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움직이는 승부사 제갈량 - 승부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삼국지 리더십 2
자오위핑 지음, 박찬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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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서 한 가지 결심한 게 있다.

지키지 못할 거창한 약속들만 골라 새로 산 다이어리에 보란 듯이 적어 놓았다가 그해의 반도 지나기 전에 남 보기 부끄러워 슬그머니 책상 서랍에 감추었던 적이 하도 많아서 나는 요즘 되도록이면 가볍고 소소한 것들만 고른다.  그 중 웬만한 것들은 첫달이 지나기 전에 떨어져 나가고 둘째달까지 살아있는 놈들만 다이어리에 옮겨 적는다.  그래야만 한해의 끝자락에 이르러서도 간신히 체면치레를 할 수 있다.  올해는 그 가짓수도 손으로 꼽을 정도이니 연초부터 서두를 일은 없겠다 싶었던지 마음마저 눅지근하게 늘어지는 본새가 심상치 않다.

 

아무튼 그 결심 중 하나가 '인문학 공부를 새로 하자'는 것인데 딱히 기간을 정한 것도 아니다.  조금 방자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나오는 신간들이 가벼운데다 지극히 표면적인 사색의 글들로 넘쳐나는지라 깊이 있는 공부를 하기에는 부족하다는(또는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식이 일천한 자의 섣부른 판단에서 비롯된 이 결심을 실천하고자 나는 고전과 신간을 2대 1의 비율로 유지하기로 맘 먹었다.  1월에는 사마광의 자치통감 후한시대 편을(권중달 옮김, 5,6,7권) 간신히 읽었다.  2월에 내가 목표로 한 책은 플라톤의 대화편(천병관 옮김)과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유영 옮김) 그리고 <마음을 움직이는 승부사 제갈량>이다.  자치통감을 읽으면서 느꼈던 소회인 즉, 빈약한 내 지식에 대한 한탄뿐이었기에 2월에는 신간을 한 권 슬쩍 밀어 넣은 것이다.

 

안 읽던 고전을 읽느라 1월에 하도 고생을 한 탓인지 이 책은 술술 읽혔다.

학창시절 읽었던 '삼국지'를 떠올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나 이 책은 삼국지의 재판(再版)이 아니라 인력관리와 리더십, 중국 고전 관리사상의 전문가로 중국의 '대륙 10대 강사'로 선정된 저자가 현대인의 자기계발 욕구에 맞게 역사 속의 제갈량을 재해석한 것으로 국영방송 CCTV에서 진행한 교양 프로그램 '백가강단'의 강의를 엮은 것이다.

 

책은 스물 일곱의 나이에 유비의 핵심 측근으로 발탁되어 파산 직전의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를 설파하며 패왕의 위치에까지 오르게 한 제갈량의 지략과 처세술, 철저한 현실분석과 뛰어난 용인술 등을 바탕으로 현대 기업과 조직내에서 직장인이 취해야 할 자세를 설명하고 있다.  '삼고초려'를 연출함으로써 유비의 마음을 사고, 담력과 냉정한 판단으로 오로를 평정함으로써 후주 유선에게 위기시에 취해야 할 리더의 자세를 선보였던 제갈량의 관리 능력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책에서 저자는 총 9장에 걸쳐 상사로부터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는 방법과 자신의 약점을 보이지 않고 상대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하는 방법, 인재를 기르고 조직을 관리하는 방법, 위기 대처 능력과 세상을 보는 안목 등 조직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다양한 처세술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제갈량은 범인이 아니라 신이었고, 완전무결한 우상이었다.  이런 지위를 흔들 방법은 없다.  그래서 나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를 서술했고, 개인의 감정적 성향을 줄이는 대신 대중의 심미적 정취와 수용 심리를 존중했다.  논쟁이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최대한 냉정하게 처리했다."  (P.7)

 

저자는 역사속의 인물 제갈량을 현대에 되살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 듯하다.  그러나 역사속의 인물 제갈량을 현대에 되살릴 방법도, 그의 생각과 방법론을 생생한 음성으로 들을 수 있는 방법도 존재하지 않기에 이 책은 분명 현대인으로 살아가는 저자 자신이 또 다른 현대인에게 전하는 메시지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저자 자신이 분석한 제갈량의 태도와 상황 대처술도 이 책을 읽는 다양한 독자층을 생각할 때 논란의 여지는 분명히 존재하리라고 본다.  그럼에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불세출의 천재 지략가를 통하여 단 하나의 깨달음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가히 족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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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지난 해에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이 세배를 오겠다는 연락이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다음으로 미뤄왔었다.

어제는 오후부터 함박눈이 펑펑 내렸고, 퇴근길의 교통체증을 염려한 회사에서는 서둘러 퇴근을 종용했다.  딱히 만나야 할 사람도 없고, 특별한 스케줄도 없었던 나는 생색이라도 낼 겸 겸사겸사 아이들에게 만나자는 연락을 했다.  마치 바쁘지만 아이들을 위해 선심이라도 쓰는듯.

 

뚜벅이로 출퇴근을 하는 나는 보란 듯이 우산을 쓰고 눈 내리는 거리로 나섰다.

버스 승강장에는 띄엄띄엄 오는 버스를 서로 먼저 타겠다고 악다구니를 쓰는 사람들의 사이사이로 직장 동료들의 얼굴도 눈에 띄었다.  거리도 멀지 않은데 기필코 만원 버스를 타고야 말겠다며 밀치고 올라서는 그들의 모습이 딱하게만 보였다.  인도에 쌓인 눈은 벌써 발목을 덮을 정도로 수북하다.  아이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에 이르자 벌써 도착한 아이들은 눈뭉치를 들고 서로를 쫓으며 눈싸움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수도권에서 벗어나 지방에 산다는 것은 오직 제 살갗으로 계절을 체감하는 천혜의 혜택을 오롯이 누리는 일이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그 즐거움을 어찌 말로 다 하랴.  한 아이를 부르자 똘망한 눈들이 약속이나 한 듯 내게로 쏠렸다.  그렇게 잠시의 침묵이 흘렀고, 손에 들었던 눈뭉치는 기다렸다는 듯 내게로 쏟아졌다.  정신없이 눈세례를 받은 나도 바닥의 눈을 그러모아 아이들을 향해 던졌다.  편을 가르고 눈싸움을 한 것도 아닌데 아이들과 어울려 깔깔대며 한참을 뛰어다녔다.  다 젖은 외투 위로 뿌옇게 김이 서렸다.  오슬한 한기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배고프다는 아이들을 이끌고 가까운 분식집으로 향했다.

시간은 벌써 9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나이 어린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내 나이를 잊는 못된(?) 버릇이 있다.  내 눈치를 살피는 아이들에게 먹고 싶은 것을 시키라며 그들에게 주문권 일체를 넘겼다.  옥신각신 말씨름이 이어진 것도 잠시, 떡볶이며 김밥, 쫄면 등 갖가지 음식들이 상을 가득 메웠다.  올해 대학을 진학하는 아이들과 취직을 준비하는 아이들.  가슴속에 쌓인 고민을 음식으로 밀어내려는 듯 아이들은 게걸스레 먹었다. 

 

아이들과 헤어져 숙소로 향하는 길.

여전히 눈은 소리없이 내리고 안상한 가지 위로 눈꽃이 소복하다.  나는 잘 살고 있노라고, 부러울 것 없이 정말 잘 살고 있노라고 눈 내리는 밤하늘을 향해 외치고 싶었다.

코끝 싸한 추위가 더할수록 삶의 투명성은 더욱 밝게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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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을 보내주세요
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지적 유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예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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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무신론이 말하는 신의 부재가 아니라 매우 구체적 존재인 악마에 대립되어 있다.  또한 존재는 비(非)존재가 아니라 실제의 체험이 나타내는 무(無)에 대립되어 있고, 우정은 무관심이 아니라 사랑에 대립되어 있다.  나는 이러한 양면적인 방법이 매우 풍요로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이 책 전체가 이런 방법으로 쓰여졌다고 말할 수 있다."  (P.9)

 

현존하는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자 위대한 작가로 추앙되는 미셸 투르니에의 신작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은 전통철학에 익숙한 현대인의 사고에 물방울처럼 신선한 느낌을 전해준다.  위에서 인용한 작가의 서론은 현대 철학의 중심 축을 형성하고 있는 "구조주의" 개념을 무겁고 딱딱하고, 때로는 근엄하기까지 한 철학적 이론에서 한 발 물러나, 철학가의 입장이 아닌 일반독자의 수준에서 이해를 돕고자 하는 작가의 배려일지도 모른다.  이런 발상은 그가 철학을 전공하고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낙방한 뒤 작가의 길로 방향을 바꾸었다는 그의 이력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신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현대사회를 조명하고 해석하는 그의 작품세계를 볼 때 문학을 통하여 철학적 사유에 접근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여전히 철학에서 멀어지지 않았음을 입증한다고 하겠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소르본느 대학에서 동문 수학한 질 들뢰즈나 미셸 푸코는 현대 구조주의 철학자로 명성이 높았던 사람들이기에 작가의 사상이나 사유의 체계를 그들과 구별지어 생각하기는 어렵다.  나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연구했던 실존주의나 전통철학과는 달리 구조주의에서는 명증하게 알 수 없는 '나'라는 존재를 포기한다.  오히려 '나 자신은 타인이다'라는 말에서 보여지듯 나는 말하여지는 존재, 생각되어지는 존재에 불과하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나라는 존재는 삶의 외부적 요소에 의해 형성되고 만들어진 개체이다.  무엇보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싼 실제적 대상이나 개념을 자세히 관찰하고 무심코 흘려보낸 세세한 것들을 꼼꼼히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 사랑과 우정, 돈 후안과 카사노바, 웃음과 눈물, 어린이와 사춘기 소년, 내혼과 외혼, 건강과 병, 황소와 말, 고양이와 개 등 서로 대립되면서도 한편으론 유사성을 갖고 있는 실제적 대상을 통하여 삶 자체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중요 요소들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삶에 대한 사유를 한 차원 더 높여보고자 하는 노작가의 지혜가 돋보인다.

 

"이 116개의 생각들을 옥타브 아멜랭의 방법에 따라 변증법적으로 종합해야 할까, 아니면 잡다하지만 자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유의 자료로 그냥 내버려두어야 할까?  이 책에서는 생각들을 제시하는 순서 자체가 의미를 드러내는 선택이다.  따라서 나는 가장 특수한 것으로부터 출발해서 가장 보편적인 것으로 옮겨가기로 했다.  고양이와 말에서 출발해 신과 존재에 이르는 순서를 택한 것이다."  (P.10)

 

작가는 이 책에서 삶을 둘러싼 인식론적 개념을 어떤 범주와 이론적 해설이 아닌 사유의 방법을 제시하고 반대되는 대상을 설정함으로써 우리의 사유를 확장하고 그 틀을 형성함으로써 전체적인 삶의 의미를 통합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노력했다는 흔적이 엿보인다.  오류와 거짓된 사실 인식이 우리의 철학적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동안 이 모든 것들을 바로잡고자 하는 어떠한 노력도, 어쩌면 그런 시도도 하지 않고 사는지도 모른다.

 

"존재와 무를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한한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공의 이미지이다.  예를 들면, 별들이 떠 있는 공간을 떠다니는 지구 같은 이미지 말이다.  실제로 소크라테스 이전의 어떤 텍스트들은 존재를 이러한 모습으로 제시하고 있다."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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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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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결집체라고 늘 생각해 왔다.  다만 우리가 각각의 사건에 대한 연결고리와 패턴을 알지 못하기에 우연처럼 보일 뿐이라고.  어쩌면 자연계의 순환보다 더 엄정한 법칙이 삶의 내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다.  시대와 공간의 한 조각으로서 개개인의 역사도 이 엄정한 법칙에 의해 작동되고, 좋든 싫든 운명의 테두리에서 개인의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는(것과 같은), 신의 의지를 자신의 의지라고 믿는 완전한 허구의 세계에서 진행되어 왔고, 또 그렇게 진행될 것이라는 약간의 확신을 갖게 된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마치 패배적 숙명론자, 또는 신의 섭리만 맹신하고 자신의 운명까지도 신에게 맡기는 꼭두각시쯤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상을 어느 정도 살고 나면 순서가 뒤바뀌어 뒤죽박죽이 된 자신의 삶, 그 지난 시절의 퍼즐조각을 원인과 결과에 따라 제법 순서에 맞게 꿰맞출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거슬러 추적하다 보면 (만일 존재한다면)전생(前生)의 퍼즐조각도 제대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상상에 빠지곤 한다.  나의 이런 생각을 토마스 하디가 들었다면 무덤에서도 벌떡 일어날테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잡문집>을 읽었다.  단행본으로 발표하지 않았던 에세이, 여러 책들의 서문.해설, 그리고 질문과 그 대답, 각종 인사말, 짧은 픽션에 이르기까지의 잡다한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니 신작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어폐가 있겠다.  소설가란 거짓의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포장하거나 미화하여 글로 쓰는 사람들이니 죄다 타고난 거짓말쟁이라고 밖에 달리 말할 수 없지만, 작가가 이 책에서 밝혔던 자신의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나의 생각과 일정 부분 서로 통한다고 보아야 하겠다.  물론 작가는 절대로 인정하기 싫겠지만 말이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지만 나는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내가 소설을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대학교 때 결혼해서 줄곧 일을 하며 생활에 쫓기다보니 글씨를 쓰는 일조차 거의 없었습니다.  빚을 내어 작은 가게를 하며 생활을 꾸려나갔습니다.  별다른 야심도 없었고 즐거움이라면 매일같이 음악을 듣고 짬짬이 좋아하는 책을 읽는 것뿐이었습니다.  나의 아내와 고양이는 느긋하고 조용하게 살아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소설을 쓰기로 했습니다.  어쩌다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어쨌든 써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문구점으로 가서 만년필과 원고지를 사왔습니다(그때까지 만년필도 없었습니다).  밤늦게 일을 끝내고 혼자 주방 식탁에 앉아 소설(같은 것)을 썼습니다."   (P.446)

 

대체로 산문을 위주로 쓰는 사람들은 본질(또는 핵심)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부풀려서 독자의 의식을 현혹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세상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풍경화를 위주로 그리는 화가는 번번이 그 본질을 놓친다.  주변의 잡다한 것에 현혹되어 핵심을 향하여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작가의 의무는 시를 쓰는 데 있다고 본다.  문학에 있어 군더더기를 모두 제거하고 핵심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시작(詩作)이다.  한 작가의 시를 읽지 않고는 그 작가의 됨됨이나 가치관, 지적 깊이를 평하기 어렵다고 나는 믿는다.  그것이 비록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어차피 세상에 자신을 알몸으로 내보이고자 작정한 글쟁이라면 시를 써야 한다.

 

하루키는 이제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가가 되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번에 새로 나온 <잡문집>에서 그의 시를 단 한 편도 볼 수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쉽다.  수사(修辭)나 장문의 글에 물린 독자를 위해서라도 그리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평생을 풍경화만 그리던 화가가 어느 날 비구상의 작품을 갤러리에 걸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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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은 지 일주일이나 지났건만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언제나 새해 인사와 함께 덕담을 듣게 된다.  그럴 때면 자주 보던 사람들도 만난 지 한참이나 지난 듯한 서먹함과 반가움, 그리고 그 평범한 말 한마디에서 전해지는 삶의 무늬가 짠하게 다가온다.

 

요즘은 흔한 인사 한마디에도 예전처럼 시큰둥하게 지나치지 못한다.  '잘 지내고 있어?', '안녕하시지요?' 등 매일매일의 그 평범한 인사말이 왜 그토록 가슴 한켠을 부여잡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젊어서는 나 또한 수없이 되내이고 또 일상처럼 답하고 흘려보냈을 그 말이.  나이가 들면 남자에게도 여성 호르몬의 분비가 많아진다는 생물학적 변화 때문이라고 답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수도 없이 듣는 그 인사말에 '아, 그동안 못본 사이에 저들도 나와 같이 힘겨운 삶을 살았겠구나.'하는, 같은 인간으로서 겪어야 하는 피할 수 없는 고된 일상이 가슴 뭉클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작금의 경제 현실 때문도 아니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힘들다 느껴서도 아니다.  젊은 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같은 인간으로서의 동질감.  '그들도 나와 다르지 않았구나.'하는 안도감.  '조금은 쉬어도 될텐데...'하는 측은함.  이런저런 감정들이 섞여 시도 때도 없이 망연자실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이런 감정의 변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나도 나이를 먹나 보다.  그런 감정이 들 때마다 나는 한 인간으로서 같은 인간을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자각한다.  잘난 것도, 다를 것도 없는 원시의 인간 개체로 되돌아 간 느낌.  평범하기 그지없는 한 사람은 그와 다르지 않은 다른 인간 군상을 보듬고 사랑하여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 앞에 나는 무릎을 꿇는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삶을 공감할 때, 알 수 없는 슬픔과 나 스스로도 그 인간군(人間群)에 속한 일원임을 분명하게 느끼곤 한다.  그 평범한 인사말로 인해.  "안녕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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