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이징 디스커버리 1 : 덴마크 - 교양만화로 배우는 글로벌 인생 학교 어메이징 디스커버리 1
김재훈 지음, 에밀 라우센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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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게의 나라 덴마크의 행복의 비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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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메이징 디스커버리 3 : 독일 - 교양만화로 배우는 글로벌 인생 학교 어메이징 디스커버리 3
김재훈 지음, 조성복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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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재미있게 읽고 또 읽었던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가 생각나는 교양만화다. 그 책이 좀 더 객관적 사실에 치중했다면 이 책은 작가의 주관적 문제의식이 좀 더 반영된 느낌이다. 독일의 역사는 물론 사회, 문화 전반을 아우르면서 특히 통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책이었다. 다른 나라 편도 읽어봐야겠다. 어쨌든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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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

 

정확히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초등학교 5학년 여름쯤 이었던 것 같다. 나는 교실에서 친구들과 당시 인기 영화 '백 투 더 퓨처'에 대해 떠들어 대고 있었다. 아마 영화 속 타임머신에 대해 앞으로 기술이 발전하면 가능하네 마네 우격다짐식 토론을 벌이고 있었으리라. 그런데 멀리서 C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잠깐 머뭇거리다 입을 떼는 게 아닌가.

"저기... 근데 말이야..."

우리는 놀랐다. 돌이켜보면 학창시절 한 반에 한두 명쯤은 꼭 그런 애들이 있었다. 같은 반 친구인지도 잘 모를 듯한 존재감을 가진, 친구들과 말 한마디 나누는 모습조차 보기 힘든 아이. 딱 그런 친구였다. 짙은 눈썹과 덥수룩한 머리에 거뭇한 코밑수염이 보이기 시작하는 그 애는 또래 아이들보다 어른스러워 보였다.

"어? 무슨 할 얘기 있어?"

신기한듯 한 친구가 말을 받았다.

"시... 시간 여행 있잖아? 음... 그게 꿈같은 얘기가 아니고 실제로 가능할 수도 있어..."

몇몇 아이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쳐다봤다. 이 친구가 먼저 말을 꺼내는 것도 처음 보는데 그 주제가 타임머신이라니.

"뭐?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한 아이가 소리쳤다.

"내가 설명할 수 있어. 어떻게 가능한지"

어느덧 쭈뼛거리는 말투도 사라졌다. 작고 나지막하지만, 말끝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낯선 호기심에 내가 물었다.

"어떻게?"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는 건 빛 때문이거든. 태양 빛이 사물에 부딪히면 일부는 흡수되고 일부는 반사돼서 튕겨 나온단 말이야 알지?"

"그냥 눈으로 보는 거 아니었어?"

다른 아이가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그냥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빛을 통해서 보는 거야 빛"

"응 그래서?"

그가 내 대답에 반가운 듯 아예 이쪽으로 고개를 돌려 말을 이었다.

"반사돼서 튕겨 나온 빛이 우리 눈 안에 시신경을 자극해서 물체를 인식할 수 있는 거란 말이야. 근데 눈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린 빛은 어떻게 될까? 물체의 정보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그 빛 말이야"

"빛이 물체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벌써부터 머리가 저릿하다. 확실히 이 친구는 우리와는 다르다. 쓰는 말이며 생각하는 수준까지.

"그래 정보. 색깔이며 형태며 질감까지. 그런 정보를 담고 있으니까 우리 뇌가 그걸 분석해서 세계를 재구성하는 거라고. 본다는 게 그렇게 작동되는 거야. 그렇다면 과거의 정보를 담은 빛을 우리가 볼 수만 있다면, 따라가서 관찰할 수만 있다면 과거를 볼 수 있는 거라고!"

어느새 그의 목소리에는 잔뜩 힘까지 실렸다.

"빛을 보면 과거의 순간을 볼 수 있다고? 아니 근데 그 빛은 어디 있는 건데?"

"아까 일부는 우리 눈에 들어온다고 했잖아. 나머지는 우리를 지나쳐 일부는 계속 직진해서 지구 바깥 우주 공간으로 퍼져 나갔을 거고, 나머지는 산란돼서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거지. 이 세계를 가득."

"뭐? 여기 과거의 빛이 있다고? 그게 공간을 채우고 있다고? 벌써 다 없어진 거 아니야?"

"광자는 질량이 없어. 그래서 공간을 점유하지도 않아.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사라질 수 있겠어? 단지 우리가 생각하는 공간 사이에 포개져서 중첩되어 있는 거야. 계속 그 자리에."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그걸 어떻게 볼 수 있는데?"

"따라가야지... 빛의 속도로."

"빛의 속도로 따라간다고? 백 투 더 퓨처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는 게 아니고?"

"열역학 법칙에 의하면 과거로 되돌아가는 건 불가능해. 단지 볼 수만 있지"

"열 뭐라고?"

"그냥 그런 게 있어."

"아니 근데 우리가 어떻게 빛의 속도를 따라가서 빛을 본다는 거야?"

"물질은 불가능해. 하지만 의식이라면..."

"의식?"

"응. 어쩌면 그게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인지도 몰라"

"야! 수업 종 쳤어~ 선생님 오셨다!"

누군가 이렇게 소리치는 걸 듣고야 정신을 차렸다. 이게 다 무슨 소린가? 내가 꿈을 꾼 건가? 저 녀석이 살짝 미친 건가? 창문 너머로 쏟아지는 여름의 뜨거운 태양 빛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벌써 30년도 더 된 일이다. 세월의 더께 속에 모든 기억과 상상들은 뒤섞여 버렸고 그것을 표현해 줄 언어조차 믿음직하지 못하다. 한낮의 짧은 꿈을 꾼 듯 그날의 대화는 날것처럼 선명하다가도 입안의 솜사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버리기도 한다. 아주 가끔 나조차도 낯선 느낌이 드는 어느 여름날 창살 넘어들어오는 강렬한 태양 빛이 느껴질 때면 그때가 생각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여전히 체념과 후회가 익숙하지 않은 일상에서 내가 디딘 이곳이 불안하기 그지없을 때, 과거의 빛이 여기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상하리만치 묘한 안도감을 준다. 아직도 여기 존재할까?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내가 빛의 속도로 갈 수만 있다면, 이 공간에 흩어져 포개져 있는 그 빛을 정면으로 볼 수만 있다면 과거의 나를 볼 수 있을까? 늘 나른했던 일상의 희미함과 초등학교 시절 그와 나눴던 그때 그 대화까지 말이다.

 

-이 글은 김초엽의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고 제목에 영감을 받아 쓴 픽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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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굴뚝청소부
이진경 지음 / 그린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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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그 유명한 철학 입문서의 고전(?)이다. 사실 입문서라고 하기에는 좀 뭣하긴 한데, 왜냐하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얄팍한 입문서에 비할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철학 초심자가 바로 읽기에는 좀 어려울 수 있으니 쉬운 책을 몇 권 정도 읽고 보면 더 좋을 듯하다. 대개의 입문서가 여러 철학자나 사상들을 시대순으로 나열하고 소개하는 것에 그친다면 이 책은 뚜렷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근대와 근대 이후의 철학을 요리조리 뜯어보고 의미를 부여한다.

근대철학의 문제 설정은 이원론을 배경으로 주체와 객체(진리)를 분리하고 어떻게 하면 그 둘을 일치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과정이었다. 이를 위해 신을 끌어들이기도 하고 진리를 주체 속에서 찾거나 절대정신의 개념을 고안하기도 했다. 이런 근대철학을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 등은 주체의 확실성이나 통일성을 해체하거나 진리에 대한 개념을 해체하면서 근대적 문제 설정의 경계 너머로 새로운 철학적 흐름을 만들어 냈다.

그냥 넘어가기 좀 아쉬우니까 살짝 예를 들어 본다면, 지금 내 눈앞에 '사과'라는 진리가 있다고 가정하자. 나는 여러 가지 감각이나 이성을 활용해 이 사과를 인식한다. 그런데 우리가 사과라는 진리를 바르게 인식하려면 내가 인식하는 사과(주체)와 내 눈앞에 있는 사과(객체)가 같다는 것이 보장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주체와 객체가 일치해야 진리를 바르게 인식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이게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우리의 감각은 항상 왜곡과 과장에 노출되어 있으며 개개인의 사고나 판단 또한 같지 않다. 눈앞에 실제로 사과가 있지만 내가 수박이나 자두처럼 다른 것으로 인식할 수도 있고, 내가 인식하는 사과와 타인이 인식하는 사과가 다를 수도 있다. 나라는 주체에 확실성이나 통일성이 없을 수도 있고 심지어 사과라는 객체(진리)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근대 철학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주체와 객체를 일치시키려고 노력했다.

칸트가 시도했던 방법을 또 살짝만 얘기해보자. 일단 칸트는 사과라는 실재는 우리가 알 수 없다고 했다(물자체). 단지 사과의 형상만이 이 앞에 놓여 있을 뿐이다. 그럼 이 형상인 사과를 어떻게 바로 인식할 수 있을까? 아니 바로 인식했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칸트는 그 답을 주체의 인식틀, 인식 방식에서 찾았다. 인간의 인식틀이 동일하다고 보면 모든 인간은 눈앞에 놓인 사과를 동일하게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 각자가 카메라라고 가정해보자. 물론 조금씩은 모양이나 성능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렌즈, 필름, 조리개 등 카메라의 기본 구조는 같을 것이다. 이런 카메라가 앞의 사과를 찍는다고 하면 다 똑같은 사과가 나올 것이다. 어떤 카메라는 사과를 찍었는데 배가 나오거나 다른 것이 나오거나 아예 나오지 않는다거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본 구조가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카메라끼리는' 이 찍힌 사과를 객체(진리)라고 확신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칸트는 이런 식으로 주체와 객체의 일치 문제를 해결했다.

지금까지 이 책을 서너 번쯤 읽은 거 같은데 볼 때마다 많은 영감을 준다. 내가 가진 파편화된 철학적 담론과 지식이 인식론적 배치를 통해 그 의미가 분명해지고, 문제 설정이라는 도구는 어떤 철학자나 사상의 경계를 파악하고 그 경계의 의미를 읽어내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책 중간마다 삽입된 그림과 해설은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다. 본문의 개념 설명과 왠지 모를 괴리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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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비거니즘 만화 - 어느 비건의 채식 & 동물권 이야기
보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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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지하게 동물복지에 대해 고민한 건 피터 싱어의 <실천윤리학>과 <동물해방>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냉철하면서 날카로운 그의 글은 마치 죽비를 든 스님처럼 날 얼마나 내리치던지. 정말 아팠다.(-_-;) 감정적 기름기를 쫙 뺀 그의 논리는 단순했다. 육식은 엄연한 종 차별주의적 행동이고 제러미 벤담이 말했듯이 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것. 이 이상 어떤 논리가 필요하겠는가?

이 책은 싱어 형님보다는 훨씬 온화하고 부드러운 태도로 비거니즘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만화라서 읽기도 쉽고 재미있다.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고 참고 자료도 충실하다.

인식과 실천의 공극은 작을수록 좋다지만 채식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 저자가 말했듯 각자의 철학과 삶에 방식에 맞게 천천히 비건이 될 수 있다면 참 좋지 않을까? 나에게도 너에게도 우리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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