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 경마장에 있는 말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복희라는 인물이 새롭게 등장했다고 언급했었다. 오늘도 복희와 관련된 얘기가 계속 이어진다.

처음 밑줄 친 부분에서 복희가 말들과 교감하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여기 나온 말 뿐만아니라 어떤 동물이든 간에 그들과 잘 교감하기 위해서는 물론 다양한 것들이 필요하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진심이 담긴 마음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동물 사이에 서로 직접적인 언어가 통하진 않더라도 그 내면의 마음이라는 것은 얼마든지 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인간 관계에서도 진심이 제일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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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내용 중간에 우서진이라는 인물이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하는데, 개인적으로 이야기의 흐름이 기존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뭐랄까... 이야기의 포커스가 좀 바뀐듯 한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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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는 계속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그들간에 서로 얽히고 설킨 이야기들이 이어졌었는데, 이제는 다시 앞서 한 번 나왔던 보경과 은혜 그리고 연재에 대한 얘기가 각각 이어진다. 앞부분에서는 미처 다 알지 못했던 과거의 스토리들을 마치 양파껍질을 하나씩 벗겨내듯이 하나하나 알게 되는 묘미가 있었다. 또한 각각의 인물들과 연계된 또다른 인물들에 대한 스토리도 알게 되었는데, 이를 통해 중구난방식이 아닌 뭔가 체계적으로 인물들의 관계도를 그려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간혹 어떤 소설들을 보면 등장인물들이 들쭉날쭉 나타나서 그들간의 관계도가 잘 파악되지 않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는데, 지금 읽고 있는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는 게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얘기 할 수 있을 듯하다.

복희는 천천히 목덜미를 쓸었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말의 체온과 숨결을 더 자세하게 느끼기 위해 선배의 목소리를 따라 눈을 감고, 소리가 피부를 통해 전달될 수 있도록 낮고 조용히 말을 걸었다.

경주마는 수명이 짧다. 선수로서의 수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의 수명이 짧았다.

달리지 못하는 말은 말이 아니다.

인간 역시 이따금씩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할 때가 있었으나 언제나 회생 가능했다. 하지만 말은 말 취급을 받지 못하면 살아갈 수 없었다. 달릴 수 없는 말은 지구에서 살아갈 이유를 얻지 못했다.

투데이의 병명은 퇴행성관절염이었다. 짧은 시간 내에 관절을 많이 쓴 결과였다. 연골은 소실되었으며 활막은 염증으로 가득 찼다. 지금쯤이면 걸을 때마다 뼈가 부딪치는 통증을 느낄 거였고 조금 더 지나면 골 미란이 진행될 것이다.

베팅금으로 마방세를 내지 못하는 말들은 얼른 방을 비워주어야 했다. 그래야 더 어리고 빠른 말들이 들어와 돈을 벌어다주기 때문이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요, 달릴 때 저 애한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달라요. 무작정 빠르게 달리기 위해 다리를 뻗는 것이 아니라 그 발짓이 우아해요. 발레하는 흑조 같아요. 동물 흑조 말고요. 흑조를 연기하는 발레리나요."

우아하게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보법 때문일 테고 또 다른 하나는 흑진주처럼 빛나는 투데이의 검은 털 덕분이리라. 복희는 투데이가 달릴 때마다 요동쳤을 검은 물결을 상상했다. 그 역동적인 빛의 물결이 은혜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리라.

"달릴 수 있을 거야."
부질없는 위로였다. 밧줄이 필요한 사람에게 휴지를 뽑아 내민 기분이었다.

"슬프지만 아무것도 못 해주는 주제에 슬퍼하는 것도 웃긴 것 같아서 그냥 보고 있어요."

"취재정신 좋은데 준법정신은 있어야죠."

극이 끝나면 우연히 만났던 두 사람은 제 갈 길을 갈 것이다.

"앱이 업데이트되는 속도가 동물의 멸종 속도와 같대요. 제가 앱 하나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지구상의 어떤 동물이 완전히 멸종한다는 괴상한 말이에요."

아무렇지 않게 꺼낸 지난날을 굳이 수면 위로 올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얹을 필요가 없어 보였다.

"동물들이 살 수 있는 네트워크가 아예 존재하지 않아요.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을 고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아예 다시 프로그래밍을 해야 한다는 말이에요. 이 사회가."

보호받지 못하면 살 수 없도록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자유를 주다니. 복희는 그것 역시도 착해지고자 하는 인간의 이기심이라 여겼다.

서울에 서울숲이 있고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있듯이 지구에는 아마존이 있었고 동물들에게는 마사이마라가 있었다. 케냐에서는 마사이마라로 불렸고 탄자니아에서는 세렝게티라고 불렸다.

진화란 살아남기 위한 선택의 결과물일 뿐이다.

보경은 단지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느끼는 다급함과 초조함이 싫었다. 그러니 모든 일은 예정보다 조금 더 일찍, 버스를 놓치거나 영화 관람 시간에 늦는 일이 없도록 부지런을 떨었을 뿐이었다.

"너무 빠르니까요. 조금 느려도 되지 않을까요?"

숨통을 조이는 순간 분명 어느 한 곳이 짓무르기 시작할 거라고 믿었다.

정말로 다급하게 손을 뻗을 때에만 아이들의 SOS를 놓치지 않고 들으면 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리라. 섣부른 판단과 간섭은 아이를 답답하게 할 뿐이었다.

보이지 않으면 무엇이든 더 생생해졌다. 상상도, 소리도.

그리움이 밀고 들어오는 순간을 예견할 수 있다면 오래도록 그 순간을 만끽할 수 있게 준비라도 할 텐데, 친절하지 못했던 이별처럼 그리움도 불친절하게 찾아왔다.

운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지금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게 설령 살이 찢길 정도로 이를 악문 채 버티고 서 있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보호자가 힘을 내야 합니다. 모든 병은 결국 병과 환자, 그리고 보호자 셋의 싸움이거든요.

긴 병은 가족 사이의 부채負債를 만들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적잖은 상처를 줬지만 그 상처를 해결할 틈도 없이 또 새로운 상처가 쌓였고, 이전에 쌓였던 상처는 자연스럽게 묻혔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충분히 빚을 덜어낼 기회가 있을 거라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끝이 있는 고난이라 다독일 수 있었다.

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해 아주 처절하게 울었다.

그 일은 애초에 보경의 손이 닿을 수 없는 문제였으므로 탓할 수 있는 것이 세상에 많았다. 억울하다고 소리치며 삿대질할 수 있는 대상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손가락이 보경의 가슴을 찔렀다. 날카롭게 파고들어 기어코 상처를 덮어둔 가슴을 짓이겼다.

그날 이후로 보경과 은혜 사이에는 갚을 수 없는 부채가 쌓였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어서 결국 서로가 떠안고 있어야 했다.

조금만 게으르면 모든 걸 놓치는 시대가 아니던가.

역시나 사람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먼지가 금방 쌓였다.

또다시 저 박스에 든 것이 무엇인지 잊을 때쯤 찾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잊고 살리라 다짐했다.

속는 척했다. 속는 척하다 보면 언젠가 정말 속아질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본인 인생은 본인이 알아서 보듬으세요.

유전성 질환인 푹스내피이상증으로 각막내피세포의 감소가 일반인보다 몇 배는 빠르다는 주원은 수술을 받을 수 없었다.

"삼차원의 우리가 일차원의 말에 상처받지 말자."

미안함이나 고마움 따위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 사람 사이에 당연하게 일어나는 화음 같은 것.

운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없다. 눈물이 날 정도로 속이 엉망이지만 울면 더 엉망이 될 것이다. 시원하게 울었지만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평생토록 울 게 아니라면 이쯤에서 우는 건 그만두어야 했다. 이제부터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안 해서 어쩔 건데?‘

‘징징거려봤자 너만 피곤해‘

속을 갉아먹고 얻은 힘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다정한 말이 능사는 아니었다.

그때는 도망치는 기간을 정해뒀어야 한다는 걸 몰랐다. 정확한 날짜를 정해두지 않으니 돌아가는 날이 점점 미뤄졌다.

가끔 세상은 은혜가 들어갈 틈 없이 맞물린 톱니바퀴 같았다. 애초에 은혜가 들어갈 수 없게 조립된 로봇 같았다. 그런 세상에 제대로 한 방을 날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을 때마다 분에 못 이겨 경마장을 찾았다.

투데이는 은혜만의 대나무 숲이었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 비밀이 보장되는 유일한 속마음의 창구였다. 그런 투데이가 이제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운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어."

울어서 해결되는 일은 없다. 눈물이 비집고 나오려는 걸 꾸역꾸역 참아내며 다짐하듯 말했다.
"내가 너를 놓지 않을 거야."

나는 강하다. 나는, 지킬 수 있다.

"보고 싶은데 꼭 이유가 필요해? 되게 이상한 걸 물어본다,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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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다른 일반적인 소설들과는 구성 방식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느껴졌다. 보통은 하나의 흐름이 쭉 이어지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 책에서는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 또는 로봇의 입장을 개별적으로 구분하여 서술한 것이 개인적으로 독특하다고 느껴졌다.

대략적인 기억들을 더듬어보면, 콜리와 연재 그리고 연재의 엄마인 보경, 연재의 누나 은혜 등과 같은 인물들 각각의 스토리들이 소개되는데, 이것들 중에는 각 캐릭터들만의 고유의 스토리도 있지만, 등장인물들간에 겹치는 사건 등에서는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하나의 동일한 사건을 각자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이야기의 맥을 중간에 놓치지 않고 쭉 이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연재의 엄마인 보경에 대한 이야기부터 나오는데, 읽어보면서 캐릭터별로 어떤 기질과 특징이 있는지를 좀 더 파악해보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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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니 보경이라는 인물은 과거에 배우로 활동했을 정도로 외모가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불의의 사고로 인해 얼굴에 상처가 생기고 이로 인해 왕성했던 배우활동에 지장이 생기게 된다. 이는 결과적으로 외면의 상처뿐만 아니라 내면의 상처까지 유발시키고 말았는데, 어떤 일이 발단이 되어 그 상처들을 조금씩 회복해 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러한 회복도 잠시였다. 예상치 못했던 또다른 일로 인해 다시 마음에 심각한 내상을 입게 된다. 결국 돌고 돌아 자신이 꿈꿔왔던 삶과는 다소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는데, 참 이런 것들을 보면서 인생이라는 것이 무엇하나 내 마음이나 내 생각대로 이루어지기 정말 힘들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

내가 꿈꾸는대로 인생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루 다 말하기 힘들정도로 굉장히 많은 요소들이 필요한데, 솔직히 이런 요건들을 완벽하게 갖추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로 인생은 절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하는 듯하다.

이와 관련하여 작년에 읽었던 유현준 교수의 책에서 저자가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정확한 문장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으나 핵심은 바로 ‘차선이 모여서 최선이 된다‘는 말이었다. 내가 매번 최선의 선택지를 선택할 수 없기에 내가 생각했던 최선보다는 조금 못미치는 차선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결국 이런 선택들이 모여서 결과적으로 최선을 만들어간다는 말이다. 실제로 유현준 교수도 자신의 책에 고백한 바에 따르면 ‘자기 인생도 결코 자신이 처음에 생각하고 꿈꿨던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차선책을 선택하면서 여기까지 왔다‘는 식으로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현재 처한 상황이 비록 못마땅하거나 꿈꿔왔던 것과는 차이가 있더라도 그 처한 상황에서의 최선을 늘 추구하는 것이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냥 힘겹다고 인생의 끈을 무작정 놓을순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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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읽다가 지수라는 인물이 새롭게 등장한다. 지수는 연재와 같은 반 친구인데, 가정형편이 평범한 연재와는 달리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으로 영어 유치원은 물론이고, 외국 생활까지 하다 온 친구였다. 물론 연재도 특정 분야에 있어 특출난 재능이 있었지만 그외의 것들에 있어서는 지수보다 여러모로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린 연재는 자신과 나이는 같지만 여러면에서 앞서있는 지수같은 친구들을 보며 자괴감이 들곤 하는데, 이것이 비단 이 소설 속 연재만의 느낌은 아닐 듯하다. 특출난 극소수의 인원 몇 명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한 번 쯤은 해보았을 고민이지 않을까?

하지만 연재에게 자괴감을 느끼게 했던 지수는 우연한 계기로 인해 연재와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는데, 이런 걸 보면서 사람 일이라는 게 언제 어떻게 바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여기서는 소설 속 설정 상 어느정도 의도된 것이겠지만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딱히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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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복희라는 인물이 새롭게 등장한다. 이 인물은 기존에 나왔던 인물들과는 별개로 경마장의 말을 관리하는 사람인듯 보이는데, 뒤에 이어질 내용에서 어떤 역할을 할 지 문득 궁금해졌다.

‘이렇게 예쁨 받는데 더 많은 사람에게 왜 예쁨 못받겠어?‘ 라는 생각

모친은 인생의 2막이란 원래 아무도 모르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보경이 보기에는 시대의 흐름에 탑승하지 못한 예견된 추락일 뿐이었다.

여기가 왜 지하인줄 알겠어? 식물은 땅에 뿌리를 내리니까, 이곳에 네가 뿌리를 내려야 지상에 꽃으로 필 수 있다는 말이야.

인간은 숨이 끊겼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삶의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게 생겼다. 선남선녀가 목숨을 계기로 만났으니 사랑에 빠지기는 쉬웠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꽤 가쁘게 흘러갔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자 자연스럽게 회복도 빠르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만난 사람은 편안했다.

"3%였잖아요."

"사람은 기계와 달라서 꺼진다고 완전히 멈추는 게 아니니까요. 3%라는 뜻은 말 그대로 살 수 있다는 뜻이에요."

소방관과 약지에 반지를 나눠 낀 후부터 보경의 삶은 자신이 그려왔던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배우의 꿈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다급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의 시선보다 단 한 사람의 시선을 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이었다.

삶이 이따금씩 의사도 묻지 않고 제멋대로 방향을 틀어버린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벽에 부딪혀 심한 상처가 난다고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방향을 잡으면 그만인 일이라고. 우리에게 희망이 1%라도 있는 한 그것은 충분히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3%도 살았는데 80%는 왜 못살아. 당신 왜 이러고 있어."

모친의 요리 솜씨로 시작됐던 인생은 긴 레일을 돌고 돌아 다시 모친의 요리로 돌아왔다.

요리는 연구하지 않아도 혀가 시키는대로 따라가면 금세 모친이 내던 맛이 났다.

죽음이 확률로 계산되지 않고 예견되지 않는 날들을 쭉 누릴 생각이었다. 연재가 쓰레기같은 기수 휴머노이드를 데리고 오기 전까지는.

"쟤가 뭐를 저렇게 갖고 싶어 한 게 처음인 것 같아서."

예전에는 휴머노이드가 갑자기 나타나서 멀쩡히 은행에 다니던 사람을 밖으로 내쫓더니 이제는 제 딸이 다 망가진 휴머노이드를 가지고 왔다. 어쩐지 눈은 뜨고 있으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기분이었다. 빼앗긴 적 없는데 빼앗긴 기분이었고 버려진 적 없으나 버려진 기분이었다. 휴머노이드를 보면 그랬다.

사람은 이따금씩 강렬하게 무언가에 끌렸다. 그게 사람일 수도, 사랑일 수도, 음악일 수도, 물건일 수도 있었다. 그 강렬한 끌림 앞에서는 무엇도 걸림돌이 될 수 없다. 마지막 월급을 전부 꼬라박을 정도의 강렬한 끌림을, 어제 연재는 다 망가진 콜리를 보고 느꼈으리라.

때때로 어떤 일들은, 만연해질수록 법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 일에서 손을 놓아버리고는 했다.

몇천만 원을 웃도는 기계 다리 부착 수술보다 더 필요했던 건 인도에 오를 수 있는 완만한 경사로와 가게로 들어갈 수 있는 리프트, 횡단보도의 여유로운 보행자 신호, 버스와 지하철을 누구의 도움 없이도 탈 수 있는 안전함이었다. 휠체어를 끌어주는 휴머노이드나 사이보그 다리가 아니라.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지구가 너무 많이 바뀌어야 했다. 다수의 입장에서는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전가하면 그만인 일이었으니까.

언제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어떤 것도,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다 왔잖아. 조금만 더 힘내.

반드시 그곳에 가리라는 마음을 먹자 몸에 힘이 생겼다.

완벽한 차단이란 존재하지 않으리라. 분명 어느 틈으로는 그 화려한 경기를 볼 수 있을 거라 믿었고, 그 믿음은 오래 걸리지 않아 현실이 됐다.

가족 둘이 모이면 다른 가족의 흉을 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 것처럼 대화가 흘렀다.

가족의 대화란 게 또 그렇듯이 주제도 흐름도 없이 그때그때 튀어나왔다.

"시긴 진짜 빨리도 간다. 1년이 하루처럼 흐르는 것 같아. 징그럽게 빨리도 가."

은혜가 그곳에 오래도록 있고 싶어서 있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그 공간이 은혜가 오래 머물 수 있도록 되어 있었을 뿐이었다.

gyro sensor. 기본적으로 회전하는 물체의 역학운동을 이용한 개념으로 위치 측정과 방향 설정 등에 활용되는 기술이다. 스마트폰, 리모컨, 비행기나 위성의 자세 제어 장치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플라스틱보다 가벼운 카본

들개는 살아 있었다. 숨은 쉬고 있지 않지만 살아 있는 지상의 어떤 생명과도 전혀 다를 게 없었다.

일부러 할 말 없게 대화를 툭툭 끊는 것

"말하는 꼬라지 진짜 별로다."

다르파가 네 발 달린 휴머노이드라는 걸

어쩔 수 없는 차이는 숨겨지지 않았다.

급이 높은 아이들의 진가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는다는 것에 있었다.

"좋아. 내가 오늘부터 아주 끝장나게 너랑 친구해준다."

희박한 반전에 기대를 걸 만큼 체력과 감정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연재는 타인의 삶이 자신의 삶과 다르다는 걸 깨달아가는 것이, 그리고 그 상황을 수긍하고 몸을 맞추는 것이 성장이라고 믿었다. 때때로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과정은 폭력적이었다. 그러니 연재에게 남은 방법은 딱 하나였다. 수업이 마치자마자 온 힘을 다해 뛰어가는 것.

삶의 격차라는 것이 어느 틈을 비집고 생기는 것인지 한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똑같이 학교에 다니고 똑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공부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어떤 아이들에게는 다가갈 수조차 없을 만큼 차이가 났다. 우리 부모님도 돈을 벌고, 우리 부모님도 나를 사랑하는데 왜 우리는 같은 나이에 이만큼 차이가 나는 걸까.

세상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물건들이 각기 다른 몸값을 지니고 나왔다. 연재는 그것이 정말로 필요해서 생긴 것인지 생김으로써 필요해진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세상은 연재와는 상관없이 빠른 속도로 많은 것을 탄생시켰다. 그제야 삶의 격차가 어느 틈을 비집고 생겼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건 연재의 균열이라기보다 부모님, 그리고 그 부모님보다 더 먼 부모님의 삶 어디에선가부터 천천히 시작된 균열일 것이다. 연재가 스스로 절대 여밀 수 없는 크기로 말이다.

인간의 원초적인 힘은 결국 문명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냥 처음부터 같이 가면 될 걸 미련하게 힘을 왜 빼."

"요즘 세상에 공부만 잘해도 모자랄 판에 공부 빼고 다른 거 다 잘해서 뭐 먹고 살 건데?"

이제 찌를 던져 낚시 바늘을 틈에 걸기만 하면 됐다. 지수가 팔짱을 꼈다. 아빠에게서 들은 거래의 기술 중 하나인데, 본디 상대방의 환심을 사려면 그만큼 매혹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거였다.

인생이 언제 한 번쯤 순탄하게 풀리나 생각했는데 그날이 오늘인가 싶었다.

사람들은 돌고래의 지능은 익히 알면서도 말 역시 돌고래와 지능이 비슷하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했다. 말은 인간으로 치자면 6세 정도의 아이큐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손에는 말들이 좋아하는 당근과 각설탕을 함께 준비했다. 각설탕이 말에게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단걸 좋아하는 말들에게 각설탕은 스트레스를 최단시간 안에 풀어줄 수 있는 좋은 수단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당보다는 스트레스가 최악이었다.

선배는 말의 목덜미를 두드리며 복희에게 이곳을 쓸어보라고, 만져주면 가장 좋아하는 부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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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포스팅들에서 전문직의 유래와 역사 그리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이론들을 살펴봤었다. 독자인 내가 느낀 본문의 흐름을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전문직군이라는 것이 최초로 발생했던 초기에는 개인의 이익보다는 사회 전반에 대한 어떤 소명의식 같은 것을 가지고 발전하다가 자본주의 사회가 들어서면서 어느순간부턴가 사회와 공공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익을 훨씬 더 우선시하는 그런 추세로 변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소위말해 공익같은 것과는 전혀 무관하게 돈 되는 일에 집중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시대 흐름이 무조건 잘못됐다고 단정적으로 결론짓기는 조심스럽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전문직들이 자신의 일을 대하는 태도가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직접 겪은 일은 아니지만 주변 지인 중에 금전적인 채권채무 관계로 인해 변호사를 써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분이 계셨는데 그 금액이 결코 적다고 할 수는 없지만 또 딱히 크다고 하기도 좀 애매한 그런 정도의 사건을 변호사 사무실에 맡겼던 일이 있었다. 이 변호사는 사건을 수임했으니 계약금 명목으로 몇 십만원 정도를 요구했고, 지인은 일단 그 금액을 송금했다고 한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그 금액의 규모가 변호사 기준에는 그닥 큰 금액이 아니었는지 해당 사건에 대해 상대측에 내용증명을 한 번 보낸 후로는 딱히 이 사건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고 한다. 연락을 해도 해당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딱히 적극적이지 않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고 하니 뭐 말 다했다. 결국 지인은 내용증명 이후에 후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조치들을 받지 못한 채 그냥 채권채무관계가 흐지부지 되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계약금 몇 십만원만 날린 셈이다.

뭐 쓰다보니 얘기가 길어졌는데,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전문직들이 어떤 사건을 맡았을 때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는 결국 그 사건에서 얼마나 많은 금전적 이득을 챙길 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뭐 어찌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극히 당연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해당 사건에 걸린 금전적인 규모에 따라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아지는 사회가 되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씁쓸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추가로 생각을 덧붙여보자면 이거는 전문직 얘기와는 논외이긴 한데, 애초에 위와 같은 일들을 만들지 않도록 평소에 신경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법적으로라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물론 해결되지 않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각종 소송 등으로 인해 받는 부담해야 하는 적지 않은 금전적 부담, 정신적인 스트레스 등을 생각해본다면 사전에 이를 방지하는 게 가장 최선이 아닐까 싶다. 경영학의 품질관리 분야에 나오는 내용 중에도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는 비용(예방 비용)이 가장 적게 들고, 사건이 터진 뒤에 이를 수습하기 위한 비용(외부 실패 비용)이 가장 크게 든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뭐 결론은 금방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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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읽다가 흥미로운 구절을 하나 발견했다. 철학자 앤서니 케니Anthony Kenny 라는 사람이 주장했다고 하는데, 기술이 사람들에게 ‘힘‘을 주기도 하지만 ‘타락‘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말이었다.

독자인 나는 이것을 보면서 마치 예전에 노벨이 공사장에서 터널 뚫는 것을 쉽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다이너마이트를 처음 발명했던 것이 생각났다. 이는 원래 선의로 개발된 기술이지만, 이후에 사람들이 다이너마이트를 전쟁용 살상 무기로 사용하면서 처음의 취지와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었다.

최근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AI의 경우도 지금 시점에서는 마냥 좋고 신기해보일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기존에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는 없다. 이는 사회 전반적인 주의가 요구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글을 쓰면서 ‘양날의 검‘이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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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일일이 밑줄치진 않았지만 뒤이어 읽다가 세계적인 전동공구 제조사가 신입 임원들을 대상으로 교육했던 일화가 하나 나온다. 핵심만 간단히 말하자면 여기서 교육 담당자는 회사가 파는 것이 ‘전동 드릴‘이 아니라 ‘전동 드릴을 사용해 뚫어진 구멍‘이라고 언급하는데, 이 일화를 통해 유형의 물건만 보는 한정된 시각에서 벗어나 무형의 본질을 볼 수 있는 좀 더 넓은 시야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좀 생뚱맞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거라고˝ 얘기했던 ‘어린 왕자‘의 말이 문득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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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전문직 서비스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독자인 내가 본문을 통해 느낀 전문직 서비스의 본질은 바로 일반 대중이 잘 알기 힘든 지식들을 기반으로 하여 서비스 수요자가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기술이 급속히 발전함에 따라 이제 일반인들도 굳이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특정 분야의 지식들을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로 인해 이 책 뿐만 아니라 최근에 대두되는 이슈가 바로 ‘전문직의 미래가 과연 예전처럼 밝기만 할 것인가‘ 인 것이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전문직은 엄밀히 말하면 지식을 기반으로 해서 먹고사는 직업인데, 전문직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라는 것이 요즘 소위 말하는 AI(인공지능) 에게 물어보면 거진 웬만한 것들을 상당부분 얻을 수 있기에 전문직이라는 것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다고까지는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확실한 건 과거에 하던 역할과는 다른 역할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저 과거처럼 지식에만 의존해서는 인공지능 등으로 인해 도태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그 무엇을 해내야 소위 말하는 전문직의 미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무엇이 뭔지는 아직 나도 당장 얘기할 수는 없지만, 일단 변화해야한다는 것만은 명확해보인다.

하긴 전문직 뿐만 아니라 그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도 세상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도 변하지 않고는 살아남기 참 팍팍한 사회가 되고 있는 듯하다.

전문직은 경제, 기술, 심리, 도덕, 품질, 그리고 이해 불가함 등 여섯 가지 측면에서 실패했다. 이런 결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 결합되어 더욱 큰 문제를 초래할 것이다. - P58

대부분의 사람들과 조직이 최상급 전문가의 서비스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 P58

부자 또는 보험을 충분히 든 사람만 의사, 변호사, 회계사, 경영컨설턴트 같은 일류 전문직을 다수 고용할 수 있는 것이 냉혹한 현실이다. 극소수가 지닌 전문성이 소수에게만 공급되는 것이다. 예컨대, 재력 있는 소수는 롤스로이스급 서비스를 받고, 나머지는 모두 걸어다녀야 하는 상황이다. - P58

대부분의 국가가 학교, 법률 제도, 의료 서비스 등 기존의 전문 서비스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워한다. - P58

공공지출액이 삭감되면서 심각한 문제를 겪는 전문직 분야가 많다. 물론 모든 시민이 가장 뛰어난 전문가의 지식과 경험의 혜택을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 이는 비현실적인 기대임에 분명하다. 전문성이 희소자원이라는 데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문성 자체의 공급은 절대 부족하지 않다. 희소한 것은 전문가다. 현재 전문가 업무를 조직하고 전달하는 방식으로는 직접 만나 소통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서 제약이 발생한다. - P59

꼭 일류 전문가가 아니어도 된다고 눈높이를 낮춰도 비용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의료비용은 계속 치솟고, 학교는 한탄스러울 만큼 자원 부족에 시달리며, 중간급 변호사를 고용하는 비용은 다른 분야의 중간층 전문가마저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영세 기업은 힘이 없다. 소기업 소유자는 경영컨설턴트, 세무 전문가, 회계사를 확보할 만한 자원이 없다.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큰 조직도 전문 서비스가 엄청나게 비싸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CEO와 CFO들이 전문 서비스(특히 법률, 세무, 회계, 컨설팅) 비용을 크게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 P59

경제 문제는 전문직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 문제보다 시급하지는 않다. 경제 문제는 접근성 문제로, 서비스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비교적 적기 때문에 일어난다. - P60

전문가의 전문성은 불균등하게 분배된다. 전문성의 불평등 문제는 다른 불평등 문제와는 성격이 다르다. 다른 사회적배제 문제에서는 비교적 소수가 피해를 입는 반면, 전문 서비스에서는 절대다수가 배제된다. 이제까지 쌓아올린 인간의 전문성이라는 영광스러운 성채에는 극소수만 입장할 수 있다. - P60

전문직 서비스는 마치 정의가 그렇듯, 그리고 최고급 호텔이 그렇듯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 P60

인간은 연구와 질문을 통해 지식과 통찰을 획득하고, 이를 사용해 자기 문제를 해결할 때 힘을 발휘한다. - P61

가끔은 전문가에게 의탁하는 편이 훨씬 간단하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하지만, 노력 자체에서 얻는 만족감은 분명히 존재한다. - P61

개인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자립심이 약해질 뿐 아니라 과연 자기에게 자립할 능력이 있는지도 의심하게 된다. - P61

서비스의 수요자가 자신의 문제를 직접 들여다보지 못하게 막는 전문가는 (지식을 지녔으면서도 전부 공유하지는 않음으로써) 힘의 균형을 유지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수요자가 무기력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 P61

현재처럼 조직된 전문직은 서비스 수요자의 자조, 자립, 자기발견을 가로막는 경우가 많고, 또한 한때 훌륭한 통찰력을 갖췄던 개인이 자기 문제에 더욱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참여해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불필요하게 억제하거나 심지어 소외시킨다. - P62

전문직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과 서비스를 대부분 책임진다. 하지만 접근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저렴한 전문가 업무는 한심할 정도로 적다. 기술 기반 인터넷 사회에는 비용이 비교적 덜 들고 접근하기도 편리한 지식을 창출하고 공유할 새로운 방식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이렇듯 다양한 방식을 도입해서 얻을 이익은 약점을 크게 넘어선다. - P62

기술이 사람들에게 ‘힘‘을 주기도 하지만 ‘타락‘하게 만들기도 한다 ...(중략)... 사람들에게 악한 일을 할 (예컨대, 핵무기로 세상을 파괴할) 힘을 줄 뿐 아니라, 선한 일을 할 (예컨대, 인류 모두가 깨끗한 물을 사용하게 만들) 힘도 주기 때문이다. - P62

기술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죄를 지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죄도 저지를 수 있는 힘을 즉각적이고 필연적으로 가져다준다. - P62

사회에 존재하는 전문성을 훨씬 낮은 비용을 들여 훨씬 널리 퍼뜨릴 기술 수단이 있을 경우, 그런 일이 현실화되도록 노력할 의무가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 P63

모든 환자가 항상 최고의 의사에게 치료받는 것은 아니다. 모든 학생이 항상 열의를 북돋우는 교사에게 교육받는 것은 아니다. 종교 신자가 가장 뛰어난 영적 지도자의 인도를 받는 경우는 드물다. 고객이 최고의 변호사, 회계사, 경영컨설턴트에게 조언을 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 전문가 업무가 전통적으로 어떻게 수행되는지 생각해보면 이는 당연한 일이다. 전문가가 직접 만나 조언하는 방식으로만 경험과 지식을 나눈다면, 진정 훌륭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뿐이다. - P63

전문 서비스 수요자는 합의의 본질상 자신이 받은 도움의 핵심을 평가할 수도 없고, 자신이 의뢰한 전문가가 작업을 수행하기에 최적인지 판단할 수도 없다. - P63

전문가가 비싼 수수료를 정당화하거나 그저 자신의 지위를 강화하려고 일부러 고객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불투명하고 혼란스러운 곳에는 불신과 책임 회피가 발생하게 마련이다. - P64

쟁점이 되는 현상을 서비스 수요자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적절한 설명을 듣지 못하거나, 현상이 은폐되어 신중하게 조사할 수 없다면 개혁이나 변혁을 논하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 P64

현재의 전문직은 대체로 많은 대가를 요구하고,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으며, 사람들에게서 힘을 빼앗고, 윤리 문제의 소지를 갖고 있으며, 낮은 성과를 내고, 이해하기 힘들다. - P64

대안을 생각하기 위해선 사고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 P64

신임 임원의 일은 고객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해 더욱 창의적이고 경쟁력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 - P65

전문가는 지금 하는 일이 무엇인지 돌이켜본 후(보통은 시간당 수수료를 청구하는 일대일 자문 서비스다), 이 서비스를 더 빠르고 저렴하고 우수하게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자문하는 경향이 있다. "전문직에게 ‘벽에 뚫은 구멍‘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전문가는 드물다. - P65

"우리의 존재 의의는 우리 지식을 가치로 전환해 고객에게 이익을 주는 데 있다" - P65

전문가는 다양한 분야에서 보유한 지식, 전문성, 경험, 통찰, 노하우를 고객이나 환자 등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수요자가 처한 특정 상황에 적용한다. 이 경우 고객이 이용하려는 지식,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지식을 고객이 처한 특정 상황에 적용하는 것이 바로 ‘벽에 뚫은 구멍‘이다. - P65

‘가치‘는 전문직의 종류에 따라 문제 해결 또는 문제 회피, 안심 또는 보험, 건강 또는 위안, 교화 또는 계몽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 P66

지식이 다양한 양상으로 전문가 업무의 핵심에 존재한다 - P66

전문가는 자신에게 도움을 청한 사람의 이익을 위해 지식을 얼마나 잘 획득하고 육성하며 공유하고 순환시키는가? 진실을 말하자면 많은 전문가가 자기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재활용하는데 그다지 능숙하지 않다. - P66

완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전문가의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면어떻게 될까? - P66

관찰자들은 대부분 현재의 전문직을 출발점으로 삼아 미래를 생각한다. 전동 드릴과 구멍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면, 한 걸음 물러나 다음과 같이 더 앞선 질문을 던져보자. 전문직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 수단인가? - P66

기본으로 돌아가면, 사람들이 전문직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전문직이 알기 때문이다. 물론 누군가가 특정한 문제를 다른 이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까닭에 사회에는 자연스럽게 지식의 불균형 또는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 P66

전문직은 특정 지식 분야에서 불균형을 제도화하고 심화해왔다. 의사와 환자, 변호사와 고객, 교사와 학생, 목사와 신도, 경영컨설턴트와 사업가, 세무 전문가와 납세자 등 전문가가 관련된 모든 관계에는 불균형이라는 특징이 보인다. 이들 서비스 수요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공급자의 지식을 사용해 이익을 얻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전문가는 통찰과 지식의 일부를 수요자에게 전달하기도 하지만 (교육 서비스에서는 이것이 핵심이다) 전문가의 역할은 대체로 수요자가 처한 특정 상황에 맞춰 자기 지식을 인용하고 해석하며 적용하는 데 집중된다. - P67

전문직이 무엇을 왜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려면, 애초에 사람들이 왜 전문가를 만나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법철학자 허버트 하트 Herbert Hart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들이 전문가의 도움을 원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자신이 ‘제한된 이해력‘만 가졌다는 지당한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다. - P67

그 누구도 모든 것을 알 순 없다. 사람들은 편안하게 생활하고 일하기 위해 외부 정보에 의지한다. 사람들은 전통적 전문직을 발명하고 조직한 후, 이들에게 도움을 받아 제한된 이해력을 극복하려고 했다. 전문직은 자신들만이 보유한 지식을 제공해 시민 또는 조직이 직면한 특정한 문제나 복잡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때 전문가는 미숙한 일반인과 전문성을 지닌 거대한 조직 사이에서 접점 역할을 한다. - P67

신뢰, 안심, 품질, 지위, 훈련, 규제 등등 전문 서비스를 구성하는 다른 모든 차원은 부차적인 요소다. 수요자의 이해력이 제한되지 않아서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면 신뢰를 요구할, 안심을 갈망할, 품질을 관리할, 서비스나 행동을 규제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 P67

실제로 전문가 서비스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조건은 사람들이 지식을 필요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요소가 없으면 신뢰나 훈련 같은 다른 요소는 무의미해진다. - P68

수요자가 원하는 것은 이론가나 학자가 쓴 책 등 출판된 글에 나오는 추상적 지식이 아니다. 자기 문제를 얘기했는데 전문가가 책을 건네며 읽어보라고 한다면 누구도 만족스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지식은 분명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 P68

서비스 수요자는 무엇보다도 전문가가 실질적 지식(사실에 관한 지식know-that)뿐만 아니라 이를 활용할 적절한 ‘노하우 know-how (방법에 관한 지식)‘도 보유했으리라 기대한다. 전문가가 "이론상으로는 모두 맞는 말이지만 현실에서는..."이라고 말할 때가 바로 노하우를 전달하려는 시점이다. - P68

노하우란 책에 나오는 지식을 언제 어떻게 적용하느냐 하는 것에 관한 통찰이다. - P69

노하우는 ‘암묵적‘일 때도 있다. 의식적으로 언급되거나 공식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비공식적으로 절차에 적용되는 ‘비법‘ 또는 ‘요령‘인 경우도 많다. 추정, 직감적 반응, 주먹구구, 직관에 근거하는 경우도 잦다. 이런 노하우는 때로 소위 ‘휴리스틱heuristic (시간과 정보가 불충분하거나 체계적 합리적 판단이 불필요한 상황에서 직관에 의지해 신속하게 사용하는 어림짐작 방식. 발견법이라고도 한다.)‘ 개념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 P69

서비스 수요자는 전문가가 지식과 노하우를 오랜 기간 깊이 있게 쌓아왔기를 바란다. 요컨대, 서비스 공급자가 ‘많이 아는 사람‘을 넘어 ‘숙련된 전문가‘이기를 원한다. 그뿐만 아니라 전문가가 과거에 전문성을 여러 번 활용해서 큰 성공을 거두었기를, 그래서 자기가 안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전문가를 학자와 구분하는 것은 바로 실적이다. - P69

공급자가 자신의 전문성과 경험을 실제 세계에 효과적으로 적용하려면 기술, 기법, 수단을 갖춰야 한다. - P69

공식적 지식, 노하우, 전문성, 경험, 기술이 이루는 복합체를 ‘실용적 전문성 practical expertise‘이라고 부를 것 - P69

각각의 전문 분야는 원재료를 다루는 방식이 대체로 비슷하다. 각자 의존하는 방법은 서로 다를지 몰라도, 토대가 되는 원천을 해석한 후 여기서 얻은 지식을 일상 환경에 적용한다는 것은 같다. - P70

어떤 분야에서든 전문가는 원재료를 관리할 수 있는 크기로 재구성해 머리에 넣은 뒤 책으로 펴내거나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게 만들고, 정제해 작업절차를 때로는 설명서를 만들고 실행 기록으로 요약하는 등의 작업을 한다. - P70

이 책에서 제기하는 결정적 주장은, 비록 이제껏 원재료의 해석과 적용이 지성을 갖춘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고 가정해왔지만, 사실 그런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실용적 전문성‘이라는 개념을 확장해 기존 전문가의 공식적 지식, 노하우, 전문성, 경험, 기술뿐 아니라 다양한 기계와 장비가 내놓는 산출물까지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 P70

일반인은 이제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예전에 전문가로부터 서비스를 받는 과정에서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 전문가와 기계에서 얻은 지식, 노하우, 전문성, 경험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이 같은 지식과 경험 역시 실용적 전문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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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회가 되어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어떤 내용들이 나의 마음을 움직이고 생각을 일깨울지 조그마한 기대감을 가지고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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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는 ‘투데이‘라는 말(馬)과 ‘콜리‘라는 휴머노이드 로봇 기수(騎手)가 등장한다. 전반적인 서술의 관점은 국어시간에 배운 바에 따르면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중간중간 휴머노이드 로봇인 ‘콜리‘의 시점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솔직히 맨 처음에 특정한 장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이게 무슨 얘기지 하면서 의아해 하기만 했었는데, 뒤에 나오는 이야기 퍼즐들을 맞추어 나가면서 맨 앞에 나왔던 이야기의 상황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요즘 AI니 뭐니 하면서 인공지능과 관련된 것들이 많은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휴머노이드 로봇도 AI기술과 적접적으로 관련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소설에 나온 ‘콜리‘는 제작과정에서 특정한 칩이 잘못 삽입되어 일반적인 휴머노이드 로봇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일례로 자신이 타는 말인 ‘투데이‘와 교감을 하고자 한다거나, 언어 학습 분야에 있어서 다른 로봇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양의 어휘를 알고 있다는 등의 특징이 있다.

아무튼 평범하지 않은 휴머노이드 로봇이지만 어찌됐든 ‘콜리‘는 인간의 기술에 의해 창조되었고,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다. 투데이라는 말의 기수로 경마장에서 경주를 이기기 위한 역할에 충실하도록 교육받고 훈련받았다. 물론 이로 인한 성과도 있었다. 투데이가 신기록을 세우면서 경주에서 1등을 차지한 것이다. 하지만 한동안 이런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내던 투데이는 어느 순간 이러한 생활이 반복됨에 따른 반작용으로 인해 몸과 마음에 이상이 왔고, 심지어는 걷기조차 힘든 상황까지 맞이하게 된다. 매경기 진통제를 맞고 뛰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콜리는 투데이와의 교감을 통해 투데이의 이런 상태를 파악한다. 그리고 스스로 결단한다. 자기가 낙마해서라도 투데이를 살려야겠다고 말이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독자인 내 머릿속에도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일단 말(馬)인 ‘투데이‘에게서는 과중한 업무에 치여서 치열하게 살던 인간이 어느순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갈되어버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소설 속에는 비록 말로 나오지만, 어쩌면 투데이는 이 시대를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모습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참 기묘하게도 이름이 ‘투데이‘인데 이것의 영어 뜻처럼 오늘 하루를 열심히 일하면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게 아닐까 싶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아파도 참고 버티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말이다. 소설에 나온 캐릭터를 통해 뭔가 공감과 위로를 얻어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어서 휴머노이드 로봇인 ‘콜리‘를 보면서는 비록 진짜 사람은 아니지만 웬만한 사람보다도 더 인간적인 면이 느껴졌다. 자신이 타는 말인 투데이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것을 교감으로 느끼고 스스로 낙마해서 투데이가 조금이라도 편안했으면 하는 그 마음은 자신을 희생해 상대방을 살리려고 했던 예수님의 사랑과도 어느정도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여기 일일이 적진 않았지만 소설 속에 나오는 인간들은 그저 투데이와 콜리를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그저 이용해먹으려는 생각뿐인데, 오히려 로봇인 콜리가 인간이 가져야할 법한 마음과 생각을 한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이는 어쩌면 요즘 사람들이 점점 더 인간성이라는 것을 잃어가고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 나타낸 건지도 모르겠다.

고통은 생명체만이 지닌 최고의 방어 프로그램이다. 고통이 인간을 살게 했고, 고통이 인간을 성장시켰다.

투데이는 흑마다. 빛이 반사되는 수면처럼 검은 털이 아름다운 암말이다.

역사적인 날. 나는 오늘을 그렇게 부르고 싶다.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날이란, 무언가를 처음 시작한 날을 의미할 때도 있었지만 기적이 일어난 날을 더 많이 칭했다. 기적. 오늘은 내 짧은 생애 두 번째로 기적이 일어난 날이었다.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세상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등속운동을 유지하며 자신에게 다시 생긴 삶을 이어갈 것이다.

나는 정확한 수치와 계산에 의한 결괏값만을 산출한다. 내 미래에는 예측 오류란 없다.

약속은 참 편리했다. 약속 한 번으로 많은 소리가 낭비되지 않았다.

"한눈팔지 말고 앞에만 봐."

허벅지를 말 몸에 밀착시킨 후 상체를 앞으로 숙여 안장과 평형을 유지했다. 이를 ‘전경자세‘ 라고 한다

링크 구조 : 두 개 이상의 장치를 연결해 서로 상호작용하게 만든 구조. 링크구조를 사용하면 경량화가 가능하고 모터를 사용하지 않아 유격이 발생하지 않는다.

"고삐는 놓으면 안 돼."

규정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사회질서는 모두가 약속된 규정을 어기지 않아야 유지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늘은 매일, 매시간 색과 모양이 바뀌었다. 하늘은 파란 색이었지만 가끔 보라색이나 분홍색, 노란색, 회색이 섞이기도 했다.

세상에는 단어가 천 개의 천 배 정도 더 필요해 보였다. 동시에 걱정이 들었다. 혹시 세상에 이미 그만큼의 단어가 있는데 자신이 모르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그 단어들은 어디에서 알 수 있을까.

여기서 ‘좋아했다‘ 는 더 자주, 더 오래도록 하늘을 바라봤다는 뜻이다.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늘에 흐를 수 있는 물체라니.

콜리의 반응은 언제나 즉각적이었고 바라보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방에서는 하늘을 생각하지 않았고 경기장에서는 시간을 헤아리지 않았으며 말을 타고 있을 때에는 단어를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재미있으니까."

몸이 공기와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무언가를 흡수하고, 분해하고, 배출하는 과정은 생명이 가진 특권이었다. 콜리의 몸은 그 어떤 것도 흡수하고, 분해하고, 배출하지 않는다. 콜리는 에너지를 몸에 쌓아두고, 형태를 전환하고, 소비하기를 반복한다.

호흡을 하면 몸이 자동으로 움직인다.

생명은 살아있는 존재라는 뜻이었다.

투데이도 달릴 때에만 살아 있다. 투데이가 살아 있기 위해서는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투데이는 채찍을 맞을 때마다 더 빠르게 달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빨리 달리면 달릴수록 투데이의 속은 고요해졌다. 콜리는 납득할 수 없었다. 행복하지 않다니. 투데이는 달려야 살아 있음을 느꼈지만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하지 않게 되었다.

힘내, 조금만 더 가면 돼. 경기 도중 투데이에게 콜리가 속삭였다. 그럴 때마다 투데이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아파. 아파. 아파.

투데이는 그렇게 신기록을 경신한 지 3개월 만에 무너졌다. 속도는 막판에 떨어졌고 1등을 유지하던 투데이는 어느 순간부터 2등, 5등, 심지어 9등까지 밀려났다. 야유는 쏟아졌고 몸값은 떨어졌으며 관심은 사라졌다.

콜리는 뭐든 상관없었지만 관절이 아파 걷기 힘들어하는 투데이를 치료하지 않는 것은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콜리는 마주치는 사람마다 투데이에게 적절한 치료와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투데이는 서있기 힘든 몸으로도 당근을 진통제처럼 씹어 먹으며 경기에 나가야 했다.

이대로는 죽어.
콜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날, 관중석이 꽉 찬 늦여름의 경기에서 콜리는 스스로 낙마했다. 투데이가 콜리의 무게를 힘겨워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로에 선 이상 투데이는 멈추지 못할 것이며 이 상태로 완주했다가는 영영 다리를 잃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실격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콜리는 짧은 순간 완주해야 한다는 존재 이유와 투데이를 살려야 한다는 규칙 사이에서 고민했다. 그리고 길지 않은 시간을 들여 후자를 선택했다. 투데이를 지켜야 한다.

투데이와 주로가 아닌 초원을 달릴 수 있다면 더 즐거웠을 텐데...

되도록 오랫동안 하늘만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아쉬움과 형태가 같다고는 깨닫지 못한 채로 말이다.

"제 실수죠. 딴생각을 하면 안 됐는데 문득 하늘이 푸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날이 맑은 날 초원을 뛰고 있다는 상상을 했거든요. 스크린으로 보이는 가짜 말고 진짜요."

한 번 기회를 놓치니 두 번째는 영 쉽지 않았다.

간절하게 원했다면 진작 뛰어나갔어야 했다. 지금 이 생각이 들기도 전에 말이다.

"사람이 산다는 게 끊임없이 낯선 것에 도전하는 거잖아."

사람 일이란 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데.

결국 이 세상은 수지타산이 얼마만큼 맞느냐로 돌아가는 것인데,

오지랖부리며 생각하지 말자. 짜증 나면 짜증 나는 거지 초기 비용을 자신이 왜 따지고 있나 싶었다.

발붙여 사는 동안에 지구가 멸망하지 않을 거라면 계속 열심히 사는 수밖에. 이것도 짜증 나지만.

지금 말하지 않으면 어쩐지 다시는 말하지 못할 것 같았다.

바다를 보고 와서 마음이 후련해졌다

조금만 덜 근면 성실하고 겁이 없었으면 경마에 돈을 걸어보는 건데, 그 주위를 맴돌다 자라면서 보게 된 건 억만장자가 되어 나가는 이들보다 그나마 있던 돈까지 죄다 잃고 쫓기듯 나오는 이들이 더 많다는 현실이었다.

"언니는 왜 그렇게 유니폼을 좋아해요?" ...(중략)... 어디에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이 좋잖아.

시설을 빠르게 업그레이드시킨 경마장이었지만 그만큼 가장 기초적인 곳들이 허술했다.

모든 것은 상황이 맞아야 이뤄진다고,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초원과 비슷한 환경으로 꾸몄다고 할지라도 초원은 아니었다.

그리움을 느끼려면 그리워할 대상이 분명하게 존재해야 했다.

갇혀 있지만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 문명 사회 이후 쌓아온 말들의 기억 DNA는 초원보다 마방에 더 많을 것 같았다.

아픈 건 금방 치료될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더 참아.

"여기 사람들은 나한테 관심이 너무 많아. 그 관심을 다 돈으로 주면 얼마나 좋아."

"너 이 정도도 귀찮아했다가는 정말로 도태된다."

연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몸통의 반이 부서져 폐기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 기수를 손에 넣어야만 했다. 밤잠까지 내쫓으며 머리에 꽉 들어찬 ‘존재‘를 어떻게 쉽게 보낼 수 있겠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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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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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론 장강명 작가님의 작품을 처음 읽어보았는데, 저자가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구조와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심도있게 고민하고 생각해본 흔적들을 작품속에서 엿볼 수 있었다. 특별히 이 작품에선 아직 사회에 발을 내딛지 않은 젊은 세대 혹은 사회초년생의 고뇌를 작가만의 방식으로 잘 풀어낸 듯하다. 완독후에도 독자들이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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