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공녀 펭귄클래식 56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곽명단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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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릴 적 공주 계보를 잇는 만화, 소설,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라면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는 원래 공주인데 지금 핍박받고 있는 거 일지도 몰라".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누구나 공주를 꿈꾸며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거나, 버려진 공주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 작품들이 있었다. 물론 조금만 더 크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만 그때만큼은 재미있고 신나는 공상도 없었다.

 

누구나 알법한 이야기지만 정작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소공녀》를 완독했다. 최근 이솜 주연의 동명 영화가 개봉했는데, 시대와 상황은 다르지만 '집 없는 여성'이란 콘셉트가 비슷하나 결말부의 완연한 차이는 동화와 현실의 극명한 거리만큼 크다.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집안은 본인 경험을 토대로 학대받았다가 나중에 보상받는 소녀의 이야기를 녹여 냈다. 원제는 'A Little Princess'이며 소공녀란 말은 일본에서 번역된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처음에는 《사라 크루》,《민친 기숙학교에서 생긴 일》이라는 제목으로 석 달 동안 '세인트 니콜라스 매거진'에 게재 다가 인기를 끌자 희곡으로 각색해 연극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그 뒤 장편 소설로 새롭게 쓴 게 바로 소설 《소공녀》다. 인도에서 부자인 아빠와 살다가 영국 기숙 학교에서 아빠와 떨어져 지내며 모진 고난의 세월을 겪는 이야기다. 《소공자》(폰틀로이공자),《비밀의 화원》도 모두 어린아이를 주인공으로 고난을 겪고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밝고 긍정적인 이야기를 주로 썼다.

 

주인공 사라 크루는 부유한 아버지 랄프 크루 대위의 딸로 인도에서 부유하게 살다가 영국 민친 여학교에 오게 된다. 프랑스인 엄마가 죽고 재혼하지 않고 둘은 꽤 잘 지낸다. 아빠는 딸은 '꼬마 마님'이란 말로 부르며 어른스러운 사라를 밝고 품위 있게 키운다.

 

한편, 민친 여학교의 교장 민친은 돈에 환장하는 성격인데, 부유한 대위의 딸을 맡아 주는 대가로 한몫 두둑이 챙길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만. 훗날 크루 대위가 다이아몬드 광산에 투자한 게 잘 못되어 병을 얻어 죽자, 사라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민친 교장의 심정도 이해 가지만 해도 너무 했었다. 투자한 돈과 학교 명성을 날리게 생겼는데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해도 너무 했었다.

 

작고 어린 것에게 입에도 담지 못할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건 애교였다. 그동안 사라에게 들인 돈의 본전은커녕 빚만 떠안은 민친은 한창 자라나는 아이에게 밥도 굶기고, 춥고 눅눅한 다락방에 살게 한다. 하루 종일 심부름, 청소, 프랑스어 가르치기 등등 사라가 그동안 배웠던 것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탈탈 털어 활용한다. 자신에게 이익이 하나라도 없으면 버리는 인정머리 없는 여성이다. 지금 생각하면 완벽한 아동학대. 돈 한 푼 주지 않고 어린아이를 돈벌이로 몰았으며 하루 종일 먹이지도 제대로 재우지도 않고 일 시키고 욕하며 구박한다.

 

"소설, 맞아. 모든 게 다 한 편의 소설이지. 너도 한 편의 소설이고, 나도 한 편의 소설이야. 민 친 선생님도 그렇고."

p143

 

하지만 사라는 기죽지 않고 품위를 유지한다. 심지어 어린아이가 자신은 사실 공주인데 지금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거라며 주문을 건다. 몇 끼를 굶어 배가 고픈데도 맛있고 배부른 상상으로 연기하며 어려움을 이겨낸다. 이런 상상을 이야기를 지어내는 특기와 결합해 여학교에 있는 착하지만 머리가 나쁜 어먼가드의 공부를 봐주고, 엄마 없어 외로워하는 로티의 양엄마가 되어주기도 하고, 어린 나이에 하녀가 된 베키의 신실한 친구가 되어준다. 현실이 힘겨울 때마다 여긴 바스티유 감옥이라고 자조하고 애써 환상을 만들어 위로한다. 사라의 착하고 배려 깊은 심성은 동물에게도 마찬가지였는데 쥐에게 멕기세덱이란 이름을 붙여주며 음식을 나눠 주기도 한다.

 

 

이 올곧은 아이는 배가 고파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데도 길가에서 주운 동전을 두고 고민한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빵 가게에 들어가 혹시 사장님이 떨어트린 동전이 아닌지 묻고서야 빵을 산다. 하지만 올바른 성품을 알아본 빵집 주인이 덤으로 더 준 빵도 제 몫으로 하나만 남기도 나머지 다섯 개를 자기보다 더 배 고파하는 거지 소녀에게 주고야 만다.

 

그러던 어느 날(정말 우연치고는 너무 필연처럼) 옆집에 인도 출신 신사가 이사 온 후 사라의 운명은 순식간에 바뀐다. 인도 신사의 하인 람다스가 기르는 원숭이가 사라의 다락방에 오면서 알게 된 인연으로 친절을 베푼다. 사라의 딱한 사정을 알아채고 매일 따뜻한 난롯불과 빵을 제공해 주는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준다. 한편, 인도 신사 캐리스포트가 찾아 헤매던 친구의 딸이 옆집의 사라였음을 알고 친구의 보은을 사라에게 전한다. 사라는 다시 부자가 되었고, 불쌍한 베키를 하녀로 맞아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저, 저는 진짜 공주처럼 행동하려고 애썼을 뿐이에요. 도저히 견디기 어려울 만큼 춥고 배고플 때조차도." p282

 

사람은 한 편의 소설이다. 그만큼 인생이란 큰 드라마는 우여곡절, 희로애락, 엎치락뒤치락을 거쳐 한 편의 이야기로 환골탈태한다. 사라는 히브리어로 공주다. 사라가 끊임없이 힘겨운 현실을 잊기 위해 해왔던 상상, 말로 꺼냈던 공상이 현실이 된 것이다. 입버릇처럼 말하는 주문이 결국 자신의 삶이 되는 마법. '말이 씨가 된다'라는 말을 실감케 만드는 소설이다. 맛있는 음료수가 잔에 반 밖에 남지 않았는지, 반이나 남았는지 생각하기 나름이란 뜻이다. 어려운 상황을 맞이할 때도 항상 긍정적 사고로 응수할 때 삶은 내 편이 된다는 교훈을 사라의 인생을 통해 느껴 볼 수 있었다.

 

참고로 1995년 알폰소 쿠아론이 만든 영화 <소공녀>를 보면 색다를 것 같다. 알폰소 쿠아론이 만들었다니 <위대한 유산> 느낌이 날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꼭 봐야겠다.

 

*본 도서는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인 의견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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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 삶과 책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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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읽는 만큼 잘 쓴다고 했다. 작가들은 하늘에서 글 쓰는 능력이 툭 하고 떨어진 게 아니다. 그만큼 남의 글을 많이 읽는다. 유수의 문학상이란 상은 휩쓴 '어시스의 마법사'로 세계 3대 판타지 소설에 이름을 올린 '어슐러 르 귄'이 쓴 서평과 에세이는 어떨까?

 

책은 책과 작가, 문학 전반에 관한 에세이일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기록이다. 연설문과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쓴 강연용 글, 서문, 일기 등이 수록되어 있다. 작가는 판타지 소설과 SF 소설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색다른 묘미를 안겨 준다. 단, 글을 읽고 흥미로워 소설을 찾아봤다가 미번역 본도 많아 안타깝다는 말을 전한다,

 

 

 

작가가 쓴 서평은 어떤 글일까. 무척이나 궁금했다. 특히 주제 사라마구를 향한 솔직하고 아낌없는 찬사가 인상적이다. "내가 아직도 배우게 되는 유일한 소설가"라는 글귀는 마침표 없이 흘러가는 무미건조한 문체에도 읽어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 어슐러의 수줍은 고백이다.

 

 

 

거기에 올더스 헉슬리를 향한 러브레터가 있어 글귀를 그대로 옮겨 보았다. "자신의 계급과 문화에 맞게 침착하면서도 극도로 절박하게 쓰였고, 불꽃놀이 같은 창의력 뒤에 난해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동기들을 숨겼으며, 쾌락을 혐오스럽고 모멸적인 것으로 그리고 자유를 무분별의 자격증으로 그리면서 쾌락과 자유 말고는 추악한 세계로부터 탈출할 다른 선택지를 내밀지 않는 『멋진 신세계』는 심란하고 골치 아픈 책이며, 불안의 시대가 낳은 걸작이고, 20세기의 고통을 담아낸 선명한 기록이다. 그리고 또 아마 올더스 헉슬리가 80년도 더 전에 그 태동을 보았던 길로 문명을 계속 끌고 가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아주 이른, 그리고 유효한 경고일 것이다."

 

SF 소설이 그러하듯 미래 경고가 되길 의도한 올더스 헉슬리는 현재까지도 가장 많이 읽히는 1세대 SF(당시 SF 소설은 천박하다는 의미로 쓰일 수 있었음) 작가다. 많은 소설과 영화의 클리셰가 되는 장치들을 이미 30년대 구축한 디스토피아 전문 작가. 그가 《멋진 신세계》에서 만들어 낸 '소마(그리스어로 몸)'라는 약물은 풍요가 만연한 현대 사회의 다양한 약물을 예언한 것일까, 복용하는 순간 천국이 아닌 지옥세계에 들어왔음을 풍자한 예시라고 할 수 있을까.

 

 

 

또한 서평 목록을 뒤지다 낯설지만 반가운 재미작가 이창래의 소설 《만조의 바다 위에서》가 있었다. 이를 두고 어슐러 르 귄은 "예측 가능한 주제들의 독창적인 변주로 가득하고, 디스토피아에 대한 새로운 이해처럼 보이기는 할 정도로 복잡하고 교묘한 관점에서 쓰였다"라고 평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늘 경계인의 삶을 살아온 이창래 작가는 안에서 밖으로 나와 진실을 파헤치는 한 소녀를 중심으로 디스토피아의 영웅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안과 밖으로 나누어진 세상의 기이한 모험담이 담긴 소설이다.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는 어슐러 르 귄이 책으로 세상을 읽는 법이다. "문학이야말로 우리가 가진 최고의 매뉴얼, 우리가 여행하는 '삶'이라는 나라에 가장 유용한 안내서예요."라고 했던 거장의 어록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는다. 두고두고 곱씹어 볼 만한 화두를 던진 노장의 질문, 우리가 문학을 계속 읽어야만 하는 이유를 찾길 바라는 스무 고개 같은 책이다.

 

 

 

*본 도서는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인 의견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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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가난이 온다 - 뒤에 남겨진 / 우리들을 위한 / 철학 수업
김만권 지음 / 혜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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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주제를 쉽게 풀어낸 책 《새로운 가난이 온다》는 4차 산업혁명의 발족, 신자유주의 정점에 달하고 있는 요즘 필독서로 추천한다. 팬데믹으로 뉴노멀이 급속해진 세상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진중한 질문을 던진다.

 

세상은 점점 가난한 자와 부자의 양극화가 빨라지고 있다. 질병 앞에서도 평등하지 않고 돈 있는 자는 훨씬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게 그저 열심히 일하지 않은 개인 혼자만의 결과일까? 책은 소득과 부의 불평등의 심각성, 노동자들의 두려움을 현재 사회와 근미래를 예견하며 천천히 살펴본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지고 프리랜서라는 허울좋은 말로 긱워커가 늘어난다. 이런 플랫폼 노동자는 충분한 삶의 질을 보장받기 어렵지만 이마저도 배부른 소리라며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형태다.

 

노동의 대가는 점점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워지고 있다. 기계의 등장으로 인간의 노동이 침해받았다고 느껴 기계를 때려 부수었던 러다이트 운동의 제1 기계 시대를 지나, 로봇, 인공지능, 가상현실 등 제2기계 시대로 오며 인간은 기계와 상충을 벌인다. 마트의 식당의 계산원을 사라지고 기계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많은 책과 영화에서 인공지능이 가져올 디스토피아 미래를 다루고 있어 인공지능이 언젠가 인간을 위협할 거란 막연한 공포가 크다. 하지만 김만섭 저자는 그 불안감은 제1기계 시대에 만들어 놓은 '서로를 위한 보호'체계가 허물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체계를 다시 수정할 필요가 있으며 제2기계 시대 사람들이 각자를 위한 노동으로 내몰리며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라는 거다.

 

따라서 기계를 지배와 종속이란 관계로 규정하지 않고 긍정적인 파트너십을 맺는 발상의 전환을 주장한다. 파트너십을 할 때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것은 자신과 상대방 모두 서로 보호할 수 있다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해 왔던 과거를 벗어나 기계조차 지배권을 갖고자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두려움을 제거하자는 것이다. 몇 십 년 뒤 기계가 내 일자리를 빼앗을지 모른다는 걱정, 심지어 기계가 우리를 지배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미리 하기보다 기계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는 도구로서의 인공지능을 이용해 보는 건 어떨까?

 

기계와 공존하며 인간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밝은 미래가 책 속에 들어 있다. 앞으로 더 나아질 세상을 기대하며, 나와 내 가족, 그 후대 세대의 미래까지 긍정의 기운으로 북돋아 줄 책이다. 풍요로워지는 세상에서 개인의 삶이 피폐해지는 상황을 끝낼 수 있는 지침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는 개인의 책임이 아니며 사회가 연대 책임으로 개인을 구제해야 하는 것임을, 그리고 해결 방한 모색까지 다층적인 해석이 집약되어 있다.

 

​*본 도서는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인 의견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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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배를 탄 지구인을 위한 가이드 - 기후위기 시대, 미래를 위한 선택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톰 리빗카낵 지음, 홍한결 옮김 / 김영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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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구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구는 길고 느린 변화를 끝내고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홀로세에 접어들었다. 홀로세란 20세기까지 1만 2천 년 동안 이어졌고, 안정적인 변화를 보이며 평균 1℃의 온도 변화를 보여왔다. 하지만 지난 50년간 무분별한 착취와 훼손은 지구뿐만 아닌 스스로 인류의 멸망을 자초하게 되었다. 바로 50년 만의 일이다. 인류는 혜택받았던 홀로세를 끝내고 인류새로 접어들었다.

책은 유엔기후변화협약 전 사무총장 '크리스티아나 피게레스'와 사무총장 선임고문으로 파리협정 체결에 공헌한 '톰 리빗카낵'이 공동 집필한 책이다. 두 사람은 2015년 파리협정 체결을 끌어 낸 장본인. 그들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바는 혼자서는 옮길 수 없는 산도 여럿이 모이면 가능한 마법을 실현해 보자는 일종의 호소다.

서문에도 나와 있다시피 기후변화를 안이하게 생각하는 독자, 고통이나 분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독자 모든 이에게 보내는 인류 미래의 약속이다.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3가지 마음, 10가지 행동을 실천해 보자.

먼저 인류는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보다 낮은 수준으로 돌리고, 1.5℃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1997년 교토의정서 체제는 선진국만이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과했기 때문에 새로 개정될 필요가 있었다. 2015년 파리협정에는 195개국과 유럽연합이 만장일치로 서명했고, 2021년부터 신기후체제를 출범하기로 합의했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재임 기간 탈퇴했던 파리기후협약을 복귀하라 지시하기도 했다.

지금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음에도 인류가 힘을 모은다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낙관론을 선보인다. 이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지구는 있을지 모르지만, 인류는 곧 사라질 것이다. 인류의 지구 잔존, 인류의 지구 퇴출 이 두 가지 시나리오가 어떤 공포, SF 영화보다 피부로 다가온다. 가상 시나리오로 펼쳐지는 '우리가 현재 만들어가는, 온도가 3℃ 이상 오른 세상'과,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억제한 세상'은 가히 충격적이다.

그래서 극복을 위한 3가지 마음가짐 '단호한 난관','무한한 풍요','철저한 재생'으로 요약할 수 있다. 위기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고 서로 뺏고 뺏는 경쟁보다 연대와 협력으로 풍요로움을 누리고, 자연을 착취하고 버리기 보다 다시 쓰려고 하는 생각의 전환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그리고 모두가 실천해야만 하는 10가지 행동 방안도 모색해 볼 수 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책 속에 들어 있다.

책을 읽으면서 혼자서 보다 여럿이 해야 시너지를 갖는다는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나는 몇 해 전부터 장바구니는 필수,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며 무섭지만 나름의 실천을 해왔다. 근데 사실 힘에 부친다. 떡볶이 가게에서 주는 플라스틱 용기가 싫어 재사용 용기를 준비해 갔더니, 주인은 이상한 눈초리로 보며, "참 알뜰하네"라고 말했다. 기분이 나빴지만 웃으면서 대답했다. "쓰레기 버리기 싫어서요." 다음부터 그 집에 가지 않는다.

코로나로 일회용 용기 사용이 늘어나는 것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나는 배달 앱을 한 번도 사용해 본 적 없다. 30-40분 걸리는 거리는 걸어 다니며, 내가 먹을 물은 항상 가지고 다닌다. 하지만 이제 혼자 이러는 게 힘에 부친다. 음식점이, 사회가, 국가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지 실천하고 노력하는 사람을 '유별난 별종'으로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루빨리 이런 문화가 사라지고 재사용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 열심히 해봤자 죄책감만 늘어날 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 책을 봤으면 좋겠다. 지구가 어떻게 변화했고, 진행 중이며, 미래에 어떻게 된다는 충격적인 것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어떻게 파리기후 협정이 만들어졌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화석연료에서 벗어나고 농업 방법을 모색하고, 경제를 망치지 않고, 문명을 역행하지 않고 실천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할 때다. 환경, 정책 이슈의 배경을 이해하고 당신의 행동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올해 읽어야 할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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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늑대들 2, 회색 도시를 지나 웅진 모두의 그림책 38
전이수.김나윤 지음 / 웅진주니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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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에 처음 쓰고 그린 어엿한 작가, 영재발굴단에 나와 유명해진 전이수 작가의 새 책이 나왔다. 이 책은 기존에 나왔던 《걸어가는 늑대들》의 두 번째 이야기이자 엄마와 같이 그림을 그리고 만들어가는 공동작업의 산물이다. 자식과 함께 내 이름을 올려 만든 책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면서도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그림책 속에 등장하는 늑대들은 세상을 탐험하는 탐험가다. 온통 잿빛으로 물들어버린 도시에 당도한 그들은 답답한 세상에서 한 줌의 빛, 색채를 찾아 헤맨다. 그곳에서 밝은 빛이 나오는 모니터만 온종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그들은 듣지 않아 귀가 퇴화되고 자기 말만 하느냐 입은 튀어나와 있다. 흡사 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봐도 좋다.

 

슬프고 지친 얼굴을 하고 지하철 플랫폼에 서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우리들의 자화상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의 눈엔 어른들이 이렇게 답답하게 보이는 걸까?

 

작은 모니터만 바라보던 사람들에게 바다, 숲, 하늘, 등 자연을 볼 수 있는 곳을 묻자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내 일이 아니면 나서지 아니하는 현대인의 초상처럼 말이다. 그러다 깊은 지하 동굴 같은 곳에서 올라오는 소년 마누를 만났다.

마누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조언을 구했더니 그런 이야기를 했던 소년을 소개해 주었다. 이름은 유하. 늑대들은 유하에게 한 줄기 희망을 걸고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껌껌한 굴속으로 들어갔고, 발견한 하늘을 소개한다.

"내가 발견한 하늘이 이거야! 여기를 봐!"

 

유하는 매캐한 공기와 회색빛 도시에서 푸르고 초록의 빛을 보고 싶었고 친구들이 빛나는 상자 안에 들여다볼 때 밖에 나가 뛰어놀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다 작은 빛을 발견했다며, 두려워했다. 하지만 늑대들은 함께 구멍을 파내고 빛을 향해 달려갔다.

 

 

드디어 인공적인 도시를 떠나 자연을 만끽하는 유하는 처음으로 자유로움과 광활함을 느낀다. 점차 퇴화되고 도드라졌던 생김새가 변하면서 귀와 입이 제자리를 찾아왔다. 그리고 유하는 다시는 회색빛에 동화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품고 회색도시로 뚜벅뚜벅 되돌아간다. 세상은 작은 틈 사이로 시작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멍하고 답답한 일상은 지금 도시에서 살아가는 누군가의 모습과 닮았다. 거울을 봐도 알 수 없을 나, 너, 우리의 고여버린 얼굴들. 전이수 작가는 이를 포착하여 세상의 희망을 노래한다. 제주도에서 살며 보고 배우고 만진 상상력이 이 책에 모두 담겨 있다. 검은 선과 하얀 면으로 구성된 전반부를 지나 중후반부 파스텔 톤으로 물들여진 지면은 코로나 블루로 지친 우리들의 마음에도 환한 생기를 돋게 한다.

 

입춘이 지나고 이제 봄이 오는가 보다. 아직 눈과 추위가 가시지 않은 겨울이 매달려 보지만, 봄은 언젠가 찾아온다. 우리의 일상을 파고든 전염병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일상을 회복할 것이다. 그 밝은 날을 기다리며 그림책 한 장 한 장을 다시 넘겨 본다.

​*본 도서는 제공받아 읽고 개인적인 의견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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