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나요, 내 인생
최갑수 글.사진 / 나무수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잘 지내나요, 내 인생
단지 책의 표지와 제목만 보았을 뿐인데 몇 모금의 외로움과 한 줌의 슬픔, 그리고 아련한 추억의 편린이 내 마음과 몸의 살갗에 작은 떨림으로 다가온다.
적당히 외로울 것, 적당히 슬플 것, 그리고 적당히 부족할 것.

사진과 글이 번갈아 나오는 책의 배열에 나는 잠시 길을 잃고 흔들린다.
그리고, 오래 전에 길들여진 익숙함을 선택한다.  
나는 언제나 익숙함과 안전함을 동의어로 착각한다.  그것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글을 먼저 읽고 사진은 나중에 보면 되겠다며 안심한다.
시인이며 여행작가인 저자의 글은 바람처럼 허허롭다.
부석사에서, 내소사에서, 또는 소쇄원에서, 때로는 바람 몰아치는 우도에서...

"모든 여행은 아름답다.
아름다워야 한다.
현실의 반대말은 비현실이 아니라 여행이다.
여행작가는 그렇게 믿어야 하며,
여행작가의 가장 소중한 책무는
여행에 대한 로망을
최선을 다해 보여주는 것이다.
전쟁터 같은 현실에서 독자를
피신시키는 것이다."


동화는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는 우리의 믿음처럼 여행은 최소한 그 기간만큼은 행복을 보장할 것이라는 픽션이 내 팍팍한 현실을 한 발 물러서게 한다. 
책에는 페이지가 적혀 있지 않았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행처럼, 또는 자신의 잔존일수를 알 수 없듯이 우리는 지나온 삶을 세며 우수에 젖을 시간이 없다.  또는 무의미함.
사람은 누구나 홀로 외롭고, 까닭없이 눈물을 흘릴 때도 있지만 홧김에라도 닿을 수 없는 하늘을 향해 돌은 던지지 말 것, 들을 수 없는 바람을 향해 거친 욕설로 소리치지 말 것, 그리고 우아한 말로 스스로를 위로할 것.

"남은 세월, 어떻게 먹고 사나 하는 걱정에
숨이 턱, 막힐 때가 있다.
진짜다.
오직 먹고 사는 문제로'만', 가슴이 답답하고
밤새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있단 말이다.
살기 위해 음악을 들어야 하는 날들도 있단 말이다.
내가 제라늄 화분을 정성스럽게 키우는 이유가
못 견디게 힘겹고 외롭고 슬퍼서라는 사실을
당신이 눈치채지 못하면 좋겠다."

여행자의 시선이 멋진 풍광으로 흐를지라도, 흐드러진 꽃잎에 머물지라도, 그래서 더욱 슬퍼지는 밤이면 아무도 보이지 않는 다락방에서 소리 내어 펑펑 울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게 한나절 울고 나면 '이제 살아야 겠다'는 가슴 속 역설이 메아리처럼 들릴 때가 있다.
억지로라도 울음이 필요한 날엔 먼 시선으로 이 책을 하염없이 응시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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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을 읽고 리뷰를 작성해 주세요
그냥 - Just Stories
박칼린 지음 / 달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내가 ’박칼린’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게 된 것은 ’남자의 지격’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평소에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는 내가 몇 주를 연속으로 시청했던 유일한 프로그램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말의 황금 시간대에 ’맹목적이고 수동적인 시간 소비(TV 시청)’에 나의 몸과 마음을 묶어 둔 것은 출연진이나 어떤 무대장치가 결코 아니었다.  서구적인 외모의 한 여인.  그녀의 큰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그녀만의 자력장으로 나를 이끌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녀와 출연진들이 만든 감동의 무대는 내게 작은 울림으로 다가왔었다.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내밀한 삶이 궁금했던 것은 참으로 오랫만의 일이다.
나는 그렇게 무심하다.  사람에게도, 주변의 사건이나 풍경에도...
작가 자신의 자서전적 성격이 짙은 이 책은 작가의 경험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은, 특이하거나 문장이나 수사가 화려한 수필집도 아닌, 오히려 아마추어 냄새가 풀풀 나는 그런 책이다.
그럼에도 내가 끝까지 읽어낼 수 있게 만든 것도 알 수 없는 그녀의 매력 때문이리라. 

작가는 이 책에서 자신의 일과 가족, 그동안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과의 인연, 그리고 자신이 다녔던 여행지에서의 추억 등을 빼곡히 적고 있다.
우문이지만 나 스스로 ’책은 왜 읽는가?’하고 자문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은 책만큼 미련이 남지 않는 일도 드물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람이나 물건 또는 어떤 풍경 등 실재하는 어떤 것과의 만남은 항상 미련이나 아쉬움을 동반한다.  그러나 책과의 만남은 내가 그 책을 다 읽어냄으로써 그것으로 끝이다. 
어떤 책이든 마음에 탁한 앙금을 남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물론 이 책도 그랬다.  

저자의 에피소드에는 유난히 만남과 여행이 수시로 반복되고 있다.
저자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도전 정신이 강한 저자가 여행을 좋아할 수 밖에 없겠다는 것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지만,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만남과 여행의 상관관계를 생각했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여전히 그 궁금증이 지속되었고, 종국에 나 나름의 결론에 이르렀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여행이 내 몸의 감각기관이 낯선 환경이나 자연과 만나는 것이라면 만남은 내 영혼이 낯선 영혼의 세계로 떠나는 또 다른 여행이라고.
여행은 만남을 통해 완성되고, 만남은 여행 없이도 스스로 빛난다는 소박한 문구로 이 책의 리뷰를 대신하고자 한다.  저자도, 나도 남은 삶의 여정이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의 흥분처럼 한껏 설레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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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스물 여덟. 

그 아까운 청춘에 생을 마감한  이석주 사진작가. 

인생에 나중은 없다고 말하던 그가 마지막으로 찾은 홋카이도는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는 죽어서 눈처럼 가벼워지기를 소망했던 것일까?  아니면 산 자의 가슴에 눈처럼 흰 카드라도 한 장 보내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떠났고 남겨진 사진 위에 쌓이는 그리움을 적는 강성은 시인의 독백이 애닯다. 

 

"3일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당신, 무얼 하고 싶은가요?" 

각기 다른 성향의 열 명의 저자들이 들려주는 옴니버스 에세이.  인생에 '만일'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조금 더 진지해 질 수 있을까?  정답 없는 질문에 열 명의 각기 다른 작가들이 자신만의 인생을 펼쳐 보인다.  단 3일뿐의 삶!  그 3일처럼 전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방송작가로 활동 중인 저자가 느끼는 일상은 어떤 것일까? 

음악 프로그램을 맡고 있으니 듣고 싶은 음악은 맘껏 들을 수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일순, 그래서 더 아쉬운 것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  이십대의 후반과 서른 사이에 놓인 작은 시내를 건너는 그녀의 감성, 그리고 살아있음.  그녀의 글은 입체의 공간에서 톡톡 튀는 물방울처럼 싱그럽다. 

 

 

 

판화가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는 그 짧은 글 속에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짧아서 더 쉽게 잊혀질 수 있다지만 삶의 여백처럼 그 빈 공간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가 잊고 있는 것은 글과 말로 채워진 어지러움이지 빈 여백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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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환승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버스를 타기 위해 대합실로 향했다.
칼바람이 부는 바깥 추위를 피해 대합실 내부는 그야말로 인산인해!
차표를 끊고 출발 시간을 보니 약간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승차홈 앞의 대기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마저 읽지 못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때였다.
낡은 승복을 입고 홀쭉한 걸망을 짊어 진 스님 한 분이 내 곁을 맴돌고 있었다.
마른 체구에 주름이 깊게 패인 얼굴, 사십대 후반이나 오십대 초반쯤 되었을까?
내게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한데 주위를 서성이면서도 말을 붙일 엄두가 나지 않았는지 기웃거리고 망설이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쭈볏쭈볏 하시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 혹시 절에 다니세요?"
나는 대학생 시절 지하철역에서 자주 보았던 '도를 아십니까?'하는 멘트의 그런 사람들을 떠올렸다.  스님의 말이 끝나는 것과 그 생각이 들었던 것은 거의 동시의 일이었다.
잘 훈련된 개의 즉각적인 반응처럼.
"안 다니는데요." 하고 야멸차게 대답했다.
스님은 그렇게 어렵사리 대화를 튼 나에게 기회를 놓칠새라 얼른 말을 이었다.
"제가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그러는데 혹시 삼천 원 정도 여유가 있으시면..."하고 말끝을 흐렸다.  유난히 선해 보이는 눈망울에 거짓이라곤 조금도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나는 마음과 달리 엉뚱한 말이 튀어 나왔다.
"글쎄요.  저도..."
그것은 분명 거절의 말이었고, 당황한 스님은 황급히 자리를 떴다.

'왜 그랬을까?  지인들과 어울려 식사를 할 때에도 몇 만 원쯤이야 아까워 하지 않고 잘도 내면서...  따라가서 주고 올까?'

한참을 그렇게 망설이기만 하던 나는 끝내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고 버스를 탔다.

나는 어려서부터 어떤 곳을 가더라도 타인으로부터 길을 묻거나, 어떤 부탁의 말을 유난히 많이 들어 왔다.  다소 왜소한 체구의 내가 만만히 보인 탓이었는지, 아니면 내 인상에서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부탁에 수도 없이 넘어갔고, 우연한 기회에 그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줄라치면 다들 내가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라도 되는 듯 혀를 끌끌 찼다.  요즘도 가끔은 야멸차게 거절하지 못할 때가 있지만 그 횟수는 많이 줄어들었다.

사람을 믿지 못하도록 그렇게 길들여진 탓일까?
그토록 선해 보이던, 정말 어렵사리 꺼낸 그 삼천 원의 부탁을 나는 끝내 거절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나는 그분의 뒷모습이 지워지지 않았다.
종교와 상관없이, 어쩌면 우리가 섬기는 신이 그런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를 시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가장 정중하게 대우해야 할 그분을 나는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돌려보냈다는 죄의식이 내 어리석음과 함께 머리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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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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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엄동에 서둘러 봄이 오려는지 행복을 담뿍 담은 책들이 배달되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매년 연초에 습관처럼 읽던 자기 계발서를 읽지 않는다.
지키지 못할 약속에 넌더리가 나고, 내 나약한 의지에 지치고, 무엇보다 내일 당장 부자로 만들어 줄 듯한 환상에 많이도 속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그런 환상을 믿지 않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사막의 언덕에 구름처럼 올라앉은 오아시스를 믿지 않는 일이다.
책을 통하여 행복의 곁불을 쬐는 일이 그렇게 연초의 큰 행사처럼 굳어진 것은 아주 오래 된 습관처럼 요란하지도, 그렇다고 적막하지도 않은 따뜻한 위안이 되었다.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는 기약도 없이 그렇게 내게로 왔다.
그리고 빈 속에 들이키는 첫잔의 소주처럼 짜르르한 전율이 빈 가슴을 후볐다.
나는 한 사설이 끝날 때마다 안주 삼아 추억을 삼켰다.

내가 지리산을 처음 가본 것은 대학 1학년 때였다.
군부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이었고, 대학생이면 으레 금서 목록에 오른 서적을 한두 권쯤 읽어야 하는 것이 지식인의 사명인듯 느꼈었다.  나도 그랬고 우리 모두가 그랬다.
학교에는 연일 대자보가 나붙고, 매화가 피는 교정에는 시샘하듯 최루탄 가스가 뽀얗게 퍼졌었다.  저항이 순수함의 다른 표현인 양 나는 그렇게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었다.
그리고 어느 뜨거운 여름날 친구들 몇몇과 지리산으로 향했다.
그때 보았던 지리산의 녹음은그 산에 숨어들었던 빨치산의 배고픔보다 푸르렀었고 섬진강의 유려한 물줄기는 세월따라 옅어지는 기억의 빛깔처럼 고왔다.

공지영 작가도 이제 나이를 먹나보다.  
큰 것보단 작은 것이, 부자의 영화보단 가난한 일상이, 한낮의 태양보단 지는 낙조가 더 살갑고 아름답게 보이나보다.  봄인듯 느끼던 역사가 12월 엄동으로 변한 것이 서럽고, 삭풍을 등지려 찾아든 지리산 골짜기에서 스러지는 행복의 곁불을 쬐는 사람들이 그리운가보다.
나는 작가의 걸쭉한 입담과 슬픈 너스레에 멋모르고 한참을 웃다가 알 수 없는 아련함에 눈물을 흘렸다.

작가는 거꾸로 흐르는 역사를 향해 작은 행복을 담은 생명의 화염병을 던지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 여린 힘으로 그렇게 일깨우고 싶었나보다.
말없이 흐르는 섬진강을 향해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소리치고 싶었나보다.

"악양.  그것은 지리산의 다른 이름.  그것은 경쟁하지 않음의 다른 이름.  그것은 지이(智異).  생각이 다른 것을 존중하는 이름.  그것은 느림을 찬양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이름......  공연 도중에 소주가 나누어지고 구수한 돼지고기 냄새 퍼지는......  그런 악양에 그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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