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개의 전통
랠프 네이더 지음, 정영목 옮김 / 재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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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부모가 되는 것도 어렵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바라볼 때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은 행운이고 더할 수 없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부모도 아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에 빠지기도 한다.  그만큼 아이에게 있어 부모는 그의(또는 그녀의) 삶을 관통하여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그 영향력도 지대하기 때문이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고 내가 사는 동네의 아이들에게 약간의 지식을 전달하는 보조자의 입장이다 보니 부모의 역할과 그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역설적이게도 부모가 아이를 또는 아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좋은 부모, 또는 좋은 자녀가 되려고 더 노력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내가 동네의 가난한 집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면서 그들의 가정환경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에게 차라리 부모가 존재하지 않거나 그들의 부모가 친권을 포기한다면 이 아이들이 지금보다 더 잘 성장할 수 있을텐데 하는 극단적인 안타까움을 느낀 적도 많았다.  아이들이 그런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것이 그들의 잘못도 아닌데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기는커녕 부모로 인해 사회의 차가운 시선과 멸시를 받는다면 너무나 부당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내가 좋은 부모의 표본이라거나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을 모두 돌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말은 물론 아니다. 

이 책의 저자 랠프 네이더는 미국에서 태어난 레바논 이민 2세대로서 지난 40년간 미국의 소비자-시민운동을 이끌어온 저명한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저자가 40여 년간 미국 소비자―시민의 대변인으로서 정부와 대기업의 부정, 부패를 폭로하고 각종 세제 개혁과 핵 규제, 소비자를 위한 법률 제정에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100여 개가 넘는 시민 단체를 조직, 설립하는 등 시민운동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윈스테드의 아름다운 자연과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전통이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둘 다 거의 백년을 살았다.  우리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 풍부한 경험에 바탕을 둔 통찰과 지혜의 도움을 받았다.  그들은 언제나 젊었다.  늘 "흥미를 느끼고 또 흥미를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어머니의 확고한 믿음을 실제로 생활 속에서 체현했기 때문이다.  ...... 우리의 부모가 가족의 기초를 굳건하게 닦아 놓은 덕분에 우리는 그것을 발판으로 더 넓은 세계로 힘차게 나아가 높은 기대감을 갖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P.14)

랠프 네이더는 이 책 <열일곱 개의 전통>을 통해 코네티컷 주 윈스테드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자라났던 유년 시절을 회고하면서, 다양한 일화를 통해 부모가 자신에게 물려주려 노력했던 각종 전통의 핵심적인 내용을 열일곱 개로 요약한다.  우리는 가끔 ’엄친아’로 길러 낸 어느 부모의 교육 비결을 언론 매체를 통하여 접하게 된다.  그 중 빠지지 않고 읽게 되는 것은 부모의 모범과 확고한 원칙이다.  어쩌면 좋은 부모는 부모로서의 책무를 다하겠다는 강한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에는 점점 많은 가족이 자신의 책임 - 아이들을 먹이고 즐겁게 해 주고, 교육하고 자문해 주고, 매일 돌보고 충고해 주는 일 - 을 상업적인 서비스 제공자에게 맡겨 버린다.  ’가족 산업’은 미국 경제에서 급속하게 현실적인 요소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부모는 점점 ’전문가’의 도움 없이 결정을 내리는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을 잃는다.  기업이 의도적으로 우리 자녀에 대한 부모의 역할을 잠식하면서, 아이들은 부모와 개인적으로 만나는 시간이 줄어든다.  가장 중요한 전통들은 중단되고 만다."   (P.198)   

저자는 자신의 유년의 정신적 풍경을 '강한 모범과 분명한 경계, 목격과 존경,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모의 사랑과 희생의 힘이 지배하는 분위기'라고 묘사한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부모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부모를 떠올릴 때마다 따뜻한 미소와 함께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책의 저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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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스완 - 0.1%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꾼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차익종 옮김 / 동녘사이언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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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생각이나 느낌과 딱 들어맞는 책을 만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1년에 발행되는 책의 권수로만 따져도 1억권이 넘으니 그 많은 책 중에서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책을 고른다는 것은 노력만으로는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우연히 만난 책 한 권이 그동안 꾸준히 생각하고는 있었으나 정리가 되지 않았던, 안개에 묻혀 희미한 의식으로만 살아있던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잘 정리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확장하여 설명하고 있다면 그보다 더한 행운이 있을까.  갑자기 시야가 환해지는 느낌에 더하여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내게 <블랙 스완>은 그런 책이었다.
2001년 9.11 테러가 발발하기 전까지 나는 한동안 전업 투자자로 살았었다.  운이 좋았는지 나는 많지 않은 투자 원금에서 발생하는 수익만으로도 생활비와 저축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평온한 날들이 흘렀고,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평소와 다름없이 거래를 마치고 다음날 거래할 종목의 챠트 분석까지 끝낸 후 동료들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저녁을 먹었다.  밤이 늦어서야 집에 돌아왔고, 습관처럼 TV를 켰다.

그때 화면에서 속보로 전해지던 쌍둥이 빌딩의 폭파 장면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지금도 생생하다.  그날 내가 샀던 종목의 주가가 다음날 얼마나 떨어질까 하는 고민보다는 폭파 장면의 비현실성으로 인해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만 들었다.  3시간이나 늦게 열린 주식시장은 그야말로 하한가 일색이었다.  나 또한 내가 보유했던 모든 주식을 하한가에 던졌다.  그중 일부만 매도가 체결되었고 대부분의 주식을 울며 겨자먹기로 다음날까지 보유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도 상황은 그닥 나아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주식을 팔고자 애를 쓰는 모습이었고, 호가창에는 매도 물량이 넘쳐났다.  그 상황에서 가격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내 주식을 누군가가 사주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는 불과 이틀만에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많은 손실을 보고 주식을 모두 정리했다.  다행이었던 것은 그동안 나는 매월 주식 거래를 통하여 얻은 이익은 생활비와 저축으로 돌려왔었고, 그때 투자 원금으로 남아있었던 돈은 수익금의 일부였다.

나는 증권계좌를 모두 정리하고 주식시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큰 사건을 예측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와 같은 상황이 재발했을 때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할테고 수익을 낸다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무능한 시세 추종자로 남기는 싫었다.  그리고 한동안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증권사에 근무하던 대학 동기가 선물,옵션을 공부해보라며 자신의 책을 택배로 보냈다.  나는 그저 배워두면 손해날 것도 없겠다 싶어 틈틈이 책을 읽었고, 친구의 권유로 선물,옵션 거래를 했었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짧은 기간의 거래가 일반 주식의 거래에서 얻은 수익보다 몇 배나 높았다는 사실을 보며 많이 놀랐었다.

상,하한가라는 안전장치가 마련된 일반 주식시장과 달리 그런 안전망이 존재하지 않는 고위험군 선물,옵션 시장에서 수익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정보의 취합이나 성실한 챠트의 분석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 불합리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때 내가 품었던 의문은 지금까지 이어졌었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렸다.  이 책에서 여러 번 언급되는 9.11 테러와 같은 예측 불가능한 사건을 저자는 '블랙 스완'이라고 지칭하며 왜 인간은 그런 불확실하고 돌발적인 사건의 예측에 취약할 수밖에(어쩌면 예측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인간에게 극심한 충격을 주는 이러한 극단적 사건은 과거의 경험으로도 결코 추론할 수 없음을 저자는 조목조목 짚고 있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은 근심할 필요가 없음을 지적한다.  즉, 우리는 눈에 보이는 위험만을 인지하고 오직 그것을 걱정하지만 우리의 의식과 일상적 화제 바깥에 도사린 문제, 즉 검은 백조의 출현은 의심하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경험적 회의론자인 저자의 견해는 우연성이 개입할 수 없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낯설고 생뚱맞은 이론으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는 피할 수 없는 '블랙 스완'에 의해 진행되고 있으니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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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는 그 주제가 언제나 비슷하다.
간혹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들 그렇겠지만 매달 일정한 월급에 의존하는 직장인들은 주관심사가 재테크일 수밖에 없고, 아이들의 교육 문제나 정치, 직장 상사에 대한 뒷담화 또는 연예가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되곤 한다.  매일 나누는 대화이니 질릴만도 한데 때로는 서로의 의견에 대해 치열한 격론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달리 관심을 둘만한 대상이 없는 일반 소시민의 비애가 느껴지기도 한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기 전에 뭘 먹을까? 고민하는 것은 매일 반복되는 일이고, 몇 가지 안 되는 메뉴 중에 선택을 해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은 날씨가 더웠던 탓인지 ’냉면’으로 의견 일치를 보고 가까운 냉면집으로 향했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에 예전과 비슷한 주제의 대화가 오갔고 그마저도 이야깃거리가 바닥날 즈음에 때 맞춰 음식이 나왔다.  머쓱한 분위기를 피할 수 있다는 안도감에 과도한 리액션이 이어졌다.

생각해보면  20대를 기점으로 그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대화의 폭도 좁아지고 그러면서 자신도 삶의 테두리에서 점차 변방으로 밀려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지난해부터 내가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기 시작한 것도 따지고보면 이런 위기의식 때문이 아닌가 싶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결코 쉽지는 않았다.  영어야 그럭저럭 가르칠 수 있다지만 고등학교 이과 학생들의 수학을 가르치면서 공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었다.  나의 학창시절과 비교해 볼 때 문제의 난이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한참이나 높았다.

그런 난관에 직면한 나는 영어만 가르치거나 아니면 아예 중학생만을 대상으로 하거나 그도 아니면 숫제 그만둘까를 놓고 여러 번 고민했었다.  그럼에도 영어, 수학을 모두 가르치며 지금껏 버틸 수 있게 한 힘은 봉사활동의 보람이나 뿌듯함이 아니었다.  블로그에서 만난 지인들이나 직장 동료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 모두 내가 대단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며 무기력해지고 그럴 때마다 삶의 변방으로 한발 밀려나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위한 작은 몸부림으로 시작한 것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을 뿐, 사회적 사명을 다하기 위한 그런 거창한 의지는 없었다.

그렇게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도 만 9개월이 다 되어간다.
피곤하고 지치는 경우도 많고, 불쑥불쑥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이 일을 잘 시작했다는 느낌이 더 강하기 때문에 지금껏 지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경험으로 볼 때, 나이들수록 삶의 중심으로 더 접근하려는 노력이 있어야만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거창한 의미보다는 나 스스로 죽는 날까지 삶의 중심부를 향해 다가가겠다는 의지를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으로 살면 어떤 음식을 점심으로 먹든 어찌 맛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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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어떻게나 빨리 지나가는지 나는 그저 해가 뜨고 다시 해가 지는 것만을 확인할 뿐 시간의 흐름을 여유롭게 지켜볼 수 없었다.  회사의 밀렸던 업무를 처리하면서 다시 시작된 아이들의 수업을 차질없이 진행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지난 일주일의 시간 동안 나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출장으로 근 이십여 일을 비웠으니 아이들은 나에 대한 실망감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할 때 피곤하다는 핑계조차 꺼내기 어려웠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크게 탈이라도 날 듯 싶었던 몸도 무사히 버텨주었다.
어제는 고등학생들이 모의고사를 치뤘고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고등학생들의 수업은 하루 쉬기로 했다.  중학생들의 수업을 홀가분한 마음으로 끝냈던 나는 세상 모른 채 잠에 빠져들었다.  아침 여섯 시를 알리는 휴대폰 알람 소리에 잠이 깨었을 때, 밀린 잠을 더 보충하고 싶은 유혹에 몇 번이나 흔들렸다.  운동복을 갈아 입고 산을 오르니 그제서야 잠이 달아났다.  하루 중 내가 가장 여유롭고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이 시간은 언제나 짧고 아쉽게만 느껴진다.  한낮의 찌는 듯한 더위와는 달리 선선한 바람과 맑은 공기, 청아한 새소리와 향긋한 솔내음, 지천으로 핀 밤꽃과 흐느적거리는 밤꽃 내음이 코끝을 간지르는 유월의 아침.

모처럼 잠을 넉넉히 잔 탓일까 보는 이마다 내 안색이 좋아 보인단다.
그동안 방치하다시피 비워 두었던 블로그에 짧은 글이나마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읽었던 책들의 서평을 올리는 것은 언감생심,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았던 까닭인지 마음과 손이 엇박자로 노는 것 같다.  주인 없는 블로그를 다녀가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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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에도 없던 출장은 항상 곤혹스럽다.
체류 일정도 잡히지 않은 채 무작정 한국을 떠났던 것이 근 20여일 전의 일이니 떠날 때보다 돌아와서의 밀린 업무를 처리할 일이 더 걱정이다.
출발에 앞서 들었던 바로는 짧으면 2 ~ 3일, 길어야 4 ~ 5일을 넘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그러한 귀띔은 단지 나와 일행을 안심시키려는 위로에 불과했었고, 도착과 동시에 우리는 그것이 잘못된 예측이었음을 바로 알았다.

하릴없는 대기상태로 4~5일이 흐르자 우리는 서서히 지쳐갔고 귀국 일정이 저만치 달아나는 느낌마저 들었다.  여행을 온 것도 아니니 마음대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무작정 무료한 시간을 대기상태로 기다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귀국에 앞서 1주일여의 시간 동안 바쁜 일정에 시달렸고, 나는 엊그제 귀국했다.

너무 지친 탓인지 시차적응이 되지 않는다.
귀국 후 첫 출근.
밀린 업무는 저절로 한숨이 나오게 하고, 그동안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한 탓에 수업 계획도 점검해야 한다.   처리할 일을 생각할수록 기운이 빠진다.
아이들은 시험을 줄줄이 앞두고 있다.  6월 중순에는 모의고사, 6월말부터는 기말고사, 그리고 성취도 평가...  이 일을 다 어찌 넘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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