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수수께끼를 풀다 - 문화 상대주의로 세상을 바꾼 인류학의 모험가들
찰스 킹 지음, 문희경 옮김 / 교양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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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하고 새로 만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상들의 힘, 심장이 빠르게 뛴다. 두근거린다. 도덕적 책무와 정치적 신념의 격돌 대신, 사법논쟁들로 삶이 다 쪼그라든 것인가 싶은 내란 한국 사회의 현실이 긴박한 중에도 쓸쓸하다.

 

그 혁명은 철학과 종교, 인문과학의 중심에 있는 골치 아픈 질문들에서 시작됐다. 인간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구분은 무엇인가? 도덕은 보편적인가? 우리와 다른 신념, 다른 관습을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상시 모욕감과 버려진 존엄성과 수치심을 모르는 무지성주의의 현실에 병들어가는 시간이다. 안전한 도피처로 펼친 책의 사상가들은 폐만이 아니라 구겨진 뇌에도 호흡을 불어넣어준다. 읽기가 심호흡하는 치유과정 같았다.

 

이 책은 우리 시대 가장 큰 도덕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 그렇다고 정치나 윤리, 신학에 관한 책은 아니다. (...) 그보다는 과학과 과학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수입학문이 대부분인 한국의 제도적 교육 내용들은 여러 이유와 한계로 오독과 오해로 남기도 한다. 인간 사회에서 인류 구성원으로 살면서,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인 과학, 문화인류학을 제대로 배워본 적은 없었다.

 

문화는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궁극적 원천이다. (...) 다만 사회 세계에서 인간이 스스로 만든 현실만큼 근본적인 현실은 없다.”

 

속보와 단신과 잡담과 욕설과 뉴스와 진지한 헛소리들에 사로잡혀 사는 연말연시에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는데, 해독제와 같은 책을 만나, 인간이 가진 능력과 존엄성과 변화를 위한 지적 열기를 느낄 수 있어서 살 것 같았다.

 

보아스는 자신의 지적 작업을 단순한 과학이 아니라 어떤 정신의 상태로, 나아가 바람직한 삶을 위한 처방전으로 보게 됐다.”

 

전율이 느껴질 만큼 흥미로운 주제들을 유려한 문체로 전해주니 즐겁게 술술 읽을 수 있다. 일 년쯤 다른 생각, 다른 일은 작파하고 고요하고 깊이 있게 공부해보고 싶어서, 못하는 현실이 아쉽고 서글프기도 하다.

 

보아스 학파의 핵심 개념은 현명하게 살아가려면 타인의 삶을 공감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원래 그랬는데 나는 몰랐던 것인지, 점점 더 인류의 지성이 집약된 좋은 책들이 많아지는 것인지, 전공 서적들 못지않은 짜임새와 전달력으로 만날 수 있는 책들이 참 많다. 다 읽고 즐길 수 없는 짧은 수명이 안타까울 뿐이다.

 

다른 인간을 이해하는 과제를 사랑한 과학자이자 사상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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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처럼 - 2024 창비그림책상 수상작
포푸라기 지음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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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이 서로 부딪치지 않고 군무를 하는 것은 무척 신기해했지만, 30대까지도 새라는 종 자체를 무서워했다. 오래 전 산책할 때마다 나타나서 수다를 떨던 빨간 가슴 로빈이 평생 유일하게 반가운 새였다.



 

그러다 안전거리(?)에서 쳐다보는 것이 익숙해지고, 까마귀는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놀라거나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고, 지금은 새가 등장하는 그림책도 반갑다. 특히 이렇게 사랑스러운 책은 더욱.




 

가만히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런 시간을 가진지는 까마득하다. 그림책은 그럼 그림이 여러 개이고, 친절하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건네니, 오래 바라보기에 더 좋다. 덕분에 호흡이 들릴 만큼 고요하고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날지 못하는 인간이 새를 따라갈 방법으로 작가는 영민하게 함박눈이 내린 날을 불러왔고, 새들은 발자국을 남기며 걸었다. 색색의 새발자국은 모양과 방향으로 모든 순간을 증언하듯 이야기를 이어간다.



 

인간 친구 없이 혼자 노는 아이는, 새들이 남긴 이야기를 놓치지 않고 듣다가, 자신이 새가 되어 함께 날아본다. 그렇게 인간 아이는 땅에서 자유롭게 하늘을 유영하고 새들의 일상을 경험하고 삶을 위한 용기도 배워본다.

 



먹구름이 지구를 덮은 폭력적인 어른 인간들의 발자국처럼 보여서 미안하고 안타깝고 속상했다. 그래도 어른 독자인 나는 어쩐지 세상이 안 망할 것만 같고, 어쩐지 어린이, 청소년, 젊은이들이 스스로를 구할 것만 같다.

 

기성세대가 할 일은 사과하고 반성하고 도울 일을 열심히 도우며, 더 이상 망치지 않도록 하는 정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책임 회피를 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보다는 방해를 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

 

새처럼이란, 날고 싶다는 인간의 오래된 욕망이자, 자유롭고 싶다는 생명가진 존재들의 요구이자, 협소한 자기만의 세계 이상의 넓고 높은 세계를 경험하고자 하는 성장의 필수조건처럼 들린다.

 

역시 그림책은 아름답다. 이 책도 더없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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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스틸 영
박병진 지음 / 사계절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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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의 가치는 숙성 연수나 캐스크 품질이 아니라 (...) 어떤 절대 기준과 차별도 없으며, 오직 마시는 개인들 각자의 판단과 수용 정도에 따라 가치가 매겨진다.”

 

스코틀랜드가 고향인 교수들의 위스키 자부심은 대단하다. 적어도 내 경험은 그랬다. 덕분에 처음 마셔본 싱글 몰트 위스키, 추억과 사람들이 차곡차곡 쌓여 최애 위스키가 되었다. 목록에 있어서 무척 반갑다. #글렌피딕



 

과다한 음주를 강요하는 한국사회에서, 나까지 음주를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싶진 않지만, 저자도 언급하는 것처럼, 폭음, 과음, 강요가 아닌 음주에 대한 다른 문화, 다른 태도, 다른 방식이 잘 알려지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우연한 기회에 위스키를 마시게 되었지만, 깊이 있게 배운다거나 까다롭게 미감을 단련시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쓴 의도와 담긴 내용이 더 공감이 되고 읽는 시간이 즐거웠다.



 

위스키라는 소재를 통한 역사와 정치, 인문과 지리, 문화적 배경은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그렇듯 재미있다. 부담이 없으면서도 읽고 나니, 기억에 남은 정보들이 아주 유용한 지식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스코틀랜드 130여 개 위스키 증류소 중 절반 이상이 스페이강 유역 스페이사이드에 자리하고 있다.”

 

모든 내용이 읽기에 즐거웠지만, 최대 관심사인 스코틀랜드 위스키 관련 내용을 언급하며 한정된 지면에 기록을 남기려한다. 오래 마신 위스키에 대해 아는 바가 너무 없었단 새삼스런 자각이 새로 알게 된 내용들을 더 반갑게 한다.

 

좀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우리가 마시는 위스키 내용물 중 3분의 1정도는 글래스고나 에든버러의 수돗물이다. 그러나 글렌피딕은 (...) 물맛을 지키기 위해 수돗물이 아닌 증류소 인근의 맑은 샘물(로비듀)만을 고집한다.”

 

책 덕분에 생각난,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독재자 돼지들은 위스키를 마시며 권력의 쾌락을 만끽한다. 다친 동물들을 도축업자에게 팔아서 위스키로 바꾸는 장면이 나온다. 술과 쾌락, 동서고금 분리된 적이 없는 듯.

 

딱 한잔 혹은 더블 샷을 천천히 즐기는 위스키파(?) 독자들에게는 유쾌하면서도 소중한 선물 같은 책이다. 친절하고 다정한 스코틀랜드 사람들과 그 분위기가 한 겨울의 화로처럼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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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千년의 우리소설 14
김시습 지음, 박희병.정길수 옮김 / 돌베개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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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 후 아버지가 이유 없이(?) 사주신 책이다. 과학을 전공하는 자식에게 왜...? 의문을 품고 받은 기억. 읽긴 했지만 기억을 뒤져봐도 남은 것, 배운 것이 초라하다.

 

30년이 더 지나, 아버지 돌아가신 후, 다른 표지로 이렇게 재회하니 눈물이 쑥 날 것 같았는데, “천년의 우리 소설시리즈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기쁘다. 가슬가슬해서 좋은, 아름답고 따스한 종이표지... 아버지 손을 잡은 것 같다.



 


번역이 다르기도 하지만, 처음 읽는 것처럼 신기해하며 재밌게 읽었다. 인문학도 그렇지만 문학은, (대단하지 않게 살아왔어도) 나이 먹은 것이 이해의 폭을 조금이라도 넓혀준다.

 

평화와 사랑을 거부하는 종교가 없고, 짧은 단 한 번의 삶을 위무하지 않는 종교가 없으니, 믿음이란 유약한 우리에게 전하는 스스로 다짐하는 결심과 격려, 혹은 간절한 기도에 다름 아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선업을 중요시하고, 윤회를 통해서라도 실수와 잘못을 바로 잡으며, 그에 따른 대가나 책임을 지는 것이 윤리적이다. 물론 더 이상 따라하거나 동의할 수 없는 방식의 관계 규정도 있지만, 기억하고 싶은 건 세세한 다름이 아니니까.

 

무릇 나라는 백성의 것이요, 명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오. 천명이 임금에게서 떠나고 민심이 임금에게서 떠나간다면 비록 몸을 보전하고자 한들 어찌 보존할 수 있겠소?”

 



무엇보다 친절한 각주들 덕분에, 아는 바가 적은 시대와 종교와 어휘들에 대해 정독하며 배우는 게 즐거웠다. 아주 오랜만에 최초의 한문소설을 공부하던 고등학생이 된 기분도 들었는데, 그마저도 반가운 시간이었다.

 

유불선과 성리학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적어서 오히려 오독을 덜한 부분도 있을 것이고, 깊이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시를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즐거웠다. 다른 이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소설집임이 분명하다.

 



시험문제를 풀던 시절로부터 벗어나 드디어, 문학으로서의 금오신화와, 저항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지켜나간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도 만나보았다.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시간이 더 지나 또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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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않는 달
이지은 지음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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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누군가 널 지켜 냈으니 여기 있겠지…….”

 

표지를 보는 순간, 달은 울지 않는다는데 내가 울고 싶었다. 어린 아이와 늑대가 위험을 피해 숨은 앞자리를 가능하면 내가 막아주고 싶었다. 첫인상은 때론 정확해서 읽는 내내 자주 울고 싶었다.



 

생명을 지키고 살리고 키운다는 것은 간절한 일이다. 두려운 것이 많아지지만 한걸음도 물러설 수 없는 절박한 일이다. 잠들어도 존재의 일부를 깨워두는 일이며, 아파서 혼미해도 몸을 일으키는 일이다. 상처 입은 늑대와 지구에 떨어진 달이 인간 아이를 키우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겨우 가능한 일이었다.



 

겁쟁이에 후회가 많은 어른 독자인 나는 이 책이 전하는 서늘하고 뜨거운 분위기에 불안감이 찰랑대는 것을 견디며 읽었다. 불안한 짐작대로 전개가 될까봐 용기를 내어 계속 읽었다. 아픈 결말일까 더 용기를 내어 끝까지 읽었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무척 궁금하다. 입장이 다르니, 내가 양육자들의 기분에 밀착해 있은 것과는 다를 것이다. 청소년 독자들이 느끼는 것이 지극한 사랑이면 좋겠다.

 

도움을 주고받는 일이 부끄럽거나 약점이 되는 게 아니라, 용기가 필요한 멋진 일이라는 것을 눈여겨 봐줬으면 좋겠다. 미처 몰랐던 삶의 수많은 크고 작은 것들 모두가 누군가가 애쓰고 도운 덕분이라는 것도 알아봐주면 좋겠다.



 

때로는 세상이 별보다 더 찬란하게 빛나고 다정하고 따스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포기해도 되지만, 그 대신 크고 작은 손해와 희생을 감수한 분들이 남긴 큰 사랑 덕분이라는 것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달을 더 자주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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