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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환하니 서러운 일은 잊어요 - 문태준 시인의 초록문장 자연일기
문태준 지음 / 마음의숲 / 2025년 7월
평점 :
컬처블룸&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느낀 점을 작성한 글입니다. 『꽃이 환하니 서러운 일은 잊어요』는 시인 문태준의 섬세한 시선과 정갈한 문장으로 써내려간 산문집이다. 199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그는 그간 『맨발』, 『가재미』, 『풀의 탄생』 등 많은 시집을 통해 한국 시단의 미감을 지탱해온 작가다. 이번 책은 ‘시인의 산문’이라는 말이 꼭 어울릴 정도로, 일상의 사소한 순간 속에서 정서와 철학을 발견하고자 하는 그의 시적인 성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문태준 시인이 글에서 끌어내는 고요한 감정의 무게다. 어떤 격정도 없이, 생의 깊은 층위를 마치 오래된 나무결을 손끝으로 쓸어보듯 천천히 드러낸다.
예컨대 “정전이 있던 날, 마을의 불이 꺼진 것을 계기로 내 삶이 의지하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문장은, 단순한 정전이 아닌 내면적 성찰의 계기가 된다. 자연, 사물, 계절, 정원, 빛, 심지어 ‘텃밭의 덩굴’조차도 그에게는 의미 있는 삶의 근거로 자리 잡는다.
『꽃이 환하니 서러운 일은 잊어요』는 눈앞의 풍경을 바꾸기보다는 마음의 풍경을 서서히 정리하게 만드는 글이었다. 눈에 띄는 사건이나 극적 전개 없이도, 사람의 감정을 이토록 섬세하게 다룰 수 있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다만, 산문 특성상 독자의 집중력이 높지 않다면 흐름을 놓치기 쉬운 점은 살짝 아쉽다. 하지만 이조차도 ‘조용한 산책 같은 책’이라는 이 산문의 매력에 포함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