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하는 교회 - 우리가 다시 모일 때
문화랑 외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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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명의 말씀사에서 출판된 책 회복하는 교회(우리가 다시 모일 때)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공동기획자와 6명의 저자들이 참여하였다. 그들은 함께 머리를 맞대어 포스트 코로나 또는 위드 코로나 시대에 교회가 다시금 회복해야 할 신앙의 본질이 무언지에 대해서 연구하여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은 총 6가지 주제를 3가지로 신앙의 중요한 뼈대구성하였다.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예배, 말씀), 둘째 사람과의 관계’(공동체, 양육과 훈련), 셋째 세상과의 관계’(세계관, 사회적 책임)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은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면 분명 종식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이전의 목회 상황과는 다른 국면이 전개될 것이다. 앞서 수개월 동안 온라인 예배를 가정에서 드렸다. 그래서 성도들 가운데에 공적 예배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고 고백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회는 그간 실시한 온라인 예배의 경험으로 인해서 성도들의 마음속에 또 다른 습관으로 형성된 부분에 대해서 신학적이며 실천적 질문들을 발생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신앙생활의 심장이며 영혼의 호흡과도 같은 예배를 어떻게 회복되어야 할 것인가?

 

공예배의 소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께서 예배를 원하는 분이라고 강조해 주고 있다. 또한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삼위하나님이 함께 한다. 성도는 예배를 통해서 삼위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기억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을 깨닫게 된다. 결국 성도는 공예배를 통해서 신앙의 정체성과 신앙생활의 리듬을 형성하여 세상의 어떤 상황 속에서도 교회를 굳건히 지키는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이어서 예배의 쌍방향성을 회복하라 예배는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형성이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변하지 말아야 할 예배의 원리이다. 그리고 성도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예배가 되도록 하라 또한 예배의 하나님 중심성을 회복하라 한국교회는 초기 선교사들을 통해서 부흥회 형식의 예배가 형성되었다. 이는 교회에 처음 오는 이들이 느낄 수 있는 부담스러운 요소들을 제거한 것이다. 이런 관점은 교회를 하나님 중심에서 사람중심으로 옮겨놓았다. 실제로 한국교회 안에 있는 수많은 교회들이 성도들이 좋아할만한 콘텐츠를 찾는 훈련을 시켰다. 이제 한국교회는 코로나19 이 후에 소비자적 마인드를 하나님 중심으로 회복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다.마지막으로 예배와 사회윤리를 연결하라 세상의 시선은 한국교회를 향한 호의적이지 않았다. 세상은 교회를 더 엄격한 기준으로 바라본다. 이제 교회는 교회됨을 통해 예배의 가치, 신앙의 가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돈 샐리어스는 이 부분에 대해서 예배가 인간의 존재의 현실과 분리될 때 우리는 그 예배의 본질과 의미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예배는 세상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동시에 기독교적 삶에 대한 가르침 및 실천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라고 아주 잘 설명해 주었다.

 

한국교회는 현재 위기 속에서 재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 가장 먼저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날 때와 언약이 갱신될 때마다 하나님께 예배를 이야기했다. 예배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있다. 이제 우리는 예배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해 주시는지에 대해서 귀를 기울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중심이 되는 예배를 지향하며 다양한 예배에 대한 이슈들을 하나씩 점검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말씀의 회복은 중요하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교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분에 대한 오해는 많은 상처와 아픔을 애기할 뿐만 아니라 결국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만드는 비극적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고통의 때를 보내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보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오해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 분에 대해서 다시 되돌아보아야 한다. 고통은 자주 우리를 하나님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게 한다. 이 시간을 통해서 고통을 당하기 전에 보지 못했던 하나님을 그 위대하심과 성실하심을 만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서 우리의 삶에 주일이 없어지는 시간적 경험을 하였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공산독재치하에서 예배가 금지되고 사라진 상황이나 일주일을 7일 주기가 아니라 10일 주기로 바꾸고 형식적 미사와 예배 정도만을 허용된 탈기독교화의 프항스 혁명정부 치하의 상황 정도만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우리의 경험은 초유의 경험이다. 하지만 성경을 읽는 성도에게는 아주 생소하지만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신앙공동체기 지금도 동일할 수는 없지만 당시 신앙공동체가 경험한 유사한 사건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유다멸망과 이스라엘 성전의 파괴사건이다. 성전이 파괴되었다. 그들은 어디로 가야만 했을까? 또한 제물과 제사 그리고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소용없어진 세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위기가 그들로 하여금 성전중심에서 율법중심으로 거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둘째 스데반의 순교이후 예루살렘교호에 전면적으로 불어 닥친 박해사건이다. 이 속에서도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다.

 

우리는 코로나19 사태가 교회에 안겨준 두 가지 핵심 이슈를 고민해 보아야 한다.

 

우리에게 장소의 의미는 무엇인가?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그 분은 예배당의 영역에 제한될 수 없는 분이다. 이제 그 분은 우리의 가정, 일터 그 곳의 주인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가져다주었다. 우리의 시간을 대다수 보내는 가정과 일터에 계신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물론 지금 실시하고 있는 영상예배가 독이 될지 성배가 될지는 코로나19 이후에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이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영적 다가서기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새로운 단어가 생겼다. 사실 우리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영적 거리두기를 하였다. 지금의 시간이 언젠가 지나갈 것이다. 이 시간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교제와 사귐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장래에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성격과 성숙에 적잖은 차이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우리는 코로나19 이후 신앙공동체의 방향전환이 필요하다. 앞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신앙공동체를 송두리째 흔들만한 두 사건을 살펴보았다. 위기 때에 교회는 본질을 충실하였다. 그러므로 신앙공동체는 더욱 견고해졌다. 우리는 지금 성경을 통해서 시중함과 지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이와 함께 양육과 훈련의 회복이 필요하다. 바울 사도는 자신의 수고하는 이유를 각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과거에 교육은 상당부분이 가정에서 이루어졌다. 현재 교육이 상당부분이 공적인 영역으로 넘어온 상태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이 가정과 부모의 역할과 권위가 매우 약화되었다.

 

우리는 코로나 19로 인해서 다시 한 번 가정이 학교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요청받았다. 부모는 어떤 형식으로든지 자녀들을 영적으로 돌봐야 한다. 왜냐하면 가정은 출생부터 죽음까지 담아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부모가 정기적으로 교회학교 교과과정에 참여하게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또한 신앙훈련과정을 통해서 자녀신앙교육에 대한 사명감을 고취시키며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특이 가정예배의 회복이 시급하다. 가정은 가정예배를 통해서 가족 간의 친밀감을 높이고 신앙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기도하는 장으로 세워야 한다.(p.96) 교회는 코로나19 이후 우리가 다시 모여야 하지만 동시에 흩어진 교회로서 소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도를 세워가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양육과 훈련을 교회 내 신앙생활에서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가정과 일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그 분을 예배하며 증거하는 삶으로 확장시켜야 한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대다수가 역행으로 인해서 문을 걸어 잠그고 집 안에 숨어 있을 때에 병자들을 돌보고 죽은 자들을 위해서 장례를 대신 치러주었다. 이런 모습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께 돌아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와 달리 요즘 교회 안에 성도들의 관계는 점점 피상적으로 변질되었다. 교회는 성도 간에 진실된 사람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훈련해야 한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교회가 현재 물리적으로 흩어져 있지만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닫고 더욱 가까워지는 시기가 되기를 소망해야 된다.

 

코로나19의 원인을 찾고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를 살펴보아야 한다.(p.121-2)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4월에 팬데믹이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예방의학과 홍윤철 교수는 전염병의 원인을 사람들이 들짐승의 서식지를 침범하여 그들과 접촉했기 때문이다. 이 전염병이 팬데믹이 된 것은 병원균이 전파에 안성맞춤 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p.123) 코로나19 이 후 이전에 우리가 정상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서 반문하시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코로나19를 절망이 아닌 긍적적 기회로 보자고 제안하였다. 이를 계기로 이 전보다 더 강력한 신뢰와 발전을 가져온 분야가 있다. 바로 과학이다. 코로나19는 과학시술의 필요성을 가장 화려하고도 효과적으로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20세기 말과 21세기에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과학기술은 인터넷 기반의 모바일기술이다. 연세대학교 사회학자 김호기는 2020421일 한국일보 지면을 통해서 제 3의 자리는 현실세계(오프라인)와 가상체계(온라인)의 연결되는 공이라고 특징지었다. 3의 자리는 온오프라인의 중첩되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기니고 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이 자리가 과거보다 과학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 줄 것이며 더 나아가 신앙의 대상처럼 여기는 과학주의가 강화될 자리이기 때문이다. 현재 이 흐름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전에 구소련의 정보기관도 하지 못했던 전 국민 감시가 가능해졌다. 사람들은 점점 과학기술의 진보만이 우리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는 과학주의적 세계관이 전면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코로나19세대를 통해서 보여준 과학기술은 더욱 더 과학기술의 낙관주의에 큰 힘을 실어주게 될 것이다.

 

코로나19의 도전 앞에 대다수 사람들은 정부와 전문가들의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서 소리를 높였다. 이와 달리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와 여러 종교기관들은 문제해결의 걸림돌로 여겼다. 이 와중에도 교회의 역할에 대해서 주장한 유명한 무신론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이었다. 그는 죽음 앞에 인간의 한계를 직면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교회가 답변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은 죽음 앞에서 자신의 현존재를 경험한다고 했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면 염려라는 감정을 통해서 나타난다고 했다. 이때 인간은 의미 있는 선택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기투라고 한다. 이와 같이 그는 인간존재를 찾는 여정을 죽음 이전까지로 보았다. 하지만 기독교는 죽음 이후 생명의 초원으로 우리를 이끈다.

 

과학주의 세계관은 최종목적은 인간의 모든 것을 조절하는 것이다. 그 마지막 조절의 대상은 인간의 생명이다. 코로나19를 통해 이 세대가 깨달은 것은 세상의 본질적 지향은 죽음을 제거한 생명 즉 오직 생존이라는 것이다. 과학은 이룰 수 있는 최고의 도구이자 신앙의 대상으로 여겼다. 이와 달리 교회는 죽음을 준비시켜야 한다. 과거에 성과 죽음은 가장 거룩한 의식으로서 삶에 가장 중요한 영역이었다. 모든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생명은 엄밀하게 말해서 지연된 죽음이다. 교회는 죽음과 싸워 이기는 것만이 아니라 죽음을 정면으로 직면해 세상에 죽음을 들여온 죄의 실상을 폭로해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의 승리만 아니라 세상을 향해 죄의 실상을 보여주신 사건이다.

 

현재 기독교는 승리주의적 경향성으로 인해서 교양 없는 무례집단으로 시민사회에 비쳐지고 있다. 즉 선한영향력 뒤에 남겨진 무례함의 그늘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이제 기독교 세계관과 시민교양의 관계성을 정립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이다. 기독교 세계관은 종교개혁자 칼빈이 강조한 하나님의 주권을 기초로 시작되어야 한다. 이것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것이 삶의 존재방식이다. 이런 사유의 발전시킨 아브라함 카이퍼는 기독교를 삶의 체계라고 말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의 주권을 기독교세계관의 핵심으로 보았다. 그 동안 각 영역에 기독교라는 딱지로 수놓았던 승리의 깃발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으로 각 영역의 주인을 바뀌어야 한다. 이는 세계관의 전쟁에서 승리로 이끈 것이다. 이 단어를 주목해서 보아야 한다. 전쟁은 적과 싸워 승리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데 현실은 비그리스도인과 어울려 싸우기도 한다. 물론 그들 속에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양립할 수 없는 죄가 분명히 있다. 이와 동시에 기독교 세계관은 대중의 폭력적 무례함과 싸워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통치자이다. 그 분의 주권 아래서 기독교 세계관의 역할은 제한된다. 우리는 삶을 통해서 죄의 불의함에 대해서 밝히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승리주의 도취되어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연결할 책임이 있다. 우리는 겸손과 따뜻함으로 세상을 위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코로나19 이 후 어떻게 섬겨야 될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해야 한다. 물론 코로나19 이 전에도 한국교회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사회 구석구석을 부지런히 섬겼다. 이제 우리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섬김의 방향성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섬김이라는 표현 속에는 협력한다는 의미와 함께 가까이 해야 된다는 두 가지 의미가 함께 포함되어야 한다.

 

누가복음 10장을 보면 선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지 않았다. 물론 그에게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본업을 수행해야 했다. 그래서 동역자와 함께 협력해야 된다.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섬김의 방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는 적실성이 있어야 한다. 즉 현재 당면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사실 섬김의 시작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과 같이 특별한 계기와 장소가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게 맡겨주신 상황 속에서 이웃의 필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 이와 같은 섬김의 방법은 효과를 극대화시켜 준다.

 

우리가 속해 있는 지역교회의 구성원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속해 있는 지역만이 감당할 수 있는 주제를 나누어야 한다. 섬김의 주제가 지역에 맞게 개발되면 자연스럽게 섬김에 대한 책임감이 생긴다. 특별히 교회는 믿지 않는 자들과 효과적으로 교제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필수과제이다.

 

누가복음 22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모으시고 떡과 잔을 나누신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보면 자신의 발자취를 따를 제자들을 향해서 섬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해 주셨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우리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코로나 이후 한국교회는 이웃을 어떻게 섬겨야 할까?

 

가까운 이웃과 협력해야 한다. 지역성을 활용해야 한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끝까지 서 계셨다. 즉 그 분은 섬기는 분이셨다.

 

마무리하면서 공동기획자와 6명의 저자들은 코로나 19 이후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들의 고민이 흔적들이 책에 담겨져 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의 고민과 노력 위에 노력해야 한다. 이들의 노력에 대해서 아무런지도 않게 판단하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포스트코로나 또는 위드코 로나와 상관없이 거친없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한국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 길을 함께 가기를 소망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자신있게 소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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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없는 복음 전도
존 레녹스 지음, 구지원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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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생명의 말씀사에서 존 레녹스의 저서 “두려움 없는 복음전도” 출판하였다. 개인적으로 아바서원에서 출판된 코로나바이러스 세상,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 에 이어서 두 번째이다. 이 저서를 통해서 그의 저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 그의 또 다른 저서들(과학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아바서원, 최초의 7일/새물결플러스, 신을 죽이려는 사람들/두란노, 현대 무신론자들의 헛발질/새물결플러스)을 읽어나갈 계획이다.

본 저서는 총 7개의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저자는 자신의 저서 서론에 하나님은 세상 가운데 자신을 전하도록 부르셨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시작한다. 예수님도 이 사실에 대해서 우리에게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명확하게 증언해 주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뒤를 따르며 세상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해야 된다. 또한 우리는 이를 위하여 부름을 받은 자들로서 수동적 삶의 자세가 아니라, 능동적 삶을 살아야 한다. 또한 공적인 삶을 통하여 우리의 정체성과 함께 진정성 역시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서 겁을 먹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서 겁을 먹을 만하다. 왜냐하면 세상은 우리가 복음전하는 것을 침묵시키려고 이모양 저모양으로 압박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종교는 사적인 문제로 여기는 것이 지배적이다. 그래서 성도 역시 사람들의 압박 때문에 두려운 나머지 복음전도를 부담스러워 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복음전도는 죄책감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3장 15절을 통해서 두려움이 복음의 전도의 출발점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이는 주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한 의미한다. 여기에서 두려움은 ‘우리가 주님을 높여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거룩하시다’ 와 구‘별된다’는 의미한다. 그는 우리가 예수님의 주되심에 초점을 맞추어 복음전도에 참여하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하여 사라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전도의 책임자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역을 위하여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이다.(요15:26-27) 또한 우리 가운데에 그 분의 영으로 함께 하시어 두려움 가운데에 놓여 있는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다.

복음전도의 열쇠는 일대일이다. 그런데 놀라운 점이 있다. 이 대화의 시작이 우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질문의 시작은 우리이다. 이 질문을 통해서 대화는 상대방의 의해서 시작된다. 우리는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첫째 상대방에 대해서 관찰해야 한다. 시작은 평범한 것으로 해야 된다. 이런 식으로 상대방을 편하게 해 준 뒤, 상대방이 나를 찾아오게 만든 문제로 옮겨 가야 한다. 이 때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들이 있다. 예를 들면 결혼, 자녀, 직업 등에 대해서 조심해야 한다. 둘째 관찰된 내용을 가지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사실 질문을 받는 것보다 질문하는 것이 더 쉽다. 또한 질문을 통해서 우리는 상대방과 지속적으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질문은 대화를 시작하는 훌륭한 방법이다. 우리는 이 과정 속에서 우리의 신앙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늘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대화는 우리의 경험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상대방과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주님께서 전하시기 원하는 것을 잘 전할 수 있도록 지혜와 도움을 구해야 한다.

복음전도는 상대방에게 사과해야 되는 일이 아니다. 또한 매우 지적인 사람들만 하는 사역이 아니다. 사도행전 9장을 보면 바울 사도는 당시 복잡미묘한 문제에 대한 답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만난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는 예수님과 만남이 자신의 삶에 가져온 변화, 방향, 소망으로 가득 채워지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물론 우리가 속한 사회는 다원주의와 다문화사회이다. 또한 세속적 사회이다. 그래서 우리의 입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을 말하기 힘들 수 있다. 그래서 불편한 마음이 생기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을 수 있다. 이 때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복음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계시해 주실 것을 신뢰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이성을 더 신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 질문해 보아야 한다. 바울 사도는 대단히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성과 함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하였다. 우리는 사면초가에 처할 때만 아니라, 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함께 의지해야 한다. 이와같이 복음전도는 수영과 같다. 물에 자신을 맡기고 과감하게 뛰어들기 전에는 자신이 물에 뜰 거라는 확신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을 신뢰하고 위험을 감수하여야 한다.

만약 우리가 사면초가에 처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저자는 위의 질문에 대해서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말아야 말한다. 오히려 이와 같은 태도는 우리 스스로를 불가지론자가 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때일수록 상대방에게 우리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보여주라고 권면해 주고 있다. 이어서 그들과 다시 만나서 그들의 질문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기를 원한다고 말하라고 기록해 놓았다. 그리곤 상대방의 질문을 연구할 때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 된다. 이 때 성경 안에서 답변을 찾는 것이 가장 유익할 것이다. 만약 이것이 어려울 경우 기독교 변증서적을 읽는 것도 좋다. 이와 같이 한다면 우리는 이 내용을 결코 쉽게 잊어버리지 않게 될 것이다.

그들의 질문에 대해서 답변할 때에 '종교광'이라고 무시당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한 상대방이 잔소리를 듣는 것과 같이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질문보다 상대방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집으로 초대하여 토론의 장을 만드는 것이 좋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점이 있다. 이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오직 주님을 신뢰하고 이와 같은 일을 시도해야 된다. 이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대로 이 모든 과정을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복음을 전할 때에 성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는 내가 하나는 말에 성경구절을 인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성경 본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상대방은 내가 한 말은 잊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마음에 박힌다. 그런데 상당히 아이러니한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복음전도할 때에 성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는 점이다. 이와 같은 적용점은 기도에도 그래도 적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도할 때 연극의 독백과 같이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고 끝나고 만다.

복음전도에서 주된 역할은 우리의 성품이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3장 16-17절에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고 권면하였다. 예수님은 공생애기간동안 사람들의 문제를 인지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보여주셨다. 뿐만 아니라 그들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셨다. 이와 같이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죄인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부단히 애를 써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안에 내주시는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닮아가야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를 많은 종교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종교란 인간을 초월적 존재와 연결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는 고백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또한 그들은 마지막 때에 자신의 행위를 최종적으로 평가받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이것이 차이점이다. 예수님은 이 관계를 위하여 즉 우리의 유죄판결에 대한 형벌을 십자가 위에서 친히 담당해 주셨다. 우리는 이 놀라운 소식을 전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그런데 우리는 고도의 압박 사회를 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우리 앞에 높인 무기력을 넘어 복음전도에 동참할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어떻게 신자가 되었습니까?

답은 뻔하다. 누군가의 눈물의 기도, 인내, 그리고 사랑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 분께서 가신 길을 뒤따르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의 복음전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또한 그들을 격려해 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회심이 진짜임을 삶을 통해 진짜임을 입증해 보이는 것은 가장 풍요로운 경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신앙연륜과 상관없이 어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 또한 저자는 논리적이면서도 아주 간결하게 잘 저술해 놓았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우리가 경험하게 될 다양한 상황들을 다양한 예로 설명해 놓았다. 이런 관점에서 본 저서는 전도 훈련 교재로 사용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된다. 이제 두려움 없이 복음전도하기 원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자신있게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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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과학백과 공룡 - 하나님이 창조하신 놀라운 공룡의 세계 창조과학백과
미국창조과학연구소(ICR) 지음, 조은경 옮김, 한국창조과학회 감수 / 생명의말씀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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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화석이 발굴된 이래로 남녀노소와 나라를 넘어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래서 현재도 여전히 여러 종류의 책과 만화나 영화의 주제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공룡을 생각하면 할수록 그들에 대한 궁금증은 날로 켜지게 된다. 예를 과연 공룡은 과학자들의 주장대로 정말 수천만 년 전에 살았던 동물일까? 또는 공룡이 사람들이 동시대에 살았을까? 과연 그들은 어떤 이유로 인해서 멸종하게 된 것일까?

 

 

만약 진화론을 지지한다면 공룡도 인간이 진화했듯이 또 다른 동물로 새롭게 진화될 수 있는 것인가? 교회에 다니는 친구라면 공룡은 노아의 방주에 왜 들어가지 못했을까? 그리고 성경에는 왜 그들에 대한 기록이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는 것일까? 등 이외에도 수많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이번에 생명의 말씀사에서 출판된 창조과학백과 공룡은 앞서 예로 들었던 질문뿐만 아니라 공룡에 관한 많은 궁금증들을 창조론의 관점에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5살이 된 아들이 공룡을 너무 좋아한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하나님께서 이 땅을 창조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바르게 알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녀들이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믿고 있었던 공룡의 기원과 역사, 공룡의 화석과 공룡의 특징 등에 대한 진화론의 거짓된 진실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방주에 탄 공룡들 이야기, 대홍수이야기 그리고 과학자들도 잘 설명해 주지 못하는 빙하기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다. 이는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런 내용들에 대해서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내용을 저술하였다. 그리고 공룡 과 화석에 대한 사진과 도표 등을 통해서 풍부한 시각적인 자료와 함께 제공해 주고 있다. 이 가르침에 대한 노력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이와 더불어 최근에 생명의 말씀사에서 김홍석 목사님의 성경에서 찾은 지구나이라는 저서도 함께 보시면 좋을 것 같다. 특히 청소년들의 자녀를 두신 부모님께 김홍석 목사님의 책을 권해 드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공룡에 관한 다양한 궁금증을 엉킨 실타래를 천천히 풀어가듯이 쉽고 재미를 배우게 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공룡의 세계를 바르게 알고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만물에 담겨 있는 그 분의 다스리심과 인도하심을 나누기를 소망하는 분들께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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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찾은 지구나이
김홍석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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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생명의 말씀사에서 김홍석 박사님께서 저술한 성경에서 찾은 지구나이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저자는 자신의 저서를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를 묻는다. 사실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이 이 책의 저술목적인 동시에 이 책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이 교회를 떠난 가장 큰 이유가 창조기록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적잖게 놀랐다. 이런 시대에 교회는 또 다른 거센 물결을 직면하고 있다. 바로 유신진화론이다. 이들은 창조와 성경의 역사에 관련된 진리를 얼마나 교묘하게 속이는지 모른다. 이런 상황 속에 이 책의 출판은 반가운 단비와 같다. 
     
저자는 성경의 기록들과 여러 자료들을 근거로 하여 지구의 나이를 올바르게 추적해 간다. 이 과정을 통해서 성경은 거짓이 아님을 밝혀 주고 있다. 
     
이 책을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하였다. 이 구성은 자신이 던졌던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제시해 주시고 있다. 먼저 첫 번째 구성 Part. 1에는 지구의 나이에 대한 다양한 추론들과 교회의 해석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창세기에 기록된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사실 이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저자는 지구 나이가 약 6,200년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3가지 이론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외에도 창세기 1장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의문들의 문제점들을 다루고 있다. 특히 이 장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5장 성경이 본래 의도한 해석의 무엇일까 와 6장 성경말씀에 나타난 철저한 시간개념이다. 
     
저자는 5장을 통해서 성경이 본래 의도한 해석에 대해서 3가지로 말해 준다. 
     
첫째 성경은 철저하고 세부적인 시간 개념 하에 기록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어서 둘째 성경연대기와 관련한 본문에는 본문자체에 그 단어나 문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정할 수 있도록 문맥의 흐름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본문의 ‘내부적 관계’라고 말한다. 마지막 셋째 성경연대기와 관련된 본문들은 신구약 66권의 다른 부분에도 동일하게 등장하게 등장해 비교 분석할 수 있도록 기능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정경적 상호관계’라고 한다. (p.34)
     
저자는 앞서 말씀드린 3가지 사실들에 대해서 Part. 2와 3을 통해서 충분하게 설명해 준다. 이어서 6장을 보니까 성경에 시간을 알려주는 많은 표현들을 기록해 놓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창세기는 수많은 인물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성경을 자세히 보면 시간에 대한 기록들은 특정할 때에만 기록되어 있다. 특히 이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족보를 보면 시간순으로 누가, 언제, 누구를 낳았는지 등에 대해서 섬세하게 기록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섬세하게 기록된 이유는 성경에 기록된 인물과 사건이 비유 또는 상징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실존하였던 인물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로 일어나 일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이어서 저자는 두 번째 구성 Part. 2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된 연대기를 궁금해 할 만한 부분들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성경을 통해서 지구의 나이를 추적해 간다. 저자는 성경 본문에 아담의 족보, 히브리어 날을 의미하는 단어의 의미, 시편 90편, 베드로후서 3장 8절에 기록된 시간을 나타나는 표현의 의미, 70인역과 사마리아오경의 불일치한 이유, 창세기 연대와 마태복음에 기록된 족보와 다른 점, 아담계보와 셈계보의 차이점, 누가복음 족보와 창세기의 연대와 다른 점, 출애굽시기와 애굽체류기간, 족보상 4대가 어떻게 430년이 될 수 있는지, 열왕기와 역대기의 연대의 차이, 사사 시대와 왕정 시대의 연대 간의 차이 등을 도표와 성경 구절과 문맥 등을 통해서 잘 설명을 해 주고 있다. 
     
세 번째 구성 Part. 3 에는 성경의 지구연대를 부정하는 현대 자연과학과고고학의 대화를 기록해 놓았다. 이 장을 시작하면서 저자는 자연과학의 연구결과를 반대나 지지의 근거로 삼기에 매우 불안정하다고 주장한다. 먼저 성경의 연구를 부정하는 과학에 적용한다. 예를 들면 방사성동위원소 연대 측정법,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법, 공룡화석의 나이 등을 들고 있다. 이는 환경의 변화율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으며 처음 시작의 상태 또한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한다. 이어서 성경의 연대기와 불일치한 고고학적 연대기에는 대비 다운의 개정된 이집트 연대기를 예로 들고 있다. 저자는 이 과정을 통해서 가변적 고고학적 연대기와 달리 성경은 변함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지구의 나이는 과학적으로 측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세상의 시작은 히브리서 11장 3절에 기록된 대로 믿음으로 알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이 저서를 통해서 성경 속에서 시대의 저항 또는 공격에 대한 답변을 찾으려는 저자의 몸부림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앞으로 성경을 통해서 다양한 분야에서 발생되고 있는 논쟁적 요소들을 진리를 통해서 답변해야 사명과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서평을 마무리하면서 조심스럽게 몇 가지 제안을 해 본다. 
     
첫째 이 책으로 교회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이 준비되어 맡겨진 영혼들을 가르칠 수 있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어서 둘째는 교회에 이 책을 비치하여 다음 세대들이 읽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셋째로 이 책의 내용을 요약하여 주일학교 자녀들에게 교육하였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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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어떻게 기도할까요? - 어린이를 위한 6가지 기도 레시피
낸시 거스리 지음, 제니 브레이크 그림, 배정아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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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은 자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어떻게 하면 기도를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줄지에 대해서 늘 고민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위탁하신 사랑하는 우리의 자녀와도 대화하기를 너무나 원하신다. 그런데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과 침묵으로 일관된 삶을 산다면 이보다 더 슬픈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고민 가운데에 있는 부모들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 그것은 이번 생명의 말씀사에서 출판된 낸시 거스리의 하나님 어떻게 기도할까요?라는 책이다. 이 책은 자녀를 가르쳐 주는 책 중에 쉽고 재미있게 함께 나눌 수 있는 책이다.

 

이번에 생명의 말씀사에서 출판된 하나님 어떻게 기도할까요? 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책이다. 이 책은 총 6가지 기도에 대한 레시피로 구성된 책이다. 먼저 목차를 보면 1.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하길 원하세요. 2.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만이 기도의 전부가 아니에요. 3. 하나님의 사람들은 언제나 기도했어요. 4. 시편 말씀으로 기도할 수 있어요. 5. 기도를 가르쳐주시는 예수님. 6. 같이 기도해요!

 

이번에 출판된 책은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우선 책의 첫번째 구성이 탄탄하다. 이것이 책의 첫 번째 장점이다. 저자는 우리의 어린 다음 세대들에게 기도의 중요성, 기도의 바른 의미, 기도의 긴박성, 말씀으로 기도하는 법, 우리의 기도의 롤모델이 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한 기도, 합심기도 등 꼭 필요한 내용들로 구성해 놓았다. 여기에서 볼 수 있듯이 책은 좋은 내용들로 구성해 놓았다.

 

본 저서의 두 번째 장점은 내용이다. 저자는 각 장마다 붙여진 제목과 내용을 아주 쉽고 재미있게 표현해 놓았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독자가 자신의 자녀들과 함께 하나님과 대화를 쉽게 시작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해 주고 있다. 이 점에 너무 좋았던 것 같다.

 

세 번째 장점은 적용이다. 저자는 동기부여를 함과 동시에 바로 실천할 수 있도록 짤막하지만 아주 적절한 기도의 내용을 작성해 놓았다. 그래서 적용하기에 유익한 것 같다. 그리고 넷째 지속성이다. 이 책은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읽고 끝내기보다는 매일 자녀가 잠들기 전 또는 하루를 시작하면서 한 장씩 읽고 적용하다보면 어느 덧 자녀는 기도하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자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점 역시 너무 감사했다.

 

이제 다섯째 응용이다. 부모 또는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자녀 또는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각 장에 맞는 자신의 경험이나 함께 경험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면서 부모와 자녀관계 또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하나님 안에 더 하나가 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말씀에 근거하여 기도한다는 사실이다. 말씀에 근거하여 기도를 하면 다른 내용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읽은 말씀을 통해서 깨달은 점들을 솔직하고 진솔하게 그 분과 나누면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받고 읽은 후 몇 일째 한 장씩 5살이 된 자녀에게 적용하며 함께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여러분도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뒤를 따라올 사랑하는 자녀 또는 제자들과 하나님 안에서 하나 되기를 소망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물론 아직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에 어려운 나이인 자녀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자녀들이 부모와 함께 이 책을 꾸준하게 함께 읽어 나가다보면 어느 새 가랑비에 옷 젖듯이 곧 기도를 익히게 될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게 맡겨주신 자녀 또는 제자가 하나님께 사랑의 고백을 하며 하루하루 다르게 성장하여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자로 세워지기를 소망하는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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