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이 소설의 핵심 인물인 ‘연재‘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한다. 연재는 로봇에 관심이 많아서 같은 관심사를 가진 또래의 다른 친구들과 금방 친해졌는데, 이후에 그 친구들의 집에 놀러다니면서 자신의 가정 형편과 다른 친구들의 가정 형편에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들이 연재의 집에 방문했던 적이 있는데,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다소 실망스런 기색을 띠는 것을 연재는 느끼게 된다. 이 사건(?) 이후 연재는 스스로 너무 많은 것을 오픈하는 게 마냥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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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서는 이 책에서 처음으로 휴머노이드인 ‘콜리‘의 관점에서 글이 쓰였다. 인간이 아닌 로봇의 관점으로 써졌다는 게 나름 독특하게 느껴졌고 로봇은(물론 소설가의 상상이겠지만) 어떤 생각을 하면서 세상과 주변 환경들을 바라보는지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연재가 경마장에 있던 휴머노이드인 콜리를 집으로 데려온 후 콜리는 연재가 학교에 가있는 동안 연재의 엄마인 보경과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이 둘 사이의 대화가 왠지 모르게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주는 것 같아 나름의 감동이 있었다. 비록 소설 속 설정이긴 하지만 로봇인 휴머노이드와 인간의 대화가 딱딱한 듯하면서도 딱딱하지 않다고나 할까. 아무튼 뭔가 짠하면서도 여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처음에 연재가 휴머노이드인 콜리를 집에 데리고 왔을 때 엄마인 보경은 막연한 거부감과 두려움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 둘이 서로 대화를 하면서 보경이 가졌던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게 된다. 이것을 보면서 서로 간에 대화가 관계를 원만하고 좋게 만들기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한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내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봐도 대화의 중요성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고 있는 상황이 있었는데 객관적인 증거와 정황상 근거 등을 바탕으로 상대방과의 대화를 나누고 오해를 풀었던 기억이 있다. 만약 대화가 없었다면 오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갈등의 골이 점점 더 깊어졌을 것이고 혹시라도 무슨 안좋은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대화라는 것은 문제 해결의 시작점이자 열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대화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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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친자매인 은혜와 연재간의 관계에 대해 나온다. 본문에는 은혜가 본의 아니게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고 연재는 신체적인 장애같은 게 없는 그냥 일반적인 아이로 설정되어있다. 이 둘의 엄마인 보경은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소방관과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하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될 무렵에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게 된다. 그러다보니 엄마인 보경 혼자서 아이 둘을, 그것도 한 명은 신체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워야 하다보니 물리적으로 힘이 들 수 밖에 없었고, 동생인 연재는 이런 집안 형편을 어릴 때부터 직감적으로 눈치채고 자연스럽게 은혜를 돌보는 일을 같이 거들게 된다.
여기서 연재는 물론 현실적인 선택을 한 것이지만 본능적으로 엄마인 보경의 입장에서는 비장애인인 연재보다는 장애가 있는 은혜에게 좀 더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기에 연재는 상대적으로 엄마의 관심을 덜 받는 듯한 느낌을 가졌던 것 같다. 대신 연재는 엄마의 관심을 얻고자 오히려 은혜를 싫다거나 귀찮다는 기색없이 묵묵히 도와주는데, 본문에서 이것이 엄마의 관심을 받기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은혜와 연재의 관계를 보면서 형제자매간 관계의 속성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볼 수 있었고 또한 우리 가족 간에는 관계가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본문에도 살짝 언급되지만 형제자매들이란 부모의 사랑을 나눠먹고 사는 존재라는 얘기가 개인적으로 와닿았다. 그리고 부모의 사랑을 잘 나눠먹기 위해서는 일단은 가족 내에서 각자가 처한 상황에 맞게 처신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각의 가족마다 상황과 환경이 다르기에 애정이나 관심을 받는 것에 있어서 유일한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은 아닐거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위에서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듯이, 부모와 자녀들간에 충분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서로간의 사랑을 잘 나누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어 보인다.

어떤 것들은 숨길 수 있는 한 숨기는 것이 좋다고.
방에 있으면 시간이 예전보다 빠르게 흐르는 듯했다.
콜리는 이 집에 사는 인간들을 한 명, 한 명 살폈다. 전부 다르고 독특한, 이를테면 파랑노랑 하늘이거나 분홍보라, 초록빨강의 하늘같은 인간들이었다. 천 개 이상의 댠어를 알고 있었다면 이 인간들을 표현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을 텐데.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중략)...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중략)...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래서 마음에 가지고 있는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내는 거지. 다 사라질 때까지."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거야."
보경은 콜리에게 사사로운 것까지 내뱉은 자신의 말을 후회했는데, 그때 거부감이 한 꺼풀 벗겨졌다는 것은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콜리는 보았다. 자신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꺼냈다며 말을 무르는 보경의 표정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소량의 편안함을 발견했다. 콜리는 이를 통해 한 가지 방법을 습득했다. 대화다. 대화를 많이 할수록 보경에게 깔려 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표피같이 얇게 한 꺼풀씩 벗겨졌다.
콜리는 에너지를 얻는 수단이 외부에 있지만 모든 생명은 에너지 동력원이 몸 안에 있다. 그러므로 일정 수준 이상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면 생명은 쉬어야 한다. 에너지를 회복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잠을 자는 것이나 식사를 하는 것이다.
콜리는 연재가 하는 말들, 제 몸이 될 부분들에 관한 설명을 들으며 유독 빛나는 연재의 눈을 보았다. 사람은 아주 가끔, 스스로 빛을 낸다.
인간이 필요로 하지 않으면 죽었다. 복희가 말했던 이 행성에서의 동물들의 위치였다.
살아가며 맞닥뜨리게 되는 난관은 은혜가 뛰어넘거나 비껴갈 수 없을 만큼 커다랗고 무거웠다. 아예 방향을 틀어 다른 길로 가야만 했다. 그렇게 많은 길들이 막혔다.
은혜는 현재까지 무수히 많은 난관에 부딪혀 돌고 돌아 이곳까지 오지 않았는가. 이 길의 끝을 알 수도 없고, 알게 된다고 한들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길로.
정말로 한계가 없다면 한계라는 것조차 모르지 않았을까.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했지만 은혜는 사람이 피곤했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하지는 않아. 꼭 같을 필요는 없잖아. 그러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으니까."
"너도 나도 알아서 잘 살아갈 수 있는데. 반드시 도움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그렇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처럼, 도움받지 못하면 살아가지 못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자기들 멋대로 생각하는 게 꼴 보기가 싫다."
"나는 왜 굳이 그렇게 멋있게 살아서 내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
‘이제 와서? 지금까지는 뭘 하고 있었는데?‘
민주는 말들의 관리인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마방에 갇힌 또 다른 말이었다.
사회는 개개인이 촘촘히 연결된 시스템이었고 그 선은 서로의 목을 감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는 끊어야 할 때 연결된 선을 과감하게 끊어야 하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죽이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민주의 속마음과 달리 입은 자꾸 진실만을 말했다.
"이 세상에서, 아니 이 우주에서 사람만 이렇게 잔인한 거 같아요."
보경이 은혜에게 괜찮다고 말할 때마다, 이 사소한 불편이 너를 규정할 수 없다고 말할 때마다 은혜는 도리어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정상적인 사람에게 너의 정상성은 괜찮은 것이고, 그것이 너를 규정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은혜도 그런 말을 들을 이유가 없다고. 보경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가 가끔은 자신이 정상의 범주에서 벗어났음을 확인시키는 차갑고 날카로운 창살 같다는 것을.
휠체어 덕분에 걷지 못하던 이들이 움직일 수 있게 된 게 아니라, 버스와 지하철, 인도, 계단, 에스컬레이터 때문에 이동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걸.
이 몸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었다면 애초에 생겨나지도, 태어나지도 않았을 거였다. 우주는 자신이 품을 수 있는 것만 탄생시켰다. 이 땅에 존재하는 것들은 모두가 각자 살아갈 힘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을, ‘정상의‘ 사람들은 모르는 듯했다.
형제는 태어나면서부터 한정적인 사랑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 관계였다. 시간적 여유가 아무리 충분하다고 해도 사랑을 둘로 나누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경쟁구도를 만들었다. 형제는 관심을 차지하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성장했다. 물론 이것은 이상적인 관계였을 때를 말했다.
은혜는 연재의 무조건적인 순응이 결국 관심받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음을 알았다.
그런 것이라고 설명해도 보경은 제멋대로 받아들일 것이 뻔했다. 그리고 괴로워하겠지. 그 모습이 보고 싶지 않았다. 때로는 침묵이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의 침묵이 건너고 건너 연재의 족쇄가 될 줄은, 정말이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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