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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
샬럿 버터필드 지음, 공민희 옮김 / 라곰 / 2025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점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종교적인 이유가 있긴 하지만, 어떤 결과가 주어지든 그 말에 메일 것 같아서다. 물론 누구나 그렇지는 않지만, 좋은 말보다는 나쁜 말이 우리의 생각을 휘어잡을 확률이 높은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나 역시 주인공 넬의 마음이 공감되고 이해가 된다. 네 명의 친구가 함께 여행을 갔고, 그곳에서 만난 맨디라는 점쟁이는 이들에게 죽을 날짜를 이야기해 준다. 넬의 남자친구인 그렉은 백 살 넘게, 헤일리는 40살까지 살 수 있단다. 넬은 38세 그리고 소피는 다음 달 17일에 죽는단다. 이 말을 듣고 기분 좋게 웃은 사람은 그렉뿐이다. 메이고 싶지 않았지만, 넬이 이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소피가 정말 1월 17일에 죽었기 때문이다. 물론 소피는 그날 절벽으로 다이빙을 하러 갔다. 친구들은 다 소피를 말렸지만, 소피는 그 말이 틀리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그리고 소피는 돌아오지 못했다. 넬의 기억 속에 2024년 12월 16일은 각인되어 있었다. 이 말을 듣기 전에 넬은 꼭 그렉과 결혼을 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이야기를 들은 후 넬과 그렉은 헤어졌다. 원인은 넬에게 있었다. 자신이 죽은 후, 그렉이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그렉과 헤어진 넬은 학교도 중퇴한 채 38세를 향해 삶을 살아간다. 38세에 죽을 거기 때문에(?) 옷장도 사지 않았고 필요한 물건들도 최소한으로 했으며 장기 계획이 필요한 일은 하지 않았다. 다양한 곳으로 여행을 떠났던 것도, 가족들과 자주 왕래하지 않은 것도 자신의 미래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예언의 날이 얼마 안 남은 어느 날, 넬은 자신의 물건들을 처분하기 시작한다. 침대를 사러 온 코미디언 톰에게 침대를 파는 이유를 털어놓게 된다. 그리고 둘은 잠자리를 한다. 며칠 안 남은 인생을 위해 버킷리스트를 쓴 넬은 그중 하나로 코미디쇼를 적는다. 그리고 그 공연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톰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십으로 떠벌리는 톰에게 상처를 받은 넬. 사실 톰은 넬의 이야기를 우스갯소리로 치부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그저 넬이 안쓰러웠고,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넬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상처받은 넬은 집 계약을 종료하고, 물건들을 다 정리하고, 핸드폰을 해지하고 기계를 팔고 sns를 삭제한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거나 기부한 넬은 자신의 마지막 날을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화려한 드레스를 빌리고, 멋진 호텔의 스위트룸을 예약한다. 드레스가 무척 불편하긴 했지만, 자신의 마지막을 발견한 사람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해 주길 바랐기에 꾹 참는다. 이제 얼마 안 남은 인생을 떠올리며 편지를 쓰는 넬. 엄마와 아빠, 언니 폴리, 오래된 연인이었던 그렉 그리고 한 번의 잠자리를 했던 톰. 그렇게 눈을 감았던 넬은 12월 17일 눈을 뜬다. 그것도 체크아웃 시간이 지났다고 알리는 청소 직원의 소리 때문에 깬 것이다. 분명 죽었어야 했지만(?) 살아남은 넬은 난감해진다. 수중에 돈도 없고, 옷은 빌린 드레스 한 벌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스위트룸 숙박비를 치러야 하지만 돈이 없는 넬은 몰래 호텔을 빠져나가려고 계단으로 가다가 두 사람과 마주친다. 근데, 그중 한 사람이 바로 그렉이었다. 이런 우연히 있을 수 있나! 그렉의 도움으로 호텔을 빠져나온 넬은 그렉의 집에서 며칠을 지내게 된다. 부유한 금융맨이 된 그렉과 빈털터리 신세의 넬은 다시 그렇게 마주한다. 넬이 그 말에 지금까지 메여있다는 사실에 기가 찬 그렉. 하지만 그렉 역시 그 말에 메여있었던 것 같다. 예상치 못한 삶을 살게 된 넬은 자신이 붙인 편지들이 배송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엄마와 아빠, 언니의 연락처를 모조리 지워버린 터라, 빨리 수습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언니는 편지를 보게 된다. 편지 속에 형부의 바람과 불륜에 대한 이야기까지 적어 보냈던 터라 언니는 또 다른 상처를 받게 된다.
사실 마지막을 떠올리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았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넬은 유한한 삶을 알았기에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으로 삶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넬이 다시 새로운 삶을 부여받았을 때, 넬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넬을 통해 그들의 삶이 조금씩 변화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늘 일에만 파묻혀서 살던 그렉도, 딸과 남편과의 생활만 떠올리며 살았던 언니 폴리도, 넬과 하루를 보냈던 톰도 새로운 삶을 살게 된 넬을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바람을 피우고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재정립하게 된 넬. 책을 읽으며 과연 넬의 삶이 불행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우리의 삶이 유한한 것은 맞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꽤 오랜 시간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 면에서 매일매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으로 삶을 채우는 넬이야말로 삶을 영양가 있게 산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