓰러운지, 아마도 많은 것이 부족하던 시절을 견디듯 살아낸 마음을 아직 제대로 위로받지 못해서 그런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모두가 가난하고 어렵게 성장한 시절, 그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과 또 다른 사람들을 추억하는 방법으로 저자는 이 글을 쏟아낸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혹시 잊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닐까. 마음이 허기지고 힘들어서 뱃속에 뭔가 채우고 싶을 때마다 떠올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닐까 하고.


4월쯤이었던가, 시간이 나서 엄마한테 갔다가, 텃밭에 아직 남아 있는 쑥을 캐왔던 날의 기억이 따라온다. 우리 집에서 가장 큰 솥을 꺼내고, 냉장고에 남은 묵은지를 잘게 썰고 쌀뜨물을 넣고 끓였다. 된장을 풀고 깨끗하게 씻은 쑥을 가득 넣고 조금 더 끓이다가, 개운한 맛을 내려고 청양고추 몇 조각, 고춧가루 살짝 뿌려서 계속 끓이다 보니 맛있는 냄새가 난다. 냉동실에 넣어둔 멸치를 꺼내어 멸치 조림을 하고, 그즈음 사다 둔 냉이가 아직 괜찮아서 데쳐서 무쳤다. 남아서 처치 곤란했던 무로 생채를 만들고, 미나리를 잘못 샀는지 너무 질겨서 전으로 부쳐냈다. 엄마가 어렸을 적에 자주 해주던, 음식 재료를 넉넉하게 살 형편이 안되는 집에 그저 남아 있는 재료들로 만들어내던 음식을, 이제는 내가 만들어서 엄마에게 가져다준다. 함께 살면서 엄마의 어깨너머로 본 기억으로 흉내를 내다보니, 이제는 그럭저럭 먹어줄 만한 수준이 되었다. 언젠가 엄마가 안 계실 때, 그 맛을 내고 싶을 때마다 우리 집의 주방은 분주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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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의 끝
정해연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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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량제 봉투를 열고 쓰레기를 집어넣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돈을 주고 샀는데, 이왕이면 알뜰살뜰 쓰레기를 목구멍까지 가득 채워서 버려야 아깝다는 생각이 안 들 것 같았다. 이것저것 다 채워 넣은 쓰레기봉투는 잘 묶이지 않았고, 결국 투명테이프로 쓰레기봉투 끝을 붙여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솔직히 이렇게까지는 아니다 싶어서 다시 쓰레기를 몇 개 꺼내고 묶어서 버렸다. 쓰레기봉투 디자인을 괜히 그렇게 만든 게 아니었겠지. 봉투 끝을 잘 묶어서 쓰레기가 쏟아지지 않게 버리라고, 쓰레기를 넘치도록 채워서 투명테이프로 붙여 절약 정신을 증명하라는 게 아니었을 거다. 매듭을 잘 묶어서 버리는 일, 어떤 일을 잘 마무리하고 해결하는 방식은 정말 중요했다. 그 중요한 방식이, 이 소설 속 두 모자는 대조적이었다.


박희숙은 성공한 사업가다. 혼자서 화장품 방문판매를 시작으로 걸어온 길 끝에 사업가로서의 정점이 눈앞에 있었다.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외국으로 화장품 판매의 길을 열 것이고, 이대로 잘 풀린다면 이 회사는 자신의 완성품이면서 동시에 아들 최진하에게로 이어질 것이다. 그 아들에게 갑작스럽게 걸려 온 전화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유일한 자식이라고 너무 감싸 안아서 키웠던 진하는 엄마의 돈만 믿고 살았다. 회사에서 자리를 마련해 주어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살았다. 정신 차리기를 바라고 지방 소도시인 재선시로 보냈지만, 어느 날 진하는 사람을 죽였다면서 엄마에게 전화한다. 엄마 박희숙의 선택은 한 가지뿐이었다. 아들을 살인자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


지금까지처럼 가만히 있어. 갑자기 어른이라도 된 것처럼 나대지 마. 내 뒤에 어린애처럼 숨어있어. 넌 그러면 된 거야.” (187페이지)


재선시에서 방화 사건이 일어난다. 화재 현장에서는 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고, 담당 형사 이인우는 이 사건을 추적하던 중 단순한 화재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와중에 절연에 가까운 어머니는 한 번씩 인우를 찾아온다. 아들은 어머니를 거부하고, 어머니는 그런 아들도 봐야겠다는 마음인지 꾸준히 찾아온다. 오래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때의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로 성장한 인우는 어머니를 의심해 왔다. 아버지가 왜 죽어야 했는지 아직도 이유를 정확히 모르겠다. 게다가 어머니는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하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를 맞닥뜨린 인우는 어머니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화재 사건을 수사하면서 박희숙과 최진하 모자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을 거로 의심하던 인우는 아직 이 추리를 완성하지 못했다. 의심을 사실로 증명하려면 증거가 필요한데, 그 증거를 찾지 못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용의자들은 알리바이가 있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지. 인우는 모든 의심의 흔적을 찾아다니면서 수사에 매진한다.


이미 소개 글에서도 나왔지만, 사람을 죽였다는 아들을 감싸기 위해 엄마는 모든 것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안다. 내 자식을 살인자로 만들 수 없다는 부모의 마음,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는 결심이 앞선다는 것을. 그러면? 살인자인 아들을 살인자로 만들지 않으면, 그 이후 아들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자신이 저지른 살인은 기억에서 지우고 살아갈 수 있을까? 엄마가 이 사건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든, 엄마가 그 살인을 뒤집어쓰든, 어떤 식으로든 이 사건에서 본인이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게, 나는 너무 어려워 보인다. 세상 더없이 따뜻하고 완전하게 보듬어줄 수 있는 모성이란 게, 어긋난 방식으로 작용했을 때 어떤 결말을 만드는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다고 이 소설의 재미는 단순하게 사건의 발단과 의심, 사건 해결이 말하는 진실에만 있는 건 아니다. 부모의 마음, 모성이 만드는 비극적인 결말의 바탕에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게 하면서, 모성의 헌신과 성립이 어디까지 가능한지 묻기도 한다. 솔직히 마지막 반전에서 보여준 진실을 완벽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까지 해서 내 자식을 지켜야 하는 게 맞는 건지 몇 번을 되묻기도 했다. 이런 진실, 모성을 갖고 살아가는 일은 어렵다는 생각만 들더라. 그러면서 다시 한번 묻게 된다. 나라면? 내가 이 상황 속 엄마라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내 자식을 감싸주고 위로하며 잘 헤쳐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이런 선택은 못 할 것 같다. 박희숙과 최진하, 이인우 형사와 그의 어머니, 두 모자의 사연과 사건 해결 과정이 너무 대조적이어서, 계속 듣고 있자니 부모로 살아가는 일은 정말 어렵다는 마음만 남는다. 만약을 상상하며 어떤 모성을 발휘하고 싶은지는 독자 개인의 몫일 테니.


네가 날 의심해도 괜찮았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307페이지)



#매듭의끝 #정해연 #현대문학 #소설 #추리소설 #장르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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