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시작한 부분에서는 연재와 지수가 오랫동안 함께 준비했던 대회에 출전하는 장면이 나온다. 대학 입시에서 가산점을 많이 받을 수 있는 큰 규모의 대회라 참가자들의 수도 많았고 해외 경험이나 유학 등을 다녀온 학생들도 적지 않았기에 경쟁자들의 수준도 꽤나 높아보였다. 연재는 사실 과거에 이와 비슷한 대회에 홀로 출전했다가 아쉽게도 수상에는 실패했던 경험이 있었던지라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든든한 지원군(?)인 지수와 함께 나와서였는지 예전만큼 긴장하지는 않는 듯 보였다.

하지만 연재와 지수 팀의 순서에 앞서 발표하는 팀들의 모습을 보며 연재는 자신이 준비한 내용이 부실한 건 아닌가 하는 걱정에 빠지고 만다. 그때 지수가 연재의 손을 잡으며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게 바로 처음 밑줄친 문장이다.

물론 인생은 결국 혼자라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이렇게 자기 자신의 마음을 컨트롤하는 것이 힘들 때는 이 소설에 나오는 지수와 같이 바로 옆에서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존재함으로 인해 새로운 힘을 얻고 위기를 극복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진정한 친구의 가치라는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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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연재가 거동이 불편한 자신의 친언니인 은혜를 생각하며 아이디어를 낸 ‘소프트휠-체어‘ 를 대회 심사위원들 앞에서 발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연재가 말했던 문장들을 보면서 왠지모를 뭉클함 같은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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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투데이가 다시 경주에 나서는 모습이 나온다. 솔직히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어떤 반전이 있기는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한 번 쯤은 했을 듯하다. 다만 개인적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반전이었기에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고 읽어나갈 수 있었다. 결말이 내 예상과 다르긴 했지만 그까짓게 뭐 대수인가. 그저 이 소설을 읽는 동안 행복했기에 그걸로 만족한다.

이 작품이 과학문학상 수상작이다보니 본 소설이 끝나고 관계자 분들의 심사평이 이어진다. 심사평을 읽어보니 심사위원들이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평가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어서 여러 모로 도움이 되었다. 글을 쓸 때 참조하면 좋을 듯하다.

책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작가의 수상 소감에서 자신은 소설을 쓰고, 플롯을 짜고, 인물을 구체화시키는 것 등을 좋아하지만 그 이유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고백을 한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그 이유를 찾고자 애섰지만 이제는 그 이유를 찾으려 하기보다는 그저 그냥 즐겁게 글을 쓰겠다고 말한다. 어쩌면 자신이 이 작품을 통해 예상치 못하게 받은 과학문학상처럼 그 이유도 갑자기 알게 될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작가의 수상 소감을 읽으면서 모든 일에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소설 속 인물의 말이 문득 생각났다. 그저 그냥 본능적인 것이라 진짜 이유가 없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직 그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유가 있든 없든 그게 뭐가 중요한가 싶기도 하다. 이유야 만들기 나름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저 그냥 행복하면 되는 거 아닌가. 소설 속에서도 행복이 고통을 이긴다고 하지 않았던가.

복잡하고 신경쓸거 많은 세상에서 너무 세세한 이유들을 찾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혹시나 커다란 행복을 놓치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되돌아봐야겠다.

‘네 아이디어가 제일 훌륭해.‘

‘소프트휠-체어‘는 2016년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만들어진 소프트 로봇 ‘옥토봇‘과 작동원리가 비슷하다. 합성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소프트휠-체어‘의 바퀴는 기존의 휠체어 바퀴보다 훨씬 얇고 질기며 바퀴 속에는 굽힘 변형률을 갖는 인공 근육이 심어져 있다. 평소에는 원형을 유지하지만, 계단과 같은 장애물을 만날 때에는 공기압을 이용해 그 장애물의 모양에 맞춰 바퀴의 형태를 변형할 수 있다. 동시에 전도성 고분자와 결합한 인공 근육이 변형된 바퀴의 형태를 고정시키면서 계단을 무리없이 오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바위와 돌로 이루어진 산악지대 역시 오를 수 있다.

연재가 떨지 않기 위해 천천히 숨을 뱉었다. 몸에 힘을 줄 때보다 힘을 뺐을 때 긴장이 더 풀렸다.

"한 번 외출하기 위해 남들보다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준비를 한다고 나갈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의지나 실력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끝내 포기하는 경우도 많아요. 어렵거든요. 도움이 없으면 갈 수 없는 길들이 많으니까요. 누구는 쉽게 수술을 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그 수술은 누군가에게 불가능과 같은 비용이거든요. 그리고 또 그 사람은 우리와 같은 온전한 두 다리를 갖고 싶은 게 아니에요. 다리는 형체죠. 진정으로 가지고 싶은 건 자유로움이에요. 가고자 한다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요."

"자유를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아주 잘 만들어진, 오르지 못하고 넘지 못하는 것이 없는 바퀴만 있으면 돼요. 문명이 계단을 없앨 수 없다면 계단을 오르는 바퀴를 만들면 되잖아요. 기술은 그러기 위해 발전하는 거니까요. 나약한 자를 보조하는 게 아니라, 이미 강한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인류 발전의 가장 큰 발명이 됐던 바퀴도, 다시 한 번 모양을 바꿀 때가 왔다고 생각해요. 바퀴가 고대 인류를 아주 먼 곳까지 빠르게 데려다줬다면 현 인류에게도 그렇게 해줄 거라고 믿어요."

"바람은 공기가 움직이는 거거든. 그래서 공기가 어떤지에 따라 달라. 겨울은 공기가 차가우니까 바람이 차가운 거고, 여름은 공기가 더우니까 바람이 더운거야."

"바람은 왜 부나요?"
"공기가 움직이거든. 기압이라는 게 있거든? 공기 덩어리야. 그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움직여. 끊임없이. 그렇게 지구를 순환하거든."

바람은 스스로 불지만 투데이는 그런 바람을 일으킨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신기한 변화들이 많았다. 모든 일에 이유를 붙일 수 없다는 연재의 말을 납득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이유를 하나하나 다 찾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거였다.

"당신을 만난 후의 보경도 저 시절의 보경과 같아요."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엄마는 그때도 지금도 같은 사람이야."

연재는 볼 때마다 새로운 부분을 발견했다. 인간의 눈이란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어도 각자가 다른 것을 볼 수 있었다.

콜리는 인간의 구조가 참으로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함께 있지만 시간이 같이 흐르지 않으며 같은 곳을 보지만 서로 다른 것을 기억하고, 말하지 않으면 속마음을 알 수 없다. 때때로 생각과 말을 다르게 할 수도 있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숨기다가 모든 연료를 다 소진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렸고, 다른 것을 보고 있어도 같은 방향을 향해 있었으며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것처럼 시간이 맞았다. 어렵고 복잡했다. 하지만 즐거울 것 같기도 했다. 콜리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면 모든 상황이 즐거웠으리라. 삶 자체가 연속되는 퀴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오랜만이잖아. 오랜만에 하면 뭐든 떨리기 마련이니까."

"당신이 저를 인간처럼 대할 때 기쁜 이유는 당신이 저를 옆에 실재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살아 있지 않은 걸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인간 밖에 없으리라.

하루쯤 쉬어도 굶어 죽지 않으니 괜찮다

더는 둘의 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노력할 거라는 걸,

함께 있지만 맞물리지 않는 각자의 시간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콜리는 그 침묵이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조금씩 균열이 생기며 서로에게 스며든 소음이 서로의 시간을 맞춰줄 거였다. 너무 빠르게 흘러가지 않도록 말이다.

콜리는 이제 인간이 지키는 침묵이 대체로 ‘긍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질문에 대한 긍정.

행복만이 유일하게 고통을 이길 수 있으므로.

"슬프겠지. 그래도 이겨낼 거야."

"이겨낼 수 있어. 다 이겨내니까."

"하지만 그건 시간이 멈춰 있는 것일 수도 있어요."

은혜는 여전히 걱정됐지만 보경이 있으니 괜찮을 것이다. 보경은 멈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는 법을 알고 있지 않은가.

"죽지 않는 한 시간은 영원히 흐르니까, 잠깐 멈추는 거야 문제도 아니지."
...(중략)...
"살아 있는 사람의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니까.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고. 너무 빠르게 달리면 다 놓치고 산대."

천천히, 느리게, 여유 있게, 느린 호흡으로, 하늘을 쳐다보고, 주변을 둘러보고, 네 등에 타고 있는 콜리의 움직임을 함께 느끼면서...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했다. 경마장에서는 빠른 말이 1등을 하지만, 느리게 달린다고 경기 도중 주로에서 퇴출당하지는 않았으므로, 애초에 천천히 달리는 것이 규정에 어긋나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잘할 수 있어."

그것이 마지막인 줄 알았더라면 만나서 반가웠다는 말을 연재에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앞을 내다보는 예지력이 없어 연재가 사라질 때까지 쳐다만 보았다.

잘 부탁해요.

너무 아프면 뛰지 않아도 돼요. 당신은 이미 주로에 섰으니까 그걸로 됐어요.

힘들면 포기하는 것도 방법이다. 비록 생명이 무언가를 포기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노력을 해야 하지만.

괜찮아요, 신경쓰지 말아요. 저들이 하는 말을 듣지 않아도 돼요. 당신은 당신의 주로가 있으니 그것만 보고 달려요. 자신의 속도에 맞춰서요.

어차피 이 주로는 투데이만 달릴 수 있다. 관중석에서 보내는 야유는 중요하지 않다. 투데이가 신경쓰지 않도록 귓가에 말하고, 또 말했다. 신경 쓰지 마요, 저 소리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굳이 들을 필요 없어요. 모든 것을 듣고 살 필요 없어요.

행복해하고 있군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어요.

행복이 고통을 이겼다.

내게는 두려움이 없고 미련이 없다. 오로지 말을 살려야 하고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존재 자체의 이유만이 있을 뿐이다.

설령 무릎이 완전히 망가진다고 할지라도 투데이는 더 빠르게 뛰고 싶어 한다. 다시 달릴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서.

나는 세상을 처음 마주쳤을 때 천 개의 단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천 개의 단어로 다 표현하지 못할, 천 개의 단어보다 더 무겁고 커다란 몇 사람의 이름을 알았다. 더 많은 단어를 알았더라면 나는 마지막 순간 그들을 무엇으로 표현했을까. 그리움, 따뜻함, 서글픔 정도를 적절히 섞은 단어가 세상에 있던가.

천 개의 단어만으로 이루어진 짧은 삶을 살았지만 처음 세상을 바라보며 단어를 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천 개의 단어는 모두 하늘 같은 느낌이었다. 좌절이나 시련, 슬픔, 당신도 알고 있는 모든 단어들이 전부 다 천 개의 파랑이었다.

‘대단히 멋있는‘ 소설은 아직 내가 쓸 수 없을 것 같으니까, ‘내가 잘 쓸 수‘ 있는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작품의 완성도를 결정지을 적절한 결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래도 아쉽다

이번에 결과가 실망스럽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꾸준히 창작에 매진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출판되기 전까지 여덟 곳에서 퇴짜를 맞았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경이의 세계를 만들어 독자들이 몰입하게 하려면 작가가 먼저 설정한 세계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결말이 중요하다는 것은 단순히 결말에서의 파급력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스스로 설정한 경이의 세계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 세계 안으로 독자들을 불러들여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까지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SF가 제시하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공감의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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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 밑줄친 문장은 이 책의 7장인 ‘유전자에서 문화까지‘의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것이다. 이 챕터의 내용을 최종 정리하면서 저자는 문화라는 것도 결국 유전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말과 함께 그 이후의 진화 과정에서는 문화 스스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면서 발전했다고 말한다. 또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물리적으로 구성하는 유전자와 인간이 탄생한 이후에 만들어낸 문화를 모두 이해해야 그것이 진정한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결론은 내가 개인적으로 작년에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 읽었던 유시민 저자의《문과 남자의 과학공부》라는 책에서 만났던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당시 저자는 그 책에서 자신이 인문학과 관련된 공부는 많이 했지만 상대적으로 과학 분야에 대한 공부는 많이 부족했다는 점을 고백했었다. 이로 인해 자신이 인간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던 것은 단지 반쪽짜리에 불과했다는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독자인 나는 당시 나름의 충격(?)을 받았었는데, 그래도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었던 유시민 작가가 조금은 심하다고도 느껴질 수 있는 ‘바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자신의 부족함을 고백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충격(?)이 계기가 되어 나 또한 그전까지 아예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던 과학관련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일단 유시민 저자가 자신의 책에서 주석으로 추천해줬던 약 70여 권의 책들 가운데 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책인《코스모스》와《이기적 유전자》를 먼저 읽어보았고《엔드오브타임》과 《확장된 표현형》은 조금 읽다가 잠시 쉬고 있는 상태다. 어쩌면 지금 읽는 이《통섭》이라는 책도 그 리스트에서 알게 되어 읽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솔직히 과학관련 서적을 읽는 것이 일반 소설책을 읽는 것만큼의 속도가 나지는 않는다. 독자인 내가 전공자도 아닐뿐더러 딱히 배경지식이 많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처음 밑줄친 부분에 나온 말처럼 인간을 좀 더 입체적으로 또는 다방면으로 이해하는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비록 진도는 거북이처럼 천천히 나갈지언정 조금씩이나마 읽어나가보려고 한다. 그리고 좀 힘들긴 해도 그 와중에 중간중간 새롭게 배우는 것들도 분명히 있기에 호기심을 채워가는 나름의 재미(?)라면 재미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화는 유전자로부터 발흥하며 유전자의 검인을 영원히 간직한다. 한편으로 문화는 은유와 새로운 의미를 창조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획득했다. 인간 조건을 이해하려면 유전자와 문화를 모두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과학과 인문학을 분리한 채 이해하려 한다면 부질없는 짓이 된다. 인간 진화의 실재성을 인식하면서 이 둘을 함께 묶어 이해해야 한다.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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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부분에서 저자는 전문직의 본질적인 역할 및 그 변화에 대해 논한다. 지난번 포스팅에서도 잠시 언급했었지만 전통적인 전문직의 역할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거나 습득하기 힘든 지식들에 특화하여 관련 지식들을 익힌 뒤 그것들을 기반으로 일반대중이 해결을 필요로 하는 문제들을 해결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더이상 전문직들이 가진 지식이 전문직들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고, 일반인들도 AI(인공지능)같은 기술들을 활용하여 얼마든지 전문직들이 갖고 있는 지식에 접근하고 이해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로인해 전문직의 전통적인 역할은 과거에 비해 상당부분 축소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이렇게 전문직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지식적인 측면의 중요성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대신에 저자는 앞으로 전문직이 서비스 수요자들을 돕는 새로운 방식이 좀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듯하다. (살짝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봐 노파심에 조금 덧붙이자면 여기서 말하는 건 기존의 지식적인 측면만 가지고 전문직 서비스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는 말이지 지식자체가 아예 쓸모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이 책은 전문직의 미래를 예상하는 책이기에 저자의 예상이 100% 다 맞다고 섣불리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일리가 있어보이는 측면들이 많이 있기에 이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않고 이후에 나오는 저자의 생각과 의견들을 쭉 따라가며 살펴보고자 한다.


전문직은 사람들이 이익을 얻기 위해 이용하려는 대상인 ‘실용적 전문성을 유지하고 해석하며 적용하는 문지기‘ 역할을 했다. - P71

우리는 기존 방식대로 전문직을 통하는 것이 제한된 이해력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 또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확신을 버리고, 현재 사용 중인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 해결 방법도 가능하다는 사고방식으로 전환하기를 촉구한다. - P71

우리는 사람들이 전문직의 이면을 보고, 인간의 제한된 이해력을 해결할 수 있는 더 나은 대안에 마음을 열기를 요구한다. 수요자의 시각에서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더욱 저렴하고 덜 경직된 방식으로, 더 높은 품질로 더 투명하게 힘을 북돋우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돕는 방법이 등장하면 열렬한 환영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해야 마땅하다. - P71

하지만 기존 방식이 이런 대안으로 바로 대체될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의 일상에 견고하게 뿌리내린 전통적 전문직이 전환되는 과정에서 이미 단단히 자리 잡은 믿음과 관행을 포기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 P71

전문가들이 씨름하는 문제는 대부분 사실 전문직 자신이 개발해온 해결책에 따라 정의된다. 예컨대, 고객에게 세무 또는 회계 관련 문제가 있다거나 환자에게 치과 또는 외과 관련 문제가 있다고 말할 때, 이런 문제를 정의하는 것은 바로 공급자인 전문가의 능력과 분류법이다. - P71

"가진 공구가 망치뿐이라면 모든 문제를 못처럼 취급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 것이다."

_에이브러햄 매슬로 Abraham Maslow - P72

현실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그에 속하는 전문 영역이 언제나 깔끔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상의 문제는 혼란스럽다. 사람들이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상생활 속의 사건들을 해결하려면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의 전문가에게 조언을 받는 것이 이상적이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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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연재에 대한 얘기로 시작한다. 특별히 오늘 나오는 부분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연이 되어 연재와 전략적으로(?) 붙어다니는 지수라는 친구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지수는 남의 집에 갈 때 빈 손으로 가면 안 된다는 신념이 있는 친구라 연재의 집에 갈 때도 각종 간식거리들을 사들고 갔다고 한다. 그 결과 살이 안 찌는 체질인 줄로만 알았던 연재는 단 몇 주만에 몸무게가 3kg이 늘었다고 한다. 오늘 처음 밑줄 친 문장은 지수와 시간을 함께 보내던 연재가 살이 찌고 나서 스스로 느낀 점을 표현한 문장인데 표현이 참 신박하다는 생각이 들어 밑줄쳐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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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는 연재와 휴머노이드 로봇인 콜리 간의 대화가 나온다. 콜리는 사람들이 위기의 순간에 누구를 가장 먼저 구할지 우선순위를 매기는 순서에 따라 그 사람을 소중히 여긴다는 얘기를 하면서 왜 꼭 위기의 순간으로 소중한 사람의 순위를 매기는지 의아해한다. 그러자 연재는 좋은 것은 쉽게 나눌 수 있지만 절박한 상황에서 사람을 구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나름대로 현명한 답변을 한다.

근데 연재는 콜리의 질문에 답변을 함과 동시에 전략적으로 자신의 파트너가 된 지수와의 관계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만약 물에 빠졌을 때 나는 지수를 몇 번째로 구할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순위가 꽤 높게 나오자 연재는 잠시 고민에 빠진다. ‘그럼 지수는 나를 몇 번째로 생각할지‘를 말이다.

사람들마다 인간관계에서 우선순위가 각자 다를 것인데,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존재의 의미를 하나 더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연재가 고민했던 것처럼 상대에게 몇 번째 우선순위일지를 고민하기에 앞서 자기 스스로가 먼저 가치있는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일단은 맞지 않을까 싶다. 위에서 언급한 우선순위라는 것은 늘 상대적인 것이기에 얼마든지 언제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1순위가 영원한 1순위가 되라는 법은 없다. 지금은 비록 후순위로 여겨질지라도 추후에 발생하는 다른 여러가지 일들로 인해 앞순위로 올라갈 수도 있는 것이고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내가 언급한 관계 중에서 혈연인 가족 관계 같은 경우야 그 우선순위가 크게 변동없을 가능성이 높지만 혈연 이외의 관계인 경우에는 아마도 내가 앞서 언급한 것들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소설 속에서도 연재와 지수도 피 한방울 안 섞인 그저 친구 관계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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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 투데이를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의 여러 단계들 중에 연재는 새로운 난관을 만나게 되는 데, 여기서 상세한 내용을 다 얘기할 순 없지만 자신이 과거에 일했었던 가게의 점장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그 난관을 극복하는데 성공한다. 이 이야기를 보면서 참 사람일이라는 게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이라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솔직히 점장과 연재는 그닥 좋게 헤어진 관계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관계조차도 시간이 지난 뒤에 도움이 되어 돌아오는 걸 보면서 평소 인간 관계에서 설령 껄끄럽거나 조금 불편한 것이 있을지라도 원수같은 관계로만 헤어지지 않는다면 언젠가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관계로 다시 부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함께 보낸 시간이 몸에 쌓인 기분이었다.

"가장 먼저 구하는 거요. 그건 아낀다는 뜻이래요."

"바다에 빠지면 누구를 가장 먼저 구할거냐는 질문이 나왔어요. 그게 소중한 사람의 순위를 매길 때 사용되던데... 그런데 참 이상한 비유예요. 왜 꼭 절망의 상황에서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요? 가장 좋아하는 케이크를 누구에게 먼저 줄 거냐는 비유도 할 수 있을 텐데요."

"좋아하는 걸 나누는 건 쉽게 할 수 있잖아. 근데 절박한 상황에서 구할 수 있는 건 특별한 사람이 아닌 이상 잘 못 해."

지수에게 자신은 과연 몇 번째일까?

그려놓은 모델을 이리저리 돌려보기도 했고 3D로 바꿔보기도 하며 이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작지만 큰 혁명을 상상했다.

연재는 무언가에 열중할 때 빛나는 인간이었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빛으로 발산되는 것이다.

"투데이가 뛸 때와 같아요, 지금."
...(중략)...
"행복해하고 있어요. 투데이가 뛸 때처럼 당신도요."

"살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에요. 살아 있다는 건 호흡을 한다는 건데, 호흡은 진동으로 느낄 수 있어요. 그 진동이 큰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에요."

행복이라는 건 결국 자신이 느끼지 못하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단어 아닌가.

"저는 호흡을 못 하지만 간접적으로 느껴요. 옆에 있는 당신이 행복하면 저도 행복해져요. 저를 행복하게 하고 싶으시다면 당신이 행복해지면 돼요. 괜찮지 않나요?"

"옆 사람이 불행한 건?"
"그건 못 느껴요."
"왜?"
"제가 느끼려고 노력하지 않으니까요."

"내가 외면한다고 외면할 수 있는 게 아니던데."

"가족들의 불행을 마주본다는 건 내가 외면했던 내 불행을 마주 보는 거랑 같거든."

콜리에게는 지난 일인 것처럼 말했지만 아직도 연재는 외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이 흐름을 끊고 불행을 대면할 수 있는지 방법을 몰랐다.

"밥 먹으면 식곤증으로 졸려서 공부할 때 힘들어."

숨이 없는데 어떻게 욕망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늘을 보고 싶다는 콜리의 욕망은 도대체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과거만큼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야 한다

투데이는 달릴 때 행복한 아이다. 태어나서 줄곧 주로를 달리는 것밖에 하지 못한 말은 결국 달림으로써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했다. 남은 시간 동안 마방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 관절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주로를 달리는 것이 투데이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몇 주를 마방에만 갇혀 있던 투데이가 며칠 전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때, 서는 것조차 힘들 거라던 복희의 말과 달리 투데이는 기쁨의 울음을 쏟으며 주로를 활보했다. 물론 짧은 시간이었고 그 후에는 고통에 무너졌으나 마방에 있었을 때와 달리 웃고 있었다. 투데이는 웃고 있음이 확실했다. 콜리의 말이 맞았다. 수 만개의 바늘이 찌르는 고통이 있을지라도 평생을 달려 온 투데이는 달리는 것이 더 행복했다.

주로를 보고 달리지 않는 연습을 해야 했다. 오로지 경기에 출전할 수 있을 만큼의 속도. 빠르게 달리지 않아도 그 현장에 서 있을 수 있는 속도. 완주를 하더라도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을 수 있는 속도.

"고칠 게 보이지 않으면 고치지 않아도 괜찮아요."

"왜 그런 것들이 있는 건가요?"
"너는 모든 것에 꼭 이유가 다 필요해?"
...(중략)...
"세상에 모든 것들에는 이유가 있으니까요."

"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기수가 되기 위해서이고 인간이 저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도 이유가 있어서예요. 무의미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요."

이 휴머노이드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하기야 몇 세기를 보내며 인간이 차근차근 쌓았던 지식을 한번에 압축해 만든 존재였으니 인간 개개인보다 뛰어난 건 당연했다.

"틀렸어.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거야. 세상에는 원래 이유가 없었어. 인간들이 이유를 가져다 붙인 거지. 그러니까 순서를 따지자면 이유 없이 생겨난 게 먼저야."

"누구라도 틀려. 원래 살아가는 건 틀림의 연속이야."

콜리는 자신을 살아 있다고 표현해준 것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당신도 저를 그냥 데리고 온 건가요? 이유 없이요?"
...(중략)...
"응, 그냥 데리고 왔어."
"고마워요. 저도 당신이 그냥 좋아요."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끊임없이 낯선 것에 도전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대화하지 않고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나요? 인간에게는 서로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기능이 있나요?"

말을 하지 않고 어떻게 아나요?

"내가 너를 친하게 생각하듯이 너도 나를 친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서."

연재는 이해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숱한 시간동안 이해받지 못해 상처 입은 날들이 쌓여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 터였다.

이해받기를 원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저마다의 고통과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척 숨기기 위해 노력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란 모두에게 존재했다. 적어도 연재는 그렇게 생각했고, 이해받기를 포기했다.

이해에는 한계가 있고, 횟수가 있고, 마지노선이 있다. 그 선을 넘으면 이해해주던 사람은 어느 순간 상대방의 이기심을 지적했다.
"그런 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몇 번씩 그렇게 가면 우리는 뭐가 돼?"

이해받기를 포기한다는 건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았다. 연재는 상대방의 모든 행동에 사사건건 이유를 붙이지 않았다. 저렇게 행동하면 저렇구나, 하고 말았다.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해서 그러는지 싫어해서 그러는지 따위를 생각하면 너무 많은 이해심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타인의 이해를 포기하면 모든 게 편해졌다. 관계에 기대를 걸지 않기 때문에 상처받지 않았다. 적어도 지수를 만나기 전까지, 연재의 세계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고요였다. 적막이기도 했다. 지수는 연재에게 강풍으로 불어왔다. 잠잠했던 연재의 돛을 한 방에 날렸다.

처음에는 싫었지만 계속 싫지는 않았다.

"네가 로봇광인 건 알고 있었지만 진짜 로봇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지. 너보다 콜리가 더 인간적이겠다."

"내가 더는 못 온다고 해도 너는 알았어가 아니라 아쉽다고 했었어야지. 아쉬웠으면. 물론 네가 아쉽지 않았으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나는 그때..."

아쉽다. 아쉬움이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은 지 오래되서 완전히 잊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쉬움에는 약간의 설움이 섞여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아쉽다는 단어를 꺼내면서, 아쉬움에 면역되지 않은 마음이 설움에 정복당하는 듯했다.

인간에게는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속내를 알 수 있는 기능이 아예 없다. 다들 있다고 착각하는 것뿐이다.

"집을 더 신경써야 하는 사람들은 밖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진다고. 그냥 무감각해진대. 상처받지 않으려고 달팽이집으로 들어가는 거랑 똑같다고 그랬어."

세상 모두에게 이해받지 않아도 된다. 오직 연재가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만 이해받을 수 있다면.

"내가 너를 그냥 데리고 왔다고 했잖아. 사실 그거 거짓말이야."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속을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연재가 이것만은 콜리에게 사실대로 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몸이 다 망가진 채로 건초더미에 누워서 나한테 하늘이 예뻤다고 말하는 네가 불쌍했어. 그리고 순간 내가 너를 고칠 수 있지 않을까 호기심도 들었어. 그대로 내버려두면 너는 사라지겠지만 내가 데리고 오면 사라지지 않으니까. 같잖은 연민이지. 그래도 후회 안 해. 나는 내가 좋아했던 걸 그동안 싫어한다고 믿고 살았는데, 아니더라고. 너 만지면서 알게 됐어. 그리고 지금 내 말에는 대답하지 마. 명령이야."

콜리는 연재의 명령을 지켰지만 처음으로 명령을 어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 충동이 몸체 내부에서 실제로 일어났는지, 콜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속에서 무언가 어긋남을 느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연재를 방해할 수 없어 가만 충동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두렵지 않았다. 떨리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지만.

"언니는 자유롭고 싶은 거지?"
"나는 이미 자유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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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읽었던 내용 중에 그동안의 포스팅에서 그닥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던 인물이 한 명 있었는데, 은혜와 연재의 친척인 ‘서진‘이라는 인물이다. 소설 속에서 ‘서진‘은 이런저런 것들을 취재하는 기자로 소개되는데, 여기서 상세히 다 밝힐 순 없지만 우연한 기회에 은혜와 연재가 연관되어 있는 어떤 일을 취재하다가 그들과 오랜만에 만나게 된다.

한편 지난번 포스팅에서 다뤘던 내용에서는 경주마인 투데이를 살리기 위한 은혜와 연재의 프로젝트(?)가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 위에서 소개한 ‘서진‘이 중요한 키맨 역할을 할 것으로 보여진다. 이제 3분의 2정도 읽었는데 이 소설의 남은 부분에서 어떻게 이야기가 흘러갈지.. 조금씩 흥미진진해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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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예상대로 서진이 키맨 역할을 하면서 은혜와 연재의 프로젝트가 그들이 계획한 방향대로 흘러가는 듯 보인다.

한편 이어지는 글에서는 은혜와 연재의 엄마인 보경에 대한 얘기가 잠시 등장한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등장하지만, 독자인 내가 주목했던 부분은 의도치않게 먼저 하늘나라로 가버린 전직 소방관이자 자신의 남편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치는 부분이었다. 이 부분은 꿈을 꾸는 장면으로 묘사되는데, 중간중간 등장하는 문장들에서 보경이 자신의 남편을 향한 그리움의 감정이 느껴졌다. 물론 보경과 비슷한 상황을 경험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그 감정을 100% 온전히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꿈에서 깬 뒤 보경은 자신의 처음 의도와는 달리 너무 오랫동안 잠이 들어있었다는 사실에 놀라 헐래벌떡 일터로 향하려 하지만 휴머노이드인 콜리가 일터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보경에게 말한다. 이미 일할 사람들이 다 가있으니 걱정할 필요없이 그냥 쉬라는 말도 덧붙인다. 그래서 보경은 쉬면서 콜리와 대화를 하게 되는데, 이 장면에서 콜리가 생각하는 시간에 대한 인식이 인상적이었다. 밑줄에도 몇 문장 쳐봤는데, 독자인 내가 느낀 요지만 언급하자면 물리적인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흐르겠지만 주관적인 시간은 사람들마다 다르게 흐른다는 것이었다. 읽으면서 참 공감되는 말이었다. 자신에게 재미있고 흥미로운 행동을 할 때는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로 몰입하게 되어 시간이 훌쩍 지나가지만, 지루하고 따분한 상황에 놓여 있을 때는 콜리의 말처럼 1분이 1시간처럼 흐르는 느낌을 받는 경우도 있다.

독자인 나는 이 부분에서 자신이 현재 놓인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느냐가 시간의 흐름을 결정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물리적으로 동일한 상황과 환경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그곳이 천국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옥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뭐 여기서 답은 명백하다. 누구의 시간이 더 잘 흘러가겠는가? 당연히 전자일 것이다.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해본다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천국처럼 느끼는 사람은 어찌보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환경을 지옥처럼 느끼면서 살아가는 사람일 것이다.

이제 위에 적어본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천국처럼 느끼며 살아갈 것이고 그 결과 자신이 하고싶은 일에 몰입하면서 시간도 술술 잘가서 행복한 삶을 살아감과 동시에 일에 따른 보상으로 금전적인 영역도 풍족하게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의 삶이 지옥과도 같다고 생각하며 살 것이고 그로 인해 자신의 일에 몰입하기보다는 그저 시간만 때우려는 식의 태도로 일관할 것이고 그결과 1분이 1시간처럼 느리게 흘러가서 불행한 삶을 살 것이고 일적으로도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기에 금전적으로도 부자가 되기보다는 그저 하루하루 먹고살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감사하라는 말은 정말 여러 다른 책들에서도 봤던 것인데 오늘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감사의 중요성을 몸소 깨닫게 된 것 같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관계없이 그 안에서 불평하기보다는 감사하며 살아가는 태도가 어느 때보다도 귀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안 돼."
"무슨 일인지 알게 되면 될걸?"

아이들이 원하는 건 너무나 간단했고, 명료했고, 분명했다. 투데이의 삶이다.

서진은 구구절절 말하고 싶었다. 자신이 그 경마장을 조사하느라 얼마나 힘들었고, 얼마나 치욕스러웠는지 아느냐고.

거절한다고 하더라도 더 그럴듯한 명목이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살아 있는 생명이 주로를 뛰는 경기였으므로, 짜놓은 판에 맞추려면 생명에게 가혹한 학대가 가해져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투데이가 달리는 걸 좋아했어. 나도 그 자세히는 모르지만 언니한테는 그게 위로였나봐. 아니면 군더더기 없는 행복이었든가."

"그런데 너무하잖아. 달릴 수 없으니까 죽으라는 건."

"고작 이틀에서 14일로 삶을 연장한다고 뭔가 달라질까?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길까...?"

"당연하지. 살아간다는 건 늘 그런 기회를 맞닥뜨린다는 거잖아. 살아 있어야 무언가를 바꿀 수 있기라도 하지."

부장님도 끝내 서진의 판단을 이해할 것이다. 기자란 무언가를 살리는 직업이라고 말했던 사람이니까.

"당신의 결정 덕분에 투데이는 행복할 거예요. 그리고 투데이가 행복하다고 느끼면 저도 행복하다고 느껴요."

그간의 정을 토대로 한 배려

어쩔 수 없이 굴복하게 만드는 사회 시스템

약자가 굴복할 수 있는 순간은 아무도 그 일을 알지 못했을 때뿐이라고, 모두가 알게 된 이상 더는 굴복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좋은 파트너인 것 같아요."

관리자의 언성이 커졌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함을 잃지 않아야 통하는 법.

"악행은 누군가가 반드시 알아내게 되어 있어요. 오늘 저희가 찾아온 게 아저씨한테 온 마지막 행운인 줄 아세요. 나쁜 짓 하고 살지 마세요."

도태되면 결국 고생은 제 몫이었다.

인간은 아프면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다

콜리는 고개를 끄덕일 줄 알았고 자신이 알지 못하는 정보는 도리어 그게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대화였다.

콜리는 공감을 느낄 수 없는 개체였지만 공감하는 척 움직이게 만들어졌다. 어차피 사람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공감이었다. 보경은 콜리를 앉혀놓고 몇 번 대화를 한 후에야 진정으로 필요했던 건 들을 수 있는 귀와 끄덕일 수 있는 고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생 보경의 이야기를 들어주겠노라 약속했던 사람이 오래도록 비워둔 자리를 뜻하지 않은 것이 채웠다.

"콜리잖아요. 콜, 리. 콜, 미. 발음이 비슷하지 않나요? 언제든 저를 부르세요. 콜-미."

세상에 생명을 탄생시키고 책임지고 기른다는, 가정을 지키고 있다는,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떠들지 못할 일

자신이 알아서 끈을 놓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세상의 편견과 고지식함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절망스러운 운명에서 구해내지 못했을까. 조금만 달랐더라도 충분히 바뀔 수 있는 운명이었는데. 고작 그 시선이 뭐라고.

독립적인 사건들처럼 보였는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 모든 일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이 수면 위의 파동 같았다. 넓고 잔잔한 파동이 끊임없이 교차되고 연속되는, 그 에너지가 끝내 물살을 만들어버리는.

은혜가 아픈 손가락이었다면 연재는 신경이 손상된 손가락이었다. 어느 날 문득 쳐다보면 언제 다쳤는지 알 수 없는 오래된 상처가 엉망으로 아물어 있었다. 딱지를 뜯어 약을 발라 줄 수도 없었다. 상처가 흉터가 되는 것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빨리‘가 아니라 ‘천천히‘가 터져 나오는.

슬픔이 비림으로 바뀌자 후에는 꺼내려고 해도 비릿해서 꺼낼 수 없어졌다. 그렇게 계속 몸에 담아두었다. 고여서 비려질때까지. 끝끝내 썩어 마를 날을 기다리면서.

나는 지겨워. 지겹다고. 그러니까 우리 그만 좀 하자.

잊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오래 머물고 싶지도 않았다.

잘 가, 조심해서 가.

방에 앉아 있으면 시간이 잘 가지 않는다

"창밖으로 아침 해가 뜨는 것과 세상이 색으로 덧칠해져 가는 모습을 보고 있던 순간은 1시간이 1분처럼 느껴졌는데 그곳(좁은 방)에서는 반대로 1분이 1시간으로 느껴졌어요."

"시간이 서로 다르게 흘러간다는 이론에 대해서는 연재가 말해줬어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것이라고요. 제가 투데이와 함께 달릴 때 느꼈던 시간이 접힌 듯한 현상은 실제라고요. 생명은 저마다 삶의 시간이 다른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인간은 함께 있지만 모두가 같은 시간을 사는 건 아니네요."

"같은 시대를 살고 있을 뿐 모두가 섞일 수 없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네요. 맞나요?"

"당신의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요?"

결승점이 어디인지, 완주의 상품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일단 태어났으므로 자연히 출전하게 된 경기를 하고 있노라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불안했고, 지쳐 기절하듯 침대에 누워야만 하루를 보냈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내 시간은 멈춰 있어."
화재가 난 빌딩 속에 있던 소방관을 기다리던 그 시간에 멈춰 있어. 반드시 살아서 나오리라 믿고 있는 그 시간 안에서.

시간이 흘러 보경은 그곳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시간은 그곳에서 1초도 흐르지 않았다. 보경이 매일 일찍 일어나 쉬지 않고 하루를 보내는 이유는 그 지긋지긋한 시간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음을,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달리기였음을 인정해야 했다.

시간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정적이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수면 위에 돛을 펼치고 있었다.

"흐르게 하는 법을 잊었어."
시간은 고여 있어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괜찮다고 생각했다가도 여지없이 그날로 빨려 들어갔다.

슬픔을 겪은 많은 사람들의 시간은 어떻게 흐르는 것일까. 사실은 모두 멈춰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지구에 고여버린 시간의 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그 시간들을 흐르게 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그렇다면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겠네요."
...(중략)...
"멈춘 상태에서 빠르게 달리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많은 힘이 필요하니까요. 당신이 말했던 그리움을 이기는 방법과 같지 않을까요? 행복만이 그리움을 이길 수 있다고 했잖아요. 아주 느리게 하루의 행복을 쌓아가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언젠가 멈춘 시간을 아주 천천히 흐르게 할 거예요."

"저는 실수로 만들어진 거라고 연재가 말했어요. 저를 결정하는 제 안의 칩 하나가 다른 휴머노이드와 다르다고 했어요."
"..."
"연재는 실수와 기회가 같은 말이래요."

콜리의 말처럼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려면 행복으로 그리움을 이겨냈듯이 현재의 시간도 흐르게 해야 했다. 그날에 함께 묶여 나아가지 못한 관계부터 풀어내면 되지 않을까. 보경은 너무 가까워서 미뤄두었던 실타래부터 잡았다. 연재는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 적당한 답변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몸짓이었다.

아이가 아님이 어른이 되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세상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되고 인정했을 뿐이지, 보경은 아직까지는 그 세상을 자신이 온전히 책임지고, 슬픔을 삼켜야 하는 어른의 세계로 연재를 보낼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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