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가까운 공원을 잠시 거닐었습니다.

말매미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올 들어 처음 듣는 매미 소리.

가슴이 설렙니다.  언제나 처럼 '처음'이라는 말은

콩닥콩닥 가슴을 뛰게 합니다.

바야흐로 성하(盛夏).

 

오는 길에 소나기를 만났습니다.

황순원의 '소나기'에 등장하는 소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녀가 양산을 받듯 해 보인

마타리꽃도 없는 거리에서

다리엔 한 근의 힘이 붙습니다.

 

나는 이 힘으로 나른한 오후의 권태를 이기고

또 하루를 살아낼 겁니다.

 

유리창엔 오후의 나른함이

알갱이로 부숴지고 있습니다.

노스탤지어의 소녀도 없는 빈 하늘엔

매미 소리 가득하고

어제 못 다 읽은 책을 다시 펼쳐도

번번이 헛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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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선지 같은 마음에 8할의 어둠이 내려 앉는다.

시간의 질료가 가장 부드러워지는 시간.

이따금 해야 할 일이 남은 듯한 강박이

모래알처럼 서걱거리며 도드라진다.

 

어둠이 깊을수록 제 마음에 드리워진 상념이

제멋대로 뿔뿔이 흩어지곤 한다.

달음박질치던 상념이 과거의 한 순간에

붙박인듯 자리를 잡고 움지이지 않는다.

내 안에 침잠된 시간이 선물하는 고요.

살다보면 그 고요의 푸른 칼날에

가슴이 베일 때가 있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과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강해>를 번갈아 가며 읽었다.

가끔, 각자가 따로인 책들이

상념의 도움을 받아 한몸처럼 잘 어울리는 경우가 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빈 공간을 뚫고

멧비둘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저들처럼 한곳에 머물지 않으면

잊었던 자유가 품안 가득 몰려 오는 것일까?

 

차츰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쪽으로

한뼘쯤 기울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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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부자경제학 - 『사기』 화식열전 Wisdom Classic 4
신동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사실 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심도 없고, 부자가 될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마치 십수년간의 면벽수행을 거쳐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또는 큰 실패를 겪고 낙담하여 자포자기적 심정에 빠졌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둘 다 아니다.  나는 그저 한 가정의 평범한 가장일 뿐이다.  그럼에도 서점에 들러 책을 구경할 때마다 자기계발 코너에서 자주 보이는 '부자'라는 단어가 들어간 제목의 책에 습관처럼 시선이 닿곤 한다.  이것은 일종의 의도되지 않은 현상으로서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습득된 세뇌라고 여겨진다.

 

게다가 나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였다.  지금 와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학 4년 내내 나는 수학 문제만 풀은 듯한 느낌인데, 이러한 배경에는 어떤 원리나 철학보다는 수학적 계산을 통하여 보여지는 명쾌함을 추구하는 서양 경제학자들의 선호가 경제 이론이나 모델의 주류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대학을 졸업한 지 꽤나 긴 시간이 지났고, 그 세월에 비례하여 수많은 이론과 모델들이 쏟아졌지만 세계 경제는 정체되었거나 오히려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것을 보면 서구 중심의 자본주의 이론은 뭔가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고 보여진다.  

 

이와 같은 세계경제의 흐름에도 오직 중국만은 그 궤를 달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저자는 지금껏 배워온 서구의 경제이론이 아닌 사기열전의 69번째 편인 '화식열전'에서 그 답을 찾고자 시도하고 있다.  어떤 분야의 학문이건 그 원류가 존재하고, 그것에서 분파되고 세분화 된 각종 이론이 존재할 뿐, 혁명적 원리가 새롭게 등장하여 기존의 본원적 이론을 뒤집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관점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중국 경제의 근원적 이론을 살펴보고 이것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 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하겠다.  더구나 초강대국 미국의 위상이 점차 낮아지는 반면 세계경제의 빅2로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는 인접국 중국은 우리로서도 결코 도외시 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2012년 연초에 새해 계획으로 '인문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해 보자'는 결심을 했었다.  다들 그렇겠지만 1월 한 달은 그럭저럭 지켜지는 듯했다.  내가 가장 먼저 선택한 책은 서양의 고전인 '일리아스', '오딧세이아'와 함께 동양의 고전인 사마천의 '사기'였다. 나는 서해문집이 출판한 사기 1권 <패자의 탄생>, 제2권 < 난세의 영웅들>, 제3권 <진시황의 천하>를 1월 한 달에 읽고는 지쳐 나가떨어졌다.  [사기] 130권([열전], [본기], [세가], [서], [표])에 흩어져 있는 역사 사건과 인물들을 시대 순으로 재구성하여 독자가 읽기 쉽도록 하였다고는 하나 그렇게 만만히 볼 책은 분명 아니었다.  한동안 '사기'는 거들떠도 보지 않다가 지난 달에 <사기열전>을 읽었다.  그 중 내가 재미있게 읽은 내용은 '자객열전'이었는데 따지고 보면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도 '부자'라는 단어와 '사기'라는 단어가 먼저 눈에 띄었기 때문이지 '화식열전'의 내용이 궁금했던 것은 아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비롯된 서구의 경제학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온 반면 동양의 이론이나 사상은 그동안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것도 사실이다.  중국의 비약적인 발전과 함께 이제서야 조금씩 주목을 받는 것 또한 뒤늦은 감은 있지만 서양의 제 이론에 비해 동양의 그것이 결코 뒤쳐지지 않음을 독자들은 알게 될 것이다.  책으로 들어가 보면 2000년 전에 씌어진 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지금의 경제, 경영서의 논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최근에 이르러 제자백가의 반열에 오른 상가(商家)의 핵심 사상은 부민부국을 치국평천하의 요체로 삼는 데 있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법론에 있어 중농(重農)이 아닌 중상(重商)을 택한다.  상가의 이론은 관중에게서 비롯되었지만, 공자의 제자로서 상가의 이론을 몸소 실천하여 당대 최고의 부자로 명성을 떨쳤던 자공에 이르러 세상에 드러났고, 이를 높게 평가한 사마천은 공자의 제자를 다룬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가운데 절반을 자공의 사적으로 채웠다.

 

그러나 '가족을 먹이지 못하면 거짓 군자'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당시로는 파격적인 일면이 있던 상가의 흐름은 유학을 유일한 관학(官學)으로 삼았던 한대(漢代)의 정책 탓으로 빛이 바랬다. 유학을 유일한 관학(官學)으로 못박는 한대(漢代)의 정책 탓에 사마천의 업적은 이내 빛이 바랬다.  이후의 역대 왕조도 중상주의 정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중국의 실생활에는 여러 왕조의 흥망에도 불구하고 중국 10대 상방과 함께 도도히 이어지고 있었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好利知性)이라는 상가의 논리는 유교가 지배했던 동양의 여러 나라에 있어 각광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도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야 몇몇 실학자들이 중상주의를 주장한 바는 있지만 그렇다고 중상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날 명분과 허세를 중시했던 유교의 논리는 먹고 사는 문제를 중시하는 상가의 현실적 이론에 의해 반박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세인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10배 부유하면 헐뜯고, 100배가 되면 두려워하고, 1천 배가 되면 그의 일을 해주고, 1만 배가 되면 그의 하인 노릇을 한다.  이것이 사물의 이치이다."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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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학교에서 오늘부로 1학기 기말고사가 모두 끝난다.

이제부터 여름방학 전까지 학생들은

실질적인 방학 전 모드로 진입하는 것이다.

시험기간 내내 만나지 못했던

이성친구와의 만남도 기다려질 테고

부족한 잠도 보충할 테고

영화나 연극을 보며 억눌렸던 긴장을

해소하는 학생도 있을 터이다.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방학에도

보충수업이다, 자습이다 하면서

학교에 등교하는 날이 더 많은데도

아이들은 여전히

방학을 기다리는 눈치다.

 

아이들과 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지나고 나니 아쉬운 점이 더 많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

내 말이라면 군소리 없이 따르는

학생이 있다.  그래서일까

나도 그 학생에게 만큼은

아무리 바쁜 날에도 도움이 될만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비 내리는 오늘, 나 자신을

가만가만 되돌아 보았다.

얼핏 들었던 생각은, 내가 그 학생에게

무척이나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나브로 나는 그 학생을 아낀다는

명목하에 위에서 군림하려고 하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그 학생은 나의 말에 단 한 번도 토를 달거나

의심하지 않았다.  무조건적인 추종.

사람의 관계에서 그것처럼 깨어지기 쉬운 관계도 없다.

 

강압적으로든, 스스로 원해서든 누군가의 말에

일방적으로 따르고 추종하는 관계.

우월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관계에 중독되기 마련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이 관계가 깨어졌을 때

멘토의 위치에 있던 사람은 '내가 너한테 쏟은 정성이 얼만데'

하는 심정으로 섭섭해 할 테고,

멘티의 입장에 있던 사람은 자신의 작은 실수조차

멘토의 탓으로 돌릴 가능성이 크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판단과 의지 대로 한 행위도

스스로 책임지려 하지 않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의 조언에 의지했던 사람은 오죽할까.

 

요즘은 부모와 자식 간에도

이런 관계가 지속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한두 명의 아이를 키우는 요즘의 부모들은

시간적 여유가 많은 탓이기도 하려니와

나 아닌 타인을 수족처럼 부릴 수 있다는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재미를 붙이고 서서히 중독되어 가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실수할 수 있는 권리'를 찾아주고

실수를 통하여 깨달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은

어른들의 인내가 없으면 어렵다.  그러나

그렇게 할 때에만 비로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평등한 관계가 조성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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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내 욕망과 실재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임종 직전의 인간만이 욕망과 실재가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사는 내내 욕망과 실재의 틈이 살짝 금이 간 정도의 간극으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잔 브라흐마는 쉬운 언어로 그 길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를 읽고 내 영혼의 무게가 몇 그램쯤 가벼워졌다고 느꼈었다.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책을 읽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얼핏 떠오르는 작가는 엘리자베스 길버트나 빌 브라이슨, 또는 전시륜이나 성석제 등이 있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작가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유쾌한 웃음 뒤에 강렬한 깨달음을 안겨준 좋은 작가였다.  어쩌면 이 책도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 버금가는 좋은 책일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이병률의 산문집 <끌림>을 처음 읽었을 때, 그때는 이미 좋은 책이니 한 번 읽어보라는 권유와 입소문이 몇 바퀴쯤 맴을 돌았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베스트셀러가 다 거기서 거기지,하는 지적 오만이 가득해서 한사코 그 책을 거부했다.  어느 날 포켓북을 연상시키는 앙증맞은 그 책을 손에 잡았을 때, 작가의 글이 내 마음에 아로새긴 선명한 무늬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부터 나는 이병률의 새 글을 무던히도 기다렸었다. 

 

 

 

 

 

 

 

 

 

유명 작가의 책을 선택할 때는 항상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당연히'라는 기대감이 과도하게 적재되기 때문에 감탄보다는 실망하는 횟수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선험적 각성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하는 미련에 나는 번번이 백기를 들곤 한다.  그리고 어느새 눈에 익은 유명 작가의 신간을 클릭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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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2012-07-06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꼼쥐 2012-07-06 15:00   좋아요 0 | URL
파트장 하시려면 힘들지 않으세요? 암튼 라일락님께 감사를 드리고, 이렇게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라일락 2012-08-02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쥐님 감사합니다.

8월 에세이 주목신간을 8월 5일까지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