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그녀는 자기 삶에 주어진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아이들과 같이 있고 싶다고 말했다. 프리먼이 아무리 험상궂게 찌푸리고 협박해도 괴로워하는 그 어미를 완전히 조용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일라이자는 내내 한없이 애처롭게, 자기들 세 명을 갈라놓지 말아 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자기가 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거듭거듭 호소했다. 아까 한 약속들 만약 그 세명을 함께 사주기만 한다면 정말 얼마나 충성하고 순종할 것인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밤낮으로 얼마나 열심히 일할 것인지 을 말하고 또 말했다. 그러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남자는 세 명 모두 살 만한 돈이 없었다. 거래는 성사되었고, 랜들은 혼자서 가야 했다. 그러자 일라이자가 아들에게 달려갔다. 뜨겁게 아들을 껴안고 입을 맞추고 또 맞추었고, 얼마를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그러는 내내 소년의 얼굴 위로 비처럼 그녀의 눈물이 떨어졌다.


(200-201)

비인간적인 주인들이 분명히 있는 것처럼 인간적인 주인들도 있을 것이다-헐벗고 반쯤 굶주린 비참한 노예들이 분명히 있는 것처럼, 잘 입고 잘 먹고 행복한 노예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각 목격한 그런 부당함과 비인간성을 용인하는 제도는 잔인하고 불공평하고 야만적인 제도이다. 비천한 삶을 있는 그대로, 또는 그렇지 않게 묘사하는 소설을 쓸 수는 있다-어쩌면 진지한 척 엄숙한 태도로, 무지라는 축복을 자세하게 열거할 수도 있다-노예 생활의 즐거움에 관해 안락의자에 앉아 조잘조잘 떠들어 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에게 밭에서 노예와 함께 일하도록 해보라-노예들과 오두막에서 같이 자고-곡물 껍질을 같이 먹도록 해보라. 노예처럼 채찍질을 당하고, 사냥을 당하고, 짓밟히도록 해보라. 그들은 전혀 다른 아이기를 갖고 돌아올 것이다. 그들에게 가련한 노예의 마음을 알도록 해보라-노예의 비밀스러운 생각들-백인이 듣는 곳에선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생각을 알아보도록 해보라. 밤에 깨어 있는 노예 옆에 조용히 앉아 있도록 해보라-<생명, 자유, 행복, 추구>에 관해 노예와 진심 어린 믿음으로 대화를 나누도록 해보라. 그러면 노예들 100명 가운데 99명은 충분히 똑똑해서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고, 그 사람들 자신과 똑같이 열정적으로, 자유에 대한 사랑을 가슴에 품고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227)

이제 나는 어디서 구출을 기대해야 할지 암담했다. 마음 속에선 희망이 솟다가도 짓밟히고 시들어 갔다. 내 삶의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이보다 일찍 늙어 가는 것이 SRUWUTEK. 앞으로 몇 년의 시간과, 고된 노동과 슬픔, 그리고 습지의 독기 어린 공기가 그 효력을 발휘할 것이었다-나를 무덤으로 떠밀고, 썩어 잊히게 보이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거라곤 땅바닥에 엎드려 말로 다 하지 못할 비통함으로 신음하는 것뿐이었다. 구조의 희망은 내 마음에 한 줄기 위안을 던져 준 유일한 빛이었다. 이제 그 빛이 흔들거리고, 약해지고, 작아지고 있었다. 이제 실망의 한숨 한 번으로 그 빛은 완전히 꺼지고, 나는 한밤의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삶의 끝으로 가야 할 것이었다.


(254-255)

제가 말씀드리죠, 엡스.” 배스가 말했다. “그건 완전히 틀렸어요-완전히 틀린 거란 말입니다-거기엔 어떤 정의도 어떤 당위성도 없어요. 설사 내가 크로이소스만큼 부자라고 해도 노예는 한 명도 두지 않을 겁니다. 물론 다들, 특히나 빚쟁이들은 더 잘 알겠지만 나는 부자는 아닙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사기가 있죠-신용 대부 제도 말입니다-그건 협잡입니다. 신용 대부가 없으면 빚도 없어요. 신용 대부는 사람을 유혹에 빠지게 만들죠. 현금 거래만이 사람을 악에서 구해 낼 겁니다. 어쨌든 <노예제> 예기로 돌아가 하나 물어볼까요. 요점만 말해서 댁은 댁의 깜둥이들에 대해 무슨 <권리>가 있습니까?” “무슨 권리라니!” 엡스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 내가 돈을 주고 그들을 샀잖소.” “<물론> 그러셨죠. 법은 선생이 노예를 보유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니까요. 하지만 법한텐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건 <거짓말>이에요. 그래요, 엡스, 법이 가지는 <거짓말쟁이>라는데, 거기에 진실은 없는 거죠. 법이 허락한다고 해서 전부 다 옳은 걸까요? 만약에 사람들이 댁의 자유를 빼앗고 댁을 노예로 만드는 법을 통과시킨다면 어떨까요?”


(257)

배스가 말을 받았다. “내가 뉴잉글랜드에 있었더라도, 지금 여기 있는 나와 똑같았을 겁니다. 노예제는 부당하다고, 폐지되어야 한다고 말했을 겁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속하며 붙들어 두는 걸 허락하는 법이나 헌법에는 어떤 이성도, 어떤 정의도 없다고 말했을 겁니다. 물론 자기 재산을 잃는 건 힘든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건 댁의 자유를 잃는 것과 비교하면 별로 힘들지 않을 겁니다. 아주 공평히 말해서, 댁의 자유에 대한 권리는 저기 엉클 에이브럼의 권리보다 조금도 크지 않아요. 피부가 검고 흑인의 피가 흐른다고 하지만, 어떻게 해서, 이 지류에는 우리 둘만큼 피부색이 하얀 노예들이 많은 걸까요? 영혼의 색에도 차이가 있을까요? ! 체제 전체가 잔인하고 터무니가 없어요. 댁은 깜둥이들을 갖고 있다가 교수형에 처해질지도 모르지만, 저라면 루이지애나에 가장 좋은 농장을 갖고 있대도 한 명도 소유하지 않을 겁니다.”


(307)

그 아늑한 작은 집으로 들어갔을 때, 처음 나를 맞은 건 마거릿이었다. 그 아이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내가 집을 떠날 때, 그 아이는 겨우 일곱 살, 장난감을 갖고 놀며 조잘거리던 작은 소녀였다. 이제 그 아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랐고-결혼해서, 눈이 빛나는 한 소년을 옆에 데리고 있었다. 노예가 되어 불행하게 살았던 할아버지를 잊지 말라고, 마거릿은 자기 아이에게 솔로몬 노섭 스톤턴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내가 누구인지 밝히자, 마거릿은 감정이 북받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이윽고 엘리자베스가 방으로 들어왔고, 내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앤이 호텔에서 달려왔다. 그들은 나를 껴안았고, 눈물범벅이 되어 내 목에 매달렸다. 그러나 설명보다 상상이 더 나을 수 있는 장면에 대해서는 이쯤에서 덮어 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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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2025년 가을호 - 통권 191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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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큰일이다. 아빠가 독서편지가 너무 밀려서, 읽고 난 후의 생각들이 거의 기억나질 않는구나. 아빠가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하면서 읽는 편인데, 바쁘거나 메모를 할 수 없는 상황인 경우에는 메모를 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몇 주가 지난 다음에 독서편지를 쓰려고 하면 더욱 막막해지는 것 같구나.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해줄 <녹색평론 2025년 가을호 (191)>가 딱 그런 상황이라서 그런다. 녹색평론은 읽을 때면, 새로운 지식도 전해주고, 불편한 사실도 알려주고, 우리 환경을 더 신경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하는 등 분명 아빠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인도하는 책이란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녹색평론 2025년 가을호 (191)>의 내용을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감감하구나. 그래서 아빠가 발췌한 글들을 몇 편 소개하는 것으로 독서편지를 대신하련다.

밀린 독서편지를 열심히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어보지만, 늘 마음만 먹지.. 더 밀리지 않으면 다행이지. <녹색평론 2025년 가을호 (191)>의 부제는 저에너지 분산사회로 가는 길이란다. 산업혁명 이후 에너지 사용량은 급증하면서 지구의 환경은 황폐화되고 기후는 몹쓸 방향으로 변하고 말았단다. 이쯤 되면 경각심을 가져야 하겠지만, 몹쓸 방향으로 변한 환경에 적응하려는 것 같구나. 그러자면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고, 그렇다 보면 더 환경은 더욱 황폐화되어 결국은 생명이 살지 못하는 땅이 되겠지. 이런 것들을 막기 위해서는 에너지 소비량을 줄여야 한다고, 녹색평론에서는 늘 주장해왔단다. 그리고 분산사회를 새로운 사회 형태를 제시했는데, 그것은 가정이나 작은 지역 단위로 자본을 분산시킨다는 의미로, 녹색평론에서 그동안 주장해 왔던 소규모 공동체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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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시장에 맡기면 자본에 예속된다. 정부에 맡기면 독재에 신음한다. 현대사회가 채택했던 두 가지 굵직한 시스템이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벨록은 그 답은 분산에서 찾았다. 시장주의는 생산수단을 자본가에서 맡겼다. 사회주의는 그 생산수단을 독재권력의 손에 쥐어줬다. 벨록은 자본가와 권력이 독점했던 농지나 상점, 기술, 기계를 가정과 지역 단위로 분산해서 소유토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벨록은 이를 작은 소유자들의 나라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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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자본주의는 너무 돈만 밝히고, 인간성을 상실한 예를 많이 볼 수 있단다. 이번 책에 실린 아벤티스라는 제약 회사의 사례는 좀 충격적이더구나. 아프리카에만 존재하는 수면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개발했지만, 아프리카 사람들의 구매력이 없다고 생산을 하지 않았대. 보다 못한 국경없는의사회가 생산은 자신들이 할 테니 지식재산권을 달라고 했더니 그마저도 거절했다는구나. 그러고는 그 특허를 가지고 화장품 만드는데 이용했다고 하니, 이 얼마나 잔인한 사회란 말이냐. 그 회사는 망했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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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6)

시장은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구매력이 없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볼까요? 여러 해 전의 일인데, ‘아벤티스라는 제약회사(현재는 사노피아벤티스)에플로니틴이라는 화합물을 개발했습니다. 이 물질은 아프리카 수면병을 일으키는 병원충(트리파노소마)을 죽일 수 있다고 밝혀졌습니다. 아프리카 수면병을 사망에 이를 수도 있고, 심신을 쇠약하게 만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기력이 없어서 일을 할 수 없다고 해요. 그런데 7000만 명의 아프리카 사람들이 이 병에 걸리기 쉬운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그래서 이 제약회사가 에플로니틴으로 수면병 약을 만들었을까요? 그들은 우선 시장수요가 얼마나 되는지 따져봤어요. 그런데 아프리카 사람들이 7000명만 명이나 되지만 이 약을 구입할 수 있는 사람(구매력)이 거의 없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시장수요가 없으니 그 약을 생산할 이유가 없겠지요. 그래서 국경없는의사회에서 그럼 자신들이 직접 약을 생산해서 (아프리카)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할 테니까, 에플로니틴의 지식재산권을 달라고 요청했어요. 아벤티스는 거절했습니다. 이미 그 화합물의 특허권을 브리스톨마이어스퀴브라는 화장품 회사에 넘겨준 뒤였거든요. 에플로니틴은 여성들의 얼굴에 난 털을 없애는 데에도 효과가 있었던 거예요. 가난한 사람들의 의료적 필요를 완전히 무시한 채, 부유한 여성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화장품을 생산하는 쪽으로 자원을 할당하는 방식, 바로 정확히 이것이 시장이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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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빠는 산을 좋아해서 가끔 등산을 가곤 한단다. 남들도 많이들 좋아하지만 아빠도 설악산을 무척 좋아한단다. 그런데 그 설악산을 망가뜨리면서 케이블카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당연히 시공까지는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지난 정부에서 환경부에서 이를 허가해주면서 공사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격분했는지그런데 웃긴 것은 그 공사에 대해 대부분 찬성하던 양양군민들이 비용의 90%를 양양군에서 댄다고 하니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거야.. 이런 심뽀를 어떻게 봐야 할 지.. 설악산 케이블카는 반드시 취소되었으면 좋겠구나. 케이블카를 지으려고 하는 오색 코스가 무척 힘든 코스이긴 하지만, 그 나름의 매력이 있어 자꾸 가고 싶은 코스이거든.. 매운 불닭면을 도전하는 것 같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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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비슷한 예가 실제로 있어요. 인제 양양군의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사례인데, 예산의 한 90%를 양양군이 대고 10% 정도를 강원도에서 대거든요. 이런 구체적인 수치가 나오기 전에는 케이블카 건설을 지지하는 양양군민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전체 예산의 일부이긴 해도 양양군의 돈으로 케이블카가 만들어진다고 하니까 생각이 좀 달라지는 것 같아요. 케이블카가 사실은 완전히 적자 사업이거든요. 케이블카에 쓸 예산 1,500~1,800억 원으로 양양군에서 다른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사람들 생각이 좀 바뀌는 것 같아요. 물론 지금 양양군수가 구속되기도 했고, 다른 영향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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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에서 또 자주 다루는 것 중에 하나가 민주주의의 위기다. 전세계적으로 극우세력이 확장해가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 것 같구나. 이렇게 극우 세력이 점점 커지는 것에 대한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 말도 안 되는 윤석열의 불법 계엄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사실에 놀랍더구나. 그런 세력들이 다시 정권을 잡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야. 녹색평론에서는 시민들로 이루어진 시민회의의 필요성을 수 년 전부터 주장해왔는데, 그 뜻이 올바른 것은 아빠도 이해하지만, 극우세력이 꽤 많은 상황에서 추첨으로 구성된 시민의회가 제대로 작동할까 싶기도 하구나. 시민의회의 장점은 많이 들어서 그 필요성은 알겠는데, 극우세력들이 시민의회를 구성원으로 들어올 경우에 대한 글도 녹색평론에서 고민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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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시민의회가 구성되면 우선적으로 상대를 적으로 보는 적대정치에서 상대의 존재가치를 인정하는 인정정치로 전환하도록 관련법들로부터 개정할 필요가 있다. 정치의 기득권세력인 거대 양당의 특권을 없애고, 실질적인 다당제를 보장하여 양당의 적대정치를 청산하고, 모든 정치지망생이 국민 앞에서 아무런 장애 없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정당법, 국회법, 선거법 등 정치 관련법들을 개정해야 한다. 이 개정안들을 시민의회에서 발의하고 국민투표에 회부하면 국민주권 실현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다. 이를 위해 헌법을 개정하여, 시민들이 자유롭고 제한 없이 국민발안, 국민투표를 요청하고 실시하는 주권적 권리를 확보한다면 한국 정치를 도약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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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우리나라 극우의 특징은 개신교와 결합을 들 수 있단다. 이번 호에서는 극우와 개신교의 만남을 비판하는 글도 실려 있단다. 전광훈이나 손현보가 이끄는 교회가 그리스도가 이야기하는 교회와 같은 교회라고 할 수 있을까? 아빠는 개신교가 아니지만, 개신교를 믿는 이들은 극우와 결합하는 교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척 궁금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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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그러나 이런 착시를 걷어내고 보면, 최근의 극우 쓰나미 현상에서도 개신교는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했다. 물론 일부 극우적 분파의 활동이 막대한 사회적 파급력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ㅇ리다. 전관훈 현상과 손현보 현상이 대표적이다. 전광훈은 글로벌 보수 헤게모니에 의해 개신교가 재편되면서 교회에 초래된 위기적 요소가 심화되자 그것을 자양분 삼아서 성공한 자다. 교회에서 소외된 노인들을 아스팔트 우파로 흡수함으로써, 그는 개신교를 너머 한국 극우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한기총의 시대가 저물고, 개신교 내에서 극우 혹은 강경보수의 자리가 줄어들자 그 불만세력이 전광훈에 합류하게 된 측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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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양창모라는 의사가 쓴 글이 좋았단다. 이 분은 그냥 의사가 아니고 왕진의사란다. 요즘도 왕진의사가 있나 싶은데, 이분은 시골 오지에 계신 환자들을 보살피는 그런 의사셨는데, 직접 경험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주었는데,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직접 경험해야 정책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이런 분들의 이야기를 정부에서도 귀담아 들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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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할머니 집은 오지 중의 오지에 있다. 방문진료센터에서 소양호를 빙둘러 차로 두 시간을 꼬박 달려야 도착한다. 이곳에서 살았던 20여 년의 시간 동안 할머니는 아마도 자연스레 겨울마다 물을 아꼈을 것이다. 도토리를 쌓아놓고 겨울잠을 자는 다람쥐처럼 수십 개의 플라스틱병에 물을 넣어놓고 겨울을 나야만 했던 할머니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물을 적게 먹는 습관이 들었다. 물 많이 마셔야 한다는 실현 불가능한 얘기를 당당하게 했던 나는 그날 센터로 돌아가 하수구 수리업체 연락처를 열심히 뒤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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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 좋은 글들이 많았단다. 이번 호에 특히 좋은 글들이 많아서 아빠가 발췌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었단다. 그리고 이번 호에 시 한 편이 아빠의 눈길을 끌었단다. 아빠가 젊었을 때 자주 이용하는 기차를 타고 가다 보면 역사도 없는 간이역이 하나 있었는데, 그 기차역을 제목으로 한 시() 한 편…. 제목만으로도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여 좋았단다. 그래서 너희들에게도 소개해 주고 싶더구나. 그 시를 읽으면서 오늘 독서편지는 마무리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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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강매역

- 류근

 

강매역은 아득했다

봄과 가을 사이에 있었다

새들과 맨드라미가 와서 자주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할 일도 없고 한 일도 없이 배가 고파지면

나는 강매역 개찰구에 서 있는 사람이 궁금해져서

아득히 논밭 사이를 건너 강매역에 가서 표를 끊었다

백마나 송추쯤에 내려서

다시 강매역으로 돌아가는 열차를 기다렸다

강매역은 아득했다

새들과 맨드라미와 내가 자주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런 일도 생겨나지 않았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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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영국의 금융전문가 팀 모건에 따르면, 경제는 본질적으로 에너지 시스템이다.

책의 끝 문장: 먼 그리움으로 점철된 그의 삶은 이제 닿을 듯 말 듯 가배얍게고향에 머문다.


세계경제는 축소의 시대에 들어섰다. 이건 우리가 어떤 재주를 부려도 피할 수 없는 물리적 현실이다. 모건의 분석은 주로 화석연료에 관한 것이긴 하지만 그러나 설령 재생가능에너지 시대가 도래한다고 해도 사정이 별로 달라질 것 같진 않다. 재생에너지는 가장 질이 좋지 않은 화석에너지보다도 에너지 밀도가 낮기 때문이다. 태양광이나 풍력은 같은 단위의 에너지를 생산한다고 했을 때 석탄, 석유보다 10배나 더 많은 땅이 필요하다. 이런 사실들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탈탄소와 탈성장은 우리가 바라든 바라지 않든 앞으로 도래할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 그리고 탈탄소와 탈성장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 P3

특허(지식재산권)는 독점입니다. 우리의 세금을 사용하면서 정부가 정보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정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통산 어떤 의료기술이 개발되었다고 할 때 평균적으로 특허권 50개 정도를 침해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럼 그 기술은 임상에서 사용될 수 없고 연구하는 데도 이용될 수 없습니다. 뉴턴은 "내가 (남들보다) 더 멀리 본다면, 그건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기술이든 이미 존재하는 정보(지식)로부터 발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보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만들어 놓으면 연구는 지연될 수밖에 없습니다. 특허제도는 인류가 새로운 지식을 개발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 P47

그렇습니다. 물질이 아닌 기술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에 착시가 일어난 거예요. 증기기관을 버리고 디젤엔진으로 바꾼 ‘전환’은 기술적 변화일 뿐입니다. 물질적 측면에서 보면 전환이 아니지요. 석탄은 디젤기관이 상용화된 뒤에도 오히려 더 많이 소비되었습니다. 기술의 경우에는 새로운 것이 개발되면 옛것은 쓸모가 없어질 수 있지만, 원자재의 원료에 대한 수요는 끊임없이 팽창해왔습니다. 이건 중요한 사실이에요. 물질적 역사는 한마디로 확장의 역사입니다. 모든 원자재 사용량이 증가해왔고 그 종류도 무척 다양해졌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원자재의 소비가 줄어든 사례는 (어떤 이유에서든) 사용이 금지되었을 때뿐입니다. - P75

현재 한국 민주주의는 크게 퇴행하고 있다. 두 개의 큰 적대적 정당과 진영이 서로 상대 진영을 혐오하는 적대정치에 빠져 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시민에 의해 저지된 후에도 윤석열을 지지하는 진영에서는 궁정쿠데타에 가까운 그 계엄을 지지하는 비율이 낮지 않았고 계엄령을 ‘계몽령’으로 부르며 망국적 선동을 했다. 이를 반영하듯 최근 한 연구는 한국에서 이념적으로 극우인 사람들이 20%에 이른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퇴행적 정치와 극우적 선동이 난무하는 적대정치 상황에서는 서로 상대 진영이 주도한 정치적 의사결정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뿐 아니라 자신들이 지지하지 않는 정당, 정책, 당선자의 존재가치도 인정하지 않는다. - P101

프란치스코를 이해하는 핵심어 ‘가난’의 다의적이다. 먼저 가난은 삶에 필요한 기본적인 재화의 결핍 상태를 뜻한다. 이 가난은 생명 유지와 성장을 저해하며 비인간화와 죽음을 초래한다. 있어서는 안될, 극복해야 할 일종의 ‘약’이다. 이 가난의 반대는 생명을 지속하고 사회를 재생산하는 풍요다. 한편, 이 가난은 대개 착취와 수탈의 사회적 관계에서 생겨난다. 누군가 부유해지려면 누군가 그만큼 가난해져야 한다. 부를 위해 가난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 가난의 반대는 정의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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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예바의 눈물
손석춘 지음 / 동하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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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 이런 일이 있을 수가아빠가 오늘 이야기할 책에 대해 한창 썼는데, 컴퓨터가 갑자기 예고도 없이 다운이 되었다가 다시 전원이 들어왔는데, 쓴 글들이 다 날라갔구나. 최근에 정말 보기 드문 일이로구나. 자동 저장으로 일부라도 남아 있기를 바랬는데…. 그리고 아빠의 성격상 자주 Ctrl+S를 누르는 편인데, 오늘 따라 누르지 않았다가 그만 다 날라갔어. 다시 아까 썼던 그들을 써야 하는데, 좀 짧게 써야겠구나. 아빠가 23년 전에 재미있게 읽은 <아름다운 집>이 있는데, 그 책을 쓰신 손석춘 님의 책이 오늘 너희들에게 이야기할 책이란다.

23년 전에 읽은 <아름다운 집>은 지금은 연락이 끊긴 후배가 추천해주었던 책인데, 당시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구나. 지은이가 소설 속에 등장하여 마치 다큐멘터리 식으로 써서 누군가는 소설이 아니고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알아. 그런 기법이 오늘 소개할 <코레예바의 눈물>이라는 책에도 사용되었단다. 자세한 것은 조금 이따가 이야기해줄게.

아빠가 8년 전에 조선희 님의 <세 여자>를 너무 재미있게 읽고, 그 책에 나온 실존 인물들을 폭풍 검색을 했었단다. 그 중에 주세죽이라는 분을 검색하다가 주세죽을 주인공으로 한 손석춘 님의 <코레예바의 눈물>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어. 오래 전 재미있게 읽은 <아름다운 집>의 지은이를 그렇게 다른 책으로 다시 만나니 무척 반가웠단다. 그 책을 사 두고 언젠가는 읽겠지, 했는데 이제서야 읽는구나. <세 여자>를 읽은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라고 생각했는데, 독서기록을 보고 7년이나 지났다는 것에 크게 놀랬단다. 다시 한번 뜨거운 열정으로 젊음을 불살랐지만, 안타까운 말년을 보낸 주세죽 님의 삶을 되짚어 볼 수 있어 좋았단다. 문화강국에 되어 전세계를 K열풍으로 만든 밑거름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모든 분들의 열정이 있다고 생각한단다. 주세죽 님도 그런 분들 중에 한 분이고 말이야. 그럼, 손석춘 님의 <코레예바의 눈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게.

 

1.

지은이가 여행 중에 우연히 들른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라는 지방에서 낡은 책장에 무심히 꽂혀 있는 주세죽 님이 쓴 수기를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단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마치 실제 주세죽 님이 쓴 수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형식을 띠었지만, 이 모든 것은 지은이 손석춘 님의 설정이란다. 하지만 그런 수기가 실제로 어딘가 남아 있으면 좋겠구나.

주세죽은 1901년 함흥에서 태어났고, 10대 시절은 선교사가 운영하는 영생여학교에 다니다가 1919 3.1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어. 그리고 당시 경찰에 잡혀 1개월동안 옥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앞서 이야기했던 <세 여자>의 또 다른 주인공인 허정숙을 만나게 된단다. 감옥살이를 하고 나와서 선교사의 조언으로 상해에 피아노 유학을 떠난단다. 주세죽은 피아노에 재능이 있었고, 그 재능을 알아본 선교사가 유학을 알아봐 주었거든. 상해에 도착한 주세죽은 그곳에서 다시 허정숙을 만나게 되었는데, 허정숙을 통해 박헌영을 알게 되었고, 얼마 안가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단다. 자연스럽게 주세죽도 피아노 공부는 접고 박헌영과 함께 사회주의 노선을 따르게 되었단다.

박헌영은 임원근, 김태연과 함께 사회주의자 삼총사로 불리던 인물이란다. 임원근과 허정석은 서로 사귀는 사이였고, 김태연은 본명보다 가명인 김단야로 더 유명하니, 앞으로 김단야로 이야기할게. 박헌영은 너희가 한국현대사를 공부하거나 관련된 책을 읽을 보면 우리나라 초창기 공산주의의 거물급 인사로 자주 만나게 될 것이야. 당시 고려공산당은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로 갈려 갈등을 빚고 있었어. 박헌영은 이르쿠츠크파 하부 조직인 고려공청의 책임비서를 맡고 있었단다. 박헌영, 임원근, 김단야는 국내에 잠입하여 공산당 조직을 키우려는 야심을 갖고 1922년 국내에 잠입 시도를 하는데 국내 잠입하자마자 모두 체포되었단다. 이 일로 나중에 김단야는 첩자 의심을 받기도 했단다.

그들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허정숙과 주세죽도 국내로 들어온단다. 주세죽은 함흥 고향집에 잠깐 들렀는데, 피아노 공부를 중단 것에 대해 엄마한테는 혼나고 영생여학교 선교사는 크게 실망했단다. 당시 주세죽의 나이 스물 남짓얼마나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사랑을 하고 독립운동을 했겠니. 주세죽은 여성동우회에서 활동했어. 당시 이광수가 민족개조론을 써서 온 국민의 울분을 사게 만들었는데, 허정숙과 주세죽은 이광수에게 면담 요청을 해서 만나게 되었단다. 허정숙은 이광수를 만나자마자 한바탕 화를 내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는데, 주세죽은 준비한 질문들을 이광수에게 했단다. 아참, 주세죽은 당시 보기 드문 미인이었단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주세죽의 리즈 시절 사진을 볼 수 있는데, 오늘날 기준으로 봐도 미인인 것 같구나. 이광수가 허정숙의 화를 보고도 주세죽과 면담을 한 것은 아마 주세죽의 미모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주세죽과 인터뷰를 하던 이광수는 주세죽의 질문에 점점 심사가 뒤틀리더니,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단다.

 

2.

2년 뒤 박헌영, 임원근, 김단야는 모두 풀려났단다. 박헌영의 아호가 이정인데, 이 책에서는 이정이라는 호칭을 더 자주 썼단다. 하지만 아빠는 그냥 박헌영으로 할게. 주세죽과 박헌영은 드디어 신혼생활을 하게 되었어. 하지만 지하조직을 통해 사회주의 노선을 확장하려는 운동도 함께 했단다. 한편, 김단야는 서울에서 고명자라는 여자와 사귀고 동거를 했단다. 사실 김단야는 고향에 결혼한 아내도 있었지. 고명자는 앞서 이야기한 <세 여자>의 마지막 한 명이란다.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는 여성동우회 활동을 하면서 친해졌단다. 세 명이 청계천에 찍은 사진이 유명하단다. 박헌영의 지하 조직 활동은 조선공산당 창당까지 이어지는 성과를 냈지만, 그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1925년에 박헌영과 주세죽 모두 체포되고 만단다. 다행히 주세죽은 한 달 만에 풀려났지만, 박헌영은 다시 감옥에서 갇혀 모진 고문을 받아야 했단다.

그러던 어느날 교도소에서 주세죽에게 호출이 왔어. 덜컥 겁이 났지. 혹시 박헌영이 죽은 것은 아닌가 하고당시 교도소에서 수감 중에 죽는 일은 비일비재했으니까 말이야. 다행히 그런 일은 아니지만, 박헌영은 완전 미쳐버려서 병보석으로 데려가는 것이었어. 박헌영은 모진 고문을 제정신이 아닌 자신의 똥까지 집어 먹는 반병신이 되었단다. 그렇게 병보석으로 풀려난 박헌영알고 보니 미친 척을 한 것이었어. 모든 사람을 감쪽같이 속인 것이지.. 박헌영과 주세죽은 일제의 눈을 피해 몰래 블라디보스토크를 통해 모스크바로 행했단다.

모스크바에는 미리 가서 자리잡은 김단야가 있었어. 모스크바에서 박헌영과 주세죽은 각자 공부를 했단다. 이 때가 주세죽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아닐까 싶구나. 박헌영은 한국의 여인이라는 뜻의 러시아식 이름 코레예바를 지어주었단다. 이 책의 제목에 나오는 코레예바가 바로 주세죽의 러시아식 이름이야. 주세죽과 박헌형의 행복한 생활은 딸 비비안나가 태어나면서 정점을 찍었단다. 그리고 몇 년 뒤 공부를 마치고 그들은 상해로 가서 조선공산당 지령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라고 했어. 비비안나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국가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에 맡겨졌는데, 어린 나이에 엄마아빠와 헤어져 지내야 했으니 불쌍하구나.

아무튼 그렇게 오랜만에 다시 찾은 상해그들은 착실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박헌영이 다시 체포되어 국내로 호송되었단다. 때는 1933 7 5일이었어. 박헌영이 체포된 이후 주세죽은 숨어 지내면서 김단야와 접선을 했단다. 그리고 얼마 후 소련으로부터 복귀 지령을 받았어. , 박헌영이 갇혀 있는 고국과 반대 방향으로 멀리 떠나야 하다니얼마나 가슴 아팠을까. 그런데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단다. 김단야는 국내 접선으로부터 소식을 들었는데, 박헌영이 옥사하고 말았다는 거야. 김단야는 이 소식을 주세죽에게 전달했는데, 그 소식이 사실여부를 따지기 전에 주세죽에게는 최대한 숨겼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것을 당장 이야기해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거든. 오래 전부터 몰래 주세죽을 짝사랑했던 김단야에게만 좋은 소식이 아니었을까 싶구나. 그의 본심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러 책들을 통해서 그려진 김단야의 이미지는 그런 이미지였단다.

주세죽과 김단야는 우여곡절 끝에 모스크바에 도착을 했단다. 그 때부터 김단야의 계속된 구애가 시작되었단다. 주세죽이 생각하기에 김단야는 고향에 아내고 있고, 자신의 친구인 고명자와 사귀었던 사람이었기에 그런 구애가 부담스러워 계속 거절했단다. 하지만 모스크바에서 여자 홀로 살아가는 것도 힘들고 계속된 구애에 결국 김단야와 결혼을 했단다. 만약 박헌영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결혼하지 않았을 텐데김단야와 주세죽 사이에서 아들 김세단이 태어났어.

 

3.

모스크바에도 스탈린이 정권이 잡은 이후 이상한 기류가 흘렀단다. 김단야를 고발하는 투서가 접수되었는데, 누가 봐도 모함이었단다. 하지만 김단야는 일본의 밀정으로 체포되고 말았고, 항변할 시간도 없이 1938 2월 사형 당하고 말았어. 이 당시에서는 스탈린의 눈에 거슬리는 이라면 거침없이 숙청당하는 시절이었단다. 그런 시기 김단야도 희생양이 되고 말았어. 주세죽도 체포되어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5년 유배형을 받게 되었어. 아들 세단도 함께 데리고 갔는데 가는 길에 그만 세단은 죽고 말았단다. 그렇게 그즐오르다에 도착한 주세죽은 노동자의 삶을 살았어.

5년이 지나도 유배형은 풀릴 줄 몰랐어. 모스크바에 항의 편지를 보냈지만 묵묵부답이었단다. 우연히 주세죽은 박헌영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단다. 주세죽은 박헌영에게 연락을 했지만 회신은 오지 않았단다. 당시 박헌영이 마음을 좀더 넓게 썼다면 주세죽과 딸 비비안나를 평양으로 데리고 올 수 있었을 텐데주세죽은 유형이 한참 끝나고도 크즐오르다를 떠나지 못하다가 풀려나 모스크바로 향했는데, 당시 폐결핵으로 몸 상태가 좋지 못했어. 모스크바에 도착했지만, 공연 때문에 지방에 가 있던 비비안나는 만나지 못하고, 사위가 보살펴 주었고 얼마 못 가 죽고 말았단다.

주세죽 같은 분의 삶을 알게 되면, 삶이라는 것이 한번이 아니고 환생 같은 것이 있어서 최소한 두 번은 살게 해주었으면 좋겠구나. 이전 삶에서 하지 못했던 일, 사랑을 제대로 할 수 있게 말이야. 손석춘 님의 이번 소설도 참 재미있게 잘 읽었단다. 너희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지만, 너무 바쁘시니….

이 책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주세죽 님의 수기 형식으로 쓰여 있단다. 그러다 보니 주세죽 님이 당시 사용했을 법한 말들이 여럿 등장한단다. 아빠는 처음 보는 말들 또는 들어본 것 같지만 뜻을 모르는 말들.. 모르고 있던 우리말들이라서 그 뜻을 찾아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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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비임비 : 일을 자꾸 계속하는 모양. 또는, 일이 거듭되거나 물건이 거듭 모이는 모양.

생게망게하다 : 하는 행동이나 말이 갑작스럽고 터무니없다

애오라지 : 겨우' '오로지'를 강조해서 이르는 순우리말

온새미로 : 가르거나 쪼개지 않고, 생김새 그대로, 자연 그대로, 언제나 변함없이 (명사는 온새미)

울뚝밸이 : 갑자기 화를 벌컥 내어 말이나 행동을 함부로 하는 것

으밀아밀 : 다른 사람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비밀스럽게 이야기하는 모양

살매 : 인간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초인간적인 위력에 의해 지배된다고 여겨지는 운명

여싯여싯 : 질기거나 끈질기게 무언가를 해나가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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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여기까지.

 

PS,

책의 첫 문장: 그 도시는 예정에 없었다.

책의 끝 문장: 모든 불평등에 정면으로 맞선 상징, 코레예바의 아름다운 눈물에 삼가 붉은 술 한 잔 울린다



내 이름은 주세죽. 1901년생. 직업, 조선 독립혁명가. 1919년 조선에서 일어난 3.1운동으로 감옥에 갇힌 이후 스무 성상 내내 일본 제국주의와 맞서 줄기차게 싸워왔다. 그런데 항일 투쟁을 벌여갈 때 언제나 든든했던 ‘언덕’ 소련공산당이 돌연 나를 체포했다. ‘사회적 위험분자’로 훌닦은 뒤 1938년 5월 22일 카자흐스탄의 사막 도시 크즐오르다로 ‘유형 5년’을 명했다. 죄와 벌 모두 내가 동의할 수 없는 명백한 이유다. - P20

<올타>의 ‘철필 연주’를 디딤돌로 ‘직접 연주’에 들어가면서 내가 조선 땅에 있다는 사실이, 조선의 민중과 더불어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고마웠다. 상해를 떠나기 전에 이정은 원근, 단야와 함께 조선의 청년 속으로, 나와 정숙은 여성 속으로 들어가 조직을 일궈내기로 혁명사업을 분담했다. 단야는 상해 시절부터 내내 혼자였다. 고향 김천에 일찍 결혼한 아내가 있었지만 자신의 뜻과 전혀 무관한 혼인이었고 소통을 끊은 지도 오래라고 푸념하곤 했다. 낡은 시대의 혼인관이 빚어낸 비극이라면 비극이다. 훤칠한 단야가 고개를 숙이고 낡은 외투에 두 손 찌른 채 구부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은 종종 애처롭게 다가왔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판단하다면, 어린 단야와 결혼한 여성이야말로 더 큰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어 애써 그의 아내를 떠올렸다. - P110

"혁명 이후에 러시아 민중은 이혼의 자유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일부일처제를 여전히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실제로는 남성들의 가부장제가 남아 있지요. 가족은 혁명 러시아에서도 국가를 이루는 기본 단위입니다. 그런데 자본주의사회의 일부일처제와 마찬가지로, 혁명 러시아의 일부일처제도 또한 실질적으로는 일부다처제거든요. 여성과 남성 사이의 평등이 온전히 이뤄지지 않는 한, 배타적으로 동등한 성애를 전제로 한 일부일처제는 불가능합니다." - P256

나는 소련의 속살을 생생하게 체험하며 마르크스나 레닌이 미처 예상하지 못한 사실, 우리가 레닌학교와 공산대학에서 미처 배우지 못한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 속에 존재하는 어둠의 뿌리는 깊디깊더군요. 자기중심적인 인간들이 저지르는 폭력이나 도무지 바닥을 모를 탐욕 따위가 그 대표적 보기입니다. 제 노선만이 옳다고 부르대며 자기와 견해가 다른 사람들 죽이기를 서슴지 않는 숱한 ‘엄숙주의자’들은 전장은 물론,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심지어 공산당 내부까지 모든 영역에 깊숙이 똬리 틀고 있습니다.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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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내가 그걸 모르는 것 같습니까? 내가 멍청한 것 같아요? 내일 태양이 떠오른다는 사실을 밤새 사람들에게 설득하는 짓은 안 합니다. 태양이 스스로 그 사실을 증명할 테니까요. 가끔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뮤얼이 연기를 망친 건 스스로 자신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거기에 익숙해지세요. 또한 당신이나 내가 떠들어댈 수 있는 어떤 문제보다도 더 잔인한 문제들을 버질 스스로 안고 있기도 해요. 곧 그 괴물들과 마주하게 될 겁니다. 혼자가 되자마자. 걱정 마세요.” J.C.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겁니다. 고삐를 쥔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는 것


(153)

내 삶을 돌아보면 볼수록 서부영화의 정교한 세트장처럼 보였다. 언뜻 보면 모든 것이 고풍스럽운 진짜 같고, 수수께끼와 가능성이 가득한 것 같다. 방금 바람에 불어온 고운 흙먼지, 나무로 만든 낡은 스윙도어, 물결무늬처럼 일그러진 유리창, 손으로 그린 간판, 이 모든 것이 모험을 약속한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늙은 카우보이들이 포커를 치고 비극적인 술집이 아니다. 그냥 합판으로 지은 빈 건물일 뿐이다. 난방기 옆에서 기술자가 토마토수프를 끓이면서 곰 오양 젤리를 한 입 먹고, 비타민 C를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여기서 무슨 사건이 벌어지는 일은 없다. 그냥 몇 사람이 여기저기 서서 라테 한 잔을 바라고 있을 뿐이다.


(248)

나는 예술을 위한 전쟁에 나선다. 세상이야 마음대로 생각하라지. 세상이 널 실패작이라고 단정할지도 모른다. 네 가슴에 주홍 글씨를 꿰미 달고, 너를 가리켜 천박한 협잡꾼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등 뒤에서 속삭이듯 조롱을 던지는 소심한 목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저들이 너를 미워해서, 라디오 토크쇼에 나가 온 나라 사람들에게 수다를 떨어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 모두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


(267)

우리는 악기들을 완벽히 조율한 오케스트라였다. 아이폰에 중독되고, 컴퓨터에 집찾하고, 트위터와 포르노에 열중하고, 연극을 싫어하는 십 대들이 객석에서 최면에 걸린 듯 집중하고 있었다. 원래 셰익스피어를 봐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바로 이들이다. <뉴욕타임스>가 아니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 아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 극장에서 셰익스피어의 음악을 제대로 연주하기만 한다면, 작품이 스스로 살아난다. 객석의 아이들은 척추를 울리는 오르가슴처럼 이 연극을 느끼고 있었다.


(312)

에드워드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비단처럼 매끄럽고 연륜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무서워할 것 없네. 자네가 공연에 한번 빠지더라도 세상에는 아무 일도 없을 거야자네도 마찬가지고. 자네 지금 자신의 두려움에 지고 있어. 자넨 이 공연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가 아닐세. 나도 그렇고, 버질도 그래. 공연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공연에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아. 대역들의 리허설을 봤는데, 특히 스코티의 연기가 아주 좋더군.”


(314)

극장에서 연기하는 것이 나한테 이렇게나 고귀한 직업인 이유가 바로 이거야. 무대에서 그 순간에 집중하려고 애쓰다 보면, 인생에 집중하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네. 모든 환상과 혼란에서 벗어나 명징한 현재에 살게 되는 거지. 우리 인생은 현재에 집중하려고 우리가 매 순산 기울이는 노력으로 구성되어 있어. 진정한 현재를 사는 능력이 커질수록 철이 드는 거야. 무대는 그런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플랫폼일세.”


(316-317)

모든 결정이 중요하네. 어떤 때는 시간이 휙휙 지나가고 달력의 페이지가 달라져도 우리는 매일 하는 사소한 일들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자신을 속일 수 있어아니면 모두 미리 예정된 거라고 속이거나. 하지만 아니야.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딛고 걷는 걸세. 햄릿의 대사를 연습한다면, 아주 많이 연습한다면, 무대에서 때가 됐을 때 그 대사를 관객에서 잘 전달할 수 있겠지. 연습하지 않으면 전달하지 못할 테고. 운은 의도의 잔재야. 아버지가 아들 옆에 있어주는 걸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면그 아들이 무사히 자랄 가능성이 높아. 알겠나?” 그는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병원의 하얀 불빛이 검버섯이 핀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때렸다. “내 말은, 건강한 결혼 생활을 하려면 두 사람이 힘을 합쳐야 되지만, 좋은 아버지가 되는 건자네 노력만으로 충분하다는 거네.”


(325)

마흔 살까지 기다려 봐, 똘똘이. 그러면 알게 될 거야.”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인생은 완만한 경사의 쭉 뻗은 오르막길이 아니야. 지식과 재능을 조금씩 쌓아서 결국 부처처럼 깨달음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고. 아주 징글징글한 습지야. 진창이야. 발 한번 떼기가 내내 비틀린 길이었다가.” 이지키얼은 완전히 평온한 얼굴로 다시 자리에 앉아 아무렇지 않게 차를 마시며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333)

끝났다. 다시는 없을 것이다. 배우 서른아홉 명이 땀방울이 무대 위에 문자 그대로 흩뿌려져 있고, 나무로 된 세트 곳곳에 누군가가 긁어서 표시한 자국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이제 쓰레기통행이었다. 의상의 솔기에 붙여두었던 우리 각자의 이름이 뜯겨나갈 것이고, 의상은 대여점으로 돌아가 언젠가 또 다른 배우가 입게 될 날을 기다릴 것이다.


(340)

지난 몇 달 동안 내 결혼 생활이 무너지는데도 나는 아내를 사랑한다면 아내 곁에 머물러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새로 내리는 눈의 가벼움 속을 걸으면서 나는 정말로 그녀를 사랑하지만 헤어질 거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었다. 세상에 그녀 같은 여자는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나를 바친 것. 이 아이들을 얻은 것은 똑똑한 행동이었다. 이렇게 놀라운 아이들의 아빠가 된 나는 행운아였다. 하지만 결혼 생활이 모종의 이유로 나를 헝클어놓았기 때문에 곧게 펴질 필요가 있다는 사실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나는 우리 결혼 생활을, 우리 사랑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자신의 노력으로 아름다운 깃털을 갖게 됐다고 생각하며 우쭐거리는 공작새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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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우리가 우리 인생에서 객이 될 수 있어요? 우리 인생에서 방관자가 될 수 있냐고, 손 놓고 우리 인생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있냐고, 없죠? 근데 여행을 가면 남의 인생의 객이 되어서 그들의 인생을 구경할 수 있는 거야. 방관해도 된다고. 여행지니까, 남의 인생이니까. 그러니까 여행을 가면 맨날 인생에서 주인이 돼야 하네, 주체가 되어야 하네, 그런 부담 좀 덜고 한 발짝 떨어져서 인생을 좀 느긋하게 관망하고 즐길 수가 있는 거라고. 인생에서 방관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라고. 그래서 여행이 좋은 거야.”


(180)

골 빠지게 애써봐야 결국은 한두 개, 많아 봐야 몇 가지 깨달음 안에 갇혀서 사는 거예요. 표현만, 말만, 단어만 좀 바꿔가면서, 지가 깨달은 그 몇 가지 안에 갇혀서 답답하게 사는 거라고. 그러니까 인생이 이렇게 지루한 거야. 결국 반복일 뿐이니까. 그렇게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생각하고 또 하고, 애써서 깨닫게 되는 게 결국 인생은 뻔하고 지루한 반복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는 거라고. 그걸 깨닫기 전에는 다들 인생이 졸라, 뭔가 있을 줄 알지.”


(332-333)

나는 노인이 돼서,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식당이 있으면 좋겠어. 식당은 아주 붐비지는 않고, 그렇지만 단골들이 있어서 문닫을 걱정은 없어. 그래서 구석 자리라면 종일 있어도 눈치가 보이지 않아. 간단한 요기도 할 수 있지만, 주로 커피와 차를 팔아. 근데 게다가, 술도 내어줘. 여름엔 시원한 술, 겨울엔 따뜻한 술, , 가을엔 대충 사장 맘대로 술, 그런 식당엘, 오후에 찾아가서, 앉은 채로 졸아. 배를 먼저 채우고 커피를 기다리는 그사이를 늙은 몸이 못 견디고 조는 거야. 고개가 떨어지는 방향으로 아무렇게나…… 아무도 깨우지 않아. 귀에 익은 소음에 스스로 깨어보면 식당은 여전히 적당히 분주하고, 앞에는 커피가 적당히 식어도 맛있어. 어느 날은 식당이 끝날 때까지 졸고, 가까운 지인이기도 한 사장이 나를 깨워서 집으로 보내주는 거지. 그런 식당이, 늙었을 때는 하나 있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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