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흑학 -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 Wisdom Classic 3
신동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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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일을 꼽으라면 ’대인 관계’가 아닐까 한다.  같은 종( 種)인 사람끼리 다른 동식물과의 관계보다 오히려 더 힘들어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오직 인간만이 나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하여 평가하고 호불호를 결정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누구나 다 공감하듯이 어른과 어린 아이의 관계는 성인들의 그것과는 또 다르다.  대체로 아이들은 상대방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는다.  이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낀다.

상대방의 생각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사람들은 대인관계에 좀 더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아마 그 반대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나를 싫어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커다란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을테고, 내 속마음도 고스란히 상대방에게 노출된다고 생각하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겁기보다는 오히려 꺼려질 것이다.

대인 관계에 있어 정답이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맥 놓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고 보면 처세를 다루는 책이 하루가 멀다하고 출간되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야 하루에 만나는 사람도 적고, 늘 만나던 사람만 만나거나 아주 가끔 새로운 사람을 만나니  크게 불안해 하거나 긴장할 일도 생기지 않지만 대중을 상대하는 정치인이나 연예인, 재벌의 총수쯤 된다면 사정은 매우 다를 것이다.

’승자의 역사를 만드는 뻔뻔함과 음흉함의 미학’이란 부제가 붙은 ‘후흑학’은 두꺼운 얼굴(면후·面厚)과 시커먼 속마음(심흑·心黑)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 청말 이종오(李宗吾)의 기서 ‘후흑학(厚黑學)’에 대한 해설서다.  몇년전 이와 비슷한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측천무후 아래서 활약했던 악독한 관리 내준신이 지은 『나직경羅織經』(무고한 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기술을 담은 책)을 현대 감각에 맞게 새로 풀이한 책으로 중국인 작가 마수취안이 쓴 처세서이다.

나는 그 책을 읽다가 나의 성정에 영 맞지 않아 끝까지 읽지도 못하고 중간에 책을 덮었었다.  우리가 알고있는 기존의 도덕률에 반기를 든 이러한 종류의 책은 자신의 감정을 속속들이 들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네 일반인들에게는 내면적 갈등과 반감을 갖게 한다.  그때의 기억이 있었기에 이 책도 썩 내키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왕에 손에 잡은 책이니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오기도 함께 작동했다.  언제 써먹을지도 모르는 비기(秘技)라도 취할 양으로 다부지게 달라붙어 책을 읽노라니 내 모양이 참 우스웠다.

책의 구성은 <모략의 즐거움>과 크게 다르지 않다.  후흑학의 탄생 배경을 다루는 1부와 중국 역사에 있어 후흑의 대가를 다루는 2부, 후흑술의 기본 내용을 다루는 3부, 오늘날 우리에게 후흑학이 필요한 이유와 현실에서의 적용을 다루는 4부로 나뉘어져 있고, 각각은 역사적 에피소드와 함께 엮어 가독력을 높였다.

 지난해 여름 당직자 인선문제를 놓고 갈등을 겪었던 당시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기자간담회에서 “휴가기간 중 후흑론을 집중 공부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됐었다. 그가 후흑론을 얼마나 공부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모래시계 검사’는 1년 후 우리나라 여당의 당대표가 되었다.  후흑을 연마한 그가 얼마나 승승장구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후흑학을 완성한 이종오가 ’후흑구국’을 기치로 내걸었듯이 후흑학의 요체는 역시 求國에 있다.  이종오의 후흑구국(厚黑救國)의 취지를 계승한 중국 수뇌부의 ‘도광양회(韜光養晦·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나 흑묘백묘론으로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었던 덩 샤오핑의 책략 덕택에 G2의 자리에 오른 중국을 볼 때 정치 지도자의 능력과 바른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저자는 마땅히 지켜야 할 9가지 처세술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위기에 빠져나갈 퇴로를 만들라, 반룡부봉(攀龍附鳳·훌륭한 사람에게 붙어 출세하다)하되 역린(逆鱗)을 조심하라, 사람을 가려 때에 맞게 칭찬하라, 큰 인물로 포장해 신뢰케 하라, 귀머거리 흉내로 속셈을 감추라.  
정치 지도자 및 글로벌 기업의 고위직 임원들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반세기에 걸쳐 형성된 패거리 문화에서 탈피하여 자신과 생각이나 사상이 다르더라도 구국의 차원에서 능력만 있으면 과감히 기용하는 진정한 실용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오직 자신과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중용되는 현 정부의 인사정책이나 기업의 악습을 비판하는 모든 사람들을 갖은 이유를 들어 해고시키는 케케묵은 행태는 이제 사라져야 할 때라고 본다.  

이종오의 후흑학은 낯짝만 두꺼워지고 마음만 검은 우리나라의 모든 지도자들에게 진정한 후흑의 정신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목적의 정당성이지 그 기술의 숙련도가 아니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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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깅을 처음 시작한 것도 벌써 만 2년이 다 되어간다.
얼리 어답터라기 보다는 슬로우 어답터에 가까운 내가 온라인 상의 작은 공간에 터를 잡고, 일상에서 벌어진 일들을 글로 옮기는 것에서부터 읽었던 책의 느낌을 기록하거나 문득 떠오르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끄적거리는 것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잊고 살았을 많은 것들을 놓치지 않고 모아 놓았다는 느낌이 든다.   수많은 사람들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들락거리는 인터넷 공간에 글을 올리는 것은 때로는 의무감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마치 골동품에 취미를 붙인 사람이 별 가치도 없어 보이는 쇠붙이에도 눈길을 주고는 끝내 그것을 구매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처럼  새로운 방문객의 시선을 의식해 가치도 없는 글을 급조하여 올려야만 안심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 초보 블로거의 딱지는 뗀 듯 보이지만 여전히 초보 티를 벗지 못하는 것들도 많이 남아 있다.  사진의 편집이나 글의 구성만 보아도 그렇다.  그런 까닭에 가급적 사진이 들어간 글은 자제하고 있다.  남들이 보기에 한심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그만큼 블로깅을 했으면 달인 소리는 듣지 못해도 남들 하는 만큼은 쫓아가야 하거늘 처음이나 지금이나 별반 나아진 게 없으니 말이다.  아무튼 기계치에 가까운 내게는 넘지 못할 벽임에 틀림없다.

기술적인 문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생각이나 마음의 깊이가 좀체 나아지지 않는 것을 보면 내가 생각해도 구제불능이다.  원체 유약한 성격인 나로선 처음 블로그를 할 때만 해도 평소 가깝게 지내던 블로거가 어느 날 갑자기 블로그를 폐쇄하고 보이지 않으면 한동안 마음이 싱숭생숭 하여 블로그에 접속조차 하기 싫었던 적도 있었다.  혹은 거의 매일 거르지 않고 방문하던 블로거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아니면 내가 뭐 잘못한 일이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오만 걱정을 하기도 했었다.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블로그 세상도 우리네 현실 세계와 그닥 다르지 않은 듯하다.
서로 얼굴을 보지도 못하였고, 나이도 짐작만 할 뿐이지만 성격이 통하는 사람이 있고 자연스레 멀어지는 사람도 있는가 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블로그를 하면서 세상의 시름을 잊고 다른 블로거를 통하여 위로를 받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처음에 각별히 지내던 블로거 중에는 지금은 다른 사이트로 옮겨갔거나 아예 블로깅을 작파한 사람도 더러 있지만 지금은 나도 그분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직업이 없던 사람이 새로운 직업을 구했거나, 사업이 번창하여 바빠졌다거나, 능력을 인정받아 두루두루 바빠졌을 거라고.

나와 같이 블로그를 시작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가끔 그리울 때가 있지만 새로운 블로거가 그 자리를 어느새 메우고 있음을 발견할 때, 만나고 또 헤어지는 어길 수 없는 자연의 이치를 생각하곤 한다.  거꾸로 흐르지 않는 세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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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톨스토이의 마지막 3부작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상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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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척척 묻어날 정도로 한가로이 책을 읽었던 것도 참 오랜만이다.
한동안 손에 책을 잡지 않았던 탓인지 마음은 금세 저 멀리 달아나고, 거듭 달아나려는 마음을 이리저리 돌려 세워 간신히 책에 집중해보지만 선잠 든 아가처럼 오래 가지 못한다.  가늘게 내리는 빗소리에도 시선을 빼앗기길 여러 번.  그렇게 어렵사리 읽은 책인데 가슴에 남은 귀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세상에서 단 한 권의 책만 가지라 하면 나는 주저 없이 톨스토이의 마지막 저서인 이 위대한 책을 선택할 것이다."라고 극찬했던 솔제니친의 평에서 알 수 있듯이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에 담긴 잠언들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생이 얼마 남지 않았던 노작가 톨스토이가 들려 주는 말의 향연이요, 깨달음의 정수(精髓)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 글자 한 글자에 심혈을 기울인 듯한 글귀들을 읽어 내려가는 내내 서늘한 경건함을 느꼈다.

작가 자신이 서문에서 밝히 듯 인생의 손님들인 사랑, 행복, 신, 믿음, 삶, 죽음, 말, 행동, 진리, 거짓, 노동, 고통, 학문, 분노, 오만 등의 주제들이 반복되도록 씌어졌고, 이러한 반복성은 하루하루의 삶이 담아내는 의미들이 서로 연결성을 가지도록 배려하였으며, 모든 행동의 지침이 되는 총체적인 철학으로 완결성으로 끝을 맺고 있다.  생의 마지막에 이른 노작가는 병상에서나마 자신의 깨달음을 글로 남기는 것이 전 인류를 위한 마지막 의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이 책은 인류에 대한 나 자신의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이다.  함께 읽는 독자들이 내가 책을 쓰면서, 또한 매일 반복해서 읽으면서 경험했던 감동과 흥분을 함께 느껴주었으면 한다."   (책의 서문)

 톨스토이는 자신의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음으로써 삶의 진실을 향해 떠나는 순례자의 삶을 살았으면 하고 바란 듯하다.  계단을 오르 듯 삶의 단계마다 꼭 배워야 할 것들이 있다지만 인생이 어찌 정해진 순서대로만 진행되던가.  때로는 그때 이것을 알았더라면 하고 후회하는 일이 어디 한두번이었나.  나처럼 우둔한 독자는 노작가의 명철한 가르침을 반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두고두고 깨쳐 나갈 결심으로 작가에 대한 미안함을 덮는다.

"많은 책을 읽고 다 믿어버리는 것보다는 아무 책도 읽지 않는 편이 더 낫다.  책 한 권 읽지 않고서도 현명할 수 있다.  하지만 책에 쓰인 것을 다 믿는다면 바보가 되어 버린다."  (P.66)

장마의 끝무리에 만난 이 책은 흐린 하늘을 보면서도 청정한 사색의 세계로 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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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면서 이런저런 사건의 근본 원인을 제대로 살피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되지 못하는 까닭에는 자신의 우둔함을 비롯한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책이나 말에서 오는 폐해가 크지 않은가 싶다.  예컨대 지혜와 지식, 지식과 기술을 명확히 구분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드물고, 이것을 읽거나 들었을 때 사실인 양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기술은 지식에 포함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지식은 단순히 앎을 기준으로 할 뿐, 몸으로 체득되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삼지 않기에 지식과 기술은 엄밀한 의미에서 서로 다른 것으로 분류되어야 마땅하다 하겠다.

어제의 일이었다.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직장 후배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 상의할 일이 있으니 시간 좀 내달라 청하는 것이었다.  딱히 거절할만큼 바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지라 장마철의 우울한 기분도 떨칠 겸 우리 둘은 근처의 커피숍으로 향하였다.  결혼 삼 년차에 접어든 후배는 아내의 낭비벽 때문에 고민이 깊은 듯했다.  올해 들어 천정부지로 치솟은 물가 때문에 가뜩이나 팍팍해진 살림에 아내의 낭비벽까지 더해 부모님 용돈도 드리지 못할 상황에까지 내몰렸다는 것이 후배의 하소연이었다.  말이 길어지자 후배는 공무원 생활을 하던 자신의 처남도 아내와 다르지 않아 경마로 많은 빚을 지고 최근에는 직장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며 처가 식구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등 분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후배의 흥분을 가라앉히려 한동안 아무런 말도 없이 자리만 지켰다.
어느 정도 흥분을 가라앉힌 후배는 어찌하면 좋겠냐고 재차 물었다.  나는 후배의 물음에 싱긋 웃으면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세상 물정도 모른 채 사업을 벌렸던 나는 처음으로 만져보는 커다란(?) 액수의 돈에 어찌할 바를 몰랐었고, 후에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종국에는 폐업을 결심하게 되었던 과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도무지 치장에는 관심이 없던 나는 낭비벽이 심했던 것도 아니고, 하루하루를 도박으로 소일했던 것도 아니고, 술이라곤 한 잔도 못하니 주색잡기에 빠진 것도 아닌데 나는 결국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 돈을 펑펑 써보기라도 하고 망했더라면 억울하지나 않았을텐데 사업을 하던 내내 늘 돈 걱정으로 하루가 편할 날이 없었다.  어느 누구나 그렇겠지만 사업을 하는 처음부터 어려움에 빠지는 경우는 드물다.  나도 그랬다.  마냥 순탄할 것만 같았던 사업은 어느 순간 어려워졌고, 경험도 돈도 없었던 나는 최대한으로 버티다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내가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자랐던 나는 용돈이라고는 받아 본 적이 없었고, 성인이 되기까지 그 액수가 작든 크든, 내가 관리해야 할 돈을 몸에 지녀 본 적이 없었다.  일종의 물건이나 다름이 없는 돈은 그것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몸에 익은 '기술'이 필요했다는 것을 커다란 시련을 겪은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지식이나 지혜의 유무와는 관련이 적어 보였다.  새로 산 스마트폰의 사용 설명서를 아무리 열심히 읽는다고 하더라도 처음 접하는 기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없듯이, 돈을 다루는 기술도 실수를 통하여 몸에 체득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사실을 똑바로 인식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 단지 기술을 익히지 못한 사람을 마치 지식이나 지혜가 없는 무식하고 우둔한 사람으로 오해할 수 있다.  단순히 오해로만 끝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오해는 또 다른 오해를 낳고, 비난은 더 큰 비난으로 이어져 급기야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얼마나 많이 보았던가.

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후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자신의 아내도 어린 시절을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고,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경험했던 것도 아니니 돈을 다루는 기술을 익힐만한 마땅한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기술이 없는 사람의 처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근거도 없는 다른 이유로 상대방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가 결혼을 하여 두 사람이 같이 사는 까닭은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렇다면 한 방면에 기술이 좋은 사람이 그것을 담당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보다 더 헌신적인 사람이라면 상대방으로 하여금 실수를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그 실수를 절대 비난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후배는 자리를 털고 일어날 즈음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내 이야기를 들으니 아내가 조금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런 아내가 언젠가 돈을 잘 다루어 자신이 아무 걱정없이 자신의 월급을 맡길 수 있을 때까지 옆에서 조용히 돕겠다고 약속했다.

빗발이 가늘어졌다.
장마가 길어지니 맑은 하늘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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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베르나르 베르베르 도서 전집을 선물로 받았다.
출판사 <열린책들>이 진행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함께 하는 가정의 달 이벤트>에서 1등으로 당첨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이벤트가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고(물론 알았더라도 기대도 하지 않았겠지만),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었기에 그 기쁨은 컸다.

나보다도 더 기뻐했던 사람은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지난 주에 시험을 마쳤었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아이들이 어제서야 끝났는데 어쩌면 그렇게 시험 종료일에 딱 맞춰 선물이 배달되었는지... 
퇴근 후, 아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박스를 개봉했을 때 쏟아져 나오는 베르나르의 책들에 아이들은 환호성을 터뜨렸다.  얼마 후면 여름방학이 이어지니 낮 동안의 무료한 시간을 어찌 보낼까 고민하고 있던 아이들에게 얼마나 반가운 선물이었을까.

그 유명한 개미(전5권), 신(전6권), 파라다이스(전2권), 카산드라의 거울(전2권), 아버지들의 아버지(전2권), 티나토노트(전2권), 천사들의 제국(전2권), 지식의 백과사전, 인간, 파피용, 나무, 만화 개미 등 스물여섯 권의 책을 책상 위에 펼쳐 놓자 아이들은 너도 나도 서로 먼저 읽겠다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산다는 것은 이처럼 매일매일 나 아닌 다른 누군가를 통하여 확인 받는 일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고 나 혼자 적막한 숙소에 있었다면 이런 기쁨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무덤덤하게 지나쳤을 일도 이렇게 기쁜 일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 이번 기말고사에서 전교 1등은 나오지 않았지만 고1, 고2에서 각각 한 명씩의 반 1등이 나왔다.
다른 아이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은 그 학생들에게도, 나머지 아이들에게도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조촐한 파티를 열어주었다. 

치킨 몇 마리와 피자, 음료수 몇 병이 전부였지만 행복해 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나 또한 행복했다.  누군가를 기쁘게 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야말로 내가 진정으로 살아 있음을 가슴 깊이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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